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별명은 '개'에요. 으응. 어째서 강아지가 아니냐고요? 저도 강아지가 더 귀여워서 좋긴하지만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항상 저를 부를 때 개새끼나 개자식이라고 부르거든요. 이상하죠, 저한테는 이름이 있는데. 그래서 아버지만이 특별히 부르는 별명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은 궁금해졌어요. 다른 의미는 없었고, 어린아이의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물어봤어요. 내가 개자식이면 아버지는 개에요? 그냥 그렇게 질문했을 뿐이였어요. 근데 아버지가 갑자기 항상 옆에 두고 있는 사랑의 매를 들었어요. 사랑의 매,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튼튼하기도 하고 무거워서 그걸로 맞으면 정말 아프거든요. 도망가려고 하면 계속 붙잡아 버리고, 숨으려고 해도 계속 찾아내서 때려서 너무 무서웠어요. 어른들 말로는... 복날에 개패듯이 팬다. 였나요? 정말, 그날따라 너무 아팠거든요.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조금 억울해서 더 쓰라렸던 것 같기도 해요. 그 이후로 저는 아버지가 '개'라는 말을 싫어한다는 걸 알았어요.
'개'를 싫어하는 아버지가 저한테 '개'라는 별명을 붙였으면 아버지는 절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요?
문득 메모장에 옛날에 썼던 독백이 있어 이어서 써봅니다... 아마도 익명으로 올렸던 기억이.
>>81 아니 막 그럴듯 하잖아요!! 서하가 최종보스 였다가 더 좋은 게 떠오르셔서 바꾸셨다면서요!! 하윤이도 그럴 듯하죠!! 모든 진실을 알고 최종보스로...!! 전에도 개인적인 목적 때문이라고 하셨으니, 어머니의 복수라던지 그런 거...!! 쟤네가 막 익스파 바꾸는 약 만드는 거 아냐...!? (아무말 대잔치)
>>100 일상은 지금은 좀 힘들 것 같지만...일단 확실한 것은 지금 이 대화는... 위를 보면 아시겠지만 소원권으로 최종보스에 대한 힌트를 달라고 했고... 결정적인 것으로... 그래서 스레주가 여성이라고 답을 했고...그래서 하윤이 최종보스설이 떠돌고 있습니다.(끄덕)
"아빠, 나 사탕 꽃다발. 꼭이야. 사탕 꽃다발!" "그래 우리 예쁜 딸 가지고 싶은거 아빠가 다 사줘야지." "그렇다고 사탕 많이 먹으면 안된다?"
추운 겨울이었다.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오는 것을 느끼며 선물 받은 벙어리 장갑을 손에 끼고 엄마와 아빠를 맞잡았다. 벙어리 장갑너머로 따스함이 느껴졌다. 이유도 모르게 만족스러워 실실 웃고는 엄마의 팔에 머리를 비볐다. 행복한 학예회 날이었다. 행복해야할 학예회 날이어야 했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는 검은 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아빠는 갈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사람들은 북적였고 모두 행복하게, 모두 활기차게. 위를 올려다보면 분명 자상한 미소로 날 쳐다보고 있을 부모님들, 이었을텐데 그 둘이 어떻게 생겼었더라? 스멀스멀 밀려오는 불안감이 개미처럼 온 몸을 감쌌다. 차오르는 불안감을 무시하고 용기를 내 천천히 위를 보자 욱하고 토기가 일었다.
얼굴이 있어야할 곳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벗어나기 위해 손을 비틀었지만 이상하게 벗어날 수 없었다. 어딘가에 단단히 막힌 듯 꼼짝할 수 없었다. 익숙한 감정이 발목을 붙잡았다. 공포.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입에서는 어째서,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행복했던 시간이 무너져 간다. 그 모든 것들이 천천히 타들어 간다. 행복은 공포가 되고 따스함은 고통이 되었다. 그 화목했던 시간은 견딜 수 없는 지옥이 되어 나에게 찾아왔다. 눈물이 삐질 흘러나온다. 투둑 투둑 떨어지는 눈물이 얼굴을 타고 양 볼을 적셨다. 영원할 것만 같은 이 지옥이 끝나기를 빌다 문득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 이야기의 끝을 나는 알고 있잖아? 비극이다. 위에서 덮쳐오는 익숙한 불의 열기에 눈을 감았다. 감긴 눈 밑 암흑 속에서 날카로운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나의 비명인지 과거의 파편인지 이제는 정말 알 수 없게 되었다.
번뜩 다시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익숙한 천장이었다. 아직도 비명소리로 웅웅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주위를 살펴본다. 단칸방에 나 혼자. 온 몸을 기어오르는 불안감도, 왼쪽 얼굴이 타들어가는 고통도, 머리를 강타하는 날카로운 비명도 천천히 사그라지고 있었다. 9살이었던 이지은은 다시 24살의 이지은으로 돌아와 있었다. 식은땀을 많이 흘린 것인지 이불이 축축했다. 습관적으로 왼쪽 얼굴에 손을 올려 흉터를 쓰다듬는다. 제 얼굴을 이불만큼이나 축축하게 적신 것이 식은땀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눈앞이 울렁거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지끈거리는 왼쪽 흉터는 신경에 거슬렸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흐릿한 시선 너머로 오래된 서랍장이 보였다.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급하게 서랍장으로 향했다. 서랍장을 열고 옷 틈새를 뒤적이자 오래되어서 껍질이 군데군데 벗겨진 작은 나무상자가 눈에 보였다. 그것을 조심스레 꺼내 뚜껑을 열었다.
크기가 다른 반지 한 쌍과 은행 통장, 그리고 학예회 직전에 찍은 사진. 상자에 들어있는 다였다. 부모님이 나에게 남겨준 다였다.
