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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딸랑. 령의 머리카락에 달린 방울 소리가 듣기 좋게 부드러운 소리를 내었다. 령의 장신구도, 령의 머리카락도, 그리고 령의 미소도, 전부 다 아름답게 봄의 무도회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행복해보이는 령의 모습.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충분했다. 자신의 이름이, 자신이 되살아난 이유가, 그로 인해서 유지되고 있을 것이었다.
"...분명 그럴 거예요. 령이 그렇게나 소중하게 여겨주는 검 씨이니까요."
사랑을 받는 존재는 언제나 '행복'할 것이었다. 그러니... 령의 검 씨도, 분명 행복하겠지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따스한 눈길로 령을 바라보았다. 그래, 분명히 그럴 것이었다. 령이 바란다면, 그렇게. 자신 역시도 기도할 것이었으니.
"네, 아직은 비밀 씨로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기대하고 있어요, 령. 금방 선물해줄게요!"
나름대로 당찬 포부를 밝히며 고개를 세게 끄덕끄덕였다. 소중한 친구가 저렇게 웃으며 기대하겠다고 말해주니, 자신 역시도 의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이런 커다란 행사 씨들은 가온 님께서 주로 준비해주시니까... 엄청 고생하셨을 것 같아요. 저도 좀 도와드릴 걸..."
조금 시무룩한 목소리로 령의 말에 대답했다. 하지만 이 무도회가 열린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가온 님께서 자신에게 더이상 일을 맡기지 않으실 것 같다는, 그런 예감도 문득 스쳐지나갔지만.
"앗, 령도 딸기 음료수 씨를 보고 있었나요? 그럼... 저는... 으음... 체리 음료수 씨요!"
령의 말에 살짝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두 와인잔을 가져와서는 한 잔에 연분홍색의 딸기 음료수를 따르곤, 먼저 령에게 건네주며 미소 지었다.
"...자아, 령을 위한 딸기 음료수 씨예요! 정말 신기하지만 예쁘게 생기신 잔 씨네요."
딸랑, 딸랑. 령의 머리카락에 달린 방울 소리가 듣기 좋게 부드러운 소리를 내었다. 령의 장신구도, 령의 머리카락도, 그리고 령의 미소도, 전부 다 아름답게 봄의 무도회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행복해보이는 령의 모습.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충분했다. 자신의 이름이, 자신이 되살아난 이유가, 그로 인해서 유지되고 있을 것이었다.
"...분명 그럴 거예요. 령이 그렇게나 소중하게 여겨주는 검 씨이니까요."
사랑을 받는 존재는 언제나 '행복'할 것이었다. 그러니... 령의 검 씨도, 분명 행복하겠지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따스한 눈길로 령을 바라보았다. 그래, 분명히 그럴 것이었다. 령이 바란다면, 그렇게. 자신 역시도 기도할 것이었으니.
"네, 아직은 비밀 씨로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기대하고 있어요, 령. 금방 선물해줄게요!"
나름대로 당찬 포부를 밝히며 고개를 세게 끄덕끄덕였다. 소중한 친구가 저렇게 웃으며 기대하겠다고 말해주니, 자신 역시도 의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이런 커다란 행사 씨들은 가온 님께서 주로 준비해주시니까... 엄청 고생하셨을 것 같아요. 저도 좀 도와드릴 걸..."
조금 시무룩한 목소리로 령의 말에 대답했다. 하지만 이 무도회가 열린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가온 님께서 자신에게 더이상 일을 맡기지 않으실 것 같다는, 그런 예감도 문득 스쳐지나갔지만.
"앗, 령도 딸기 음료수 씨를 보고 있었나요? 그럼... 저는... 으음... 체리 음료수 씨요!"
령의 말에 살짝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두 와인잔을 가져와서는 한 잔에 연분홍색의 딸기 음료수를 따르곤, 먼저 령에게 건네주며 미소 지었다.
"...자아, 령을 위한 딸기 음료수 씨예요! 정말 신기하지만 예쁘게 생기신 잔 씨네요."
령은 지금 행복했다. 자신의 친우와 함께 춤을 추고 음료를 먹을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았다. 령이 베시시 웃어보았다. 검은 눈이 고이 접혀져 호선을 그렸다. 령의 검은 눈망울에 리스가 온전히 담겼다. 령은 한동안 리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리스가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네요. 제 검이 꼭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면 해서요."
물론 검은 무생물이니 행복이란 걸 느낄 수 있을까 싶긴 했다. 하지만 뭐 어떻겠는가? 무생물에게도 염원이 깃들 수도 있으니깐. 령은 잠시 집에 있을 제 검을 떠올렸다. 비록 지금은 날이 무딘 가검이지만 언젠가는 검이 빛을 발할 날이 오겠지. 부디 그때가 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는 날이길.
리스가 시무룩해하자 령은 다정하게 그녀의 어깨를 토닥인다. 꼭 도와주지 못했다고 해서 시무룩해할 필요는 없는데... 령은 리스가 너무 착하다고 생각한다. 리스라면 할 일이 많은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테니까. 한 번 정도는 자신을 위해 살아줬음 좋겠는데 그것도 어려울까?
"가온 씨라면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너무 시무룩해하지 말아요. 다음에 도와주면 되죠."
령이 다정하게 말하였다. 리스는 정말 상냥한 사람이라고 다시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령이 물끄럼 제 자신의 발을 바라봤다. 그에 반해 자신은... 아니 되었다. 비교는 좋지 않은 것이니까 그만두는 게 낫다.
체리 음료수도 맛있지. 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령은 리스가 와인잔에 음료를 따르자 고맙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투명한 와인잔에 연분홍빛 음료가 담기자 무지 예뻐보였다.
"고마워요, 리스. 잘 마실게요."
령은 감사인사를 건내고 난 후, 잔을 들어 딸기 음료를 마셨다. 상큼한 딸기의 맛이 입 안 가득 채워졌다.
"령이 그렇게 기도하고 있으니, 령의 검 씨는 분명 행복한 나살들을 보내고 있을 거예요. 간절히 기도하면, 정말로 간절히 기도하면, '신' 님께서 소원을 이루어 주시거든요."
물론 령은 이미 '신' 님이시기는 하지만 말이예요, 작게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검은 살아있지 않은 무생물이라고는 하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무생물조차 '사랑'하고픈 존재들이었기에. 더군다나... 자신의 '신' 님께서도 이미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있지 않은가, 지금. ...물론 이것은... ...진짜 현실이 아니겠지만. 잠시 멍한 두 눈동자를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령이 자신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위로해주자,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배시시 웃어보였다.
"...정말 고마워요, 령. 가온 님이라면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어요. ...령은 언제나 저에게 따스하게 말해줘서 늘 고마워요. 역시 령은 온화하고 정말로 좋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이런 자신에게까지도 저렇게 다정하게 말해주는 령이었기에. 령이 저의 발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조금 더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으며, 이번에는 자신이 령의 어깨를 살며시 토닥여주었다. '신' 님이 아니라 친구이기에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해준 직접적인 위로. 작지만 따스한 손길을 령에게 살며시 건네주었다.
그리고 이내 령에게 먼저 와인잔에 딸기 음료수를 따라서 내밀자, 령은 그것을 받아들여 주었다. 그에 배시시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령이 먼저 음료를 마시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자신의 잔에도 조심스럽게 체리 음료수를 따랐다. 선명한 피와도 같은 붉은색 액체가 잔을 채워나갔다.
음료수를 다 따르고는 조심스럽게 잔을 들어올려 체리 음료수를 마셔보았다. 딸기보다 묵직한 맛이 느껴졌다. 입술에 선명한 붉은색이 립스틱처럼 살며시 묻어나와, 마치 피를 묻힌 것처럼 보였다.
비나리에 봄의 기운이 솟아오르고 다솜의 기운이 솟아올랐다. 즉, 지금은 봄이란 이야기다. 또 이렇게 3개월 정도 봄의 기운이 흐르다가 여름의 기운이 흘러 아라의 기운이 강해지겠지. 계속 그렇게 흘러흘러 바뀌었으니 이는 명백한 순리였다.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가운데 춤을 추는 이들이 가드하니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리가 기획한 이 일. 나름대로 잘 돌아가는 것 같아서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덧붙여서 나는 딱히 춤을 출 생각이 없었다. 이런 것은 그냥 조용히 구경하는 것이 제일이 아니겠는가. 그저 앞으로 걸어가며 춤을 추는 아름다운 신들의 모습을 구경하다 고개를 돌려보니 혼자 테이블에 앉아있는 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더냐. 혼자 앉아서..."
그냥 시간 보내기더냐? 그렇게 물으면서 나는 다솜의 관리자인 그 신을 바라보았다. 하긴 적극적으로 춤을 추진 않을 것 같지만서도, 이렇게 혼자 앉아서 무언가를 마시기만 하는 것은 조금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그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싫어하지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가장 까다로운 대답이다. 말 그대로 무관심에 가까운 말이 아니던가. 그런 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제일 힘든 법이다. 아니, 그보다 저 신은 대체 얼마나 술을 마신 것일까. 얼굴이 빨간데 말이지. 한참전부터 계속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닐까...그런 생각이 들어 조금 걱정이 되었다.
신통술을 써서 숙취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이야기했다.
"너무 많이 마시지 말지어다. 몸에 안 좋으니라. 무엇이든 적당히가 좋은 법이니라. 아무리 술이 좋다고 해도 정도라는 것이 있지 않겠느냐. 그리고 즐겁냐고 물으면..즐거우니라. 내가 다스리는 땅에서 신들이 즐겁게 보내는데 어떻게 즐겁지 않겠느냐."
고위신, 그것도 지배자인 신에게 있어서 최고의 영광은 자신의 땅에서 살아가는 신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만큼 큰 행복이 또 어디에 있을까. 즐거운 내일을 만들어가니 말이야. 그 물음을 던진 신에게 나는 피식 미소를 보이면서 여유로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너무 술을 마시지 마라고 했는데 바로 술을 보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이더냐. 나도 모르게 기가 차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신은 술을 좋아하는 것이더냐? 물론 술을 좋아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배자인 신이 너무 마시지 말라고 하면 조금은 자제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 물론 꾸벅 숙여서 숭배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그렇겠지라고 말하면 조금은 내 말을 따르는 시늉이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니더냐.
