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정도 상황이 마무리가 된 것 같자, 제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확실히 처음 사건 맡았을 때와는 달랐다. 우리도 많이 맞춰지나봐요. 다친 사람도 없어서 다행이구. 그보다는……. 제이가 신해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노를 있는대로 터뜨리는 그를 바라보는 것 같던 제이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빛깔 하나가 스쳐지나간다. 도발해서 어쩌게. 제이가 지현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한 번 돌리다, 이내 팔짱을 꼈다. 나설 권한은 없었다. 저 사람을 체포하느냐 쏴죽이느냐는 제 것이 아니다. 총을 든 건 상처를 가진 이지현이었다.
"일단은 최면이 풀린 것 같아요." ...경찰들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어느 정도 범인에 대해 적당한 핑계거리나. 사건을 만든 뒤 부모들에게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말을 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멘탈케어 및 비밀보장등등을 해야겠지만요. 라고 생각하고는 자신이 끼어들기도 전에 순식간에 끝난 것 같은 상황을 생각하고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은 아마도 기절했던 사람들을 적당히 자는 것처럼 모아둔 걸 잘했다.. 와 깨진 유리창을 삼켜 없앴다는 것 정도요?
감각 공유중에 '청각'만을 극도로 늘리고, 놈을 직접 쏘는 대신 귀 옆의 바닥을 향해 여섯 발을 모두 쐈다. 내 오버익스파의 세기를 조절 못하는 놈은 갑자기 증폭된 청력에 총소리가 더해져 머리가 아플것이다. 복수는, 이정도면 충분하다. 권총을 집어던지고, 놈에게 수갑을 채운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체포구속적부심을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서 권총을 든게 실수였어. 다음부터는 차라리 나이프로 날 위협하는걸 추천할게. 물론, 지난 사건과 이번 사건의 형량을 모두 받는 너에게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렸다. 난, 또 정신을 제어하는 데에 실패한 것인가. 무표정인채 눈을 살짝 감았다. 구제할 방도가 없잖아, 이 수준이면. 유혜는 나를 어떻게 보았을지. 이번에야말로 실망하지는 않았을까. 놀랍게도 이 생각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싶지 않은 어느 한 멍청이의 욕심이었다. 하하. 고개를 살짝 숙이고 헛웃음을 작게 흘렸다.
해문은 체포 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니, 아직은 몰랐다. 수갑을 전송 받은 이지현 씨의 선택에 따라 그건 갈리는 거겠지. 저번의 나 같은 바보 같은 짓은 말았으면 좋겠다.
조롱하듯이 도발을 계속하는 그 자식의 모습. ...'그 인간'은 저런 상황에 내몰리면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웬만하면, 신나게 비웃어줄 수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는데. 공허한 무표정인채 그리 생각하였다.
이제 시간도 충분히 지났으니, 조만간에 나츠미와 자료를 정리하자. 몇 년씩이나 들인 정보들을 모두 정리하고, 충분한 수준이 되었으면. 시선을 아래로 살짝 깔았다. 코미키 히로시가 한국으로 온 것은 예상 밖의 일이 아니었다.
참 웃겨서, 유혜가 그에게도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녀는 제 제복을 툭툭 털어내며 해문을 내려다본다. 약한 애들이 입만 잘 턴다니까. 아 그래서 내가 입을 잘 터나? 아무렴 상관은 없지. 지현씨에게 전해지는 익스퍼용 수갑을 멀거니 바라보며 유혜가 어깨를 으쓱인다. 아이들이 무사해서, 다행이야.
어디가서 메이비 후배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어! 라고 말해봤자 아 그래? 하는 반응밖에 돌아오지 않을것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도 없고, 자신에게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씁쓸해지는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전부 자기자신이 초래한 결과이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선배가 여자였으면 멘트에 흔들렸을지도 모릅니다만."
남자라서 다행입니다. 그녀는 농담조로 그렇게 말하며 큭큭대고는 그를 잠시 바라봤다. 뭐어..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인뒤에 이어진 선배의 말에 눈을 깜박였다. 느릿느릿.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말이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만........ 어차피 이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니까. 그냥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죠."
이제와서 그 범인을 찾아간다고 범인이 사과를 할까? 전혀.. 그녀는 이제 과거의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말이다. 그렇기에 그저 기다릴뿐이지. 자신을 몰아세우면서. 뭐라도 할 일을 만들어서 문제에서 눈을 돌리는거다.
"...... 줄 생각 없습니다-"
그녀는 알아서 잘 한다는 말에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이 든 컵을 건네지 않았다. 마치 심술부리듯이.
순식간에 결판이 나버렸다. 죽이라는 말을 쉽게 하는 걸 보니 세상이 달라진게 실감이 났다. 세상 참 좋아졌어. 망할 범죄자들이 죽여라 뭐라 명령하고 도발할 정도로. 안 그래? 죽음이란 단어를 어째 저리 쉽게 얘기하는지. 아니, 멍청이지. 사실 이런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사람들은 저 남자의 말대로 진짜 목숨을 버리도록 도와주거나 아예 죽일 수도 있는것이다.
다만, 그게 나의 연인이라면.
나는 당신의 손이 더러워지는 걸 원치 않았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니지. 긴 말은 필요 없을것이다. 총성이 울리자 그는 잠시 어깨를 떨었다. 피는 튀지 않았더라지. 이어지는 제 연인의 말에 그제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지현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간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 없이 팔을 뻗어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