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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드득. 뽀드득. 눈이 밟히면서 내는 소리가 여간 듣기 좋은 것이 아니었다. 령은 입에 미소를 머금고 숲을 바라본다. 울창한 침엽수들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다. 영원히 이런 날이 지속되었으면. 라온하제라는 이름처럼 즐거운 내일이 지속되기를.
"응. 혼자 사색하는 걸 즐기는 편이야. 내 성격이 그리 외향적인 편은 아니거든."
령은 누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사실 령은 그리 외향적이고 활달한 편은 아니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고 여러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 오히려 피로감을 느끼다보니 이렇게 적적한 숲이 자신에게는 딱 맞았다. 아, 한가지 예외를 두자면 절친인 리스와 같이 있는 시간 땐 피로감이 덜했다. 아무래도 리스와 잘 맞기 때문일까?
아, 보인다. 령은 제 집이 시선에 들어오자 다시금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통나무집은 딱 자신만의 존재감을 풍기며 그곳에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그러기에 편안한 장소였다.
"누리는 기와집에 살고 있구나. 다른 신들의 집에도 놀러가보고 싶네. 기와집에서 사는 건 어때?"
자신도 기와집에서는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뭐, 이런 통나무집도 괜찮지만. 령은 문 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뒤로 돌려 누리가 따라 들어오는지 확인을 하면서.
딱히 그런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애초에 생각할 이유가 없기도 했으니까. 그냥 거기가 내가 사는 곳이고, 내가 사는 곳이 그 곳이니까 난 거기서 산다라는 느낌이라고 한다면 뭔가 좀 어색하고 이상할까? 하지만 일단 물어봤으니 답을 해야겠고 답을 하려면 생각을 해야하니 나는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냥 집이라고 생각해. 특별히 이거라고 생각한 것은 없어. 아...가끔, 신들이 엄...아빠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찾아오기도 하고, 가온이가 일의 보고라던가 심부름을 하러 자주 와서 가온이는 많이 봐. 가끔 백호 언....형이 찾아와서 맛있는 것을 주기도 하고 같이 먹기도 해. 그런 평화로운 느낌으로 살고 있어!"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령이 문을 여는 것을 확인하며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미리내 특유의 추운 기운이 사라지고 따스한 기운이 드는 것은 역시 집 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실례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면서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둘러보는 것은 삼가야하지만, 그래도 안의 구조가 조금은 궁금했기에 들어오자마자 집 안의 모습에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누리네 집은 손님들이 많구나. 령은 그걸 알고선 좀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집에는 들락거리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외로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인적이 드문 숲에 사는 신으로선 누가 와줄거란 기대는 줄이는 게 나았다.
"그렇구나. 누리네는 평화롭네. 손님이 자주 와서 부럽기도 하다."
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누리가 들어오도록 한쪽으로 비켜섰다. 안에는 전체적으로 심플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꾸며져있었다. 모노톤의 가구들은 너무 과하지 않고 집도 전체적으로 그리 크지 않고 거실, 부엌, 방 두어개 정도로 나누어져 있었다.
"음... 들어와. 볼 건 없지만..."
령은 약간 쑥스러워하면서 말했다. 확실히 령의 말대로 볼 게 없기는 했다. 전체적으로 살림살이가 간소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방랑을 하던 때의 습관인 것 같았다. 방랑자들은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하니까. 령은 냉장고에서 코코아 가루를 꺼내곤 뜨거운 물을 포트에 받았다.
"그렇다면 령도 손님들을 초대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관리자가 되면 신들이 올지도 몰라. 부탁이라던가 그런 것들 때문에 말이야."
물론 안 올 수도 있지만 이전보다는 오지 않을까? 아무래도 각 지역의 문제는 관리자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물론 엄...아빠에게 오는 이도 많긴 하지만 관리자를 찾아오는 이도 분명히 많은 편이다. 이를테면 가온이만 해도 은근히 손님들을 많이 만나는 편이니까. 대부분 잡일에 대한 상담이라던가 그런 것들인 것 같지만...
