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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놀이 공원에 찾아온 수많은 신들은 상당히 즐거워 보인다. 푸른 하늘이 완벽한 맑은 날씨의 즐거운 음악과, 놀이공원 간식들의 달달한 향.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우중중한 색채의 까치 신. ...네가 왜 여기 있어?
"이거 신이 너무 많은 걸..."
분명 이런 곳에 오지 않을 것 같으며 오더라도 은호로 가득한 구조물들을 본다면 비소를 터트릴 듯 한 신은, 어째선지 뚱한 표정으로 벤치에 기대 앉아 있었다. 이제는 은호의 모습이 가득한 것은 어느정도 익숙해 진 모양이였는지, 찬찬히 인파와 공원의 전경을 둘러보고 있었다. 딱히 그것밖에 할 일은 없었던 것에 불과하였지만. 졸라서 같이 왔을터인 이슬비가 대략 1시간 30분 정도 웨이팅이 걸리는 바이킹이 타고 싶다며 대책없이 뛰어나가는 바람에 마땅히 갈 곳도 없었던 세설은, 그저 여유를 부리고 있을 뿐이였다. 아마도 10분만 더 늦어지면 돌아갈 작정이였지.
어느샌가 세설의 시야의 들어온 것은 분홍색의 신이였다. 호기심 어린 몸짓으로 이리 저리 둘러보는 모습을 가려지지 않은 왼쪽 눈으로 조용히 쫓으며 관찰한다. 뭐 당연한 것이라면 당연하지만 대놓고 이곳에 온 것은 처음이오. 라는 부자연스러움이였다. 가게 앞에서 소심한 몸짓으로 기웃 거리다가, 머리띠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머리에 쓰는 것도 아니고... 냄새를 맡아보고 있었다.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모습으로. 가만히 지켜보던 세설이 눈을 천천히 깜박인다. 속마음이나 그런 것이 들리지 않았지만 추측한 바로는 아마도...
"...이상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진짜 여우 털이라던가 그런건 아니니까. ...보통은 비싼 여우 모피가 아니라 값 싼 모조털로 만들어지거든."
진지한 리스의 뒤로 어느새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나른하고 무던한 말투로. 그렇게 말을 걸고는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가게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여우 머리띠와 여우 모양의 인형이 사이즈별로 진열 되있다던가, 은호 모양의 열쇠고리 등등... 당연하지만 여우 투성이였지. 숨 돌릴 곳은 없는 것인가.
세설: 은호랜드...? ...난 관심 없어. 가려면 너 혼자 가던가. 이슬비: 에이, 그러지 말고... 공짜잖아요! 세설: 안가. 그리고 공짜에 환장하는 것도 아니야. 왜 굳이 나한테 같이 가자고 그러는데? 이슬비: 그야... 점장님이 제일 한가해 보이니까요? 세설: ...너 친구 없지. 이슬비: 세설: (한숨)
...킁킁, 킁킁. 은색의 여우 귀가 달린 머리띠의 냄새를 맡는 작은 코가 열심히, 느릿하게 움직였다. 나름대로는 매우매우 심각한 검사 중이었으니. ...다행히 여우 씨의 냄새는 나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예요. 혹시 잡히신지 오래 되셔서 그 사이에 냄새가 다 빠져나갔다거나...?!
불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하자, 자신도 모르게 살짝 "...아아..." 하는 소리를 작게 내어버렸다. 멍한 두 눈동자가 불안함에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나른하고 무던한 목소리.
그에 한 박자 늦게 천천히 머리띠를 보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느릿한 동작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색이 다른 멍한 두 눈동자가 낯설지 않은 검은색과 하얀색의 '신' 님을 마주했다. 자신에게는 없는 하늘색의 눈동자를 잠시 멍하다 못해 몽롱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를 잠시. 두 눈동자가 두어 번 정도 느릿하게 깜빡깜빡이고 나서야 동그랗게 커지면서 매우 뒤늦은 반응이 나타났다.
