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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가 자신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리자 령의 표정은 애매하게 변했다. 매번 이렇게 공손한 태도로 저를 대접하니 뭔가 슬픔이 느껴졌다. 리스는 여전히 모든 신들을 자신보다 위로 보는 것일까? 리스, 당신도 신이랍니다. 령은 차마 마음 속의 말을 내뱉지 못한 채로 리스의 인사를 받았다.
잘 지냈단 그녀의 말에 령의 표정이 완전히 풀어져서 온화한 빛을 내었다. 다행이었다. 뭔가 안좋은 일이라도 일어나진 않을까 마음 속으로 걱정에 걱정을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여긴 라온하제였으니까. 령은 다행이라고 여기곤 몸을 굽혀 리스와 눈을 마주했다.
"물론 저도 잘 지냈답니다. 리스가 잘 지내어서 다행이에요."
령은 온화한 미소를 띤 채로 얘기하였다. 그러다 리스가 음식에 감탄을 하자 내심 이걸 사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사올 때마다 감탄하는 리스의 반응을 보는 것도 하나의 묘미였다. 잘 되었다. 령은 리스의 반응에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이건 와플이라는 음식이고 이 옆에 있는 분홍색 음료는 딸기 주스예요. 리스가 좋아할 듯 해서 사왔어요."
령은 한창 음식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리스의 반응에 두 눈을 깜박였다. 왜 시무룩해지는 거지? 자신이 리스를 불쾌하게 했나? 당황한 나머지 령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것도 잠시, 리스가 뭔가 원하는 게 있냐는 말을 받자마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하는 것, 원하는 것이라...
...령 님의 표정이 다시 조금 변하셨어요. 애매함...? 아니, 슬픔...? 자신이 감히 '신' 님의 표정에서 감정을 느껴도 되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마주 바라본 표정에서 흘러들어오는 감정은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령 님께서는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걸까요? 아니, 령 님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신' 님들이 다 그러했다. 자신이 공손한 태도를 취하면 취할수록, '신' 님들께서는 더더욱 묘한 반응을 보여주곤 하셨다. 하지만, 도대체 왜...?
하지만 다행히 이어진 자신의 대답에 령 님의 표정은 다시금 온화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언제나 바라보곤 했던 그 표정. ...정말 다행이예요, 라는 생각을 하다가 령 님께서 아예 몸을 굽혀 자신과 눈높이를 맞춰주시자 약간 놀란 듯 한 박자 늦게 몸을 조금 움찔, 했다. 그러나... 동그래진 두 눈으로 령 님을 멍하니 바라보던 것도 잠시, 이내 희미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령 님께서 잘 지내신다면 저도 잘 지낼 수 있답니다. 저야말로 령 님께서 잘 지내셨다니, 정말로 다행이예요."
진심이었다. 그렇기에 애써 공손히 허리를 꾸벅, 숙이려던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그랬다가는 령 님께서 또 조금 슬픔이 묻어나오는 표정을 지으실 것만 같았기에.
그렇기에 대신 령 님께서 보여주신 음식들에 순수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어지는 설명을 열심히 고개까지 끄덕끄덕여가며 경청했다. 와플과 딸기 주스, 그 단어들을 잠시 따라하듯 작게 중얼거려보기도 하면서. ...령 님께서 저를 이렇게나 생각해주시다니, 정말 기뻐요. 영광이예요...!
그러나 그 행복한 마음이 커지는 만큼, 죄송스러운 마음 역시 커져갔다. 그렇기에 조금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령 님께 직접 원하시는 것이 있는지 여쭤보자, 령 님께서는 또다른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크리스마스... 요?"
잠시 몽롱한 두 눈동자를 느릿하게 깜빡였다. 하지만 이내 곧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네, 크리스마스 씨는 알고 있답니다. 인간계에서 봤었거든요. '신' 님을 위한, '신' 님과 관련된 날. 예쁜 불빛들이 반짝이고,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아주 커다란 건물 씨 안에서 기도를 하는 날로 알고 있어요."
희미하게 웃으면서 자신이 알고있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것들을 얘기했다. ...비록 그것들은 크리스마스의 단편적인 일부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내 곧 령 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해보였다. 크리스마스를 언급하신 그 뜻을 잘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정말로 다행이다. 령은 리스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령 또한 리스가 잘 지내기에 잘 지낼 수 있었다. 령은 리스의 말에 눈을 감았다 뜬다. 리스에게 무슨 일이 생겼더라면 자신은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러질 못했겠지. 그러니 더욱 다행인게다. 그녀가 무사함으로서 자신도 심리적 부담감을 덜 수 있었으니.
