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성명은 의외로 아지트 밖에서 더 많이 하게 되더군요. 경찰서 앞은 아무리 그래도 의외성이 좀 지나친 것 같긴 하지만."
저번에 통성명한 해그러스라던가, 앞으로도 종종 겪게 되지 않을까. 아닐수도 있기야 하겠다. 앞 일은 모르는 것이므로. 적어도 경찰서 앞에서 웃으며 통성명을 하는 경험같은건, 앞으로도 종종 일어날 일은 없는 드문 경험축에 속하겠지.
"상담사 버몬트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래뵈도 발이 꽤 넓은 편이거든요. 아니, 귀가 넓다고 해야 하려나?"
사무소도 정리하고 탐정일도 때려치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있던 정보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닐 뿐더러 이미 조사해둔 내용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당연히 각계의 유명인사들에 대해서는 줄줄 꿰고 있다. 너무 대단하신 몇몇분들의 내밀한 비밀따윈 아무래도 잘 모르지만, 애초에 알아볼 생각도 필요도 없었다. 단탈리안은 괜한 위험을 감수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재능 기부라, 간단한듯 하면서도 꽤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시네요. 기분따라 한두번이면 몰라도,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
그래도 그정도는 되는 인물이니 나름대로의 평판을 쌓을 수 있던거겠지. 단탈리안은 일축했다.
괜찮으냐 묻는 남자의 말에 호즈노미야 라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눈을 한 번 깜빡여 이상 없다는 제 의사를 표했을 뿐이다. 아프지 않은데 괜찮다 않다 할 것도 없었다만 단지 흘러내린 피가 머리카락에 들러붙어 끈적거리는 건 썩 상쾌한 기분이 못 되었다. 좌우간에 그 기분은 제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이겠지. 대답 대신이라고 해야 좋을까, 호즈노미야 라나는 제 후드티에 달린 주머니에서 낱개 포장이 된 박하맛 캔디를 하나 꺼내 남자에게 내밀었다.
" 고맙습니다. 사례라긴 뭐하지마는 지금 가진 게 없어 일단 이거라도 드리려 합니다. 받아주시겠습니까. "
상대의 말에 조디악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하긴, 그 자신조차도 지금 이 시각에 경찰서로 올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아지트에 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은 자기 볼일만 보고 나가는 경우가 더 많을 테니까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확실히, 경찰서 앞에서는 정말 의외군요.”
사내의 경우에는 분명 후자였다. 호출이 있을 경우나, 특별히 볼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자신의 집이나 사무소, 간혹 공원을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다수니.
“탐정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뛰어난 정보력 아니겠습니까. 발이 넓다고 표현을 하던, 귀가 넓다고 표현을 하든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래도 자신을 아는 것은 사내에게 조금 쑥스러운 일이었다. 일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될지 사내가 어떻게 알았을까?
“뭐, 솔직히 The Noom에 들어온 이후 신경을 쓸 일이 이것저것 생기다 보니 약간 힘이 들기도 합니다. 조금 특별한 경우긴 하지만 오늘 같은 일도 있고요. 음,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으니 가서 마저 이야기할까요. 마침, 좋아하는 곳이 바로 근처에 있으니 그쪽으로 가죠.”
사내는 걸어 나가기 시작한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참으로 무더운 날씨기에 목덜미로 땀 한줄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기에, 더 서 있기는 싫었다.
단탈리안 역시 근처 지리는 제법 잘 알고 있는 편에 속했지만, 사준다는 사람이 장소를 고르겠다는데 이의를 달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기에 잠자코 따라갔다. 아무리 저렇게 사람이 좋아보여도 더운건 역시 더운거고 불쾌한건 불쾌한 것이겠지. 관계라는 요소가 엮이지 않으면, 의의로 인간의 가치감각은 제법 일관성이 있다. 재미있게도.
단탈리안은 메뉴판을 대충 훑고는, 아이스 카페라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옛날옛적에는 진동벨이라는 게 있어서, 그게 울리면 직접 가져가던가 하는 식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세상에서는 영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로봇이 알아서 대부분의 일을 처리해주니 굳이 그런 일을 직접 할 필요따윈 없으니까. 덕분에 주문만 전달해두면 이렇게 마음놓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아까 끊겼던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확실히 조직에 들고나서부턴 이런저런 일들에 엮이게 되는 면은 없잖아 있죠. 저도 뭐 그리 오랫동안 조직에 속해있던 것도 아닐뿐더러, 최근에는 개인적인 일을 좀 하느라 조직쪽 일은 소식을 들은 것 뿐이라서, 현장에 투입됐던 인원들쪽 이야기가 좀 듣고싶은데 기회가 안 생기네요."
