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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님의 꼬리의 움직임이 멈추고 갑자기 조금 진지한 목소리의 물음이 들려오자, 자신도 모르게 멍한 표정으로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누리 님, 갑자기... 어째서죠...? 왠지 모르게 동물적인 본능으로, 지금 이 순간이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 위험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죽어버릴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이 스쳐지나갔다.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존재의 죽음은 두 가지. 육체가 죽거나, 정신이 죽거나. 만약... 만약, 다른 이들의 기억에서 지워진다면, 그것 역시... '죽음'.
"......아... 니요... 그 분들은 전혀 모르고 계세요... 어째선지 저, 되살아난 직후에는 이 날개도 한동안 감춰져서... 수녀님들께서는 저를 그냥 인간 씨로 알고 계세요. 그리고 주변에 퍼뜨리고 계시지도 않아요. 그, 그러니까... 그 분들께서는... 전혀 잘못한 것이 없으시니까... 그, 그러니까..."
횡설수설, 조금 움츠러들어 시선마저 아래로 떨구어 피한 채, 손가락을 괜히 꼼지락꼼지락거렸다. 하지만 두려웠다. 누리 님께서도 결국에는 '신' 님. 그것도 고위신 님. 자신이 이렇게 그들을 두둔한다고 한들, '신' 님의 지위 앞에서는 자신 역시 한낱 미물에 불과했으니.
하지만 누리 님께서는 이내 다시 웃어보이셨다. 그에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살짝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아예 무대의 중앙 쪽으로 다가간 자신들. 그러나 누리 님의 말씀도, 수녀님들도, 모두 다 계속해서 신경 쓰여 부드럽지만 뭔가 조금 어정쩡한 동작으로 자신의 드레스를 살짝 잡고 무릎을 굽혀 누리 님께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
왈츠 음악은 들려왔지만, 그와는 대비되는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 침묵을 지켰다.
리스가 거짓말을 하는지 사실을 이야기하는진 알 수 없었다. 물론 리스가 거짓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것이다. 신들은 인간들에게 너무 알려지면 곤란하다. 고위신조차도 그런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인간들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가 계속해서 퍼지고 퍼지고 또 퍼져서 그 존재가 실체한다는 것이 너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면 그 기억을 없애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리스의 말대로라면 굳이 없앨 필요가 없었다. 리스의 말대로라면 그 인간들은 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미소를 내비쳤다. 나도 리스가 좋아하는 이들을 건드리고 싶진 않지만 그것이 신계의 규율이니까. 신이 인간들에게 너무 알려지면 인간들은 신에게 너무 의존하게 되고 우리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즉, 저들의 세계에 직접적으로 간섭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세계의 균형을 깨뜨리기 딱 좋은 상황이니까.
아무튼 춤을 추기 위해서 무대 중앙으로 다가가는 것은 좋았지만 리스의 표정은 어두워보였다. 방금 내가 한 말 때문일까. 그렇기에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이야기했다.
"괜찮아! 아무것도 안할 거니까! 리스의 말대로라면 건드릴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불안해하기 없기야! 귀여운 옷도 입고 왔는데 뽐내지도 못하면 억울하잖아? 그러니까..."
이어 나는 리스의 손을 잡고 왈츠 음악에 맞춰어서 천천히 스탭을 밟으면서 리드하듯이 움직이면서 웃어보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진실이었다. 애초에 '신' 님께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으니. 하지만... 괜히 작게 꼼지락꼼지락거리는 손가락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야 불안하고 두려웠으니까. 혹시나 수녀님들께 해가 갈까봐. 그것도, 자신 때문에. 은혜를 입어놓고 그 은혜를 갚지는 못할 망정, 피해를 끼친다면... 자신은...
불안함과 두려움에 가득찬 표정은 어두웠고, 쉽게 밝아질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비록 누리 님께서 정말로 다행이라며, 다시금 미소를 지어보이셨지만... 그럼에도...
무대의 중앙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족쇄를 찬 것 마냥 무겁게 느껴지기 그지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누리 님께 드레스 끝자락을 잡고 인사를 올리자, 이내 곧 다시금 자신을 안심시켜 주려는 듯이 웃어보이는 누리 님. 괜찮다며, 불안해하기 없기라는 그 말씀에 이어 자신의 손을 잡고 먼저 천천히 스텝을 밟기 시작하는 누리 님의 모습에, 잠시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고 누리 님을 멍한 눈동자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그리고 침묵.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신' 님의 말씀이니까 무조건 신뢰를 하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 누리 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네, 정말로 능숙하세요, 누리 님. 역시 위대하신 '신' 님들께서는 전부 다 능숙하신 것 같아서 대단해요. 은호 님께서도 누리 님만큼이나 춤 씨를 잘 추시겠지요?"
