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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을 띤 두 눈동자가 물끄러미 그를 향했습니다. 카제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온화한 빛이 가득했습니다. 익숙치 않은 것을 강요하고 가르치려 드는 건 역시 안 될 일입니다.
"그래도, 리스 공 또한 다른 신들과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언젠가는 깨닫길 바라오."
카제하는 몸을 일으켜세우며 나긋히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리스 또한 숭배되어 마땅한 존재인 '신'일터입니다. 카제하는 그녀가 응당 속해야 할 집단에서 스스로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리스가 만들어낸 환각을 봅시다. 바람이 불어오며 물이 찰랑이는 이 느낌이 마치 진짜같군요. 카제하는 잔잔하게 흐르는 호수의 한가운데서 무릎을 굽혀 앉았습니다. 투명한 청색을 띠는 고운 물결에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비쳐보입니다. 자리에서 다시 일어난 뒤 리스가 내민 손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도 같은 빛이 서려있었습니다. 새빨간 장미와도 같은 벚꽃잎의 색채가 정말로 아름다웠달까요.
"리스 공께서는 참으로 신묘한 신통술을 부리는구려. 정말 대단하오."
카제하는 주변을 둘러보며 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리스의 능력에 대해 순수한 감탄을 내뱉었습니다. 그녀의 신통술로 전개된 이곳의 모습은, 대단하다는 말로도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본인 또한 신통력을 써가며 이 숲의 아름다운 향취를 느끼고 있었소."
그는 고개를 살짝 숙였습니다. 곡옥이 고운 빛을 내며 반짝이자 그와 함께 사방에 바람이 천천히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숲의 나무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그 바람에는, 다솜의 온기와 향긋한 꽃 냄새가 담겨있는 듯했습니다. 수십 장의 보드라운 벚꽃잎이 바람에 가볍게 흩날려 호수 위를 장식했습니다.
온화하게 자신을 존중해주시는 카제하 님의 말씀. 나긋하게 덧붙여지는 말씀 역시도 자상한 따스함이 느껴져, 잠시 물끄러미 카제하 님을 바라보았다. ...저 또한 다른 '신' 님들과 동등한 존재... 무례한 생각이 감히 스멀스멀 자신의 마음을 장악하려는 것에, 숨을 잠시 멈추면서 생각을 저지했다.
"...감사합니다, 카제하 님."
희미하고도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꾸벅, 숙였다 올리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에 그치면서. 그리고 이어진 자신의 신통술인 환각 능력.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믿을 수 있을 듯이 생생한 호수는 잔잔하고 투명한 물들을 한껏 머금었고, 이내 벚꽃잎의 색까지 바꾸어내어 자신의 두 손바닥에 살포시 받아내었다. 만약 신통술을 이용 중이라는 것을 알리는 빛나는 구슬이 없었다면, 어쩌면 누군가는 벚꽃잎은 빨간색이라고 믿어버렸을지도. 그 정도로 마치 '현실'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다른 신 님들의 위대한 신통술에 비하면 제 신통술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랍니다. 그래도... 좋아해주셔서 저도 정말 기뻐요. 영광이예요...!"
헤실헤실, '신' 님께 무려 칭찬을 들었다는 사실에 솔직하게 기쁜 마음을 표현하면서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카제하 님께서 지으시는 환한 표정에, 자신 역시도 뭔가 '신' 님께서 즐거우시도록 도움을 드린 것 같다는 것 역시도 정말 기뻤으니. ...비록 이것은... 진짜가 아니라 그저 환상일 뿐이지만요.
그러다 카제하 님의 허리춤에 묶인 곡옥이 점차 반짝이기 시작하자, 그것에 멍한 두 눈동자를 크게 떴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불어오기 시작하는 바람. 사방에서 느껴지는 바람에는 따스한 꽃내음과 함께 봄의 청취가 담겨져서 실려왔고, 그에 벚꽃잎들 역시도 하늘하늘, 떨어지자 그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듯이 고개를 살짝 위로 들었다. 감탄의 빛이 어른거리는 두 눈동자와 한 시야 속에 그 모든 봄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면서.
