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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왈츠는 언제 들어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역시 봄이라면 이 노래가 아닐까? 가온이가 노래 선정은 정말로 잘해. 지금도 저기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는 가온이를 바라보다가 나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봄을 맞이해서 새로 구입한 연보라색 드레스는 오늘을 위해서 아껴두고 아껴둔 복장이었다. 정확히는 무도회를 하기로 결정한 그 날 바로 구입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입고 왔다는 이야기.
일단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돌아가기도 애매했기에 나는 무도회장 내에서 춤이나 출까 해서 천천히 무대 쪽으로 걸어나왔다. 같이 춤을 출 이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가만히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다들 그래도 즐거워보여서 다행이야!"
두 손을 꼭 모아서 그런 혼잣말을 하며 나는 천천히 앞으로 리듬을 타면서 걸었다. 춤을 추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나로서는 더욱 즐겁고 행복할테니까.
여기저기에 '신' 님들이 가득하시자 역시 한 박자 늦게 감탄의 소리가 작게 터져나왔다. ...제가 처음 보는 '신' 님들도 엄청 많으세요...! 두리번두리번, 홍학 특유의 모습으로 여기저기 돌아가는 고개로 인하여 목 뒤에 묶인 검은색 리본이 하늘하늘거렸다.
모두들 즐겁고 행복해보이는 모습. 봄의 왈츠 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서로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는 '신' 님들의 모습은 그저 조용히 바라보기만 해도 괜히 자신이 더 즐거워지는 영광 중의 영광이나 다름 없었다. ...저의 '신' 님도 저렇게 행복해하고 계실까요?
문득 생각에 잠긴 채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던 중, 왠지 낯익은 누군가의 모습이 하나밖에 없는 시야 속에 들어오자 잠시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그 존재는 다름 아닌...
"...누리 님?"
놀란 듯 한 박자 늦게 멍하니 두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곧 재빨리 누리 님 앞으로 걸어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누리 님. 오늘 누리 님의 옷 씨의 색깔, 너무 예뻐요. 정말로 잘 어울리세요, 누리 님!"
앞으로 리듬을 타고 걸어가는 도중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리스! 애초에 나에게 님이라고 붙이는 이는 얼마 되지 않기도 하고, 리스의 목소리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기에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바로 나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하기도 했으니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내 옷을 칭찬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러는 리스의 옷이야말로 너무 잘 어울리고 예쁜걸! 아무튼 고마워!!"
기분이 좋아 절로 꼬리가 살랑살랑. 참으로 부드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호를 그리듯... 살랑살랑. 그러다가 꼬리의 움직임을 멈추고서 나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리스도 춤을 추러 무대로 나온 거야? 아니면 다른 볼일이 있어서 나온 거야? 다른 볼일이 있다면 도와줄게! 에헴!"
괜히 잘난듯 헛기침을 하면서 나름대로 폼을 잡아보지만 스스로 너무 어색하기 그지 없어서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무안한 감정을 웃음으로 승화하면서 리스를 다시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에 빠져 무도회장을 걷고 있자, 이내 곧 누리 님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누리 님께 다가가 먼저 공손히 인사를 올리며 미소 짓자, 누리 님께서도 미소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게다가 자신에게도 돌아온 칭찬. 그에 기분 좋은 듯한 미소를 희미하게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꾸벅, 한 번 더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정말로 감사합니다, 누리 님. 저도 선물 받은 옷 씨라서 조금 고민했는데... 다행이예요. 기뻐요."
더군다나 소중한 은인들에게서 받은 옷이었으니. 령도, 누리 님도, 모두 예쁘다고 해주자 기쁜 마음에 희미하게 양볼을 붉히며 배시시 웃었다.
...아, 누리 님의 꼬리 씨가...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살랑살랑 움직이는 꼬리의 끝을 따라서 눈동자를 한 박자 늦게 이리저리 굴리다가, 이내 들려오는 누리 님의 말씀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아예 두 손으로 박수까지 짝짝짝, 치면서 마냥 해맑게 반응했다.
"...역시 누리 님...! '신' 님께서는 역시 대단하세요! 멋져요, 누리 님!"
찬양하는 마음과 희미하면서도 해맑은 미소에 거짓이라곤 조금도 없어보였다. 비록 누리 님께서는 무안한 듯이 웃어버렸지만. 그리고 이어지는 물음에 한 박자 늦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정말로 즐겁게 놀고 있답니다. 령이랑 같이 춤 씨도 추고, 음료수 씨도 같이 마셨었거든요! 정말로 재밌었어요."
자신도 모르게 즐거운 기억을 자랑하듯이 얘기하는 두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이내 누리 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어머. 선물 받은 옷이야? 매우 소중한 옷이겠는걸? 누구에게 받은 거야? 누구에게? 응?"
조금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난 리스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이? 혹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버린 매우 소중한 이? 괜히 궁금증이 터질 것 같아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가 내 머릿속으로 울리는 엄마의 '적당히 묻거라'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꼬리가 바짝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두리번두리번거리자 저 편에서 엄마가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식은 땀이 흐를 것 같았지만 꾹 참으면서 애써 웃었다.
"아, 아냐! 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신님은 역시 대단하다는 말에 리스도 신이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아직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뜩 들어 나는 더 말을 하진 않았다. 아직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으니까. 하지만 꼭 신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말거야!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나는 리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리스는 이미 춤을 춘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고개를 한번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령이? 령 말이야? 령 님이 아니라?"
리스는 보통 신에게 '님'을 붙이는데 령에게는 님을 붙이지 않는 이 변화는 대체 무엇일까? 괜한 궁금증이 들어서 고개를 갸웃하다 곧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에 나는 빠르게 대답했다.