조금 망설이다 아주 살짝, 누리 님의 손을 맞잡고 천천히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리 님의 리드에, 누리 님의 스텝에 맞추어서. 누군가에게 맞춰주는 것이 익숙한 듯, 조금의 삐걱거림도 없이 완벽하게 누리 님의 춤에 맞추어 천천히 왈츠를 추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말을 해도 괜찮겠지? 엄마가 그것으로 뭐라고 하진 않을테고 엄마도 다른 이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니까. 일단 엄마에게 배웠다는 것은 엄마가 이론만 가르쳐줬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실전에서는 내가 좀 더 능숙하다. 실제로 지금만 해도 나는 훨씬 능숙하게 잘 추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 하지만 리스도 엄청 잘 추는 것 같은데?
그 리듬에 맞춰서 다시 한 번 스탭을 밟으면서 나는 춤에 집중했다. 리스가 맞춰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기분 탓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리스는 나보다 훨씬 더 잘 추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 역시 왈츠에 집중했다.
"신이라고 해서 뭐든지 다 잘하는 것은 아니야! 가온이만 해도 그렇잖아?"
신이라고는 해도 가온이는 참으로 뭔가 나사 빠진 구석이 있으니까. 미리내에 가서 얼음동상이 되어서 돌아온 것도 한두번이 아닌걸. 슬쩍 시선을 가온이에게 돌렸다가 나는 고개를 다시 앞으로 해서 리스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보였다.
"리스는 춤을 얼마나 췄어?"
같이 춤을 추면 대충 느낄 수 있다. 이 신이 얼마나 춤을 잘 추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리스는 아마도 나보다 더 잘추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금만 해도 조금도 스탭이 꼬이지 않는걸. 나는 한번씩 꼬이는 것과는 달리 말이야.
정말로 의외라는 듯, 놀란 듯, 멍했던 두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깜빡깜빡였다. ...하, 하지만 누리 님께서는 은호 님한테서 배우셨다고... 왠지 머리가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누리 님의 스텝에 맞춰주는 발동작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완벽했다. 마치 춤 동작이 몸에 배어있는 것처럼.
"...하지만 '신' 님들께서는 거의 다 잘하시는 걸요. 가온 님께서는 그렇게나 넓은 과수원 씨에서 맛있는 신과 씨들을 키우시고, 거기에 관리자 님의 일에, 이런 행사 씨들도 전부 다 혼자서 준비하시잖아요? 정말로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동시에 도와드릴 수 없어서 죄송해요... 희미하게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하다가 말의 끝에서는 조금 시무룩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다시는 일을 안 시켜주실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기에.
"...네? 저요...?"
그러다 누리 님의 질문이 들려오자 잠시 두 눈을 깜빡이며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으음, 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얼마나 췄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렸을 때부터 춤 씨를 좋아하기는 했었거든요. 본능처럼..."
대답을 하는 와중에도 음악 소리에 맞추어 추는 춤은 여전히 부드럽지만 능숙해보였다. 이내 곧 빙글, 돌아 드레스 자락을 하늘하늘 날리며 누리 님께 희미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신' 님들이랑 춤 씨도 춰볼 수 있게 되어서 무척 다행이라고, 즐겁다고 생각해요. 저는 언제나 론이랑만 춤 췄었거든요."
"가온이는 이 일을 한 것이 한두 해가 아닌걸.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정말로 옛날부터 이런 일들을 했으니 몸에 익은 것 뿐이야...라고 가온이가 이야기한 적이 있어. 그러니까 너무 비교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도와주는 것 여부는...직접 묻지 않으면 모르지 않을까? 하지만 가온이는 그런 것으로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할 거야. 아마도?"
나는 가온이가 아니니까 확신있게 얘기할 수 없지만 내가 아는 가온이라면 아마 그렇게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한다. 가온이는 애초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혼자서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니까. 알파 늑대. 즉 우두머리 늑대였다는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난 생각하고 있다. 아무래도 리더는 혼자서 이것저것을 다 해야하니까.