작게 투덜거리면서 속을 정리하는 도중 나는 이 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즐겁지 않다라. 내 딸이 들으면 정말로 슬퍼할 발언이었다. 물론 신들이 모두 즐거워하는 것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니던가.
그 와중에 손가락 하나를 펼치고 두 개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제대로 취한 모양이었다. 절로 한숨을 내쉬면서 나는 술을 뺏으려고 하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손가락이 하나인데 무엇이 둘이라고 하는 것이더냐. 취했느니라. 그리고 즐겁지 않다고 한다면 너는 무엇이 줄겁더냐? 그것이 궁금하구나."
일단은 참고 정도는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물어보면서 나는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나는 이 땅의 지배자이니까.
"아무 생각도 못할 정도로 가끔은 마시고 싶어서?" 압수라는 말에 아.. 그건 무린데.. 요즘 양조장 시설을 점검하느라 한 잔도 못 마셨단 말이야. 라고 말하는데. 아마 앵화영장 기념품 중 하나인 벚꽃/버찌주 관련인가 봅니다.
"어 근데 왜 두개야?" "딱히...?" 즐거운 것이 뭐냐는 물음에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네. 라고 답하면서 핑거푸드를 집어 입에 밀어넣으려 합니다.
"즐거운 내일은 좋은 거지만, 그건.. 나한테는 좀 많이 멀고 먼 것처럼 가끔 느껴지지." 아마도? 실제로 즐거웠던 적이 있기는 있었겠지만. 그것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참 깊은 구덩이 속으로 굴러떨어진 듯하다. 란 생각을 하면서 턱을 괴면서 고개를.. 아니 바보털을 까닥까닥거립니다.
그러니까 술은 절대로 안된다고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확실하게 압수하려고 했다. 이 이상 술을 먹으면 정말로 크게 취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분위기를 떠나서 쓰러지는 것은 말 그대로 몸에 안 좋은 것이니까. 무엇보다 음주 비행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어 들려오는 자신에게는 멀고 먼 무언가라고 느낀다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즐거운 것이 멀고 먼 것이란 말인가. 기본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이 있을것인데..이 신은 조금 마모가 되기라도 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반론했다.
"특이한 것이 아니니라. 그게 너인 것이니라. 신마다 다 같을 순 없지 않겠느냐. 즐거운 내일을 멀게 느낀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으니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조금은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근처에 있는 음료수를 가지고 온 후에 그것을 컵에 따르고 천천히 마셨다. 신과 음료수로구나. 달콤한 것이마음에 드느니라. 나도 모르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그녀를 바라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살다보면 즐거운 것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 즐거운 내일도 가까워질지도 모르는 것이지. 너도 살아있는 이가 아니더냐. 살아있는 이라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느니라."
취한 이에게 취했다고 해서 순순히 취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저것은 필시 취한 것이 분명했다. 강제로 집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조금 생각을 하면서 나는 다시 음료수를 마셨다. 신과액이 조금 진한 것 같은데 다음부터는 약간 연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가온이에게 말을 해볼까 생각하는 도중에 나는 그녀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많이 없어졌다라. 없어질 순 없느니라. 네가 살아있다면 말이다. 단지 잊고 있거나 그것을 생각하지 않게 된 것 뿐이니라. 너도 살아있는 이라면 살아있는 이로서 감정은 가질 수밖에 없고 행복은 그 중 하나이니라. 그건 나보다 더 오래 산 네가 더 알지 않느냐."
그녀는 나보다 더 오래 산 신이다. 물론 나처럼 고위신은 아니긴 하지만, 적어도 나보다 오래 살았다는 것은 적어도 내가 알 정도로는 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머리를 쾅 박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뒤에서 잡아주려고 했다.
"괜찮은 것이더냐!!"
다행히 피가 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갑자기 부딪치는 소리에 어떻게 안 놀랄 수 있을까. 정말로 크게 놀라면서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물을 먹이려고 시도했다.
아무리 봐도 취한 것이 맞았다. 저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취한 것이 맞았다. 물론 본인은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취한 것 맞잖아. 조용히 한숨을 내쉬면서 나는 일단 그녀가 다치지 않은 것에 작게 안도했다. 아무래도 다치면...보통 찝찝한 것이 아닐테니까. 물론 내 힘이라면 가벼운 상처 정도는 금방 치료해버릴 수도 있고 말이지. 그런데 그 와중에 나에게 향하는 저 눈빛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들려오는 말은...
"차라리 물을 마시도록 하거라! 아무리 그래도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박는 이가 어딨단 말이더냐!! 그러다가 정말로 다치면 어쩔 참이더냐!!"
조금은 화를 내듯이 이야기하면서 다시 물을 먹으라는 듯이 물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쉬다가 그냥 춤이라도 가서 한번 추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있다가 돌아가는 것은 애매하지 않더냐."
물론 쉬면서 음식을 먹는 것도 좋겟지만 이런 공허한 느낌을 풍기는 이를 그냥 두기는 보통 애매하기 그지 없었다. 누리에게 말을 해두면 춤을 추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치는 순간, 바로 신통술을 쓸 생각으로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언가...조금 공허한 느낌이었다. 이런 축제에서 공허함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일까. 나는 고위신이라고 해도 속마음까지는 읽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냥 추측만 조용히 할 뿐이었다. 그렇게 추측을 하고 판단하고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고 움직인다. 고위신이라고 해서 무엇이든지 다 완벽한 것은 아닌 법이니까.
아무튼 춤을 추는 것은 어떻겠냐는 권유에 그녀는 조금 생각이 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예쁜 편이었다. 직접 만든 것인지, 아니면 어디에서 사온 것인지. 다른 이들이 입은 옷에 비해서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악세사리도 정말로 에브지 않은가. 장갑도, 팔찌도... 물론 내가 입고 있는 한복도 거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예쁘다고 생각한다. 무도회장이라고 해서 드레스만 입으란 법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 옷을 입을 수도 있는 것이지.
"나도 오늘은 춤을 출 생각이 없느니라. 추고 싶으면 너희들끼리 추도록 하라."
나는 아니더라도라는 말에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반격을 했다. 애초에 나는 춤을 추러 왔다기보다는 이 분위기를 구경하러 온 것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그저 웃으면서 그녀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내가 내 땅에서 살고 있는 신을 신경쓰고 걱정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것일까. 오히려 내 쪽에서 질문을 하고 싶었다. 사실 이 이상의 질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외에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겠는가. 이 땅을 다스리는 자로서, 아무도 다치지 않길 바라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물론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어떨까.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뿐이었다.
좀 쉬어야 춤을 출 수 있겠다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확실히 쉬는 것이 좋겠지. 나는 남아있는 내 몫의 음료수를 마시면서 컵을 신통술을 이용해서 저 편으로 옮겼다. 저렇게 놔두면 알아서 씻지 않겠는가. 가온이가 조금 바쁠지도 모르지만 그러라고 있는 관리자의 자리. 그냥 앉혀두게 할 수는 없었다.
"잘 생각했느니라. 쉬는 것이 중요한 법이니라. 그리고 아무나라.. 그래. 그것도 좋은 법이지."
누구랑 추게 될지는 모르지만, 필시 즐거운 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며 나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내가 입고 있는 한복의 맵시를 다듬었다. 그리고 근처 자리에 편안하게 앉은 후에 그녀를 바라보면서 물어보았다.
보좌는 잘 모른다인가. 이상하게 관리자 녀석들은 보좌를 두지 않는단 말이야. 가온이는 그렇다고 쳐도 다른 신들은 어째서 안 두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나는 내 나름대로 추리를 해보려고 했지만 그 답이 나올 수는 없었다. 사실 꼭 둬야하는 것도 아니니까. 애초에 그런 것은 필수가 아니고 그냥 두고 싶으면 두라는 것이 내 방식이다. 무엇이든지 다 룰로 정하는 것은 즐거운 내일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가능하면 내 딸이 원하는 그런 분위기를 나는 어머니로서 만들어주고 싶었다. 언젠가..누리에게 이 땅을 물려줄 때, 누리가 만족스러워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 부분은 알아서 잘 고민하도록 하라. 그 부분은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니 말이다."
편한대로 하면 되는 일. 그것이야말로 즐거운 내일을 위해서 내가 허락한 자유이다. 효율을 따지면 두는 것이 낫다라고 말을 하지만 마음에 걸려하는 그 모습에 나는 편하게 생각하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의자에 등을 확실하게 기댔다.
"물론 고민거리가 있으면 들어줄수는 있느니라."
이런 것도 고위신으로서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신들의 고민거리 하나 못 들어줘서야 어떻게 지배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땅을 지배하기 위해서 나는 모든 것들을 다 할 생각이다. 내 땅에 사는 신들의 편안함 또한 즐거운 내일을 위한 초석이 아니겠는가.
살아있는 이상, 무언가가 떨어지거나 하진 않는다. 단지 눈을 돌리거나 할 뿐이지. 모든 것이 그렇게 돌아갈 뿐이었다. 그런 것을 확실하게 하면서,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확실하게 부정했다. 그럴리가 없다고. 아무튼 그녀는 천천히 일어서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안정감 있게 일어난 것으로 보아 술에서 깬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깬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춤을 추러 가는 것이더냐. 꼭 추길 바라니라."
부드럽게 웃으면서 나는 그녀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 후에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럼 그녀가 누구와 춤을 출지, 다른 신들은 누구와 춤을 출지를 지켜보도록 할까. 김에 저 양고기 스테이크를 가져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것을 접시에 담아서 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의 이 분위기를 마음껏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주변에서 퍼지는 왈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에는 나에게 교육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혹은 뒹굴거리는 엄마가 요즘은 뭔가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까진 나도 알 수 없었다. 일단 종이에 무언가를 계속해서 뭔가를 적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가 이상한 것을 만들리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엄마는 그것들을 신통술로 숨겨버렸다. 마치 나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 모습에 조금 놀라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는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건 아직 보여줄 수 없느니라. 조만간에 보여주게 될 터니 기다려보도록 하거라."
"히, 힌트라도 주면 안 돼?"
"힌트라. 그래. 힌트를 주자면 이건 보물이니라."
"보물?!"