단어를 따라하는 리스의 모습이 귀여워 보였던지 령이 베시시 웃음을 지었다. 령은 쇼핑백 안에 손을 넣어 와플 하나를 꺼냈다. 신과로 만든 크림이 들어있는 것이 매우 맛있게 보였다. 령이 와플을 한 입 베어문다. 달곰씁쓸한 맛이 혀에 전해져오면서 더없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크리스마스에 대해 반문하는 리스의 표정이 더없이 순수해보였다. 귀여워라. 령은 저도 모르게 다시 웃음을 지었다. 어째 리스랑 같이 있으면 웃음짓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령은 리스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알고 있었구나. 령은 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단편적인 정보 뿐이지만 알고 있긴하니 다행이었다. 령이 입을 열었다. 다소 긴장되었는지 몸이 다시 뻣뻣해졌다.
"리스가 원한다면... 크리스마스 때 저랑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물론 어디까지 리스가 원한다는 가정 하에니까 억지로 응할 필요는 없어요. 령은 그 말을 내뱉고는 리스를 바라봤다. 리스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일이 오늘따라 더 떨렸다. 결국 령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자신은 왜 이렇게나 겁이 많은지...
중얼중얼, 령 님께서 말씀하신 단어를 몇 번이나 열심히 작게 따라한 후에야 령 님께서 쇼핑백 안에 손을 넣어 와플을 하나 꺼내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 역시도 조심스럽게 쇼핑백 안에 두 손을 집어넣고 공손히,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와플 하나를 꺼내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의 끝에 자신의 손에 들려진 달콤향긋한 향기의 음식. 꼴깍, 저절로 군침이 삼켜지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금 령 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한 입 조심스럽게 베어물자...
정말로 맛있었는지 그저 와아, 와아, 하는 소리밖에 내지 못 했지만, 그 반짝반짝이는 두 눈동자를 보면 정말 행복한 듯한 분위기가 풍겨져나오는 듯 했다. 동그래진 두 눈동자는 감사함을 담아 령 님을 한 번, 그리고 신기함을 담아 두 손으로 든 와플을 한 번, 번갈아 바라보았다. 킁킁, 달짝지근한 향이 다시금 자신의 코 끝을 즐거이 간지럽혔다.
그러다 령 님께서 크리스마스에 대하여 넌지시 말을 꺼내자 잠시 그에 반문하며 멍한 두 눈동자를 깜빡였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자신이 거의 유일하게 알고있던 인간들의 기념일 중 하나. 그렇기에 천천히 자신이 알고있는 '크리스마스'에 대하여 얘기하고는 이내 무언으로 고개를 갸웃해보였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다시금 조금 긴장한 듯이 뻣뻣해진 분위기를 보이기 시작하는 령 님. 자신이 원한다는 가정 하에, 령 님께서는 제안 아닌 제안을 하나 말해왔고, 그 떨리는 눈동자를 멍하니 마주 바라보고 있자 이내 곧 령 님께서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검은색 눈동자가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주 바라보고 있던 검은색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정말로 저와 같이 보내셔도 괜찮으신가요, 령 님...?"
두 눈동자가 살짝 떨려왔다. '신' 님께서 다시 이렇게 자신에게 직접...? 사실 믿기지 않았다. 전혀 믿기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시는 '신' 님이라니. 그건... 그건...
"......네. 령 님께서 원하신다면, 저도 좋아요, 령 님. 크리스마스 씨는 '신' 님을 위한 날인 걸요."
헤실헤실, 희미한 미소가 환히 꽃피워졌다. 자신과 함께 있고싶어 하는 존재. 자신에게 호의를 가진 존재. 찌르르, 마음 한 구석이 왠지 모르게 조여오는 듯 했다. 자신도 모르게 구슬에 살며니 손을 가져다 대었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령 님께 조심스럽게 덧붙여 여쭤보았다.
"혹시... 론도 같이 있어도 괜찮을까요, 령 님? 크리스마스 씨에 론 혼자서는 쓸쓸할 것 같아서..."
리스가 감탄하는 걸 본 령의 시선이 따뜻함을 띄고 있었다. 령은 다시금 웃었다. 역시 와플을 사오길 잘했다. 령은 와플을 다시 한 번 베어물었다. 크림이 흘러나오면서 제가 좋아하는 달곰씁쓸한 맛이 더욱 올라왔다.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리스가 좋아할 성 싶어 사왔는데 사오길 잘했나봅니다."
