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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배시시 웃는 그 모습은 잠시 동안이었지만 정말로 '행복'해보였다. 이미 떠오르는 존재들은 많았다. 시간이 지나서 스웨터가 완성된다면, 다시 나눠드리러 집을 나서서 찾아다녀야겠지. 하지만 그 발걸음은 분명 기쁠 것이었다. ...비록 집어던져진다거나 안 좋은 말을 하시는 '신' 님들을 만나게 된다고 할 지라도.
그래도 아사 님의 말씀이니까 분명 그럴 거라고 한 치의 거짓 없이 믿으며, 이어지는 아사 님의 말씀을 가만히 들었다. ...그런데... 왠지 아사 님, 잠시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 시각 대신 청각만큼은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도 자신 있을만큼 발달되어있던 자신이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도 이내 어쩌면 자신의 착각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왠지 아사 님의 끝없는 지식이라는 건... 아사 님께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만을 간직한 채.
"...그러셨군요. 네, 그러면... ...같이 가봐요, 아사 님."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끄덕였다. 그리고 아사 님께서 이내 손을 내밀어주시자 잠시 멍하니 그 손을 바라보다 한 박자 늦게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머뭇머뭇,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다 아주 조심스럽게, 살며시 아사 님의 손 위에 자신의 두 손을 올려놓아 아사 님의 손을 살짝 잡았다. 자신의 손이 긴장과 영광스러운 기쁨에 살짝 떨리는 듯 한 건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었다.
멍하니, 정말로 멍하니 얼빠진 소리를 내며 아사 님을 바라보았다. 깜빡깜빡, 느릿하게 깜빡여지는 두 눈동자는 아사 님의 묘한 눈을 보며 그 '노동력 착취를 하는 이'를 생각해보았다. ...서, 설마... ...아니겠지요...?
"......"
...왠지 모를 불안감이 다시 찾아왔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에서 역시도 묘한 불안이 나타났다. ...왠지 괜한 말씀을 드린 것 같아요, 저... 그러나 후회와 깨달음은 언제나 늦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애써 아사 님이시니까 괜찮을 거라 믿었다. 응, 괜찮을 것이었다. ...아마도...?
아무튼 이내 아사 님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자 시작되는 아사 님의 신통력. 역시 '신' 님들의 능력은 언제 봐도 무척이나 신기한 것이었다. ...자신은 하지 못할. ......하지 않는...? 실없는 생각을 조용히 접고선 이내 도착한 실 가게 앞. 아사 님의 움직임에 맞추어 조심스럽게 잡고있던 손을 놓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공손히 허리를 숙여 덧붙였다.
"...그러게요. 여전히 정말 멋진 가게 씨예요."
아사 님의 말씀에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자신의 눈에는 언제나 멋져보였으니. 그러다 아사 님께서 문을 열어주시자 다시금 살짝 놀란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은 여전히 뜨개질과 관련된 여러가지 실들로 형형색색 가득히 채워져있었다. 그 화려한 모습들에 다시금 작게 감탄하다, 이내 몇 박자 늦게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사 님을 바라보았다.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왠지 이 이후의 일은 아사 님과 가온 님께 맡겨야 할 것 같았다. 왠지 모를 드라마...? 사실 드라마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은 몰랐지만 예전에 은호 님께서 한 대 맞으시면 죽으신다던가(?), 백호 님께서 먹염룡이시라던가(?),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전부 다 '드라마' 라고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왠지 모르게 스쳐지나갔기 때문에.
"...네,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해요."
아사 님의 말씀에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애초에 자신의 눈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멋지지 않은 게 있었겠느냐마는. 아무튼 따라오라는 아사 님의 목소리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기 시작했다.
목도리 씨, 담요 씨, 가디건 씨, 그리고... ...과일 씨? 어라...? 과일 씨가 왜 여기에...? 정체불명의 과일 모양 물건에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계속 걸어가면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는 멍한 두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반짝반짝였다. 물론 그러다가...
"...아얏!"
...멈춰선 아사 님을 미처 보지 못하고 그대로 살짝 콩, 하고 부딪쳐 버렸지만. 그에 뒤늦게 이마를 문지르며 아사 님께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사과를 전했다. 그리고는 아사 님께서 코바늘 하나를 꺼내어 건네주시자 잠시 그것을 두 눈을 깜빡깜빡이며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쥐어보았다.
"...! 와아, 뭔가 딱 맞는 것 같아요...!"
크기도, 길이도 자신의 손에 딱 알맞았다. 아사 님의 눈썰미는 역시 대단해요...! 신기한 듯이 코바늘을 손에 든 채 이리저리 느린 동작으로 움직여보다가 천천히 아사 님을 바라보았다.
"돗바늘이나 아프간 바늘이나 대바늘 같은 다양한 것이 있긴 하지만.." 나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는 실을 걸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거립니다.