내 기억만큼이나 색바랜 사진이 부셔지기라도 할까 조심조심 사진을 들고서는 부모님의 얼굴을 눈에 자세히 새겼다. 단란해 보이는 가족, 환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부드러운 음성이 운전석 쪽에서 들렸다. 눈을 감은 채로 소리 없이 잠에 빠져있던 제이가 한 번 더 저를 부르는 음성이 들릴 즈음에야 겨우 눈꺼풀을 올렸다. "…벌써?" 지친 목소리로 웅얼이자 기사가 작게 웃는다. 거리가 멀어서 주무시고 계셨나봐요. 제이가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등받이에 기댄 몸을 찌뿌둥하게 바로했다. "네에, 그랬나 봐요." 늘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고개를 주억이며 열이난 손바닥으로 눈을 부비적댄다. 차만 타면 잠들어서 큰일이야. 기사에게 카드를 건네 계산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 사이에 사뭇 낯설어진 공기였다. 어쩌면 그리웠는지도 모르고. 흘러내리는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버릇처럼 눈을 감싼 흰 천을 더듬는다. 제이는 잠시 마른침을 넘기며 겨우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냈다.
그저 걷고 걷기를 반복했다. 익숙한 실루엣을 지나치고 또 지나친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얼굴들을 애써 지우려 했고 스스로 새겨 놓았던 날카롭게 선 긴장을 품에 안았다.
나 많이 안 좋대요.
병원검진결과와 진단서를 서장에게 건넨 뒤로 책상을 비운지 두 달이 조금 더 넘어선 듯하다. 그 사이에 책상 치워버렸으면 어쩌지. 그래도 연락 한 번 없던 건 너무했나. 사무실에 도착해서야 머뭇거리는 발걸음을 어쩔 줄 모르고 난감한 숨만 한숨처럼 흘렀다. 제이는 한참이 지나서야 발을 뗄 수 있었다. 2층으로 올라서는 순간도 영 순탄친 않더랬다. 익숙하게 계단에 걸려 넘어질 뻔한 것도. 저긴 항상 그래, 고쳐야 하는 거 아니야? 제 시야의 문제로 생긴 것임에도 불구하고 애꿏은 계단 탓을 하는 것도. 전부 익숙한 것이었다. 아랫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며 문앞에서 주저하던 제이는 조심스럽게 두손으로 문을 열며 고개만 빼꼼 내민다.
이거 참, 오늘은 손님이 많네. 늦은밤까지 사무실에서 뇌내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사건을 정리중이던 그녀는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보인 얼굴에 입에 물고있던 볼펜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양하러 갔다고 듣긴했는데, 어떻게든 돌아오긴 했나보네. 그녀는 꽤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문을 열어재끼고는 거기서 뭐하냐고 물었다.
"소심한건 안 고치고 오셨나봅니다-"
가볍게 첫마디로 농담을 던진 그녀는, 들어가자며 그를 잡고서 좋아하든 싫어하든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안쪽에서 들리는 인기척이 빠르게 문으로 향하자 제이는 저도 모르게 주춤대며 뒤로 물러났다. "어, 앗." 얼빠진 소리를 내며 벌컥 열린 문 너머를 바라본다. 흰천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보나마나 놀란 토끼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게 뻔했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 잠시나마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인사하기 무섭게 팔이 붙잡혔다. 잠깐, 당신 이렇게 갑자기 놀래키지 말래도. 나 진짜 옛날부터 말했던 건데! "내가 언제 소심했다고, 어, 악, 잠깐만, 들어갈게요. 진짜, 메이비!" 끌려가다시피 안으로 들어서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꼭 엊그제 헤어진 양 구는 태도에 제이는 잠시나마 제 부재기간을 두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잘 쉬었으니까 다시 왔죠. 왜요, 많이 보고 싶었나 봐?" 제이가 잡혀있던 곳을 빈손으로 문지르며 배시시 웃어뵌다. 조금 더 높은 시야를 따라 고개를 올리며 가만히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은 여전하네. 말썽은 안 피웠어요?" 두 달이나 자리를 비운 사람이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요. 내가 당신을 좀 알아야지.
그럭저럭? 이도저도 아니라는 건가? 당신답지 않은데. 고집을 부릴지언정 이렇게 애매한 답을 내놓았던 적은 드물었잖아. 제이가 잠시 고개를 모로 기울였지만 굳이 되묻진 않는다. 그대로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가봐. 음,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은 것도 같고. 두 달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닌데, 당신이 바뀔 만큼의 시간은 되었나보네요. 제이는 평소 같은 얼굴로 태연스럽게 고개를 주억였다. "응, 커피가 좋아." 그리고 그렇게 편하게 대하는 말투는 더 좋죠. 격식 차린답시고 군대식 언어라니, 윽, 내가 아무리 사수라지만. 당신이 건네는 잔을 두 손으로 받으며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선 앉아서 이야기해요. 할 말 많아보여. 제이는 잔에 입을 맞춘 채로 가만히 당신의 목소리를 담았다. 하긴, 우리처럼 오래 알고 지낸 관계보단 여기서 관계를 맺어간 사람들이 많았지. 오히려 더 특별했나. 평소 같지 않은 목소리였다. 제이는 적당히 미소를 띄었다.
"옛날엔 당신 뒤봐주는 게 내 일이었는데, 이젠 그럴 일도 없겠다. 많이 컸네요." 착하다. 흡사 어린아이라도 달래는 듯한 어투로 대답하며 커피로 목을 축였다. "나 없는 동안 일 많았나봐요. 목소리가 별로 안 좋네." 알잖아. 나 안 보여도 눈치 엄청 빠른거.
