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 하고 싶은 마음은 있긴 합니다만 아무리 연플러라고 해도 연속으로 돌리면...그것은 분명히 편파적인 행동이니까요. 무엇보다 돌릴 분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더욱 그렇죠. 스레주가 먼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키겠습니까? 스레는 연플러들끼리 돌리는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한 주제로 노는 곳이니까요.
달이 무척이나 아름답던 날이기에 달놀이를 나가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을 것 같더란다. 그녀는 제 몰래 행수의 눈을 피해 이수파를 하여금 기방에 제 분신을 앉혀놓고 분홍빛이 아름다운 두루마기를 제 머리에 두르고 몰래 기방을 빠져나오고야 말았다. 참으로 천방지축인 여인네였다. 이렇게 제 심기가 뒤틀리는 날이면 무작정 기방을 빠져나오곤 했으니. 새카만 먹물로 물들인 듯 윤기가 흐르는 제 머리칼은 곱게 땋아내린 채로, 그저 그 마을 젊은 여인네마냥 종종걸음으로 으슥한 길목을 걸었으나 글쎄다, 그 화려한 옷거지들을 보고도 그녀를 평범한 여인네로 볼 이가 있던가 싶더라.
달빛이 흐르는대로 발걸음을 한참 옮기고 나니 적어도 제 기방이 위치한 마을을 한참이나 벗어난 듯 싶었다. 마을이 조용하고 이따금 가족끼리 정다운 웃음소리만 들려오는 걸 보니 제 가슴이 퍽 아파오는 그녀였다. 에이,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처연한 그 눈동자로 달빛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아름답더라, 참으로 아름다워 이 달빛을 임과 함께 보고 싶더라. 그러나 제 임은 곁에 계시질 않아 이 아름다운 달빛을 보고 계신지도 의문이니, 참으로 불쌍한 여인네였다.
달밤의 바람이 꽤 차가웠다. 안그래도 얇은 옷가지들을 파고드는 찬바람을 이겨낼 재간은 없었다. 그녀는 제 몸을 한껏 움츠리며 인상을 팍 써내고야 말았다. 달은 이리도 아름답건만 웬 겨울바람이 달놀이를 방해하는구나. 참으로 서글픈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 으응?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쯤 되면 달놀이를 그만 두고 기방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저 멀리서 웬 남정네의 그림자가 비쳐들었다.
달밤이 참으로 아름답기에 귀찮은 것을 이겨내고 잠시 거리를 걸었다. 내 옆에 있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이미 돌아간 것을 잡는 것은 뭔가 맞지 않는 것 같고..그렇다고 하윤 낭자를 부르자니, 아무래도 혼례를 약조한 이가 있으니,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다른 이들을 부르자니 귀찮고... 결국 이렇게 혼자 조용히 발걸음을 걸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겨울의 추위는 언제쯤 사그러들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곧 봄이 찾아올지니, 그 봄이 어떤 느낌이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달을 바라보기 위해서 딱 좋은 곳이라면 한군데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의 이수파가 이동을 시켜주는 그런 이수파이기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바로 그 원인이었다. 그러다보면 일에서 잠시 멀어져서 조용히 쉴 수 있는 곳도 찾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아무튼 그곳을 향해서 천천히 나아가며 지금은 옆에 없는 낭자를 떠올리다 앞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딱히 멈출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누군지 살필 이유도 없었다. ...귀찮았으니까. 어차피 가까이 가면 보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며, 달을 보기 위해서 걸어가는 도중 어둠이 달빛에 비쳐, 잘 보이지 않던 이의 모습이 보였다. 다름 아닌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우리 포도청에서 일하는 이가 아니던가. ...내가 추천하여 일하게 되었으니, 어찌 못 알아볼 수 있겠는가. 살며시 다가가며, 그녀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대가 이 시간에 여기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오늘은 일을 쉽니까? 아무튼 좋은 밤입니다. 유혜 낭자."
계급에 따라서 부르는 호칭이 있다고는 하지만, 귀찮기에 그런 것은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같은 도술포도청에서 일하는 이다. 계급도 성별도 따지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판국에 무엇을 그리 귀찮게 따지리라. 이어 그녀의 근처에서 멈춰선 후에 잠시 하늘을 바라보면서 달을 바라보았다.