"이걸 잘 쓰게 되면 생활 용품을 만들 수도 있어서. 뭐지. 과일 모양 수세미라던가?" 그런 겸? 이라고 말하면서 그게 정말 마음에 든다면 응. 그걸로 사줄게. 라고 말하려 합니다. 그러고보니 아사가 쓰던 천은 뜨개질의 산물은 아니지만 굉장히 길었으니 천을 짜고도 남은 걸로 아주 얇은 것들만 모아서 웨딩링처럼 레이스 베일을 하나 짰던가.
멍하니 두 눈을 깜빡깜빡이며 아사 님의 말씀을 따라 중얼거렸다. 갑자기 머릿속이 핑핑 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 수많은 바늘 씨들이 있어요...! 헤롱헤롱, 복잡한 머릿속에 눈동자가 빙글빙글 도는 듯한 기분. 그러나 이어서 들려오는 아사 님의 말씀에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생활 용품이요? 과일 모양 수세미...? 아, 혹시 아까 그 딸기 씨 모양을 하고 계시던 그것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여졌다. 아하! 방금 전에 그 물건 씨는 수세미 씨였군요! ...수세미가 뭔지 모른다는 것은 지금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야 아사 님의 말씀에 깜짝 놀라 드물게 곧바로 고개와 손을 도리도리, 황급히 저었으니.
"아, 아뇨! 괜찮아요, 아사 님! 이렇게 함께 와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엄청 감사하고 죄송한 걸요...! 더군다나 이 코바늘 씨는 아사 님께서 직접 골라주신 것이니까... 그러니까... 제가 직접 구입하고 싶어요, 아사 님. ...아사 님의 그 마음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감사해요."
배시시, 작게 웃으면서 아사 님께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그래, 언제까지고 '신' 님들께 도움을 받으며 살 순 없었으니. 그러다가 아사 님의 작은 중얼거림을 듣고는 괜히 자신이 더 신난 듯, 살짝 들뜬 듯한 목소리로 아사 님께 물어보았다.
"...앗, 아사 님께서도 뭔가 다른 물건 씨를 만드시려는 건가요? 감히 제 생각을 말씀 드리자면... 저는 여기까지 함께 오신 김에 아사 님께서도 예쁜 실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아사 님의 마음에 쏙 드시는 실 씨를 말이예요."
아사 님의 설명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느긋한 아사 님의 목소리 덕분일까. 왠지 모르게 덩달아 느긋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세미 씨는 그릇 씨들을 닦을 때 사용되는 것이였군요. 처음 알았어요! 저는 물로만 닦아서..."
애초에 과일 정도밖에 먹지 않는 자신이었으니 수세미가 크게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사 님 덕분에 또 하나 알아가는 것은 역시 기쁜 일이었다. ...역시 아사 님께서는 이것저것 알고 계신 게 많으신 것 같아요. 정말로 대단하세요...!
그러다가 아사 님께서 실을 살 생각이신지 고개를 끄덕이자, 괜히 자신이 살짝 더 들떠서는 희미하게 웃으며 이런저런 실들을 둘러보았다. ...어떤 실 씨가 좋을까요? 아사 님 같은 푸른빛의 실 씨도 예쁜 것 같고, 저 검은빛의 실 씨도 예쁜 것 같고... 으으음...
그러나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야 아사 님께서는 자신의 코바늘 역시 사준다고 말씀해 오셨으니. 그에 잠시 그 말 뜻을 파악하지 못한 듯이 멍하니 두 눈을 깜빡깜빡이다가, 이내 깜짝 놀란 듯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아사 님을 말리려고 했다.
"아, 아니예요, 아사 님! 전 괜ㅊ...!"
오, 이런. 자신의 반응이 너무 느렸기 때문일까? 이미 코바늘은 계산이 되어버렸고, 자연스레 자신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 상황의 흐름을 미처 따라가지 못한 표정은 얼떨떨했고, 결국 침묵과 침묵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코바늘을 품에 소중히 꼬옥 안아든 채 죄송함과 감사함이 섞인 표정으로 아사 님께 인사를 전하는 것 뿐이었다.
"...정말로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아사 님. 언제나 저만 이렇게 도움을 받게 되는 것 같아서... 저도 아사 님을 도와드리고 싶은데..."
...잠시 가온 님의 말씀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보좌. 그러나 차마 그것까지는 입에 담지 못한 채 그저 고민할 뿐이었다.
"...기름기... 그렇군요. 왠지 알 것 같아요. ...네, 저는 보통 과일 씨들만 먹어서... 그렇게 기름기가 있으신 음식 씨들은 잘 안 먹거든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 자신이 원래의 홍학처럼 새우나 물고기 등을 먹거나 육식을 즐겼다거나 한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자신은 식성이 바뀌어버렸으니. 주변의 상황으로 인하여.
