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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리스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흐릿) 그리고 이건 제가 정식으로 신청하는 겁니다. 억지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흐릿) 물론 리스주가 상황이 좋지 않다면 어쩔 수 없긴 합니다만... 그런데 어제는 정말로 미처 못 본지라.. 그때 아마 NMPC 가족 이야기 때문에 못 본 것 같은데... 그런고로 일상이 고픕니다. 어떻습니까?
>>90 죄송합니다, 스레주... 제가 머리도 아프고 멍해서 누워있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네요. 그리고 저는 정말로 괜찮으니 굳이 그래주시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어차피 스레주가 다른 일들로 이것저것 바쁜 것도 알고, 스레주의 마지막 일상이 저였고, 마침 딸꾹질하는 귀여운 아사를 보고싶다고 하셨으니 아사주께서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두 분께서 돌리시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낮에 잠시 나갔다 올 곳이 있어서 깔끔하게 공부를 한 후에 잠시 갱신합니다...! 하이하이에요! 리스주!! 음...음... 그래도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실 건 없어요. 몸이 안 좋으면 쉬어야 하는 법..! 그걸로 뭐라고 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의 인성을 조금 의심해봐야합니다. 아무튼... 잠시 갱신하고...저는 밥 먹고 잠시 외출을 하고 올게요!
콸콸콸. 시원하게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참으로 경쾌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폭포이다. 비나리의 유명한 명소이자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봐도 무방한 곳인 이곳에 내가 온 이유는 별 것 없었다. 그냥 가끔은 여기서 바람을 쐬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아름답게 피어오른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늑대인 시절에는 저 무지개를 물고 싶어서 뛰어다닌 적도 있었지. 그때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나도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 크고 나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별 의미없이 그곳에 앉아 나는 폭포를 가만히 감상했다. 가끔은 이렇게 일 없이 쉬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은 것이겠지.
스스로에게 그렇게 합리화를 하면서 나는 고개를 가만히 돌려 텅 비어있는 제단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제단도 슬슬 청소를 할 때가 되었을까. 더 나아가 저 위에 있는 결계를 만드는 수정도 조만간에 닦을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만 오늘은 쉬기로 했다. 가끔은 이렇게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론. 오랜만에 무지개 씨를 보러가지 않을래요? 론, 요즘 기분 안 좋아보여서..."
[...난 기분 안 좋아보인 적 없어. 네가 가고 싶다면 가, 리스.]
론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에 천천히 론을 안아들고 집을 나서서 접혀있던 분홍빛의 두 날개를 서서히 펼쳐냈다. 그리고 서서히 날개를 펄럭여 하늘 위로 올라가 비나리의 폭포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시원한 물 소리를 들으면 론의 기분도 좋아지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도 마음 속으로 해보면서.
"...어...?"
그런데 비나리의 폭포에는 이미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누구실까요? '신' 님들께서도 여긴 잘 안 오시던 것 같으시던데... 절로 고개가 갸웃해졌다. 그렇기에 이내 천천히 궁금증으로 가득한 마음을 안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보이는 건... 가온 님의 모습...?
"...가온 님...?"
멍한 두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천천히 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공손히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올렸다. 희미하게 웃어보이면서.
폭포 소리를 들으면서, 그리고 그곳에 피어나는 일곱빛깔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도중이었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펄럭이는 날개짓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 고개를 살며시 옆으로 돌리니 다름 아닌 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는 무슨 일일까? 비나리의 명소인 저 폭포를 보기 위해서 찾아온 것일까.
일단 나를 향해 다가오면서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 역시 허리를 꾸벅 숙여서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리스 씨! 이곳에서 다 만나는군요! 오늘은 쉬려고 합니다. 특별히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과수원의 일은 다 끝내두었으니까요. 가끔은 이렇게 휴식을 취해야 내일 또 일을 하지. 매일매일 달리면 쓰러지기 마련입니다. 하하하!"
말을 마치면서 나는 내 두 허리를 잡은 후에 큰 웃음소리를 호탕하게 내면서 웃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나의 말을 다시 이어나갔다.
"이곳은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폭포. 비나리의 명소입니다. 다만 많은 신들이 찾아오지는 않지요. 이런 곳에 다 찾아오시다니. 폭포를 구경하러 오신 겁니까? 아니면 다른 볼일이 있으셔서 온 것입니까?"
혹시나 무슨 볼일이 있다면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면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리스 씨를 바라보았다. 역시 대화를 할 때는 눈을 마주치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리스 씨의 답을 조용히 기다렸다.
론을 안아들고 비나리의 폭포로 향하자, 그곳에는 이미 가온 님께서 먼저 와계셨다. 그에 하늘에서 천천히 땅으로 내려앉으며 가온 님께 다가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가온 님 역시 마찬가지로 허리를 숙여 인사에 답해주었고, 그에 한 박자 늦게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론을 안고있지 않은 한 손과 고개를 황급히 도리도리 저었다.
"아, 아니요! 저에게 그렇게 허리 숙여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가온 님...! 아무튼... 오늘은 휴식을 취하신다니 정말로 다행이예요. 가온 님께서는 언제나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맡아서 하시니까 말이예요."
관리자 님이기 때문일까. 언제나 행사를 준비하거나 넓은 과수원을 관리하는 등의 일들을 보면 혼자서 다 해내긴 힘드시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양이긴 했다. 그렇기에 솔직하게 다행이라고 얘기하며 희미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온 님의 물음. 이번에는 자신에게로 돌아온 그 질문에 잠시 멍한 두 눈동자를 깜빡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네, 저는 폭포 씨랑 무지개 씨를 보러 왔답니다. 론이 요즘 기분이 안 좋아보여서... 예쁜 비나리의 명소를 보면 기분이 조금이나마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러니까 도움은 괜찮아요, 가온 님. ...말씀만이라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다시금 예의 바르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펴며 희미하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품 안에 꼬옥 안긴 론은 침묵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무지개가 피어나는 폭포를 잠시 조용히 바라보았다. 시원한 물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신' 님들께서 많이 찾아오시지 않는다는 것은 왠지 조금 아쉬운 기분이예요."
"아니요. 그럴 순 없습니다! 그렇게 당황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저 인사를 한 것 뿐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저런 일이라. 부정할 수 없군요. 하지만 비나리의 관리자로서 당연한 겁니다! 그래도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나리의 관리자는 곧 은호님의 보좌. 은호님의 보좌인만큼 다른 관리자들보다 좀 더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하면서 나는 백호 선배의 뒤를 이어 비나리의 관리자가 된 것이 아니던가. 딱히 힘들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리스 씨에게 저런 말을 듣는 것은 조금 쑥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감사표현은 확실하게 했다. 일단 나를 걱정해줬다는 이야기니까. 괜히 그런 것이 기분이 좋아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곧 그 꼬리의 움직임을 멈추긴 했지만 말이다. 여러모로 본능이라는 것은 무서운 법이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으면 이렇게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니...
아무튼 리스 씨는 폭포와 무지개를 보러 온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또 '씨'가 붙긴 했지만 더 이상 그것에 대해서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말하고 싶은대로 두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개성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론의 기분이 안 좋아보인다...그 말에 나는 론을 잠시 바라보았다. 론은 아마 인형이었지. 어떻게 인형이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지 조금 궁금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물어보았다.
"요즘 론이 기분이 안 좋아보인다라. 근래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 그리고 괜찮습니다. 그래도 찾아올 신들은 다 찾아옵니다. 하하하! 하지만 비나리는 라온하제에서 가장 발전한 곳. 아무래도 번화가의 가게나 그런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편입니다. 거기다가 다양한 사계절의 명소가 각 지역마다 있으니 그곳으로 가는 신들도 많고요!"
아쉬워하는 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그 정도로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뒤이어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수를 바라보면서 나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많은 신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리스 씨처럼 이렇게 찾아오는 신이 있기에 저 폭포도 기뻐할겁니다."
"...그, 그렇지만 가온 님께서는 '신' 님이신 걸요...! 그러니 저는 가온 님의 공손한 인사 씨를 받아드릴 수 없답니다. 정말로 죄송해요, 가온 님... 그리고... 당연한 것이라고 하셔도 언제나 열심히 수고를 다해주셔서 저야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황급히 손을 내젓다가 후에는 결국 다시 희미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살랑살랑 흔들리기 시작하는 가온 님의 꼬리. 그에 자신도 모르게 그 꼬리의 움직임을 멍한 두 눈동자를 한 박자 늦게 이리저리 굴려 쫓다가, 꼬리가 멈추자 엉겁결에 덩달아 느릿하게 멈추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가온 님의 질문에 대답하자, 가온 님께서는 잠시 론을 바라보다가 또다른 질문을 던져왔고, 그에 잠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잘... 최근에는 설날 씨라고 하셔서 '신' 님들께 계속 인사를 드리러 다니고, 백호 님과 여러가지 음식 씨들을 많이 먹어봤다는 것 밖에는..."
으음, 다시금 고민하듯이 소리를 작게 내다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열심히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알 수 없었다. 론은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그렇지만 최근에는 정말 그런 일들밖에 없었는데 말이예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이내 이어지는 가온 님의 말씀을 듣고는 한 박자 늦게 희미하게 기쁜듯한 미소를 배시시 지었다.
"...그렇다면 저도 정말로 기쁠 것 같아요. ...아, 가온 님. 혹시... 폭포 씨 아래의 물가에 들어가도 괜찮은지 여쭤봐도 될까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물어보았다. 만약 된다면... 오랜만에 론과 함께 발을 담그고 가벼운 물놀이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같은 홍학인 론도 좀 더 기뻐하지 않을까요?
역시 리스 씨는 아직 자신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분명히 그녀는 나와 같은 신이다. 단지 자신이 인정하지 않을 뿐이었지. 그 점이 가끔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 자신을 신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녀와 나는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녀도 나도 동물이었지만 신이 된 케이스니까 분명히 같은데 왜 나는 신이라고 하고, 그녀는 신이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그 의문을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 의문에 대해서는 역시 쉽게 물어볼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는 도중, 리스 씨의 답이 들려왔다. 설날의 일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크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하하하! 그러고 보니, 리스 씨에게는 세뱃돈도 많이 줬지요! 세뱃돈은 잘 쓰시고 계십니까? 저도 나름대로 세배를 하면서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음식이라. 배는 괜찮으십니까? 백호 선배. 이번에 음식을 정말로 많이 먹으셨는데! 그것을 따라다니면서 같이 먹었다면 몸이 상하지 않았을지가 걱정입니다!"
정말로 걱정되는 눈빛과 목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백호 선배와 같이라니. 나도 그렇게는 못한다. 백호 선배는 한번 먹을 때 정말로 많이 먹으니까.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절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폭포 아래의 물가에 들어가도 괜찮은지의 여부를 그녀는 물어왔다. 나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제단에 물만 튀기지 않으면 문제 없습니다! 폭포는 모두의 것. 저의 것이 아니기에 굳이 제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들어가고 싶다면 자유롭게 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리스! 물놀이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그러고 보니 홍학은 물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하던가. 그런 본능이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그런 생각이 들어 미소가 지어졌다. 혹시 들어갈 때 한 쪽 다리를 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소소한 호기심이 들어 나는 리스 씨를 바라보았다.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었다. 다름 아닌 '신' 님께서 하고 싶다고 하시는 것이었으니. 그렇지만... 그렇지만... 끙, 끙, 머릿속이 '신' 님의 부탁을 들어드려야한다, 와 '신' 님의 공손한 인사를 받을 수 없다, 의 두 마음의 갈등으로 복잡해졌다. 그렇지만 결국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가, 가온 님께서 원하신다면..."
시선을 슬쩍 아래로 떨구어 피했다. ...양심이 세게 쿡쿡 찔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자신의 말에 가온 님께서 크게 웃으면서 대답하자 다시금 천천히 시선을 올려 가온 님을 바라보았다.
"...그게... 아직은 사용하지 않고 있답니다. 일단은 '신' 님들께서 주신 돈 씨이니까 함부로 쓰기도 그래서 말이예요. 가온 님께서도 많이 받으셨다니 정말 다행이예요. 가온 님께는 매번 저만 받아서 죄송했는데... ...그, 그리고... ...괘, 괜찮... 았답니다... 저는..."
말끝을 흐리며 다시금 시선을 슬쩍 아래로 떨구어 피했다. 괜히 론을 들어올려 입가를 가리면서. 하지만 누가 봐도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많이 먹지도 못 했던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미 거의 몇 주간 먹을 양을 며칠 새에 꾸역꾸역 다 먹었으니. ...그렇지만 '신' 님 때문에 몸이 안 좋아졌었다고는 역시 말할 수가 없어 그저 비밀로 하기로 했다.
대신 화제를 바꾸어 폭포의 물가에 들어가도 되는지에 대하여 허락을 구하자, 가온 님께서는 괜찮다는 식으로 허락해주셨다. 그에 기쁜 듯이 희미하게 환한 미소를 짓다가 이내 고개를 크게 끄덕끄덕였다.
"네! 그게... 론도 저와 같은 홍학이니까 기뻐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예요. 그래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온 님. 그럼... 잠시..."
이내 조금 들뜬 듯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폭포 아래에 고인 물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그 맑은 물가에 자신과 론의 모습을 비추어보다, 조심스럽게 살며시 한 발을 넣어보았다. 약간은 차가운 물의 촉감이 느껴졌지만, 다행히 덜덜 떨 정도는 아니었다. 홍학 특유의 본능이자 자세로 한 쪽 다리를 균형 있게 들어올린 채, 론을 바라보았다.
"...자, 론도 함께 들어와봐요."
작게 배시시 웃으며 두 손으로 론의 두 날개를 잡고 론의 다리도 함께 물 속에 넣어주었다. 흰 색의 긴 겉옷자락 끝이 물에 젖어들어갔지만 지금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그저 즐거운 듯이 두 날개까지 작게 파닥파닥이며 희미하게 밝은 웃음 소리를 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가온 님을 바라보았다.
"그냥 쓰셔도 됩니다. 다들 쓰라고 주는 것이니까요! 그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저는 쓰라고 준 것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거짓말은 안 좋습니다. 리스 씨! 아무리 봐도 괜찮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때로는 거절하는 것도 알아야만 합니다."
물론 백호 선배에게 거절은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리스 씨는 신이 권했다는 이유로 거절을 전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괜히 걱정이 되었다. 물론 내가 알고 있다면 막아주겠지만 리스 씨를 하루종일 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조금 안타깝다고 느끼면서 나중에 아이온 씨에게 말을 해둬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아이온 씨가 같이 다솜에 사니까 더 많이 볼테니까. 꼭 기억해둬야겟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시점에서 리스 씨는 물로 다가갔다.
맑은 물 위에 들어간 리스 씨는 마치 홍학이 다리를 드는 것처럼 다리를 들어올렸다. 홍학의 모습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모습인데도 저렇게 균형을 잘 잡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리를 드는 것은 일종의 본능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저렇게까지 완벽하게 들어올리다니. 리스 씨는 균형감각이 뛰어난 것일까.
아무튼 론이 기분이 나아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 모습에 나는 웃으면서 손을 크게 흔들다가 물가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리스 씨의 근처에서 멈추고 이야기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기분이 안 좋아진 것은 그 동안 제대로 놀 수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노니까 기분이 풀어진걸테고 말이죠. 그런데 인간의 상태에서도 다리를 드는 겁니까? 그렇게 들면 힘들지 않습니까?"
물론 난 리스 씨가 아니기에 리스 씨가 느끼는 것은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조금은 불편하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걱정되는 목소리로 리스 씨에게 물어보았다.
"불편하다면 다리를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지금의 리스 씨는 수인이니까요. 인간들처럼 있어도 됩니다!"
가온 님의 말씀에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거리며 조금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황급히 몇 번이고 괜찮다는 말을 덧붙였다. 물론 완전히 괜찮았냐, 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신' 님 때문에 과식해서 약했던 몸이 안 좋아졌다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그래, 그러니 자신은 괜찮은 것이었다.
아무튼 이내 허락도 받았겠다, 론과 함께 물가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 속에 한 발을 넣어보았다. 시원한 물의 감촉. 그에 기분 좋게 론도 함께 물 속에 다리를 담그게 도와주자 왠지 모르게 론 역시 기분이 조금은 좋아진 듯 했고, 그 모습을 보며 가온 님께 기쁜 마음으로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가온 님께서는 웃으면서 손을 크게 흔들더니 이내 천천히 자신의 근처로 다가왔고, 이어진 가온 님의 말씀에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수긍하는 듯이 한 박자 늦게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론 혼자 외롭고 심심했을 수도 있으니까... ...미안해요, 론. 앞으로는 론하고도 많이 놀게요."
쪽, 고개를 숙여 천천히 론의 머리에 가벼운 입맞춤을 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온 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살며시 옆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어넘기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말씀은 정말 감사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가온 님. 많이 힘들고 불편한 것도 아니고... 물 속에서 한 다리로 서 있는 것은 저희 홍학들의 생존의 방법 중 하나인 걸요. 어쨌거나 저도 홍학이니까 조금은 이렇게 있고 싶어요."
살아가는 생존의 본능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할 것이었으니. 그렇지만 괜히 들어올린 한 발을 살짝 아래로 내리며 가볍게 찰방, 물을 튀겨보기는 했다. ...튀겨진 물방울들을 내려다보는 두 눈동자가 호기심과 즐거움에 살짝 반짝반짝 빛났다.
"리스 씨가 그렇게 있고 싶다면 저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리스 씨의 생각이 더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정말로 힘들면 다리를 내려놓아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본능이라는 것은 저희처럼 동물이었던 이들에게는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저도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보름달을 보면 괜히 울고 싶고 그렇거든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기, 보름달을 보면 하울링을 하기. 모두 늑대의 기본적인 본능이다. 신이 되고서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본능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평생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살아가는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으니 문제는 없었다. 리스 씨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심스럽게 물가 근처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집어넣었다. 시원한 물이 발에 스며들었고 절로 기분이 좋아 꼬리가 흔들렸다.
"물방울을 그렇게 즐겁게 바라보는 분은 처음 보았습니다. 정말 언제 봐도 느끼는 거지만, 리스 씨는 상당히 순수하신 것 같습니다. 리스 씨의 시선엔 세상이 어떻게 비치는지 가끔 궁금합니다."
저런 순수함을 계속해서 지킬 수 있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것이 참으로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누리님도 꽤 순수하지만 누리님은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신이다. 적어도 리스 씨는 누리님보다는 더 긴 시간동안 신이 된 이일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호기심이 들었다.
"가끔 느끼지만, 저보다는 리스 씨가 은호님의 보좌에 더 걸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하. 물론 양보할 마음은 없습니다!"
약간의 그런 생각이 든 것을 거론하면서 나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물을 두 손에 담아 시원하게 한 모금 마셨다. 맑은 물이었기에 마시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시원하게 목이 적셔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가온 님께서도 그러시나요? ...앗, 물론 가온 님의 꼬리 씨가 움직이시는 건 종종 저도 봤지만 보름달을 보고 울고 싶어 하시는 것은 처음 알았어요. ...와아, 뭔가 신기해요...!"
진심을 담아 감탄하며 멍한 두 눈을 반짝반짝였다. ...늑대 씨들의 하울링은 무서웠는데... 가온 님께서도 하울링을 하신다니 뭔가 신기해요. 자신 뿐만이 아니라 진짜 '신' 님이신 가온 님께서도 가끔 그런 본능이 웅직이시는 것일까. 한 때나마 동물이었던 존재들은 다 그런 본능들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걸까? 새로운 궁금증이 들었다.
아무튼 론과 함께 살짝 한 발로 물을 튀기기도 하면서 맑디 맑은 물방울들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자, 이내 가온 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멍한 두 눈동자로 가온 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순수... 한 건가요? 저는 그렇게 순수한 홍학이 아니지만... 그래도 말씀만이라도 정말 감사합니다, 가온 님. ...제 눈엔 이 세상은 정말로 신기하답니다. 무엇보다도 자비로우신 '신' 님들도 많이 계시고, 소중한 친구도 있고, 살아계신 분들도, 살아계시지 않은 분들도, 모두가 정말로 경애로우신 존재들이예요. 이 바람 씨도, 이 물 씨도, 저 폭포 씨도, 저 무지개 씨도, 저 하늘 씨도, 전부 다. ...'사랑'해드리고 싶은 존재들이예요."
더군다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어띻게 신기하고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찰방찰방, 물장구를 가볍게 치며 즐겁게 웃음 짓다가 가온 님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대답했다.
"...물론 저도 은호 님께 조금이나마 더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저는 가온 님만큼 힘이 강하고 많지도 않은걸요. 그러니까 저는 가온 님께서 은호 님과 누리 님을 보좌해드리시는 것을 응원해 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은호 님과 누리 님께 도움이 되어드릴 거예요...! 물론 가온 님께도요...!"
그것만큼은 자신도 물러설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름대로 의지를 다지며 그렇게 대답하곤 이내 천천히 들고있던 한 발을 물 속에 내렸다. 그리고 론과 같이 물 속에서 천천히 스텝을 밟아보기 시작했다. 느릿하지만, 확실한 발걸음으로. 하나, 둘, 셋. 둘, 둘, 셋. 바람에 분홍빛 머리카락이 부드러이 흩날렸다.