"...! 앗...! 세설 님!"
아, 안녕하세요...! 황급히 덧붙여지는 인삿말과 동시에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히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올렸다. 너무 집중하고 있었던 탓일까. '신' 님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 했다는 것에 대해 죄송스러움을 느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살짝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생각과 걱정을 제대로 알아맞히신 세설 님에 대한 감탄과 존경심이 마음 속에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약간의 텀이 있었다. 그러니까, 생각에 깊게 잠겼을 때 다른 이의 개입이 있다면 잠시 혼란의 빠지는 상태. 멍하니 마주하고 있는 두가지 색의 눈동자가, 느릿하니 깜박이다가 둥그러니 커진다. 새삼 그렇게 놀라면 뭔가 무안해 질법도 하다.
"일일히 존칭으로 부를 필요는 없는데. 세설이나 설이면 충분해."
딱히 갑을관계나 우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같은 신이잖아. 그리 말했지만 세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말로는 동등한 관계가 되지 않으리란 것 즈음. 존재하는지의 여부도 불분명한 자신의 '신'님을 계속 찾고 있는 것이라던가, 자신은 신이 아니라는 등 모든 신들의 말에 순종적이던 리스에게도 일관된 고집이 있었으니... 세설에게도 그저 당부에 불과했던 것인지 작게 숨을 내 쉴 뿐이였다.
"...그래? 그거 참 안타깝네."
그 기대가 계속 깨지지 않길 바라. 의미가 불명한 말을 내뱉고 난 후에, 리스가 집어든 여우귀 머리띠를 집어들었다. ...진짜 여우 털이라고 속을 만큼 생생하기는 하였지. 어차피 이런 물품을 제작한다던가 리얼함은 신통력으로 어떻게든 되는 것 같으니 진짜일리는 만무했다. 그야 여기는 '즐거운 내일'이라고 하잖아? 애꿎은 여우들을 죽이는 것은 인간들 만으로 충분하니까.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니야... 너 같은 애가 또 있었거든."
헤실헤실 웃는 표정을 보고도 무뚝뚝하게도 선을 긋는다. 호기심 어리게 올려다 보는 리스를 무심히도 대하더라. ...너처럼 마냥 순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미묘하게 한탄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였지.
"...뭐, 아까 말한 그 '너 같은 애'한테 끌려서 온 거야. 지금쯤 저기 배 모양 놀이기구 쪽에 있을 걸."
그리 말하며 세설이 저 너머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은 꽤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뭐랄까, 은호가 뱃머리인 바이킹이라니 센스가 괴랄하긴 했지만 상당히 무서워 보이긴 하였다.
깜빡, 깜빡. 멍하니 깜빡이던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지면서 놀라기까지에는 시간이 좀 걸려버렸다. 아마 그만큼 상황파악이 재빨리 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그도 그럴것이, 자신이 마주한 '신' 님은 매우 오랜만에 뵙는 반가운 얼굴이었으니.
그러나 반가움보다도 미리 알아채어 먼저 인사를 드리지 못 했다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조금 더 커, 결국에는 황급한 인사 뒤에 조금 우물쭈물한 모습을 보였다. 슬쩍 시선을 아래로 떨구어 피한 위로 담담한 세설 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내용은 자신으로서는 감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엔 곧바로 고개를 들어올리고는 도리도리, 조금은 강하게 저어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요...! 정말로 죄송해요, 세설 님. 하지만... 역시 세설 님께서는 '신' 님이신 걸요. 그러니까... 세설 님께서는 세설 님이세요."
헤실헤실, 순진하고도 희미한 미소가 덧붙여졌다. '신' 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마음이었기에.
"...네. 감사합니다, 세설 님."