소문은 신빙성이 너무 낮다. 현장인원의 진술인들 왜곡이 없지는 않지만, 그 왜곡조차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경우가 가끔 있으니, 그편이 훨씬 낫다. 적어도 원하는 주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으므로. 개인적인 허영이나 이런저런 욕구따위의 영향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정도도 걸러낼 능력이 없으면 탐정을 자처할리가.
높아. 한 번도 못 본 새로운 땅이 보이고, 새로운 밤이 보였더란다. 자네에게 있어서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를 찾을 줄 누가 알았겠는지. 누가 혀를 차며 비웃는 소리가 들린 듯 싶다. 파브닐은 고개를 끄덕였다. 갇혀있었지. 늘 이름이 불리면 자다가도 깨야만 했고. 온통 새하얗고, 가끔가다 폭발의 잔해나 붉은 피가 흐르긴 했지만 금세 하얗게 변하곤 했다. 사람도 희고, 모든 것이 하얀. 정신에 이상이 생겨도 뭐라고 하지 않을 정도로.
"응."
아저씨. 오, 사장님의 속을 그렇게 후벼파면 못쓴다네. 파브닐은 거기서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 침묵했다.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는 듯 눈동자가 멍했지. 뭘 했더라....무엇을 하였는지 기억하는가, 식스?
"무슨 부탁이라도 들어주는 걸 배웠어요."
파브닐은 고개를 기울였다. 맞는 말이지. 무슨 부탁이라도 들어주었지 않았나.
"소장님의 곁을 맨날 따라다녔고..소장님이 맨날 나보고 아들이라고 했어요. 귀중하다고 했나..아무한테도 넘길 수 없는 귀중한 연구자료라고 했는데...모르겠어. 으응. 거기까지밖에 기억이 안 나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서늘함에 조디악은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기 두려운 날씨가 이어진다. 불쾌지수도 자연스럽게 높아지니, 아무리 그라고 해도 오랜 시간 밖에 서 있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메뉴판을 볼 필요도 없이 자신의 음료를 주문하고 계산까지 끝마친 사내는 먼저 자리를 잡은 단탈리안을 마주 보고 앉았다.
“아.”
잠깐의 곤혹스러운 표정이 조디악의 얼굴에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왼손에 찬 손목시계를 툭, 툭 하고 가볍게 친 사내는 정리되지 않은 몇 마디를 내뱉는다.
“현장 투입, 확실히 한 번 하기는 했죠. 그런데, 그게 참, 이상해서.”
툭툭 끊기는 말 이후에 잠깐의 침묵.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사내는 상대가 전직 탐정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내고, 그가 이상한 일을 많이 겪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 번뿐이지만 확실히 현장에 투입되긴 했습니다. 중무장한 3인 집단이 스무 명 정도 되는 유치원생이 타고 있는 차를 빼돌린 채로 사라졌다는 사건이었는데, 이상한 것은 그 집단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죠. The Noom의 정보망을 통해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고 그곳으로 다른 인원들과 함께 투입되었는데- 납치범들이 전부 사람이 아닌 안드로이드였습니다. 이미 다른 인원들에 의해 안드로이드는 전부 파괴되었고, 그 잔해로부터 어떤 단서나마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보려 했지만, 이상한 남자가 뜬금없이 나타나질 않나, 그 남자가 죽으니 안드로이드의 잔해도 감쪽같이 사라지질 않나 정말. 하, 이상하다니까요.”
앞부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뒷부분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가시나요? 조디악은 그렇게 덧붙이며 이야기를 끝냈다. 본인도 아직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혼란스러운 것이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요즘같은 세상에, 이런 뒤가 구린 동네에서는 그렇게까지 드물다고 할 일도 아닐 것이다. 오버테크놀러지라는건 어느쪽이건 편리를 보장해주게끔 발전해왔으니. 그러니 과하다는 접두사가 붙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의 가치중립성이라 한다면 아직도 이어지고 있을 만큼 역사가 깊은 주제겠다만은, 굳이 그쪽에 신경쓸 필요는 없겠지. 중요한건 결과물이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파악해서 조치하는 것일 것이다.
"사건 자체야 그다지 있을 수 없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어지지 않은 정보가 너무 많네요. 도데체 제보자는 누구고 또 중무장한... 아니, 안드로이드와 그 관련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목적은 무엇이며.... 도데체 그 남자는 무슨 연유로 그렇게 덮어놓고 죽였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해결사라는게 죽였다 끝! 해결! ...이런 편리한 전개가 보장된 것만은 아닐텐데. 힘은 언젠가 더 큰 힘에 찍어눌리게 마련이다. 단탈리안의 그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나름의 삶의 지혜같은 것이다.