"리스 씨 정도면 순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입니까? 모든 것을 다 사랑하고 싶다라. 그런 마음이야말로 정말로 순수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것을 다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이 라온하제의 지배자인 은호님의 보좌이기도 하기에, 저는 라온하제의 안전도 조금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라온하제를 망치려고 하는 자, 균형을 깨려고 하는 자를 저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리스 씨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다 사랑해드리고 싶은 존재로 본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야말로 박애주의자가 아닐까..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세상을 좋아하고 만사를 좋아하는 이. 그리고 사랑하는 이. 그 자체가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평가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있기에, 나를 포함해서 다른 이들도 모두 리스 씨에게는 따스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에 담그고 있는 두 발을 교차하며 천천히 흔들면서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리스 씨는 물 속에서 스텝을 밟으면서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은호님과 누리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이의 모습에 절로 미소를 보이면서 나는 리스 씨에게 이야기했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전에도 말했다시피 무리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리스 씨가 쓰러지면, 분명히 리스 씨를 위해서 걱정할 신들이 한둘이 아닐겁니다. 무리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되지 말고, 라온하제의 즐거운 내일을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누리님의 바람이고 저의 바람입니다."
나 또한 평화로운 라온하제가 좋다. 그런 라온하제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이것저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서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다시 물을 떠서 한 모금 마셨다.
"리스 씨. 다솜의 관리자, 아이온 씨의 보좌가 되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아이온 씨의 도움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온 님의 말씀이 맞는걸요. 악의와 적의를 가지신 분들도 이 세상에는 많으시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런 분들도 '사랑'해드리고 싶어요. 그래야... 그래야..."
하지만 뒷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물 소리에 침묵으로 변화시켜 버렸을 뿐. 잠시 생각에 잠긴 채 무의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을 어루만지다, 느릿하게 고개를 젓고는 가온 님께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분홍색 존재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이 희미했다.
"...저는 가온 님께서 더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가온 님께서 맡으신 역할과 자리에 최선을 다하시는 것이니까 말이예요. ...저는... 순수한 홍학이 아니예요, 가온 님."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단지 그 뿐이었다. 신기루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이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렸다. 옅은 분홍색은...
조용히 론과 함께 왈츠 스텝을 밟던 발걸음이 이내 들려오는 가온 님의 말씀에 잠시 그 자리에 멈춰졌다. 그리고 가온 님을 멍한 눈동자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가 쓰러진다면, '신' 님들께서 저를 걱정해주실까요?
...확신할 수도 없을 뿐더러,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친구인 령이라면 모를까, 다른 '신' 님들은... 게다가 저는... ...그러나 누리 님과 가온 님의 바람이라니 곧바로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조금 우물쭈물, 머뭇머뭇거리다가 결국에는 다시 시선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가온 님."
하지만 '신' 님들께 도움이 되어드리지 않는다면, 제가 살아갈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그것을 위하여 생명을 부여받았는데, 만약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저는... ...저의 '신' 님, 저는... 저는...
혼란스러운 머릿속, 자신의 '신' 님께 계속해서 여쭤보다가 이어지는 가온 님의 말씀에 뒤늦게 반응을 보였다. 조금은 시무룩하게 두 날개까지 추욱 쳐지면서.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아사 님께서는 혼자 일을 하시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괜히 방해만 될까봐 여쭤보지 못하겠어요. 안 그래도 혹시 도와드릴 게 없나, 하고 가끔씩 찾아뵈어도 아사 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셔서..."
노력은 해보겠다라. 그것이 그렇게 힘든 일일까. 리스 씨가 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리스 씨는 왜 굳이 저렇게 남의 도움이 되고 싶어하는 것일까. 무리하게 돕다가 쓰러져도 보통 곤란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시선을 피하면서 작게 중얼거리는 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나는 제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작게 울리고 나는 리스 씨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내 다음 말이었던 아이온 씨의 보좌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는 리스 씨의 모습에 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아이온 씨가 직접 보좌는 필요없다고 하셨습니까? 아니면 리스 씨가 지리짐작하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겁니까? 전자라면 어쩔 수 없지만 후자라면 확실하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해보는 것과 해보지 않는 것은 다르니까요! 저도 처음에는 리스 씨가 일을 돕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리스 씨는 계속 물어봤고 결국 저도 일을 맡기게 되었지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일을 맡기는 쪽은 처음에는 곤란하기 그지 없으니까요. 물론 아이온 씨가 정말로 거절한다면 포기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경쾌했다. 그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나는 리스 씨의 눈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짓고 이야기했다.
"우물쭈물하는 것도 그렇고 시선을 피하는 것에서 유추한 것이지만, 혹시 무리해서 도움이 되지 말라고 한 것이 기분이 상하신 겁니까? 하지만 리스 씨. 다른 신들의 마음은 저는 잘 모릅니다만, 저는 리스 씨가 쓰러지면 걱정스러울 겁니다. 리스 씨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건 리스 씨는 라온하제의 소속원입니다. 그런 이가 무리해서 쓰러지는데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저는 리스 씨가 남을 돕는 것은 좋지만,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남을 돕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작게 울렸다. 나도 모르게 살짝 움직인 모양이었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피식 웃으면서 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다음에 또 일이 필요하면 부를테니까 그런 표정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기껏 놀러 오셨는데 그런 표정을 지으면 복이 다 날아가지 않습니까."
가온 님께서 움직이셨는지 뭔가 첨벙, 하는 새로운 물 소리가 들려오자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곧바로 고개를 돌려 가온 님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들려오는 가온 님의 목소리. 가온 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예시를 들며 아사 님께 직접 확실하게 물어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식으로 물어왔고, 그에 잠시 생각에 잠겨있자 가온 님의 또다른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하지만 그 말들에도 차마 곧바로 대답하지는 못 했다. ...저는... 라온하제의 소속원. 그러므로 제가 무리해서 쓰러지면 가온 님께서는 걱정하신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과분한 말들 투성이었다. 손이 자신도 모르게 위로 올라가 구슬을 매만졌다. 구슬은 빛나지 않았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가온 님. 이런 저에게도 그렇게 말씀해주시다니, 가온 님께서도 역시 자비로우신 '신' 님이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 나중에 아사 님께 직접 여쭤볼게요. 그리고... 무리...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분이 상한 건 절대 아니니까 괜찮아요, 가온 님."
...애초에 잘 쓰러지던 자신이었으니 차라리 도움이 되어드리고 쓰러지는 게 옳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가온 님께서 저렇게 말씀해 주시니까요. 결국 그렇게 노력해보겠다는 식으로 대답하며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이 자신의 최선이었다.
첨벙거리는 물 소리에 이어 가온 님의 또다른 말이 들려왔다. 그에 잠시 멍한 눈빛으로 가온 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한 박자 늦게 덩달아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이 희미한 미소를.
"...알겠습니다, 가온 님. 복 씨를 붙잡기 위해서라도 웃을게요. 다음 번에도 꼭 일 도와드릴테니까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가온 님. 꼭이예요...!"
그래, 꼭. '신' 님들을 도와드리다 보면, 어쩌면 자신도... 론의 날개를 잡은 두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다시 천천히 물 속에서 밟는 작은 스텝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기도 했다.
"신으로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저는 누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검은 늑대 신이 아니니까요. 그저 부탁으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스로가 자비로운 신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나는 알파 늑대로서 살아갈 때의 사고방식이 남아있었다. 절대로 무리하지 않는 것. 늑대 무리중에서 무리하는 이가 나와서 쓰러지면 그 쓰러진 이를 위해서 남은 이들이 걱정을 한다. 라온하제라고 어디 다를까. 알파늑대로 살 때라면 명령을 늑대들에게 내렸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은호님의 보좌에 불과한 늑대이다.
그 와중에 일을 부탁한다는 것이 그리도 기분이 좋은 것일까. 또 부탁하겠다는 그 말에 리스 씨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꼭 불러달라고 이야기를 하는 말에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이야기했다.
"리스 씨는 어쩌면 아이온 씨나 저보다 더 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있는 관리자 중에서 누군가가 은퇴를 하고 다음 이에게 자리를 넘겨준다고 한다면 리스 씨가 관리자가 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물론 제 자리는 아직 누구에게도 넘길 마음이 없지만요!"
나는 좀 더 오랫동안, 누리님이 새로운 지배자의 자리에 오른 순간에도 비나리의 관리자로서 있을 생각이다.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을 했으니까. 아무튼 다시 뒤돌아서 나는 원래 있던 자리로 가서 걸터앉았다. 시원한 물이 발에 스며들어가는 것을 느끼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은호님에게 여쭤보겠습니다. 혹시나 가벼운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지 말입니다. 제가 리스 씨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밖에 없어서 죄송할 나름입니다!"
혼란스러움에 말끝이 물음처럼 끝나버렸다. 애초에 누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검은 늑대 신이 아니라니. 하지만 가온 님께서는 '신' 님이시잖아요...?
'신' 님과 '신' 님이 아닌 이. ...혼란스러웠다. 정말로, 진심으로 혼란스러웠다.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좋을까.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것은 아마도 가온 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일 것이었다. 무려 '신' 님의 부탁이었으니. ...저, 노력해야겠어요.
"...저는 일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신' 님들을 좋아하는 걸요. '신' 님들과 함께 있고, '신' 님들을 조금이나마 도와드릴 수 있다면 정말로 기뻐요! ...관리자 님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답니다. 저는 '신' 님도 아닌 제가 관리자 님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관리자 님이 될 만한 능력이나 자질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 지금의 관리자 님들께서 끝까지 맡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희미하게 웃으면서 진심을 얘기했다. 물론 그 중에는 가온 님도 포함이었다. 애초에 자신은 관리자가 되기에는 몸도 마음도 너무 무르다는 것 쯤은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런 약한 존재가 어떻게 한 지역을 다스리는 관리자가 될 수 있을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런 미련 없이 그저 론과 함께 가벼운 물 속 왈츠를 추고 있자, 가온 님의 기분 좋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덩달아 희미하게 웃으면서 느릿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정도만 하더라도 저에게는 엄청 커다랗고 대단한 도움 씨이신 걸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가온 님. 언제나 이렇게 저를 도와주시고 챙겨주셔서 말이예요. ...역시 가온 님께서도 멋지고 위대하신 '신' 님이시라고 생각해요."
"신들을 좋아한다라. 아까전에도 말씀하셨었지요. 모든 것을 다 사랑하고 싶다고 말이죠. 그 마음의 연장입니까? ...그리고 아니요. 자질은 분명히 있습니다. 라온하제의 관리자의 큰 자질은... 라온하제의 각 지역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니까요. 지금의 관리자들도 충분히 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스 씨의 마음이 거기에 뒤지지는 않을 겁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기준은 그러했다. 모두들 표현 방법이나 마음이 제각각 다를지도 모르지만 각자 담당하고 있는 지역을 향한 마음은 절대로 작은 것도 아니고 약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리스 씨가 생각하는 마음과 무엇이 다를까. 적어도 내 눈에는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확실하게 이야기하면서 나는 리스 씨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정말로 멀고 먼 미래. 참으로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리스 씨도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어쩌면 다른 지역을 관리하는 신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마 그곳은 참으로 살기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미소를 보였다.
첨벙이는 물소리와 근처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가 참으려 경쾌했다. 내가 줄 수 있는 약간의 도움을 리스 씨는 크게 기뻐하면서 대단한 도움이라고 평가했다. 정말로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 말에 나는 괜히 부끄러워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이야기했다.
"하하하! 별 말씀을 다...! 애초에 리스 씨가 먼저 도와주시지 않습니까. 저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말한 것 뿐입니다. 오히려 이런 작은 도움에도 크게 기뻐하고 감사하는 리스 씨에게 제가 감사할 나름입니다. 제가 멋지고 위대한 신이라. ...결국 저도 한낱 늑대였던 이입니다만.. 그 평가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일단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 나는 좀 더 편하게 자세를 잡고 두 발을 교차해서 움직이며 첨벙첨벙 물장구를 쳤다. 그러다가 다시 자세를 잡고 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리스 씨나 저나 동물로서 살다가 수인이 된 케이스입니다. 따지고 보면 비슷한 부류. 서로 도울 것은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이니 뭐니 그런 것은 집어치우고, 그냥 순수하게 친하게 지냈으면 합니다. 이곳은 라온하제. 평화롭고 즐거운 내일이 녹아내리는 곳. 낙원에서 사이좋게 지내는 것만큼 좋은 것이 또 어딨겠습니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신' 님의 자비 덕분에 다시 살아나게 된 존재. 그러므로 저는 '신' 님들을 아주아주 조금 더 '사랑'해요, 가온 님. 그리고..."
잠시 고민하듯이 으음, 하는 소리를 내다가 가온 님의 말씀에 천천히 대답했다. 그래, 자신은 모두를 '사랑'하고 싶었다. 설령 악신 님이라 할 지라도 '사랑'하려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역시 자신이 목숨의 은혜를 입은 '신' 님들이 조금 더 소중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가온 님의 말씀에는 다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물론 저도 라온하제의 각 지역을 사랑하고 아끼지만... 그래도 그 마음 말고도 말이예요. 신속하고 정확한 일 처리라거나, 침착한 판단력이라거나, 많은 업무를 해낼 수 있는 체력... 이라거나..."
잠시 손가락을 하나하나 천천히 꼽아가며 관리자 님으로서의 필요한 자질들을 얘기해보지만, 결국 결론은 그럼에도 자신에게도 자질이 있다 말해준 가온 님께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이었다.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가온 님의 이런저런 도움에도 마찬가지로 감사하다고 얘기하며.
그러자 가온 님께서는 왠지 부끄러운 듯이 고개까지 도리도리 젓더니 마찬가지로 겸손한 대답을 들려주셨다. 그에 한 박자 늦게 작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래, 진짜 '신' 님. 이런저런 신통술도 부릴 수 있고 비나리를 관리하기도 하며, 은호 님과 누리 님의 보좌까지 맡으신. 바람은 부드럽게 불어왔고, 물결은 잔잔했다. 그 속을 가로지르며 춤 추는 옷자락은 물을 머금었지만 전혀 무거워보이지 않았다. 특유의 맨발 역시도 가볍게 맑은 물 속을 움직였다. 그러다 이어서 들려오는 가온 님의 말씀에, 잠시 춤을 멈추고 가온 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놀란 표정으로 아주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신' 님을... 어, 어떻게 집어치우실 수 있으신가요, 가온 님...? '신' 님을 빼, 빼면... 가온 님께서는 늑대 씨이신 걸요..."
늑대와 홍학.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천적 관계. 절로 목소리가 떨려오고 동공지진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자신은 평범한 홍학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 ...그러나... 생각과 고민에 빠진 듯이 나름대로 심각한 표정으로 "...으음..." 하는 소리를 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들고 가온 님을 바라보았다. 입가 가까이 가져간 손가락을 작게 꼼지락거리며.
"...저는... 가, 감히 지금도 가온 님과 함께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 아니었나요...? 가온 님...?"
"물론 저는 신입니다. 평범한 늑대가 아니라 검은 늑대 신입니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검은 늑대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말로 모든 것을 집어치우고 늑대나 홍학으로 있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신이라는 큰 타이틀을 너무 신경쓰지 말고 가온과 리스로서 친하게 지내고 싶다라는 겁니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도 더욱 친하게 지내고 싶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뭔가 리스 씨는 엄청 삼긱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절대로 그럴 필요가 없은데 말이야. 하지만 그 또한 그녀의 특성이라면 특성이었다. 순수하게 받아들이면서 나름대로 해명을 하듯이 이야기했다. 나도 모르게 해명을 하면서 발의 움직임이 빨라져 첨벙거리는 물장구 소리가 조금 더 커져왔다. 괜히 목이 마르다고 생각하며 나는 허리를 굽힌 후에 두 손으로 물을 떠서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러니까 결론은 너무 눈치를 보거나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하하하!"
깔끔하게 결론을 내리면서 나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편 후에 편안하게 앉으면서 두 발을 첨벙거리면서 앞뒤로 흔들다가 천천히 발을 물 밖으로 빼냈다. 그리고 똑바로 서면서 두 팔을 위로 쭈욱 올렸다가 다시 아래로 내렸다.
"혹시 그런 것도 힘드십니까?"
힘들다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서 나는 리스 씨를 바라보았다. 물론 나에게서 온전히 신이라는 타이틀을 뺄 순 없었다. 리스 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신이니까. 누가 부정하려고 하더라도 실제로 우린 신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라온하제에서 신이라는 것을 신경쓰면서 살 필요가 있을까. 그저 라온하제의 일원으로서 사이좋게 지내면 그것이 즐거운 내일이며, 행복한 낙원이 아닐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소식 들으셨습니까? 얼마전에 령 씨가 새롭게 미리내의 관리자가 된 모양입니다. 세설 씨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모양입니다."
가온 님의 말씀을 가만히 듣던 중 그 구절이 유난히 귀에 들어와 머릿속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그 말씀을 따라서 중얼거려보았다. ...뭔가...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예요. 그러니까 마치... '친구' 같아요.
애초에 자신에게 있어서 '~님'이나 '~씨' 자가 붙지 않았던 존재는 론과 친구인 령 뿐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묘한 기분이었다. ...왜 '신' 님들께서는 다들 저에게 있어서 '신' 님이시기를 별로 원하시지 않는 걸까요? '신' 님들은... '신' 님이실텐데. 괜히 저 같은 존재에게 동등하다고 말씀해주지 않으셔도 될 텐데.
"......"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어지는 가온 님의 말씀과 호탕한 웃음 소리에도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침묵할 정도로. 그렇게 생각에만 빠져있던 탓일까. 가온 님께서 힘들다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씀하시는 것에도 미처 곧바로 대답하지 못 하고 몇 박자 늦게서야 뒤늦게 깜짝 놀라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손과 고개까지 도리도리, 세차게 저어가며.
"아, 아뇨! 그, 그런 게 아니라...! 그, 그냥... 뭔가 낯선 느낌이라서요. 뭔가... '신' 님들께서 다들 '신' 님이 되시기보다는 '친구'... 가 되시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
물론 이것이 엄청난 실례가 되는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역시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혹시... 가온 님께서도 령과 저처럼 '친구'... 가 되시고 싶어하시는 걸까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론을 다시 품에 안아든 채 고개를 살짝 갸웃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이어진 가온 님의 말씀에 뒤늦게 "...앗."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작게 끄덕여 반응했다.
"...네, 저도 들었답니다. 안 그래도 령한테 축하한다고 작은 선물 씨라도 들고 찾아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세설 님은... 괜찮으신 걸까요...?"
령이 미리내의 관리자가 된 것에 대한 기쁨, 그리고 세설 님께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싶어 걱정되는 마음, 두 가지가 복잡하게 섞여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좋아하지도, 완전히 슬퍼하지도 못하는 표정을.
"그 이유를 굳이 지금 이야기한다고 해도 리스 씨는 아마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리스 씨도 이해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말로 표현하긴 힘듭니다.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다른 친구들과 이유가 있어서 친구가 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바로 그런 이유였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생각을 많이 하고 이득이 될 것 같으니까 친해지자..이것은 정말로 친구인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리스 씨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은호님이나 누리님이 나와 같이 말을 하면 아마 크게 당황할테니까. 내가 신이라고는 하나 고위신보다는 낮은 느낌의 신이었다. 아마 리스 씨에게도 그런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글 조용히 크게 끄덕였다.
"아. 소식 들으셨군요! 세설 씨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설 씨는 세설 씨 나름대로 이유와 사정이 있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그렇게 따지면 백호 선배도 저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제가 그 자리를 이은 거니 비슷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백호 선배처럼 그냥 이제 쉬고 싶어. 하면서 맡긴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리스 씨의 입장에선 걱정이 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그리고 리스 씨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런 표정을 지으면 세설 씨도 곤란해할지도 모릅니다. 차후 확실한 이야기가 들리지 않으면 너무 깊은 추측은 하지 않는 것을 권합니다. 지금은 폭포를 즐기러 온 것이니 폭포를 즐기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어쩌면 그것이 정답일지도 몰랐다. 지금 가온 님께서 자신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신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이해하지 못 하거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 할테니. 하지만... 역시 조금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신' 님과 '친구'. 그 벽은 과연 허물어질 수 있을까? 그 둘이 같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가온 님께서 보시기에 제가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죄송하지만 그 때 이유를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가온 님?"
그 때가 된다면 자신도 조금 쯤은 변화해있지 않을까. 물론 자신 역시도 가온 님을 비롯한 다른 '신' 님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부탁을 드리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것이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대한의 선이었다. 그 때에는, 그 머나먼 미래에는 어쩌면 '친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네, 아무래도 관리자 님에 대한 소식이니까요. 그리고... 별 일이 없으시다면 정말 다행이겠지만..."
'신' 님과 관련된 일. 괜히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가끔씩 악신 님들이 공격해오기도 하던 라온하제였으니. 그러나 그러한 불안이 자신의 표정에 너무 드러났던 것일까. 가온 님께서는 이내 곧 그러한 자신에게 지금은 폭포를 즐기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에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은... 가온 님의 말씀처럼 괜찮으실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세설 님께서도 '신' 님이시니까요. 분명 괜찮으실 거예요. 그러니... 폭포 씨를..."