그녀는 자신몫의 유자차를 타서는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고 싶었으나 오늘로 벌써 5잔은 먹어버려서.. 더 마시다간 아무리 그래도 위험하다고, 일상에서 위기감을 느꼈기에 오랜만에 차를 마시기로 한것이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눈치도 빠르시지." 그렇게 짧게 내뱉은뒤에 차를 한모금 마셔 목을 축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별로 대단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냥 악연을 끊어낸 정도? 끊어냈으니까 좋은일입죠."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말하지 않는다. 누구의 앞이든간에 강하게. 빈틈없이 보인다가 그녀 자신의 모토였으니까.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지언정 절대로 말하는 일 따윈 없으니까.
"건강쪽은 이제 문제 없는겁니까?"
일단 가장 중요한것을 물었다. 정확히 어디가 안좋아서 쉰건지 모르니 뭉쳐서 건강이라 말했다.
코끝에 유자차 향이 스쳤다. 마시지도 않은 달콤함이 입안에 번지기라도 한 것 같다. "아하. 다행이네. 그보다 좋은 일이 있으라구." 제이가 간만에 좋은 소식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방글 웃었다. 악연이 남긴 뿌리는 깊었나요? 그 뿌리를 뽑을 때 아프진 않았어요? 아플 때 누군가 옆에는 있어줬나요? 당신은 아닌척 해도 톡 건드리면 쏟아질 듯해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꼭 세심하고 당신을 잘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해요. 나는 지금 당장 당신의 표정을 보고 기분을 맞춰주기도 힘든 사람이니까. 많이 답답했거든.
건강? 내가 그런 걸 따질 처지였나요. 움직여주면 좋은 거고, 안 되면 마는 거구. "으음, 응, 그럼. 멀쩡하지. 그리고 거긴 너무 재미없어요. 힘들어도 여기가 훨 재밌어." 제이가 따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나저나, 요새 사무실은 어때요? 내 책상 혹시 치우진 않았지…?" 새삼 밀려드는 걱정에 제이가 보이지도 않을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듣기로는 새로운 사람들도 몇 들어왔다더군요.
Ooh woo, I'm a rebel just for kicks, now 오 오, 난 재미삼아 반항을 하지 Let me kick it like it's 1986, now 난 놀아볼래 1986년 처럼, 이제 Might be over now, but I feel it still 이제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난 느껴 여전히
여기 맛집이라니까, 라는 당연스럽다는 말에 능청스럽게 답하면서 헛웃음을 피식 잠시 흘렸다. 물론 말한 것처럼 그리 심각하게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 위는 적당한 크기라서 다행이야."
여전히 묘하게 사차원적인 화법으로 말하면서 나른한 무표정을 유지했다. 초코바 포장지는 버릴 곳을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못 찾아 결국 몇 번 접고 난 다음에 주머니에 넣었다. 가는 길에 쓰레기통을 발견하거나 하면 거기에 버려야지.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밖으로 나서자 차가운 공기를 다시금 맞이하게 되었다. 하늘은 어두컴컴해졌고, 그 공백을 채우듯이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더란다.
"당연하지."
서로 들어가냐는 물음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면서 즉답을 돌려주었다. 제 외투를 단단히 동여매는 모습에 "벌써 추위랑 전쟁 중이야?"라는 실없는 소리를 던지기도 하였다. 하긴 아까도 생각했지만 이 녀석은 지금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얇게 입고 왔다.
"사실은 내가 뭘 먹을지 몰라서 문자로 오늘이 마지막 유효일이라고 한 거야. 메뉴는 네가 고르기로 했으니까."
별로 놀랍지도 않을 진실을 밝히면서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래도 저쪽이 알차게 썼다고 생각했다면 그만인가. 이제는 정말로 패자 신분과는 작별이다. 문득, 그 녀석의 손목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저번에 팀원끼리 짧게 진실게임을 했을 때 저 손목의 타투의 정체를 밝혔었더라. 술기운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속으로는 조금 기가 찼었다. 적당히 얼버무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자해 혹은 자살을 시도한 흔적이라는 말 그 자체 아닌가. 그 날 이후로 이에 대해서는 계속 입을 다물고 왔지만, 역시 나는 이런 걸 눈 감을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성가신 성격이지. 어려서부터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다음부터는 그런 짓 하지 말지 그래. 타투가 그런 의미였구나?"
소원권에 대한 대답을 뱉은 후 조금의 시간을 두고 나서 냉소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옅은 미소를 은근히 띄우면서 툭 뱉었다. 하다가도 평소의 나른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그냥 지나가는 소리였어. 식사 끝나자마자 미안하다"라고 느릿한 깜박임과 함께 덧붙였다. 하지만 역시 그냥 넘어가는 짓은 힘들다. 더군다나 저게 자살시도의 흔적이라면 더더욱. 동생 중 한 명을 떠올려냈다. 잘못했으면 정말로 죽을 뻔했다. 그 때 코미키 아야코가 있었던 것을 감사해야하는 건가...하지만 그 인간을 용서할 수는 없다. 잠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337 다혜쟝은 전반부 최종보스나 마찬가지인 이였죠. 사실상 전반부의 모든 사건의 뒤에는 전부 다혜가 있기도 했고 말이에요. 원래 배정하려고 했던 곡은 이런 느낌의 곡이었답니다. 정말로 모든 것을 다 계획적으로 진행시키다가 정말로 마지막에 월드 리크리에이터의 발동으로 모두가 S랭크로 오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에 결국 비틀거리면서 순식간에 무너져버렸죠. 참으로 인상깊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허약속성 버리면 나한테 남는 게 있긴 해요? 제이가 메이비의 알만하다는 듯한 혀차는 소리에 깔깔 웃었다. 당신이 곤란할 게 어디 있다구요. 내가 쓰러지면 챙겨주긴 할 건가봐. 제이가 부드럽게 숨을 죽여 웃었다. "왜, 나 쓰러지면 당신이 업어주면 되잖아." 설마 이젠 사수 아니라고 매정하게 굴 건 아니죠? 남은 커피 전부로 목을 축인 뒤 소리없이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음, 난 정말 익스파라도 없었으면 이 험한 세상 살아가기도 힘들었을거야. 그치?
