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이 한 박자 늦었던 것도 그렇고,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하는 것도 그렇고 반응이 영 시원치는 않았다. 짐작건대 조금 다른 생각으로 인해 멍을 때렸던 것이다. 당장 나만 해도 혼자 있을 때 멍 때리는 일을 많이 하기도 하는 등 그 행동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현재의 상황이 조금 심각하다는 것과 그 모습을 보인 사람이 내가 의심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일까. 여하튼 대답을 한 최서하 씨를 향해 고개를 한 차례 끄덕여주었다.
"그렇네요."
이것은 슬슬 월드 리크리에이터를 회수하러 가야겠다는 그의 말에 한 대답이다. 지금 익스파 탐지기를 보고 있었던 것이겠지. 이어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책상 위로 태평하게 턱을 괴면서 묵묵히 들었다. 이럴 때 주변이 조용한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 인가. 마지막에는 귀찮지 않으니까 좋다고 했지만 신경쓰이는 것이 분명 본심이리라.
"R.R.F라, 조용히 준비라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준비를 하는 동시에 날뛰는 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니까요."
티를 내진 않았지만 약간의 경험담도 섞인 이야기였다. 나는 컴퓨터를 의미없이 응시하며 읊조리듯 대답하다 다시금 최서하 씨를 보았다. 약간 가늘게 뜬 눈으로.
"그러고 보면 R.R.F 뿐만은 아니었죠. 익스퍼 보안 유지부. 그 인간들도 노리는 것이 있으니까요. 어디 보자,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었더라."
천하태평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떠오르지 않는 척하며 허공을 잠시 바라보았다. 내가 이런 태세를 보인 이유는 한 가지 밖에는 있을 수가 없었다. 역시 이런 충동이란 조용히 묻혀두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금까지 생각해온 '그 복수'처럼.
"...SSS랭크 능력자의 유일한 혈육인 강하윤 씨를 데려가 이용하려고 했지요. 제 말 틀린 거 없죠? 잔인한 인간들이군요. 어떻게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킬 생각을 하는 건지. 참, 성류시에 투입되었다는 그 스파이 씨도 서둘러야겠어요. 저희가 이미 강하윤 씨를 보호하고 있어서 자칫하면 임무를 실패하고...그래, 그 복종의 표식이라는 것으로 무시무시한 벌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무서워라. 하지만 그렇게 당해도 싸다고 생각해요."
"과거의 네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면 뭐라고 말할래?" 권 주: 열심히 살아주세요. 타인에게 피해주지 마시고... 그리고 함부로 손 올리지 마세요. 그래도 낳아주신 분들이니 이 정도 조언만 해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당신들은 들은 채도 안하겠지만요.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제 앞에 나타나지 말아주세요.
"어떤 초능력을 얻고 싶어?" 권 주: (이미 메탈로키네시스라는 능력이 있음)...더 이상의 능력은 과분합니다만... 만약,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최악의 욕은?" 권 주: (말을 하지 않지만 경멸하는 눈빛)
익스퍼 보안 유지부에 대한 이야기가 센하 씨의 입에서 나왔을 때 나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 이야기는 지금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일단, 나는... 그쪽 소속이기도 하고... 지금 센하 씨가 말하는 그 성류시에 투입된 이기도 하니까. 물론 스파이는 아니지만... 아니, 비슷할까. 결론적으로만 따진다면 크게 차이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조용히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에 부정하지 않고 조용히 긍정하면서 깊게 말을 하지 않았다. 당해도 싸다인가. ...맞는 말이다. 당해도 싸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래도 옳은 길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것이 나의 임무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수행하지 않고 있지만 말이야. 사실 수행할 기회는 몇 번이고 있었다. 하윤이를 가볍게 터치하고, 손가락을 퉁기기만 하면 끝날 일이다. 아무리 저들이 지키니 뭐니라고 해도... 이건 내 능력의 문제다. 포지션 텔레포트의 무서움은 말 그대로 내 의지대로 얼마든지 사람이건, 물건이건 전송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당장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지 않은 것은....
...귀찮으니까 이런 생각은 그만 두자. 그리 생각하면서 또 다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잔인한 이들이죠. 여러 의미로. ...애초에 이 모든 것이 그들로 인해서 시작된 것이기도 하고...."
그 점에 대해선 부정할 마음이 없다. 애초에 모든 시작은 그들이었으니까. 나의 상사인 그 사람에게서... 정말로 모든 것을 나도 제대로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설마 그렇게 얽혀있을 거라고는... 그렇기에, 더 갈등이 되는 것이다. 사실...임무는 수행해야만 한다. 나에게, 선택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수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을 수행하게 되면....
