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전체적으로 위에서 봤을때 밑의 예시처럼 생겼다. ---------- ㅣ ㅁ=ㅁ=ㅁ ㅣ ㅣ □ [==] --[==]----
이렇게 생긴 곳 중에서 ㅁ=ㅁ=ㅁ 처럼 생긴곳은 크게는 본관,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왼쪽부터 구관/중앙관/신관으로 불리며 서로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본관의 아래에 있는 □은 운동장을 사이에 둔 체육창고와 체육관이다. 참고로 운동장과 체육창고를 감싼 것은 학교 울타리이며 [==]는 정문과 후문이다.
체육관: 어어어첨 넓다! 무대도 있고 해서 의자만 깔아두면 강당이 된다. 그래서 창고에는 접이식 의자가 많이 쌓여있다. 체육 관련 동아리들은 전부 여기를 시간대까지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나눠쓴다.
내부: 옥상을 제외하면 모두 공식적으로는 1~5층까지 다닐 수 있음.
중앙관~신관
1~2층: 교무실 및 교장실과 급식실이 있다. 여기서 뛰지 말 것! 선생님들한테 걸리면 잔소리를 듣는다. 3층: 아끼고 사랑할 고3들 교실이 있다. 수능일에 가까워지면 역시 이곳은 조심해야 할 곳이 된다. 동아리방 2개가 있다. 4층: 2학년들의 교실. 동아리방 3개가 있다. 매점이 있다♡ 5층: 1학년들의 교실이 있다. 동아리방 2개가 있다. 1학년들은 매 학기 초반마다 왜 우리가 꼭대기냐는 불만을 많이 토로한다.
구관: 매번 정기적으로 보수공사를 하고 청소라던지 기티 단장을 하긴 하지만 중앙관이나 신관에 비해서 디자인 자체가 낡은 느낌이 있다. 과학실, 미술실, 사진부 전용 암실, 제빵부와 조리부가 영역다툼... 아니 사이좋게 나눠쓰는 조리실 음악실, 연습실 등등의 특별한 시설이 필요한 교실은 여기있다.
오늘 비가 온다고 분명 듣긴 했는데, 했는데.. 귀찮아서 굳이 가져오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오네. 비 오는 것을 딱히 싫어하지도 않아서, 굳이 말하자면 좋아하는 편이라서. 해가 저물고 있지만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지안은 그저 생각없이 3학년 교실에 홀로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보면 뒤늦게 중2병이 온 센치한 여자아이 같았겠지만,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지안은 창밖을 보며 잔뜩 멍을 때렸다. 언제쯤 그치려나? 그치긴 하나? 안그치면.. 글쎄, 어떡하지.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있고 싶진 않았지만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도 달려와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어서 그저 휴대폰만 손에서 만지작거렸다. 외롭거나 한 것은 아니고.. 아닐걸?
"아 진짜 심심하다 진짜"
한숨을 폭 내쉬고 이내 책상에 엎드렸다. 그덕에 볼살이 잔뜩 눌려 우스꽝스런 모습이었지만 어차피 아무도 없으니까. 휴대폰을 하기엔 배터리도 별로 없어서 하지도 못하겠고, 비도 안그치고. 주변에 아는 애라도 지나간다면 당장 불러서 같이 놀자거나, 혹은 우산이 있으면 같이 씌워달라고 할텐데. 복도는 생각외로 무지 조용했다. 학교 소문이 꽤 무서워서 그런가? 다들 집에 일찍 가버린듯 했다. 그렇다고 잠을 자버리면 정말 해가 다 지고 캄캄해질때 일어난다거나, 밤을 새버릴 것 같아서 잠을 자는 것만은 피하려고 노력했다. 근데 약간 졸린 거 같기도 하고.. 조용한 빗소리, 고요한 교실에 나른해짐을 느끼며 지안은 천천히 눈을 꿈뻑였다. 아, 자면 안되는데..
그렇게 눈이 스르륵 감겨 발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이 막 들었을 참에.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내지 못하고 밤 늦게까지 자버리려는 순간에, 콰앙.