순수하게 존경심과 감탄, 그리고 숭배가 어린 마음을 표현하며, 희미한 웃음과 함께 박수를 작게 쳤다. ...역시 카제하 님도 정말로 대단하신 신 님이신 것 같아요. 봄의 향기가 향긋해요. 두 눈을 감고, 불어오는 바람에 담긴 꽃내음을 간직했다.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는 머리카락도 기분이 좋았기에. 그러다 이내 다시금 감았던 두 눈을 천천히 뜨고, 카제하 님을 바라보았다.
"...다솜의 벚꽃나무 숲은 저도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다른 곳들도 정말 아름답고 예쁘지만요. ...아... 그럼 혹시 카제하 님은... 어디에 살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여기, 다솜에 살고 계신 건가요?"
카제하는 리스의 말에, 아무 대꾸 없이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곡옥의 빛은 꺼졌지만 바람은 여전히 숲을 고요히 감싸고 있었습니다.
"본인의 신통술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리스 공께서 칭찬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오."
카제하는 리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겸손하게, 감사의 표시를 전합니다. 그가 한 것은 작은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밖에 없었으니까요. 그저 나무와 풀들이 그에 맞추어 아름다운 춤을 추어줬을 뿐입니다. 이렇듯 바람이라는 것은 모든 생명을 따스히 품어주는 자연의 일부와도 같았기에, 카제하는 바람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세를 낮추어 호수의 물을 양 손 가득히 퍼올렸습니다. 곱디 고운 에메랄드색이었습니다. 분명 실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현실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저 감탄할 수밖에요.
"리스 공, 그대의 신통술은 분명한 허상이긴 하나 그것엔 아름다운 자연의 색채가 그대로 녹아있소. 이 모든 것이 설령 환상일지라도, 본인은 이 풍경이 썩 마음에 드오."
그리 말하곤 카제하는 가벼운 웃음을 입 밖으로 내뱉었습니다. 벚꽃잎 한 장이 바람에 휘날려 손바닥 위의 작은 웅덩이에 사뿐히 착지했습니다. 그는 모았던 손을 풀어, 웅덩이의 물을 호수로 흘려보냅니다. 시원한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기고 올라앉았던 벚꽃잎 또한 호수 속으로 사라집니다. 어느새 시간은 흐르고 흘러, 흩날리는 벚꽃잎들이 호수의 표면을 자유로이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카제하는 그러한 호수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본인은 가리에 산다오. 사방이 다채롭게 물들어 있고, 아주 고요하고 좋은 곳이오."
비록 그곳에 머물러 있는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가리라는 곳을 참 좋아합니다. 선풍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저마다 다른 색을 뽐내는 것을 보면, 다 같은 생명임에도 어찌 그리 다를 수가 있는지 절로 궁금해지는 듯도 했습니다. 카제하는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 아닙니다...! 카제하 님의 신통술은 정말로 대단해요. ...바람 씨를 다루실 수 있다는 것은 멋지고 위대한 일인 걸요. 방금처럼 자유로운 바람 씨에 꽃잎 씨들과 꽃향기도 가져오실 수도 있고..."
자신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시는 카제하 님의 모습에, 놀란듯이 드물게 곧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조금은 황급히 도리도리, 작게 젓던 고개를 이내 다시 위아래로 끄덕끄덕이기도 하면서. 두 손까지 꼬옥, 주먹 쥐면서 얘기하는 멍한 두 눈동자에는 진심 어린 존경의 빛이 반짝였다. 무엇보다도 새인 자신에게 있어서, 바람은 정말 중요한 존재나 다름 없었으니.
그러다 이어진 카제하 님의 말씀에, 잠시 멍한 두 눈동자로 카제하 님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마음에 드시는 듯한 모습. 가벼운 웃음소리마저 들려오는 가운데, 자신이 카제하 님을 조금은 즐겁게 해드린 것 같은 느낌에 결국 희미하지만 환한 웃음을 만면에 꽃피워냈다.
"...정말 감사합니다, 카제하 님. 그 말씀, 정말로 기뻐요. ...제 신통술은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이나 제 상상에 따라 좌지우지된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내 자신 역시도 허리를 숙여 호수의 물을 양손 가득히 담아올렸다. 그리고 다시금 빛나고 있던 구슬이 조금 더 환하게 빛나자, 이내 자신의 손 안에 담긴 작은 물 웅덩이에는 밤이 찾아와 어두운 색으로 바뀌어졌다. 그리고 바람에 일렁이는 잔물결에 부서지는 보름달의 모습. 그 모든 밤의 풍경들이 작은 두 손 안에 담긴 가운데, 이내 다시금 허리를 숙여 물을 다시 돌려보내주자 밤의 흔적은 한순간의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원하는대로 어느 정도는 작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혹시 보고 싶으신 것이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세요, 카제하 님. 제 힘이 닿는 한, 허상이라 하더라도 열심히 만들어내겠습니다."
