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의 질문 같은 질문 아닌 질문이고 싶은(?) 질문에 그렇게 답하면서 세나는 아까처럼 또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각본가도 감독의 모든 의도를 듣고 그에 따라 각본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중간에 괜찮은 아이디어라도 떠오르면 감독에게 제안할 수도 있겠지만...그래, 그렇게 된다면 그건 각본가가 최초로 의도한 것이 되겠네. 진실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감독님을 이 자리에 모셔오지 않는 이상 정답을 알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도 대본을 모두 받은 것이 아니라서 하윤 씨의 기분 이해할 것 같아요~ 궁금해지죠. 어떤 느낌인지~"
하윤이 활달한 목소리로 밝힌 의지에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그나저나.
"제 연기에서 배우신다니, 역시 실수가 없도록 긴장해야겠네요~"
당연한 이야기다. 교과서가 잘못되면 안 되니까. 오, 자신을 교과서에 비유하니 더욱 책임감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자신이 교과서까지 될 수나 있을까 하는 겸손한 심정도 그곳에 섞여있는 듯했다. 세나의 성격으로 보아선 당연한 사고였다.
"그 장면 멋있었죠~ 강하윤의 정신적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으니까요. 저는, 식상할지 모르겠지만~ 역시 단체 엔딩씬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승리하고 난 뒤 함께 노을을 바라본다는 설정이 마음에 든 점도 있어요~"
턱에 한 손을 가볍게 올리면서 눈을 옆쪽으로 잠깐 돌려 그동안 회상하다가 푸흐, 웃고 만다. 그래, 과연 매력적인 장면이었고 그 중에 자신이 들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마음에 드는 장면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떠올리면 역시 본편이 끝났다는 사실이 새삼 아쉬워진다.
아. 뭔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기분이다. 고개를 돌려 아마 저쪽일까, 바라보면 감독이 멀리서 손짓하고 있다. <특수 수사대 익스레이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같이 일했던 경험에 기반하여 본다면, 적어도 약 5분 뒤에 다음 장면을 촬영한다는 의미인 줄 알아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좋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여 알겠단 뜻을 전한 뒤 다시 하윤을 바라보았다.
"곧 제 차례네요~"
대화하면서 보지 않았던 대본을 몇 초동안 훑어 복습하기도 잠깐.
"나머지는 그 뒤에 이야기할까요~"
//후후 곧 자야한다니 진짜 싫다...더 이상 일상을 끌면 너무 죄스러워서...답레 주시면 제가 막레를 내릴게요! >ㅁ<
"앗! 맞아요! 그 장면도 되게 멋졌어요! 모든 것을 해결한 후에 떠오르는 노을을 바라보는 그 장면!! 저도 TV로 봤는데 보통 예쁜 것이 아니더라고요! 완전 감탄했어요! 진짜 카메라 감독님...! 엄청 잘 찍은 거 아니에요? 그 장면?"
세나 씨가 말한 그 장면이 무엇인지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장면은 모두가 현장에 나가서 찍은 장면이었으니까. 그리고 모든 것의 결말을 상징하고,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결정적인 장면이었으니까.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쉬움이 절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상당히 멋진 장면이기에 감탄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특수 수사대 익스레이버'는 정말로 이제 끝이 났구나...라는 사실을... 그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면서 역시 아쉽다는 생각을 하면서 초코릿을 똑, 소리를 내면서 또 한 입 먹으면서 달콤함을 입에서 우물우물 녹였다.
그리고 이어 세나 씨의 촬영 차례가 다가왔다. 감독님이 손짓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고 세나 씨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그 뒤에 이야기하자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이야기했다.
"네! 어서 가보세요! 세나 씨! 촬영 수고하세요!! 서하 씨와 같이 구경하고 있을게요!! 후훗."
이어 세나 씨를 바라보면서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면서 나는 자리를 잡기로 했다. 어디에 앉아야 서하 씨와 오붓하게 구경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래, 그랬었지. 아롱범 팀 대원들이 옥상에 제각기 선 채 노을을 바라보는 장면이 TV로 나왔을 때 스크린 너머의 그 정경은 여간 멋진 것이 아니었다. 세나도 <특수 수사대 익스레이버>를 찍은 뒤 완성된 드라마를 TV를 통해 보았을 때의 기억을 상기시키고 하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라며 고개를 몇 번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의도는 확실하게 전했다.
아무튼 세나는 곧 촬영을 하러 가야한다. 약간은 조급한ㅡ긍정적인 방향으로ㅡ마음이 들었는지 세나는 손안에 남은 초콜릿을 얼른 모두 입속에 털어넣었다. 많은 양의 단맛이 한 번에 느껴지더라도 맛있는 것은 변함없는 일이었다. 하윤은 자신보다 이 달콤함을 좀 더 느긋하게 즐기겠구나, 라는 태평한 생각도 하였다.
"열심히 해야죠~ 하윤 씨도 서하 씨와 구경 수고하시기를~"
은근히 농담 같기도 한 말을 섞어 답하고 아까까지 앉아있었던 의자 근처에 놓였던 페트병의 물을 조금 마신 뒤 "네~ 갑니다~", 밝게 외치면서 촬영팀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제가 간혹 도지는 병이 있는데 그거슨 바로 막레를 못 쓰는 병...0v0 얼른 극복해야될텐데...! 아무튼 막레입니다! 레주 너무 수고많으셨어요! >ㅁ< 오늘도 하윤이는 귀여웠답니다!(엄지척)
막레를 못 쓰는 병치고는 막레를 아주 잘 쓰셨는데요?! 막레 잘 받았습니다..! 세나는 정말 늠름하면서도 멋있었어요! 베테랑 느낌이 제대로 나고요!! (엄지척) 그와 동시에 센하주가 어떤 장면을 가장 인상깊게 봤는지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일상 수고하셨습니다! 재밌었어요!
과거를 털어놓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가는 권의 이야길 들으며 눈을 맞추던 월하의 눈길이 흔들리며 바닥에서 멎었다. 권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붕괴 사고. 희생자. 자기의 탓. 그 단편적인 정보에선 알 수 있는 건, 권이 사건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것과. 그 기억을 닫아버렸단 것이었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한참을 입만 달싹이던 입을 앙다물었다. 그저 위태로운 그의 모습에 조심히 손을 잡았다.
".... 권."
다시 떠오른 죄책감의 무게를 견디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경멸이란 단어도, 늘 보였던 모습도. 이 때문이었구나. 저 역시 그래선 안 되었지만. 몰려오는 울적함을 차마 막지를 못해 눈앞이 흐릿해졌다. 정말 시간이 지나면 모든게 잊힌다지만. 자신이 기억하는 동안은 계속해서 떠오르니까. 감추려고 해도 언젠간 단편적이라도 떠오르고 말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앓다 앓다, 터져버리기 전에 저에게 고백한게 다행인건지.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대단 그의 손을 물그레 바라봤다. 꾹 눈을 감았다 뜨곤, 고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