"와아, 씨"
욕이 나오려던 것은 아니고, 그냥 놀라서. 화들짝 놀라 몸을 크게 들썩이며 번쩍 몸을 일으켰다. 순간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리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돌려보니, 익숙한 얼굴의 한 남자아이가 굉장히 밝게 인사하며 들어오고 있었다. 동그란 눈으로 3초 정도 벙쪄서 그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다가 이내 상황파악이 끝났는지 눈을 치켜 세우고 그를 잔뜩 노려보았다.
"혼날래 진짜, 놀랐잖아"
만약 지안의 손에 무언가 쥐어져 있었다면 당장 산에게로 던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한 번 휴 내쉬고 한 쪽 손으로 턱을 괴고 그를 나른하게 쳐다보았다.
"근데 왜 왔어?"
아까 집 간거 아니였나?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지안은 그가 하는 행동을 멀뚱히 지켜보았다. 아, 마침 잘됐네. 같이 집가자구 해야지. 지안은 속으로 생각을 끝마치고 같이 가자고 말 할 타이밍을 기다렸다.
뒷산은 좋은 곳이다. 이름 모를 꽃들과 해가 지는 풍경이라던가. 운이 좋으면 귀여운 다람쥐나 특이한 새들, 고라니까지. 정확히는, 그런 자연물들을 종이 한장에 새겨넣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그래서 하교시간에도 나 혼자서 뒷산에 오르고 있다. ...뭐, 그럴때마다 항상 수수하게 생겨먹어서 비싼 취미를 가지고 있냐는 둥, 괜한 시비가 따라 붙긴 했지만. ...이제 곧 하교 시간이다. 슬슬 돌아가야겠지?
뒷산에서 부터 학교까지 걸어가며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넘겨보다가, 다시 카메라를 들고 빙 둘러보기도 한다. 문득 렌즈에 누군가가 잡혀있어서, 카메라를 내리고 그 쪽을 쳐다보았다. 아, 백물어 때의 그 선배님이였었지? 유독 화려한 색채의 머리카락을 기억하고 있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어느새 자연스래 친해진 양 말을 걸고 있었던 것은, 막상 말을 걸고 나니 머쓱해져서 괜히 제 뒷목만 긁적인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에 정말이지, 놀라면서 겁을 잔뜩 집어먹었던 모습이 꽤나 인상 깊게 남아서 그랬던걸까?
"그, 저번에는 그래도 잘 돌아가셨었나 보네요. 많이 놀라셨던것 같은데...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그게 노크였어? 그게?? 발로 꽝 찬 게 아니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약간 미간을 찌푸리고 산과 열려 있는 문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푸흐, 하고 어이 없다는 듯이 웃었다.
"와, 한 대만 때려봐도 돼??"
지안은 손가락으로 산이를 한 번 가리키더니 이내 들고있던 손을 꽉 쥐고 주먹으로 허공을 툭툭 때리는 시늉을 했다. 저, 저, 얄밉게 웃는거 봐. 진짜 한 번만 꼬집어 주고 싶어.
"덜렁이네, 너"
휴대폰을 두고 왔다며 책상을 뒤지고 있는 산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내 샐쭉 웃으며 놀렸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야. 어쨌든 산의 반응을 보니 산이 역시 휴대폰의 배터리가 없어보였다. 동병상련이네, 하고 생각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진 않았다.
"응, 씌워 줄 거야?"
타이밍을 재고 있었는데, 마침 눈치를 챈 듯 한 산이가 자연스럽게 먼저 물어봐주자 고마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고서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알고 있었지만 역시 활기찬 아이네, 싶어서 지안 역시 한 손으로 허공에 빵 하고 쏴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산의 옆으로 가서 산의 허리를 손으로 가볍게 팡, 치더니 히죽 웃었다.
산의 연약하다는 말에 다시 한 번 어이없다는 얼굴 표정으로 입을 약간 벌리고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지만 쾌활한 그에게는 소용없는 공격 같았다. 보통 얌전한 아이들이라면 이런 표정을 짓고 빤히 바라보면 머쓱해 하기 마련인데, 지안의 눈에 비치는 그는 고작 이런 공격에는 끄떡 없어 보였다. 장난인걸 알지만 말이야, 윗 옷을 벗으면 배에 뭐가 써져있을 것 같은 이 친구가 말이야. 어?