령은 다소곳하게 말하곤 다시 한 번 와플을 베어물었다. 너무 맛있었다. 딸기주스도 먹어볼까? 령이 쇼핑백 안에서 딸기주스를 꺼내 한모금 마셔보았다. 딸기의 상큼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아, 하마터면 몸을 부르르 떨 뻔했다. 앞으로 조심해야지. 령은 자기자신에게 되새기고는 딸기주스를 한모금 더 마셨다.
이야기해버렸다. 이를 어쩐다. 아마 거절당하겠지. 령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자는 얘기를 한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원래는 그런 얘기를 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 이왕 그렇게 된 거 그냥 거절의 말이나 듣고 끝내자. 령은 다짐한다. 하지만 리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자신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도 괜찮겠냐는 것. 령은 눈을 크게 떴다.
"네. 물론이죠."
리스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좋은걸요. 그 말은 삼키기로 했다. 령은 와플을 다시 베어물면서 초조함을 삼켰다. 그 다음으로 들려올 말은 승낙일까? 아니면 거절일까? 령은 할 수만 있다면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아, 수락했다. 리스가 좋다고 말했다! 령은 뛸 듯이 기뻤다. 할 수만 있다면 리스를 껴안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참자. 참아야 한다. 령의 눈이 크게 떠졌다. 분명 놀라서 그런 것이겠지. 아, 리스의 얼굴에 미소가 꽃피워진다. 당신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람이구나.
"저... 그... 수락해줘서 고마워요, 리스."
반쯤은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령은 얼굴에 홍조를 띄며 말했다. 이럴수가... 정말 자신이 크리스마스 날 리스와 시간을 보내게 될거란 말인가? 너무 기뻤다. 기뻐서 날아오를 것 같았다. 령은 베시시 웃고는 리스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보였다. 감사인사였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령 님. 령 님 덕분에 매번 이렇게 맛있는 음식 씨들도 먹어볼 수 있어서 정말로 기쁘고 죄송해요."
두 가지의 복합적인 감정이 담겼지만, 그럼에도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꼬옥, 두 손에 쥐고있는 신과크림 와플이 왠지 모르게 더욱 가치롭게 느껴지는 듯해, 무의식적으로 조금 더 힘주어 와플을 잡았다. ...저도, 역시 령 님께 뭔가 해드리고 싶어요. '신' 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면, 그렇게 해드리려면...
딸기주스와 와플의 달콤한 향이 맴도는 것을 느끼며, 이어지는 령 님의 제안에 적잖이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깜빡깜빡였다. 그러나 믿기지 않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정말이냐고 되물어봐도, 령 님께서는 오히려 더욱 확고한 답변을 들려주실 뿐이었다. ...저, 정말로 저와 크리스마스 씨를 같이 보내셔도...
잠시 침묵을 지키며 입술을 다물었다. 손 끝으로 매만지는 구슬은 꿈을 꾸듯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그래, 이 '행복'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신기루라면 차라리. 행복한 미소를 희미하게, 아니, 선명하게 얼굴에 환히 꽃피워냈다. 자신으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 되려 수락해줘서 고맙다며, 아예 고개까지 꾸벅 숙여오는 령 님의 반응에 놀란 듯 두 손과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가며 황급히 대답했다.
"저, 저에게 고개 숙이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령 님...! 감사인사는 오히려 제가 해야 하는걸요. 저에게 먼저 제안해주셔서, 그리고 론도 함께 와도 괜찮다고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사실 크리스마스 씨에는 론이랑 같이 인간계에 종종 내려가곤 했었거든요. 제가 가끔씩 찾아가곤 했던 곳이 있어서..."
예전에 자신이 신세를 지기도 했었던 곳. 그 때문일까, 아니면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다시 찾아가볼까,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하지만...
"...령 님께서는 크리스마스 씨에 하시고 싶으신 것이 있나요? 령 님께서 괜찮으시다면 그 곳에 잠깐 가도 괜찮을까요? 아, 물론 령 님을 귀찮게 하지 않게 저 혼자만 잠깐 다녀와도 괜찮아요! 빨리 갔다올 수 있거든요, 저."
재빨리 덧붙이면서 령 님에게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물론 령 님께서 하고 싶으신 것을 함께 해드릴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그곳에는 꼭 다녀오고 싶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