잠시 고개를 들어 폭포 위에 피어난 무지개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 무지개를 향해 천천히 한 손을 뻗어보다가 이내 다시금 가온 님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신은 영생이다. 자신이 스스로 삶을 다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한, 그 목숨이 자연스럽게 끊어지는 일은 없다. 나는 라온하제에서 지낼 생각이고 리스 씨도 라온하제에서 지낸다고 한다면 아마 언젠가 리스 씨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긴 시간동안 그녀가 스스로를 '신'이라고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정말로 언젠가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믿으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 와중에 리스 씨에게서 나에게 폭포를 어떻게 즐기냐고 물어왔다. 그 말에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태연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그 질문에 가볍게 대답했다.
"하하하. 저는 신이지만 동시에 늑대기에 수영을 하기도 하고 물에 몸을 담그거나 그냥 폭포를 구경하거나 하면서 즐길 때가 많습니다. 지금은 변신하지 않겠지만, 가끔은 늑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물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 외에는 그냥 근처에 드러누워 낮잠을 잘 때도 있습니다."
본시 살면서 가지고 있는 본능은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늑대이기에 물을 좋아하고 물이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물론 모든 늑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난 이런 물이 너무나 좋았다.
"어릴때는 무지개가 먹고 싶어서 무지개를 쫓기도 했지만..지금은 그런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하하하! 어디까지나 어린 시절의 이야기니까요!"
허리를 조용히 꾸벅,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희미하게 덧붙여지는 부드러운 눈웃음. 언젠가...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 자신이 모든 '신' 님들과 당당히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날이 올까.
잠시 두 눈을 감았다. 애초에 미래를, 당장 내일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는 사치였다. 자신에게는 오로지 과거와 현재만이 존재했으니. ...하지만... '라온하제'. '즐거운 내일'을... 아주아주 조금은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마음 속으로 조용히 해보면서 이내 가온 님께 폭포를 즐기시는 법에 대하여 여쭤보았다. '신' 님들께서는 어떻게 즐기시는 지를 듣고 나면 저도 론과 함께 좀 더 즐겁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자 가온 님께서는 이내 편안한 목소리로 대답을 들려주었다. 물론 늑대 본연의 모습, 이라는 부분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약간 흠칫, 해버렸지만.
"...그래도... 정말로 즐거울 것 같아요. 수영, 물 씨에게 몸 담그기, 폭포 씨 구경하기, 낮잠 자기..."
머릿속에 기억해두려는 듯이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가면서 조용히 몇 번 중얼거려보았다. ...물론 자신은 본연의 홍학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는 않겠지만. ...그 모습은 싫었다. 그 모습으론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저는... ...지금의 제 모습이 제일 좋아요. 괜히 론을 더욱 꼬옥 끌어안았다.
괜히 예전에 백호 님께서 본연의 여우의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을 생각해보다가 가온 님의 또다른 말이 들려오자 한 박자 늦게 놀란 듯 멍했던 두 눈동자를 크게 뜨고 가온 님을 바라보았다.
"...가온 님께서도 그러셨나요? 저는 무지개 씨를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무지개 씨를 만져보고 싶어서 날갯짓을 했었거든요. ...하지만 저도 조금 궁금하긴 해요. 무지개 씨는... 무슨 맛일까요?"
딸기 맛, 귤 맛, 바나나 맛, 청포도 맛, 블루베리 맛, 포도 맛...(?) 폭포 위에 있는 무지개의 색깔을 하나하나 세어보면서 나름대로의 맛을 상상해보았다. 물론 실제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름다운 저 무지개 역시 신기루나 환각처럼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으니. 손을 뻗어봐도 닿지 않았다.
"아. 그거 압니다! 무지개라는 것이 되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지금이야 먹을 수 없고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굳이 잡으려고 하지도 않고 먹을 생각도 없긴 하지만 어릴 적에는 그러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제 무리들도 그렇고, 제 동생도 그러했지요."
무지개를 빨리 잡기 같은 것을 해본 적도 있었지.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물론 지금도 행복하고 즐겁긴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조금은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때로 다시 되돌아갈 순 없기에 그것은 오로지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무지개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리스 씨의 말에 작게 웃었다.
"그건 저도 알고 싶군요. 실제로는 먹을 수 없으니 말이죠. 하지만 인간들의 음식 중에서는 무지개떡이라던가 그런 것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무지개의 맛에 비슷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무지개는 신과처럼 먹는 사람마다 다른 맛을 낼지도 모르죠. 그렇게 신비한데 맛이 하나만 있으란 법이 있겠습니까?"
애초에 무지개에 맛이 있겠냐만...그래도 상상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백호 선배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맛있는 것은 좋아하니까. 괜히 이런저런 맛을 떠올리면서 군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지개떡이라는 것을 먹으러 가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무지개를 바라보았다. 지금도 무지개는 그곳에 떠서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잡히지도 않고 먹을 수도 없기에 더 아름답지 않을까요? 무지개는. 만약 흔하게 잡히고 먹을 수 있는 거라면 지금처럼 신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그저 볼수만 있는 것이기에 더 가치가 높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 생각을 밝히면서 나는 무지개를 향해서 손을 뻗어보았다. 하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잡히는 것은 오로지 허공 뿐. 무지개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난 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가온 님의 늑대 씨 무리들도 그러셨나요? 가온 님의 동생 님까지도요? ...와아, 그거 정말로 신기해요...! ...제 형제자매들도 무지개 씨를 좋아하곤 했었거든요. 무지개 씨를 향해 날갯짓을 하기도 했었는데..."
늑대와 홍학. 종을 넘어선 공감대 형성인 것일까. 조금 반가운 듯이 살짝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하던 목소리는 이내 조금은 아련하게 변하여 사라져갔다. ......제 형제자매들은... 이제...
잠시 과거를 조용히 회상해보다가 화제를 돌려 무지개의 맛에 대하여 호기심을 보였다. ...무지개 씨는 어떤 맛일까요? 보이는 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맛일까요? 나름대로 무지개 색에 맞추어 이런저런 과일들을 떠올려보다가 가온 님께서 무지개떡을 언급하자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무지개떡... 이요...?
"...무지개 씨로 떡 씨도 만들 수 있는 건가요? 뭔가 엄청 신기해요! 무지개 씨를 넣는 건 어려우실텐데... 아니면 가온 님 말씀대로 신과 씨처럼 모두 다른 맛을 느끼실까요? ...그렇지만... 그건 왠지 조금 아쉽게 느껴져요. 제가 느낀 맛을 다같이 공유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모두가 같은 맛을 느낀다면 서로가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텐데. 아무튼 고개를 들어 아름다운 무지개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있자 이내 곧 들려오는 가온 님의 목소리. 그에 잠시 아무 말 없이 무지개를 올려다보았다.
"......네. 어쩌면 가온 님의 말씀대로 그렇기에 더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해요.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존재이시니까요."
...마치 '신' 님처럼. 불어오는 바람에 잠시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을 가만히 느끼다가 이내 가온 님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네, 저도 예전에 어릴 적에 그랬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저도 뭔가 반갑고 신기해요. 가온 님께서도 어렸을 적에 비슷한 생각을 하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아니. 실제 무지개로 만든 것은 아니고 무지개처럼 일곱빛깔 색을 가지고 있어서 무지개떡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백호 선배에게 들은 것이 전부이기에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느낀 맛을 공유할 수 없어서 아쉽다라. ...그럴 수도 있겠군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신과처럼 다른 맛을 느끼게 되면 자신이 먹은 맛을 공유할 수 없다. 그것은 정말로 생각도 못한 발상이었다. 난 신과를 먹으면서 그냥 달콤하다. 역시 최고의 과일이다. 이런 생각만 했지. 맛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고려해본 적이 없다. 역시...남을 생각하는 그녀이기에 가능한 발상인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리스 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꼭 같지 않더라도 결국 맛있다라는 것은 공통적이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보더라도 제각각 다른 느낌을 받는 것처럼 맛도 그런 것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맛있다라는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공유를 할 수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내 생각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나는 리스 씨가 어떤 말을 할 지를 기다렸다. 내 말에 대해서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은 개인적인 호기심이었다. 다른 이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생각을 좀 더 알고 싶기도 했고... 물론 침묵을 지킬지도 모르짐나, 침묵 또한 하나의 답이 아닐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튼 바람이 가볍게 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길게 묶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했다. 늑대로서 있을 때는 털이 바람에 흔들려도 정리할 방도가 없었는데 손이 있으니까 보통 편리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털을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하하하! 그거야 저도 한때는 늑대였고 동물이었으니까요! 사실 그것을 떠나서 어린 시절에는 다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아니면 어떻습니까? 저와 리스 씨가 같은 생각을 했었다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죠. 그러고 보니 론은 지금 어떻습니까? 여전히 기분이 좋아보이나요?"
일단 그녀가 데리고 있는 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기분이 어떠한지를 질문했다. 나는 론을 봐도 표정을 읽을 순 없었다. 아마, 그 인형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리스 씨뿐이 아닐까?
"...앗... 그런 건가요? 뭔가 신기하네요, 무지개 떡 씨! ...나중에 저도 꼭 보고 싶어요."
그런 작은 소망을 하나 더 마음 속에 소중히 품으면서 희미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무지개 씨만큼 아름다운 떡 씨라니. ...가능하다면 저도 꼭 보고 싶어요.
그렇게 머릿속으로 나름대로 무지개떡을 상상해보다가 이어지는 가온 님의 말씀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느낀 맛이 꼭 같지 않더라도 결국 맛있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공유를 할 수 있다.
"......"
그에 잠시 생각에 잠기듯 멍한 두 눈동자를 살짝 아래로 내리깔았다. ...제각각 다른 느낌을, 다른 맛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맛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유가 된다.
"...가온 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도 그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가온 님의 말씀대로 다들 서로 다른 느낌을 받으시고 다른 맛을 느낀다고 하시더라도 결국 하시는 말씀은 똑같이 '맛있다.' 였으니까요. 신과 씨가 그러하셨듯이 말이예요. 그것만으로도... 서로 같은 것을 공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조금 더 깊은 공유를 하고 싶다면 직접 자신은 어떤 맛을 느꼈는지 등에 대해서 밝히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었다. 이해와 공감이란 그런 것이었다. 끊임 없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 감정을 같이 느끼고, '사랑'하는 것.
잠시 불어오는 바람을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즐겼다. 흩날리는 분홍빛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다 가온 님께서 다시금 입을 열자 그에 대하여 한 박자 늦게 천천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서로 종족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어린 시절에는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건 정말 신기한 것 같아요. 어린 생명 씨가 가지신 사랑스러운 순수함일까요? ...아, 그리고 론 말씀이신가요? 론은..."
잠시 품에 안은 론을 내려다보았다. 론은 언제나와 같이 침묵한 채 그저 조용히 안겨있었을 뿐이었지만, 자신은 그 얼굴에 담긴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내 순간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어 가온 님을 바라보았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어떤 생명체라고 하더라도 어린 시절에는 순수한 법이니까요! 대부분이 말이죠!"
인간이건, 늑대건, 홍학이건 어린 시절에는 순수하지 않을까? 어지간하면 말이다. 그 이후에 성장하면서 성격이나 성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인간들은 태어나면서 선한지, 태어나면서 악한지...그런 것을 연구하는 모양이지만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할까. 태어나면서 반드시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순수함이다.
아무튼 나는 리스 씨에게 론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나는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리스 씨는 읽을 수 있는 모양이니까. 인간들의 세계에선 인형이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말이 안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여기는 신계. 말만 못할 뿐이지. 표정을 짓고 의사표시를 하는 인형이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물론 나는 잘 모르겠지만 리스 씨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겠지.
아무튼 리스 씨는 대화가 흥미롭다면서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인형에 뺨을 부볐다. 아무리 봐도 정말로 소중한 물건이 모양이었다. 아니. 저 경우에는 친구인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리스 씨에게 있어서 소중한 무언가라는 것은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그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정말로 소중한 존재인 모양이군요. 그 론 말이죠. 하지만 가끔 생각하는 것인데, 리스 씨는 직접 론과 인사를 나누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산책을 하거나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제 힘으로는 조금 힘들지만, 은호님에게 부탁을 하면 움직이고 대화를 하고, 인사를 하는 것도 가능할겁니다. 은호님에게 가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인형에게 의지를 주고 생명을 부여하는 것. 그것은 나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 정도의 신통술을 사용하려면 고위신급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나는 리스 씨에게 은호님에게 가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물론 리스 씨가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제안을 하면서 나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태양은 저 편으로 많이 이동한 상태였다. 꽤 시간이 흘렀다는 이야기겠지.
내 제안이 그렇게 고민이 되는 것일까. 리스 씨는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나온 것은 다름 아닌 거절의 표시엿다. 론이 싫다고 하면서 내 제안을 확실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언가 많이 죄송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신통술을 사용해서 가볍게 신과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물에 담가서 가볍게 씻은 후에 리스 씨에게 다가갔다.
첨벙, 첨벙. 차가운 물소리가 울렸고 나는 정확하게 리스 씨의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신과를 내밀면서 리스 씨에게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는 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에 죄송할 건 없습니다. 리스 씨. 저는 오히려 '신'의 말이니까 따라야한다면서 억지로 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싫습니다. 거절의 의사를 표현할 수도 있는 법이죠.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시고 이 신과라도 먹으면서 웃어주지 않겠습니까?"
방금 전까지 기분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리스 씨였다. 이런 표정을 짓는 모습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 항상 웃으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녀가 저런 표정을 짓지 않길 바라면서 나는 미소를 지어 리스 씨에게 이야기했다.
"슬슬 태양이 사라지려고 하는군요. 해가 지면 물이 차갑게 식을 겁니다. 일단 나오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물론 저는 저대로 저녁 일과를 해야 하기에 슬슬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합니다만...리스 씨는 어쩌실겁니까?"
그렇게 질문을 던진 후에 잠시의 침묵을 지키던 나는 살며시 고개를 숙여 리스 씨와 눈을 마주하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괜찮다면 론에게 사과를 전해줄 수 있겠습니까? 역시 론에게도 사과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온 님의 제안은 예상 밖의 것이었지만, 그 제안에 있어서는 정말로 죄송한 마음을 무릅쓰고 거절의 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일단... 론이 싫어했으니. ...보이지는 않겠지만 느낄 수 있었다. 론은 지금 웃는 표정으로 정색하며 단호하게 싫다고 말해오고 있었다. ...싸늘한 것은 론이었을까, 아니면 지금도 자신의 다리를 잠기게 하고 있는 물이었을까.
그러나 이내 가온 님께서는 첨벙, 첨벙, 하는 소리를 내며 자신 앞까지 다가왔고, 그에 아래로 떨구었던 시선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들어올려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건 가온 님의 미소와 자신에게로 내밀어진 신과 하나였다.
"......"
그리고 들려오는 가온 님의 말씀. 그 목소리를 조용히 듣고 나서도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천천히, 천천히, 두 손을 뻗어서 신과를 받아들었다. 그리곤 허리를 꾸벅, 숙였다 펴며 조용히 입술을 열어보았다.
"...감사합니다, 가온 님. 이해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그리고... 이 신과 씨도 정말로 감사해요.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애써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차마 신과를 먹지는 않았다. ...아니, 먹지 못했다. 태양이 저물어가고 있자 물도 점점 차가운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온 님 역시 느끼셨는지 가온 님께서는 이내 자신에게 이제 어쩔 건지를 물어왔고, 그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갑자기 침묵 끝에 그런 자신과 눈을 맞춰주는 가온 님. 갑자기 시선이 닿자 멍했던 눈동자가 한 박자 늦게 크게 떠진 채 깜빡깜빡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천천히, 다시금 희미한 미소를 조용히 지어보였다.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며.
"...네, 알겠습니다, 가온 님. 론에게 꼭 전해드릴게요.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가온 님. 론도 아마 금방 화를 풀 거예요."
꼬옥, 조금 더 힘주어 론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부드러이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저는 조금만 더 이 폭포 속에 있다가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러니 먼저 가셔도 괜찮아요, 가온 님. 물 씨가 차가우면 가온 님, 감기 걸리실 지도 모르니까 말이예요."
가온 님을 걱정해드림과 동시에 자신은 괜찮다는 듯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직은 이 차가움 속에 조금 더 서있고 싶었다. 곧 다가올 어둠 속에. ...론과 함께.
신과를 받기는 해도 먹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내 물음은 그다지 좋지 않은 물음인 모양이었다. 더 이상 묻지 않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나는 리스 씨를 바라보았다. 조금 아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을까. 결과는 돌이킬 수가 없었으니까. 다음에는 주의를 하는 수밖에 없겠지. 해가 저물면 자연스럽게 물이 식게 되고, 겨울의 기운이 감도는 비나리의 물은 더욱 차갑게 얼어붙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리스 씨는 나오지 않을 생각인 듯 보였다. 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가보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먼저 가도 괜찮다는 그 이야기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적당히 있다가 나오길 바라겠습니다. 하하하. 저번처럼 몸이 아프시면 곤란하니까요."
전에 세뱃돈을 받으러 세배를 하러 갔을 때를 떠올리면서 장난스럽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나도 백호 선배에게 들은 것이지만, 그때의 리스 씨는 정말로 몸이 안 좋아보였으니까. 그때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천천히 물 밖으로 걸어나왔다. 첨벙, 첨벙. 물이 튀는 소리가 조용히 울리는 가운데 완전히 밖으로 나오니 물방울이 뚝뚝 아래로 떨어졌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하하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리스 씨!"
크게 손을 흔들면서 나는 천천히 저 편으로 걸어갔다. 근처에 있는 나의 집을 향해서... 저녁에 해야 할 일은 조금 남아있으니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서 집중할 생각이었다.
어둠이 깔리기 전.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내 모습은 곧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검은 늑대가 어둠 속에 들어가면,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현타라니...(토닥토닥) 리스주는 이미 충분히 열심히 잘 하고 있어요!! 실제로 우리 스레는 나름대로 잘 돌아가고 있어요! 지금 활동하는 인원은 적긴 해도 이렇게 계속 교류를 하고 있고 썰도 나누고 서로 잡담도 나누고 얼마나 좋나요? 그리고....ㅋㅋㅋㅋ 아사주...ㅋㅋㅋㅋㅋ (토닥토닥)
>>327 저건 방송할 때의 자막 폰트가 아니라... 고화질을 만들기 위해서 제작자가 원본인 일판 영상을 짜집기해서 만들고 자막을 자기가 직접 만든 거랍니다! 시작부터 용이라고 해야 할 지... 대부분 오오오오오만 기억하는데 저기 나오는 요리 대결 후반에는 진짜 살벌해요. (흐릿)
???:네가 이기면 모두를 치료할 수 있는 해독제를 주마! 하지만 네가 지면 너도 그 독을 먹을 각오를 해라!
>>329 왜곡이 아니라 실제로 저래요. 강제로 초대해놓고 독 요리를 먹여놓고 제한 시간을 걸어두고 나와 요리 대결을 해라. 하지만 제한 시간내에 끝내지 못하면 모두 다 죽게 될 것이고 네가 나에게 3전 2패로 지게 되면 너도 죽게 될 것이다. 이런 느낌으로 나온답니다. 좀 후반부분은 되게 진지하고 그래요. 말 그대로 어둠의 요리대결..! (??
2월 14일. 인간계에서는 발렌타인이라고 불리는 날이 찾아왔다. 꽤 재밌는 풍습이 아닐 수 없었다. 소중한 사람이나 좋아하는 이에게 초콜릿을 선물하고 교환하는 행사라니. 참으로 인간들은 신기하고 진귀한 날을 많이 만들었기에 흥미로웠다. 그런 모습들이 보이기에 인간들이 좋았다. 물론 처음에는 인간을 싫어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랑과의 만남, 그리고 인간과 이어지는 인연.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있어서 인간을 호감적으로 보이게 했고 지금은 인간계에 축복도 내렸지 않았던가.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런 날에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 신통술을 사용했다. 미리 준비한 초콜릿들을 가득 담아 각각의 신들에게 포장한 상자채로 보냈다. 다솜에 있는 이들에게는 분홍색, 아라에 있는 이들에게는 파란색, 가리에 있는 이들에게는 주황색, 미리내에 있는 이들에게는 하얀색 포장지, 비나리에 있는 이들에게는 은색 포장지로 덮은 상자를 보냈다. 그 내용물은 각자마다 달랐다. 내 특별히 직접 손을 써서, 각 신들의 모델에 맞춰서 초콜릿을 만들었다. 개 수인 신에게는 개 모양의 초콜릿이, 고양이 수인 신에게는 고양이 모양의 초콜릿이 배달이 되도록 했다.
자. 과연 초콜릿을 받은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이 참으로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후후. 오늘은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을 많이 먹고 행복한 하루가 되도록 하라. 내 은호의 이름으로 명하니, 너희들에게 초콜릿과 함께 축복을 내릴지어다."
그저 조용히 웃으면서 나는 모두에게 축복을 내렸다. 초콜릿을 여는 순간, 그 축복이 자연스럽게 내 땅에 살고 있는 신들에게 전달이 될 것이다.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운 내일을 누릴 수 있는 축복은 언제나 함께 할 것이며, 영원히 신들의 안에 녹아내릴 것이다.
"자. 그럼 나도 초콜릿을 먹어야겠구나."
발렌타인데이에 나 혼자 아무것도 먹지 않을 순 없었다. 그것은 너무 슬프지 아니한가. 그렇기에 내 몫의 여우 모양 초콜릿을 오독오독 씹으면서 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참으로 행복하고 풍요로운 즐거운 내일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화이팅..! 부디 빠르게 적응하길 바랄게요..! 그리고... 이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제가 자고 일어나면 좀 집에 있다가 바로 시험치는 장소에 가서 1박을 해야 하는 지라...아마..잘 못 올 것 같네요. 사실 시험 전날이기도 하고...! 그런고로 라온하제를 하루만 잘 부탁하겠습니다! 저녁에는 잠시 올지도 몰라요!