이어진 세설 님의 조금은 모호한 말씀에도 그저 희미한 미소를 꽃피우며 감사한 마음으로 허리를 꾸벅, 숙였다 펼 뿐이었다. 그 속 뜻이 어떠하듯, 결국 세설 님께서는, '신' 님께서는 자신의 이 마음과 의지를 기억해주시고 안타까워해주셨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히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으니.
자신이 집어든 여우 귀 머리띠를 집어드는 세설 님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어서 들려오는 세설 님의 대답에 다시금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네?"
모르겠다는 뜻이 가득해보이는 되물음이 한 박자 늦게 이어졌다. 미묘하게 한탄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세설 님. 이내 세설 님께서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느릿하게 돌려보자,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은호 님의 머리가 달린 커다란 배 같은 것이 있었다.
그에 의외로 "...와아...! 멋져요...!" 하고 감탄하며 멍한 두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냈다.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상당히 괴랄하여 무서울 수도 있는 디자인이었겠지만, 은호 님을 좋아하고 찬양하는 자신으로서는 그것 역시도 그저 위엄 있어 보였기에. 그러다 다시금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세설 님을 바라보았다. 갸우뚱, 고개가 약간 옆으로 기울어졌다. 머리카락이 살짝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런데 세설 님께서는 저 배 모양 놀이기구 씨...? 를 함께 타지 않으시는 건가요? 그... '저 같은 애'께서는 저 쪽에 있으시다면..."
결국 그놈의 '신' 님인가. 역시나 강력한 태도로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것을 거부하는 리스를 보며, 설은 약간 골치가 생긴 모양인지 제 눈가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신이라고 해보았자 태생은 해로운 새인 까치였으며, 그저 운이 좋아 신격화 된 것 뿐이였지. 이런 케이스는 제법 흔히 있는 편이였으니 같은 일반 신에게 숭배받을 만한 건은 없었을 터였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너무 과한 부담이였다. 리스의 '신' 님 숭배는.
이내 눈가로 가져간 손을 떨어뜨렸다. 고개를 살짝 떨궈 작게 숨을 내쉬며 허리에 양 손을 올린다. 아아, 이만 포기한 성 싶었지. 그 대신이라는 듯이 또다른 제안을 내놓으려 하였다.
"...그래, 세설 님이니 신 님이니 뭐니 호칭 정리는 그만 됐어. 어차피 기대도 안했으니까. 근데 그 저자세, 너무 굽히는 태도는... 면박이라도 주는 걸로 보이겠네. 네가 괜찮다고 해도 이건 내 쪽이 무안해지니 그만두는 게 좋을거야."
여전히 자신의 '신' 님에 대한거라면 모든 것을 다 내어줄 법한 태도였나? 솔직히, 세설에게는 그리 신경 쓸 만한 일도 아니였겠지. 아니였을 터인데. 그저 별로 좋지 않은 예상도가 떠오르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설령 존재하더라도 한번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저 잊어버린 것이나... 아니,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역시. 어느 쪽이든간에 그 커다랗던 기대를 감당하는 것은 리스의 몫이였다.
"이왕 집어들었으니 써보던가. 정말이지, 색깔별로 다 있고. ...분홍색 좋아하나?"
마침 집어든 머리띠도 리스의 색과 비슷한 분홍색이였다. 직접 씌워주...지는 않고 들어서 살짝 흔들어보인다. 분홍색을 좋아하냐는 물음은 그저 추측이였지만.
하늘 높이 솟구쳐 금방이라도 땅으로 떨구어져 박힐 듯한 뱃머리는 은호의 상반신을 표현 한 듯 보였다. 다른 것에 비하면 약간은 나을지 모르지만 역시나 꽤나 기묘하긴 하였지. 이 모든 것을 조성하고 기획한 이의 이름을 듣는다면 어느정도 납득할 수도 있지만 역시 너무 과하다. 은호가 설계과정에서 태클을 걸었을 법도 한데...
"거 취향 이상하네."
