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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도 다르고 조금 모습도 달라진 것 같지만...분명히 수컷이지만, 그래도 령이 맞는 듯 싶었다. 역시 령도 바뀌었구나. 그렇다면 다른 신들도 다 바뀐 것일까. 지금 이 상황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페닉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 엄마가...아니라 아빠의 힘으로도 바꿀 수 없다고 하니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것은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일단 관리자로 확실하게 임명하기 위해서 여기로 만나기로 한 것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령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미리내의 관리자로서 임명하러 온 거야! 새로운 미리내의 관리자가 되기로 했고, 그 관리자의 임명은 고위신인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해야하지만, 그래도 지금 안 계시니까 내가 대신 하러 온 거야. 사실 특별히 뭘 하는 것은 없어."
그러니까...어떻게 해야 했더라. 아빠에게 배운 것을 떠올리면서 나는 령을 바라보면서 나름대로 위엄있는 자세를 취하고 목소리도 일부로 깔아서 이야기했다.
"흑조 수인 신 령! 그대는 미리내의 관리자가 되어 미리내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 대답하도록 하라! ....아...나는 위치가 위치라서 조금 진지하게 하지만 령은 가볍게 해도 돼. 아무튼 대답하도록 하라!"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거였지? 응! 잘한 것 같아! 기분이 절로 좋아져서 나도 모르게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도대체 왜 라온하제의 신들의 성별이 바뀐건지는 몰랐으나 령은 이 일이 예삿일이 아님을 느꼈다. 어쩌면 관리자로 임명받은 다음 가장 먼저 할 일이 성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령은 무심코 제 머리를 쓸어넘기다 늘상 있었던 긴 머리카락의 부재를 느끼고 한숨을 쉬었다. 왜 이리 되는 일이 없지? 진짜...
"그렇구나. 너도 바뀌었네. 혹시 은호님도 바뀐 건 아니겠지?"
라온하제를 지키는 고위신마저 저리 되버린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결을 한단 말인가? 령은 내심 한줄기 희망이라도 붙잡으려는 듯한 표정으로 누리를 바라보았다. 제발 은호님만은 원래대로 돌려줄 수 있다고 해줘. 아니면 나 죽을래.
"은호님이 안계신다고? 그렇구나... 어쨌든 알겠어."
은호님의 부재는 예상치 못했던지라 령의 눈이 커졌다. 그래도 다행일지도 몰라. 령에게 있어 은호는 다가가기 어려운 신이었다. 자신보다 위의 위치에 있으면서 은근히 고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은호를 어렵게 느끼는 것 같다. 반면 누리는 이렇게 자신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니 은호보다는 얘기하기가 한결 편했다.
"저는 미리내의 주민들과 소통을 하며 이곳을 책임지겠습니다. 저만의 의견을 중요시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어 모두를 위한 미리내를 만들 것입니다. 이 정도로 하면 돼?"
령은 누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본격적으로 미리내의 관리자직을 이어받는다고 하니 아무래도 엄중해져야겠지만 누리 특유의 분위기가 그것을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대답 잘한 것 같아. 령은 속으로 생각하고 미소하였다.
"...엄마는 아빠가 되었어. 아빠 말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거래.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지 않을래?"
일단 아빠는 그냥 헤프닝 정도로 즐기라고만 이야기했다. 이런 것이 한두번이 아닌 것일까. 애초에 나는 태어난지 이제 2년이 조금 지난 상태라서 그런 것은 잘 모른다. 하지만 아빠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것이 아닐까. 적어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불안해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걸까. 령이 저렇게 불안해하는 것 같은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아. 아닐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냥 넘길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가 너무 불안해하면 안 될 것 같았기에 애써 나는 웃으면서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언젠가 이 땅을 지배할 지배자로서 멋지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은걸!
아무튼 의식은 시작이 되었고 령은 자신의 답을 내놓았다. 미리내의 주민들과 소통을 하며 책임을 지겠다.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어 모두를 위한 미리내를 만들 것이다.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엄마...가 아니라 아빠도 그렇게 깐깐하게 보진 않을 것이다. 너무 이기적이고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아빠는 크게 신경쓰지 않을테니까. 그리고 나도 그럴 생각이다. 관리자도 행복하고 즐거운 내일인 곳. 그곳이 바로 '라온하제'이니까.
"응! 그 정도면 돼! 사실 일단은 절차 같은 거니까! 령은 충분히 잘 할거라고 믿어! 그러니까..이게...미리내의 기운이 든 힘이야."
