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마주치며 애써 미소를 지으려 했다가 괴로운듯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여기서 입을 다물어버린다면, 나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미움 받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그저 어떤 남매의 '보호자'이자, 익스레이버인 '권 주'로서... 하지만 말이다, 과연 그런 나는 살아갈 자격이 되는걸까?
몇 조각 사라져버린 기억을, 애써 짜맞추어 월하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전에 여기, 성류시에서 기차역 붕괴'사고'가 있었습니다. 건물 노후화로 인해 벌어진 사고라고 일단은 결론이 났죠. ...작은 규모였지만, 희생자가 있었어요. 그 당시의 저도 그 장소에 있었습니다. 중상을 입어서 몇 년간 잠들어 있었어요. ...깨어나니, 기억이 전부 날아가 있더라고요. 지금은 많이 되찾긴 했지만, 여전히 사고 당시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말을 하다가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원망스러웠다. 기억을 못하는 자신이. 도대체 그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잖아? 목으로 가는 손이 살짝 떨렸다. 그러나, 답답해보이는 목폴라를 그대로 내린다. 하얀 피부 위에 내려앉은 징그러운 색채의 기다란 자상. 그동안 꼭꼭 감춰두고 있었던.
"이것도 그 '사고'때 생긴 상처입니다. ...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믿고 있었죠. 진실은 생각보다 더 끔찍한 것이였는데, 모른척 지워버리려고 했어요."
꿈속에서 몇번이고, 아니 수십 수백번이고 반복한 장면이였다. ...그건... 더 이상 악몽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였다.
"불과 얼마전에 기억이 났습니다. ...사고랑은 거리가 먼 방식으로 생겼... 식칼... 식칼을 쥐고, 목을..."
호흡이 가빠온다. 이 시점에서 부터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만 멈춰야 하는데. 멈추지 않는 입술 밖으로 불완전한 문장이 이어진다.
"그리고 기억 났...어... 나는 어째서 죽으려고 했는지."
상처에서 검붉은 피를 뿜어내면서 까지 그 시체는 웃고있었더랬지. 항상 같은 결말이였다. 웃고있던 이유...는...
"...전부 내 탓이였어... 그 '사건'."
내뱉어 버리자 머릿속이 어지러워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더 이상 월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듯 했다.
조금 뻘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세나는 하윤을 보며 그녀와 마찬가지로 신인 시절을 거치던 자신을 잠깐 떠올렸다. 지금이랑 별 다를 바 없는 열정을 가득 품으면서 캐스팅 하나하나에 기뻐하고 촬영을 하며 신나하고 선배의 칭찬에 들뜨곤 했던 자신의 모습은 지금 세나의 앞에서 순수한 미소를 짓는 하윤의 모습과 퍽 비슷했다. 자신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ㅡ외모도()ㅡ.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초콜릿의 포장지를 익숙한 손길로 뜯어내는 하윤을 보며 앞으로도 쭉 저런 모습의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선배의 마음씨로 동시에 바라면서 세나는 절반짜리 초콜릿을 받았다.
"잘 먹을게요~"
그 말을 절대로 잊지 않으면서. 세나는 연상, 동갑, 연하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손한 사람이었고 당연스럽게도 그것은 하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입 크기로 툭 잘라 입에 넣었다. 며칠만에 맛보는 단맛이다보니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본래도 웃음기를 머금는 얼굴에 빙긋 입꼬리를 올리면서 하윤이 방금 했던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작품을 찍으면서 강하윤이란 인물과 센하라는 인물이 비슷하단 생각은 세나도 더러 했었다. 촬영하면서 묘하게 소름돋았던 적도 있다는 하윤의 토로에 하하, 가볍게 웃다가 제대로 된 말로써 그에 답해내었다.
"저도 가끔씩 그런 생각을 했어요. 눈치채기 쉽진 않은데 생각보다 많은 점이 비슷하더라고요~"
마찬가지 수긍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응, 확실히 비슷하지.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세나는 가볍게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감독님께서 의도하신 걸까요~? 두 인물을 은근히 비슷하게 만들면서 얻을 수 있는 모종의 효과를 위해서라든지~"
"글쎄요? 감독님의 생각은 저도 알 수 없으니까요. 애초에 각본을 쓴 각본가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 그 각본도 감독님이 통과시켜줘야 쓸 수 있죠? 아마?"
초콜릿을 똑 물고 베어물면서 그 달콤함을 입 속에서 천천히 녹였다. 생각해보면 정말 '하윤이'와 '센하'는 상황이 닮은 것이 많다. 그렇기에 나는 '센하'의 결말은 어찌 될 지 매우 궁금했다. 하윤이의 결말은 났으니 이제 센하의 결말만이 남았으니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캐릭터. 그들이 바라보는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만이 아니라 세나 씨도 비슷하게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꼭 센하의 결말을 보고 말 거예요! 외전 이야기도 그렇고, 마지막 엔딩 씬도 그렇고 다 볼 거예요! 김에 세나 씨의 연기에서 배울 것은 배우고 말이에요. 후훗."
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했다. 이제 신인인걸. 선배인 이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었기에 매 편, 드라마를 보면서 선배들의 연기를 바라보며 배우고 있는 것이 많다. 정말...나에 비하면 엄청난 이들만 가득한걸. 물론 나처럼 신인 배우도 있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 사람들이 더 잘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세나 씨는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음...저는 역시 머리끈을 풀면서 집어던지고 '강이준'에게 총을 겨누는 그 장면이요. 간만에 제가 주역인 씬이기도 해서... 정말 기억에 많이 남아요. 분위기도, 그때 깔린 OST도 상당히 잘 어울렸다고 생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