"헉, 오늘도 왔어요?" 제이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의자 위에 두 무릎을 끌어모았다. 남자? 여자? 능력은 어떤거래요? 아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차피 만날 거잖아. 다들 잘 지냈나 몰라. 조금씩 기억나는 인영들을 기억으로 더듬던 제이는 다행이 제 자리가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서야 날숨을 흘렸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늦기 전에 서장님한테 인사도 드려야 하는데. 서하 씨랑 하윤 씨한테도. 서하 씨는 여전히 깨가 떨어지나? 다른 커플들은 어떠할까. 내가 없는 동안 뭐가 변했을까. 그걸 내가 아는 날은 올까. 시덥잖은 걱정과 상념을 전부 밀어내고서 제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두 손으로 툭툭 털며 정리하는 모양새를 한다. "뭐어…, 우리 사무실은 조용하지 않은 게 매력이니까." 잠잠하다 싶으면 또 사건사고 처리하러 나가고, 툭하면 삐지고 싸우고 그러다가도 웃고 울고. 그런 거지. 사람은 외로워서 어쩔 수 없다나요, 뭐라나. 제이가 빙글 웃으며 메이비를 올려다본다.
"오늘은 그냥 인사차 왔어요. 당신 얼굴이라도 보고 가서 다행이다. 그래도 몸은 챙기면서 해요." 제이의 걱정어린 잔소리는 아마 당신에게 익숙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달리는 법만 알지 멈춰서 쉴 줄은 모르니까. 퓨즈가 없다구요. 가끔은 그런 당신이 염려스러워요. 나보다 젊은데, 많이 살아야지. 제이가 발끝을 살짝 올려 손을 쭈욱 뻗고는 당신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린다. "또 봐요. 음, 아마 내일?" 서장님한테도 연락 해야 하니까. 오늘은 짐정리가 바빠요. 윽 청소도 해야하구, 할 게 너무 많아요. 제이가 허공에 손을 휘적이며 당신을 지나쳤다.
지독한 열병 끝에 눈을 떴을 때에 보인 것은 익숙한 방 천장이었다. 성류시에 있는 내 집 내 방의 천장. 지난 4년간 눈을 뜰 때마다 지겹도록 봐온 천장.
밋밋한 벽지가 발린 천장을 보며 지난 날을 되짚어본다. 분명, 바람이 매섭던 날 바깥에서 밤을 보냈다가 정신을 잃고 찾으러 온 프레이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가고...
중간에 상태가 나아져 집으로 돌아온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뒤로도 한 이틀은 잠만 잔 것 같은데.
"아-...크흠, 흠."
무어라 말을 해보려다 목이 깔깔해 관뒀다. 물이라도 마실까 싶어 일어나려는데 침대 옆 협탁에 이미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언제든 마실 수 있도록 그들이 놓아둔 모양이었다.
미지근한 물 한잔을 천천히 마시고 일단 폰을 집어들었다. 별도의 연락은 없었는지 슥슥 넘겨보다가 문득 위화감을 느낀다.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 듯 한' 위화감. 명치 깊숙한 곳을 긁듯 느껴지는 불길한 그 감각.
그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싶어 연락처를 죄다 뒤져본다. 한명 한명 넘겨보다가 무언가 공백 같은 걸 느끼지만 그게 무언지 알 수가 없다. 연락 기록도, 갤러리도, 전부 뒤져보지만 알 수가 없다.
나 무언가 정말 중요한 걸 잃어버린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어. 모르겠어.
기억 나지 않아.
"...아, 아니야...아닐거야...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떨리는 손에서 폰이 툭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떨림은 손에서 시작해 팔을 타고 전신으로 퍼진다. 이내 온 몸을 와들와들 떨며 일어나 방을 나갔다.
조용한 집 안, 불 꺼진 거실. 평상시와 같은데 이 속에서 무언가 없어진 것만 같다. 없어졌는데 그게 뭔지를 몰라 미칠 것 같다.
거실, 부엌, 욕실, 서재, 현관, 침실. 떨리는 다리를 이끌어 곳곳을 돌아다녔다. 고작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몇번을 넘어졌는지 모르겠다. 넘어져서 아픈 줄도 모르고 집 안 전부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돌아다닐수록, 희미한 기억을 붙잡을수록 그 정체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멀고 멀어져 나를 '떠나갔다'.
더는 일어날 힘도 없어 부엌과 거실 사이에 주저앉았을 때, 나는 무심코 내 귀를 만졌다. 일종의 버릇이었다. 귓볼에 달린 귀걸이를 만져 안정을 찾는. 그러나 손 끝에는 잡히는 것이 없었다. 구멍 뚫린 귓볼만이 손가락 사이를 맴돌고 있었다.
"...아."
아아. 그 하나의 부재로 나는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얼마나 중요했는지도 잔인할만큼 확실히 깨달아버렸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자 현실도.
"......"
그것을 깨달은 후, 나는 목놓아 울었다. 불안감의 정체를 안 뒤에 찾아온 것은 그저 쓰디 쓴 아픔 뿐이었기에. 이미 너덜한 마음을 다시 죽죽 그어내리는 아픔에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흘린 눈물에 잠겨 숨이 멎어버릴지도 모를 만큼 눈물을 흘리고 흐느낌을 흘렸다. 혼자뿐인 집 안에 내 울음소리만이 가득 채워지고 또 사라져간다.
얼마나 울었을까.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게 되었을 무렵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다리가 제대로 서지 않아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기었다.