아무튼 춤을 추면서도 리스는 무난하게 내 질문에 대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췄다라. 춤을 좋아하는 홍학이었던걸까? 리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리스의 행동에 맞추어서 다시 스탭을 밟고 나 역시 턴을 하면서 돌았다. 물론 리스처럼 완전히 부드럽고 능숙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춤을 춘 것이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기도 하고, 이런 곳에서 누군가와 같이 춤을 추는 것은 처음이기도 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맞춰나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리스에게 이야기했다.
"그럼 앞으로도 춤을 추자고 다른 신들에게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매번 같은 대상하고만 추면 재미가 없잖아? 리스가 제안하면 정말로 바쁘지 않는한 다들 받아줄거라고 생각해!"
리스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니까 아마 어지간한 이들은 다 받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받지 않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신이 다 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도 일단 이야기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리듬에 맞춰서 스탭을 마치면서 춤을 끝냈다. 그리고 리스를 바라보면서 윙크를 하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누리 님께서 태어나시기도 훨씬 전부터... 그렇군요. 그래도 저는 역시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 많은 일들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해내신 거잖아요? 정말로 대단하세요. ...아, 물론 누리 님께서도 정말로 대단하시지만요. 그리고...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다행이지만..."
희미하게 헤실헤실, 미소를 지으며 '신' 님들을 찬양하다가 이내 조금 머뭇거리듯이 말 끝을 흐렸다. 그래도... 뭔가, 사건이 일어났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마치 저번에 아사 님을 뵈었을 때 느낀 듯한 그 느낌...? ...물론 왠지 모르게, 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던 자신만의 직감일 뿐이었지만.
아무튼 그러면서도 춤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름답고 우아한 왈츠. 4분의 3박자의 스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물론 누리 님한테서는 조금 어색한 스텝이 가끔씩 나타나곤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야 그럴 때에는 자신이 부드럽게 받아 넘기면 되었으니까. 춤은 완벽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추는 사람과의 끊임 없는 대화와 소통. 그것이 진정한 춤이었기에.
"...그, 그렇지만... 그러기엔 다들 많이 바쁘실 것 같아서요. 가온 님이랑 아사 님이랑 령은 관리자 님이시기도 하니까..."
"관리자라고 해서 하루종일 바쁜것은 아닌걸. 물론 가온이는 엄마의 보좌이기도 해서, 엄마가 시키는 일도 하긴 하지만... 일단 직접 묻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그러니까 물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괜히 속으로 끙끙 앓는 것보다는 역시 직접 물어보는 것이 좋다고 난 생각한다. 혼자서는 아무리 추측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까. 이를테면 전에 엄마가 어째서 나를 딸로 데리고 있는지의 답이라던가... 그런것들은 역시 묻지 않으면 모르는 법인걸. 그렇기에 리스도 혼자서만 생각하지 말고 직접 묻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나와 춤을 추고 있는 이 귀여운 홍학 수인 신이 직접 선택할 일이었다. 내가 행동을 강제할 순 없으니까. 아무리 고위신이라고 해도 개인의 자유의지를 무조건 꺽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우아하게 이어지던 춤은 그 끝을 맺게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리스의 손을 중심으로 해서 턴을 돌아 마무리를 지었다. 입고 있는 연보라색 드레스가 살짝 휘날리다가 아래로 가라앉았고 주변에선 커다란 박수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춤은 다른 신들에게도 보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야! 리스가 잘 추니까 나도 잘 출 수 있었는걸. 나와는 달리 리스는 전혀 실수를 안했잖아? 그게 리스의 실력이잖아? 충분히 자랑거리로 삼아도 좋다고 생각해!!"
진지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여전히 리스의 손은 꼬옥 잡고 놓지 않고서 나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한가지 제안을 했다.
"괜찮다면 다음에 다른 춤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을래? 아. 혹시 다른 춤도 많이 알고 있다면 말이야!"
역시 춤을 많이 알고 싶다면 제대로 아는 이에게 아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엄마처럼 이론만 알고 있으면 아무래도...조금 불안하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기왕이면 춤을 잘 추는 리스에게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부탁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들 뭔가를 하시느라 바쁘신 걸요. 관리자 님으로써 라온하제를 다스리시는 일도 하시고, 그 밖에 다른 일들도 많이 하시고..."
특히나 자신이 살고있는 다솜의 관리자 님이신 아사 님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관리자 님은 무척 바쁘시다는 인식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아사 님께서는 언제나 수많은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었고, 가온 님 역시도 과수원 관리에, 이런 무도회 개최 등으로 늘 바빠보이셨으니. ...하지만...