전혀 굉장하지 않아요! 단지...타지역에서 치는 거라서...그날 집에서 가려고 하면 절대로 시간 내로 갈 수가 없거든요. 기차를 타고..2시간 정도 가야해서..그런데...시험 시간은 아침인지라...8ㅅ8 그래서 미리 전날에 가서 자는 거랍니다..! 열심히 하고 올게요!!
>>432 은호:아니니라! 초콜릿이니라!! 그럼...어어...여기 흑조 초콜릿이나 아르겐타비스 초콜릿이나 박쥐 초콜릿, 여우, 뱀, 등등 다 있느니라. 이런 것은 괜찮느냐?
>>464 내려가자니 귀찮아서 재부팅한 후에 부팅메뉴 들어가서 그냥 싹 설정 건드리고 바꿔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제가 모텔 컴퓨터로 이게 뭐하는 짓인지..(흐릿) 아무튼..이제야..동영상이 재생이 되네요. 방금전에는 인증서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되는 것이 없었기에...
아무래도 저번에 가온 님과 헤어지고 나서도 비나리의 폭포 물 속에 한동안 남아있었기 때문일까. 결국 다시 약간 감기 비슷한 것에 걸려버렸다. 선천적으로 약한 몸은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일부러 감기에 안 걸린 척, 애써 열심히 숲 속을 산책하던 것도 잠시. 결국에는 조금 무거운 몸을 견디다 못해 그냥 집에 돌아갈까, 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기침 소리가 끊이질 않았으니. 그러나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평소보다 더욱 늦게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 존재는 다름 아닌...
"......아사... 님...?"
멍하니 멍한 두 눈을 깜빡깜빡였다. ...제 기분 탓일까요? 뭔가 아사 님, 묘하게 라온하제의 분위기라시기보다는... 조금 낯선, 다른 느낌인데... 괜히 두 손으로 양눈을 비비고 다시 아사 님을 바라보았지만 똑같은 모습이었다. ...제 기분 탓이 아닌걸까요...?
"...안녕하세요, 아사 님. 저는 잠시 산책을 즐기고 있었답니다."
약간의 감기 기운으로 살짝 붉은 얼굴로도 공손히 허리를 꾸벅 숙이는 인사는 여전했다. 평소보다 더욱 몽롱한 미소를 희미하게 지어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아사 님께서는...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신 건가요? 뭔가 평소랑 조금 다른 느낌이신 것 같아서..."
애써 감기 기운을 잊어버리려 산책을 나왔건만, 아무래도 자신이 자신의 몸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았다. 열기가 더욱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침을 하던 와중에 만난 아사 님은 그래도 반가웠지만.
"...일종의 출퇴근이요...? 아사 님께서도 다솜의 관리자 님의 일 말고도 다른 일도 하시는 건가요? ...열심히 일하시는 아사 님, 역시 멋지세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신' 님을 향한 찬양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물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희미한 미소로써 전달한 것이었지만. 그리고 아사 님의 움직이는 바보털을 따라서 눈동자를 한 박자 늦게 이리저리 움직이다, 이어지는 아사 님의 말씀에 순간 당황한 듯, 멍했던 두 눈을 크게 뜨곤 두 손과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대답했다.
"아, 아뇨! 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았답니다! 며칠 전에 가온 님의 과수원 씨의 일을 조금 도와드리긴 했지만... 그, 그래도 가온 님께서 억지로 시키신 건 절대 아니예요...! 못 되시지 않았답니다...!"
애써 나름대로 서툴게 가온 님을 변호를 해보지만... 어딘가 묘하게 어정쩡하긴 했다. 그 대신 조금 고민하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손가락들을 꼼지락꼼지락 거리다가 매우 티나게, 아주 어색하게 화제를 조심히 돌려보려 시도했다.
"다른 일이지. 아예 연을 끊은 건 아니니까." 라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립니다. 일하는 게 멋지다는 말에 바보털이 흔들흔들거리는군요. 멋지다니 더 열심히 해야할까나.
변호하는게 묘하게 어정쩡한 것 보니 의심이 됩니다. 흐응. 사실은 서투르다는 걸로 설명이 되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를 놓치기는 그렇지. 아. 큰일났네. 가온이에게 흥미가 가나 봅니다. 물론 좋은 방향일 리가 없지. 골탕을 먹이거나 아니면 소악마스러운 짓이라던가. 모함이라던가.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다 던져넣은 게 아니었나..?
"정말로 안 되었구나.. 어떻게 가온이가 억지로가 아니라곤 해도 다솜의 신의 노동력을 착취할 수가 있는 걸까." 무척 덤덤한 목소리입니다. 그치만 잘 양념이 되어 조정된 감정이 담겨있지요. 그건 과장된 분노? 리스의 손을 잡으려 했는데. 몸상태가 상당히 안 좋은 건가..? 그리고 화제를 돌리려 하는 것에
"당연히 리스가 그렇게 고생하고 착취당하는 동안 잘 지내서 굉장히 미안해졌어.." "몸상태가 많이 안 좋아?" 이것도 양념된 감정. 안쓰러운 눈으로 리스의 상태를 물어보려 합니다.
왠지 모르게 살짝 동공지진이 일어날 듯한 대답이었다. 그야 아사 님의 상황이나 경험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연을 끊다.' 라는 말이 좋은 상황 속에서 쉽게 나올 말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
그러나 차마 더 묻지는 못한 채, 이어지는 아사 님의 물음에 황급히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튀어나온 변호 아닌 변호는 매우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만 같이. 나름대로 열심히 한 변호였지만 역시 부족했던 것일까? 자신의 대답을 들은 아사 님께서는 담담한 목소리로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 있었다.
"...아, 아니예요, 아사 님...! 그, 그게 아니라..."
그에 당황한 듯이 황급히 말을 꺼내보지만 아사 님께서 손을 잡아주시자 말은 그만 끊어져버렸다. 그리고... ...과장된 분노...?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어 그저 멍한 표정으로 아사 님을 바라보던 중, 아사 님께서 안쓰러운 눈으로 걱정을 해주시자 "...핫." 하는 소리를 내며 뒤늦게 반응했다.
"아, 아니예요! 아사 님께서 미안해하실 이유는 전혀 없으시니까 괜찮답니다! 저도... 막 엄청 아픈 것은 아니라서... 괜찮아요, 아사 님. ...걱정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사 님의 걱정으로 몸이 좋아졌어요, 희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무려 '신' 님의 걱정.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건강할 수 있었다.
"...잘 지내셨다니 정말 다행이예요, 아사 님. 뭔가 아사 님께 라온하제의 분위기...? 가 아니라 다른 분위기의 느낌이 드시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스러워서..."
아사 님의 말씀을 따라서 조용히 중얼거려보았다. 마음 한구석이 살짝 찌릿, 아파오는 것이 느껴졌다. ...오래 살던 곳, 옛날 생각. 아르겐타비스. ...아사 님의 무리 씨들도...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시지 않는 것일까요...? 왠지 모르게 다시금 마음이 조금 아파왔다. ...공감이 가서일까.
"......"
차마 관련해서 더 묻지는 못했다. 그 대신 조금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아사 님의 손을 두 손으로 살며시 잡으며 희미한 미소로 작은 위로를 전할 뿐. ...아사 님의 과거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자신으로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다가 아사 님의 바보털이 꾸불꾸불... ...아, 쫙 펴지셨어요. 그 움직임을 몽롱한 눈을 크게 뜨고 신기한 듯이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다, 이어지는 왠지 모르게 소름 돋는 아사 님의 말과 미소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온 몸을 흠칫, 떨었다. ...왜, 왠지 뭔가 불길한 느낌이... 먹잇감이 포착되었음을 눈치채는 동물의 본능적인 직감은 참으로 무섭고도 정확한 것이었다.
그렇게 미처 정정할 정신도 없이 살짝 움츠러들어 바들바들 떨다가 이내 이어지는 아사 님의 물음에 그제서야 간신히 불안감을 떨쳐냈다.
"...아... 네,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았답니다. 저, 엄청 많이 떴어요! 안 그래도 조만간에 아사 님을 찾아뵈려고 했었는데... 아사 님께서 여러가지로 바쁘신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살짝 자랑 아닌 자랑을 희미하게 뿌듯한 목소리로 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아사 님께서 일이 좀 줄어들어 여유로우실 때를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를 공손히 덧붙여 여쭤보면서.
"나는 거짓말은 안하니까." 말을 안하는 거지. 라고 대수롭잖게 말합니다. 거짓말이라는 건 안 하는 게 낫습니다. 아예 하지 말라는 것도 무리지만. 너무 많이 하는 건 별로지.
"응응. 핸드니팅보다는 복잡하겠지만, 그건 도구를 쓰니까 그런 거니까." 하지만 그걸 이어붙이는 건 손만으로 하기는 너무 비효율적이니까. 라고 말하면서 지금은 안되지만 이라고 합니다. 이유야 많기는 하지. 뭐지. 도구의 부재라던가. 어떤 형식의 뭔가를 만들고 싶어요. 라던지.
"도구를 살까나.." "같이 사러 갈래?" 무척 아무렇지 않게 말합니다. 혼자 사러 가게 하면 어쩐지 잘 모를 것 같기도 하고.. 흔히 보이는 대바늘이 아닌 코바늘류를 사야 할 겁니다.
아사 님의 말씀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신뢰 가득한 미소를 배시시 지었다. 진심이었다. 애초에 아사 님께서 악의 어린 거짓말을 하실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 ...'신' 님을 믿지 않는다면 자신이 과연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이어지는 아사 님의 말씀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이제 핸드니팅 씨 이후로는 도구 씨를 쓰시는 걸까요? 왠지 조금 떨리고 긴장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구를 사용해서 뜨개질을 해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론을 고치느라 바느질을 해본 적은 있어도.
"...네, 아사 님께서도 바쁘실테니까요. 그리고 복잡해도 괜찮아요. 저, 열심히 배울게요!"
아사 님께서는 좋은 스승님이시니까 분명히 잘 가르쳐주실 거라고 확신했다. 저번 핸드니팅 수업 때도 그러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아사 님의 가르침을 잘 따라가겠다는 의지만을 열심히 보이며 고개를 끄덕끄덕였다. 그러다 이어서 들려오는 아사 님의 제안에 순간 멍하게 굳어있다가 한 박자 늦게 깜짝 놀란 듯이 두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저, 정말로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몇 번이고 되물은 후에야 이내 기쁜듯한 미소를 희미하게 활짝 지었다.
"...네, 아사 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괜찮을까요, 아사 님?"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었기에 더욱 다행이 아니었을까.
/ ㅋㅋㅋㅋ괜찮아요, 아사주! 어차피 저도 잘 몰라서 스무스~ 하게 아무 말로 해도 괜찮답니다! XD(토닥토닥)(같이 아무 말 준비)(???)
아사 님, 방금... 왠지 모르게 아사 님께서 아주 잠깐 멈칫하시는 것 같아 멍한 두 눈동자를 깜빡깜빡이며 아사 님을 바라보았다. ...그냥... 제 기분 탓인 걸까요? 어차피 한 쪽 눈밖에 보이지 않던 자신이었다. ...헛것을 봤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
그 대신 이어지는 아사 님의 설명을 열심히 경청했다. 그러니까... 촘촘히 매듭을 짓기 위해서 도구 씨를 사용한다는 말씀이신 거죠? 바느질이랑 원리는 비슷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다행이예요. 저, 바느질은 해본 적 있으니까... 열심히 배우고 익혀볼게요, 아사 님."
의지가 다시 가득찼다. 물론 겉으로는 의욕에 불타는 모습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아사 님께서 같이 가도 된다고 허락해주자 순간 선명하게 활짝 웃어보였다.
"! ...저, 정말로 괜찮나요, 아사 님? 와아, 정말 감사합니다! ...박학다식하신 아사 님께서 함께 가주신다면 정말로 안심이예요. 영광이예요, 아사 님."
왠지 든든한 느낌. 믿음직한 스승님(?)과 함께라니, 실패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었다.
"...네, 그러면 될 것 같아요. ...저번의 그 가게 씨로 가면 되는 건가요, 아사 님?"
이어지는 아사 님의 중얼거림을 듣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다른 질문을 하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 앗...! 그랬던 거군요...ㅋㅋㅋㅋ 괜찮아요! 그래도 리스는 아사를 믿으니까요! :D
작게 배시시 웃는 그 모습은 잠시 동안이었지만 정말로 '행복'해보였다. 이미 떠오르는 존재들은 많았다. 시간이 지나서 스웨터가 완성된다면, 다시 나눠드리러 집을 나서서 찾아다녀야겠지. 하지만 그 발걸음은 분명 기쁠 것이었다. ...비록 집어던져진다거나 안 좋은 말을 하시는 '신' 님들을 만나게 된다고 할 지라도.
그래도 아사 님의 말씀이니까 분명 그럴 거라고 한 치의 거짓 없이 믿으며, 이어지는 아사 님의 말씀을 가만히 들었다. ...그런데... 왠지 아사 님, 잠시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 시각 대신 청각만큼은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도 자신 있을만큼 발달되어있던 자신이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도 이내 어쩌면 자신의 착각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왠지 아사 님의 끝없는 지식이라는 건... 아사 님께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만을 간직한 채.
"...그러셨군요. 네, 그러면... ...같이 가봐요, 아사 님."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끄덕였다. 그리고 아사 님께서 이내 손을 내밀어주시자 잠시 멍하니 그 손을 바라보다 한 박자 늦게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머뭇머뭇,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다 아주 조심스럽게, 살며시 아사 님의 손 위에 자신의 두 손을 올려놓아 아사 님의 손을 살짝 잡았다. 자신의 손이 긴장과 영광스러운 기쁨에 살짝 떨리는 듯 한 건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었다.
멍하니, 정말로 멍하니 얼빠진 소리를 내며 아사 님을 바라보았다. 깜빡깜빡, 느릿하게 깜빡여지는 두 눈동자는 아사 님의 묘한 눈을 보며 그 '노동력 착취를 하는 이'를 생각해보았다. ...서, 설마... ...아니겠지요...?
"......"
...왠지 모를 불안감이 다시 찾아왔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에서 역시도 묘한 불안이 나타났다. ...왠지 괜한 말씀을 드린 것 같아요, 저... 그러나 후회와 깨달음은 언제나 늦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애써 아사 님이시니까 괜찮을 거라 믿었다. 응, 괜찮을 것이었다. ...아마도...?
아무튼 이내 아사 님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자 시작되는 아사 님의 신통력. 역시 '신' 님들의 능력은 언제 봐도 무척이나 신기한 것이었다. ...자신은 하지 못할. ......하지 않는...? 실없는 생각을 조용히 접고선 이내 도착한 실 가게 앞. 아사 님의 움직임에 맞추어 조심스럽게 잡고있던 손을 놓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공손히 허리를 숙여 덧붙였다.
"...그러게요. 여전히 정말 멋진 가게 씨예요."
아사 님의 말씀에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자신의 눈에는 언제나 멋져보였으니. 그러다 아사 님께서 문을 열어주시자 다시금 살짝 놀란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은 여전히 뜨개질과 관련된 여러가지 실들로 형형색색 가득히 채워져있었다. 그 화려한 모습들에 다시금 작게 감탄하다, 이내 몇 박자 늦게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사 님을 바라보았다.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왠지 이 이후의 일은 아사 님과 가온 님께 맡겨야 할 것 같았다. 왠지 모를 드라마...? 사실 드라마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은 몰랐지만 예전에 은호 님께서 한 대 맞으시면 죽으신다던가(?), 백호 님께서 먹염룡이시라던가(?),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전부 다 '드라마' 라고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왠지 모르게 스쳐지나갔기 때문에.
"...네,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해요."
아사 님의 말씀에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애초에 자신의 눈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멋지지 않은 게 있었겠느냐마는. 아무튼 따라오라는 아사 님의 목소리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기 시작했다.
목도리 씨, 담요 씨, 가디건 씨, 그리고... ...과일 씨? 어라...? 과일 씨가 왜 여기에...? 정체불명의 과일 모양 물건에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계속 걸어가면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는 멍한 두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반짝반짝였다. 물론 그러다가...
"...아얏!"
...멈춰선 아사 님을 미처 보지 못하고 그대로 살짝 콩, 하고 부딪쳐 버렸지만. 그에 뒤늦게 이마를 문지르며 아사 님께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사과를 전했다. 그리고는 아사 님께서 코바늘 하나를 꺼내어 건네주시자 잠시 그것을 두 눈을 깜빡깜빡이며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쥐어보았다.
"...! 와아, 뭔가 딱 맞는 것 같아요...!"
크기도, 길이도 자신의 손에 딱 알맞았다. 아사 님의 눈썰미는 역시 대단해요...! 신기한 듯이 코바늘을 손에 든 채 이리저리 느린 동작으로 움직여보다가 천천히 아사 님을 바라보았다.
"돗바늘이나 아프간 바늘이나 대바늘 같은 다양한 것이 있긴 하지만.." 나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는 실을 걸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거립니다.
"이걸 잘 쓰게 되면 생활 용품을 만들 수도 있어서. 뭐지. 과일 모양 수세미라던가?" 그런 겸? 이라고 말하면서 그게 정말 마음에 든다면 응. 그걸로 사줄게. 라고 말하려 합니다. 그러고보니 아사가 쓰던 천은 뜨개질의 산물은 아니지만 굉장히 길었으니 천을 짜고도 남은 걸로 아주 얇은 것들만 모아서 웨딩링처럼 레이스 베일을 하나 짰던가.
멍하니 두 눈을 깜빡깜빡이며 아사 님의 말씀을 따라 중얼거렸다. 갑자기 머릿속이 핑핑 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 수많은 바늘 씨들이 있어요...! 헤롱헤롱, 복잡한 머릿속에 눈동자가 빙글빙글 도는 듯한 기분. 그러나 이어서 들려오는 아사 님의 말씀에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생활 용품이요? 과일 모양 수세미...? 아, 혹시 아까 그 딸기 씨 모양을 하고 계시던 그것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여졌다. 아하! 방금 전에 그 물건 씨는 수세미 씨였군요! ...수세미가 뭔지 모른다는 것은 지금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야 아사 님의 말씀에 깜짝 놀라 드물게 곧바로 고개와 손을 도리도리, 황급히 저었으니.
"아, 아뇨! 괜찮아요, 아사 님! 이렇게 함께 와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엄청 감사하고 죄송한 걸요...! 더군다나 이 코바늘 씨는 아사 님께서 직접 골라주신 것이니까... 그러니까... 제가 직접 구입하고 싶어요, 아사 님. ...아사 님의 그 마음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감사해요."
배시시, 작게 웃으면서 아사 님께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그래, 언제까지고 '신' 님들께 도움을 받으며 살 순 없었으니. 그러다가 아사 님의 작은 중얼거림을 듣고는 괜히 자신이 더 신난 듯, 살짝 들뜬 듯한 목소리로 아사 님께 물어보았다.
"...앗, 아사 님께서도 뭔가 다른 물건 씨를 만드시려는 건가요? 감히 제 생각을 말씀 드리자면... 저는 여기까지 함께 오신 김에 아사 님께서도 예쁜 실을 사셨으면 좋겠어요. 아사 님의 마음에 쏙 드시는 실 씨를 말이예요."
아사 님의 설명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느긋한 아사 님의 목소리 덕분일까. 왠지 모르게 덩달아 느긋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세미 씨는 그릇 씨들을 닦을 때 사용되는 것이였군요. 처음 알았어요! 저는 물로만 닦아서..."
애초에 과일 정도밖에 먹지 않는 자신이었으니 수세미가 크게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사 님 덕분에 또 하나 알아가는 것은 역시 기쁜 일이었다. ...역시 아사 님께서는 이것저것 알고 계신 게 많으신 것 같아요. 정말로 대단하세요...!
그러다가 아사 님께서 실을 살 생각이신지 고개를 끄덕이자, 괜히 자신이 살짝 더 들떠서는 희미하게 웃으며 이런저런 실들을 둘러보았다. ...어떤 실 씨가 좋을까요? 아사 님 같은 푸른빛의 실 씨도 예쁜 것 같고, 저 검은빛의 실 씨도 예쁜 것 같고... 으으음...
그러나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야 아사 님께서는 자신의 코바늘 역시 사준다고 말씀해 오셨으니. 그에 잠시 그 말 뜻을 파악하지 못한 듯이 멍하니 두 눈을 깜빡깜빡이다가, 이내 깜짝 놀란 듯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아사 님을 말리려고 했다.
"아, 아니예요, 아사 님! 전 괜ㅊ...!"
오, 이런. 자신의 반응이 너무 느렸기 때문일까? 이미 코바늘은 계산이 되어버렸고, 자연스레 자신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 상황의 흐름을 미처 따라가지 못한 표정은 얼떨떨했고, 결국 침묵과 침묵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코바늘을 품에 소중히 꼬옥 안아든 채 죄송함과 감사함이 섞인 표정으로 아사 님께 인사를 전하는 것 뿐이었다.
