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후후... 자네들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는 일이네. 이제 곧 저 하늘은 깨지게 될 테고, 곧 새로운 하늘이 떠오르겠지. 그것으로서 이 세계는 개변되는 것이네. 자네들은 너무 늦었다 이 말이야!"
권 주에 의해서 멱살이 잡혀 올라갔지만, 이준은 조금도 떨지 않으면서 오히려 칠 거면 치라는 듯이 피식 웃어보였다. 지금 그곳의 분위기는 상당히 싸늘하고 추웠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곧 해소가 되었다.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검은색 파편들 사이에서 빛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빅스타 타워 옥상에, 투명한 느낌의 여성이 한 명, 착지했다. 그 모습은 모두가 보았을 바로 그 여성이었다.
"...엄마....?"
"유리...?"
"...언니..."
하윤과 이준, 그리고 유나가 일제히 이야기를 했다. 그 말에, 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시선은 아롱범 팀으로 향했다. 이어 그녀는 정말로 자상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큐브가 깨지면서, 저는 그 큐브에서 해방될 수 있었어요. ...물론, 그 힘이 해방되면서... 머지 않아 저는 사라지게 되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여러분들의 소망을 들어주도록 할게요. 여러분들은...어떤 세계를 원하나요..? 여러분들의 원하는 그 세계. 그 세계를 만들어주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원래의 세계를 원한다고 한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잠깐...! 유리...! 여보...!!"
"....언니...어째서...어째서...."
"...이준 씨. ...그리고 유나... 나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았어. 그저...그저, 두 사람이, 나로 인해서 슬퍼하지 말고, 그저, 조용히 행복하게 살길 바랬어. 잡히지 않고, 안전하게...그저 그것으로 충분했어. ...하지만, 나는 전할 수 없었어. 두 사람이 큐브를 가지고 왔었지만, 내 목소리는 닿지 않았어. ...더 이상, 죄를 저지르지 말아줘. 부탁이야."
"...죄를 저질러도 상관없어...!! 나는...!! 그 날...!!"
"...괜찮아. 당신은 애썼어. 당신과 유나의 잘못이 아니야. ...모든 것은 그 남자가 잘못한 것이지만... 그 남자의 책임이지만...그렇다고 이 세계가 갚을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두 사람 다...이제 그만 해 줘. 부탁이니까... 나는...이렇게 증오에 쫓기듯이 행동하는 두 사람은 원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이제, 나를 위한 증오는 버려줘.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줘. 죄값을 치르고, 다시 살아가... 부탁이야. 그것이 아내이자, 언니인 나의 부탁이야. 나는 복수를 원하지 않으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하윤이와 당신, 그리고 유나. 3명이 평화롭게 이 세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니까..."
"....나는....나는.....네가 없으면...행복해질 수 없었단 말이다..! 그 날...!! 그 날...!! 내가...! 내가...!!!"
"...괜찮아..나는 용서했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그것으로 분노하지 말고 괴로워하지 말아줘. 이제는 정말로...다 끝내줘. 그것이 당신에게 하는 마지막 부탁이야."
작게 웃는 그 모습에 이준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그리고 유나 역시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 모습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아롱범 팀을 바라보았다.
"자. 익스레이버 아롱범 팀. 당신들이 원하는 미래는...그리고 그 세계는 무엇이죠? ...아니, 당신들은 이제 어쩔 참이죠? ...익스퍼를, 익스파를 밝힐건가요? 만약 그런 세계를 원한다면, 그런 세계를 만들어주겠어요. 그리고, 여전히 비밀처럼 숨겨지는 세계를 원한다면 그 세계를 이뤄주겠어요. 그러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다들 밝혀진 세계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싶었기에. 하지만 여기서 굳이 대세를 따른다거나 하고싶진 않았다. 그냥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하고 싶었으니까.
"뭐 어차피 사태만 잠재우면 이런 대소동이 일어났으니 알만한 사람들을 다 알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뭔가.. 절대적인 힘을 빌어서 세계를 완성한다는건 내키지 않네요. 세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허무맹랑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바꾸는건 남아있는 사람들 손으로 해야 진정 의미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뭐어~ 이건 그냥 제 생각이니까 들어지든 안 들어지든 어쩔 수 없고. 밝혀진 세계로 완성되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요."
"확실히, 계속 숨기는 편이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밝혀진다면... 당장에 일어날 일은 불 보듯 뻔하지요."
숨을 한차례 들이 쉰다. 푸른 빛이 감도는 은색의 눈은 올곧게, 차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익스퍼의, 사람들의 가능성을 믿고 있습니다. R.R.F단 같은 범죄조직이 또다시 나타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이들도 있듯이,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익스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을겁니다. 조금 전, 위기 상황에서 도움받았던 민간인 익스퍼들 처럼요. 저는 그들을 믿을겁니다."
어느 세계가 좋은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여태껏 복수만 바라보고 살았으니 어느 것이 더 좋은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
센하는 입가에 한 손을 올리고 고민하였다. 어쩌면 사실 아무래도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문득 유혜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함께 싸워준 사랑하는 이. 네가 바라는 세계는 어떤 세계야? 마음속으로 물어보았다.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겠지만, 그녀는 그저 일상을 되돌려 받고 싶다고 했다. 그렇구나. 네가 원하는 세계는.
내가 이와 관련해서 바란 것은 없었으니까, 잃고 싶지 않은 사랑의 선택을 따라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