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뭔가 이상하다. 나는 어째서 이 자리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지. 제 모친의 죽음을 향해 미친 듯이 웃은 인간이, 한 마리의 고양이를 제 손으로 죽여버린 인간이, 피로 이어진 연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조소한 인간이, 복수를 연신 다짐하고 있는 인간이, 절대로 좋게 봐줄 수 없는 인간이 어째서 지금 이 자리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지. 어깨를 토닥이는 감각이 느껴진다. 나에게 동정 받을 가치란 과연 있는 걸까. 26년을 걸쳐서 비뚤어질 때로 비뚤어진 마음이 의문을 제기했다. 정말로 있다고 생각해? 아니.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는 어지러워져 왔지만, 나는 평상심을 되찾으려고 했고, 어느 정도 진정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듯이. 익숙한 듯이. 그러자 옆에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려줄 수 있느냐는 조심스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눈을 한 번 느리게 깜박인 뒤 자조하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능청스레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었지만, 제 과거는 묻는대로 다 들추어낸 십년지기 앞에서는 쉽사리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십년지기라는 건, 그 오랜 시간만큼 속여왔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고.
"...내가 아까 내 소원이 정말로 '아키오토 센하'가 되는 거라고 했었지? 사실 15살 때 개명한 거거든, 그거. 원래 이름은."
잠시 주저했다.
"...코미키 토오야. 그 전 이름은 히라카와 토오야. 두 개야. 후자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지만."
체념한 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복잡한 이야기야.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에는 CPH라는 대기업이 있어. 지금도 일본에서 힘을 잡고 있는 그런 회산데, 그 회사의 회장이 바로 코미키 텐마. 혈연을 따지자면 내 조부야. 코미키 텐마 밑에는 코미키 히로시와 코미키 하루나, 두 명의 자식이 있는데, 코미키 히로시는 재벌 미나미 가의 미나미 라이무와 결혼했어. 코미키 하루나는 코미키 류헤이와 결혼했는데, 코미키 류헤이의 본래 성은 몰라. 애초에 많이 보지 못한데다가 묘하게 꺼려졌거든, 그 사람."
눈살을 살짝 찌푸리다가 말을 이었다.
"한편 나는 어떻게 태어났냐면...굉장히 더러운 이야기야. 사생아라고 하면 알겠지? 코미키 히로시는 코미키 라이무와의 정략결혼이 어지간히도 싫었나봐. 어떻게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히라카와 하나를 만나서 나와 아키야를 만들었어. 일방적으로. 쓰레기야, 그 인간은. ...참, 아키야는 내 쌍둥이 동생이야. 고소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히라카와 하나는 우리 둘을 낳고 키웠어. 어째선지 제 모친인 히라카와 사쿠라가 아닌 가족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녀에게만 의지하면서 우리 둘을 계속 키웠어. 심정이 보통 복잡했던 것이 아니겠지. 게다가 나와 아키야는 그 코미키 히로시와 상당히 닮았다는 것 같아.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이었어. 그러다가 내가 7살이었을 때 히라카와 사쿠라가 방화 사건으로 사망하고...결국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어, 그 사람은."
그 때부터 학대가 시작된 거야, 라고 힘없이 덧붙였다.
"그랬는데, 이어지는 가을에 우리 집에 불이 붙었지 뭐야. 그 사람은 불타서...맞아, 완전히 불에 휘감겨서 죽었어."
뒤틀린 미소를 쓸쓸하게 잠시 지었다.
"그 때 코미키 텐마가 나와 아키야를 몰래 데리고 간 것 같아. 왜냐하면 아들이 부족했거든. 우리 둘이 사생아인 줄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자신의 피만 흐르고 있다면 누구든지 좋다는 것이 남아 선호 사상이 짙었던 그 인간의 심리인 듯해서...그 자식은 기억을 왜곡하는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 둘의 기억을 조작하고, 오버 익스파로 히라카와 토오야와 히라카와 아키야를 없던 이로 만들어버렸어. 그렇게, 히라카와 토오야는 없어지고 코미키 토오야가 나타난 거야. 코미키 토오야가 된 나는 기억 조작을 당한 탓에 완전히 코미키 텐마를 위해서 살아갔어. 자유롭지 못했는데다가, 가족다운 사랑마저 전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코미키 히로시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서 완전히 도구를 자처했어. 그러다가 어떤 한 사건으로 기억이 원래대로 돌아왔던 거지. 그 때 방황을 조금 했고, 충동적으로 몰래 밖으로 나갔다가...그 때 성재도 만났고. 응."