"그래. 그래. 보물이니라. 그 보물을 만드는 중이니 아직은 보여줄 수 없느니라."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내 고개를 갸웃 옆으로 넘어갔다. 뜬금없이 보물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걸까? 하지만 엄마가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확실한 것은 조만간에 가온이가 또 불리지 않을까...그런 생각이 들었다. 힘내. 가온아. 그런 생각을 절로 하면서 나는 다시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사: 097 손, 발톱은 언제 다듬나요? 수인 모습일 때 기준으로 갈아내는 것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갈고, 깎는 것은 한달에 한번쯤일 겁니다. 189 좋아하는 동물은? 딱히 없습니다. 048 사탕이 주어진다면? (사탕의 맛은 딸기, 초코, 커피, 계피, 레몬, 메론맛이 있다.) 왜 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사라면 잘 먹을게 하고는 집에 가서... 가서...?
봄의 왈츠는 언제 들어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역시 봄이라면 이 노래가 아닐까? 가온이가 노래 선정은 정말로 잘해. 지금도 저기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는 가온이를 바라보다가 나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봄을 맞이해서 새로 구입한 연보라색 드레스는 오늘을 위해서 아껴두고 아껴둔 복장이었다. 정확히는 무도회를 하기로 결정한 그 날 바로 구입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입고 왔다는 이야기.
일단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돌아가기도 애매했기에 나는 무도회장 내에서 춤이나 출까 해서 천천히 무대 쪽으로 걸어나왔다. 같이 춤을 출 이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가만히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다들 그래도 즐거워보여서 다행이야!"
두 손을 꼭 모아서 그런 혼잣말을 하며 나는 천천히 앞으로 리듬을 타면서 걸었다. 춤을 추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나로서는 더욱 즐겁고 행복할테니까.
여기저기에 '신' 님들이 가득하시자 역시 한 박자 늦게 감탄의 소리가 작게 터져나왔다. ...제가 처음 보는 '신' 님들도 엄청 많으세요...! 두리번두리번, 홍학 특유의 모습으로 여기저기 돌아가는 고개로 인하여 목 뒤에 묶인 검은색 리본이 하늘하늘거렸다.
모두들 즐겁고 행복해보이는 모습. 봄의 왈츠 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서로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는 '신' 님들의 모습은 그저 조용히 바라보기만 해도 괜히 자신이 더 즐거워지는 영광 중의 영광이나 다름 없었다. ...저의 '신' 님도 저렇게 행복해하고 계실까요?
문득 생각에 잠긴 채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던 중, 왠지 낯익은 누군가의 모습이 하나밖에 없는 시야 속에 들어오자 잠시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그 존재는 다름 아닌...
"...누리 님?"
놀란 듯 한 박자 늦게 멍하니 두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곧 재빨리 누리 님 앞으로 걸어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누리 님. 오늘 누리 님의 옷 씨의 색깔, 너무 예뻐요. 정말로 잘 어울리세요, 누리 님!"
앞으로 리듬을 타고 걸어가는 도중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리스! 애초에 나에게 님이라고 붙이는 이는 얼마 되지 않기도 하고, 리스의 목소리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기에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바로 나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하기도 했으니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내 옷을 칭찬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러는 리스의 옷이야말로 너무 잘 어울리고 예쁜걸! 아무튼 고마워!!"
기분이 좋아 절로 꼬리가 살랑살랑. 참으로 부드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호를 그리듯... 살랑살랑. 그러다가 꼬리의 움직임을 멈추고서 나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리스도 춤을 추러 무대로 나온 거야? 아니면 다른 볼일이 있어서 나온 거야? 다른 볼일이 있다면 도와줄게! 에헴!"
괜히 잘난듯 헛기침을 하면서 나름대로 폼을 잡아보지만 스스로 너무 어색하기 그지 없어서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무안한 감정을 웃음으로 승화하면서 리스를 다시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에 빠져 무도회장을 걷고 있자, 이내 곧 누리 님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누리 님께 다가가 먼저 공손히 인사를 올리며 미소 짓자, 누리 님께서도 미소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게다가 자신에게도 돌아온 칭찬. 그에 기분 좋은 듯한 미소를 희미하게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꾸벅, 한 번 더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정말로 감사합니다, 누리 님. 저도 선물 받은 옷 씨라서 조금 고민했는데... 다행이예요. 기뻐요."
더군다나 소중한 은인들에게서 받은 옷이었으니. 령도, 누리 님도, 모두 예쁘다고 해주자 기쁜 마음에 희미하게 양볼을 붉히며 배시시 웃었다.
...아, 누리 님의 꼬리 씨가...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살랑살랑 움직이는 꼬리의 끝을 따라서 눈동자를 한 박자 늦게 이리저리 굴리다가, 이내 들려오는 누리 님의 말씀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아예 두 손으로 박수까지 짝짝짝, 치면서 마냥 해맑게 반응했다.
"...역시 누리 님...! '신' 님께서는 역시 대단하세요! 멋져요, 누리 님!"
찬양하는 마음과 희미하면서도 해맑은 미소에 거짓이라곤 조금도 없어보였다. 비록 누리 님께서는 무안한 듯이 웃어버렸지만. 그리고 이어지는 물음에 한 박자 늦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정말로 즐겁게 놀고 있답니다. 령이랑 같이 춤 씨도 추고, 음료수 씨도 같이 마셨었거든요! 정말로 재밌었어요."
자신도 모르게 즐거운 기억을 자랑하듯이 얘기하는 두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이내 누리 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어머. 선물 받은 옷이야? 매우 소중한 옷이겠는걸? 누구에게 받은 거야? 누구에게? 응?"
조금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난 리스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이? 혹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버린 매우 소중한 이? 괜히 궁금증이 터질 것 같아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가 내 머릿속으로 울리는 엄마의 '적당히 묻거라'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꼬리가 바짝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두리번두리번거리자 저 편에서 엄마가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식은 땀이 흐를 것 같았지만 꾹 참으면서 애써 웃었다.
"아, 아냐! 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신님은 역시 대단하다는 말에 리스도 신이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아직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뜩 들어 나는 더 말을 하진 않았다. 아직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으니까. 하지만 꼭 신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말거야!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나는 리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리스는 이미 춤을 춘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고개를 한번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령이? 령 말이야? 령 님이 아니라?"
리스는 보통 신에게 '님'을 붙이는데 령에게는 님을 붙이지 않는 이 변화는 대체 무엇일까? 괜한 궁금증이 들어서 고개를 갸웃하다 곧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에 나는 빠르게 대답했다.
"그래도 내가 개최한건데 아무것도 안할순 없잖아? 춤을 출까 해서 나왔어! 물론 지금 출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왠지 모르게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을 선물해준 존재를 궁금해하는 듯한 누리 님의 모습. 그에 천천히 입을 열어 대답하려던 중, 왠지 모르게 누리 님의 꼬리가 위로 바짝 올라가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리 님의 꼬리를 바라보았다. 깜빡깜빡, 두 눈을 깜빡이며 느릿하게 누리 님과 누리 님의 꼬리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자, 어딘가를 바라보던 누리 님께서는 이내 황급히 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얘기하셨다. 하지만...
"...누리 님께서 궁금해하셨으니까... 대답해드리고 싶은 걸요. 이 옷 씨랑 구두 씨는 성당의 수녀님들께서 저에게 선물로 주셨답니다. 언젠간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구해다 주셨어요. 그래서... 네, 정말로 소중한 옷 씨예요."
잠시 따스한 눈길로 자신의 드레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괜히 구두도 몇 번 톡톡, 가볍게 땅을 울리도록 하다가, 이내 이어지는 누리 님의 물음에 한 박자 늦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여기서 그 말이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리스와 성당의 수녀가 연결이 전혀 되지 않았으니까. 성당의 수녀라고 하면 인간계에서 기도 드리는 그 사람들 아니야? 그 사람들이 왜 거론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나름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리스가 나쁜 짓을 했을리도 없을테니까.
"어째서 그 인간들이 리스에게 그런 선물을 줬는진 모르겠지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잘 알았어! 정말로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옷뿐만이 아니라 그 인간들도 말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주는 옷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금 입고 있을리가 없을테니까. 그렇게 납득을 하는 와중에 곧 리스의 입에서 더욱 놀라운 말이 들려왔다. 친구가 되었다는 그 말. 순간 믿을 수 없어 리스를 두 눈 깜빡이면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신에게 존칭을 쓰고 자신을 신보다 낮은 존재라고 칭하던 리스가 령과 친구가 되었어?!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렇지?! 리스가 령과 친구가 되었다는거지?! 그러니까 우정을 나누는 그 친구 말이지?! 정말로 축하해!! 리스!! 아. 아. 그리고... 이미 추는 신들이 가득하잖아?"
이어 질문에 대답하면서 나는 주변의 신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미 짝을 이뤄서 춤을 추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리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네. 제가 예전에 인간계 쪽에서 죽었다가 저의 '신' 님께서 다시 저를 되살려 주셨을 때... 지금처럼 인간 씨의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거든요. 그 때 저를 잠시 거두어서 돌봐주셨던 분들이 수녀님들이셨어요."
정말로 좋으신 분들이예요, 선명하게 배시시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 그렇게나 선하디 선한 존재들을 만난 것은 그 때가 거의 첫 경험이었으니. 내리쬐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따스한 무짓갯빛 아래에서, '신' 님의 석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그 순간을, 자신은 아마 앞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잠시 깊게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떴다. 그리고 색이 다른 두 눈을 부드럽게 접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로 좋아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인간 씨들이세요. 수녀님들은."
저번에 받았던 세뱃돈을 일부만 남기고 몰래 성당에다 전달하여 보은할 정도로. 하지만 자신이 받은 은혜는 앞으로도 계속 갚아나갈 것이었다. 그러다 자신의 말에 누리 님께서 정말로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시자, 한 박자 늦게 덩달아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 네에... 령과 제가 서로 '친구'가 되었어요. ...사실 '친구'란 게 잘 몰라서... 령과 함께 알아가고 있는 중이예요. 그렇지만 령과 함께 있으면 무척 즐겁고 '행복'해요."
...이것이 '친구'라는 걸까요? 마음이 조금 간질간질, 뭔가 따스한 것으로 가득차고 있는 듯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배시시 웃었다. 그러다가 누리 님의 설명이 들려오자,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로 '신' 님들께서 다들 춤 씨를 추고 계시네요."