"...정말로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아사 님. 언제나 저만 이렇게 도움을 받게 되는 것 같아서... 저도 아사 님을 도와드리고 싶은데..."
...잠시 가온 님의 말씀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보좌. 그러나 차마 그것까지는 입에 담지 못한 채 그저 고민할 뿐이었다.
"...기름기... 그렇군요. 왠지 알 것 같아요. ...네, 저는 보통 과일 씨들만 먹어서... 그렇게 기름기가 있으신 음식 씨들은 잘 안 먹거든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 자신이 원래의 홍학처럼 새우나 물고기 등을 먹거나 육식을 즐겼다거나 한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자신은 식성이 바뀌어버렸으니. 주변의 상황으로 인하여.
아무튼 자신도 모르게 흔들흔들거리는 아사 님의 바보털을 따라서 눈동자를 같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이어지는 아사 님의 말씀에 다시금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금은 시무룩하게 두 날개까지 아래로 추욱 늘어뜨리고는.
"...그, 그래도... 아사 님께서는 언제나 저에게 도움을 주시고 베풀어주시는데 전 아사 님께 드린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고민이 다시금 깊어졌다. 코바늘을 품에 꼬옥 안아든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말씀을... 드려볼까요? 고민하고 갈등하고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사 님께서 지나가듯 하는 말씀을 듣고나서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네에..." 하고 대답하다 뒤늦게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정말로 빠르게, 황급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 아뇨! 괜찮아요, 아사 님! 죄, 죄송합니다...! 저, 그만 아사 님께 보좌가 되어 도와드려도 괜찮으신지, 어쩐지를 고민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서 그만...! 그, 그 비단 실 씨 정말로 예뻐요, 아사 님! 아, 아니면 저 색깔은 어떠신가요?!"
정말로 당황해버렸기 때문일까. 할 말, 안 할 말을 미처 구분하지 못한 채 횡설수설,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허둥지둥, 쩔쩔매며 노란색 빛이 반짝이는 푸른색 실을 가리키는 와중에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듯 했다.
"신이 되면서 식성도 바뀐 거려나. 나도 생각보다 적게 먹더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러다가 드린 게 없다는 말에 바보털이 꾸깃꾸깃해집니다.
"리스는 내가 보답을 바라고 친절을 베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쩐지 그런 답이 나온다면 묘한 기분이 될 것 같다. 란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지만. 갑자기 네에. 라고 하는 것에 흐응.. 하다가 횡설수설하는 리스를 바라봅니다. 보좌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고민은 되긴 합니다. 하지만 나는.. 노동력 착취하는 신이 아닌데.
"노란빛 푸른 실.. 그것도 좋겠다." "그리고... 보좌 건은.. 미안해. 아직은 들일 생각은 없거든. 리스의 제안은 무척 고맙고 능력이 된다면 좋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리스에게 노동력 착취하는 신은 아닐 예정이니까." 어쩌면 사건이라던가 일어난다면, 보좌를 받아들일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단실로는 아주 얇은 레이스를 짜서 베일로 쓸 수 있겠네." 누군가 가장 가까운 이의 색으로 짤 수 있을지도? 라고 넌지시 말하려 합니다.
"...저는 '신' 님이 아니지만... '신' 님의 자비로 다시 태어난 이후에 식성이 조금 바뀌게 되긴 했었답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서..."
살며시 시선을 아래로 떨구어 피하며 말 끝을 흐렸다. 과거를 떠올렸는지,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거리며 말을 아끼다가 이내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아사 님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사 님께서도 소식하신다는 건 왠지 비슷한 것 같아서 신기해요."
조류의 특징인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생각하기도 하다가 아사 님의 바보털이 꾸깃꾸깃해지자 놀란 듯이 커진 두 눈을 깜빡깜빡였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아사 님의 물음. 그에 눈에 띄게 깜짝 놀라며 고개와 두 손을 도리도리 젓는 등, 드물게 선명한 반응을 보였다.
"아, 아니예요, 아사 님!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그냥... 이런 저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신다는 것도 역시 뭔가 말이 안 되지만, 친절을 받았으면 저도 꼭 그만큼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을 뿐이라서... 그, 그게... 그러니까아..."
횡설수설이 깊어졌다. 쩔쩔 매는 모습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얼핏 새어나왔지만, 그것뿐이었다. 애써 아사 님의 색을 닮은 다른 푸른색의 실을 가리키며 화제를 돌리려 노력했으니. 그러나 역시 아사 님께서는 자신의 말을 들으셨던 것일까? 이어지는 아사 님의 대답에는 들켰어요... 하는 부끄러움 반, 감사하다는 마음 반이 섞여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작게 저었다.
"...으응, 아니예요, 아사 님. 저는 괜찮아요. 그냥... 그 정도로 아사 님께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그 마음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저, 꼭 아사 님께 보답해드릴 거니까요!"
그것만큼은 자신도 쉽게 물러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저, 좀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어요. 제가 스스로 아사 님께 도움이 되어드리러 찾아가면, 아사 님께서도 노동력 착취라는 생각을 안 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잠시 생각에 잠기며 그제서야 제대로 비단실을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정말 예뻐요.
"...베일이라는 것은... 얼굴을 가리는, 그런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누군가 가장 가까운 이의 색이라면..."
...아사 님, 혹시 누군가를 생각하시며 베일 씨를 만드시려는 걸까요? 왠지 궁금증이 들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아사 님의 말씀을 조용히 따라서 중얼거려보았다. 친절에는 대가가 필요 없다. ...정말로 그런 걸까요? 정말로, 정말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친절이 존재하는 걸까요? ......저의 '신' 님. 알려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신' 님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 대신 보답이 있으면 기분이 좋겠다는 아사 님의 말씀에 따라 보답을 반드시 해드리겠노라,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할 뿐. ...아사 님의 생각을 알 수 없는 자신으로서는 아사 님의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으니.
"...네, 꼭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어요."
...그것이 자신의 두 번째 삶의 이유.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아사 님을 따라서 실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작게 감탄했다. 반짝반짝, 비단 실은 신기할 정도로 곱고 부드러웠다. 그에 덩달아 멍한 두 눈동자를 반짝반짝이다가 이어지는 아사 님의 말씀에 뒤늦게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제가 만든다면... 으으음... 분홍색도 좋고, 하얀색도 좋고, 검은색도 좋으니까... 아마 여러 개를 만들거나 여러가지 색이 섞여질 것 같아요. 분홍색, 하얀색, 검은색, 그리고... 파란색도요."
마치 무지갯빛의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아사 님의 색도 덧붙여 얘기하며 희미하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아사 님께서는 언제가 여유로우시나요? 저는 아무 때나 괜찮으니까... 아사 님께서 편하신 시간에 맞추어 드리고 싶어요."
"정확하게는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난 대가를 필요로 하지않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에 가까울까? 라는 생각은 말이되지 않고 마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흩어집니다. 꼭 도움이 되고 싶다라는 말을 듣고는
"...언젠가 가능해진다면 우선으로 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어디까지나 가능해진다면. 이라고 하긴 하지만 가능성을 아예 닫지는 않았습니다. 실을 봅니다. 금이랑 은으로 만든 금실과 은실로도 짠다면 예쁘겠지.
"여러개를 만들어도 예쁠 거고, 섞어도 예쁘겠지.." 그것도 좋겠네. 이쪽에는 이 색인데. 저쪽에는 저 색이라던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바보털은 까닥입니다. 언제가 좋을 것 같냐는 것에 음.. 하고 잠깐 고민하다가 사흘 후? 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생각나는 건 아마 사흘 후니까.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역시 아사 님께서는 '신' 님이시기 때문일까요?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니. ...제가 과거에 만나뵈었던 분들은... 대부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과거의 무게는 조금 무거운 침묵이었지만, 이어지는 아사 님의 말씀에 희미한 현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현재...?
"...그랬으면 좋겠어요."
가능성이 닫히지 않았다는 건,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조용히 다짐했다. 자신은 그 희미한 가능성을 잡아 선명하게 만들 것이라고. 가만히 형형색색의 실들을 보는 와중에도 그렇게 다짐했다.
"...네, 여러 가지 색들이 섞이면 더욱 예쁠테니까요. ...스테인드 글라스 씨도, 무지개 씨도 그렇게 색들이 많아서 아름다우시니까요."
라온하제의 '신' 님들 역시 각각의 고유한 색들이 있었기에 더욱 아름다운 법이었다. 그렇게 실들을 보다가 문득 자신의 눈동자 색과도 닮은 노란색과 주황색이 섞인 실에 시선이 닿을 무렵, 아사 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사 님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끄덕여 대답했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네! 그럼... 사흘 후에 찾아뵐게요, 아사 님. 아사 님께서 그 때가 괜찮으시다면... 저, 꼭 열심히 배울게요. ...아사 님께서는 마음에 드는 실 씨가 있으신가요? ...저는... 우선 떠놓았던 스웨터 씨를 완성시킨 다음에 고르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희망이 보인다면 그것을 믿고 붙잡으려 나아가야 했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도 그렇고. ...물론 지금은 '생존'이라는 목표는 아니었지만.
"...네, 정말로 아름다워요."
다채로운 색들은. 서로 색이 다른 이질적인 눈동자가 여러가지 색들을 품어냈다. 어차피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색은 아니었겠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은 다채로우니까요. 모두가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잠시 아사 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아사 님께서는 이내 은빛과도 같우 빛나는 투명한 실을 몇 뭉치 집어들었다. 그 신비한 색을 두 눈을 반짝반짝인 채 바라보며 작게 감탄했다.
"...와아아... 정말로 예뻐요, 아사 님...! 네, 저는 우선 스웨터 씨를 완성한 다음에 다른 것들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자유와 허락은 무척이나 소중하고 기쁜 것이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남으려 버텨내는 삶이 아니었으니. 잠시 생각에 잠겨 짙은 분홍색의 실 뭉치들이 모여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사 님의 말씀에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이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처음 듣는 목소리이기에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없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목소리는 누군가가 나를, 아니..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우리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 다시는 움직일 일이 없을텐데...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 몸은 자유롭게 움직여졌다. 감은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한복판이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그 깊고 깊은 공간 속에 내 몸이 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분명히 나를, 아니..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ㅡ누구지? 당신은?
ㅡ저 말입니까? 저는... 그래요.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찾아온 이입니다.
ㅡ우리가 원하는 것?
ㅡ그래요.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먼 곳에서 온 이입니다. 무서워하지 말고 경계하지 마세요.
ㅡ뜬금없어도 너무 뜬금없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뤄준다니.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그런 말을...
ㅡ믿지 못하겠나요?
ㅡ그럼 믿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우리들의 소망을, 우리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주겠다고 말하는 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생이라는 것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무엇보다 가혹하고 차가운 것. 그것이 바로 삶이자 생이다. 누군지도 모를 이가 나타나서 원하는 것을 이뤄주겠다고 한다면...그걸 믿을 수 있는 이가 세상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ㅡ하지만..실제로 저는 여러분들을 도와주고자 찾아왔습니다. ...정확히는 '신'입니다.
ㅡ신...?!
ㅡ그래요. 신이죠. 당신들에게 있어서 매우 친숙한 단어이지 않습니까?
ㅡ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군. 신이 왜 뜬금없이 우리들을....
ㅡ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죠. 지금 중요한 것은...나는 당신들이 바라는 것을 이루게 해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그리고... 저에게 도움을 청하면, 당신들은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ㅡ.......
ㅡ자. 망설이지 마세요. 생각도 하지 마세요. 당신들은, 그저...원하는 것을 얻으면 될 일입니다. 이제 눈을 뜰 시간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신이라는 작자의 목소리는...나에게, 아니..우리들에게..너무나 달콤하기 그지 없는 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며 나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리고 확인차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되물어보았다.
ㅡ...우리의 소망..정말로 이뤄주는건가?
ㅡ물론이지요. 자...손을 내밀어주시겠습니까?
나를 향해서 뻗은 그 손을...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앞발을 내밀어서 잡았다. 솔직히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신'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우리에게 해는 끼치지 않으리라. 우리의 소망을 들어주겠다고 말을 하는 저 신의 말을 나는...믿어보고 싶었다.
축복의 땅, 라온하제. 그 곳은 즐거운 내일이 가득한 낙원의 땅이다. 겨울의 기운이 가득하지만, 인간계에 비하면 그다지 춥지도 않고 그냥 쌀쌀한 느낌이 전부인 라온하제는 오늘도 즐거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각 지역에 살고 있는 신들은 자신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각자 어떤 하루를 시작하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삶을 살고 있는 신들만 알 일이었다.
라온하제의 중심이자 축복의 힘이 있는 구역인 비나리. 그리고 그곳에 있는 광장에는 오늘도 은호와 누리를 본따서 만든 거대한 얼음 동상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태양빛을 반사하면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비나리의 명소인 '무지개가 피어나는 폭포'는 오늘도 콸콸 쏟아지고 있었고 사방에 아름다운 무지개를 피우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장소에 신들은 모여있었다.
제각각 찾아온 이유는 달랐다. 무지개를 보러 온 이가 있을 수도 있고, 놀러온 이도 있을테고, 그냥 지나가던 도중에 온 이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찾아온 이들에게 가온은 웃으면서 신과를 나눠주고 있었다.
"하하하! 비나리의 명소인 무지개가 피어나는 폭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 자! 신과가 오늘따라 정말 맛있고 크게 열려서 나눠주는 중입니다! 받아가십시오!"
이번에 열린 신과가 정말로 크고 탐스럽게 열린 것일까. 가온이 나눠주는 신과는 정말로 크고 탐스러웠다. 먹어보면 평소보다 단 맛이 더 강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 신과를 나눠주던 가온은 텅 비어있는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아. 신과가 다 떨어진 모양입니다! 하지만 과수원에 가면 더 있으니까 가져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어 가온은 바구니를 가져올 생각인지 근처에 있는 과수원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폭포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무지개를 피우고 있었고, 그 아름다운 풍경은 보통 예쁜 것이 아니었다.
//반응레스를 부탁하겠습니다! 8시 30분까지에요!! 무지개가 피어나는 폭포 부근에서 시간을 보내는 레스를 써주시면 되겠습니다!
이곳은 비나리의 명소인 '무지개가 피어나는 폭포'. 예전에 론과 함께 찾아왔었던 그 즐거운 기억이 남아있었기에 오늘도 이렇게 찾아왔지만, 오늘은 춤을 추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그저 천천히 '신' 님들께 공손히 인사를 하곤 폭포의 물가 근처로 걸어갔을 뿐. 그야 오늘은 같이 춤을 출 론도 없을 뿐더러 다른 '신' 님들이 많으셨으니까.
"...안녕하세요, 가온 님. 신과 씨, 정말로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먹을게요."
희미하게 배시시 웃으며 가온 님께서 주시는 신과를 예의 바르게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자신의 두 손을 꽉 채울 정도로 커다란 신과. 조심스럽게 한 입 깨물어 먹자 평소보다도 더욱 더 달콤한 맛이 강하게 느껴졌고, 그에 자신도 모르게 작게 감탄하며 신과를 반짝반짝거리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맛있어요...!
그러한 신과를 두 손에 든 채 천천히 다가선 폭포의 물가. 오늘은 그 물 속에 발을 담근 채 가만히 앉아서 폭포와 무지개를 멍하니 올려다 볼 뿐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가온 님께서 빠르게 달려가시는 소리를 듣고는 도와드려야 하나,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발목까지 차오른 시원한 물이 느긋하고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가온이 과수원 쪽으로 달려가고 나서 불과 5분도 안 지난 시점이었다. 갑자기 가온이 간 곳과는 정 다른 방향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그것은 명백한 늑대 수인 신이었다. 정확히는 가온과 상당히 비슷한 얼굴형의 남성이었다. 다만 가온과는 다르게 머리카락이 상당히 짧았고, 가온보다는 좀 더 어린 느낌의 얼굴이였으며, 키도 가온보다 좀 더 작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머리색도 가온보다는 좀 연한 색을 띠고 있었다.
"...여기가..."
다른 신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땅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일으켜세운 후에, 방금 가온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곳에 있구나...!"
무슨 의미인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의문의 남성은 가온이 방금 달려간 그 방향을 향해서 천천히 걸어나갔다. 말 그대로 다른 신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느낌이었다. 굳이 더 말하자면 아웃 오브 안중이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묘하게 이상한 느낌이었다. 물론 다른 신들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뭔가 매서운 분위기가 그에게서 풍겨오고 있었다. 뒤이어 그는 발걸음을 멈춘 후에, 폭포 윗쪽을 바라보았다. 뒤이어 그는 그 폭포의 윗쪽으로 올라가려는지, 천천히 발걸음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 폭포 위에는 이 라온하제의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수정이 있었다. 어째서 그 수정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반응레스를 부탁하겠습니다! 8시 50분까지 받을게요!!
>>602 ㅋ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물어뜯고 발로 때리거나 날개로 치면 위험하겠지만...!!
가온과 비슷한 늑대 수인 신... 령은 그를 잠깐동안 응시하다 이내 시선을 돌려버린다. 뭐, 가온과 비슷하게 생긴 게 흥미롭긴 했다만 그 이상의 것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라온하제를 지키는 수정에게로 다가가려 하자 령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어째서 저 수정으로 가려고 하는거지? 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온처럼 생겨먹은 늑대에게로 다가갔다.
"이 폭포 위에는 라온하제의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수정이 있습니다."
그러니 안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령이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말 안에 송곳같은 경계심이 깔려있었다.
가온 님께서 달려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 그 분은... ...가온 님과 같은 늑대 수인 '신' 님...? 그러나 여러모로 가온 님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신' 님의 등장. 인사를 드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있었기에, 천천히 물가에서 나와 일어섰다. 그러나...
"...어...?"
...묘하게 이상한 분위기. 매서운 분위기는 흡사 진짜 늑대와도 같은 느낌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살짝 몸을 움찔해버렸다. 더군다나 저 '신' 님의 시선을 따라가본 끝에 있는 것은... ...라온하제의 결계를 유지하는 수정?
"...앗...!"
'신' 님께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신' 님을 그냥 내버려두어선 안 된다는 직감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분홍빛의 두 날개를 펼쳐내고선 펄력여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재빨리 과수원으로 날아가려 했다. 저 수정을 지키는 의무를 지니신 가온 님을 찾아서, 어떤 낯선 늑대 '신' 님께서 라온하제의 수정 쪽으로 다가가려 하신다는 것을 알리려.
갑작스러운 신의 등장. 그것은 리스나 아사, 그리고 령에게 조금 이질적으로 보인 것일까? 일단 리스는 날개를 펼친 후에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과수원으로 향했다. 하늘을 날아 이동한 것이기에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과수원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과수원에 도착하자 보이는 것은 방금 전 나눠줬던 신과와 비슷한 크기의 신과가 가득 들어있는 바구니를 두 손으로 들어올려 휘파람을 불면서 다시 폭포 쪽으로 향하는 가온의 모습이었다.
여기로 온 리스를 발견한 것인지, 가온은 리스 쪽을 바라보면서 호탕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하하하! 리스 씨!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여기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 혹시 도와줄 일을 찾아서 온 건가요? 하하하.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당장은 도와줄 일은 없습니다. 신과를 옮기는 것은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고, 이것 하나만 옮기면 되니까요!"
폭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턱이 없는 가온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천천히 무지개가 피어나는 폭포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폭포 쪽에 남아있던 아사와 령은 각각 누군지 모를 남성을 경계하듯이 말을 걸었다. 그 둘의 모습을 각각 바라보던 이름 모를 늑대 신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에게는 볼일이 없어. 저 수정이 무슨 수정인지도 알고 있어. 하지만 내 목적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잠시 눈 감아줄 수 없을까? 그리고 내가 누구고 어디에서 왔냐라... 글쎄. '신'들에게 할 이야기는 없어."
그것은 명백히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목소리였다. 대체 누구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아는 것은 오로지 저 말을 한 의문의 늑대 수인 신 뿐이었다.
"...아니면 '신'에게는 뭐든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는거냐? 정 궁금하면, 이 땅에 살고 있는 배신자 늑대 수인 신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떨까?"
명백히 답을 알려줄 이유가 없다는 듯이 차갑게 끊어버리면서, 그는 다시 앞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건 수정을 부수겠다는 뜻이야?" 눈 감아주기는 어려운 일이지 않아? 라고 고개를 갸웃합니다. 눈을 못 감아줄 것도 아니긴 하지만.
"모르니까 물어본 것에 반응이 그러면 가르쳐주고 싶어지지 않잖아." 어쩐지 잘못된 정보를 가르쳐주고 싶어지는 기분입니다. 희미하게 웃는 듯합니다.
"결계 밖에서 뭔 거래라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이쪽이 수정을 부수거나 가져오면 이걸 해 주겠다는 거래증명서라던가. 힘을 건 실질적인 효력이 있는 맹세 같은 건 받아놨어? 라고 무척 당당하게 묻습니다. 솔직히 무슨 이유도 없이 수정을 향해 가겠다는 말을 하는 건 그렇잖아? 가온이를 배신자라고 칭하는 걸 보면 가온이에게 뭔가 원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하필 수정을 향해 간다니.
"가온이에게 원이 있다면 그건 가온이에게 말할 일이지." 그리고 지금 가온이랑 뭔가 연이 있다는 걸 지금 알았으니까 모르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나. 라고 생각하면서 적당히 주위를 보려 합니다.