'신' 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자신이 가진 작은 힘이라도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가리... 가리에 살고 계셨군요. 가리도 정말 예쁜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주 가본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들도 많고, 예쁜 낙엽 씨들도 많고... ...아."
이내 뭔가가 생각난 듯,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구슬에 천천히 가져다대었다. 그러자 다시금 구슬이 더욱 빛나면서, 점차 바뀌기 시작하는 풍경. 호수는 그대로였지만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는 벚꽃잎들은 차차 새빨간 단풍잎, 노란 은행잎, 그리고 바스락거리는 옅은 갈색의 낙엽들로 바뀌어 호수의 수면에 가벼운 일렁임을 자아냈다.
카제하 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상상하여 만들어본 자신의 허상. 빨간색과 노란색, 그리고 옅은 갈색이 다채로운 가운데, 다시금 천천히 두 눈을 뜨고는 카제하 님께 희미하게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은호님이 나에게 프로모션 영상이라는 것을 찍으라고 지시를 한 지 여러날이 지났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생각을 하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이 라온하제를 홍보할 수 있는 영상이 나올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잠시 생각을 한 끝에 나는 비나리에 있는 신과 나무를 키우는 과수원으로 나왔고, 그곳에서 내 신통술을 사용했다. 내가 사용한 신통술은 '텔레파시'. 떨어져 있는 신들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 연락을 위한 신통술이었다.
ㅡ비나리 지역의 관리자, 가온입니다! 모두들 들리십니까? 이번에 은호님이 맡기신 일 때문에 여러분들과 의견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이렇게 텔레파시를 보내겠습니다. 지금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비나리 지역에 있는 신과 과수원으로 와주셨으면 합니다! 오시는 분들에게는 신과도 많이 나눠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꼭 와주셨으면 합니다! 이상입니다!
연락을 보낸 후에, 나는 빠르게 신과 나무에 열려있는 신과를 따서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몇이나 올진 모르겠지만, 찾아오는 신들에게 신과를 나눠주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데,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테니까.
그렇기에 열심히 움직이면서 나는 발톱까지 동원해서, 그리고 늑대의 몸으로 변신해서 열심히 신과를 따서 바구니에 모으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목에는 은호님이 주신 비디오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그야, 이건 은호님이 나에게 쓰라고 준 것이니까 떨어뜨리면 안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열심히, 열심히 나는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신과를 모았고, 어느 정도 딴 후에, 다시 수인의 형태로 돌아온 후에, 그 바구니를 들고 천천히 과수원의 앞으로 향했다.
"..?" "은호님이 시키신 일..?"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시하려다가... 신과를 나눠준다고 해서 가려고 한 건 아니다. 아니라고. 그저 시간이 없지 않은데도 안 가면 자기 자신이 세워둔 기준에 맞지 않아서이다. 순간이동으로 부드럽게 비나리 지역으로 가서는 가온을 바라봅니다.
"은호님이 시킨 일이 뭐야?" 느긋하지만, 상당히 장난스러울 정도의 생글생글거리는 웃음인 것 같습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한가롭게 나뭇가지에 걸터앉아있던 중, 갑자기 자신의 머릿속에 '텔레파시'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가온 님...?
언제나처럼 은호 님의 목소리이실 줄 알았는데...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내 곧바로 날아갈 채비를 마치곤 두 날개를 펼쳐내었다. 은호 님께서 맡기신 일에 대하여 가온 님께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그 두 '신' 님을 위해서라도 꼭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나름대로는 빠르게 도착하게 된 비나리의 신과 과수원. 저번에 와본 적이 있던 만큼 길을 잃거나 하지 않고 한 번에 찾아왔다. 그리고 그 과수원의 앞에서 가온 님과 다른 신 님들을 조용히 기다리기 시작했다. 두 손은 가슴께에 꼬옥 모은 채. 과연 무슨 일인지 조금은 걱정되고 기대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