기어코 도게자를 하던 그 녀석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헛웃음을 소탈하게 흘렸다.
"어쩌다보니 그 녀석이랑 지내게 되었고ㅡ물론 몰래ㅡ 그러다가 타나카 카에데라는 여자아이도 알고 셋이서 나름대로 잘 지냈어. 그랬다고 생각해. 여기까지는 그나마 평화로웠지. 그런데, 14살이었을 때 어느날 우연히 어떤 이야기를 엿듣고 만 거야. 타나카 가가 위험하니 청부업자를 고용해 죽여야겠다는 이야기. 여러 의미로 놀라버려서 곧바로 밖으로 나가 카에데를 만나서 그 사실을 알렸어. 급해서 타나카 부부까지는 못 만났지. 하지만 카에데는 무슨 장난을 치는 거냐면서 태연하게 반응했고, 얼른 돌아가야했던 나는 마지막까지 경고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어. 그랬는데...당해버린 거야, 끔찍하게."
시체가 떠올라버려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다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코미키 텐마는 내가 카에데에게 경고를 주었음을 알아챘던 것 같아. 후계자로 지목한 손자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니 보통 실망했던 것이 아니었겠지, 그 인간은. 그 뒤로 날...몇 달 동안 어두운 방에 갇히게 만들었어. 능력도 못 쓰게 손을 마구잡이로 묶어서."
강박적으로 손목을 붙잡고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어둠 속에서 환각에 시달린 것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러다 마지막에...끈을 풀고 내 앞에 나이프를 던지더니 나가고 싶으면 근처에 있는 그 고양이를 죽이라는 거야. 갇히던 도중에 갑자기 들여온 고양이였어. 정이 들게끔 만들려던 속셈이었겠지. 코미키 텐마는 분명 나에게 이기심과 무자비함을 심어주려고 했던 걸 거야.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저지를 수 있는 이기심과 무자비함. 하하, 코미키 텐마는 성공했던 것 같아. 난 그 고양이를 죽이고 밖으로 나왔어. 그리고 그 때 어렴풋이 다짐했어. 코미키 텐마에게 복수하기로. 그래, 코미키 텐마는 성공한 거야. 나는 그 때 키운 이기심과 무자비함을 그 자식에게로 향했어."
얼굴을 감싸더니 잠시 낮게 웃었다. 그러다가 손을 내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 해 여름, 코미키 스즈나가 죽었어. 참, 내가 동생이 자살 시도를 하다 버림 받은 거라고 했지? 자살 시도를 했던 코미키 스즈나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사고사로 등록되고, 그 후로 타나카 나츠미라는 이름으로 신분이 바뀌어서 살아가고 있어. 지금은 호시야마 나츠미지만. 그건 그렇고, 코미키 스즈나가 죽은 이후로 코미키 아키야도 실종되었어. 그래, 내 쌍둥이 동생이 말이야. 그 일들을 계기로, 나는 계속 생각해오던 복수를 실천에 옮기기로 했어. 나는 코미키 가와 절연하고, 일본에서 마쳐야만 하는 일들을 하고 난 다음에, 아키오토 센하라고 개명하고 한국으로 넘어온 거야."
그 때는 코미키 라이무의 힘을 잠시 빌렸었지. 누구의 편도 아닌 인간이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들은 것처럼, 토오야의 인생은 근본부터 엉망이었어. 그래서 내가 그 이름을 싫어하고, 정말로 '아키오토 센하'가 되고 싶다는 소원의 의미는 토오야와 아무런 연관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욕심이야. 소원이라는 희망찬 단어와 어울릴리가 없지."
결국은 '토오야'로서의 인생을 모두 밝혀버렸다. 나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그러니까, 나는 절대로 좋게 봐줄 수 없는 인간이야. 그런 인간을 친구로 삼고 있었다니, 성재도 너도 다 멍청한 거야. 분명 실망했겠지. 잘 알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절교를 선언하거나 하지 그래."
매정하게 단언하면서 시선을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겼다.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답지 않게.