"저를 닮은 늑대 수인 신이라고요? 그건 둘째치고 결계 수정 쪽이라니! 그게 정말입니까?!"
그 말을 들으면서 가온은 지금 신과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빠르게 폭포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물론 달려가기 전에 리스를 바라보면서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어서 가보자고 이야기를 하면서, 신과는 나중에 옮겨도 되니까 지금은 어서 폭포로 가자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빠르게 폭포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아! 정말로 신과는 지금 옮기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혹시나 리스가 옮길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가온은 잠시 멈춰서서 리스를 바라보며 그렇게 이야기 한 후에 다시 폭포로 향했다.
한편, 폭포 쪽의 분위기는 보통 살벌한 것이 아니었다. 령이 검의 칼날은 이름 모를 늑대 수인 신에게 향해 있었고, 아사는 그 수인 신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말을 전했다. 령도, 아사도 그 늑대 수인 신의 반응을 문제 삼고 있었으며, 특히 아사는 거래증명서나 실질적인 효력이 있는 맹세 같은 것이라도 받아뒀냐고 물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가온의 목소리를 거론하자 의문의 늑대 수인 신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워. 워. 무서워서 살겠나? 이런 무서운 것을 들이밀고 말이야. 하지만 전혀 무섭지 않은데 어쩌지? 야생에서 살다보면 이런 것보다 위험한 것들을 너무 많이 봐서 전혀 무섭지 않거든. 태도가 왜 그 모양이냐고? '신'에게 지킬 예의같은 것은 없거든.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간 '신'들에게 뭣하러 예의를 지켜야하지? 그리고 가온 형님에게 원한이 있다면 가온 형님에게 말을 해라라. 옳은 말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가온 형님을 부르려고 하고 있잖아. 안 그래?"
뒤이어 그는 오른손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그 검을 내리치려는 듯이 팔을 높게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정확하게 가온이 도착했다.
"무엇입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이 목소리. 드디어 납셨어? 배신자 형님."
"......?"
'배신자 형님'. 그 말에 가온은 순간 발걸음을 멈추었고, 자신에게 고개를 돌린 의문의 늑대 신을 바라보았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가온은 순간 몸을 움찔했고, 곧 놀라는 표정을 보였다.
애초에 자신이 이런 걸로 거짓말 할 리는 없었으니. ...'신' 님께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자신의 이 다급함이 다행히 잘 전해진 것일까? 가온 님께서는 이내 신과 바구니를 내려놓고는 폭포 쪽으로 달려가려고 했고, 그 내려놓아진 바구니를 자신이 대신 들려고 하다가...
"...앗, 네...!"
...뒤늦게 반응하며 다시금 두 날개를 펼쳐내었다. 그리고 가온 님과 마찬가지로 다시 폭포 쪽으로 황급히 날아가려고 했다.
그리고 곧이어 도착하게 된 폭포. 너무 빨리, 열심히 날았기 때문인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거칠게 헉, 헉, 하는 소리를 내었지만, 낯선 신 님과 령과 아사가 금방이라도 싸울 듯이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는 듯한 그 모습에 애써 "안 돼요!!" 하고 온 힘을 짜내어 소리쳤다. 그리고는 힘겹게 땅 위에 주저앉듯 내려앉았다. ...다행이다... 아직 늦지 않았나봐요...
그리고 무슨 일인진 잘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는 듯한 가온 님과 낯선 '신' 님의 모습. 잠시 둘을 조금 불안한 듯한 눈빛으로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낯선 '신' 님께 여쭤보았다.
"...저... 혹시 가온 님의 형제 분이신가요...? 배신자라니... 그, 그게 무슨...?"
"배신자라던가 형님이라던가. 어느 쪽이던 설명을 좀 해주길 바라는데" 고개를 갸웃합니다. 아 기왕이면 둘 다 설명을 좀 해줘. 한쪽 말만 들으면 오해가 생기거든. 이라고 말한 다음에 예의를 지킬 것도 없다는 것에
"아 그래. 신에 대한 예의가 없구나. 기대하지는 않은 것이기는 하지만." 신이던 동물이던 예의가 있어야 하는데 넌 없네. 그것뿐이야. 라고 말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원망을 하던 뭘 하던 상관은 없긴 하지. 자기가 뭔갈 듣거나 듣지 않아서 생긴 무언가에 대해서 내가 책임질 건 아니니까.
모두가 모인 자리. 아무래도 화가 상당히 났는지 령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고 살기가 넘쳤다. 그 무렵에 리스의 안된다는 목소리를 짜내면서 그 곳에 착지했다. 지금 이 분위기가 불안한 것일까. 그녀의 눈빛은 상당히 불안해보였다. 뒤이어 아사는 가온과 그 늑대 수인 신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설며응ㄹ 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을 뺏어갔냐고 순수하게 묻는 모습에 늑대 수인 신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마루... 네. 리스 씨가 말씀하신대로, 저 늑대 수인 신의 이름은 마루. 제 동생인 이입니다. 하지만...어째서..?"
"비꼬는 분위기도 질렸고 슬슬 제대로 이야기해볼까? 형. 참고로 말하지만, 나 혼자 온 것이 아니야."
뒤이어 마루라고 불린 이름의 늑대 수인 신은 손을 들어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늑대들이 걸어나왔다. 회색 늑대, 갈색 늑대, 검은 늑대, 하얀 늑대. 참으로 다양한 수의 늑대들이 그 모습을 들어냈고, 그 때문에 가온과 아사, 리스, 령은 늑대들에게 둘러쌓인 형태가 되고 말았다. 수로만 따져도 저쪽은 10마리 이상이었기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너희들도...! 대체 어떻게?! 너희들은 150년 전에..."
"그래. 150년 전에 우린 모두 죽었어. 늑대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모두 죽었지! 형이 신이 되어서 우리들을 버리고 이곳에서 지냈으니 까먹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들은 신이 아니라 늑대였기에 결국 목숨을 다해서 죽었지! 라온하제와 신들에게 왜 해코치를 하려 하냐고? 무엇을 잃었건 알바가 아니라고 했나? 그럼 반대로 말하지! 우리들이야말로 너희 신들이 어떻게 되건 상관없는 일이야! 솔직히 이 땅에는 아무런 흥미도 없어. 저 수정도 알바가 아니야. 그냥 형을 불러오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마루..."
"150년 전, 형은 여기를 지배하는 신..누구였지? 은호였나? 아무튼 그 신에 의해서 신이 되었고... 우리 무리를 저버리고 떠났어. 내가 다음 알파 늑대, 지도자가 되긴 했지만 형에 비하면 힘이 약했기에 우리 무리는 그 후로 꽤나 고생하고 또 고생했어. 하루 아침에 그렇게 힘들어져야만 했던 우리들의 마음을 형이 알거라고 생각해? 한 번씩 내려와서 우리들을 지켜준 것은 있긴 했지. 하지만 그런 것으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는 거야? 신을 선택하고 우리들을 저버린 배신자가!"
"...아니야..."
"솔직히 이렇게 다시 형을 이 신계라는 곳에서 마주할 줄은 몰랐지. 우린 이미 죽었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가 찾아왔어. 그리고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었지. 신으로서의 생명을 말이야! 솔직히..형하고 끝을 본 후에 우린 우리대로 돌아갈 생각이었어. 하지만..역시 신들은.. 너무 제멋대로 아니야? 우리들의 지도자를 빼앗아간 것처럼 말이야. 긴 말은 하지 않겠다! 우리의 요구조건은 하나다! 우리를 배신하고 저버린 너를 포함하여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을 피로 물들이는 것! 각오해라! 배신자!"
뒤이어 그는 휘파람을 크게 불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늑대들이 일제히 으르렁거리면서 더욱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지금의 분위기는 보통 살벌한 것이 아니었다.
령은 참을성 좋게도 마루가 지껄이는 그 모든 말들을 들은 후에야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거네. 화풀이. 자기들을 고생하게 한 이들은 내버려두고 애꿎은 신들을 죽이려 들다니. 이걸 대담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할까? 령이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령이 차가운 검날에 손을 대자 검이 서서히 진검으로 바뀌었다.
"너희가 왜 그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겠군. 저런 덜 떨어진 놈이 알파였으니 당연히 무리 통솔이 엉망이었겠지."
령이 진검으로 마루를 겨누며 말했다. 검을 이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군. 수적으로 밀리는 상황이니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게 낫겠어. 령은 신통술을 이용해 칼날과도 같은 거센 바람을 일으켜 늑대들을 베려고 하였다.
"신이란 이름을 가진 우리들이 그리도 우습게 보였더냐? 감히 신성한 땅, 라온하제를 침범해 이곳을 피로 물들이려 하다니 내 네가 괘씸해 도저히 그냥 보낼 수 없구나. 네 죄를 이곳에 온 짐승놈들의 피로 사하라."
불안한 목소리로 따라서 중얼거렸다. 가온 님의 동생, 마루 님. 그, 그런데 가온 님의 무리 씨들은 전부 눈을 감으신 것이 아니었...
"!! 히익...!"
그러나 생각이 미처 이어지기도 전, 마루 님의 휘파람에 맞추어 여기저기서 늑대들이 걸어나오자 작게 비명을 지르며 양팔을 교차해 끌어안고는 온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대로 포위 당한 상황. 끔찍한 생각이, 죽음이 다시 같이 춤을 추자며 유혹해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마치 환각처럼, 생생히. ...이건... 환각? 현실?
...아니, 아니예요... 이, 이건 아니야... 이건 현실이 아니예요... 그, 그렇잖아요...? 금방이라도 그대로 목덜미가 물려 죽을 것만 같았다. 덜덜덜, 움츠린 작은 몸이 안 그래도 더욱 작아보였다. 애써 정신을 붙잡으려 노력하며, 이어지는 마루 님의 목소리를 힘겹게 들었다.
"......"
한 마디로, 저들은 '신' 님들을 증오하고, 자신들을 내버려둔 채 '신' 님이 된 가온 님을 배신자라 생각하며 원망한다는 것.
"...하, 하지만 가온 님께서는...! 꺄악...!"
가온 님의 늑대 무리들의 무덤 앞에서 이미 가온 님의 죄책감을 보고 들은 자신으로서는 그것이 오해라는 것을, '신' 님들께서는 나쁜 분들이 아님을 해명하고 알려드려야만 했다. 그러나 늑대들이 으르렁거리며 위협해오자 동물적인 본능으로 두려움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향기가 짙어졌다.
...저, 이렇게 또 죽게 되는 걸까요...? 이번엔... 이번에는... 이런 식의 '죽음'은 더이상 싫었다. 원하지 않았다. ...저의 '신' 님, 제발 저에게 힘을 주세요...!
"...가온 님께서는 여러분들께 언제나 죄책감을 안고서 지금까지 살아오셨어요...! '신' 님이 되신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 수없이 긴 시간들을요! 언제나 가장 좋은 신과 씨들을 무덤 앞에 바치며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셨어요! '신' 님들은... '신' 님들은 나쁘시지 않아요...! 은호 님께서도 죽어가시는 가온 님을 되살려주셨던 것 뿐이셨어요...!"
두려움에 눈물이 새어나왔다. 그렇지만 눈물을 뚝, 뚝, 흘리면서도 애써 힘을, 용기를 짜내어 마루 님을 올려다보았다. '죽음'의 앞에서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도하듯.
"마루 님! 제발, 제발, 잠시만...! 잠시만 가온 님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형제의 목소리에 제발 딱 한 번만 귀를 기울여 들어주세요...!"
"그래서? 그게 끝이야?" 겨우 신계 한 지역을 피로 물들이는 게 끝이야? 물들일 거면 좀 많이 하던가. 신이 제멋대로라고는 하지만. 그쪽도 제멋대로이긴 제멋대로네. 라고 생각합니다.
"난 또 신계 전체를 피로 물들이겠다라던가 하는 원대한 포부가 있거나 신에게 피해를 받아서 정당한 복수심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그냥 신이 되어 떠난 것 뿐." 딱히 고저는 존재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평상시랑 비슷한 목소리를 내려 합니다.
"늑대 무리가 힘들어지고 고생했다?" "배부른 소리 하기는." 그 신의 도움 하나 받지 못하고 우두머리가 사냥당하거나 사고로 죽거나 아니면 세대교체에 실패해 사라진 클랜이 무수히 많은데 그런 클랜들에게나 신이 나타나서 몇 번이나 도움받았다고 말해보지 그래?
"그리고 너희는 신에 대한 예의는 문제삼지는 않지만 그냥 동물이라도 들을 자세가 안 된 것 같아." 이런 식이라면 뭐라고 말해도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은데. 들을 준비도 안 된 이들에게 뭐라 말해봤자 소용은 없지. 뭐라고 말해도 변명이라고 생각할 거 아니야?
"그러면 너네에게 신으로서의 생명을 준 건 누군데?" 출처 모를 힘으로 뭔가 일으키겠다니. 무슨 뭣도 모르고 약초 뜯어먹는 애 같은 건가? 출처 모를 힘이라는 건 언제 거두어져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거두어지면 또 신을 원망할거야? 너희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라는 생각을 하면서 느긋하게 늑대들을 바라봅니다.
"가온아. 내가 좀 많이 대놓고 말하기는 하는데. 네가 신이 될 때에는 어땠어?" 솔직히 너나 쟤나 말하는 말이 다를 것 같기는 하지만 저런 배가 불러서 반찬투정하는 애보다는 네 말이 더 믿을만하겠지.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다? 그래서 뭐! 결국 우리들을 버리고 가버린 것은 마찬가지야!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가족들보다 '신'이라는 것들을 택한 것은 매한가지야! 가족을 저버리고 떠나버린 것은 다를바 없는 사실이야! 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뭐가 달라지지?! 결국 결과는 변하지 않아! 그리고 네가 뭘 알아! '신'으로 살아온 너희 '신' 따위가 뭘 안다는거냐! 아무런 고생도 하지 않고 살아온 너희들 따위가..!! 그리고..신..? 누가 신이냐.."
리스와 아사의 말에 마루가 반박을 하는 순간, 칼날과 같은 바람이 그곳에 불어닥쳤다. 분명히 그것은 마루를 포함해서 다른 늑대들을 흽쓸었지만 바람이 불어닥칠 때도, 그리고 사라질 때도, 그들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남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상처가 나긴 했지만 그 상처는 온데간데 없이 깔끔하게 즉각적으로 회복이 되었다.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것은 푸른색 빛이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신통술이었다.
"우리들은 한 번 죽어서 사라졌던 이들. 이제와서 죽음이라는 결과값은 나오지 않아. 우리들은 신이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살아있는 시체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는걸? 일단은 살아있지만 말이야. 하지만 산 것이 산 것이 아니지. 이렇게 되어서라도 만나고 싶었어. 형을 말이지! 우리를 배신한 형을 말이야!"
"아니야!! 나는..150년 전, 먹이를 구하러 가다가..절벽에서 떨어졌어. 그때... 은호님이 나에게 신으로서의 힘을 부여해서..나를 신으로 만들어줬지. ...물론 너희들을 떠나야 하긴 했지만.. 그것은...신이었기에 그곳에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야! 신이 무리에 붙어있으면...그건 자연의 균형이 깨지게 돼! 신이 개입할 수 없는 문제야!"
"....그깟 자연의 균형이 뭔데! 그런 것이..우리 가족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야?!"
마루는 전혀 가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어떤 말을 해도 절대로 듣지 않겠다는 듯이 강하게 화를 내던 그는 오른손에서 늑대 발톱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대로 돌진해서 단번에 가온의 몸에 찔러넣었다.
"......!"
가온은 피하지 않았다. 마치 일부로 맞은 것처럼 전혀 피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뚝뚝 땅으로 떨어졌고, 그대로 가온은 한쪽 무릎을 꿇고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루는 피식 웃으면서 손을 빼냈다.
"...피하지 않았어? 신이 되고 나서 몸이 많이 둔해졌군. 형."
"...나는....미안해...마루.. ...그래.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차라리..이게.."
"흥. 미안하다고 끝날 일이라고 생각해? ...읏..!"
순간적으로 마루는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머리가 아픈지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잡기 시작했고 그와 비슷하게 다른 늑대들도 뭔가 움찔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ㅡ...뭐..좋습니다.. 후퇴하도록 하세요. 일단은...
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는 상당히 낯이 익은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조용히 울리는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청호'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루는 더욱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잡았고 이를 악물었다.
"...혀..엉... 큭..! 모두 물러서! 이곳에서 빠져나간다!"
그와 비슷한 타이밍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가온은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직 목숨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예요! 그게 아니예요! 달라져요! 마루 님의 오해가 풀리고, 마루 님의 마음도 편안해지실 거예요! 애초에 전 '신' 님도 아니예요! '신' 님으로서 살아온 적도 없고, 고생하지 않고 살아온 것도 아니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절박하게 마루 님께 외쳤지만, 역시 자신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던 것일까? 절망감에 잠시 숨을 멈춘 그 순간, 령의 날카로운 바람이 늑대들을 공격했다. 그에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덜덜, 온 몸을 떨었다. 그러나 아무도 죽지 않았다. 상처 역시 금방 회복되어 버렸다.
살아있는 시체. 그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한 채 애써, 그래, 정말로 애써 정신을 붙잡고 있던 와중, 가온 님께 달려드는 마루 님의 늑대 발톱...?
"...!! 가온 님, 조심하ㅅ...!"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이미 마루 님의 늑대 발톱은 가온 님의 몸을 찔렀으니. 아니, 어차피 늦지 않았어도 소용 없었을 것이었다. ...가온 님께서는 그것을 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으니까.
...가, 가온 님... '신' 님께서... '신' 님께서... 덜덜덜, 온 몸이 떨리는 것이 더욱 심해졌다. 뚝, 뚝, 눈물이 더욱더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냐, 아냐... 아닐 거예요... 이건, 현실이... 두 손으로 입가를 틀어막았다. '죽음'. '죽음'. 손짓하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마루 님과 늑대들이 갑자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것은... ...청호 님의 목소리...? 후퇴 명령. 그리고 앞으로 쓰러지는 가온 님. 그것을 보자마자 마루 님을 쫓아가기보다는 우선 가온 님께로 먼저 달려갔다.
가온이 쓰러져버리자 리스는 눈물을 흘리면서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뒤이어 그녀는 가온의 상처 부위에 손을 올려서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무의식 중에 발동시킨 신통술은 가온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가온의 숨소리가 안정되게 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와는 별개로 아사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늑대 무리들에게 말을 전했다. 하지만 마루가 이끄는 늑대 무리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재빠르게 후퇴하듯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한 마리만은 그곳에 남아있었다. 아무튼 머지 않아 그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상당히 조용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청호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던 늑대들을 통해서 개입이라도 한 것일까. 자신이 직접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기에 남아있는 늑대를 통해서 그곳에 개입하고 있는 것일까?
ㅡ바로 상처를 회복했습니까? 조금 아쉽군요. 그 상태로 목숨이 끊어졌으면 좋았을텐데. 참으로 재밌지 않습니까? 동생이 목숨을 위협하는 지금 이 사태 말입니다. ...하긴,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요. 가족이 아니라 신을 택한 냉정한 형에게 말입니다. ...참으로 재미난 일이로군요. 이 상황. 이곳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안타까울 나름입니다.
그것은 명백한 도발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가온은 고개를 겨우 들어올려서 늑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어 이야기했다.
"...무슨...짓을...한거냐...청호..."
ㅡ...무슨 짓이라니. 저는 그저, 당신의 동생, 그리고 당신의 무리였던 이들에게 그 분.. 적호님이 주신 고위신의 힘을 조금 부여해서 그들에게 목숨을 준 것 뿐입니다. ...물론 죽은 이는 신이 될 수 없기에... 그들은 신이라기보다는, 그저 살아있는 시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신통술도 사용할 수 없지요. 하지만 그건 조금 위험하기에.. 저의 신통술을 조금 남겨둬서 다치거나 할 때 저절로 회복하게는 해뒀습니다.
"....목숨...이라고..?"
ㅡ네. 목숨입니다. ...당신의 동생, 당신의 무리였던 이들. 그 모두가 이제는 당신의 적이로군요. 당신을 원망하고 당신을 증오하고 당신을 미워합니다. 모든 것은 당신의 업이지요. 당신이 내린 선택이 지금 이 결과를 가지고 온 겁니다. ...자. 당신의 동생과 당신의 무리가 당신에게 품고 있는 증오와 원망. 그 모든 것을 느끼십시오. 하하하.
이내 청호의 목소리는 흐릿하게 사라져버렸고 남아있던 늑대도 뒤로 돌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말 그대로 그곳에 남은 것은 그들 뿐이었다. 이내 가온은 숨을 몰아쉬면서..천천히 숨을 몰아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땅을 바라보면서, 이를 꽉 악물었다.
"...나는...나는...그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는 더욱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그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무언가는 땅을 향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반응레스를 부탁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자 마지막 진행입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령은 아직도 화가 다 풀리지 않았는지 검을 꽈악 잡고 있었다. 감히 시체 따위를 보내서 라온하제를 피범벅으로 만들려 하다니... 령은 잠깐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이내 진정한 듯 검을 검집 안에 넣었다. 앞으로 그것들이 무얼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대비할 필요는 있어보였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인지하지는 못 했지만, 일단 어떻게든 치료가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온 님의 숨소리가 점차 안정되어갔고, 상처 역시 천천히 아물어가고 있었으니. 물론 그렇게 치료를 하는 와중에도 울면서 은호 님께 도움을 청하느라 제대로 눈치채진 못했지만.
