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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가리의 관리자라는 밤프의 말에 거므누리는 그에게 예를 표했다. 진심으로 경의를 담아서 하는 인사는 아니었다. 밤프라는 가리의 관리자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라온하제 내에서 거므누리 자신보다 높은 자라는 것은 확실했다. 이렇게 예를 표하는 것은 손해될 일이 아니었다.
서로의 이름을 답하는 것은 거므누리에게 있어서 그리 익숙하지는 않은 경험이었다. 그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없기에 다른 자들의 이해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불필요한 일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특별한 인연을 쌓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편이었다. 미리내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지만 그곳의 관리자와 만난 적이 없을 정도로 연을 쌓지 않았다.
"형식적이고, 영혼이 없어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내 진심으로 사과하겠소."
그것은 거므누리가 자신의 감정을 되찾을 때까지 절대 고쳐질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밤프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할 생각도 없었기에 간단히 사과만 했다.
라온하제에서 가장 신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라고 한다면 바로 이 번화가라고 생각한다. 인간계에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놀거리가 많은 번화가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 신계에서도, 라온하제에도 그런 거리가 있다. 신들이 운영하는 가게도 있고, 물건을 살 수 있는 곳도 있고... 아무튼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 바로 이 비나리의 번화가이다. 물론 다른 지역이 번창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단 라온하제의 중심부는 비나리고, 그 중에서도 이곳이 제일 번화가라는 것 뿐.
아무튼 내가 여기로 나온 이유는 옷을 사기 위해서다. 그리고 방금 전에 옷을 구입했기에, 지금 내 손에는 여름 원피스가 들어있는 종이 가방 3개가 쥐어져있었다. 가온이가 들어주겠다고 말을 했지만, 혼자 다니고 싶었기에 필요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마, 어딘가에서 보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나오지만 았으면 상관이 없다. 가온이는 가온이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으니까. 엄마가 나의 보디가드로 붙이기도 했고...
그런 느낌으로 지금은 잠시 쉴 겸, 그늘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종이가방 안의 내용물을 바라보았다. 하늘하늘하고 예쁜 원피스. 응. 저택에 돌아가면 꼭 입어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두 눈을 초롱초롱 반짝였다. 엄마가 입는 한복도 예쁘지만, 나는 이런 옷이 더 좋은걸 어쩌겠어?
비나리의 번화가를 그리 크진 않은 건물의 옥상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어차피 아사는 눈이 상당히 좋으니까. 라고 합리화하면서 부웅 떠서 날개짓으로 스윽 날아갔습니다. 인계와 신계와.. 일단 누군가가 살고 있다라는 공통점이니 닮은 면도 있겠지요. 그걸 스쳐지나가며 할 일을 조금 했습니다.
"안녕안녕 누리...씨?" 그러다가 그늘에 앉아있는 그러니까 비나리의 연회에서 본 은호님의 딸이라는 누리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인사를 하려 합니다. 그러고보니 아사의 손에는 신과와 벚꽃 엑기스로 만든 에이드와, 직접 만들어서 가져온 탕후루(과일에 설탕 코팅으로 사탕처럼 만든 꼬지)가 있네요. 델라웨어 포도로 만들어 딱 한입크기란 게 장점입니다? 아마도 나름 수요조사같은 걸 할 생각인가 봅니다. 그렇게 적게 들고 온 시점에선 영 그렇지만요. 말을 건 게 약간은 왜 그랬으려나. 하고 고민하는 듯한 갸웃거림같은 게 있으니 말을 더 걸지는 않고 누리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벤치에 앉아서 쉬는 도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검고 파란 꼬리깃이 인상적인 이의 모습이 보였다. 찐한 아이라인도 특색이라면 특색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게 누군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거야, 다솜 지역의 관리자니까. 사실 어지간하면 이곳에 사는 신들의 이름은 다 외우려고 공부하고 있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나는 아주 가볍게 그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흔들었다.
"피아사지? 다솜 지역의 관리자! 만난서 반가워!"
무언가 이것저것 들고 있는 것 같은데, 먹을 것으로 보였다. 여기서 산 것일까? 아니면 직접 만든 것일까? 아무튼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반짝반짝 종류냐는 물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일까?
"반짝반짝 종류? 뭐야? 그게? 이 종이가방 말이야?"
뭔가 내가 들고 있는 종이가방을 보고 물어보는 것 같았기에 나는 그 가방을 살짝 열어 그 내용물을 피아사에게 보여주었다.
"짜잔! 여름 원피스야! 이번에 새로 입으려고 산 거야! 어때? 예쁘지? 귀엽지? 후훗."
피아사의 뜻을 들으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렇게 따지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이름은 이름일 뿐인걸. 살짝 고개를 갸웃하지만 그래도 그렇다고 하니 이해하기로 했다. 이름 안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종이가방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자 아사는 잘 어울리는지는 입어보기 전에는 모른다고 나에게 말해왔다. 그 말에 절로 볼이 부푸는 것이 느껴졌다.
"어울려! 귀여워! 옷가게에서 확실하게 입어보고 샀어! 거기 직원인 신도 잘 어울린다고 했어!"
내가 엄마의 딸이라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래도...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삐질 거야. 진짜로 삐질 거야. 그 옷가게는 다시는 안 갈 거야. 괜히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는 도중, 갑자기 아사가 나에게 뭔가를 내미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킁킁, 코로 냄새를 맡으니 달콤한 향이 번지는 것이 느껴졌다. 절로 눈이 초롱초롱 반짝이는 것을 느끼면서 아사에게 바로 물었다.
"나에게 주는 거야? 이거? 그래고 앵화영장이 뭐야?"
앵화영장? 비나리에서 파는 것일까? 가온이에게 물어보면 알려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일단 아사에게 물어보았다. 일단 나는 처음 듣는 것이니까...
