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자리부터 옮겨야지, 벌써부터 '르노선배가 어린애를 괴롭히고 있어~' 같은 소문이 퍼지는 느낌이야. 볼이 발그레진 파브닐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던 그녀는 '안아서 가야되나..' 라며 중얼거리다가, 곧 고개를 젓는다. 잘못하다가 납치범으로 몰린다거나, 이상한 소문이 퍼지면 안되니까.
어느 날, 쓸데없이 배가 고팠습니다. 아 그냥 밥 안 먹고도 살 수 있었으면 조케따. 그르치만 그건 안돼니까여.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요리를 하러 주방으로 가서 채소를 썰기 시작했습니다. 썰기 시작했...
"므먴ㄴ에에ㅔ엌ㄹ어!?"
습니다만, 아쉽게도 제 손은 썰려는 대상을 잘못 안 모양입니다. 무척 쪽팔리는 비명을 지으며, 꼴사납게도 손을 베었습니다. 꽤 크고 아름답게... 말이죠. 왼손 손바닥이 싹 베여서 아주 아파요! 아플 땐 어디로 간다? 더 아프게 하지만 어쨌던 치료는 해주는 사람한테로 간다! 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저는 메이드복의 앞치마를 풀어 왼손을 감쌉니다. 벌써 분홍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네요! 아, 예뻐... 가 아니라! 아무튼 저는 달려갑니다. 치료를 받으러요.
"아- 저씨-! 치료 좀 해주셔요-!"
그리고 닥터 페인킬러 씨가 있을 방의 문짝을 확 열어제껴버린 뒤, 핑크핑크하게 물든 앞치마로 감싸놓은 왼손을 드러내보입니다.
"아저씨는 치료가 전문이잖아여?"
아니, 잠깐. 앞치마로 감싸놓은 것 부터 풀어야지. 아무튼 저는 치료를 받기 위해 왼손을 감싼 앞치마를 다시 풀 아니 잠깐만 피가 넘 많이 나는데?!?!?!?!!!! 지혈 지혈! ......다시 감쌌습니다. 아파여!
음음,다행히 주식도 오르고 있고★ 역시 떡상각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현실이 되는구나! 이제 주식으로 대박치면 이 고생스러운 인생도 이제 끝난다! 나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키득키득 웃고는,배맛 사이다를 얼음이 가득찬 유리잔에 쫘아악 따른다. 자아,이제 승리의 축배를 들자! 배맛 사이다를 쭈우욱 들이키려던 찰나.
"푸왓?!"
그 정신나간 메이드 꼬맹이가 진단실로 쳐들어왔다. 나는 너무 놀라서 마시던 사이다를 뿜어버렸고,동시에 사레들렸다. 쿨럭,쿨럭 소리를 내면서 휴지로 일단 책상부터 닦는다. 아오 진짜,이걸 확 그냥...
"나도 아프다. 너때문에 사레들렸 쿨,잖아,쿨럭,쿨럭."
목도 아프고 코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 죽겠다.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일단 이녀석이 피 흘리건 말건 책상부터 닦는다. 으으,사이다 흘리면 끈적거려서 싫은데. 그렇게 먼저 휴지로 책상 다 닦고,물티슈로 뒤처리까지 다 하고 나서야 손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요 메이드 꼬맹이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뭐하다가 다쳤엉? 별거 아닌걸로 다쳤니? 아니면 중요한걸로 다쳤니?"
별로 큰 상처는 아닌거 같긴 한데,도대체 뭐하다 다친겨. 아니,이 조직 조직원들은 별것도 아닌거 가지고 피 철철 흘리는 상처를 입는다니까.
홀로그램 연무장, 이전 군 시설에서도 많이 써봤지만 이렇게 방패를 들고 사용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방패를 사용하는 것은 오직 실전에 한해서만, 이라고 본인 스스로 규정해왔지만 그 규칙을 지키기엔 아무래도 더욱더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참, 남아일언중천금 지키기 힘드네."
