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식욕이 없었다. 원체 적게 먹기도 했거니와 그에게 있어 식사란 훈련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지 오래였기에 그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요즈음 그는 식욕이 부쩍 늘었다. 자신 스스로도 놀란 그의 변화에 그는 기쁨과 슬픔을 같이 느꼈다. 이 평화에 안주해 버린 것이 슬펐지만 그에게 있어 이러한 변화가 가문과의 접점이 하나씩 사라진 다는 점은 꽤 마음에 들었다. 어찌되었든 결론적으로 그는 무언가를 먹고 싶었기에 그림자 안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첫째는 지금이 식사시간이 아니라는 점이었고 두번째는 그림자에서 방금 기어나와 그림자의 잔해들이 물처럼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시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에 젖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었지만, 검은색 덩어리가 떨어지는 모습은 그 누구도 반기지 않을 모습이었다.
그는 내심 당황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채 가장 구석진 창가쪽에 앉아 자판기에서 뽑은 녹차를 홀짝였다. 그는 새삼 서글픔을 느꼈다. 배고프다라는 느낌과 함께.
그는 버릇이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을 관찰하는 버릇을. 그에게 해가 될 사람인지, 변장한 사람인지 알아 봐야 했기에 그는 언제나 단련하고 잊지 않으려 했다.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건 여자를 쳐다보았다. 공허한 두 눈으로 조용히 바라보았다. 눈은 연한 보랏빛의 신비스런 눈동자에 살짝 짧은 듯한 베이지 색 머리. 특이하게도 메이드라고 불리우는 가사도우미의 옷을 입고 있었다. 키는 꽤 작은 편이었다. 자신과 머리 2~3개는 차이나 보인 듯한 정도의 키. 그는 고민했다. 이 여자는 나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그는 단숨에 결정을 내렸다. 이 여자는 나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보았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컵라면과 나무 젓가락. 아마 하나만 들고 온 것을 보니 그녀가 먹을 것을 나눠주려는 것 같았다. 그는 속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입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저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했다.
"별로."
그는 흥미가 당겼다. 이 꼬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이번기회에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말했다.
그는 맞은평에 앉은 소녀에 대해 고민했다. 이 소녀는 뭘 원하는 것일까. 단순히 이야기를 원하는 것인가라고. 숫자 1121. 아이리.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리라고 불러달라면 그렇게 불러줄 의향이 충분히 있었다. 단순히 이름이라면.
"미안하지만 난 사람을 상대하는게 서툴다."
그는 그래서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어떻게 살아갈까 보다는 오늘 하루 무엇을 해야될 지 고민하는 것이었고 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는 점이었으므로. 그는 소녀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무서운 인상의 남자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그 기대에 부흥할 수 없다는것에 대해.
그는 뚜껑이 닫힌 라면을 관찰했다. 적당히 온기가 올라오는 컵라면의 뚜껑을 뜯고 나무 젖가락을 뜯어보았다. 그리고 그는 한 입 입으로 가져갔다. 그에게 있어 조금 심심한 편이었지만 투정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그는 생각했다. 밝은 아이로구나 라고. 그와는 정 반대의 성격. 밝고 활동적인 아이와 어둡고 실용주의적 인간. 그에게 있어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그는 몇 젓가락 더 입에 넣넣은 후 국물을 마셔 보았다. 원래 라면은 이리 심심한 것인가 생각하며 다 먹은 컵라면 용기를 구석에 밀어놓고 녹차를 마셨다.
"심심하군."
그는 불평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는 배려라는 것을 어려워했기에 단순히 입에서 맴도는 말을 말했을 뿐이다. 그는 솔직한 감상을 좋아했다. 허레허식은 그에게 필요 없는 행동이었고 사람들과의 대화는 사무적인 대화만을 해왔기에 간단명료하게 말하는 것 뿐이었다.
그는 간신히 입에서 맴돈말을 꺼내지 않았다. 자신은 구원받지 못하겠지라는 말을. 그는 묵묵히 그 말을 다시 삼켰다. 그는 속내를 내비추는 것을 꺼려했다. 정확히는 두려워 했다. 속내는 약점이고 휘둘리기 쉬운 어린아이 같았다. 그 자체로도 위험한 존재였다. 그의 이름을 지어준 이는 그의 [묵음] 이었으니.
"뭐든 먹을 수 있다면 상관 없다. 녹차도 마찬가지."
그는 반찬투정을 해본 적이 없다. 그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뭐든 괜찮았고 음식을 섭취할 수 있다는 사실로 만족했다. 맛에대한 판단은 없었다. 달고 짜고 시고 맵고의 개념은 알았지만 그 조화에 대해서는 알 턱이 없었다. 그가 자라온 환경은 영양소를 중요시 여겼기에.
"아이리. 물어보지."
그는 입을 열었다. 그는 궁금했다. 왜 가사도우미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아는 한 이 곳의 직원중엔 저 옷을 입고있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