형형색색. 다채로운 색깔들이 가득했다. 그 색들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머뭇머뭇,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큰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아마 그 인간들은 내가 아는 것이 맞다면 갈 곳이 없는 이들을 보살펴주는 일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리스를 데려간거구나. 그렇다고 한다면 그 수녀들은 리스가 원래는 동물이었는데 신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가만히 리스를 바라보았다. 만약의 경우에는, 그 수녀들이 주변으로 너무 퍼뜨린다고 한다면 나는 고위신으로서 인간들의 기억 속에서 리스를 지울 수밖에 없다. 잔혹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것이 신계에 있는 기본적인 규칙이니까.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겠어. 하지만 리스. 일단 묻는 건데, 그 사람들은..그 인간들은 리스가 동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리고 주변에 퍼뜨리고 있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조금은 진지하게 물으면서 꼬리의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니까. 아무튼 그와는 별개로 리스가 지금 행복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령과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다. ...마음을 열 존재를 찾은거구나. 그런 것이 뭔가 기분이 좋아 절로 미소가 지어져서 다시 한 번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 와중에 리스는 나를 가리키면서 춤을 추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가만히 리스를 바라보다가 나는 리스의 손을 살며시 잡으면서 웃으면서 한 마디를 던졌다.
"Shall we? ...엄마는 이렇게 말하는 거라고 했는데 난 좋아!"
리스가 먼저 제안을 했으니 굳이 더 물을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리스를 데리고 무대의 중앙 쪽으로 천천히 유도하듯 다가갔다. 그곳은 신들의 중심이었다. 기왕 춤을 춘다고 한다면 역시 중앙이 좋잖아?
누리 님의 꼬리의 움직임이 멈추고 갑자기 조금 진지한 목소리의 물음이 들려오자, 자신도 모르게 멍한 표정으로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누리 님, 갑자기... 어째서죠...? 왠지 모르게 동물적인 본능으로, 지금 이 순간이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 위험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죽어버릴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이 스쳐지나갔다.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존재의 죽음은 두 가지. 육체가 죽거나, 정신이 죽거나. 만약... 만약, 다른 이들의 기억에서 지워진다면, 그것 역시... '죽음'.
"......아... 니요... 그 분들은 전혀 모르고 계세요... 어째선지 저, 되살아난 직후에는 이 날개도 한동안 감춰져서... 수녀님들께서는 저를 그냥 인간 씨로 알고 계세요. 그리고 주변에 퍼뜨리고 계시지도 않아요. 그, 그러니까... 그 분들께서는... 전혀 잘못한 것이 없으시니까... 그, 그러니까..."
횡설수설, 조금 움츠러들어 시선마저 아래로 떨구어 피한 채, 손가락을 괜히 꼼지락꼼지락거렸다. 하지만 두려웠다. 누리 님께서도 결국에는 '신' 님. 그것도 고위신 님. 자신이 이렇게 그들을 두둔한다고 한들, '신' 님의 지위 앞에서는 자신 역시 한낱 미물에 불과했으니.
하지만 누리 님께서는 이내 다시 웃어보이셨다. 그에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살짝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아예 무대의 중앙 쪽으로 다가간 자신들. 그러나 누리 님의 말씀도, 수녀님들도, 모두 다 계속해서 신경 쓰여 부드럽지만 뭔가 조금 어정쩡한 동작으로 자신의 드레스를 살짝 잡고 무릎을 굽혀 누리 님께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
왈츠 음악은 들려왔지만, 그와는 대비되는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 침묵을 지켰다.
리스가 거짓말을 하는지 사실을 이야기하는진 알 수 없었다. 물론 리스가 거짓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것이다. 신들은 인간들에게 너무 알려지면 곤란하다. 고위신조차도 그런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인간들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가 계속해서 퍼지고 퍼지고 또 퍼져서 그 존재가 실체한다는 것이 너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면 그 기억을 없애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리스의 말대로라면 굳이 없앨 필요가 없었다. 리스의 말대로라면 그 인간들은 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미소를 내비쳤다. 나도 리스가 좋아하는 이들을 건드리고 싶진 않지만 그것이 신계의 규율이니까. 신이 인간들에게 너무 알려지면 인간들은 신에게 너무 의존하게 되고 우리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즉, 저들의 세계에 직접적으로 간섭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세계의 균형을 깨뜨리기 딱 좋은 상황이니까.
아무튼 춤을 추기 위해서 무대 중앙으로 다가가는 것은 좋았지만 리스의 표정은 어두워보였다. 방금 내가 한 말 때문일까. 그렇기에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이야기했다.
"괜찮아! 아무것도 안할 거니까! 리스의 말대로라면 건드릴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불안해하기 없기야! 귀여운 옷도 입고 왔는데 뽐내지도 못하면 억울하잖아? 그러니까..."
이어 나는 리스의 손을 잡고 왈츠 음악에 맞춰어서 천천히 스탭을 밟으면서 리드하듯이 움직이면서 웃어보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진실이었다. 애초에 '신' 님께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으니. 하지만... 괜히 작게 꼼지락꼼지락거리는 손가락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야 불안하고 두려웠으니까. 혹시나 수녀님들께 해가 갈까봐. 그것도, 자신 때문에. 은혜를 입어놓고 그 은혜를 갚지는 못할 망정, 피해를 끼친다면... 자신은...
불안함과 두려움에 가득찬 표정은 어두웠고, 쉽게 밝아질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비록 누리 님께서 정말로 다행이라며, 다시금 미소를 지어보이셨지만... 그럼에도...
무대의 중앙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족쇄를 찬 것 마냥 무겁게 느껴지기 그지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누리 님께 드레스 끝자락을 잡고 인사를 올리자, 이내 곧 다시금 자신을 안심시켜 주려는 듯이 웃어보이는 누리 님. 괜찮다며, 불안해하기 없기라는 그 말씀에 이어 자신의 손을 잡고 먼저 천천히 스텝을 밟기 시작하는 누리 님의 모습에, 잠시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고 누리 님을 멍한 눈동자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그리고 침묵.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신' 님의 말씀이니까 무조건 신뢰를 하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 누리 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네, 정말로 능숙하세요, 누리 님. 역시 위대하신 '신' 님들께서는 전부 다 능숙하신 것 같아서 대단해요. 은호 님께서도 누리 님만큼이나 춤 씨를 잘 추시겠지요?"
조금 망설이다 아주 살짝, 누리 님의 손을 맞잡고 천천히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리 님의 리드에, 누리 님의 스텝에 맞추어서. 누군가에게 맞춰주는 것이 익숙한 듯, 조금의 삐걱거림도 없이 완벽하게 누리 님의 춤에 맞추어 천천히 왈츠를 추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말을 해도 괜찮겠지? 엄마가 그것으로 뭐라고 하진 않을테고 엄마도 다른 이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니까. 일단 엄마에게 배웠다는 것은 엄마가 이론만 가르쳐줬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실전에서는 내가 좀 더 능숙하다. 실제로 지금만 해도 나는 훨씬 능숙하게 잘 추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 하지만 리스도 엄청 잘 추는 것 같은데?
그 리듬에 맞춰서 다시 한 번 스탭을 밟으면서 나는 춤에 집중했다. 리스가 맞춰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기분 탓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리스는 나보다 훨씬 더 잘 추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 역시 왈츠에 집중했다.
"신이라고 해서 뭐든지 다 잘하는 것은 아니야! 가온이만 해도 그렇잖아?"
신이라고는 해도 가온이는 참으로 뭔가 나사 빠진 구석이 있으니까. 미리내에 가서 얼음동상이 되어서 돌아온 것도 한두번이 아닌걸. 슬쩍 시선을 가온이에게 돌렸다가 나는 고개를 다시 앞으로 해서 리스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보였다.
"리스는 춤을 얼마나 췄어?"
같이 춤을 추면 대충 느낄 수 있다. 이 신이 얼마나 춤을 잘 추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리스는 아마도 나보다 더 잘추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금만 해도 조금도 스탭이 꼬이지 않는걸. 나는 한번씩 꼬이는 것과는 달리 말이야.
정말로 의외라는 듯, 놀란 듯, 멍했던 두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깜빡깜빡였다. ...하, 하지만 누리 님께서는 은호 님한테서 배우셨다고... 왠지 머리가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누리 님의 스텝에 맞춰주는 발동작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완벽했다. 마치 춤 동작이 몸에 배어있는 것처럼.
"...하지만 '신' 님들께서는 거의 다 잘하시는 걸요. 가온 님께서는 그렇게나 넓은 과수원 씨에서 맛있는 신과 씨들을 키우시고, 거기에 관리자 님의 일에, 이런 행사 씨들도 전부 다 혼자서 준비하시잖아요? 정말로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동시에 도와드릴 수 없어서 죄송해요... 희미하게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하다가 말의 끝에서는 조금 시무룩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다시는 일을 안 시켜주실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기에.
"...네? 저요...?"
그러다 누리 님의 질문이 들려오자 잠시 두 눈을 깜빡이며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으음, 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얼마나 췄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어렸을 때부터 춤 씨를 좋아하기는 했었거든요. 본능처럼..."
대답을 하는 와중에도 음악 소리에 맞추어 추는 춤은 여전히 부드럽지만 능숙해보였다. 이내 곧 빙글, 돌아 드레스 자락을 하늘하늘 날리며 누리 님께 희미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신' 님들이랑 춤 씨도 춰볼 수 있게 되어서 무척 다행이라고, 즐겁다고 생각해요. 저는 언제나 론이랑만 춤 췄었거든요."
"가온이는 이 일을 한 것이 한두 해가 아닌걸.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정말로 옛날부터 이런 일들을 했으니 몸에 익은 것 뿐이야...라고 가온이가 이야기한 적이 있어. 그러니까 너무 비교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도와주는 것 여부는...직접 묻지 않으면 모르지 않을까? 하지만 가온이는 그런 것으로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할 거야. 아마도?"
나는 가온이가 아니니까 확신있게 얘기할 수 없지만 내가 아는 가온이라면 아마 그렇게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한다. 가온이는 애초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혼자서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니까. 알파 늑대. 즉 우두머리 늑대였다는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난 생각하고 있다. 아무래도 리더는 혼자서 이것저것을 다 해야하니까.
아무튼 춤을 추면서도 리스는 무난하게 내 질문에 대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췄다라. 춤을 좋아하는 홍학이었던걸까? 리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리스의 행동에 맞추어서 다시 스탭을 밟고 나 역시 턴을 하면서 돌았다. 물론 리스처럼 완전히 부드럽고 능숙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춤을 춘 것이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기도 하고, 이런 곳에서 누군가와 같이 춤을 추는 것은 처음이기도 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맞춰나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리스에게 이야기했다.