가는 길을 눈물로 장식하며 어두컴컴한 부엌으로 들어갔다. 빛이 없어도 어디에 뭐가 있는진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나는 도구꽂이로 손을 뻗어 날붙이 하나를 뽑았다. 어둠 속에서 날붙이가 시퍼렇게 빛나며 그 날카로움을 뽐낸다. 나는 잠시 날을 내려다보다가, 그것을 두 손으로 쥐고 내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인 채 앞으로 쓰러졌고 어두운 부엌엔 선명히 붉은 웅덩이가 생겨났다.
마지막 눈물 몇 방울은 붉은 웅덩이로 흘러들어가고 이내 멈추었다.
모든 것이.
. . .
담배 연기가 그림자 드리운 손가락 저 편 모든 것을 놓아버린 아침
깨달았지 내가 투명해져 가는 것을 그대 향한 마음이 내게 색을 입혀주고 있었음을
하얀 세계로 사라져 버려야지 달빛도 닿지 않고 햇빛 비쳐들 길도 없는
하얀 세계로 사라져 버려야지 잠들어가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 ...... ......
-
The End.
//그동안 함께한 스레주와 여러분 모두 감사했습니다. 정말 고마웠고, 즐거웠고, 잊지 못 할 거에요. 잘 있어요. 안녕.
>>392 정확히는 연플러인 정상주가 아버지 병환 사정으로 인해서 시트를 내린 것이 결정타였겠죠. 사실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답니다. 어느 정도는요. 아..그리고...ㅋㅋㅋㅋㅋㅋ 쥬만지..! 그것도 재밌긴 했죠. 다만...쥬만지가 쥬만지가 아니라는 느낌이어서 조금 아쉬웠답니다. 8ㅁ8
여담이지만... 위에서 원래 베타에게 지정될 뻔 했던 전투 브금의 이미지도 올렸으니..보너스로 알파도 올려봅니다. 제가 굳이 바꾸지 않았다면 알파는 이런 느낌일 거예요. 좀 더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느낌이지요. 알파가 첫 등장 할 때, 무대가 12시간 후에 완전히 가라앉아버리는 무대였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처음으로 싸운 S급 익스퍼엿다고 생각해본다면...
실 없는 농담에 대꾸하며 유혜가 풋 웃음을 삼켜냈다. 수 많은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힐긋 올려다보며 그녀가 후 입김을 불어내자 희미한 입김이 피어올라 이내 사라지고 만다.
“ 그런거야? 뭔가 속은 기분인데..., 뭐 타이밍은 적절했지만. “
하기야 이 소원권을 오늘 쓴 게 다행이란 생각이나 떠올리며 유혜가 그의 말에 가볍게 대꾸했다. 오늘 센하가 말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소원권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오늘만해도 센하에게 온 문자 덕에 소원권을 쓸 생각을 하게 됐으니. 이걸로 내기는 완전히 종결이네. 유혜가 어깨를 약간 으쓱였다.
“ 어? 아, 타투... “
무얼 말하냐는 듯 눈을 깜빡이던 그녀였다. 그의 입에서는 손목의 타투, 라는 단어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뻗어내던 걸음을 아주 잠시 움찔이더니 이내 별 일 아니라는 듯 다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뻗어낸다. 묘하게 느릿해진 속도는 기분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흐릿해지는 말꼬리를 끊어내며, 그녀가 다시금 입을 열어낸다.
“ 아니 뭐, 오래 됐으니까. 괜찮아. 어쨌거나 홧김에 한 일인걸. 신경 안써도 돼. 거의 십년은 넘은 일인데. “
괜찮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내는 그 얼굴에는 희미하게 그늘이 쳐져있었다. 그의 충고를 듣자마자 바로 손을 옮겨 타투를 가리며 제 손목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이내 제 양손을 외투 주머니에 푹 찔러넣어버린다.
16살의 겨울. 느릿히 깜빡인 눈꺼풀 뒤로 저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가 한 번 깜빡, 별들이 아름다운 하늘이 한 번 깜빡였다. 느릿해진 발걸음은 이제 다시 조금 속도를 붙여낸다. 도망치고 싶은 거야? 아니.
“ 걱정해줘서 고마워. “
이 흉터가 생기기 전에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줬다면, 어땠을까. 그녀의 눈꺼풀이 천천히 깜빡인다.
"같이.. 나가는 게.. 사실은 무서워요." 그런데도.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에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헤세드. 그래요. 헤세드를 믿고 있어서 그런 걸까요..?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나. 그걸 두고 볼 그가 아닙니다.
-네놈... 네놈이 타미엘을 망쳤도다. 이런 말이나. 이런 놀이같은 설득 따윈 필요없게 해뒀는데! 역시. 사이렉스는 좀 더 늦게 죽었어야 했는데! 아니더라도 한 쪽은 살아있었어야 했는 것을.. 이라 한탄하고는 놓으라는 헤세드의 발언에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사악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 걸 해 줄 것 같으냐?
-이 몸이 얼마나 기다렸는가. 최초로부던 근 60년 가까이. 적당히로는 30년도 더 기다렸단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것이냐? 계약의 내용의 일부에 따라 녹아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네 놈 같은 제 3자가 끼어들 문제일 것 같느냐? 드물 정도로(어디까지나 타미엘의 입장이었지만)무언가에 염증을 느끼는 듯 무료하고 동시에 약간의 분노마저 섞인 말이 뚝뚝 끊기듯 이어진 뒤. 끝없이 줄줄 흘러내리며 온실의 부드러운 흙바닥을 더럽히는 시커먼 무언가들을 그는 내려다보더니 쯧. 하고 혀를 차고는 팔을 올리지 못하는(파랗게 질려서 반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 같습니다.) 타미엘을 보고는 목에 목줄을 채운 채로(손..같은 게 그대로 목줄이 되었던 것 같다) 좌에 놓아두고는 일어서서. 일어서서? 헤세드에게 다가가려고 했습니다.