"...그래도... 네, 나중에 한 번 여쭤보는 건이 좋을 것 같아요. 누리 님의 말씀대로 말이예요. ...그렇게 조언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누리 님."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희미하게 미소 지어보였다. 그래, 어쩌면 누리 님의 말씀대로 직접 여쭤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물론 갑자기 찾아가서는 뜬금 없이 "저와 춤 춰주실 수 있나요?" 할 수는 없겠지만.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에 잠긴 채로 이어지던 왈츠는 이내 곧 누리 님의 턴으로 끝이 났다. 누리 님께서 아름답게 턴을 돌 수 있도록 맞잡은 손을 꼬옥 잡은 채 완벽하게 왈츠를 마무리 지으니, 여기저기서 커다란 박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에 기분 좋지만 조금 부끄러운 듯이 약간 홍조를 띈 채 손을 앞에 모으곤 주변을 향해 계속해서 허리를 꾸벅 숙여 공손히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누리 님. 하지만 감히 말씀 드리자면, 누리 님께서도 정말 잘 추셨다고 생각해요. 춤 씨는 완벽하게 추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거든요. 함께 춤을 추는 파트너와의 소통과 교감. 저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쁜 거예요, 누리 님."
잠시나마 누리 님과 소통을 한 것만 같아서 말이예요, 희미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물론 '신' 님과 감히 소통을 하는 것은 자신으로서는 엄청나게 무례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춤이 예쁘게 마무리 된 것은 분명 누리 님께서 자신을 생각해주신 덕분이겠지.
잠시 생각에 잠기다, 이내 곧 누리 님의 제안 하나가 들려오자 한 박자 늦게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멍한 표정. 누리 님과 맞잡은 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살짝 떨려왔고, 목소리 역시도 떨려왔다.
"...제가... 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 그렇게 몇 번이나 되묻고 나서야 뒤늦게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세게 끄덕끄덕였다. 밝은 목소리가 뒤이어졌다.
"누리 님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요! 저, 전문적으로 춤 씨를 배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춤 씨들도 조금은 알고 있으니까... 더 열심히 연습해올게요!"
"하지만 내가 실수를 한 사실은 변함이 없잖아. 좋게 평가해주는 고맙고, 잘 췄다고 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장차 이 땅을 지배하게 될 지배자로서 춤 정도는 멋지게 추고 싶단 말이야. 소통과 교감도 중요하지만 기술적인 것도 어느정도 중요하다고 난 생각해."
그렇기에 조금 분하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분함이었다. 뭔가 좀 더 잘 추고 싶은데 중간에 발이 꼬이기도 하는 등의 실수를 저질렀으니까. 리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 제대로 넘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와 같이 춤을 추는 리스가 잘 맞춰줬기에 충분히 춤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 분하기도 했다. 더 잘 추지 못한 나 자신에게...
아무튼 리스는 내 제안이 믿기지가 않는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살짝 떨리는 손의 느낌과 떨려오는 목소리. 아. 이거 리스 특유의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분명해. 그렇게 믿기 힘든 것일까. 하긴, 자신이 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리스에게 있어서 지금의 제안은 도저히 믿기 힘든 것일까. 하지만 리스는 신인데... 조금 안타깝다고 생각하지만 곧 표정을 원래대로 돌리면서 나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원하니까 제안한거야! 엄마에게 배우는 것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엄마는 영상을 보여주고 스스로 하라는 주의인걸.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어! 직접 추는 사람이 지도를 해주는 것이 더 빨라! 그러니까 리스에게 부탁하는거야! 리스는 잘 추니 말이야."
굳이 열심히 연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리스가 하겠다면 그냥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더 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이어 나는 리스의 손을 다시 꼬옥 잡아주면서 배시시 웃으며서 말했다.
"그럼 조만간에 한번 찾아갈게! 한가하거나 할 것이 없을 때 말이야! 히힛. 아무래도 엄마 밑에서 다른 것들도 공부를 하면 마냥 한가하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
"...그래도 누리 님께서는 아직 춤 씨를 많이 춰보셨던 것이 아니실테니까... 충분히 잘 추셨다고 생각해요. 기술적인 부분은 나중에 조금씩 보완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제일 중요한 소통과 교감을 성공하신, 대단하신 누리 님이시니까... 기술적인 부분들도 금방 성공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희미하게 배시시 웃으며 누리 님께 얘기했다. 그것은 확신이 담긴 자신의 작은 응원. 애초에 십 년 이상 춤을 춰왔던 자신과 이제 태어난지 1년이 넘은 누리 님의 춤 실력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 될테니까. 그렇기에 조금 분한 듯한 누리 님께 작은 응원을 건네었다.