그러다 청호 님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자 원망 어린 눈동자로 눈물을 뚝, 뚝, 흘리며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명백히 비꼬는 도발의 목소리. ...늑대 씨에게, 그것도 이미 죽어버리신 무리이자 가족이었던 분들을 일부러 꼭두각시처럼 이용하다니... 청호 님은 더이상 청호 님이 아니었다. 적호와 같은, '청호'일 뿐. ...당신은... 당신은 '신' 님이 아니야.
"......"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죽음을 희롱하고 같우 무리이자 가족들을 제멋대로 갖고 노는 청호의 목소리. ...미움과 원망은 눈물이 되어 뚝, 뚝, 떨어졌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가온 님을 바라보았다. 가온 님의 얼굴에서는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피가 아니었다. 그러니 자신이 다시 치료해드릴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그 감정에 같이 공감하고 슬퍼하며, 위로하듯 가온 님의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토닥일 뿐. 슬픈 눈빛이 가득했다.
"가온아. 퍼랭이가 증오와 원망이라고 하긴 했는데. 살아있는..아니. 그건 결론이지. 시체에다가 새로운 목숨을 줬을 때 아무 짓도 안 했다는 확신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무표정합니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원망한다고 해도 말을 안 들어먹는 증오와 원망은 무시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저런 애. 갑자기 무시하고 차갑게 대하면 당황하지 않을까나? 뭐 염치도 없는 애들이로군요. 몇 번 보호해 준 것으로도 감사할 줄 알아야지. 라던가 경멸의 독설 내뱉고는 다시는 얼굴 볼 일도 없을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것들에게 뭐라 말해봤자 들어먹지도 않을 테니. 그냥 신통술이 고갈될 때까지 시위해보십시오. 라고 하며 돌아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라고 말했지만 농담은 아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고. 라고 덧붙입니다.
"걔네 논리대로라면 가온이가 그 때 죽었으면 더 나았다는 거야?" 더 나았다면 어떤 식으로 더 나았을 건데? 신이 되어서 승계가 잘 이루어졌으니 이게 나은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라진 쪽을 봅니다. 그건 질문해야지.
//아사: 그런 애들은 무시하고 차갑게 대하면 몸이 달아서 뭐라뭐라 말하려 할 것 같기도? 아사주: ....너 참..
>>661 뭔가 신체적 행동-령, 언어적 질문-아사, 감정 공감 및 보조 행동-리스 이런 느낌이라서요? 일단 리스도 공감 가는 부분이 많기도 했고... 그리고... 눈치채셨군요.ㅋㅋㅋㅋ 네, 결국 청호도 떨어졌습니다. 죽은 이를 가지고 놀음+가족을 건듬+'신' 님을 공격함 = '신' 님 아니야! 입니다. :)(???)
>>68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외로 청호 배우는 정말로 감수성이 뛰어난 배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맛있는 것을 먹으면 풀리게 되겠죠! 그리고..악역다운 악역이라..!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이에요! 얘네는 알고보니 얘들도 불쌍한 애였어...라는 그런 것이 없는 애들이랍니다!
아무튼 어제 모텔에서 잘 때... 여러 번 자다가 깨서 그런지..슬슬 몸에서 반응이 오는군요..! 아무래도 빨리 일어나야 해서..잠을 깊게 자질 못했어요..흑흑... 3시에 한 번 깨고, 5시에 한 번 깨고, 6시 30분에 한 번 깨고, 7시에 한 번 깨고, 7시 15분에 한 번 깨고...
타이머를 7시 30분에 맞추면 뭐합니까...결국 7시 15분에 깨어나서 준비했습니다. (??
>>709 수면유지가 잘 안 되는 건 불면증만큼이나 정말 피곤하죠. 저도 2시 반에 누웠는데 3시에 깨고 4시에 깨고 5시 반에 깨고 6시 반에 깨고 그런 적이 많아서...(끄덕) 마음이나 정신 상태가 좋지 않을 때 그러더라구요. 그러니 오늘은 일찍 주무세요, 스레주. 피곤하실테니까요.
음..음.. 물론 그렇긴 한데..매번은 아니더라도..개운하게 자고 싶을 때...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생각해요..그리고 저야... 이제 막 엄청 빨리 일어나야하고 그런 것은 없으니까..아마 잠은 푹 잘 거라고 생각해요. 어제는 자면서도..혹시 늦잠 자서 시험 못 치면 어떡하지..이러면서 되게 불안해하면서 잤거든요.
>>716 뭐... 이미 수면 패턴은 반쯤 포기한지라. 전 괜찮습니다, 네. 그리고...역시 그 불안한 마음과 긴장되는 정신이 수면 유지 장애를 일시적으로 가져왔나보네요. 이제는 시험도 끝났겠다, 모든 것들을 즐기며 노시는 일만 남았잖아요? 그러니 이젠 잘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
ㅋㅋㅋㅋㅋㅋ 물론 조금 쉬긴 할 거지만..... 아무튼... 여러모로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어요. 자고 일어났는데 시험 시간 지나가면 얄짤없이 바로 실격처리거든요. 이번에도 준수사항 안 지켜서 퇴실처리된 이들도 꽤 있었고...! 아무튼..잘 잘 수 있습니다..!!
흑흑...감사합니다..!! 8ㅅ8 시험장소 근처에서 자기는 했는데 이동하는 거리도 있고 그렇다보니..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아침도 시험지 정말로 바로 앞까지 가서 거기 근처 식당에 들어가서 먹고...아침에 정말 분주했습니다...! (끄덕) 판타스틱했지요! 아무튼...제 몸이 어서 저에게 자라고 명령을 내리니...저도 자러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리스주!
비나리의 명소, 무지개가 피어나는 폭포에서 일어난 일은 리스가 텔레파시로 은호에게 알렸기에 은호와 누리, 그리고 백호도 사태를 파악하고 폭포까지 찾아왔다. 일단 간단하게 일어난 일을 들은 은호는 이상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상하도다. 이 라온하제에는 남을 해치고자는 마음이 있는 이는 들어오지 못하느니라. 그것은 신이건 다른 무엇이건 상관이 없느니라. 그런데..어찌하여 그런 이들이 이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단 말이더냐."
"결계에 구멍이 뚫린 곳이 있는 것이 아닐까? 엄마?"
"그럴리가 없느니라. 그럼 내가 모를 턱이 없고, 더 나아가 가온이가 모를 턱이 없느니라."
그것은 틀림없이 맞는 말이엇다. 결계를 만드는 수정과 연결이 되어있는 가온은 물론이고, 결계를 직접 만든 은호가 결계에 이상이 생겼다면 모를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가온이를 해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은 어떻게 결계 안으로 들어온 것일까. 원래라면 결계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억지로 들어오려고 하면 소멸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마루....나는..."
"아아. 가온아. 말 들리니? 여보세요? 하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가온을 바라보면서 백호는 그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가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 일이 상당히 충격이었던 것일까?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은호는 한숨을 내쉬면서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아무튼 다들 수고가 많았느니라. 다치지 않아서 큰 다행이 아닐 수가 없구나. 일단 가온이는 다친 것 같지만...누군가 치료를 해준 모양이구나. 이 또한 정말로 다행이로다."
다행히 텔레파시 신통력이 제대로 통했는지 은호 님에 이어 누리 님과 백호 님께서도 폭포까지 찾아와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문점들. '신' 님들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그저 아직도 두려움에 뚝, 뚝, 떨어지는 눈물을 애써 훌쩍이며 흰 겉옷의 소매로 닦았다. ...그런 일은, 다시는 겪지 않을 거라고 믿었었는데...
역시 '죽음'은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라온하제의 결계에 대한 생각과 동시에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도, 마음속도 온통 뒤숭숭했다. 그렇지만... 역시 지금 가장 충격을 받으신 건 가온 님이시겠지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가온 님을 잠시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가족이 나를 공격하고 증오하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튼 이어지는 은호 님의 말씀. 다행이라는 그 말씀에 아무 생각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는 몰라도 애증이라도 된 거 아니야?" 아니면 그냥 묻고만 싶었는데 어딘가 삐끗해서 악의나 해치고 싶은 것..까지는 아니지만 원망으로 치달았다거나. 대수롭잖게 말하면서 개인적으론 청..청.. 아 그래 파랭이가 어딘가 감정을 좀 툭 건드렸다는 거가 가능성 높다고 생각해- 라고 말하려 합니다.
"가온아. 그래서 마주하면 죽어줄 거야?" 죽길 원하는 게 맞는지부터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며 눈을 깜박깜박하는 모양입니다.
"응 다행이야. 본의 아니게 사정을 알아버리기는 했지만." 고개를 끄덕입니다. 가족에게 공격이라.. 글쎄. 당한 적 있을까?
눈물을 훌쩍이는 리스를 바라보던 누리는 리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하였다. 한편 그와는 별개로 은호는 다른 두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뒤이어 리스의 말에도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은호는 침묵을 지켰다.
한편, 가온은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말을 한 아사를 바라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만약, 마루가..그리고 저의 무리들이 저를 원망하고 제가 죽기를 원한다면..그래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원한을 씻어줄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슨 바보같은 소릴 하는 거야! 가온아!! 그런 약한 마음 먹으라고 너에게 자리 물려준 거 아니거든?!"
"하지만...."
백호의 질책에도 가온은 정말로 죄책감이 큰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호 역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생각이 끝난 것일까. 아니면 일단 입을 연 것일까.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녀는 모두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입을 열어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손에는 투명한 구체가 들려져있었다. 이어 그녀는 힘을 준 후에 그것을 터트려버리면서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어쩌면 좋을지는 간단하지 않겠느냐. ...그 늑대들을 일제히 토벌하겠느니라. ...영원히 그 혼 조각도 남지 않도록 없애버리겠느니라. 내 땅에 들어와 내 보좌를 건드린 죄는 매우 크니 내 직접 심판하리라. 아이온. 너의 말에 일리가 있긴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느니라. 어느 쪽이건 없애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니라."
"...아..안됩니다! 은호님..!!"
그와 동시에 가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은호를 바라보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정말로 빠르게 이야기했다. 그것은 절대로 안된다는 마음이 담긴 필사적인 목소리였다.
"안됩니다! 차라리..제가...제가..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마루와 저의 무리는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너의 말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느냐?"
"제발...한번만...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그 애들이 소멸한다는 것은... 그러니까...그러니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가온의 목소리는 보통 다급한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절실한 마음이 가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령은 울고 있는 리스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손수건 한장을 건네어 주었다. 흰색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손수건에는 한쪽 귀퉁이에 한자로 방울 령 자가 새겨져 있기만 했다. 령은 손수건을 건내주고 가만히 그들의 말을 들었다. 자책하는 가온, 리스를 달래주는 누리, 그들을 토벌하겠다는 은호... 령은 잠시 눈을 깜박였다 다시 떴다. 그리고 앞으로 한발짝 나가 가온을 바라보았다. 령의 표정이 단호했다.
"가온 씨. 가온 씨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일은 가온 씨의 잘못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가온 씨 대신 무리의 알파늑대가 된 마루인지 뭔지 하는 늑대가 제대로 통솔만 했어도 무리의 늑대들이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되살아나고 청호의 말에 이용당해 형이 사는 곳까지 와서 닥치는대로 해치려 하다니 이 무슨 민폐입니까? 그리고 가온 씨, 우리는 신입니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합니다. 죽은 자는 원래대로 흙 속에 돌아가야 합니다. 게다가 그들이 또 다시 여기로 온다면 가온 씨만 피해를 입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타겟은 가온 씨였지만 나아가 비나리 전체를 해칠 마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것을 그대로 보아야만 합니까? 전 그 꼴 못 봅니다. 내가 사는 라온하제는 내 손으로 지켜야겠습니다. 가온 씨의 동생이라고 해서 제가 봐줄 의무는 없습니다. 가온 씨는 대화로 풀자고 했지만 상대는 지금 우리의 말을 들을 준비조차 안됐습니다. 저는 대화를 하지 않겠습니다."
령은 단호히 말을 하였다. 발음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가온을 갈기갈기 찢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정말로 감사해요, 누리 님, 령... 저, 또다시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워서..."
작게 훌쩍이면서도 의외로 누리 님과 령의 손수건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다정한 둘의 마음 덕분에 눈물이 천천히 그쳐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거운 토론. 가온 님께서는 이미 죄책감에 온 마음이 물든 것인지 아예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고, 그 대답에 다시금 조금 가라앉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죽음'. 그것도 '신' 님의 죽음. 가족들의 손에 의하여, 그들의 바람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슬펐다. 너무나도 공감이 갔기에, 마음이 너무나도 아파왔다. ...어째서... 어째서......
이어서 은호 님께서 천천히 입을 열어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다. 은호 님의 손에 의하여 부숴져버린 투명한 구체. 그리고 들려오는 그 말씀에, 가온 님처럼 자신 역시도 깜짝 놀라 두 눈동자를 크게 뜬 채 두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다급하고 필사적인 가온 님의 목소리. 그러나 은호 님께서는 이미 단단히 결심을 하신 듯 했고, 그러한 은호 님의 모습에 자신 역시도 덩달아 다급하게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은호 님을 올려다보았다.
"은호 님...! 저도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제발, 제발, 늑대 씨들을 죽이지 말아주세요...! 부디 가온 님께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저도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은호 님! 그 분들은 가온 님의 가족 분들이신걸요...! 어, 어떻게든... 저도 어떻게든 라온하제를 지키고 막을테니까... 제발... 가족들을 죽이지 말아주세요..."
결국 다시 눈물이 뚝,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울먹이면서 말해보지만, 과연 닿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은호 님의 결정과 령의 단호한 분노 역시도 전부 다 이해할 수 있었으니. ...하, 하지만... 가족들은... 가족들은... ...라온하제도, 늑대들도, 그 누구도 피투성이가 되지 않기를 바랬다. ...피투성이는 자신으로도 충분했으니.
"은호님 의견에도 동의하긴 하지만 내 의견은 대화를 한 번쯤은 더 가능할지도. 물론 말을 안 들으면 말 좀 들어라고 좀 폭행을 가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걸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한번쯤은 가능할지도. 라고 말합니다.
"제멋대로라고 평했으니까. 쟤네도 조금 폭행한다고 해서 원망하지는 않겠지." "어쩐지 그냥 소멸시키는 것도 저 파랭이의 의도에 말리는 것 같단 말이지." 나쁜 애가 착한 일 한 번 하는 건 그래도 착하구나. 인데. 착한 애가 나빠보이는 일 한 번 하는 게 더 타격이 크다잖아? 란 생각도 합니다.
"물론 쟤네가 하려고 한 짓은 소멸해도 마땅한 일이긴 한데.." "그치만 모르고 소멸하는 것도 안됐잖아." 소멸해도 진의를 알고 끝없이 후회해야지. 따옴표 없는 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가온이와 리스에게 손을 내미려는 표정이 묘하게 온화했습니다.
령은 가온이를 혼내듯이 이야기를 했고 리스는 가온과 함께 은호에게 한 번만 더 부탁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사는 중간에서 타협을 하듯이 일단 이야기를 한 후에 말을 안 들으면 그때 토벌해도 좋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나름대로 그 모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호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냥 토벌해버리고 싶지만, 령의 말에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일단 기회를 달라는 말을 했으니, 기회를 주겠느니라. 하지만 만약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는 토벌을 하겠느니라. 이것은 라온하제의 안전을 위한 것이니 더 말을 하지 말도록 하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은 가온도 확실하게 인지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만약 안되면 자신의 손으로 끝을 보겠다고 이야기하는 그 모습은 보통 단호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이는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온이 자신의 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다는 것을... 보통 흔들리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일단 난 돌아가보겠느니라. ...하지만 지켜보겠느니라. 가온아."
"...가온아..."
은호는 그 말을 남기고서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고 누리와 백호는 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아무튼 이어 가온은 자리에서 제대로 일어섰고 저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비나리의 결계 밖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곳으로 천천히 나아가려고 했다.
"...가온아! 어디에 가는 거야?"
누리가 황급하게 부르자 가온은 잠시 멈춰선 후에, 뒤로 돌아서 누리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그들이 다시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결판을 짓겠습니다. 그러니까..위험하니 따라오면 안됩니다. 누리님."
그 목소리는 보통 단호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결판을 내려는 것일까..그 목소리는 참으로 진지하고 참으로 무거운 무게감이 가득 느껴지고 있었다.
결국 이야기를 해보는 쪽으로 바뀐 건가? 령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새였다. 내키지 않았다. 저렇게 남 탓만 잔뜩 하고 무리를 죽음에 휘말리게 한 자가 어떤 말로를 걷는지는 오백년을 허투루 산 게 아닌 령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신들이, 특히 리스가 저리 간곡하게 부탁하니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혼자 가실 겁니까?"
령은 결계 밖을 나서려 하는 가온을 바라보며 물었다. 위험하다. 가온을 혼자 내보낼 순 없다. 아까 그것들이 한 행동을 보지 않았는가? 가온이 죽게 내버려둘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령은 가온에게 자가갔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였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당신의 동생이 당신께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시면서도 혼자 가시려 합니까?"
...아, 정말로 다행이예요. 아사 님께서도 중재하듯 의견을 내주신 덕분에 은호 님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신 듯 싶었다. 온화하게 손을 내밀어주시는 아사 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희미한 미소와 함께 덧붙이며 조심스럽게 그 손 위에 자신의 두 손을 올려놓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뀐 의견을 받아준 령에게도 그제야 희미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전하며.
그리고 이내 은호 님한테서 마지막 기회를 받은 가온 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입술을 꽉 깨물고,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는 가온 님을. ...여전히 슬프고 복잡한 눈빛으로 가온 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사라지는 은호 님께 공손히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가온 님...?"
자리에서 일어나곤 비나리의 결계 밖으로 천천히 나아가려는 듯한 가온 님. 그에 조금 놀란 듯이 커진 두 눈동자로 가온 님을 바라보다, 누리 님의 걱정에도 그저 진지하고 단호하게 따라오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
...그렇지만... '신' 님께서 혼자 위험하시게 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죽음'도 각오하셨던 가온 님이 아니었던가. ...아무도... 아무도 죽게 할 순 없어요. 더구나 자신 역시도 마찬가지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자신 역시도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었다.
"...저도 같이 갈게요, 가온 님. 은호 님께 기회를 달라고 저도 부탁드렸었으니까...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가온 님. ...늑대 씨들을... 가족들을, 괴롭게 할 순 없어요.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록 별 도움이 안 될 자신일지도 몰랐지만, 그 진심만큼은 가득했다. 그렇기에... 천천히 가온 님께서 향하시려는 쪽으로 자신 역시도 다가가려 했다. 애써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어. '죽음'을 마주해보자.
가온이 결계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령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혼자 가겠냐는 물음과 함께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그녀는 가온에게 어떻게 혼자 가려고 하냐고 말했다. 뒤이어 리스가 자신도 같이 가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아사 역시 혼자 보내면 걱정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가온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누리와 백호 역시 뒤이어 이야기를 했다.
"그래! 가온아! 혼자서는 위험해! 그러다가 정말로 죽으면 어떡해?"
"너, 괜히 잘못되어서 내가 다시 일하게 하려는 거지? 싫어! 나는 먹을 거 먹으면서 보내고 싶단 말이야! 그러니까 나도 가겠어!"
"......."
모두가 다 가겠다는 의견을 내자 가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서, 조용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그곳에 불며 모두를 스쳐지나갔다. 겨울의 기운이 흐르는 비나리는 오늘따라 정말로 매섭고 추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렇게 말한다면...제가 혼자 간다고 해도 쫓아오시겠지요. 누리님을 포함해서 백호 선배도, 령 씨도, 리스 씨도, 아이온 씨도... 그렇다면 같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부디, 부디.. 제 손으로 결말을 낼 수 있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타협을 하면서 가온은 모두에게 부탁했다. 뒤이어 그는 다시 앞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곳은 결계 밖으로 나가는 길목이었다. 그 길목을 걸어가면서 누리는 조용히 입을 열어 이야기했다.
"...하지만 역시 엄마가 말한 것이 신경 쓰여. 가온이를 정말로 해칠 생각이라고 한다면... 이곳에는 들어오지 못 해. 이 결계는 누군가를 해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이는 들어올 수 없는걸. ...정말로...정말로 그 늑대들은 가온이를 해치려고 한 것이 맞아?"
"저도 그게 신경이 쓰이네요. 누리님. ...저기..모두들 정말로 그랬어?"
아무래도 그 상황을 직접 보지 못한 누리와 백호는 조금 정확히 알고 싶었는지 모두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정말로..어떻게 된 것일까. 그것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자...다시 나온 이 문제...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10시까지 받겠습니다!
결국 모든 '신' 님들께서 다같이 가온 님과 동행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에 두려움으로 가득찼던 마음이 한결 든든해지는 것이 느껴져, 작게 미소를 지었다. ...'신' 님들께서 함께. 결코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저의 '신' 님. 부디 저희들을 굽어살피시어 가호를 내려주세요.
"...네, 물론이예요. 가온 님.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초에 그들은 가온 님의 가족들. 당연히 마지막 결말은 가온 님의 것이어야만 했다. 그렇게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자 이내 들려오는 의문점. 그에 잠시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그게... 일단 마루 님께서 직접 가온 님과 이 지역을 해치겠다는 식으로 말씀 하시기는 했지만... 왠지 저는 그것이 믿기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청호가 마지막에 후퇴를 명령할 때, 마루 님께서... 형, 이라고 부르셨던 것 같아서..."