-잡아먹어 버려라. 저런 건 내 신체엔 어떠한 관계로도 필요없도다. 냉랭한 소리와 함게 그림자들이 붙잡으려 달려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타미엘 쪽엔 신경을 못 쓰는 것 같습니다. 목줄을 믿는 거려나요?
설 연휴고 뭐고 집안에서 모일 일도 없을 뿐더러 모인다 하여도 딱히 갈 일은 없었더라지. 순찰을 갔다오기도 하고 이전 서에 연락도 해보고. 서에 남아 할 일을 하다보니 벌써 시간이 늦은 것이었다. 집에 돌아갈까. 꺼뒀던 핸드폰을 켜고 휠체어를 끌던 그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작지만 자신의 귀엔 익숙한 숨소리가 신경쓰였던게지.
이런, 당신은 잠들어 있었던게다. 휠체어를 끌고 당신의 곁에 다가가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혼돈 속의 고요다. 주변에 널린 자료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조용히 제 입술을 깨물었다. 그랬었지. 그때 녀석이 했던 말은. 아니다, 아냐. 어느새 당신의 귓가에 고개를 기울이고 팔을 뻗은 그는 잠들어있는 당신을 뒤에서 끌어안고 나지막히 속삭였다.
"여기서 자면 감기 걸려요, 누나."
아니면 못된 늑대가 잡아갈지도 모르겠지요. 입술을 휘어 웃어보이곤 당신이 깨기를 기다렸다. 자료를 정리하는게 많이 힘들었겠지. 응. 푹 쉬어도 여기선 안 돼.
그 과거의 악연을 그렇게 다시 만나고, 나는 낮이 밤인지 밤이 낮인지 모를 삶을 살며 거의 모든 신경을 과거의 사건 자료를 보고, 분석하고, 정리하는데 시간을 전부 할애했다. 그 놈이 다시 그런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경찰로서 끝내지 못한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해, 그리고 내가 구하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밤낮없이 이것들에 매달렸다.
처음 며칠은 괜찮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많던 내 체력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나는 자료를 조사하다 한계에 부딛혀 그 자리에 쓰러지듯 잠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걸까. 그렇게 잠들었던 나는, 익숙한 감촉과 목소리에 아주 조금 잠에서 깨었다.
"으응..."
...하도 피로가 쌓여 그 이상은 안 깨지더라. 옛날이었다면 그냥 다시 잤겠지만, 지금은 널 걱정시키고 싶진 않았다.
"...피곤, 졸려..."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완성조차 안된 두 문장만을 겨우 뱉었다. 그러고보니 집은 어쩌지. 6층에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못올라갈텐데.
어......사실 추리 부분은 그냥 제가 끼워맞추는 것도 어느정도 존재하기에...(흐릿) 그리고...사실 뭐, 그냥...전투시스템은... 솔직히 조금 힘든 거 인정합니다만...그래도...으음...나름대로 난이도나 공략법 정도는 제가 대충 생각한 것이 처음부터 있기에 거의 끼워맞추는 것 뿐인걸요!
그렇게 졸린데도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그 따뜻한 품속이란 것 하나는 알것만 같았다. 너의 집. 그날 가고난 후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지.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치료 능력자였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렇, 하자..."
나 너무 피곤한데 잠시 기댈게. 웅얼웅얼 작은 소리로 겨우 말하자마자 나는 너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건조한 공기가 잠깐. 거기서 잠시 의식이 멀어졌다 차가운 바깥공기에 한번 정신이 들고, 차 문 닫는 소리에 조금 더 정신은 현실에 비중이 커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뒤로 제껴져 눕기 쉽게 되어진 조수석이었다.
"고마워."
너무 졸려서 정신이 없었네. 그러고보니 네 차는 노란색이었지 창문너머의 노란 본네트가 보이길래 든 생각이었다.
//로제 다리 좀 나음+오프레에서 나온 차 색깔로 맞춰봤는데... 아니라면 미안해요 (˚ ˃̣̣̥Д˂̣̣̥ )
정말 피곤했나보네. 겨우 웅얼거리며 품속에 들어오는 당신을 가볍게 끌어안고나서 휠체어를 끌었다. 혹여 당신이 추위에 떨까 두려운지 품속에 단단히 안아보이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개나리, 우리 개나리. 오늘은 손님이 탈 거란다. 안전운전, 그리고 무리하지만 않으면 운전 정도는 할 수 있으니.
휠체어에서 일어난 그는 잠시 익숙치 않은 감각에 비틀거리다가도 당신을 안은 상태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휠체어는 잘 접어서 뒷편 트렁크에 보관하고, 당신을 조심스레 조수석에 눕히듯 앉혔다.
"고맙긴요."
가볍게 눈을 휘어 웃어보이곤 시동을 걸었다. 마음 같아선 과속을 해서라도 당신을 편한 침대에 눕히고 싶었지만, 명색이 경찰인데 어떻게 과속을 할 수 있겠냐고. —이래놓고 그는 차를 타고 도주하는 범인을 쫒기 위해 신호위반과 불법유턴까지 서슴치 않았던 전적이 있었다만—
"많이 피곤했나봐요, 우리 누나."
정신없이 잠들었던 모습도 사랑스러워선. 그는 입꼬리를 올려보였다가도 능숙하게 차를 주차장에서 빼내어 도로를 가볍게 달렸다.
음...아무튼 해링턴주. 어서 오세요! 좋은 밤이에요! 스레주가 인사드립니다! 우리 시트스레에서 잠깐 만났었죠? 일단...이 스레에 시트를 내주신 점..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40판이 훨씬 넘어서 시트 내기 많이 고민되었을텐데....(흐릿) 일단 스토리도 50%가 조금 넘어버린지라... 일단 이 스레는 스토리가 있는 스레랍니다. 그리고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밝혀진 새로운 정보라던가...그런 것들도 있어요. 그것은 시트 스레에 없고 위키에 있으니까 꼭 위키를 읽어주세요! 덧붙여서 스토리도 정리를 해뒀으니까 다른건 몰라도 스토리 요약본은 꼭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래야 스토리를 따라오실 수 있을 거예요!