제 나이가 벌써 스물 여섯입니다. 정상적인 여인이라면 혼례를 치룬지 오래여야하며, 과부가 되어있대도 이상할 것이 없지요. 그런데 왜 아직까지 이 기방에 눌러앉아 하하호호 웃음이나 파시냐 물으신겝니까? 비싼 이야기는 아니니, 제 나리에게만 특별히 들려드리지요. 술이 잘 넘어가는 이야기는 아닐겝니다.
제 나이 열여섯에 아버지와 언니를 화마에 잃어 힘들게도 살아왔습니다. 글쎄, 제 어미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잡것들이 보인다지 뭡니까? 하기야, 그 나이에 갑작스레 과부가 되어 양반집 마님이 아닌 신분으로 살아가야한다니 정신이 온전치 못 할만 하지요. 한양 근처에서 주막을 한다던가요? 절연한지 오래입니다. 제 어미가 저를 이 기방에 팔아 넘겼기에 말이지요.
제가 불쌍해 뵈이십니까. 저는 불쌍하지 않습니다. 어미의 마지막 정으로 그나마 몸을 파는 처지는 아니게 되었으며 아마 저를 팔고 받은 값이 꽤 될겝니다. 그러니 불쌍한 처지는 아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나리께는 아마 이 나이가 되도록 정인 하나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제가 우습기도 하시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사랑이나 희망같은 이야기를 믿기에는 너무 커버리고 말았지 뭡니까. 한때는 사랑과 희망이 있을거라 믿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데, 그 믿음이 무엇으로 돌아오는 지 아십니까? 믿음은 결국에 실망으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믿음이 크면 실망도 크고, 제 마음도 더 아파오는 법인데. 제가 바보도 아니고 왜 희망을 믿어야 합니까.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나리. 분명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술이 잘 들어가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이런 우중충한 이야기를 한 댓가로 제가 한 곡조를 불러드리지요. 나리가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물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없으니, 제가 댓가를 치루어서라도 제 이야기를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나리께도 정당한 값을 드리는 것이니 개의치 마십시오.
*
기생의 이름은 유혜였다. 기쁠 愉, 별 반짝일 暳를 사용하여 그 이름이 유혜라 하더라. 이상한 계집이 아닐 수 없었다. 본디 기생질을 하게 될 계집이라면 기명을 붙여 기생질을 시작하건만, 그 계집은 제 기방의 행수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도 제 이름을 고집했다하니. 결국에는 그 기방의 행수가 유별난 기집이라 욕질을 퍼붓고는 제 이름을 쓰도록 허락했다 하더란다. 그 소문이 돌고부터, 그 기방의 행수 또한 여간 사나분 여인이 아니었음에도 그 계집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하니 어떠한 계집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기방에 죽 늘어져 줄을 서곤 했다. 몸을 파는 관노들과는 달라 그 계집이 부르는 곡조와 다루는 가락에만 술잔을 기울여야 했음에도 그 계집을 찾는 이들이 손과 발을 몽땅 써도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전해진다만, 그래보았자 제 어미에게 버림받아 기생질이나 하는 여인이니 그 팔자가 사납기 그지없더라. 하기야 제대로 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이라면 지금쯤 적당한 나이에 혼례를 올려 새끼를 낳아 오손도손 잘 살고 있을터이니, 불쌍한 계집이기는 했다. 삶의 대부분을 기방에 눌러앉아 빛도 제대로 보지 않고 가락을 연주하며 곡조를 뽑아내야하니, 그 얼마나 불쌍하던가. 아, 혹시 또 모르는 일이었다. 달밤에 홀로 기방을 나와 달놀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만일 운이 좋으면 그 잘난 기집의 얼굴을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먹으로 물들인 듯 새카만 머리칼에 얼굴은 백옥마냥 하얗다하니 그 성문이 참말이라면 가히 발군의 미인이 아닐 수 없다더라. 그런 미인이라면 기생이라도 좋으니 저와 여생을 함께 하자며 달려들 남정네가 한둘은 있을지언정 그 계집의 곁에는 그 어떤 남정네도 지나치질 않았다. 숨겨둔 정인이 있는 것이 아니더냐는 소문이 흐르기도 했지만 그 기방의 행수가 그럴 일은 없다고 단박에 못을 박았으니 그 소문은 결국에 사그라 들고말았더라. 그럼에도 이따금 그 여인에게 청혼을 하러 들르는 남정네들이 있다고 하니 참 대단한 계집이 아닐 수 없었다.