"그럼 앞으로도 춤을 추자고 다른 신들에게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매번 같은 대상하고만 추면 재미가 없잖아? 리스가 제안하면 정말로 바쁘지 않는한 다들 받아줄거라고 생각해!"
리스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니까 아마 어지간한 이들은 다 받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받지 않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신이 다 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도 일단 이야기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리듬에 맞춰서 스탭을 마치면서 춤을 끝냈다. 그리고 리스를 바라보면서 윙크를 하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누리 님께서 태어나시기도 훨씬 전부터... 그렇군요. 그래도 저는 역시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 많은 일들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해내신 거잖아요? 정말로 대단하세요. ...아, 물론 누리 님께서도 정말로 대단하시지만요. 그리고...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다행이지만..."
희미하게 헤실헤실, 미소를 지으며 '신' 님들을 찬양하다가 이내 조금 머뭇거리듯이 말 끝을 흐렸다. 그래도... 뭔가, 사건이 일어났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마치 저번에 아사 님을 뵈었을 때 느낀 듯한 그 느낌...? ...물론 왠지 모르게, 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던 자신만의 직감일 뿐이었지만.
아무튼 그러면서도 춤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름답고 우아한 왈츠. 4분의 3박자의 스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물론 누리 님한테서는 조금 어색한 스텝이 가끔씩 나타나곤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야 그럴 때에는 자신이 부드럽게 받아 넘기면 되었으니까. 춤은 완벽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추는 사람과의 끊임 없는 대화와 소통. 그것이 진정한 춤이었기에.
"...그, 그렇지만... 그러기엔 다들 많이 바쁘실 것 같아서요. 가온 님이랑 아사 님이랑 령은 관리자 님이시기도 하니까..."
"관리자라고 해서 하루종일 바쁜것은 아닌걸. 물론 가온이는 엄마의 보좌이기도 해서, 엄마가 시키는 일도 하긴 하지만... 일단 직접 묻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그러니까 물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괜히 속으로 끙끙 앓는 것보다는 역시 직접 물어보는 것이 좋다고 난 생각한다. 혼자서는 아무리 추측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까. 이를테면 전에 엄마가 어째서 나를 딸로 데리고 있는지의 답이라던가... 그런것들은 역시 묻지 않으면 모르는 법인걸. 그렇기에 리스도 혼자서만 생각하지 말고 직접 묻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나와 춤을 추고 있는 이 귀여운 홍학 수인 신이 직접 선택할 일이었다. 내가 행동을 강제할 순 없으니까. 아무리 고위신이라고 해도 개인의 자유의지를 무조건 꺽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우아하게 이어지던 춤은 그 끝을 맺게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리스의 손을 중심으로 해서 턴을 돌아 마무리를 지었다. 입고 있는 연보라색 드레스가 살짝 휘날리다가 아래로 가라앉았고 주변에선 커다란 박수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춤은 다른 신들에게도 보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야! 리스가 잘 추니까 나도 잘 출 수 있었는걸. 나와는 달리 리스는 전혀 실수를 안했잖아? 그게 리스의 실력이잖아? 충분히 자랑거리로 삼아도 좋다고 생각해!!"
진지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여전히 리스의 손은 꼬옥 잡고 놓지 않고서 나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한가지 제안을 했다.
"괜찮다면 다음에 다른 춤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을래? 아. 혹시 다른 춤도 많이 알고 있다면 말이야!"
역시 춤을 많이 알고 싶다면 제대로 아는 이에게 아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엄마처럼 이론만 알고 있으면 아무래도...조금 불안하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기왕이면 춤을 잘 추는 리스에게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부탁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들 뭔가를 하시느라 바쁘신 걸요. 관리자 님으로써 라온하제를 다스리시는 일도 하시고, 그 밖에 다른 일들도 많이 하시고..."
특히나 자신이 살고있는 다솜의 관리자 님이신 아사 님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관리자 님은 무척 바쁘시다는 인식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아사 님께서는 언제나 수많은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었고, 가온 님 역시도 과수원 관리에, 이런 무도회 개최 등으로 늘 바빠보이셨으니. ...하지만...
"...그래도... 네, 나중에 한 번 여쭤보는 건이 좋을 것 같아요. 누리 님의 말씀대로 말이예요. ...그렇게 조언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누리 님."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희미하게 미소 지어보였다. 그래, 어쩌면 누리 님의 말씀대로 직접 여쭤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물론 갑자기 찾아가서는 뜬금 없이 "저와 춤 춰주실 수 있나요?" 할 수는 없겠지만.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에 잠긴 채로 이어지던 왈츠는 이내 곧 누리 님의 턴으로 끝이 났다. 누리 님께서 아름답게 턴을 돌 수 있도록 맞잡은 손을 꼬옥 잡은 채 완벽하게 왈츠를 마무리 지으니, 여기저기서 커다란 박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에 기분 좋지만 조금 부끄러운 듯이 약간 홍조를 띈 채 손을 앞에 모으곤 주변을 향해 계속해서 허리를 꾸벅 숙여 공손히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누리 님. 하지만 감히 말씀 드리자면, 누리 님께서도 정말 잘 추셨다고 생각해요. 춤 씨는 완벽하게 추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거든요. 함께 춤을 추는 파트너와의 소통과 교감. 저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쁜 거예요, 누리 님."
잠시나마 누리 님과 소통을 한 것만 같아서 말이예요, 희미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물론 '신' 님과 감히 소통을 하는 것은 자신으로서는 엄청나게 무례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춤이 예쁘게 마무리 된 것은 분명 누리 님께서 자신을 생각해주신 덕분이겠지.
잠시 생각에 잠기다, 이내 곧 누리 님의 제안 하나가 들려오자 한 박자 늦게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멍한 표정. 누리 님과 맞잡은 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살짝 떨려왔고, 목소리 역시도 떨려왔다.
"...제가... 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 그렇게 몇 번이나 되묻고 나서야 뒤늦게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세게 끄덕끄덕였다. 밝은 목소리가 뒤이어졌다.
"누리 님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요! 저, 전문적으로 춤 씨를 배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춤 씨들도 조금은 알고 있으니까... 더 열심히 연습해올게요!"
"하지만 내가 실수를 한 사실은 변함이 없잖아. 좋게 평가해주는 고맙고, 잘 췄다고 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장차 이 땅을 지배하게 될 지배자로서 춤 정도는 멋지게 추고 싶단 말이야. 소통과 교감도 중요하지만 기술적인 것도 어느정도 중요하다고 난 생각해."
그렇기에 조금 분하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분함이었다. 뭔가 좀 더 잘 추고 싶은데 중간에 발이 꼬이기도 하는 등의 실수를 저질렀으니까. 리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 제대로 넘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와 같이 춤을 추는 리스가 잘 맞춰줬기에 충분히 춤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 분하기도 했다. 더 잘 추지 못한 나 자신에게...
아무튼 리스는 내 제안이 믿기지가 않는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살짝 떨리는 손의 느낌과 떨려오는 목소리. 아. 이거 리스 특유의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분명해. 그렇게 믿기 힘든 것일까. 하긴, 자신이 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리스에게 있어서 지금의 제안은 도저히 믿기 힘든 것일까. 하지만 리스는 신인데... 조금 안타깝다고 생각하지만 곧 표정을 원래대로 돌리면서 나는 리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원하니까 제안한거야! 엄마에게 배우는 것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엄마는 영상을 보여주고 스스로 하라는 주의인걸.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어! 직접 추는 사람이 지도를 해주는 것이 더 빨라! 그러니까 리스에게 부탁하는거야! 리스는 잘 추니 말이야."
굳이 열심히 연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리스가 하겠다면 그냥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더 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이어 나는 리스의 손을 다시 꼬옥 잡아주면서 배시시 웃으며서 말했다.
"그럼 조만간에 한번 찾아갈게! 한가하거나 할 것이 없을 때 말이야! 히힛. 아무래도 엄마 밑에서 다른 것들도 공부를 하면 마냥 한가하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
"...그래도 누리 님께서는 아직 춤 씨를 많이 춰보셨던 것이 아니실테니까... 충분히 잘 추셨다고 생각해요. 기술적인 부분은 나중에 조금씩 보완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제일 중요한 소통과 교감을 성공하신, 대단하신 누리 님이시니까... 기술적인 부분들도 금방 성공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희미하게 배시시 웃으며 누리 님께 얘기했다. 그것은 확신이 담긴 자신의 작은 응원. 애초에 십 년 이상 춤을 춰왔던 자신과 이제 태어난지 1년이 넘은 누리 님의 춤 실력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 될테니까. 그렇기에 조금 분한 듯한 누리 님께 작은 응원을 건네었다.
하지만 역시 누리 님의 제안은 좀처럼 믿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살짝 두 손과 목소리를 떨면서 몇 번이고 누리 님께 되묻다가, 결국에는 환하게 웃으며 누리 님의 제안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누리 님께서 원하신다니 정말로 기뻐요...! 칭찬 정말로 감사해요, 누리 님. 저, 그렇게 잘 추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리 님을 위해서 열심히 연습할게요!"
누리 님을 도와드릴 수 있게 되다니, 영광도 이런 영광이 있을까. 기쁜 마음에 선명한 미소를 활짝 꽃피워내다가 누리 님께서 다시 자신의 손을 꼬옥 잡아주자 조금 망설이듯 손가락을 작게 꼼지락거렸다. 그러나 이내 곧 큰 용기를 내듯, 자신 역시도 살짝 손가락을 구부려 누리 님의 손을 살며시, 부드럽게 잡아보았다.
"...네, 알겠습니다. 저는 내일 모레, 하루 정도 빼고는 언제든지 괜찮으니까... 나중에 누리 님께서 편하실 때 언제든지 와주셔도 된답니다. 은호 님께서 다른 것들도 공부하시고 배우시는데도 춤 씨까지 더 배우시려는 누리 님, 정말로 대단해요...!"
두 눈을 반짝반짝이며 '신' 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역시 은호 님만큼이나 멋지고 위대하신 '신' 님이셨다, 누리 님께서는.