불평을 터트린 그의 입가로 가볍게 미소가 지어지고,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총을 든 3명의 인영이 생겨난다. 홀로그램이라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지, 순식간에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그는 쉴드 렌치와 함께 매니퓰레이터에서 서브머신건을 뽑아든 뒤 적들을 노리기 시작하였다. 적이 먼저 총을 쏴오자 그는 서둘러 방패라는 이점을 살려 몸을 보호한 뒤 천천히 전진하며 서브머신건을 이용해 적을 견제하였고, 그 의도에 맞춰 그들 또한 서브머신건에 집중하게 되며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한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그의 생각이 끝마침과 동시에 그가 눈을 감는다. 동시에 여지껏 보이지 않던 파동의 흐름들이 하나둘 감각을 타고 흘러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희미하였으나 지금에는 천천히 그 감각이 깊어지며 그 느낌에 따라서 주변의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뭐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제대로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아주 희뿌연 느낌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마음의 눈으로 보라. 지금의 나는 거미다. 아주 단단한 갑각에 쌓인 거미!!'
그와 동시에 총의 격발음이 들려오고, 기다렸다는 듯이 엘리고스의 쉴드 렌치가 움직인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는 것일까? 그의 어깨로 총상이 스쳐갔다는 신호가 들려오고 홀로그램으로 경감되었지만 그에 준하는 전기충격이 어깨에 가해지자 그는 느낌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맞지? 나이는 못 속인다고."
무예란 길과 같다, 처음에는 가장 빠른 길을 달리기 위해 달리고 내달리지만 결국 한계가 찾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더 빠르게 달리려 하지만 결국 시간이라는 장벽에 틀어막힌다.
-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정답은..... 길을 새로 찾아야겠지."
엘리고스는 그 벽 앞에 서있었다. 나이가 너무 들었으니, 더이상 젊은 날처럼 싸우기는 글렀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길을 찾아가는 수 밖에.
정색. 딱 여기서는 살짝 정색을 빨 수 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성격이 드럽고 머릿속이 4차원인 인간이라고 해도...1121 얘를 따라 갈 수는 없잖아★ 그 뭐냐,진짜를 보고 화들짝 놀란 컨셉맨이 되어버린 느낌이야★ 참,요녀석을 어찌 해야하나-
"요리 하지마,니 요리 맛없어."
이건 너무 단호해서 단호박이 될 기세로 말한다. 아니,양심적으로 너무 맛이 없는걸 어떻게 하는데?! 엘리고스한테 좀 배워라 마,그 재수없는 녀석이 다른건 몰라도 요리는 진짜 맛나게 하든데. 걔가 해주는 닭카라아게랑 매운 카레 진짜 먹고 뻑가서 그거 해준 날은 최대한 수술 안아프게 해줬잖어. ...물론 다음엔 얄짤 없었지만★ 어쨌든! 그정도로 요리 잘하는 것도 아닌데,왜 식칼에 손베여가면서 요리하는건데. 엉?!
"얼씨구,잘하는 짓이다."
아주 2단점프 할기세로 방방 뛰고 이래저래 깨방정을 떠니 출혈이 멈추질 않아서 안색이 아주 새하얘지고,곧 이어 눈을 감고 쓰러진다. 아놔 진짜. 내가 이녀석을 확 그냥. 이러면 치료 안해줄 수가 없는데,그렇다고 요 요 괘씸한 녀석을 그냥 치료해주긴 싫고★
"...한까치만 피고 생각하자★"
가운에서 담배를 한개피 꺼낸 뒤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쓰으으읍,파아아★ 역시 이 맛이라니까★ 애를 앞에두고 흡연하는 나도 참 못돼먹은 사람이네,간접흡연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는데 말야. 으음,근데 이녀석은 간접흡연 당해도 싸다. 담배를 다 태우니 머리가 맑아진다. 좋아쓰,한번 움직여볼까.
"치유 삐이이임-★"
치료 안해주기도 뭐하지,이쯤되면,진단실 바닥에 피를 온통 흩뿌린 1121의 손에 초록색 치유빔을 쏜다. 그러자 상처는 싹 아물고,얼굴에 다시 혈색이 돌아온다. 물론,엄청 아픈 고통이 1121의 뒤통수를 쎄게 후릴테니 도저히 깨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내 1121은 눈을 떴고,나는 그 꼬맹이를 보며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