"착하네, 덜렁거리는 야구 소년아."
감기 걸린다는 말에 킥킥 웃으며 수긍했다. 일부러 소년아-하고 부르며 강조했다. 하긴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누구든 불쌍해서라도 같이 가주려나? 나는 아닌데. 그나저나 이런 날에 마침 타이밍 좋게 휴대폰을 놔두고 간 산이는 정말 운이 없는 건지. 역으로 말하면 지안은 정말 운이 좋았다. 이대로 아무도 찾아 오지 않으면 어쩔 뻔 했어?
"아파? 아프라고 때린 거야."
아픈 건지, 연기인 건지. 애초에 지안은 손에 힘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능청스레 웃었다. 그러다 그 뒤에 들려오는 산의 말에 금방 얼굴이 굳어졌지만. 분명 문 닫혀 있었잖아? 아까 내가 분명히 봤다구. 그런데 문이 닫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닫히는 과정도 보지 못했다. 근데 어느새 닫혀 있는 문을 보고 잔뜩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음표를 열개쯤 띄웠다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산의 말에 금방 정신을 차리고 그를 재빨리 따라갔다. 뭐, 바람 이라던가 경비 아저씨라던가. 경우의 수는 많으니까. 모르겠다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니까.
"야 비 진짜 많이 와. 우산 커??"
산을 따라 학교 계단을 내려가는데 흐린 날씨 때문에 학교는 잔뜩 깜깜했고, 비 때문에 바닥은 축축해서 미끄러지기 딱 좋았다. 지안은 바닥을 열심히 내려다보며 괜히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해서 계단을 내려갔다. 그래도 괜히 불안해서 옆에 있는 산을 힐긋 쳐다보다가 그의 옷자락을 괜히 잡았다. 뭔가 혼자 슝 사라질 것 같고, 눈 한 번 감았다가 뜨면 저 멀리 먼저 가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어서. 왠지는 모르지만.
착하네- 까지는 참 좋았는데, 덜렁거리는 야구 소년이라니. 내 별명은 대체 어디까지 길어지는거야?
" 어째 아까부터 별명이 늘어나는것 같은데.... "
기분 탓은 아니지? 그리고 어째서 소년에 강세를 주는건지 모르겠다. 뭐, 하여간. 착하다는 말은 꽤나 오랜만에 들어봤다. 주변에서는 그런 말을 자주 해주지 않았다. 왜 일까? 내가 운동에 열중하다보니 착한 일을 많이 하지 못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랜만에 들으니, 나름 기분이 좋았다.
" 너무하네- "
중얼거리듯이 말끝을 길게 늘이며 말하고는 키득거렸다. 지안은 문이 닫혀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고, 이내 나를 따라왔다. 문이 왜 닫혀있는지, 애초에 내가 열어두긴 했었는지. 의문이 여러 개 들긴 했지만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우리한테 해가 되지는 않았으니까!
" 나쁘지 않은 크기야. 누구를 씌워준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
아직 실내인데도 괜히 우산을 한 번 펴서 크기를 확인해보았다. 어찌어찌 둘이 들어갈 크기는 되어보였고, 확인을 마치자 다시 우산을 접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지안이 옆에서 내 옷자락을 잡았지만, 고개를 돌리진 못했다. 바닥에 물기가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한 층 내려간 후에 주변을 살피려 고개를 돌리다가, 무언가 이상한 것이 포착되었다.
" 어.... 잠깐만. "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자신이 품고있는 의문이 확실한지 확인하기 위해서 지안에게 질문을 던졌다.
" 우리 교실, 3층이잖아. 맞지? "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곳은, 중간 벽에 붙어있는 층 안내판이었다.
" 그리고 우리는 한 층 내려왔고. 근데 왜.... "
뒷말을 흐리며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 안내판에는, 3이라는 숫자가 출력되어있었다.
" 그리고 바닥도 이상한게, 왜 이렇게 젖어있지? 애들 집에 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젖어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