*
" 오늘도 임께서는 저를 들리지 않으시는가 봅니다. "
달빛이 시리도록 푸른 밤이었다. 그리도 달고 부드러운 달빛이 오늘따라 저에게 매정하고 차가운 걸 뵈니 제 옆에 임이 계시질 않아 달빛도 이리도 제게 매정한건가 싶더란다. 매일 저를 뵈러오는 임께서 오늘은 제 곁을 지키지 않으시니, 혹여나 오시다가 변이라도 당하셨을까. 위험한 일이 생기셨을까 온갖 걱정이 사무치는 와중에도 혹여나 임에게 여인네가 생기신걸까 의문이 드는 걸 보면 저도 영락없는 젊은 여인이었다. 기방에서 하루를 시작하여 기방에서 하루를 끝내어 그 값이 비싸 저도 사질 못하는 웃음을 팔고 목소리가 아름답다하여 곡조를 불러내며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악기를 연주하면 또 임이 없는 밤이더라. 제 아무리 치장을 하고 분을 묻혀도 정작 임은 그녀의 곁에 오시지를 않으니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던가. 마지막 손님을 내보내고 처소에 들기 위해 준비를 하다 무심코 바라본 그 달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녀는 그만 낙루하고 말았다. 아, 참으로 비참한 인생이로다. 웃음을 팔고 기쁨을 팔거든 저에게 되돌아오는 건 끝없는 그리움과 사무침뿐이었으니 임을 기다리는 하루가 천 년과도 같아 이 몸이 다 닳고 부스러져야 임이 찾아오실 것만 같았다. 시하얀 소복을 거두고 잠시만 달놀이를 하고자 마루로 종종걸음을 해내니 처마에 가려졌던 그 달빛이 그리도 쏟아지더라.
" 하늘도 너무 하시오. 어찌하여 내 팔자를 이리도 짓이겨놓으셨소. "
듣는 이가 없는 한탄은 결국에 제게로 돌아오는 법이렸다. 제 몸을 한껏 웅크리고 그 달빛을 보기 위해 목을 내밀자 달이 구름에 가려지더라. 아, 달님께서도 이 몸이 싫으신가 봅니다. 씁쓸한 미소가 그 얼굴에 퍼져나가고야 말았다. 먹으로 물들인듯 새카만 머리칼이 밤바람에 휘날리자 그제야 오한이 섬찟 드는겐지 그미가 제 몸을 저 스스로 꽉 껴안아냈다. 외로움을 떨쳐내고자 거세게 제 몸을 얼싸안았건만 돌아오는 건 서글픈 달빛의 노랫자락이 전부였다.
어둠에 가려져 그 얼굴이 제대로 뵈질 않더니, 오히려 저 남정네가 제게로 걸음을 하는 것을 보며 일면식이 있는 사내인가 싶더란다. 당신은 뉘시오, 하는 마음으로 저 또한 걸음을 옮겨 걷다보니 저를 포도청으로 데려다준 나리였다.
" 오랜만입니다, 나리. 제 몰래 기방을 빠져나와 달구경을 하던 참이었지요. 좋은 밤입니다. "
그녀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평생을 기녀의 삶으로 살아갈 줄 알았건만 나리의 도움으로 저도 사람을 돕는 일이란 걸 해봤더라. 그녀가 한 번 하늘 높이 떠오른 달을 바라보더니 다시금 고개를 내려 나리에게로 시선을 옮겨내었다.
" 그렇습니다. 저 밝은 달을 기방에서 앉아 바라보자니 너무 아까워, 달을 따라 걷다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지 뭡니까. "
제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던 그녀가 짤막한 대답을 내놓았다. 나리께서도 달을 구경하러 나오신겐가. 포도청에서 몇 번 그 얼굴을 대면한 외로는 만남이 처음이라 참으로 어색한 사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조금 더 걸음을 옮겨 적당히 거리를 좁혀낸 뒤에야 뒤이어 질문을 던져낼 수 있었다.
" 그러는 나리께서도 달구경을 나오셨나봅니다. 어디, 요즈음은 어찌 지내십니까. "
간단한 안부인사에 지나치지 않는 질문을 내놓으며, 그녀가 제 머리에 씌워놓은 두루마기를 느릿히 내려 제 어깨에 둘러내었다. 어차피 아는 얼굴인데, 가려보았자 무얼 하겠는가. 다른 이가 본다면 역정을 내고도 남았겠지만 이미 달이 깊은 밤이었으니 별 상관은 없었을게다.