"그나마 조사해볼만한 요소라면 그 유치원이나 유치원생에 대해서겠네요. 조직에도 머리는 있을테니 죽은 남자의 신원이나 특이사항따윈 이미 조사했을테고. 요즘같은 세상에 정말 작정하고 덤벼드는 놈들이면 그 시체도 생체신호가 끊기면 작동하는 극악한 장치로 날려버리는 경우도 몇번인가 듣긴 했습니다만, 다행히도 그건 아닌 것 같네요."
단탈리안이 보기에 눈 앞의 신사는 제법 혼란스러워 보였다. 하기야, 열 길 사람속을 들여다 본들 그 뒤틀린 속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따윈 그다지 볼 일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환자는 그런 마음의 뒤틀림을 병이라고 인식하고 거부하고 있다는 의미니, 이런 일을 벌이는 일도 드물었겠지.
"적어도 유치원은 한번쯤 찾아가볼 가치가 있겠네요. 조사해보고 싶은게 있습니다. 혹시 납치 사건이 발발한 시각에 대해서는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곳에서 읽어본다면, 의외로 유의미한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탈리안은 새삼 자신의 안일함을 자책했다. 좀 더 일찍 나섰더라면 조금은 더 괜찮은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사장님한테는 관심이 크게 없었으니. 좋은 사람이란걸 알긴 하지만, 그거면 충분하잖아. 굳이 주변 사람들 하나하나 신경 쓸 필요가 있던가? 거기서 무엇을 했냐는 물음에 이어지는 침묵과 쏟아지는 이야기. 허공을 향한 시선을 꼬마에게로 흘끗이던 그녀는 괜히 물어봤나. 생각하며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그냥 실험체였네."
귀중한 연구자료니 뭐니에, 바깥도 못나가봤다라. 가둬놓고 제것처럼 사용하려고 했나본데. 눈을 두어번 깜빡이던 그녀는 흠. 소리를 내며 파브닐을 제 무릎 위에 앉히려 한다.
처음 정보가 주어졌을 때부터 이상한 점이 있는 일이었다. 그 이상함은 실제로 현장에 간 이후부터 하나둘 불어나기 시작해 도무지 알 수 없게 끝난 일이지만.
“그렇죠. 주어지지 않은 정보가 너무 많죠…. 그 남자를 죽인 거야 아무래도…. 이 조직 자체가 어떠한 절차가 딱 있기보다는 단순무식하게 쳐부수는 식으로 해결하다 보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사건 현장에 뜬금없이 나타난 수상한 인물이고 이쪽을 공격하기도 했으니…. 다들 덮어두고 죽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죠. 호전적인 인물들도 워낙 많은 것 같으니.”
여전히 혼란스러움을 내비치며 사내는 말을 끝냈다. 이어지는 상대의 말에 혼란스러움은 가속되다 끝끝내 실례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 하고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고 마는 것이다.
“제가 본 그것을 그대로 공유 할 수 있다면 해드리고 싶군요. 이 일에 대하여 보고를 받은 사장님께서 조사를 해 보시겠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시긴 했다만, 얼마나 진척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따로 말씀도 없으시니.”
조디악은 잠시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런 상태로 차가운 것을 마셨다가는 머리가 잠깐 굳어버리는 거 아닐까, 하는 시답잖은 상상을 했다가 말을 잇는다.
“따로 조사를 해 보는 것도 좋은 방식이겠죠. 하지만 큰 도움은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에게도 정보는 그다지 없어요. 처음에 들은 정보도 ‘3인조 무장집단이 유치원생들이 타고 있는 차를 강탈해 달아났는데, 연락도 오지 않고 잠적을 했다.’ 이게 끝이니 말입니다. 조금 웃기죠. 사장님께 직접 물어보시는 게 빠를 것 같군요.”
마찬가지로 혼란스럽지만, 이대로 혼란스러워 하기만 하다가 끝내기엔 탐정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하질 않는다. 지나치게 부족한 정보에 대해서는 적어도 자신이 들어 알고 있는 사장의 성향을 고려하여 판단해보자면 '섣불리 파고들면 위험한 안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높기는 하지만, 적어도 실제로 그러한 것인지의 여부를 사장에게 묻는 정도는 위험하다고까지 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쉬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전이 발발했던 시간대와, 장소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이래뵈도 탐정으로서는 꽤 도움이 되는 능력이 있는지라. 예를 들어 이 테이블에 잠깐 손을 얹으면..."
한 시간 전.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더니 손님이 있었다. 꽤 잘 나가는걸까, 아니면 우연일까.
"한 시간 전 이 자리에는 한 쌍의 커플분이 머물러 계셨네요. 대강 말하는 것 같다면, 오너분께 질문해보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