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파브닐은 방금 단어의 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자신의 몸이 들어올려지자 동그란 눈으로 바닥을 쳐다보았더라지. 사람인데도 높다! 싫으면 말하라는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더라지.
"좋아! 엄청!"
딱 네 글자를 내뱉었음에도 목소리는 세상을 가진 듯 싶다. 높은 거 좋아! 바깥도 좋고, 높은 것도 좋고, 먹을 것도 좋고. 싫은 게 무어가 있을까마는. 휴게실을 기웃기웃 고개를 돌려 둘러보던 파브닐은 문듣 창문에 시선이 꽂혔다. 바깥이 예쁘다. 밤에 나가본 적이 있었나? 위험해서 안 된다고 했었지.
"..밖!"
파브닐은 창문을 가리켰다. 사람 하나는 넉넉히 나갈 크기였나? 이런 창문이 대체 왜 있는진 모르겠다만.
무슨 아빠야 아빠는! 진짜 그런 정신 나간 여자 남편이 되느니 차라리 성전환에 성형수술 하규 엘리고스한테 프로포즈하고 말겠다! 어우,상상만해도 무섭다. 머리를 쎄게 후두려 맞은 느낌이야. 게다가 내가 말야,어? 나이가 아직 40도 아닌데 뭔 나이가지고 사람을 까는건데?! 나이 70까진 청년이라고 청년,그래서 어디어디 청년회 가보면 나이 많은 아재들 있는게 그래서 그런거라니까.
그리고 말야,담배는 도저히 못끊는다. 임마,이렇게 기분 좋은 물질을 어떻게 끊을 수가 있냐고?!
"냐하하핫★ 미안하지만 저는 호흡기쪽 의사가 아니라 신경외과 전공의라서★ 담배 그거 몸에 해로운지 잘 모르겠슴돠아. 아니,솔직히 말하면 몸에 좋은거 같은데요? 식후땡은 불로초인거 모르나 마."
애초에 전공도 다르다고,그건 호흡기쪽 의사한테 가서 따지지. 왜 나한테 따지는거냐아아아. 걸레를 찾는 1121에게,나는 진단실 한구석에 있는 청소함을 가리키고 늘어져라 하품한다. 그리고 1121에게 한마디 한다.
"빨리 닦고 임마,반성해,반성. 감히 나를 너희 엄마 남편으로 만들려고 하다니,그리고 니 아빠는 따로 있잖아. 다른데 계신 너희 아버지가 들으면 펑펑 울겠다★"
나는 그리고 냉장고에서 바나나 우유를 하나,둘,세개를 꺼낸뒤 빨대 포장을 벗기고 팟 팟 팟 바나나 우유에 꽂는다.
"으잉. 우리 엄마 까지 말아요! 비록 나한테 인체실험... 을 감행하기는 했지만! 그렇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요! 생활력이 좀 떨어지고 빠루를 늘 들고다닐 뿐 나쁜 사람은 아닙... 아니, 잠깐만. 내가 까고 있네...? 아무튼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만 깔 수 있거든여!"
그리 크지는 않겠지만 어쨌던 언성을 높여버렸어요. 아니 글치만 우리 엄마를 까다니! 이 오빠야가 나쁜겁니다. 네! 제가 나쁜 게 아니에요! 절대루절대루절대루 아니야! 아니 뭐 나보다 나이 많고 선배인 사람한테 짜증내면 약간 하극상 같기는 한데. 그렇지만 그게 뭔 상관이야 이 사람이 먼저 우리 엄마 깠는데! 우리 엄마는 나만 깔 수 있어요!
"......그리고 오빠야 진짜 내 아빠뻘이잖아요."
피이. 입을 비죽비죽거려보았습니다. 내 아빠뻘이면서 나를 막 갈구고 막 아이고 이 의사가 사람잡네!!! 아이고 세상사람들 여기 닥터 진통제 아저씨가 나한테!!! ...같은 식으로 외치면 안돼겠지. 까이겠지!
"그리고 식후땡은 불로초요? 그래요 불로초겠죠... 사람을 불사로 만들긴 하겠네 아주. 그렇게 쭉쭉 피우다가 아주 주변사람들한테 욕 얻어처먹고 오래오래 살겠네 아주!!! 아저씨 쫌 그만 필 생각은 없어여!?"