" 나리에게는 늘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게도 남을 돕는 일을 시켜주시니,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
"...낭자도 일이 귀찮은 것이오? 하기사, 이렇게 달이 밝은 날에는 일보다는 구경이 더 재미집니다. ...왜 그것을 하윤 낭자는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는 없는 하윤 낭자를 향해서 투덜거리는 말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 몰래 기방을 빠져나와 달구경을 하고 있다. 간단하게 일을 팽겨치고 놀러나왔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런 낭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비밀로 해주겠다는 의미로 오른손 검지를 들어 입술에 살짝 갖다댔다. 당연하지만 어딘가에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말을 한들 무엇하랴. 내 스스로가 떳떠하지 않은데. 여기서 잔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은 필시 하윤 낭자밖에 없으리라.
거리를 좁혀내는 낭자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들려오는 안부 인사를 들으면서 옷깃을 정리하며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것은 어쩌면 흘러가는 느낌의 무심한 어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냥 무심한 어조는 아니었다. 나름 친근함을 담은 말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같은 포도청에서 일하는 이다. 친근함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일이 막 끝나서 돌아갈까 하다가 달이 밝아서 여기로 왔습니다. ....뭐, 그냥 그러려니 지내고 있습니다. ...그놈의 붓글씨만 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도데체 저 위의 관리들은 무엇때문에, 편하고 좋은 언문을 쓰지 않고 귀찮기 짝이 없는 한자를 쓰는 것인지... 거, 쓰다가 지치겠습니다. 그려. 아주 귀찮아서 살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나에게 감사한다고 한들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포도대장님의 명을 받들어 능력이 있는 이를 추천했을 뿐입니다."
입꼬리를 올려 웃는 낭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하다가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손가락을 퉁겼다. 이어 내 손바닥에 집에 있는 유과가 놓여졌다. 참으로 편리한 이수파일 수가 없다. 이렇게 마음대로 물건을 가지고 올 수 있다니. 나에겐 딱 맞는 이수파라고 생각하며 유과를 낭자에게 내밀었다.
고갤 들어 하늘을 살피니 달이 크다. 구름 한 점 없이 밝아서 호롱불이 필요 없을 정도로. 창가에 기대어 앉은 채 하릴없이 별만 바라보다간, 다시 곰방대를 입에 물곤 깊게 들이피단, 깊게 내쉰다. 약방에 있었더라면 감초라도 썰었을 턴데. 도술포도청이니 뭐니에 지내게 된 후론 영 심심해서리. 날이 밝았을 때 모처럼 시장 구경이라도 하면 될 터지만. 길게 내린 흰머릴 쓱 쓸다, 피실 웃음을 터트린다. 산에서 지내던게 오래다보니. 아직은 힘든 일이니. 슬적 고갤 숙이곤 곰방대를 내려 놓는다. 흰 연기가 귀신처럼 퍼지다간 사라진다.
그 말이 바로 시발점이 되었더란다. 오시 일각 경, 하인은 아무 생각 없이 아이에게 말했던 거이다.
「남사당패가 저잣거리에 나타났다 합니다」
제 나이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하인의 말에 아이의 눈이 그리 반짝일 수가 없었다. 남사당패라 함은, 저 고을 이 고을 돌아다니며 어름산이가 어름을 하고, 땅꾼들이 땅에서 짚고 놀고, 풍물패가 이리저리 후두두두두 놀지 않더이가. 아이는 그 중에서도 덜미 구경 또한 참으로 좋아했다.
풍물패의 신명나는 가락에 맞춰서 공연이 시작되는 걸 즐기는 것도 좋아했다. 상모 돌리면 그 옆에서 흰 상모 천이 돌아가는 걸 그리 빠안히 바라봤더이다.
「말뚝아! 가자!」 「아이고 도련님!」
대감어른이 아시면 이 말뚝이 죽사옵니다, 하는 하인의 외침에도 괜찮을 거라며 나갈 채비를 하는 아이의 발걸음이 여간 잰 게 아니다. 잡으면 크게 혼이 난다며 질색하는 말뚝의 흰 옷소매를 잡으며 아이는 나름 빨리 저잣거리로 뛰어갔다. 그 바쁜 발걸음은 이미 날 잊어버린 거고나.머리가 붉은 색목인은 날 잊었어. 날.. .감히 날 잊었어.
저 멀리서 풍물패의 태평소 소리가 들려온다. 그 가락이 참으로 신명나는구나, 꽹과리가 노래를 하고 장구가 그 뒤를 따르고, 상모가 머리 위에서 춤을 춘다. 높이 든 노랗고 푸르고 불구죽죽한 깃발엔, 그래.