하지만 역시 누리 님의 제안은 좀처럼 믿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살짝 두 손과 목소리를 떨면서 몇 번이고 누리 님께 되묻다가, 결국에는 환하게 웃으며 누리 님의 제안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누리 님께서 원하신다니 정말로 기뻐요...! 칭찬 정말로 감사해요, 누리 님. 저, 그렇게 잘 추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리 님을 위해서 열심히 연습할게요!"
누리 님을 도와드릴 수 있게 되다니, 영광도 이런 영광이 있을까. 기쁜 마음에 선명한 미소를 활짝 꽃피워내다가 누리 님께서 다시 자신의 손을 꼬옥 잡아주자 조금 망설이듯 손가락을 작게 꼼지락거렸다. 그러나 이내 곧 큰 용기를 내듯, 자신 역시도 살짝 손가락을 구부려 누리 님의 손을 살며시, 부드럽게 잡아보았다.
"...네, 알겠습니다. 저는 내일 모레, 하루 정도 빼고는 언제든지 괜찮으니까... 나중에 누리 님께서 편하실 때 언제든지 와주셔도 된답니다. 은호 님께서 다른 것들도 공부하시고 배우시는데도 춤 씨까지 더 배우시려는 누리 님, 정말로 대단해요...!"
두 눈을 반짝반짝이며 '신' 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역시 은호 님만큼이나 멋지고 위대하신 '신' 님이셨다, 누리 님께서는.
그건 같이 춤을 춘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일이었다. 교감도 교감이지만 역시 기술적인 면은 리스가 나보다 훨씬 우위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겸손한 모습은 역시 자신이 신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기보다는 리스의 성품 자체가 자신을 낮추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 싶지만...
아무튼 내일 모레, 하루 빼고는 얼마든지 괜찮다고 이야기하면서 리스는 편할 때 얼마든지 와줘도 된다고 나에게 말해왔다.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는 그 모습에 얼굴을 붉히면서 꼬리를 마구 살랑살랑, 강하게 흔들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에이!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엄마만큼 멋지게 다스리는 지배자가 되고 싶어서 배울만큼 배우는거야! 애초에 엄마도 능력이 안되면 안 물려준다고 했으니까. 엄마가 나를 믿고 맡기는 건데,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하면 큰일이잖아. 그 뿐이야!!"
쑥쓰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표현하면서 나는 고개를 빠르게 도리도리 저으면서 살며시 손을 놓았다. 계속 잡고 있기도 애매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어 리스를 바라보면서 바로 질문했다.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누리 님의 말씀에 가볍게 허리를 꾸벅, 숙여 대답했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은 자신이 누리 님보다 더 좋을지도 몰랐지만, 그건 단지 지금까지 춤을 춰 온 시간의 양이 달랐기 때문일테니. 조금만 더 춤을 배운다면 누리 님께서는 분명 자신보다 훨씬 더 춤을 잘 추실 것이었다.
그렇기에 누리 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언제든지 찾아와도 된다는 뜻을 밝혔다. 딱 하루를 빼고. 그야 그 날은 아사 님께 뜨개질 수업을 받기로 약속한 날이었으니까. 마치 스승님과 제자 관계가 또 이어지게 된 것만 같아 조금 신기하면서도 영광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래도 정말로 대단하신 걸요. 그렇게 은호 님의 믿음에 보답하려 하시는 것도, 제대로 배우려 하시는 것도 말이예요. 그러니 누리 님께서는 분명 은호 님만큼이나 멋진 지배자 님이 되실 거라고 믿어요. 정말로 말이예요."
그것은 확신 어린 믿음이었다. 그렇기에 조용히 눈웃음을 지어보이면서 흔들림 없는, 호의 가득한 신뢰를 보였다. 비록 누리 님께서는 조금 쑥쓰러우신 듯 했지만. 아무튼 이내 누리 님께서 손을 놓으시는 것에 맞춰 자신 역시도 천천히 손을 놓고는, 이어지는 누리 님의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으음, 으음, 하는 소리를 내다가, 몇 박자 늦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역시 왈츠 씨인 것 같아요. 너무 빠르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제가 가장 많이 췄던 춤 씨라서 가장 동작이 편하거든요."