옛날에 뉴스까지 났던 사건이라 자료의 양도 엄청났고, 그만큼 속된말로 상대하기 빡센 범죄자기도 해서 놈이 행동을 하기 전까지 최대한 자료를 분석해서 놈의 행동을 묶어놓고 싶었다. 내겐 그정도로 중요한 범죄자다. 그런 짓을 해 놓고 그리 뻔뻔하게 나타난 그 범죄자를 아직 잡지도 못했는데 여기서 절망하는것은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살면서 제일 혹사했던 것 같아."
빚 갚을때도 이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조금 억지로 웃음을 섞어넣은 그 목소리에는 지친 목소리가 섞여있었다. 아니, 솔직히 지친다. 다시 그놈을 상대해야 하는 것 그 자체가 너무나도 지친다. 차라리 그냥 이대로... 아니, 그래서는 안되지, 조금만 힘내자 이지현.
착각인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당연한 결과죠. 날 의식해서 그런 건 아닐지, 날 말하는 건 아닐지. 허나 억지로 끼워 넣은 퍼즐이 제대로 들어맞을 리가 있나요? 기대하며 설레던 것도 이전이에요. 이미 다 식어버린 마당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냈던 건데. 애초에 착각으로 시작한 설렘이니까. 뭐 확인하고 나니 마음은 편하네요. 슬프진 않아요. 그냥 단지 내 아이를 좀 더 사랑스레 하지 못한 게 좀 아쉬워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무도 절 호명하지 않는다면 저는 절 부둥켜안을 수 밖에요. 그러니까 용기 못 내는 당신. 조금 용기를 내봐요.
언젠가 생각했어요. 당신이 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나는 말도 못 하는 바보이니 이제 이 마음을 접어야 할 때가 온 거 같군요.
유혜의 발렌타인 독백 보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어. 너무 예쁘다. 감히 내가 좋아해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모두들 행복하자!!!
선물 1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쓰인 메모가 붙은 상자가 모두의 책상에 올려져있습니다. 상자 안에는 약과와 한과 등이 정갈하게 담겨있습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동물 모양의 작은 인형 열쇠고리도 함께 놓여 있네요. + 서하의 책상에는 그것들과 함께 또 다른 자그마한 상자가 올려져있습니다. 상자 안에는 은빛 반지가 들어있습니다. 반지 안쪽에는 당신의 이름이 영문 필기체로 새겨져있습니다.
보아한까...선물은...음...음..(끄덕) 이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일상 한번 돌려야하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 물론 마지막으로 돌린 것이 1월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긴 하는데... 아실리아가 다른 이와 잘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스레주로서는 고민되고...(시선회피) 아무튼 그렇다고 합니다. .....후우....이거 아마 새벽에 들어온 것으로 기억하는데...아무튼 정말로 고마워요! 아실리아주!
무심한 말투였지만 나름 진심이었다. 유혜는 조금 씁쓸해진 분위기였다. 그것이 내 탓이라고 누가 원망하더라도 나는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오래 되었으니까 괜찮다는 건가."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별이 밝은 이 도시의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어 나지막히 읊조렸다.
"...자살 시도를 했다가 버림 받고 만 동생이 있어. 10년도 더 된 일인데, 우습게도 그 일은 그 녀석의 인생을 근본부터 뒤집어버렸지."
자살 시도를 한 코미키 스즈나는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기 싫어하는 코미키 텐마에 의해 사고사 처리 되어버리고, 죽지 않은 본인은 타나카 나츠미라는 이름으로 신분이 바뀌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코미키 텐마의 뜻대로는 질색이어서, 그런 나츠미를 내가 찾아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내심 조금 놀라버렸다. 어째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낸 것인가. 게다가 무심코 제 손목까지 붙잡고 있었다. ...최악이다. 코미키 토오야라는 이름, 더 나아가서 히라카와 토오야라는 이름까지 버렸던 이유가 무엇인데. 표정을 살짝 구기면서 강하게 붙잡고 있었던 손목을 놓았다. 정말로, 11년이나 지나도 사라지지 않네.
"...방금 한 말은 잊어. 생산성 없는 이야기이니까."
쓸쓸하게 지은 미소는 자조적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발걸음 속도를 높인 십년지기를 따라 자신도 발걸음의 속도를 올렸다.
"......"
침묵을 지키다가 그 침묵을 스스로 깼다.
"...어쩌다가 그런 건지 물어도 될까. 아니, 안 좋은 기억인 건 아니까. 무시해도 좋아."
그런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스스로도 잘 아니까. 자살이라는 단어에 조금 민감한 자신을 책망해야만 했다.
//아침갱신합니다! 그리고 답레! 으아아 이거 안 짚고 넘어가면...센하 캐☆붕이라서...(흐릿)(먼산)
친구 앞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성격이 꽤나 많이 바뀌어 있었다. 경계심이 가득하여 쉽게 낯을 가리던 성격 대신 능청스럽게, 어쩌면 속을 모르겠는 성격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고, 웃음도 많아졌다. 그 전의 어색한 미소가 아닌,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미소. 그의 친구는 퍽 달라진 그의 모습에 익숙해지는 데 생각보다 애를 많이 먹은 듯하다.
그의 친구는 그가 숙식을 해결할 곳이 없음을 눈치채고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한 후 겨우 그를 설득하여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그렇게 내키지는 않는 눈치였다. 아무리 성격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따뜻함에는 서툴렀던 것이다.
"...야, 넌 복 받았다."