//어차피 다 밝힐 이야기! 일찍 다 밝힌다! 하지만 다들 눈치채셨겠지! (쓸데없이 길다)....으아아아아 유혜주 죄송합니다아아 ;ㅁ;(머리박)
그리고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알려드리죠. 사실 여러분들은 잘 몰랐겠지만 여러분들의 사건 때의 행동이나 대사, 그리고 사고 방식 등은 전부 점수로 매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아마 Case 13. 이번 사건을 끝으로... 분기가 갈리게 됩니다. 후후후후후후.....(뚜까맞음
심연쟝: 사이렉스보다 못되어먹은지고. 현세에 저런 폐기물이 있으면 안되는 것이니라. 이 몸을 방해할 게 뻔하지 않겠느냐. 쓸어버리도록 하마. 타미엘주: 아냐. 사이렉스는 혼자서 수많은 사람에게 그딴 짓을 벌였으니 비등비등한ㄱ...음. 역시 사이렉스보다 나쁘네!(그림자 목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얕게 웃는다. 저가 기억해야 할 얼굴이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이름도. 항상 사람의 이름을 잘 잊고 하던 저라. 선배로써 신입의 이름을 잊는다던가 하는 불상사를 막으려 한동안 다솔의 그레이 색 머리카락을 눈에 담다, 컵을 받아들자 빈손을 거둔다. 따뜻하던 손이 금세 차게 식었지만. 다행히도 한 컵 더 가져와서. 제 자리도 아닌 남의 책상 위에 빈 쟁반을 내려놓고는 의자까지 끌어 앉는다. 다솔을 향해 몸을 돌린 채, 물그럼 바라보다 차를 홀짝인다. 입가에서 컵을 거두곤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어 낸다.
"월하라고 해요. 응. 윤 월하."
말을 끝내곤 눈을 마주하며 바라보다, 다솔이 차를 홀짝이는 모습에 방글이 웃는다. 매화 차라며. 티백이랴 향은 덜하지만 좋을 거라는 둥. 재잘 말을 이어내다 저 혼자 신나게 떠들고 있단 걸 깨닫곤 입을 다문다. 낯간지럽단 표정을 지어 보이다, 금세 다시금 웃는다.
코미키 토오야, 히라카와 토오야. 순서대로 지나간 이름이 아키오토 센하의 진짜 이름이었다. 그랬구나, 유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이어지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CPH, 어렴풋 들어본 이름이었다. 일본에서 유명한 대기업. 그녀가 이어지는 센하의 이야기에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모든 것이 움직이는 이 공간에서 멈춘 것은 오로지 우리 둘, 길 한복판에 서있는 이들을 힐긋 쳐다보며 지나가는 이들이 간간히 있었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학대, 센하의 입에서 그 말이 흐르자 유혜의 두 눈이 가늘게 흐려진다.
“ 센하..., “
애처롭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덤덤히 저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할지, 아니. 애초에 어떠한 말을 건네도 괜찮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녀는 그와 10년을 알아오며 서로를 잘 안다고 멋대로 생각해놓고, 정작 그의 이야기는 단 하나도 알지 못했다. 웃기는 일이야, 너말이야. 유혜가 시선을 바닥으로 한 번 떨구고는 이내 다시 제 십년지기에게로 시선을 옮겨낸다.
끝까지도 파렴치한 인간들이었구나. 그 어린아이에게 능력을 써 기억을 지워버리고, 그렇게까지 자신의 소유물로 귀속 시키고 싶었던건가. 머릿 속이 달아오르는 느낌에 유혜가 무겁게 가라앉은 한숨을 내쉬어냈다. 복수라는 감정은 감히 내 스스로가 다룰 수 없는 감정이란 걸,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토오야와 센하는 다른 인간인가, 그렇다면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은 토오야인가 센하인가. 그녀가 느릿히 두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더 센하의 이름을 불렀다.
“ ...너는 어쩌고 싶어? “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었다. 그에게 질문을 되돌리다니, 하지만 그녀의 말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 뭐라 말을 해야할까, 괜한 위로가 상처가 될까봐. 말을 아끼게 되네. 센하, 나는 실망하지 않았어. “
그녀가 흐릿히 미소를 지었다. 절교는 무슨, 어딘가 가벼운 말투로 남은 문장을 덧붙인 뒤. 그녀가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더니 다시금 밝은 미소를 지으며 센하를 바라본다.
“ 네가 토오야든, 센하든. 너는 나와 10년을 함께 한 친구잖아.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어차피 난 네 편인걸. “
범죄는 안돼, 형식적으로 우린 경찰인데. 유혜가 입꼬리를 올려내며 웃었다. 설마 나랑 절교 하고 싶은거야? 가벼운 장난을 덧붙이며. 그녀가 센하의 등을 툭툭 두드린다.
“ 소원은 원래 말도 안되는 걸 비는거야. 소원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는 없어. “
그러면서 느릿히 발걸음을 떼어내는 그녀였다. 여기서 너무 오래 머물렀어. 어차피 사무실까지 가려면 길은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대화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 힘들었겠다. “
진심이 실린 말이었다. —너도, 나도. 유혜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두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