"그래도 내가 개최한건데 아무것도 안할순 없잖아? 춤을 출까 해서 나왔어! 물론 지금 출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왠지 모르게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을 선물해준 존재를 궁금해하는 듯한 누리 님의 모습. 그에 천천히 입을 열어 대답하려던 중, 왠지 모르게 누리 님의 꼬리가 위로 바짝 올라가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리 님의 꼬리를 바라보았다. 깜빡깜빡, 두 눈을 깜빡이며 느릿하게 누리 님과 누리 님의 꼬리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자, 어딘가를 바라보던 누리 님께서는 이내 황급히 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얘기하셨다. 하지만...
"...누리 님께서 궁금해하셨으니까... 대답해드리고 싶은 걸요. 이 옷 씨랑 구두 씨는 성당의 수녀님들께서 저에게 선물로 주셨답니다. 언젠간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구해다 주셨어요. 그래서... 네, 정말로 소중한 옷 씨예요."
잠시 따스한 눈길로 자신의 드레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괜히 구두도 몇 번 톡톡, 가볍게 땅을 울리도록 하다가, 이내 이어지는 누리 님의 물음에 한 박자 늦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여기서 그 말이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리스와 성당의 수녀가 연결이 전혀 되지 않았으니까. 성당의 수녀라고 하면 인간계에서 기도 드리는 그 사람들 아니야? 그 사람들이 왜 거론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나름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리스가 나쁜 짓을 했을리도 없을테니까.
"어째서 그 인간들이 리스에게 그런 선물을 줬는진 모르겠지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잘 알았어! 정말로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옷뿐만이 아니라 그 인간들도 말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주는 옷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금 입고 있을리가 없을테니까. 그렇게 납득을 하는 와중에 곧 리스의 입에서 더욱 놀라운 말이 들려왔다. 친구가 되었다는 그 말. 순간 믿을 수 없어 리스를 두 눈 깜빡이면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신에게 존칭을 쓰고 자신을 신보다 낮은 존재라고 칭하던 리스가 령과 친구가 되었어?!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렇지?! 리스가 령과 친구가 되었다는거지?! 그러니까 우정을 나누는 그 친구 말이지?! 정말로 축하해!! 리스!! 아. 아. 그리고... 이미 추는 신들이 가득하잖아?"
이어 질문에 대답하면서 나는 주변의 신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미 짝을 이뤄서 춤을 추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리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네. 제가 예전에 인간계 쪽에서 죽었다가 저의 '신' 님께서 다시 저를 되살려 주셨을 때... 지금처럼 인간 씨의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거든요. 그 때 저를 잠시 거두어서 돌봐주셨던 분들이 수녀님들이셨어요."
정말로 좋으신 분들이예요, 선명하게 배시시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 그렇게나 선하디 선한 존재들을 만난 것은 그 때가 거의 첫 경험이었으니. 내리쬐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따스한 무짓갯빛 아래에서, '신' 님의 석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그 순간을, 자신은 아마 앞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잠시 깊게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떴다. 그리고 색이 다른 두 눈을 부드럽게 접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로 좋아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인간 씨들이세요. 수녀님들은."
저번에 받았던 세뱃돈을 일부만 남기고 몰래 성당에다 전달하여 보은할 정도로. 하지만 자신이 받은 은혜는 앞으로도 계속 갚아나갈 것이었다. 그러다 자신의 말에 누리 님께서 정말로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시자, 한 박자 늦게 덩달아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 네에... 령과 제가 서로 '친구'가 되었어요. ...사실 '친구'란 게 잘 몰라서... 령과 함께 알아가고 있는 중이예요. 그렇지만 령과 함께 있으면 무척 즐겁고 '행복'해요."
...이것이 '친구'라는 걸까요? 마음이 조금 간질간질, 뭔가 따스한 것으로 가득차고 있는 듯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배시시 웃었다. 그러다가 누리 님의 설명이 들려오자,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로 '신' 님들께서 다들 춤 씨를 추고 계시네요."
형형색색. 다채로운 색깔들이 가득했다. 그 색들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머뭇머뭇,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큰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아마 그 인간들은 내가 아는 것이 맞다면 갈 곳이 없는 이들을 보살펴주는 일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리스를 데려간거구나. 그렇다고 한다면 그 수녀들은 리스가 원래는 동물이었는데 신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가만히 리스를 바라보았다. 만약의 경우에는, 그 수녀들이 주변으로 너무 퍼뜨린다고 한다면 나는 고위신으로서 인간들의 기억 속에서 리스를 지울 수밖에 없다. 잔혹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것이 신계에 있는 기본적인 규칙이니까.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겠어. 하지만 리스. 일단 묻는 건데, 그 사람들은..그 인간들은 리스가 동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리고 주변에 퍼뜨리고 있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조금은 진지하게 물으면서 꼬리의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니까. 아무튼 그와는 별개로 리스가 지금 행복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령과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다. ...마음을 열 존재를 찾은거구나. 그런 것이 뭔가 기분이 좋아 절로 미소가 지어져서 다시 한 번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 와중에 리스는 나를 가리키면서 춤을 추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가만히 리스를 바라보다가 나는 리스의 손을 살며시 잡으면서 웃으면서 한 마디를 던졌다.
"Shall we? ...엄마는 이렇게 말하는 거라고 했는데 난 좋아!"
리스가 먼저 제안을 했으니 굳이 더 물을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리스를 데리고 무대의 중앙 쪽으로 천천히 유도하듯 다가갔다. 그곳은 신들의 중심이었다. 기왕 춤을 춘다고 한다면 역시 중앙이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