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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계에서는 지금이 추석 연휴라고 들었느니라. 그렇다면 내가 추석 연휴를 잘 보냈을터니 선물을 주겠느니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씩씩 거리던 소녀는 뒤이어 난입한 낯익은 얼굴을 하고있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꿈뻑꿈뻑 바라보며 얼떨결에 한 발 물러섰다. 그녀에게 얼마 남지않은 머리털을 한 움큼이나 쥐어뜯긴 부스의 주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뜯겨나간 머리를 어루만졌고, 이내 울그락불그락 열이 오른 모양인지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어, 리스, 리스아니냐! 이거 참 예상치도 못한 만남이구나!"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밤프, 로 추정되는 소녀는 반가운 이의 얼굴에 웃으며 리스에게 다가갔고, 자신보다 조금 큰 그녀의 어깨를 탁탁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이런곳에서 만날줄은 몰랐는데, 여긴 어쩐 일이지? 생각해보니 축제기간이니 놀러온거겠구나."
싱글벙글 웃는 그녀는 방금 전 까지만해도 리스가 겁을 먹은듯 벌벌떨고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듯 했다. 한 편, 그 두 소녀를 바라보던 주인은 이내 떽 하고 호통을 치며 두 아이를 쫓아내려했다.
일단 자신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하여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난투(?) 현장의 한가운데에 파고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마주하게 된 소녀의 모습. 아예 날카로운 이까지 드러내며 씩씩거리는 소녀의 모습에, 묘한 두려움에 조금 바들바들 떨리던 표정이 더욱 파들파들 떨리는 표정으로 바뀌어져 버렸다. ...어쩌면, 자신 역시도 머리카락 공격(?)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하지만 소녀는 잠시 꿈뻑꿈뻑 눈을 깜빡이며 한 발 뒤로 물러설 뿐이었고, 그에 작게 안도하면서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부스의 주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인상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나서 정말로 다행이예요. 휴우,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런데 이어 들려오는 소녀의 반응은 이내 자신을 다시금 놀라게 하는 데에 아주 충분했다. 그야, 처음 보는 듯한... 아니, 어쩌면 익숙한 '신' 님이 떠오르는 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친근하게 자신의 어깨까지 탁탁, 두들겨 주었으니.
"...네...? 저를... 알고 계시나요? 소녀 씨...?"
그에 멍한 두 눈동자를 크게 뜨고 느릿하게 깜빡깜빡였다. 물론 그 뒤에 한 박자 늦게 "...혹시... 밤프 선ㅅ..." 하고 이어지던 추측의 목소리는, 이내 들려오는 주인의 거친 호통에 놀라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지만.
그에 론을 더욱 품에 끌어안으면서 한 박자 늦게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돌았다. 그리고 부스의 주인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장사를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화나시게 한 건 정말로 죄송해요."
일단 제일 먼저 사과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렇지만 이 소녀 씨께서 정정당당하게 전부 다 맞히신 건 저도 그렇고, 다른 인간 씨들께서도 전부 다 보았답니다. 그러니까 혹시 화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릴테니 이 소녀 씨의 말씀대로 상품들을 주셨으면 해요. ...안 될까요?"
부탁드리는 말은 제법 조용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확고했다. 물론 멍한 눈빛은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은 없었다. 그야 소녀에게도, 저 주인에게도, 모두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
"욕심..."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네. 라고 덤덤히 대답합니다. 잠깐 생각에 빠진 듯한 령을 잠깐 보고는 맛이 없으면 싫은 게 당연하다는 것에
"그렇지... 딱 정해진 식사 시간으로 먹는데, 맛이 없으면 시간을 낭비한 게 되잖아." 그건 싫은 거야. 다행히도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군요. 싫은 것이지. 그리고 케밥을 냠냠 먹으며 그건 그래. 라고 말하면서 앉아서 먹자. 라고 말해보려 합니다. 음료수도 살까. 라고 여기저기 기웃대는군요.
"그러니까 말이야..." 음식을 못하는 이도 그 자 나름이지. 나에게 음식을 못 먹여서 안달나게 굴면 글러먹은 거지. 라고 중얼거립니다. 예전에 요리치에게 시달린 적이 있는 듯한 리얼한 반응입니다. 그리고 벤치로 가자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쪽으로 향하려 합니다. 앉아서 먹는 거 좋아..
"음료수 파는 곳 많을걸?" 생과일 주스? 라고 령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합니다. 신과 에이드나 그런 게 가장 좋겠지만, 인간계의 과일주스도 맛있으니까.
첫날에는 괜히 왔다싶었지만 본인의 마음이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백성들은 모두 행복해보였고 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역시 올바른 지도자에게 올바른 백성들이 모이는 것은 사실인 듯 보였다. 이곳의 지도자라는 은호라는 고위신은 필시 대단한 인물이겠지. 무엇보다 이곳의 신은 인간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 분명했다. 온지 몇일이 되지않아 이곳의 신을 모시기 위한 축제가 인간계에서 벌리고 있다는 소식을 사용인이 가져왔다. 백성들의 기쁨을 바라보는 것 또한 왕으로서의 도량, 본인이 그 축제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겠지!!