그건 같이 춤을 춘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일이었다. 교감도 교감이지만 역시 기술적인 면은 리스가 나보다 훨씬 우위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겸손한 모습은 역시 자신이 신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기보다는 리스의 성품 자체가 자신을 낮추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 싶지만...
아무튼 내일 모레, 하루 빼고는 얼마든지 괜찮다고 이야기하면서 리스는 편할 때 얼마든지 와줘도 된다고 나에게 말해왔다.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는 그 모습에 얼굴을 붉히면서 꼬리를 마구 살랑살랑, 강하게 흔들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에이!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엄마만큼 멋지게 다스리는 지배자가 되고 싶어서 배울만큼 배우는거야! 애초에 엄마도 능력이 안되면 안 물려준다고 했으니까. 엄마가 나를 믿고 맡기는 건데,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하면 큰일이잖아. 그 뿐이야!!"
쑥쓰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표현하면서 나는 고개를 빠르게 도리도리 저으면서 살며시 손을 놓았다. 계속 잡고 있기도 애매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어 리스를 바라보면서 바로 질문했다.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누리 님의 말씀에 가볍게 허리를 꾸벅, 숙여 대답했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은 자신이 누리 님보다 더 좋을지도 몰랐지만, 그건 단지 지금까지 춤을 춰 온 시간의 양이 달랐기 때문일테니. 조금만 더 춤을 배운다면 누리 님께서는 분명 자신보다 훨씬 더 춤을 잘 추실 것이었다.
그렇기에 누리 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언제든지 찾아와도 된다는 뜻을 밝혔다. 딱 하루를 빼고. 그야 그 날은 아사 님께 뜨개질 수업을 받기로 약속한 날이었으니까. 마치 스승님과 제자 관계가 또 이어지게 된 것만 같아 조금 신기하면서도 영광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래도 정말로 대단하신 걸요. 그렇게 은호 님의 믿음에 보답하려 하시는 것도, 제대로 배우려 하시는 것도 말이예요. 그러니 누리 님께서는 분명 은호 님만큼이나 멋진 지배자 님이 되실 거라고 믿어요. 정말로 말이예요."
그것은 확신 어린 믿음이었다. 그렇기에 조용히 눈웃음을 지어보이면서 흔들림 없는, 호의 가득한 신뢰를 보였다. 비록 누리 님께서는 조금 쑥쓰러우신 듯 했지만. 아무튼 이내 누리 님께서 손을 놓으시는 것에 맞춰 자신 역시도 천천히 손을 놓고는, 이어지는 누리 님의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으음, 으음, 하는 소리를 내다가, 몇 박자 늦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역시 왈츠 씨인 것 같아요. 너무 빠르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제가 가장 많이 췄던 춤 씨라서 가장 동작이 편하거든요."
부드럽고 우아한 동작. 빠르게 움직이거나 하는 것보다는 그런 분위기가 자신에게도 더 잘 어울릴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다가 누리 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보었다.
엄마만큼이나 멋진 지배자가 될 거라고 이야기해주는 리스의 말이 기분이 좋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마구마구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곧 꼬리를 세우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잘 세워지지 않았다. 꼬리가 절로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모양이었다. 여우 수인 신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런 것은 곤란한데. 정식 지배자가 되면 너무 가볍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안돼. 안돼. 오늘은 즐거운 날인걸?
아무튼 리스는 왈츠를 제일 좋아한다고 내 말에 대답했다. 가장 많이 춘 춤이라. 다솜에 살아서 그런 것일까? 봄의 왈츠라는 곡이 유명하잖아. 물론 왈츠가 봄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곧 나는 대답을 해야만 했다. 리스가 나에게 따로 배우고 싶은 춤이 있는지를 물어보았으니까. 사실 춤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종류를 아는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 고개를 갸웃하면서 생각하다가 리스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발레를 배우고 싶어! 그것도 일단은 춤의 일종이잖아? 아. 그런데 가능할까? 물론 리스가 편한 것을 가르쳐줘도 돼! 리스는 춤을 잘 추니까 뭘 가르쳐줘도 예쁘게 배우고 출 수 있을 것 같거든!"
그것은 꾸밈없는 내 마음의 진심이었다. 그것은 실제로 리스와 춤을 춘 내가 보장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것도 잘 하지 않을까 싶어 리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리스를 바라보았다.
"네, 물론이예요, 누리 님. 정말로 그렇게 보여요. 누리 님께서는 꼭 멋진 지배자 님이 되실 수 있을 거예요. 꼭이요!"
드물게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확신을 하듯 몇 번이나 반복하여 얘기하면서. 누리 님의 기분이 좋아보였기 때문일까. 마구 흔들리는 꼬리조차 '행복'해보여 기뻐하던 중, 누리 님의 표정이 잠시 시무룩해졌다가 다시 돌아오자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누리 님,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걸까요...?
하지만 차마 그것에 관하여 여쭤보지는 못 한 재, 그저 이어지는 누리 님의 물음에 대답하며 대신 다른 물음 하나를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그야, 누리 님께서 어떤 춤을 원하시는 지를 알면 그것에 대해서 좀 더 열심히 알아올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누리 님의 대답은 다름 아닌 발레. 그에 한 박자 늦게 고개를 크게 끄덕여보였다.
"...네! 물론이예요, 누리 님. 다행히 저, 발레 씨도 가끔씩 추곤 했어서... 누리 님께서 배우고 싶으시다면 그걸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만 저는 발레 씨는 혼자 추는 것 밖에 잘 몰라서... 혹시 다른 누군가와 같이 추고 싶으시다면, 2인용 발레 씨를 배워올게요, 누리 님."
애초에 중심 잡기 같은 것은 자신이 자신 있어 하는 분야였으니. 자신이 알고 있는 춤이 나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누리 님께 천천히 여쭤보았다.
"...누리 님께서는 1인용을 원하시는지, 아니면 2인용을 원하시는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그건 전혀 생각도 못한 말이었다. 확실히 발레를 혼자서만 하진 않으니까. 단체 발레도 있었지? 아마...? 그런 생각을 하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셀프딱밤을 먹일까 하다가 곧 손을 내렸다. 그래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는걸. 오히려 리스가 당황하면서 말릴 가능성이 더 크기도 했으니까. 아무튼 나는 1인용 발레와 2인용 발레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것은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1인용부터 하는 것이 중요했다. 1인용도 못하는데 2인용 발레를 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단 혼자서도 잘 해야 다른 이와도 맞추는 2인용 발레를 할 수 있는 것일테니까.
"그럼 우선 1인용부터! 나 발레는 정말로 잘 모르거든. 그러니까 1인용부터 확실하게 한 후에 2인용을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 내가 먼저 확실하게 하는 것이 먼저였기에 그렇게 대답하면서 리스를 바라보면서 배시시 웃으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리고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후에 2인용으로! 어때? 괜찮아? 힘들면 말해도 괜찮아! 무엇보다 리스가 1인용밖에 모른다고 한다면 우선 1인용부터 배우는 것이 맞잖아?"
역시 이것이 정답일 거라고 확신하며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일단 기초부터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을거라고 생각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누리 님의 말씀에 대답했다. 그야 사실이었으니까. 혼자 하는 발레도 있고, 여러 명이서 하는 발레도 있었으니. 하지만 누리 님께서 자신에게서 발레를 배우신다면 1인용, 혹은 2인용 발레밖에 배우시지 못하는 상황. 론을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으니... 그 두 가지의 선택지 중, 누리 님께서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선 1인용부터 해서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후에 2인용을 한다는 것. 더군다나 자신이 1인용밖에 모른다는 것까지 언급하시는 그 말씀에, 깜짝 놀란 듯 멍했던 눈동자를 크게 뜨고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드물게 곧바로 반응하며.
"아, 아니예요, 누리 님! 누리 님께서 원하신다면 2인용도 제가 꼭 열심히 배워서 알려드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쩔쩔매는 모습으로 횡설수설하다가 이내 결국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저, 저는 괜찮지만... 누리 님께서 괜히 저 때문에 그러시는 걸까봐..."
그것은 안될 것이었다. 자신이 누리 님의 발목을 잡는다는 건, 정말로 크나큰 죄일테니.
"......누리 님께서 정말로 1인 발레 씨를 원하시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괜히 저 때문에 억지로 1인 발레 씨를 선택하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1인용부터 한다는 것이 그렇게 당황스러운 일인것일까? 리스는 뭔가 상당히 당황하는 듯 두 손을 내저으면서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것도 보이면서 자신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나에게 말을 해왔다. 이어 나는 웃으면서 리스의 바로 앞에서 가볍게 박수를 짝 쳤다.
"억지로라고 해도 나는 발레를 전혀 모르니까 1인용부터 하는 것이 맞는걸. 2인용은 일단 기초가 확실하게 되어야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런 의미에서 고르면 안 돼? 그리고..."
그런 것도 이유지만, 역시 리스가 잘 모르는데 나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배워오는 것도 나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것은... 뭔가 수고를 끼치는 거잖아. 아무리 내가 배우고 싶다고 해도 그렇게 먼저 공부해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리스가 그것을 받아들일까. 리스는 '신'들에게 봉사하는 거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팔짱을 끼고 고민을 하고 끄응거리다가 아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나는 박수를 짝 쳤다.
"무엇보다 리스와 2인용 발레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1인용부터 확실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해! 나를 가르쳐주는 동안 리스는 리스대로 2인발레를 배우고 나에게 가르쳐주면 되잖아. 안 그래? 그러면 2인 발레를 배울 쯤에는 같이 발레를 할 수 있을 거야! 어때? 현명하지 않아?"
이 정도면 리스도 받아들이지 않을까? 나 되게 말 잘한 것 같지 않아? 괜히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나는 리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리스는 뭐라고 대답할까? 괜히 기대가 되어 절로 꼬리가 살랑살랑 마구마구 흔들렸다.
누리 님께서는 사실 2인 발레를 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괜히 자신 때문에 1인 발레부터 배우시려 하시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걱정스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러자 갑자기 자신의 바로 앞에서 울려오는 가벼운 박수 소리...?!
"...!"
짝, 하는 소리에 한 박자 늦게 흠칫, 하고 깜짝 놀란 듯 고개를 재빨리 들어올렸다.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누리 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내 곧 들려오기 시작하는 누리 님의 말씀. 그것들을 조용히 귀기울여 듣고 있자, 왠지 모르게 자신을 설득시키려는 것처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1인 발레를 선택하신 누리 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자신을 일부러 배려해주려는 것일까? ...역시 누리 님께서도... 자비로우신 '신' 님이세요. 잠시 아무 말 없이 누리 님을 멍한 눈동자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았다. 두 눈동자가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었다.