여러모로 고민과 갈등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서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굳이 표현하지 않고, 오로지 정면만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뭐, 천벌을 받을 이는 언젠간 천벌을 받게 되겠죠. 혹은 법의 심판을 받을지도 모르고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지나가듯 말을 던져보았다. 잘 보면 최서하 씨는 지금 한숨도 많이 지었다. 그저 내가 그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점 때문에 모든 것이 연관되어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우연으로는 딱히 여기지 않는다.
"당신, 꼭 자신의 일인 것마냥 말한다고요. 체념하듯이 말하는 게."
특히 천벌을 받을 이는 언젠잔 천벌을 받게 되겠죠, 라는 말이요. 그렇게 덧붙이면서 미소가 지워지고 평소의 무표정만이 남았다. 어째선지 말하면서 정면만을 바라보는 얼굴에 고민하는 기색도 보였던 것 같고, 하여튼간 의심스러운 구석 투성이다. 나는 의자를 살짝 돌리고 다리를 포갰다. 그러더니 표정을 살짝 구기듯이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아, 돌려서 말하니까 답답하군요. 이번만큼은 직설적으로 가죠."
온화한 분위기를 반쯤 지워내니 본래의 차가운 분위기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었다.
"제가 당신을 아까 말한 그 스파이로 의심하고 있다고 한다면 어떨 것 같나요, 용의자 씨?"
그때... 감마, 용성을 제압하던 날에 아마 이런 말이 언젠간은 들려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서 내에서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야, 그때의 감마는 너무나도 노골적이었으니까. 마치...나를 고립시키기 위한 것처럼... 실제로 지금 이 사무실에서 내가 요원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뭐, 있긴 했지만 지금은 여기에 없으니까. 그 누구도... 아무래도 좋은 사실을 적당히 머릿속으로 넘긴 후에, 나는 손가락을 퉁겨서 캔커피 하나를 내 손으로 전송했다. 그리고 그것을 딸깍 딴 후에 천천히 마셨다.
"....뭐, 직설적으로 말하는 쪽이 저도 편하죠. ...저도 귀찮아서 말은 직설적으로 안하는 편이기도 하고..."
이어 다시 한 모금. 또 다시 한 모금을 마시면서 커피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돌려 센하 씨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저에 대한 혐의는, 아직 하윤이가 이 사무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없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데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미안하지만, 밝힐 수 없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래. 밝힐 수 없었다. 비겁할지도 모르지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아직은 그런 사실을 밝힐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일부로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통상이니 뭐니 해도...뭐, 지금은 그런 귀찮은 일보다는, 당장의 앞일이 걱정이기에... ...그리고 의심을 한다고 한다면, 제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거죠. ...안 그런가요? 설사 그게 저라고 하더라도, 순순히 인정한다..라는 말이 제 입에서 나올 리가 없잖아요? 더 나아가서... 경찰은 증거로 이야기를 해야죠. ...그에 비해서 이쪽은 얼마든지 하윤이에게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하윤이는 오늘만 해도 무사히 출근을 했었고... ...뭐, 일단 제 입장에서 할 말은 이 정도일까요?"
나른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조용히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덧붙여서.... 거짓말은 아니다. 나는 당장의 앞일이 더 걱정이었으니까...
"어라, 논쟁으로 나오는 겁니까. 귀찮음 많은 당신도 제 자신을 변호하는 일에는 열심인 모양이네요."
나른하게 말하면서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뭐, 그렇네요. 제일 중요한 물증이 없어요."
아, 역시 이래서 경찰이 싫다니까. 이런 상황에서 장난이 조금 섞인 무게없는 말을 읊조리면서 잠시 낮게 키득 웃었다. 그렇다. 경찰의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물증이 없다.
"하지만 심증만으로도 의심스러운 점은 넘쳐난답니다. 당신이 그 스파이가 맞다는 것으로 가정했을 때, 들어맞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니까요. 사실 의심의 시작은 하용성을 체포할 때였어요. 당신은 그 때 저희에게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그 인간과 무엇이라 대화를 나눴었죠. 그 내용이 불투명해서 짐작 밖에는 못하지만, 유지부 소속이 아닌 당신이 한 때 유지부 소속이었던 그와 길게 대화를 나눌 주제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래서 나는 가정을 통한 결론 도출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여전히 가벼운 분위기인채 무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강하윤 씨가 이 사무실에 아직 있다는 것만으로 당신의 결백이 완전히 증명이 되는 걸까요. 익스퍼 보안 유지부의 목적은 그녀를 입수해 이용하는 것. 하지만 현재 저희에겐 적어도 언제까지, 라는 기한이 명백하지 않아요. 여태껏 그러지 않았더라도 추후 언젠가, 당장 오늘이나 내일이라도 그녀가 사라진다 해도 스파이 씨는 임무에 성공하는 것으로 이해가 가능해요. 하지만 여기서 잠깐. 스파이 씨는 지금까지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버티고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저희가 지금 두 연구원을 보호하고, 월드 리크리에이터를 회수하려까지 하는 상황에서 익스퍼 보안 유지부는 느긋하게 마음을 먹을 수 있었을까요? 스파이 씨가 강하윤 씨에게 접근하는 것만 해도 시간 문제인데. 당신이 아까 말했던대로 현재는 굉장히 조용한 상태예요. R.R.F도 익스퍼 보안 유지부도 큰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죠. 그건 아직 지켜보는 정도의 여유는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죠. 그럼 어째서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느냐. 여기서 저는 스파이 씨는 이미 강하윤 씨에게 접근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라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가장 접근하기 쉬운 방향은 어디였을까요? 역시 그녀가 하루종일 많이 있는 장소에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죠. 그것이 의도했던 것이든 아니든 스파이 씨는 그것을 달성한 모양이고, 그래서 현재 여유를 가지고 아직 상황을 살필 수 있었던 것이겠죠. 덤으로 그 능력이 그녀를 입수한다는 목적을 언제든지 이룰 수 있는 종류라면 더더욱 말이죠."