"고마워어." 아이온 피아사의 첫글자와 마지막을 따고 아사고, 피아사의 아사라고 해도 좋은 것이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누리가 하는 볼이 부푼 듯한 말에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그렇지만 난 입은 모습을 못 봤는걸?" "입은 모습을 시뮬레이트 하면 모를까..?" 시뮬레이트 할 수 있으려나. 라고 중얼거리면서 음음...하고 팔짱을 끼며 생각해봅니다. 한 번 다이스를 돌릴다면 공정하려나요? 라는 벽을 넘은 말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그리고 내민 것을 주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앵화영장이 뭐냐는 물음에
"응. 탕후루.. 음.. 간단히 말하면 과일사탕이야. 설탕코팅한 거야" "벚꽃잎으로 만든 수영장이야. 영어식으로 하면 체리 블라썸 풀 정도려나. 다솜지역의 관리자가 되어서 만들어봤어." 신통술를 퍼부은 수준인 것 같지만(정화+현상유지+공간감왜곡 등등), 진짜 수영장은 아라 지역에 많을 거잖아? 그러니까 앵화로 수영장을 만들었어. 푹 잠기면 벚꽃에 감싸여서 잠드는 기분이 들지도. 라고 말해보려 합니다. 그걸(탕후루나 에이드를) 옆에서 팔거나 준다거나 할 것 같아? 라고 말합니다.
물론 신통술을 쓰면 옷을 갈아입는 것은 매우 간단하지만, 지금 입고 있는 이 옷도 마음에 드는걸. 그렇기에, 딱히 신통술을 쓸 생각은 없었다. 오늘은 이 옷을 입고 다음에는 이 녹색 원피스를 갈아입고 외출할 생각이다. 그때 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것을 떠나서, 탕후루라는 것을 듣고 탕후루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어쨌건 달콤한 것이라는 것은 잘 알 수 있으니까. 잘 먹겠습니다! 조용히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냠하고 먹으니 달콤한 맛이 절로 느껴져서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 와중에 들려오는 또 하나의 설명. 벚꽃잎으로 만든 수영장이라는 말에 나는 절로 그 모습을 떠올려봤다. 직접 보진 않았으니 알 순 없지만, 확실한 것은 엄청 예쁠 것 같은 느낌에 절로 눈빛이 반짝였다.
"후훗. 그렇구나. 언제 한번 가보고 싶어. 엄마에게 권해서 같이 가볼까? 관리자는 자신의 권한으로 얼마든지 그곳의 지형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고 거기에 뭘 만들어도 상관없으니까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해. 너무 억지로, 말도 안되게 바꾸면 안되지만 말이야."
그러고 보니, 다른 이들은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소를 짓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건 그렇겠지. 여기서 갈아입으면 그건 또 그럴 거니까." 그럼 그 때 보면 예쁠지도? 안 예쁘면.. 음.. 안 예쁘진 않을지도. 어울리지 않을 순 있겠지만? 이라고 말하면서 탕후루를 맛있게 먹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끄덕거립니다.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어서는 누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느낌입니다. 눈은 생기 자체가 없기는 했지만 기묘한 감정이 서린 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벚꽃잎이 엄청 많아서 그걸 모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만들었어." "한없이 넓은 듯한 느낌도 줄 수 있기도 하고?" 라고 말하면서 언제든지..아니 막 새벽 2시같은 시간만 아니라면 언제든지 와도 괜찮아. 라고 말하며 꼭 와본다는 말에 와아아 하는 환호성..이라기엔 힘없는 무난한 말투로 말합니다.
"앵화영장의 장점은 안 젖는다는 걸까아.." 단점이기도 할지도? 라고 고개를 갸웃하자 모자 아래로 늘어진 긴 더듬이가 흐늘거립니다.
왜 계속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 거야. 내가 입어보고 거울을 볼 때 얼마나 예쁘고 귀여웠는데.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흘겨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나중에 엄마나 가온이에게 보여주고 귀엽다는 말을 들으면 되는 거니까. 다른 이들이 뭐라고 평가해도 내가 좋으면 그만인걸.
아무튼 그 벚꽃잎으로 만든 수영장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들으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새벽 2시라니. 난 그때 자고 있어서 갈 일이 없다. 엄마라면 정말로 할 것이 없으면 가서 구경정도는 할지도 모르지만, 엄마는...아. 그때 주무시진 않는구나. 달을 보고 계시니까.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 젖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그건 그렇겠네! 벚꽃잎으로 만든 수영장이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꼭 다음에 보고 싶어! 다솜 지역에 가게 되면 아사가 있는 곳에는 꼭 가도록 할게!! 신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간다는 의미로 신의 이름을 걸면서 나는 다시 아사가 준 것을 먹어보았다. 너무 맛이 좋아 꼬리가 절로 살랑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완전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달콤해! 맛있어! 행복해!
"흐응...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는 보기 전까지는 모르니까. 그것 뿐이야?" 나도 딸이 있었다면 이런 느낌을 받았을지도 몰랐을까나- 라고 농담처럼 말하면서 우후후 웃었습니다. 그리고 신의 이름을 걸고 오겠다는 것에 눈을 깜박이면서 그렇게나 할 필요는 없는데.. 라고 생각합니다.
"응. 안 젖어. 벚꽃잎이 으깨지면 모르지만 현상유지니까." "잘 먹네.." 누리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응. 기분이 좋아. 그렇지? 누리가 하는 다솜 지역이 잘 흘러갈 것 같아서 안심이라는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평화롭게 잘 흘러갈거야-" 그렇지만, 그렇게 되어야 하고. 라는 덧붙이는 말은. 기묘하리만치 차갑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