기본적으로 관리자들은 각 지역의 기운이 담긴 힘을 받게 된다. 그것이 바로 그 지역을 책임진다는 증표 같은 것이니까. 손에 모인 파란색 기운을 령의 구슬로 주입하자 그 구슬은 푸른빛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 남는 것은 미리내를 상징하는 눈꽃 문양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령은 미리내의 관리자야! 어때? 매우 빨리 끝나지? 언제 한번 미리내로 놀러갈게!"
역시나... 령은 허어 하고 탄식을 하였다. 은호님마저 그렇게 되어버리면 누가 우리의 성별을 되찾아주지? 령은 앞이 캄캄한 듯 하였다. 아냐... 그래도 시간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수도 있어. 그렇지? 영원히 남자 몸으로 살진 않을 거 아냐.
"아... 알겠어. 기다리고 있을게."
령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빠른 사람이었다. 괜스레 부정하고 날뛰느니 그 시간에 해결책을 강구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산물이었다. 좋아. 그럼 어디서부터 조사한다... 일단 성별이 변한 날짜부터 체크하는 게 좋겠어. 그 다음엔... 령이 조사 계획을 짜고있는 동안 누리는 자신을 미리내의 관리자로 만들 일을 하고 있었다.
"고마워, 누리. 이게 미리내의 힘이구나."
령이 신기한 듯 제 구슬 속으로 사라지는 푸른 빛을 바라보았다. 빛이 다 흡수된 구슬은 시리도록 아름다운 눈 결정을 내보이고 있었다. 아름다워. 이것이 관리자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구나. 령은 잠시 감탄한 듯 제 구슬의 눈 결정 부분을 만지작거리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말? 되게 빨리 끝났네. 고생했어, 누리. 나중에 미리내로 한 번 놀러와. 끝내주게 맛있는 붕어빵을 선물해줄게."
호빵이랑 코코아도 같이 말이지. 령은 소탈하게 웃어보이고는 누리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누리는 자신과 엄... 아니 아빠가 성별이 바뀌었는데도 당황하지 않는걸까? 그 점이 조금 신기하긴 했다.
"응! 미리내의 힘이야! 미리내를 관리하고, 미리내의 지형을 바꿀 수 있고, 미리내의 날씨조차 바꿀 수 있는 힘이야! 아..하지만 너무 남용하면 미리내가 망가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해! 너무 무리하게 날씨를 바꾸려고 하거나, 아예 지형을 겨울이 아니라 다른 계절로 바꾸려고 하거나 그러면 말이야. 사실 그렇게 시도를 하면 아마 경고가 오게 될 거야. 아빠에게서."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빠는 라온하제의 지배자 고위 신. 밑의 다른 신들이 어떻게 힘을 사용하는지는, 적어도 관리자들의 경우는 전부 파악하고 있다. 물론 령이 말썽을 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말썽을 부리겠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나는 믿음을 가지고 령을 바라보았다.
"사실 고생이라고 할 것도 없는걸! 그냥 미리내의 기운을 옮기는 것 뿐이니까! 긴장하고 준비를 한 령이 더 고생한 것이 아닐까? 아..그리고 붕어빵? 호빵? 코코아? 정말이야?!"
달콤한 것 너무 좋아! 절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나도 모르게 주변을 바라보았다. 혹시 백호 언....형이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금 미안하지만 저건 나 혼자서 조용히 먹고 싶은걸. 백호 언....형이 따라오면 다 먹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어디로 가면 돼? 령의 집으로 가면 돼? 아니면 근처 식당?"
나도 모르게 꼬리가 살랑살랑. 기분 좋게 흔들렸다. 이런 본능만큼은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새삼 자신이 잘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령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제 목에 걸린 구슬을 바라보았다. 내가 미리내를 잘 다스릴 수 있을까? 하지만 맡은 일은 해야하는 법! 령은 두 손을 꽈악 쥐고는 뭔가를 다짐한 듯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래. 내가 맡은 일은 내가 해보여야지. 령은 우선 자신에게 주어진 미리내의 힘으로 함박눈이 내리도록 해보았다. 지금쯤 미리내에는 눈이 내리고 있겠지.
"하하... 그런가? 나는 그저 이 장소로 오기만 했을 뿐인걸."
령은 멋쩍은 듯 다시 머리카락으로 손을 향하다 머리가 휑한 걸 깨닫고 아쉬운 듯 손을 다시 내렸다. 머리가 길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손이 있을 곳이 있어 좋단 말이야. 역시 남자 몸은 단점이 너무 많아.