그럼에도 눈을 반짝 빛내며 멋지다는 감탄사를 내놓는 리스를 새삼 대단하다는 듯 감탄을 낸다. 그냥 비꼬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감탄이다. ...정말 '신' 님이라면 전부 찬양하고 싶어하는 걸지도. 문득 자신을 바라보며 기우뚱, 고개를 기울여 묻는 리스를 발견한다.
"난 누구랑은 달라서 저런 걸 타고 즐거워 하지 못하니까. ...뭐 이제 대기시간도 거의 끝나간다고 생각하고 있고. 너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시계는 확인 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제일 끝에 있었던 줄이 입구까지 닿을 시점이라 감히 추측한다.
- 세상... 길어져 버렸군... 나 원래 길게 못쓰지 않았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안녕안녕... 이제 수업 갈 준비해야 하지만 잠이 부족합니다...흑흑...ㅠㅠㅠㅠㅠ
...아. 세설 님께서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눈가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는 모습을 보며 멍한 표정으로 두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자신의 말이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던 것일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두 눈동자를 살짝 이리저리 굴리면서 입가로 가져간 두 손가락을 작게 꼼지락꼼지락 거렸다. ...어쩌지요...
그러나 세설 님께서는 이내 곧 손을 내리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허리에 양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오히려 새로운 제안 하나를 얘기해왔다. 호칭 정리는 포기하는 대신 너무 굽히는 태도는 그만두라는 것. 물론 자신에게 있어서는 '신' 님께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지만, 그로 인해서 세설 님께서 무안해지신다면... 그것은 당연히 자제해야 할 터였다.
"...네, 알겠습니다. 노력할게요, 세설 님."
그렇기에 고개를 작게 끄덕끄덕였다. 그리고 ...흐읍, 한 박자 늦게 숨을 들이마시며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두 날개도 살짝 빳빳하게 펴졌다가 다시금 느릿한 동작으로 접혀졌다. 나름대로 당당한 자세였다지만... 역시 '신' 님의 앞이니 조금은 어정쩡해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 네, 좋아해요. 분홍색. ...정말로 좋아해요."
...이거, 머리에 쓰는 물건 씨였군요. 신기한 듯이 자신과 세설 님의 손에 들린 머리띠를 천천히 번갈아보았다. 예쁜 분홍색. 자신과는 다른, 선명한 분홍색. 배시시, 확연한 미소가 잠시동안 피어났다. 그러나 세설 님께도 머리띠를 드리고파 잠시 세설 님과 진열된 머리띠를 느릿하게 번갈아 바라본 이후에는 조금은 당혹스러운 듯이 약하게 동공지진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세설 님의 색은 검은색일까요? 아니면 하얀색...? 아니면 하늘색......?
끄응, 끄응, 나름대로 다시 조금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가 세설 님의 감탄 아닌 감탄이 들려오자, 그제서야 다른 쪽에 팔려있던 정신을 제대로 차렸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신' 님의 형상을 띠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찬양을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물론 그저 옅은 미소로 대신 대답을 할 뿐이었지만.
그러다 이어진 세설 님의 또다른 대답에 잠시 미소가 사라져버렸다. ...그러면... 세설 님께서는 즐겁지 않으시다는 걸까요...?
"...저도 만나뵈었으면 좋겠어요. 그 '저 같은 분.' ...그런데... 세설 님께서는 은호랜드가 즐겁지 않으신가요...? 그러면... 세설 님께서는 어떤 것이 가장 즐거우신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여쭤보았다. 만약 그것이 자신이 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꼭 해드리고 싶었기에. '신' 님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하여.
/ 저도 길어졌네요...(흐릿) 길이는 짧게 주셔도 괜찮으니 너무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세설주! :) 그보다 잠이 부족하시다니...ㅠㅠㅠ(토닥토닥) 저도 이렇게 늦으니까 천천히 주셔도 괜찮으니 무리하시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