어쩌면 그것이 그저 단순히 자신이 모든 존재들을 호의적으로, 좋게 바라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지만, 그리고 동시에 울고불고 하느라 잘못 들었던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그들을 차마 나쁘게 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분들께서는 단순히 조종을 당하여서 청호 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하셨을 뿐이고... 실제로는 가온 님을, 이 라온하제를 해칠 생각은 없으셨던 것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결계 부분도 설명이 되긴 할 테니까. 그렇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기에 한없이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 결계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 해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자는 들어오지 못하니까."
령의 말을 들은 누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백호 역시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말에 크게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뒤이어 그녀는 리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믿을 수 없다. 단순히 조종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 설에는 나름 일리가 있다는 듯이 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한편 아사의 말에 가온은 고개를 돌려 아사를 바라보았다. 생전에 그들은 어떤 반응이었냐는 물음에 가온은 조용히 생각을 하다가 그 말에 대답했다.
"...마루와 저의 무리였던 그들은, 제가 신이 되어서 떠나는 것을 인정했고.. 저를 순순히 보내주었습니다. 가끔씩 내려가서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언제나 저를 반겨주었고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는 했습니다. 그들의 피를 이은 새끼를 돌봐줄때도 고맙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더 충격입니다.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가 납니다. 어쩌면 리스 씨 말대로 그렇다고 한다면..저는..."
주먹을 꽉 쥔 그의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선 그러했다. 하지만 백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그 상황에서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직접 가서 묻지 않는한 모르겠지. 아무래도...? 확실한 것은 청호가 있다는 것에서 마음에 걸리네. ...애초에 청호는 뭐 때문에 이런 일을 꾸민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째서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고 있었는지..번거로운 일을 해야만 했는지... 그런 와중에 결계가 있는 곳까지 도달했고 가온은 조심스럽게 결계 밖으로 나갔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수많은 살기의 기운이었다. 어딘가에서...무언가들이..정말로 많은 것들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었다. 가온은 다른 이들을 바라보면서 결계 밖으로 나오지 마라는듯이 손을 뻗었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
뒤이어 그는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앞으로 천천히, 또 천천히...그리고... 그 와중에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청호의 목소리였다.
ㅡ그렇게 단체로 몰려오다니. ...전쟁이라도 벌이려고 오신겁니까? 그것도 재밌겠지요. 시간을 넘어 살아돌아온 이는 당신의 말살을 바라고 있으니까요. 가온.
"그렇다면 너도 배신당했다고 말해보지 그래? 겉으로는 반겨주고 고맙다고 했으면서 그런 생각을 속에 품고 있었다니.. 그거야말로 기만하고 배신한 게 아니야? 차라리 그 때 말했다면.. 적어도.. 이라던가. 아. 덤으로.. 역으로 상처입은 듯한 눈도 더한다라던가." 어디까지나 반응을 보기 위한 것이겠지만. 이라고 덧붙입니다.
"아. 가온이 연기 못하니까 못하려나." ....잘할 수도 있지만 그건 넘어갑시다. 번거로운 일.. 뭔가 트랩이라도 걸어둔 걸지도 모르지? 라고 말하려 합니다.
"파랭이가 조종한 거일수도 있고 아니면 사기계약을 한 걸지도 모르지." 계약서는 잘 읽어야 한다니까. 라고 아주 평온하게 말합니다.
"전쟁을 왜 해?" "머릿속에 그런 거나 들어서 그렇게밖에 판단 못하는 거야?" 그런 거 벌여봤자 지킬 게 많은 이쪽이 불리한데. 라고 생각하면서 흐응. 하고 고개를 갸웃합니다. 살기에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살기 같은 것은 위협적이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그것을 공격으로 전환한다면야.. 도망 못 가도록 하겠지만.
여러 '신' 님들의 생각과 의견들을 경청하여 들었다. 하나 같이 전부 다 그럴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진실은 알 수 없었지만... 조금 복잡해진 생각에 잠긴 채, 이어지는 가온 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 말씀을 들으니, 더더욱 그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모두를 '사랑'하려는 자신의 어리석은 눈 멀음이라 할 지라도... 저는...
"......"
차마 뭐라고 입을 열지 못한 채, 그저 슬픈 눈빛으로 침묵만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가온 님의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으니. ......가족. 참으로 마음 아픈 울림이었다.
그 와중에 청호의 이름이 들려오자 살짝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신' 님이 아닌 둘 중 하나. 청호. ...당신은...
그러나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같이 결계 밖으로 나가려 한 순간,그러한 생각은 멈춰져버렸다. 그야 가온 님께서 갑자기 나오지 말라는 듯이 손을 뻗었으니. 그에 자신도 모르게 결계의 바로 앞에 멈칫, 하고 멈춰선 채, 놀란 듯이 커진 두 눈동자로 앞으로 걸어나가는 가온 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청호의 목소리.
"...! 당신...!"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드물게 분노에 가득찬 표정을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외쳤다. 만약 가온 님께서 공격 당하실 것 같으면 애써 용기를 내어 금방이라도 결계 밖으로 뛰쳐나갈 듯이. 두려움에 살짝 떨리는 두 손은 목에 매단 구슬에 갖다대며.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가온 님의 말살은 그 누구도 바라고 계시지 않아요! 오직 당신만이 바라고 있는 그 끔찍한 소망을 함부로 다른 분들께 덧씌워 더럽히지 마세요...!"
세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일까. 청호의 목소리는 잠시 끊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곧 청호의 비웃는 목소리가, 모두의 머릿속에 강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ㅡ바보같은 말이로군요. 전쟁을 왜 하냐고 하셨습니까? 그럼 죽으러 오신 겁니까? 그것도 상관없지요. 안 그런지요? 그리고 살리지만 않았어도? 저는 신으로서 소망을 이뤄준 것 뿐입니다. 죽어서도 바라는 소망을 말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결국 그 소망을 품은 가온의 동생이 잘못한 것이 아닌지요? 저는 그저 신으로서 소망을 이뤄준 것 뿐인데 그게 제 책임입니까? ...원래 동물이었던 이였으니..어쩔 수 없나 보군요. 그리고 누구도 바라지 않는지..그걸 어떻게 아시는지요? 저만이 바라고 있다...? 확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늑대임에도 불구하고 건방지게 신의 힘을 얻은 잡종 따위.. 좋아할 이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어느 쪽이건... 저는 그저 소망을 들어줬을 뿐입니다.
"...닥쳐. 마루는 어디에 있어? 다른 이들은 어디에 있어?!"
청호의 말을 냉혹하게 잘라버리면서 가온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청호는 더욱 들으라는 듯이 일부로 비웃는 소리를 내면서 깔깔 웃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명백한 비웃는 목소리 그 자체였다.
ㅡ하하하! 그렇게 열낼 것 없지 않습니까? 하여간 이래서..동물이었던 것들은... 뭐..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이라면...바로 근처에 있지 않습니까.
청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근처 풀숲에서 마루가 튀어나왔다. 두 손에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는 마루는 명백히 가온을 바라보고 있었고, 근처 풀숲에서도 다른 늑대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가온은 주변 늑대들에 의해서 둘러쌓였고 일제히 늑대들은 가온을 바라보면서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누리는 조용히 입을 열어 이야기했다.
"...늑대들에게서 확실히 청호의 신통력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느껴지고 있어. 그리고...무언가가 울부짖는 것 같은 느낌이야.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내가 가장 가까운 한 마리와 너희들의 마음을 이어줄게. 그러니까..그 늑대에게 말을 걸어줘. 텔레파시처럼 말을 걸 수 있을테니까."
이어 누리는 눈을 감았고 신통술을 발동했다. 그리고..곧 모두의 시선이 어두컴컴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하지만..저 너머에 희미한 빛이 하나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틀림없는 무언가의 목소리였다.
드물게 분노에 가득찬 표정과 말을 외쳤지만, 이내 들려오는 것은 청호의 비웃음이었다. 그 목소리에 두려움에 이어 분노로 온 몸이 덜덜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 어떻게... 그런... 당신은 '신' 님을 자칭할 수 없어!! 지금 진짜 '신' 님들께 건방진 말을 하는 건 누구지?! 누구냔 말이예요! 소망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당신의 그 끔찍한 소망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거고, 이뤄지지 않게 해버릴 거예요!"
감히 스스로 '신' 님을 칭하는 그 모욕적인 말에 정말로 드물게 격한 분노를 보였다. 항상 쓰던 존댓말마저 순간 사라져 섞여버릴 정도로 흥분한 가운데, 가온 님의 차가운 말씀에 다시 청호의 비웃음과 함께 풀숲에서는 마루 님께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마루 님을 시작으로 하나, 둘, 나타나는 늑대들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며 다시금 본능적인 공포에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이어지는 누리 님의 말씀에 애써 정신을 붙잡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다해야 할 시간.
얼마 지나지 않아 누리 님의 신통술로 인하여 어둠으로 시야가 뒤덮였다. 그러나... 저 너머에서 빛나고 있는 희미한 빛 하나.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그것이 늑대들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곤, 곧바로 크게 외쳤다.
"살려드릴게요! 구해드릴게요! 도와드릴게요! 그러기 위해서 저희가 여기 이렇게 왔어요!"
잠시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빛을 향해 두 손을 뻗으며.
"어떻게 된 건가요? 모두 청호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건가요?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을 도울 수 있는 건가요?!"
"무척 이분법적 사고관이네." "전쟁 아니면 죽으러라.. 오 그럼 파랭이는 처음부터 신이어서 동물이었던 쟤의 소망을 제대로 이해도 못했나 보지." "제대로 들어줄 자신도 없었으면서 들어주고는 항의하면 동물이었던 것은. 이러면서 회피하는 건 그냥 사기지." 원래부터 신이었던 것들 중 일부는 가끔 저런다니까. 자기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책임잔가라니. 아 제대로 이해했으면 이런 일도 안 벌였을 테니까 지금 상황은 스스로를 폄훼하는 거나 다름없잖아? 천천히 흔들거리는 바보털이 마치 허리를 굽힌 것처럼 구부러집니디.
"울부짖는 것 같다고?" 음. 울부짖는다.. 사기계약인 느낌이 드네. 다른 거일 수도 있겠지만서도. 신통술로 연결된 듯함에서 살려줘..라는 듯한 말이 들리자
-살아있잖아? 하지만 그건 겉에 불과할 뿐이지 않을까. 껍데기일 뿐. 라고 마치 속삭이는 듯 중얼거립니다. 수신탑이 된 늑데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할 것도 아니지. 무엇을 원했던 거야? 라고 중얼거립니다.
의식이, 마음이 연결이 되자 들려오는 목소리에 리스와 령, 아사는 각각 대화를 시도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리스가 빛을 향해 손을 뻗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실제로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목소리의 주인공은 세 신을 인식했는지 말을 걸어왔다.
ㅡ당신들은... 전 알파와 같이 있었던 신들..?
지쳐가는 목소리,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가 비명을 크게 질렀다. 무언가 스파크가 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목소리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힘겹게 목소리를 전하고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ㅡ...저희는...저희는...전 알파가 이끌던 늑대들입니다. 수명을 다해서...땅에 묻혔던..바로 그 늑대들입니다. 우리들은 안식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우리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우리들의 소망을 이루게 해주겠다고.. 그러니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해달라고.. 그저 라온하제에 들어가주기만 하면 된다고... 어차피 라온하제라는 것에 우리들의 소망과 관련된 이. 전 알파가 있었으니..우리들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저 우리들은...만나고 싶었습니다. 전 알파를..다시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정말로 지독한 스파크 소리와 비명소리였다. 곧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고, 그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ㅡ...잘 모르겠습니다. 그저..그저.. 마음 속에 있는... 전 알파가 떠날 때의 섭섭한 감정이..갑자기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주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절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전 알파가 우리를 배신했다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이제는 이것을 버틸 수도...가라앉힐 수도 없습니다. ..우리들은...우리들은...그저...!! 아아아악!!
또 다시 강한 스파크 소리가 튀었고...목소리의 비명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하지만..그 와중에도..분명히 목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ㅡ...부탁..입니다.. 우리들의 목에는...구슬이..달려있습니다..그것을...그것을..없애주십시오.. 그렇다면...우리들도..우리들도... 더 이상..이런 것은...차라리...
더 이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빛도 꺼져버리고..보이는 것은 오로지 어둠 뿐이었다. 그저..조용한 어둠만이 깔려..더 이상 아무런 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요점은 그거군. 단지 가온을 보고싶어한 늑대들의 감정을 극대화시켜서 저딴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령은 조용히 그 말을 듣고선 생각에 잠긴다. 그래. 저들도 가온을 해치고 싶지는 않을 터. 단지 청호라는 그 빌어먹을 여우 때문에 저렇게 된 것이다. 하루 빨리 죽은 자들에게 안식을 찾아줘야 한다. 령은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결계 밖으로 뛰쳐나갔다. 령의 가검이 순식간에 진검이 되었다.
"하압!"
령은 기합을 외치며 근처의 늑대의 목을 공격하려 하였다. 분명 목에 구슬이 달려있댔으니 효과가 있지 않을까?
손을 뻗었지만 당연하게도 빛은 잡히지 않았다. 그래, 이것 역시 환상과 다름 없는 상황이었으니. 안 그래? 그렇기에 그 대신 그 빛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한 글자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비명에는 귀가 찢어질 것만 같아 괴로웠지만, 그 목소리가 이내 전해오는 진실이 더욱더 괴로웠기에 참아냈다.
"......"
그러니까... 한 마디로 유혹을 해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는 바로 청호였겠지. '죽음'을 맞이하여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잠들어있던 이들을 깨우고, 달콤한 말로 꾀어내어 감정을 왜곡시켜 지금과 같이 제멋대로 조종한 자는. 그것도, '가족'들을.
부들부들, 분노와 가슴 아픔, 그리고 슬픔이 마구 뒤섞여 온 몸이 떨려왔다. 아랫입술을 너무나도 꽈악 깨물었기 때문인지 살짝 피의 맛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저 늑대 씨는 자신들에게 부탁을 해오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고, 괴로워하면서도 자신들에게 진실을 전하고, 도와달라고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목에 달린 구슬.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빛은 사라졌지만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대신 자신의 목에 달린 구슬이 점차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모이기 시작하는 마치 반딧불이와도 같은 빛덩어리들. 그 빛을 살며시 왼손으로 잡아들고 공중을 가르며 앞을 향해 겨누었다. 그러자 바람과 함께 빛들이 흩어지며 드러난, 자신이 쥐고 있는 하얀색과 빨간색이 섞인 활. 그것을 든 채 천천히 어둠 속을 가로지르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렇게 결계의 바로 밖까지 나오려 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올리자 빛을 흩뿌리며 나타난 연분홍색의 화살. 그것을 그대로 활에 화살을 걸어 활 시위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구해드릴 거예요."
...가족을, 죽음을, '신' 님들을. 처음으로 환각이 아니라 진짜로 만들어진 화살이, 선명하고 동그랗게, 힘 있게 떠진 서로 다른 색의 눈동자를 따라 서서히 움직였다. 그리고... 피잉, 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그대로 한 늑대의 목에 매달린 구슬을 깨뜨리려 화살은 날아가려 했다.
목소리를 들은 세 명은 각각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누가 먼저 시킨 것이 아니라 각자의 움직임이었다. 령과 리스의 공격에 두 늑대의 구슬이 금이 갔고 그대로 쨍그랑 깨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구슬이 깨진 두 늑대는 순간적으로 편안한 표정을 지었고 고개를 돌려 령과 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들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ㅡ...고마워요.
ㅡ...구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동시에 그 늑대 두 마리의 몸은 천천히 분해되어 가루가 되어 그 형태가 사라져버렸다. 공기 속에 녹아내려 사라져버리는 그 모습에 가온은 물론이고 마루 역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네 녀석들..!! 감히 나의 동료를...!!"
"리스 씨! 령 씨! 무슨 짓을...!!"
그와 동시에 아사의 목소리가 가온에게 전달이 되었다. 목의 구슬이 감정을 왜곡...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 가온은 텔레파시로 모두에게 말을 전달했다.
ㅡ무슨 소리입니까? 그게...? 목의 구슬이라니...
"위험해! 가온아!!"
이어 백호가 여우의 형태로 변했고 빠르게 뛰쳐나갔다. 그리고 가온을 공격하려고 한 마루를 빠르게 결계를 쳐서 막아냈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 가온은 앞을 바라보면서 백호를 바라보면서 감사를 표했다.
"서, 선배! 감사합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설명은 지금부터 저 애들이 해줄 거니까!"
ㅡ...재미있군요. 상황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니.. 늑대들을 죽이는 겁니까? 그래요.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겠지요. ...결국 전쟁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이건..
이어 들려오는 것은 청호의 명백히 비웃는 목소리였다. 그것은...참으로 잔혹하게, 또 잔혹하게... 모두의 귓가로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그와는 별개로 마루가 크게 으르렁거리면서 다른 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희들...너희들...감히..감히..! 용서 못해!! 절대로 용서 못해!!"
//반응레스를 부탁하겠습니다! 12시까지 받겠습니다! 그리고..여러분들에게 의견을 묻겠습니다. 사실상 클라이맥스 부분이 얼마 안 남긴 했는데..아무래도 시간이 시간이기에.... 여러분들은..클라이맥스까지 보고 싶나요..? 아니면 여기서 끝내고 다음주에 계속하는 것이 나을 것 같나요?
순간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금 슬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늑대의 모습. 그것을 실제로 그것을 목격하니 다시금 슬픔에 마음이 찌릿, 아파오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죽음으로 돌아가시는 거예요. 어쩌면... 어쩌면, 저도 저랬어야 했는데... 그런데...
그러나 가온 님과 마루 님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곤 모든 것을 설명해드리려 했다. 그렇지만...
이내 정신 없이 이어지는 마루 님의 공격과, 청호의 비웃음. 그리고 마루 님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어지럽게 뒤섞였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모두..."
활을 든 손을 잠시 아래로 떨구곤 고개 역시 아래로 떨구었다. 표정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온 님. 지금 저 늑대 씨들은 청호가 목에 달린 구슬을 통해서 조종당하시고 있는 상태세요. 그리고... 그로 인하여 정말로 괴로워하시고 있어요. 저, 들었어요. 늑대 님들께서 정말로 고통에 비명을 지르시는 것을. 그리고... 저 구슬들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시는 것을."
천천히 아래로 떨구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눈물이 다시금 뚝, 뚝,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마루 님. 이것은 다른 늑대 님들께서 직접 부탁하신 것이었어요. 다들 수명을 다하셔서 땅에 묻혀 계셨음을 알고 있었어요. 다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시는 것임을, 부디 알아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들은 청호의 말처럼 늑대 님들을 죽이는 게 아니예요. 이건 전쟁도 아니예요. 그저, 서로 오해를 풀고, 대화를 하기 위한 시작이자 자연의 섭리를 따라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예요. 제발 그것을 이해해주실 수 있나요...?"
울먹이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죽음을 뒤엎고 소망을 이루어주겠다는 목소리에 이끌려 자연의 섭리를 거슬렀을 때. 그 때 마루 님께서는 행복하셨나요...? 아니면 갑자기 가온 님과 함께 하셨던 즐거운 추억들 대신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증오가 가득해, 지금처럼 괴로우셨나요...? 마루 님께서도 이런 것을 원하시지 않으셨잖아요... 네? 그러니까 제발... 제발..."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상황을 봐주세요. 가온 님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떨려왔다. 하지만 눈물을 뚝, 뚝, 흘리면서도 가슴 아픈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죽은 자는 죽음으로 되돌아갈 때 비로소 안식을 찾을 수 있다.' 저는... 죽었던 자. 그러니까 저는... 저는...
와아...이번에 리스...정말로 하드캐리하는군요..세상에... 그리고..일단 령주를 제외한 두 분은 계속 보고 싶다는 의견이로군요. 하지만..역시 스레주로서는 한 명이 힘들다고 한다면..역시 그 분을 조금 배려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음..조금 아쉬울지도 모르지만..일단 그 아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다음주에 계속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모두들 정말로 수고하셨어요!!
무의식적인 변화라...신통술을 무의식중에 사용하는 것이라던가..그런 변화가 은근히 있었죠. 이것이 페러렐 월드라는 것이 안타깝네요.. 다시 원래의 배경으로 돌아가면 리스는...(??) 아무튼...정말 리스가 멋졌다는 사실을 밝히겠습니다..! 야광봉 많이 흔들었어요!! 팔이 아프네요! 이젠.! (??)
아르겐타비스가 멸종을 하지 않았다면...어어...일단은 가장 강한 새 정도로 소개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버드 스트라이크는...일단 날아다니는 높이가 다르니까 덜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비를 계속 맞으면 정말로 감기 걸리고 아프다보면 심하게 변할지도 모른다구요..!! 8ㅅ8
>>988 ......역시 야생의 세계는 무섭네요...생각해보니까 만약 리스가 '신' 님이 되지 못했다면 그런 동물들이 웬 떡이냐하고 먹었겠네요, 세상에...(동공대지진)(말잇못) 왠지 정말로 전의 그 모두 동물/식물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 의식까지 돌아갔다면 진짜 난리났었을 것 같네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