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이 조용하던 이유는 이거였나. 제 몸을 마구 흔드는 연구원을 진정 시키려 팔을 간신히 붙잡는다. 안 그래도 아까의 충격파 때문에 어질어질 했었는데. 연구원의 말을 듣자하니 3일이나 갇혀있었다는건, 반대로 생각해보면 범인은 어떤 이유로 연구소 안에서 직접 공격을 가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인데...
복도 쪽에서 들려온 그만두라는 목소리 덕분인가, 겨우 풀려나서 이마를 잡고 고개를 젓는다. 조금... 멀미가 온 것 같아. 겨우 정신을 다잡고 복도 모퉁이 쪽 연구원... 박한민에게 말을 건다.
"...연구원들의 말을 들어보니 3일째... 마구 공격을 날리던 것 같은데. 이제야 연락을 한 이유가 뭡니까?"
수많은 연구원들의 반응은 두 번 볼 것도 없이 현재 패닉상태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제복을 잡히고 흔들리자 매정한 눈빛으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감금이라. 본래 유쾌한 단어는 아니지만, 어떠한 사정이 있는 탓에 나에게는 더더욱 불쾌하게 다가왔다. 연구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냉담한 것은 필히 그런 불쾌한 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딱히 이 안의 연구원들에게 악의는 없다, 아직은. 오히려 동질감이 혼잡하게 뒤섞인 동정심이 느껴지는 기분이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을 뿐. 진정하라고 다독일지, 냉정하게 그만두라고 일갈할지 내지는 다른 반응을 보일지 생각하다 금방 결정을 내리고 "일단 진정하세요"라고 우선 형식적인 말을 짤막하게 내뱉었다. 그러던 사이에 박한민이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진 것이었다. 그래, 아까 보았던 그 연구원 아니야. 제복을 놓이자 그 부분의 구김을 살짝 펴면서 무표정하게 흰 머리칼의 그를 응시하였다. 그는 인사와 함께 통성명을 하더니 서론 없이 갑자기 우리로 하여금 연구소로 따라오라고 하였다. 이야기는 그곳에서 하겠다면서. 허, 다짜고짜인가. 첫인상이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으며 순순히 걸음을 옮겨 그를 따라갔다. 대각선 뒤 방향으로 접근해서 온화하게 말을 걸었다.
"사흘이라니 결코 적은 시간은 아니네요. 정말 고생하셨겠어요.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신 걸까요?"
잡담을 떨듯 가벼운 분위기의 목소리로 넌지시 물어보았다. 옅은 미소를 자연스럽게 띄우면서 박한민을 흘깃 바라보았다. 어차피 앞을 보고 있는 그에게 내 모습이 보일리는 없다. 아, 이런 태도는 너그럽게 봐주기를. 현재 우리 팀이 집중하고 있는 사건의 심각성이 어지간해야지. 게다가 본래부터 내가 타인을 쉽게 믿는 타입이 되지 못해서 말이다.
"개인 연구소에는 중요한 것들이 많겠네요. 마치 어느 개인의 침실 같을 거라 생각해요. 남에게는 보이기 부끄러운 것이 있다든지."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가며 잠시 일부러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뭔가 살짝 수다스러워졌다. 아, 형사과 시절 때는 심문 같은 것 많이 했었는데. 잠시 회상도 해본다.
메이비의 말에 한 연구원이 제발 부탁한다는 느낌으로 말을 해왔다. 그만큼 필사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와는 별개로 한민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말을 이어나갔다.
"3일이나 이곳에 있었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일이 3일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네. 그리고 이제야 연락을 한 이유라. ...애석하게도 내 동료 중 하나가 죽어서 말이야. 자네들도 알고 있을 걸세. 전에 뉴스에 나왔던 그 연구원 말일세. 내 동료중 하나였지. 그러다보니, 조금 경계를 하게 되어서 말이야.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연구원들 이외에는 믿기 힘들어졌네. 그 친구가 죽기 전에 나에게 메시지를 하나 날린게 있거든. ....누군가가 우리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말이야. ...그래서 쉽사리 자네들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네. 특히 자네들이 날 찾는다는 전화를 하니...더욱 말일세. 그리고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내가 조금만 밖으로 나가도 뭔가를 계속 쏘니 버틸 수가 없어서 말이야. ...그리고 어떻게 지냈냐라고 하면..연구소에도 식량이라던가 있으니 말일세. 일단은 어느정도 버틸 수 있네. 그리고 어떻게 알았나. 침대도 있는데."
마지막은 정말로 능청스럽게 대답하면서 그는, 어느 한 방의 문 앞에 멈춰섰다. 거기엔 그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가 달려있었고, 그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낸 후에, 그것을 키패드에 긁고,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 안은 말 그대로 개인연구실이라는 느낌이었다. 논문으로 보이는 종이가 책상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있고, 천체를 그린듯한 커다란 천체도가 벽에 붙어있고, 천장에는 태양계를 본 따서 만든 모빌이 걸려있었으며, 여기저기에 별 사진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저쪽 구석에는 개인용 침대와 소파도 마련되어있었다.
이어 그는 자신의 책상으로 보이는 곳에 앉았고, 다른 이들을 소파에 앉게 한 후에, 아롱범 팀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일단 자네들은 경찰이니 믿어도 좋다는 조건 하에, 이렇게 만나기로 했네. ...그래도 경찰인데 날 죽이려는 이들과 한 패일리는 없겠지. 무엇보다 지금 날 위협하는 이는 밖에 있고 말이야. ...그래서 말이다만..자네들은 왜 나를 찾는 거지? 나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우와, 이 시설 돈 되게 많아 보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솔은 속물적인 생각을 했다. 소파의 푹신함 (사실 계속 전투를 하거나 서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다.)에, 딱딱한 분위기만 아니었다면 금방이라도 누워서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가 아니란건 그녀 스스로도 알았기에, 힘든만큼 더 허리를 꼿꼿이 세워앉고 상대를 바라 보았다.