아무튼 령의 집은 참으로 심플하고 깔끔한 이미지였다. 뭔가 령의 이미지를 아주 잘 살린 집의 구조라는 느낌이 바로 첫 인상이었다. 정말 예브게 잘 꾸민 것 같았기에 절로 감탄이 나오고 미소가 지어졌다.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거실 쪽을 일단 바라보았다. 방도 있어보였지만 방까지 들어가서 보는 것은 역시 실례였으니까.
"아니야! 볼 것이 없기는 뭐가 없어! 깔끔한 느낌이 정말 좋은 것 같아! 령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거든! 그리고 코코아 먹을래! 먹을래!"
달콤한 것이 너무 좋아. 그렇기에 코코아도 너무 좋았다. 나도 모르게 꼬리가 정말로 크게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을 느끼면서 난 얌전히 거실에 앉았다. 역시 손님은 얌전하게 앉는 것이 좋은 법이니까. 나도 누군가가 내 방을 막 뒤지거나, 막 탐색하려고 하면 싫으니까.
"이 답례는 언젠가 꼭 할게! 비나리에서 맛있는 거 사줄까? 언제?"
//하이하이에요!! 령주!! 그리고..아사주.... 이제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무리도 하지마세요! 알았죠?
"초대라... 몇 없는 인맥을 긁어모아야겠네. 그리고 정말? 관리자가 되면 신들이 많이 찾아와?"
너무 많이 오는 건 이쪽에서도 사양하고 싶은데. 령은 조금 난색을 표하는 눈치였다. 뭐 그래도 대부분은 별 일이 없을 터였다. 라온하제에 무슨 일이 생길 리는 없잖은가? 적호 패거리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 작자들이 미리내까지 올 일은 없을테고...
"정말? 고마워. 알았어. 코코아 타줄게."
령은 포트의 물이 다 끓여진 것을 확인하고 물을 잔 두 개에 따랐다. 코코아 가루도 조금. 코코아 가루를 넣자 물이 갈색으로 변했다. 흠... 너무 코코아만 마시는 건 좀 그러니 붕어빵을 꺼낼까? 령은 붕어빵을 꺼내 접시에 담았다. 팥 붕어빵, 크림 붕어빵, 피자 붕어빵이 정갈하게 담겼다.
"에이 괜찮아. 내가 좋아서 대접하는 건데 뭘."
령은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어느새 누리의 앞에 코코아 한 잔과 붕어빵이 놓여졌다. 령은 누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친구와 좋은 시간을 가지는 건 정말 좋은 일이야.
"내가 모든 관리자의 상황을 다 파악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온이에겐 은근히 오는 편이야. 대부분이 이런 일을 부탁한다는 말들이지만!"
답을 하긴 했지만, 역시 지금처럼 남자 목소리는 익숙하지 않았다. 난 내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를 더 좋아하는데. 물론 지금도 귀여운 목소리이긴 하지만 내 목소리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약간의 변성기가 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의 목소리에 난색을 표하면서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우으. 언제 원래대로 돌아올까. 나만 이렇게 신경 쓰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니 꼬리가 절로 추욱 내려갔다.
아무튼 령은 곧 여러가지를 내왔다. 킁킁. 이 냄새는 코코아 냄새. 그리고 붕어빵! 맛있어보이는 그 모습에 백호 언...형만큼은 아니지만 기쁜 감정을 표하면서 나는 두 손을 모아 령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그리고 나도 그냥 받기만 하는 것은 미안해서 그래! 다음에는 꼭 대접해줄게! 우리 집으로 와도 좋고!"
물론 우리 집은 곧 엄...아빠의 집이니까 오기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일단 초대를 하면서 나는 우선 두 손으로 코코아가 담긴 컵을 든 후에 그것을 홀짝이면서 마셨다. 곧 느껴지는 달콤한 맛. 그리고 따뜻한 맛. 그것에 기쁨을 표하면서 나는 꼬리를 계속해서 흔들었다.