사실 가정을 이용한 논쟁이 언제나 그러하듯 빈틈도 존재하겠지만, 딱히 자백을 받아낼 욕심은 없었기에 그 정도 하기로 했다. 나는 다소 차가웠던 말투를 살짝 누그러뜨리고 마지막 가정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당신을 스파이라고 가정했을 때, 당신에게 통상 스파이들의 그 무자비한 사고방식을 적용하기에는 지극히 힘들단 말이죠. 나름대로의 정의감도 있고, 동정심도 있는 당신의 모습이...뭐, 이건 굉장히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연기로는 보이지 않아요. 약간 사고를 다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겠죠. 그것으로도 현재 강하윤 씨가 아직 이곳에 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어요."
포갰던 다리를 다시 내리고 의자를 정면으로 돌렸다.
"뭐, 이상. 이 정도 대꾸하도록 할까요. 뭐, 빈틈이야 많겠죠. 물증이 없을 때의 추궁은 언제나 그렇답니다. 그렇기에 물증을 찾아서 발뺌 못하도록 내놓는 것인데...실력자네요. 단 하나의 물증도 보지 못했어요."
여전히 그의 정체를 확신한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면서 옅은 미소를 잠시 지었다. 최서하 씨 생각은 어떠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이면서.
//하...머리 안 돌아가...(털썩) 그리고 레주 말씀 너무 고마워요 ;ㅅ;(머리박박박)
그래. 귀찮아진다. 그것도 보통이 아닐 정도로... 상당히... 지금의 나는 조금의 귀찮은 요소도 만들고 싶지 않다. 내가 해야 할 일. 나에게 지시가 된 일을 생각하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렇기에 아직은 밝혀질 수 없다. 자백할 수도 없다. ...아니, 정말로 그럴까. 나는 단순히 그것만을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도 알 수 없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것일까. 도저히 알 수가 없기에... 나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커피를 마저 마시고 그것을 근처의 쓰레기통으로 전송시켰다.
꽤나 길게, 길게 이뤄지는 그 말에 나는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에 반론할 마음도 없었다. 그렇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마디를 나른한 내 목소리 톤으로 던졌다.
"...재밌는 가설이네요. ...하지만, 누군가를 추궁하기엔 조금 부족하지 않나요? 그거? ...저보다 계급이 높은 센하 씨가 그것을 모를리는 없을테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여기서 저 논리를 반박하자면 매우 간단했다. 애초에, 익스퍼 보안 유지부가 하윤이가 그 딸이라는 것조차 알 리가 없으니까.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보고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아는 것은 조만간에 월드 리크리에이터가 밖으로 노출된다는 것 정도일까. 그렇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는 기지개를 쭈욱 켰다. 딱히 반론을 할 마음은 없다. 오히려 여기서 적극적으로 반론을 하면, 더 수상한 생각을 가지게 될 터. 무엇보다 센하 씨는 일단 반 쯤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고... 이럴 땐, 그냥 적당히 넘겨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정 의심이 된다고 한다면, 다른 대원들에게 말해서 저를 빼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뭐, 인정할 것은 인정할게요. 확실히 수상하게 보이긴 하네요. 제가 봐도. ...하지만 그에 대해서 제 답은 변하지 않아요. ...물증이 없다면, 저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할 생각도 없다고 말이에요."
물증이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나는 여기서는 '요원'이 아니라, '경찰'로서 일을 했었으니까. ....알고 있는 이도 없는 지금, 내가 말을 하지 않는 한 누군가가 나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낼 방도는 없다. 그렇기에, 조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뭐,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말을 하나만 더 하자면... 저는 아롱범 팀을 동료라고 생각한다 정도...라고 해둘게요. ...그 이상은 무슨 말을 해도 딱히 들을 것 같지도 않으시고... ...뭐, 편하실대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어요? 센하 씨는?"
....그렇기에 나는..... ...귀찮은 생각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치워버렸다. ...귀찮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