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하겠다는 대답에 옅은 미소를 다시금 띄워내고, 이어서 들려오는 고맙다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무엇이라 대답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미움만을 받아온 자신이 누군가에게 고마운 존재가 될 수 있을 줄은 바라지도 않으며 살아왔는데. 멍청하게 눈을 한 차례 깜박이며 고민을 이어나가다가 자신답게, 짧은 고민으로 끝내기로 하였다.
"천만에. 이쪽이야말로 고마워."
그렇게 부드러이 말하면서 유혜의 눈을 마주쳐내었다. 앞으로는 네 앞에서 이런 말을 더욱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어느새 바람이 하나 더 추가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나에게 무척이나 고마운 존재여서. 뭐, 아무튼, 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더니 놓고 싶지 않았지만 그 손을 살짝 놓고 난 뒤에 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작은 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들어있었던 딸기맛 하트 모양 사탕을 하나 꺼내 유혜의 입가로 내밀었다.
"자신이 만든 거 먹어보기는 했어? 설령 먹었을지라도 한 번만 장단 맞춰주라."
무슨 소리인지는 더 이상 나열하지 않았다. 그저 태연함을 가장하면서 온화한 미소를 작게 지었다. 너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행복하고 싶네. 지금처럼.
제가 한 말에 월하의 얼굴이 붉혀져,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다. 제가 뭔가 잘 못 말한걸까? 피하는 시선을 따라가려 고개를 기울었다. 이내 속삭이는 말과 손등에 스치는 보드라운 감각에 다시금 얼굴이 달아오른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심장이 뛰는 감각, 살아있다는 증거. 하지만 전과 다르게 불쾌하지 않았다. 월하의 곁에 있어주며,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도 벅차오르는데, 앞으로 그녀의 사랑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터틀넥을 끌어올려 입가를 가리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기뻐서, 견딜 수 없을정도 행복해서, 더이상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당직이다. 나는 나른하게 하품을 한 번 하면서 사무실을 향힌 발걸음을 계속 옮겨나갔다. 편의점에서 가볍게 간식을 먹고 돌아가는 길이다. 문득 흘기듯 바라본 창문 너머로는 이미 노을이 점점 옅어져가 어둠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본래 퇴근 시각으로부터 시간이 조금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지났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 당직은 누구와 하는 거였더라. 불현듯, 그러나 느긋한 흐름으로 든 의문에 무표정인채 눈을 반쯤 감으며 생각에 잠시 잠겼다. 그러자 이내 그것이 최서하 씨임을 떠올려낼 수 있었다.
"흐음..."
최서하 씨인가. 저번에, 하용성ㅡ감마ㅡ를 체포했던 날에 보였던 분위기가 이상했던 사람이다. 단순한 기분탓이었다고 부정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걸리는 점이 너무 많았다. 물증이 없어서 그렇지 현재는 거의 확신한 상태이다. 그는 익스퍼 보안 유지부 소속의 요원이고, 강하윤 씨를 희생시키기 위해 성류시에 스파이처럼 투입된 이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완전히 확신을 가졌다. 뭐, 다시 말하지만 빼도박도 못하도록 내밀 증거는 없지만. 그런 식으로 증거를 쉽게 내놓지 않은 인간이 한 명 더 있었기에 그다지 큰 감정으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제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의 화면을 켜기 전에 한 손으로 뒷목을 어루만지고 있다보니 방금까지 내가 생각에 잠기게 만든 원인이 저기 자신의 자리에 있던 것이었다. 잠시 실눈을 떴다.
"...당직 함께 힘내도록 하죠, 최서하 씨."
하지만 이내 온화한 분위기로 돌아오며 넌지시 그렇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어서 추궁하고 싶은 충동적인 심정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조금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든다. 사실 그 이유는....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귀찮기 짝이 없었다. 정말 여러모로 말이지. 일단, 연구원 2명의 안전은 확보가 되었고 문제의 그 장소로 보내는데도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월드 리크리에이터를 받는 것 뿐이다. 그쪽에서 준다고 했으니, 아롱범 팀인 여기서 거절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무엇보다, 나는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이니까. 하지만, 그것은....
뭔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런 날에는 집에서 쉬고 싶은데... 하필 또 오늘이 당직이다. 덕분에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고, 나름대로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하필 이런 날에 한해서... 물론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야 경찰에서 안 짤리고 연금이 나오니까...
"...응? 아..아...네..네..네..."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는 도중, 센하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말하면...제대로 듣지 못했다. 뭐라고 말을 한 것 같았고... 힘내...어쩌고 하는 것 같긴 했으니까 아마 그런 의미겠지. 그렇게 추측하면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센하 씨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내 앞에서는 지금도 익스파 탐지기가 작동하고 있었다. 갑자기 큰 규모의 익스파가 사용이 되면 탐지가 되는 그 탐지기는 상당히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슬슬 월드 리크레이터를 회수하러 가야겠네요. ...뭐라고 해야할까. 이럴 때 주변이 조용한 것이 되게 이상하지 않아요? ...R.R.F...라던가 움직임도 없고... ...아니. 뭐, 귀찮지 않으니까 좋긴 하지만요."
적당히 흘러가는 느낌으로 그런 말을 하면서, 나는 탐지기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정말로 조용한 분위기가, 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R.R.F는 왜 움직임이 없지? 뭔가 움직일법도 한데 말이야. ...물론론 안 움직인다면 좋긴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무런 귀찮은 일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