정말로 그렇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현대한옥이라는 느낌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일단 기와집이긴 하지만 안은 이런 곳과 별 반 차이는 없으니까. 동양식과 서양식을 섞어서 만들었기에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언제 한 번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여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지금 찍어서 보여주는 것보다는 다음에 놀러오면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굳이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아무튼 다음은 붕어빵을 집어서 입에 쏘옥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아. 이거 피자 맛! 내용물을 살짝 확인해보니 확실히 피자맛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어 다시 꼬리부터 천천히 씹으면서 나는 그 맛을 마음껏 즐기면서 꼬리를 다시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령은 관리자가 되려고 한 이유가 있어?"
그것은 개인적인 내 궁금증이었다. 그냥 궁금하잖아? 아무래도? 미리내의 관리자가 공석이 되자마자 바로 하겠다고 지원을 한 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령이었으니까. 어째서 이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한 마음이 커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정말로 즉흥적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야...신마다 이유는 제각각일테니까. 그것에 좋고 나쁜 것이 어디에 있을까? 고개를 갸웃하면서 으음..소리를 내다가 내 입에서 나온 수컷 목소리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다가 내가 낸 목소리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가볍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물론 가벼울지도 모르지만 령이 관리자가 된 이후에도 가볍게 할 것은 아니잖아? 내가 아는 령은 그런 신인걸. 그것보다 이 목소리...이제 싫어! 다시 암컷의 목소리를 내고 싶단 말이야! 난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었는데!"
괜히 심통이 나서 들고 있는 붕어빵을 야금야금 먹으면서 심통난 표정을 지었다. 꼬리가 추욱 내려앉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정말 뭐라고 해야할까. 여러모로..말이지...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코코아를 한 입. 달콤한 것을 먹으니 또 다시 기분이 풀어져서 해맑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역시 다른 성별이 되는 것은 익숙하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살아온 시간이라는 것이 있는걸. 무엇보다 나는 내 몸에 불만 같은 것이 전혀 없기도 했고... 한숨이 나와 절로 내 얼굴을 손으로 만져보다가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것은 령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솔직히 남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싫다라. 받아들이는 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도 있겠지. 엄...아빠는 바로 받아들인 것 같지만..
아무튼 마저 코코아를 꿀꺽 삼킨 후에 남아있는 붕어빵 중 하나를 입에 넣으니 그것은 달콤한 크림 맛이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생크림의 맛에 나는 꼬리를 마구마구 흔들면서 그것을 빠른 속도로 먹었고 어느새 그것은 내 입속으로 들어가 꿀꺽 넘어가버린지 오래였다. 그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내 두 손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엄...아빠 말로는 금방 돌아온다고 그랬어. 그러니까 괜찮을거야!"
어쩌면 단순한 헤프닝일지도 모르는 거니까. 물론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다른 신들이 조금 걱정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말이 나왔다.
"다른 신들은 괜찮을까."
나중에 둘러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난 관리자도, 지배자도 아니지만 일단 견습이기도 하고, 언젠간 이 라온하제를 지배할 신이기도 하니, 조금은 둘러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마저 붕어빵을 냠냠 씹으면서 가만히 생각에 조금 빠져들었다.
가온이도, 엄...아빠도, 언...형도... 모두 다 변한 모습을 보면..거기다가 령도 변한 모습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쯤 대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 중에는 분명히 마음이 약한 신들이 있어서 충격을 받지 않을까...그런 걱정도 절로 들었다. 다들 괜찮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조금씩 커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잠시 침묵과 생각을 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슬슬 다 먹기도 했으니까 가볼게! 대접해줘서 고마워! 일단 비나리에 가서 좀 더 실태를 파악해야 할 것 같거든! 역시 느긋하게 앉아있자니 너무 신경이 쓰여서..."
역시 좀 더 실태를 파악하고, 여러모로 혼란을 잠재우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령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령을 바라보면서 윙크를 날리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우리집에도 언제 한번 놀러와! 엄...아빠도 반겨줄거야!!"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미소를 환하게 지어보였다. 내가 지을 수 있는 특유의 해맑고 밝은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