남사당(男寺黨)이라고 선명하게 쓰여있고나. 장쇠가 남사당패가 왔다고 얼쑤, 가락을 집어넣는다. 한 자리에 모여있는 풍물패는 곧 저잣거리의 광장에서 크게 노닐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아이를 보고 입방아를 찧어댔을, 사람들은 눈에 띄는 아이도 아무렇지 않은 듯 그저 멍하니 돌아가는 상모와 징 소리, 장구 소리와 꽹과리 소리, 승무를 넋을 놓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 소리가 참으로 요란하고 커다래서 천지가 뒤흔들어지는 소리 같았고나.
풍물패 공연이 끝나면, 높은 줄 위에 오른 어름산이가 어름을 이리저리 노니며, 매호씨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예사가 아니더외다. 그러하외다. 제 어린 주인이 눈을 빛내며 어름산이의 어름 공연을 보는 걸 지켜보던 말뚝은 한숨을 폭폭 내쉬는 것이었다. 또 한 차례, 대감 어른께 혼나겠고나. 고을 사또였다면 조금 나았을꼬, 진사댁 이었다면 조금 나았을꼬. 연꽃 핀 날의 우리 도련님이 남사당에 푹 빠지셨고나.
그런 하인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아이는 그저 멍하니 공연을 볼 뿐이었다.
제 하인에게「말뚝아, 너처럼 이리 비뚝, 저리 비뚝 모든 걸 다 아는 말뚝이가 또 있고나」하며, 아이는 말뚝이 탈을 보고 눈을 빛내는가 하면, 버나꾼이 버나 돌리다가 높이 던지면 사람들과 함께 어어, 소리를 내며 바라봤다.
그래, 어째 쉬이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주인은 혼각이 되어서야, 제 손에 약과를 들려져서야, 집에 돌아간다고 자리를 털고 나오더외다. 그 와중에 제 누이에게 준다며, 약과 하나를 꼭 손에 쥐는 폼이 아슬아슬 해, 말뚝은 제 주인의 복주머니에 그것을 넣었더란다. 그래, 아이는 그 약과를 좋아했더랬지? 그 공연의 느낌도 좋았더라지? 대감 어른께 비밀로 하고 하인과 나갔다 온 것을, 그래. 그리 좋아했었지. 그런데 그게 다 무어냐, 너는 어째서 날 잊은 게냐. 나는 네가 참 싫다, 아이야.
뒤이어지는 말에는 즐거운 듯 웃음을 내비치며 그녀가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보아하니 일이 귀찮아 나오신 모양이었다. 같이 포도청에서 일을 하는 분께서는 지독히도 일을 사랑 하시는겐가. 비밀로 해주겠다는 듯 저의 검지를 입술에 가져가는 나리를 보며 알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를 지어내는 그녀였다.
" 배움을 게을리 하셔서는 아니되지요. 저야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가 없는 처지이니 이런 말이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포도대장님께 올려야 할 감사인사를 잘못 전해드렸으니. 나리께서 저 대신 그 감사인사를 전해주시기 않으시겠습니까? "
가볍게 농을 곁들이며 그녀가 밝게 웃었다. 이리 웃어보는 것도 얼마만이더냐, 남에게 웃음을 파는 일을 하더니 결국에는 제 스스로 웃는 법도 잊어버린 듯 싶었다. 그녀는 제 이수파를 하여금 유과를 꺼내어 제게 권하는 나리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트린다.
" 이런, 이런 곳에서 유과를 맛보리라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다과지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
나리의 손에 들린 유과를 받아 입에 넣어 우물이던 그녀가 결국에 남은 유과 조각을 모조리 제 입에 넣어 삼켜냈다. 달을 보며 먹으니 유과에 꿀이라도 더 발라놓은 듯 그 달콤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더라. 그녀가 고맙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여냈다.
" 그나저나, 보면 볼 수록 참으로 편리한 이수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리께서는 몇 달 며칠을 말을 타고 달릴 필요가 없으실테니, 참으로 부러운 이수파입니다. "
하기야, 이수파라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들 또한 많건만. 제가 할 말은 아닌 듯 싶었지만 굳이 그 말을 정정해내진 않는 그녀였다.
" 참으로 뒤숭숭한 세상입니다. 세상을 도우라 내려졌을 이수파를 가지고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니 말입니다. "
저라면 이 세상을 위해 몸을 바쳤을겝니다. 지금도 그러하고 있지만. 그녀가 느릿히 뒷말을 덧붙여내며 생긋 미소를 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