아무튼 자신도 모르게 흔들흔들거리는 아사 님의 바보털을 따라서 눈동자를 같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이어지는 아사 님의 말씀에 다시금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금은 시무룩하게 두 날개까지 아래로 추욱 늘어뜨리고는.
"...그, 그래도... 아사 님께서는 언제나 저에게 도움을 주시고 베풀어주시는데 전 아사 님께 드린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고민이 다시금 깊어졌다. 코바늘을 품에 꼬옥 안아든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말씀을... 드려볼까요? 고민하고 갈등하고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사 님께서 지나가듯 하는 말씀을 듣고나서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네에..." 하고 대답하다 뒤늦게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정말로 빠르게, 황급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 아뇨! 괜찮아요, 아사 님! 죄, 죄송합니다...! 저, 그만 아사 님께 보좌가 되어 도와드려도 괜찮으신지, 어쩐지를 고민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서 그만...! 그, 그 비단 실 씨 정말로 예뻐요, 아사 님! 아, 아니면 저 색깔은 어떠신가요?!"
정말로 당황해버렸기 때문일까. 할 말, 안 할 말을 미처 구분하지 못한 채 횡설수설,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허둥지둥, 쩔쩔매며 노란색 빛이 반짝이는 푸른색 실을 가리키는 와중에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듯 했다.
"신이 되면서 식성도 바뀐 거려나. 나도 생각보다 적게 먹더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러다가 드린 게 없다는 말에 바보털이 꾸깃꾸깃해집니다.
"리스는 내가 보답을 바라고 친절을 베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쩐지 그런 답이 나온다면 묘한 기분이 될 것 같다. 란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지만. 갑자기 네에. 라고 하는 것에 흐응.. 하다가 횡설수설하는 리스를 바라봅니다. 보좌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고민은 되긴 합니다. 하지만 나는.. 노동력 착취하는 신이 아닌데.
"노란빛 푸른 실.. 그것도 좋겠다." "그리고... 보좌 건은.. 미안해. 아직은 들일 생각은 없거든. 리스의 제안은 무척 고맙고 능력이 된다면 좋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리스에게 노동력 착취하는 신은 아닐 예정이니까." 어쩌면 사건이라던가 일어난다면, 보좌를 받아들일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단실로는 아주 얇은 레이스를 짜서 베일로 쓸 수 있겠네." 누군가 가장 가까운 이의 색으로 짤 수 있을지도? 라고 넌지시 말하려 합니다.
"...저는 '신' 님이 아니지만... '신' 님의 자비로 다시 태어난 이후에 식성이 조금 바뀌게 되긴 했었답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서..."
살며시 시선을 아래로 떨구어 피하며 말 끝을 흐렸다. 과거를 떠올렸는지,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거리며 말을 아끼다가 이내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아사 님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사 님께서도 소식하신다는 건 왠지 비슷한 것 같아서 신기해요."
조류의 특징인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생각하기도 하다가 아사 님의 바보털이 꾸깃꾸깃해지자 놀란 듯이 커진 두 눈을 깜빡깜빡였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아사 님의 물음. 그에 눈에 띄게 깜짝 놀라며 고개와 두 손을 도리도리 젓는 등, 드물게 선명한 반응을 보였다.
"아, 아니예요, 아사 님!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그냥... 이런 저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신다는 것도 역시 뭔가 말이 안 되지만, 친절을 받았으면 저도 꼭 그만큼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을 뿐이라서... 그, 그게... 그러니까아..."
횡설수설이 깊어졌다. 쩔쩔 매는 모습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얼핏 새어나왔지만, 그것뿐이었다. 애써 아사 님의 색을 닮은 다른 푸른색의 실을 가리키며 화제를 돌리려 노력했으니. 그러나 역시 아사 님께서는 자신의 말을 들으셨던 것일까? 이어지는 아사 님의 대답에는 들켰어요... 하는 부끄러움 반, 감사하다는 마음 반이 섞여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작게 저었다.
"...으응, 아니예요, 아사 님. 저는 괜찮아요. 그냥... 그 정도로 아사 님께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그 마음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저, 꼭 아사 님께 보답해드릴 거니까요!"
그것만큼은 자신도 쉽게 물러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저, 좀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어요. 제가 스스로 아사 님께 도움이 되어드리러 찾아가면, 아사 님께서도 노동력 착취라는 생각을 안 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잠시 생각에 잠기며 그제서야 제대로 비단실을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정말 예뻐요.
"...베일이라는 것은... 얼굴을 가리는, 그런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누군가 가장 가까운 이의 색이라면..."
...아사 님, 혹시 누군가를 생각하시며 베일 씨를 만드시려는 걸까요? 왠지 궁금증이 들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