"...네, 정말로 현명하세요, 누리 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러면... 1인용 발레 씨부터 천천히 해보도록 해요. 누리 님께서라면 분명 금방 배우실 수 있으실 거예요."
저도 꼭 응원해 드릴게요! 두 손까지 작게 주먹 쥐어가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누리 님께서라면 분명히 그러실 수 있을 것이었다. 언젠간... 누리 님께서도 멋지게 춤을.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아름다운 춤을.
일부로 기합까지 내면서 나는 열심히 오른팔을 움직여서 화이팅 자세를 취하다가 자세를 풀었다. 엄마에게 배우는 것도 이런저런 것으로 많긴 했지만, 그래도 춤을 배우는 것은 그보단 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 쉬운 것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배우는 교육은 여러모로 암기해야할 것도 많고 익혀야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춤은 충분히 머리를 식히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금방 배울진 모르겠지만 리스가 저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니, 나름대로 열심히 해볼 생각이었다. 예쁘게 출 수 있게 되면 그땐 엄마에게 자랑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조만간에 꼭 찾아갈게! 그때는 잘 부탁해! 그럼 난 다른 신들에게도 인사를 하러 가볼게! 즐거운 시간 보내! 리스 선생님!"
나에게 가르쳐주는 거니까 당연히 리스 선생님! 그렇게 확실하게 부르면서 나는 리스에게 인사를 하면서 다른 곳으로 천천히 향했다. 기왕 모이는 사교장. 리스하고만 시간을 보내는 것은 뭔가 아깝잖아? 다른 신들과도 교류를 하면서 열심히 인사를 나눠야하지 않겠어?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근처에 있는 딸기 젤리를 하나 집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딸기 생산이 조금 줄어들고 있다는 것 같은데...별 일은 없겠지? 아마도..?
//이것으로 막레를 해도 되고 막레를 주셔도 됩니다! 상황상 막레일 것 같기도 해서..! 아무튼 떡밥을 살짝 뿌려봅니다!
봄의 기운이 가득 차오르는 어느 날. 라온하제의 신들의 집 앞, 혹은 우편함에 편지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정성스럽게 붓으로로 쓰여진 매우 예쁜 글씨가 아닐 수 없었다. 검은 먹을 직접 갈아 동향미가 가득 풍기고 있는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있었다.
[가끔은 텔레파시가 아니라 이렇게 보내는 것도 재밌지 않겠더냐? 내 너희들에게 새로운 해가 시작되고, 또 다시 계절의 순환이 시작된 것을 기념하여 보물을 주고자 하느니라. 하지만 그냥 주는 것은 아깝지 않겠느냐? 그렇기에 내 너희들에게 직접 보물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노라. 이 편지의 힌트를 쫓아 이동하고 또 이동하면 계속해서 쪽지를 얻을 수 있느니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보물을 향해 너희들은 직행하고 도달하게 될 것이니라.]
은호가 쓴 것으로 보이는 그 글씨의 밑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있었다.
나의 반쪽은 언제나 하얗게 반짝이며 언제나 나의 뒤에 항상 있었으니 이제는 단풍진 그곳에 앉아 휴식하며 살이 찌지 않을까 언제나 걱정이니라.
아무래도 이 문구를 추리해서 추적을 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문구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
따스한 봄으로 가득차있는 어느 날. 집 밖으로 천천히 나오다가 자신의 집 앞에 뭔가 편지 같은 것이 놓여져있자 고개를 갸웃하며 한 박자 늦게 천천히 그것을 집어들어 확인해보았다. 아마도 은호 님이 썼을 법한 말투와 글씨의 향. 자신도 모르게 코를 작게 킁킁거리며 그 냄새를 맡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편지의 내용에 집중했다.
"...보물 씨요? 쪽지 씨...?"
또 일종의 행사 같은 것일까. 은호 님의 편지이니 당연히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아래에 적힌 문구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그것은...
"...백호 님... 아니신가요...?"
은호 님의 반쪽이자 그 뒤에 있던 것, 하얀색, 단풍진 그곳, 살. 전부 다 백호 님과 관련되어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잠시 으음, 하고 고민하다가 이내 천천히 분홍빛의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보았다. 그리고 백호 님을 찾아서 가리로 날아가보려고 했다.
가리로 날아가보니 정말로 백호 님이 계셨다. 거기에 아사 님과 령까지. 모두를 보게 되자 반갑고 기쁜 마음에 희미하게 배시시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었다.
"...모두들 안녕하세요. 그리고... 백호 님께서는... 어어...?"
백호 님께서는 이 행사를 모르시는 걸까? 멍한 두 눈동자를 깜빡깜빡이며 백호 님을 바라보고 있자, 이내 백호 님께서는 아예 먹방 투어를 제안해왔다. 그에 순간 예전의 기억이 스쳐지나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살짝 회피했다가... 정신을 차린 듯, 다시 고개를 돌려 백호 님을 바라보았다.
"...그게... 은호 님께서 이런 편지를 주셔서..."
품 안에서 고이 접었던 편지를 꺼내어 백호 님께 보여드리려고 했다. 그리고 백호 님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혹시 백호 님께서는 은호 님의 쪽지 씨... 에 관하여 알고계신 것이 있으시지 않을까, 해서..."
세 명의 말을 들은 백호는 흐음,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먹방투어에 관심이 있어보이는 아사를 더 집중적으로 바라보다가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차갑게 이야기를 하면서 손을 내미는 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리스가 내미는 편지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다시 한 번, 흐음, 흐음 소리를 내었다.
"알고 있어. 알고 있어. 아마도 그것에 표시된 것은 내가 맞을 거야.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조금 더 시간을 끌면서 음식이라도 대접받으려고 했지만... 령이 이렇게 단호하게 이야기하니 그건 무서운걸? 그러니까 화내지 마. 새로운 관리자님."
능글맞게,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녀는 주머니에 있는 쪽지를 꺼내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활짝 펼친 후에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편지에 적혀있던 것과 똑같은 느낌의 붓글씨가 쓰여있었다.
너는 어찌하여 어찌하여 항상 얼어붙어버리는가. 열망적인 마음은 너무나 뜨거우나 자신의 몸도 녹이지 못하니 참으로 딱하고 딱하구나. 그 열망으로 스스로를 좀 더 돌보거라. 그것이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이니라.
아까보다 좀 더 애매하고 모호한 느낌의 문구를 모두가 확인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백호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백호 님께서는 정말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차마 먹방 투어에는 곧바로 가겠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야 저번에 백호 님과 계속 먹방 투어를 다녔던 이후로 며칠 동안 속이 안 좋아져 거의 앓아눕듯이 있었으니. 그렇기에 대신 화제를 돌려 편지와 쪽지에 대하여 언급하자, 이내 곧 백호 님께서는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아..."
이번에는 좀 더 애매모호해진 쪽지의 내용. 그에 조금 고민하듯이 으음,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는... 미리내를 얘기하시는 걸까요? 하지만 스스로를 좀 더 돌보라고 말씀하신다면, 왠지 또 어떤 '신' 님을 가리키시는 것 같기도 하고...
끙끙, 나름대로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그에 잠시 령과 아사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거리며 입가를 가리고는 백호 님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히잉, 하고 아기 홍학 같은 표정으로.
"...혹시 가온 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백호 님...? 그게... 가온 님께서는 가끔씩 얼음 동상 씨도 되고, 열정적이시니까... ...정말로 죄송하지만 맞는지, 아닌지만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 백호 님의 먹방 투어 씨에도 가고 맛있는 음식 씨들도 꼭 대접해드릴 테니까... 그것만이라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리스와 아사는 문제의 답을 가온이로 여긴 모양이지만 령은 미리내에 있는 것으로 판단한 모양인지 바로 미리내로 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리내를 아무리 둘러봐도 특별히 답이 것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한편 그 자리에 남아있는 리스와 아사를 바라보면서 백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러다가 곧 리스의 제안에 백호는 바로 두 손을 모으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약속한거지? 그치?"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백호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고 손가락을 퉁겼다. 미리내로 가버린 령을 포함해서 리스와 아사는 비나리의 과수원으로 몸이 옮겨졌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가온의 모습이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입구에 서 있던 가온은 세 신을 보자마자 바로 정말로 어색한 국어책 읽기를 시전했다.
"아! 이곳에.... 세 신이...오시니... 무슨..일이십니까.? 혹시 신과를...먹고...싶어서 입니까?"
누가 봐도 명백하게 연기를 하고 있는 톤과 눈빛은 참으로 가련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었다. 힐끗 보이는 것은 가온의 손바닥 안에 쥐어진 것으로 보이는 쪽지 같은 무언가의 모습이었다.
'신' 님 앞에서 거짓말을 고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저렇게 기분이 좋아보이시는 백호 님을 보면... 자신은 결국 또 먹방 투어에 즐겁게 참여하겠지. 백호 님의 '행복'을 위하여.
"...?!"
그러다 백호 님께서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들을 신통력으로 옮겨주자, 순식간에 비나리의 과수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에 순간 깜짝 놀란 듯 동그래진 눈동자와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가온 님께서 어색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맞이해주자 고개를 돌려 가온 님을 바라보았다.
"...저... 그게, 은호 님의 이 편지 씨를 받고 백호 님께 가봤더니, 백호 님의 쪽지 씨가 가온 님을 가리키고 계셔서..."
가온 님께 은호 님의 편지를 다시 한 번 보여드리며,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말씀은 정말로 감사하지만, 저는 신과 씨는 괜찮답니다, 가온 님. 대신... 혹시 쪽지 씨에 대해서 알고계신 것이 있으신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지적을 하는 령과 아사의 말에 가온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시무룩한 표정, 말 그대로 가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 리스는 연기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온이의 가슴에는 이미 창이 꽂힐때로 꽂힌 모양이었다. 쭈그리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가온은 곧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이야기했다.
"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조금 시간을 끌라는 식으로 은호님이 이야기하셨단 말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나오시면 저도 어쩔 수가 없군요! 알겠습니다! 쪽지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것이 다음 쪽지입니다!"