능청스러운 대답에 마찬가지로 능청스럽게 대답하고는 박한민의 개인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침대와 곁의 쇼파도 보이자 "쇼파까지 있네요"라고 장난스레 중얼거리면서 연구실을 마저 둘러보았다. 샇인 논문과 커다란 천체도, 게다가 태양계를 본딴 모빌이나 별의 사진까지. 이 사람은 우주 애호가라도 되는 모양인가, 라고 실없이 생각해보았다.
박한민은 개인 책상으로 보이는 곳에 앉고 우리들은 쇼파에 앉도록 하였다. 사양없이 냉큼 편하게 앉고는 그의 말을 들었다. 흐음, 경찰이니 믿어도 좋다. 이건가. 물론 저 밖에서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는 이와 우리가 한 패가 아니라는 그의 판단은 정답이지만, 저런 사고방식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통한다면 그 사이에 스파이가 한 명 끼어들기에는 제격이겠군. 그런 냉소적인 생각을 지나가듯 잠시 하면서 헛웃음을 속으로 지었다.
"그쪽을 찾는 이유도 모른채 저희에게 연락을 걸다니, 당신도 참 무방비하네요."
무게없는 능청스러운 말투였지만 나름 실이 없지는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저 내가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간에 그에게는 진실을 말해주도록 하였다. 숨겨서 이득 볼 것도 없고.
"유신혜 씨라고 알고 계실 겁니다. 저희는 얼마 전에 그 사람에게서 당신을 비롯한 두 명의 동료를 보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잠적을 탄 당신들에 대한 수색을 했고, 현재 당신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까 전까지의 가벼운 목소리와 말투와는 전혀 다른 사무적인 말투와 낮은 목소리였다. 무표정하게 답해주다가 이내 다시 가볍고도 능청스러운 분위기로 돌아왔다.
"그래서 찾아왔더니 밖이 저 난리더라고요. 꼭 당신과 만나는 것을 방해하듯이."
뭐 아무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어서 그렇게 진지하게 물어보면서 쇼파에 편하게 기댔던 등을 떼 똑바로 앉았다. 그나저나 수색이라, 질리고 또 질리도록 달고 온 단어네. 뭐, 유신혜가 부탁한 둘을 찾는 건 '그 녀석'에 비하자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한다.
질문에 박한민이 꺼내었던 말은 어딘지 익숙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맞아, 렛쉬를 처음 만났을 때였지. ...렛쉬의 주인이였던 일가족이 익스퍼에게 살해 당했었던. 뇌리에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던 그 사건. ...그런 잔인한 실험을 단행했다는 것 자체로 좋은 이는 아니였다지만. 동정심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아내와 딸까지 희생 당했었으니. ...좋지 않은 기억이 끄집어 내져서, 살짝 얼굴을 짓푸린다.
연구실에 들어서면, 역시 천체 연구소 라는 느낌이 절로 드는 방이였다. 소파에 기대 서서 태양계 모빌을 바라보다, 무슨 볼일이냐는 말에 대답한다.
유신혜. 그 말에 그는 놀란 표정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이은 설명을 들으면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와중에 센하가 자신을 비꼬는 것 같긴 했지만 그것은 신경쓰지 않는지 딱히 뭔가 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이어 모두의 말을 끝까지 들은 후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근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신혜까지 말이 나왔다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들었나...? SSS급 익스퍼. 유리에 대한 것을..."
작게 침묵을 지킨 후에,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그렇게 침묵을 지키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전부 우리의 잘못이네. ...나는 신혜와 함께, 과거...이 연구소에서 그 두 명.. 유리와 유나를 가두고서 연구를 한 연구원 중 하나이기도 하며, 그 이후, 익스파 주입 실험에 참가하기도 했네. ...결국 신혜가 더 이상 이런 것은 하지 말자고 했고, 나 역시 그것에 동의해서 신혜가 월드 리크리에이터의 힘이 깃든 장치를 빼돌리고 도망칠 때 도와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한들...내 죄가 사라지진 않겠지."
작게 한탄하듯이, 정말로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면서 그는 아롱범 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부탁하듯이 이야기했다.
"알겠네. 가도록 하지. 하지만...역시 나 혼자서 갈 순 없네. 상대에 대서 아는 것이 없냐고 물어도 모르겠네. 갑자기 총 소리가 들리고, 땅에 파란색 점이 박히는 듯 하다가 사라져버리니 말이야. 거기다가..차량도 전부 사라져버리고, 뭔가 나가려고 하면 총소리는 둘째치고, 뭔가 강한 힘이 못 가도록 막아버리네. 그런 상황이다보니, 연구원들이 여기에 갇힌채로 나가질 못하고 있네. 자네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그리고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이들을 막아준다면 순순히 가도록 하겠네. 어떤가...도와주겠나? 사실 그런 목적으로 부른 것이긴 하네만...그래도 자네들이 도와준다고 한다면 나도 협조하겠네. 신혜가 도망칠 때 도와준 다른 1명에게도 내가 연락을 하도록 하지."
그것은 일종의 거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전에 경찰이기에,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해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자세히 아는 것은 없는 모양이었다. 간단하게 적의 정보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맞선다고 해도 어떻게 대항할 방법이 있을까? 그것은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