무슨 고양이가 캭캭대듯이 짜증을 내버립니다. 왜 고양이가 캭캭대듯... 이냐구요? 전 귀여우니까요. 난 귀여우니까 아주아주아주 귀여운 고양이님에 비유해도 괜찮... 지가 않겠군요.
"아니 그리구! 저 아부지 읎거든여! 아부지 이름도 얼굴도 모르거든 이 아저씨야! 아... 진짜."
어라, 눈 앞이 흐려져요. 일렁일렁거려요. 이내 눈물이 또르륵. 그래도 우는 걸 들키고 싶진 않으니까 청소함으로 타타탓 달려가서 걸레를 찾아다가 적당히 바닥을 닦기 시작해요. 그래도 우는 소리가 새어나가진 않을까, 눈물이 뚜욱 뚝 떨어져서 닦아야 할 곳이 늘어나진 않을까 고민이 되어요.
어짜피 또 피게 될텐데 뭐하러 금연을 하냐★ 그리고 욕은 너만 한다구요 요 요 꼬맹이야★ ...다들 아프게 수술할거 알아서 담배 피는거 가지고는 뭐라고 안하걸랑. 그리고 다음에 들린 말은 살짝 충격이었다. 아,예전에도 살짝 들었던거 같긴 한데...얘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뭔가 잘못 해버린거 같구만. 1121은 열심히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고,나는 그동안 요 꼬맹이한테 뭐라고 할까 살짝 고민한다. 음.
마침내 1121이 핏자국을 전부 닦아내자 나는 손짓한다. 그리고 내가 앉아있는 책상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피 많이 흘렸잖아. 포도당 섭취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 빨대 꽂아둔 바나나 우유 세개를 척 내밀면서 말한다.
"아프면 링겔 주사 맞는 애들 있는데 그거 다 헛고생이에요,그냥 바나나 우유 3개쯤 마시면 피로 싹 풀리고 기운 확 난다. 피 많이 빠졌었으니까 이거 먼저 마시고-"
나는 그리고 책상 서랍에 넣어뒀던,편의점에서 사온 카스테라도 하나 던져준다. 헌혈한 사람도 빵이랑 우유 먹여주는데,피를 그렇게 흘렸으니 일단 뭘 먹여야지. 그렇게 빠진 피 다시 맹글라고 먹을거 던져주고 난 다음,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 한마디 무심하게 툭 던진다.
입을 여전히 비죽비죽대면서도 계속계속계속 닦아요. 이윽고 눈물은 멈추네요. 으응, 괜찮아. 애초에 나는 아버지라는 거, 필요 없었어. 애초에 내 인생에 아버지라는 건 없었는걸. 애초에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도 않았어. 내가 태어나게 해준 것 외의, 그 외의 관여는 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아버지 없이 태어난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고마워여. 근데 난 커피우유가 더 좋은데."
이 상황에도 장난이 나오는지 제 취향을 피력해봅니다. 솔직히 저도 좀 어이가 없네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할 수가 있나? 이렇게 말해도 괜찮은가? 이내 카스테라도 받아서 암냠 먹기 시작합니다. 마시쪙...... 아, 아니! 이러면 안돼! 이 나쁜 아저씨한테 받는 건 독이 들어있을지도 몰라여! ......그렇지만 일단은 호의에 감사해야죠.
"......넹?"
...아니 잠깐만, 이 상황에 아빠 얘기는 왜 나와? 미안하지만 거절합니다. 거절... 거절할거야.
"...싫어요. ......애초에 처음부터 없었던 거니까, 이제와서 누군가로 대체되려 한다 해봤자 처음부터 없었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을 리 없잖아. 애초부터 없었던 건데, 이제와서 생긴다 해 봤자... 가족애같은 거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러니까 싫어요. 거절할래요. 거절할래...... 싫어. 아저씨가 싫은 건 아닌데 말이지. 근데 솔직히 오빠야가 여태까지 나한테 해왔던 짓을 생각해보면 영 아니올시다, 인 거에여. 오빠야가 나 갈구는 게 하루이틀인 줄 아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