이어 가온은 이전처럼 열혈적인 목소리로 호쾌하게 웃으면서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쪽지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역시나 은호의 붓글씨가 검은색으로 진하게 쓰여있었다.
봄이지만 변하지 않고 여름에는 땀을 흘리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으며 가을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지만 겨울에는 조금 단단하게 바뀌는 것 같으니라. 언제나 그곳에 선 너희 둘은 대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냐. 겨울철 한껏 단단해진 그 몸과 눈으로 대체 무엇을 한 곳에 계속 서서 바라보느냐.
"그런데 정말로 신과는 필요없으십니까? 맛있는데!"
누가 신과 과수원을 운영하는 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두려운지 가온은 모두에게 신과를 권했다. 그리고 이어 가온은 그 세 명이 문제를 푸는 것을 기다렸다. 대체 이번에는 또 무엇을, 혹은 어디를 지칭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령과 아사 님의 말씀이 조금 슬펐던 것일까? 가온 님께서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셨고, 그에 한 박자 늦게 살짝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지요, 어쩌지요... 가온 님께서 기운 차리시게 해드릴 방법이...! 하지만 다행히 가온 님께서는 이내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그대로 쪽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쪽지를 가만히 속으로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이건..."
어쩐지 비나리에 있는 은호 님과 누리 님의 얼음동상이 떠오르는 듯한 쪽지 내용. 그에 자신이 추측한 내용을 모두에게 말씀 드려 그곳이 아닐까, 하고 얘기하고는 그 쪽으로 가려고 하는 찰나, 가온 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한 박자 늦게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세 신의 의견은 정확하게 만장일치를 내었다. 비나리 광장에 있는 얼음동상. 그곳이 맞을지 틀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그곳으로 결론을 낸다면 그곳으로 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음동상으로 가실겁니까?! 정답입니다! 그곳입니다! 그리고 신과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어 세 신의 손바닥 위에 큼지막한 신과가 들려졌고 가온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잠시 어두워지는 듯 하다 곧 밝아졌다. 모두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은호와 누리를 본따서 만든 얼음동상이었다. 가온이가 만들어서 비나리 광장에 세운 그 얼음동상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얼음동상, 정확히는 누리의 발쪽에 곱게 접혀진 쪽지가 하나 놓여있었다. 그 쪽지에는 역시나 다음과 같은 붓글씨가 남아있었다. 그곳에 적혀있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저 하늘 위 보석이 아름답게 떨어지며 검은색 도화지 위에 선을 그리네. 그 선과 선을 이어 그림을 그리면 우리 신들과 비슷한 모양의 그림이 만들어질까? 그 보석이 가장 아름답게 반짝이는 그 곳에서 조용히 기다리는 무언가는 무엇인가.
이번 문구도 보통 난해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풀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체 여기에 있는 문구의 답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부터 알아내야 할 일이었다.
이번에도 신 3명의 의견은 만장일치로 일치했다. 미리내의 명소. '별이 보이는 언덕'. 그곳이 정말로 맞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서로 의견을 나눈 끝에 그 값이 나왔다고 한다면 그곳으로 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무튼 모두가 미리내로 향했고 별이 보이는 언덕으로 향하자 그곳은 정말로 고요했다. 조용하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 그 근처에 있는 바다만이 고요하게 소리내어 파도를 칠 뿐이었다.
아무튼 언덕 위에는 무언가 붉은색 버튼이 있는 작은 리모콘 같은 기계가 있었다. 마치 자신을 눌러보라는 듯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 리모콘을 누르는 것이 좋을까?
일단 그 이외에 종이 쪽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제 신들의 선택은 어떠할까?
리스는 보류하는 느낌이었고 아사는 눌러보자는 입장이었고 령은 누르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말 그대로 삼파전으로 나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런 마당에 차가운 바람만이 계속 불고 있었고 근처 기온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었다. 그야 아무리 봄의 기운이 강해진다고 하더라도 여긴 미리내. 겨울의 기운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
그리고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이는 근처에 있던 돌멩이를 가볍게 잡은 후에 리모콘 버튼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그 돌멩이는 정확하게 컨트롤 되어서, 정확히는 신통술로 인해서 컨트롤 되어서 리모콘 위에 뚝 떨어졌고 버튼을 꾹 눌렀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어딘가에서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바다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뒤이어 거대한 물기둥을 일으키면서 바다 속에서 완전히 모습을 들어낸 그것은 다름 아닌, 정말로 호화로운 느낌의 유람선이었다. 물 속에서 튀어나왔건만 전신이 전혀 젖지 않은 화려한 느낌의 2층 구조의 유람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거대하고 멋진 느낌이었다.
수영장으로 보이는 것이 있고, 식당으로 보이는 것이 있고, 갑판에는 은호 모양의 동상이 있었으며,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보통 호화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 배가 나타난 직후, 모두의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은호의 목소리였다.
"눌러보라고 냅둬도 누르지 않다니. 왜 이리 의심이 많은 것이더냐. 이 안에서 위험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더냐?"
//반응레스를 부탁하겠습니다! 11시 35분까지입니다..!! 그리고 죄송할 것이 뭐가 있나요!! 죄송할 거 없습니다!
은호는 세 신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령의 말도, 리스의 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위험한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조금 실망했다는 듯이 그녀는 고개를 이어 도리도리 저었다.
"만약 정말로 위험한 일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가만히 있었겠느냐? 아무튼..보물찾기를 한다고 쪽지를 추리하고 여기까지 온다고 수고가 많았느니라. 그래서 너희들에게 보물을 주겠느니라."
이어 은호는 팔을 들어 방금 바다 속에서 튀어나온 유람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신통술을 써서 유람선이 근처 해변까지 오도록 만들었고 계속해서 자신들의 말을 이어나갔다.
"추리 소설의 크루즈 선은 아니고 내가 이번에 만들어 본 유람선이니라. 안에 시설이 있을 것은 다 있고, 나름 먹거리도 충분하니라. 게임거리도 있고 놀거리도 있고, 무엇보다 바다를 타고 아라까지 갈 수 있느니라. 말 그대로 유람선이니라. 너희들에게 가끔은 이런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준비를 해봤느니라."
마음에 드냐고 은호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고 신들을 바라보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보물이니 받도록 하라. 타고 싶은 이들은 얼마든지 타도록 하라. 아라와 미리내를 왕복하는 저 유람선은 공짜니라."
//은호님이 여러분들에게 주는 보물입니다..! 잘 받아가시고...반응레스를 부탁하겠습니다! 12시까지에요! 그리고 반응은 여기까지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은호 님의 말씀에 결국 시무룩하게 두 날개를 아래로 축 쳐지게 했다. 물론 은호 님의 힘은 믿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무튼 이내 곧 은호 님께서 보물을 주겠다며, 튀어나왔던 그 거대한 배를 가까이 가져오셨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 거대하고 화려한 배의 모습에 두 눈을 반짝반짝이며 와아...! 하고 감탄하던 것도 잠시, 이내 이어지는 은호 님의 말씀에 드물게 곧바로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반응했다.
"네!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은호 님! 멋진 보물 씨, 정말로 감사합니다. 늘 은호 님께 감사하면서 즐겁게 타보겠습니다."
두 손을 앞에 모으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은호 님께 공손히 감사 인사를 올렸다. 배시시, 작은 미소가 희미하게 덧붙여졌다.
>>829 어어...그게 아니라 그냥 옆도시밖에 없어서...(흐릿) 그냥 오랜만에 가보고 싶어져서 간 것 뿐이랍니다!! 전혀 걱정하실 거 없어요! 진짜로요!! 그리고..어어..친구들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혼자서 조용히 가보는 것은 어떠세요? 혼자 조용히 가서 조용히 즐기는 것도 나름 재밌답니다!
>>839-840 그래서 고민이예요. 뭔가 근처에는 그다지 좋은 곳이 없는 것 같아서 어차피 타 지역으로 가야할텐데... 으음... 앗, 그런데 아쿠아리움에서 새들의 깃털도 전시하나요...?!(동공지진) 홍학은 물가에서 사는 새라서 그런가...? 리스가 몰래 자기 깃털도 하나 뽑아서 꽂아놓고 온 걸지도 모르겠네요.ㅋㅋㅋㅋ(???)
>>844-845 앗, 그렇군요...! 처음 알았네요. 신기하다! 미어캣이랑 너굴맨...ㅋㅋㅋㅋ 그리고 형제자매라고 생각해서요...?(???) 저도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네요... 정작 리스를 돌리는 리스주인 제가 홍학 깃털을 본 적이 없다니...ㅋㅋㅋㅋ(흐릿) 아무튼... 다녀오세요, 스레주! :)
당장에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 은호님에게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비상사태가 일어났는데 은호님에게 알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 목소리가 울상인 것은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지금 라온하제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까.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초비상사태나 마찬가지였다.
"진정하도록 하라. 백호."
"이걸 어떻게 진정해요! 지금 딸기가 전부 사라지고 없는데! 수확 자체가 안되고 있는데!"
봄하면 딸기. 지금은 딸기가 제일 맛있을 시기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딸기를 먹을 수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딸기가 시장에 전혀 풀리지 않고 있었으니까. 상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딸기가 전부 사라져서 구할 수 없다나 뭐라나.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래야 알 수가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딸기가 사라지는건데?! 대체 왜?!
발을 동동 굴리면서 나는 은호님에게 딸기 문제를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아무래도 이런 문제는 은호님에게 부탁하는 것이 제일 빨랐으니까. 이전이라면 내가 이것저것 조사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난 은퇴했으니가 굳이 뛰고 싶진 않았다. 은호님은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했다.
"나도 그 사실은 파악하고 있느니라. 그러기에 조만간에 가온이와 누리를 보내서 조사를 시킬 것이다."
"정말이죠? 정말로 조사하는거죠?!"
"내가 이런 것으로 거짓말을 해서 무엇하겠느냐."
"그럼 은호님만 믿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가온이와 누리님이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믿고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지금 여기서 더 말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아. 먹고 싶어. 딸기잼, 딸기케이크, 딸기 슈크림...
대체 뭐 때문에 딸기가 전부 사라진거야! 대체 뭐 때문에!! 괜히 심통이 나서 돌멩이를 걷어찰 수밖에 없었다.
//이벤트 프롤로그입니다! 그와 동시에 현재 라온하제에는 딸기가 모두 사라져서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알리겠습니다!! 스레주가 갱신할게요! 하이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