"지상의 음식은 훌륭하구나! 짐은 이곳이 마음에 들었도다!!"
이곳에 녹아들기위해 인간으로 변장하라고 들은 것 같았지만 본인은 평소에도 인간형으로 지낼때는 별 차이가 없었기에 쉬이 녹아들 수 있었다. 꼬리만 감추면 되는것이 아니더냐. 애초에 꼬리는 왕성에서도 잘 드러내지 못했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인간들의 화폐라는 것도 쓰기엔 영 불편하구나. 파란것이며 노란것이며 종류가 너무 많도다! 사용인에게 어느정도를 받아오기야 했지만 그럼에도 가짓수가 너무 많아 영 관리하기가 불편하다.
"그나저나 요리에도 이리 종류가 많은 줄은 몰랐구나. 이게 그 선생이 말하던 고립된 사회의 한계라는 것인가..."
주변의 의자에 앉아 사놓은 꼬치요리를 보며 조금 깊게 생각해 보았다. 축제는 고향에도 있었고 이 축제또한 크게 다른 것은 없었기에 놀라는 점은 역시 조리법이다. 고향의 여건상 발전은 하더라도 수많은 조리법이 탄생하기엔 어려움이 있을테니 말이다. 항상 심해의 저편에서 살수만은 없는노릇이 아니던가. 어느정도는 인간의 사회에 접촉해 있는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틀란티스의 조리장들또한 최고의 요리인들임이 확실하지만 역시 한정된 조리법으로는 한계가 있을테지. 돌아가게 되면 이야기를 해보아야겠구나.
엄마의 은혜에 감사를 하는 축제, 호은제. 올해도 어김없이 그 축제가 시작되었다. 작년에도 참가를 했고 나는 오늘도 슬쩍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서 참석했다. 작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가 참으로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주운 그 고양이는 잠시 가온이에게 맡겨두고 왔다. 무슨 일이 생기면 부르겠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아마 가온이는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일단 나를 지키는 것이 일이기도 하니까. 딱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도, 정말 성실하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근처를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닭꼬치를 하나 사서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소스 맛도 상당히 좋은 것이 최고였다. 기분 좋게 배시시 웃으면서 앞으로 걸어가는 도중, 저 앞쪽에 키가 나보다 작은 한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내 눈은 속일 수 없었다. 내 눈에는 보이는걸. 저 여성은 신이다. 그리고, 아마... 내가 아는 것이 맞다고 한다면...
"너도 여기로 왔구나. 안녕!"
라온하제에 들어오는 이들에 대한 정보는 언제나 파악해두고 있다. 엄마가 말하길, 자신의 영토에 들어와서 사는 신이 어떤 신인지는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이야.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아주 멀리서 온 공주님이라고 했던가? 내가 아는 것은 그 정도지만 말이야. 아무튼 반갑게 인사를 하기로 했다. 저 아이도 내가 알기로는 고위신의 자녀라고 했으니까 나와 비슷한 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고위신은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잠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바라보다가 나는 여기를 보는 이가 없음을 확인한 후에, 말을 이었다.
"새로 라온하제에 들어온 신 맞지? 반가워. 나도 라온하제에 사는 신이야. 후훗. 누리. 라온하제를 지배하고 있는 고위신, 은호의 딸. 누리. 만나서 반가워!"
우물거리며 두그릇째 꼬치요리를 동내고있자니 나보다 조금 커보이는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신이라니! 분명 본인이 위대하기는 하다만 적어도 지금 이곳에서 신분은 관계가 없지 않던가! 인간계에서는 민주주의? 라는 것이 유행한다고 들었으니 대사의 자격으로 온 본인도 그 땅의 법률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거늘
"은호의 자식...? 아, 들은바가 있구나. 먼저 그 말을 하면 되는것을. 인사하마. 짐은 위대한 바다의 주인 밸린 다윈 1세의 뒤를 이어 아틀란티스를 다스릴 밸린 다윈 2세라고 한다. 이후 그대들의 도시와는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배운대로 그녀에게 예를 갖추었다. 라온하제의 지배자인 은호의 여식이라면 본인과 비슷한 신분이 아니던가. 최근의 신분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으니 잘 모르겠구나.
"그러고보니 사적으로는 처음만나는구나. 아니 공적으로도 만난적이 없던가? 미리 서신을 보내두었어야 하거늘 사정이 급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해 미안하구나."
고개를 꾸벅이며 사과를 표했으나 역시 이부분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겠지. 타국의 귀인을 보내는데 서신한장 없이 그것도 왕실의 인물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했다면 필시 오인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