아, 누리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단 걸 언급하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귀여워라. 누리는 이래서 동생같은 느낌이 느껴진다. 친동생 같은 느낌이랄까? 자신에게도 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령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냥 편하게 와도 되는데 지금 입고 있는 복장이라던가... 령은 아무리 봐도 엄청나게 준비라던가, 마음의 준비라던가 그런 것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 복장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걸. 아무튼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일까. 약간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나는 배시시 웃었다. 물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남자가 된 령은 뭔가 조금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늠름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집에 손님을 들이고 싶다는 말과 집으로 가도 괜찮겠냐는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나중에라고 했는데?
"지금 말이야? 딱히 상관은 없지만 괜찮아? 다음에 초대하는 것이 아니었어?"
물론 나는 딱히 상관은 없었기에 괜찮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밝혔다. 그보다 청소가 깔끔하게 되어있다는 말에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무슨 기대를 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엄...아빠가 이야기했어! 남의 집에 놀러갈 때는 함부로 막 탐사를 하면 안된다고 말이야!"
"백호 언...형도 아니고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야!! 물론 먹고 싶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었어!!"
뭔가 분한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방방 뛰면서 꼬리를 바짝 위로 세웠다. 뭔가 어린애 취급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그것을 떠나서 뭔가...뭔가...조금 분하기도 하고...아무튼 참으로 복합적이었다. 물론 그런 의미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하니 다시 꼬리가 아래로 축 내려갔다. 뭔가 이러니까 어린애같은 느낌이 더 드는 것은 아닐까...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우으..심정이 복잡해.
아무튼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그리고 령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좋아. 나도 딱히 할 것은 없으니까! 그럼 가볼까?"
이어 나는 가볍게 신통술을 발동시켰다. 주변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그 바람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미리내의 눈밭 위에 서 있었다. 뽀드득, 뽀드득. 이 소리가 너무 예뻐서 절로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수컷이 되어도 이것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령을 바라보았다.
미리내에 도착하자 밝히는 눈밭은 미리내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물론 명소는 별이 보이는 언덕이긴 하지만 역시 미리내하면 이런 눈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하얀 눈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면서 신나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역시 너무 어린아이처럼 보일까 싶어 나는 곧 자제하기로 했다. 그래도 일단은 고위신인데 너무 어린애처럼 보이면 안되잖아. 엄...아빠도 아마 너무 촐랑거린다고 할지도 몰라.
"응! 잘 따라갈게!"
일단 령의 집이 어딘지는 모르기에 따라가기로 하면서 나는 그 뒤를 뒤따라갔다. 뽀드득, 뽀드득. 눈이 깨지는 소리가 참으로 아름답고 듣기 좋았다. 앞으로의 미리내는 대체 어떻게 변하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어느새 숲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령의 집은 바로 이 숲 안인 것일까? 조류 계열이라서 숲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걸까? 아니야. 그렇게 따지면 흑조는..호수 근처에서 사는 것이 맞지 않나? ...아닌가?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령을 바라보면서 물어보았다.
"령은 숲 속에서 사는 거야?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느끼는 궁금증에 지나지 않았다. 일단 나는 여우지만 굳이 숲에서 사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뽀드득, 뽀드득. 겨울 특유의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지금 이럴 때 눈이 내리면 되게 예쁠 것 같은데. 하지만 이미 눈이 내렸던 것 같으니 더 많이 바라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입고 있는 옷이 눈에 젖지 않도록 신경써서 앞으로 걸었다. 그 와중에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너무 경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령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
다른 신들에게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언가...혼자 있는 시간을 좀 더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당연히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나쁜 것일리가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보이는 것은 통나무 집이었다. 와아. 통나무를 잘라서 집으로 만들었구나! 되게 멋진 것 같아!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역시 이런 산에서는 저렇게 나무로 만든 집이 보기 좋고 예뻤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령을 바라보면서 해맑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응! 기억해둘게! 다음에 또 놀러올지도 모르니까! 다른 신들도 그러지만 제각각 독자적인 집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신기해. 나는 기와집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그렇고 말이야."
그렇게 감상평을 말하며 나는 령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다렸다. 집주인보다 먼저 안으로 들어가면 안되는 법이잖아?
>>267 사실...리스가 과일 외에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붕어빵입니다. 모양이 원래 홍학의 먹이 중 하나인 물고기 모양이기도 하고, 빵은 그래도 좀 먹어봐서...(끄덕) 하지만 령이는 이미 알고 있...ㅠㅠㅠ(시무룩)(???) 음...음...그래도 혹시 도와드릴 일이 없는지 여쭤보러 가끔 찾아가긴 할 것 같네요. 정작 갔다가 놀고 돌아오겠지만...(흐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