부드럽고 우아한 동작. 빠르게 움직이거나 하는 것보다는 그런 분위기가 자신에게도 더 잘 어울릴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다가 누리 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보었다.
엄마만큼이나 멋진 지배자가 될 거라고 이야기해주는 리스의 말이 기분이 좋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마구마구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곧 꼬리를 세우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잘 세워지지 않았다. 꼬리가 절로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모양이었다. 여우 수인 신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런 것은 곤란한데. 정식 지배자가 되면 너무 가볍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안돼. 안돼. 오늘은 즐거운 날인걸?
아무튼 리스는 왈츠를 제일 좋아한다고 내 말에 대답했다. 가장 많이 춘 춤이라. 다솜에 살아서 그런 것일까? 봄의 왈츠라는 곡이 유명하잖아. 물론 왈츠가 봄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곧 나는 대답을 해야만 했다. 리스가 나에게 따로 배우고 싶은 춤이 있는지를 물어보았으니까. 사실 춤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종류를 아는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 고개를 갸웃하면서 생각하다가 리스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발레를 배우고 싶어! 그것도 일단은 춤의 일종이잖아? 아. 그런데 가능할까? 물론 리스가 편한 것을 가르쳐줘도 돼! 리스는 춤을 잘 추니까 뭘 가르쳐줘도 예쁘게 배우고 출 수 있을 것 같거든!"
그것은 꾸밈없는 내 마음의 진심이었다. 그것은 실제로 리스와 춤을 춘 내가 보장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것도 잘 하지 않을까 싶어 리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리스를 바라보았다.
"네, 물론이예요, 누리 님. 정말로 그렇게 보여요. 누리 님께서는 꼭 멋진 지배자 님이 되실 수 있을 거예요. 꼭이요!"
드물게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확신을 하듯 몇 번이나 반복하여 얘기하면서. 누리 님의 기분이 좋아보였기 때문일까. 마구 흔들리는 꼬리조차 '행복'해보여 기뻐하던 중, 누리 님의 표정이 잠시 시무룩해졌다가 다시 돌아오자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누리 님,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걸까요...?
하지만 차마 그것에 관하여 여쭤보지는 못 한 재, 그저 이어지는 누리 님의 물음에 대답하며 대신 다른 물음 하나를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그야, 누리 님께서 어떤 춤을 원하시는 지를 알면 그것에 대해서 좀 더 열심히 알아올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누리 님의 대답은 다름 아닌 발레. 그에 한 박자 늦게 고개를 크게 끄덕여보였다.
"...네! 물론이예요, 누리 님. 다행히 저, 발레 씨도 가끔씩 추곤 했어서... 누리 님께서 배우고 싶으시다면 그걸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만 저는 발레 씨는 혼자 추는 것 밖에 잘 몰라서... 혹시 다른 누군가와 같이 추고 싶으시다면, 2인용 발레 씨를 배워올게요, 누리 님."
애초에 중심 잡기 같은 것은 자신이 자신 있어 하는 분야였으니. 자신이 알고 있는 춤이 나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누리 님께 천천히 여쭤보았다.
"...누리 님께서는 1인용을 원하시는지, 아니면 2인용을 원하시는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그건 전혀 생각도 못한 말이었다. 확실히 발레를 혼자서만 하진 않으니까. 단체 발레도 있었지? 아마...? 그런 생각을 하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셀프딱밤을 먹일까 하다가 곧 손을 내렸다. 그래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는걸. 오히려 리스가 당황하면서 말릴 가능성이 더 크기도 했으니까. 아무튼 나는 1인용 발레와 2인용 발레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것은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1인용부터 하는 것이 중요했다. 1인용도 못하는데 2인용 발레를 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단 혼자서도 잘 해야 다른 이와도 맞추는 2인용 발레를 할 수 있는 것일테니까.
"그럼 우선 1인용부터! 나 발레는 정말로 잘 모르거든. 그러니까 1인용부터 확실하게 한 후에 2인용을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 내가 먼저 확실하게 하는 것이 먼저였기에 그렇게 대답하면서 리스를 바라보면서 배시시 웃으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리고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후에 2인용으로! 어때? 괜찮아? 힘들면 말해도 괜찮아! 무엇보다 리스가 1인용밖에 모른다고 한다면 우선 1인용부터 배우는 것이 맞잖아?"
역시 이것이 정답일 거라고 확신하며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일단 기초부터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을거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