언제였을까. 그가 친구를 보고 무심코 나지막히 흘린 말이다. 무슨 소리냐고 묻자 정신을 차리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무시하란다. 하지만 그 말을 했을 때의 눈빛은 어딘가 어두워보였다. 비단 그의 그늘진 인상 때문만은 아니리라.
여튼, 그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대부분의 연을 스스로 끊어내면서. 홀로. 끊어낸 그 많은 연들. 복잡하게 꼬여있었던 연들. 하지만 그가 만든 인연 중 유일하게 평범했던 것은 그의 친구와의 연이었으니 어쩌면 그 때문에 오랜만에 친구를 찾아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센하 자냐?" "...자려고." "야, 무서운 이야기해줄까?" "됐어. 나 최대한 빨리 잘 거니까." "왜? 내일 어디 가?" "아니." "그럼?" "...어둡잖아."
자유를 얻은 그였지만, 그림자는 여전히 존재했다.
//막간은 이렇게 짧게짧게 갈 생각인데, 미리 이야기하지만...사실 막간에는 엄청난 스포가 숨어있습니다.(뚜둔) 한 막이 끝날 때마다 막간이 올라가는데 총 9개의 막간을 나중에 잘 보면 무언가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답니다!
과거의 일을 아직까지도 붙들며 울고 싶진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상처는 다 아물었고 그날의 그림자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다만 제 몸에 남은 상처가 이따금 그날의 기억을 상기 시키긴 해도, 그건 자신의 과오가 내리는 벌일 뿐이었으니.
아아, 그랬구나. 그녀가 두 눈을 무겁게 내리깔았다. 십년을 봐왔는데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네. 물론 그도 유혜를 전부 아는 건 아니었고, 그녀가 센하를 전부 아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다만 마냥 가볍지 못한 이야기이기에 그랬을까. 피가 베어온지도 십년이 다 된 상처가 욱씬거리는 느낌에 그녀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어낸다. 처음부터 뒤틀린 인생은,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낯선 목소리가 속삭였다. “ 응. 네가 원한다면. “
남의 상처를 들쑤시는 악취미는 없었다. 그녀는 느릿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부탁에 부드럽게 대답한다.
“ 어..., 그. 16살 때. 그 일 이후로 엄마가 조금 정신병..., 같은 게 있었거든. 정신병이라기 보다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같은건가. “
애써 감추어둔 과거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간다. 가장 가깝고도 먼 곳에서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먼지 쌓인 기억. 다신 들추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기억. 하지만 언젠가 내 손으로 그 상자를 열어야만 했던 기억. 아마도 성재와 센하는 자세히 몰랐겠지.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통제함과 동시에 그녀 자신도 제 스스로를 그 숨막히는 집에 가두어버렸으니. 드문드문 지워진 기억을 되짚던 그녀가 잠시 끊어진 말문을 다시금 이어간다.
“ ...너한테 숨길 건 없겠다. 그냥 다 말할래. 그 일이 있고나서 그, 학대라고 해야하나. 그랬어. 막 니 언니 아빠는 죽었는데 너 혼자 살아서 좋냐고, 좀 심한 날은 너 말고 언니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러고. 웃기지? 하긴 언니가 살았으면 나나 엄마가 힘들겐 안살았지. “
시간이 지났다고 상처가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는 상처를 지우는 대신 상처에게사 도망치는 방법을 택했다. 그녀에게 가장 가깝고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 다른 날은 다 괜찮았는데. 그냥 내가 이상했어. 그날 따라 너무 참기가 힘들고 아픈거야. 평소에는 그냥 잠자코 맞기만 했으면서. 그런데 하필 그냥 엄마가 액자를 집어 던졌고, 좀 반쯤 제정신은 아니었어. “
중간중간 공백이 생기는 문장들이었다. 뒤이어질 문장에 어떤 단어를 넣어야할지 고민하는 탓에 말이 잠깐씩 끊기기도 했고, 기억을 되짚기 위해 잠시 끊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웃긴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의 원인을 저로 돌려버리는 일관 된 태도였을까. 그녀는 그리 믿었다. 그저 모든 건 제가 잘못한 탓이라고. 조금만 더 참았으면, 모르는 척 했으면, 바라지 않았으면 괜찮았을 일이라고. 모든 건 저에게서 시작 된 악연이라고. 그래, 내가 없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지. “ ...뭐 그래, 지나간 일이니까. “
나흘이라. 운전대의 핸들을 붙잡았던 손이 유난히 하얀것은 기분 탓이겠지. 공감할 수 없음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 적어도 당신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 다른 사람도 아닌 연인이 이런 일을 겪는다는 것은. 핸들을 꺾으며 그는 잠시 당신에게 눈길을 주었다. 살면서 제일 혹사했던 것 같다니.
"누나."
당신이 그렇게 괴로운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억지로 웃는 목소리에 들린 지친 감정을 어찌 읽지 못할 수 있을까. 많이 들어보았고, 그때마다 무시했던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그는 기어를 바꾸곤 핸들을 천천히 꺾었다.
"다 도착 했으니까 푹 쉬어요. 그리고 그때랑 지금은 다르다는 걸 잊지 말아줬음 해요."
어느새 주차를 마친게다. 얌전히 앉아있는 당신을 마주보고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곤, 그는 낮게 조곤거렸다.
"그때는 내가 없었지만, 지금은 내가 있어요."
제가 곁에 있습니다. 부디, 안심하시길. 그는 차 문을 열고 먼저 밖으로 나와 당신이 있는쪽의 문을 열더니, 안기라는 듯 팔을 뻗었다.
>>666 유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222 애가 어린 나이에 충격을 적잖이 받다보니 내 잘못도 아닌데 왜? 에서 내가 잘못했어. 로 생각이 바뀌었죠. 차라리 그 편이 타격감도 적고... 그래서... (흐으릿) 만약 얘가 실존 인물이었으면 아마 전 맞아 죽었을거예요....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째서야. 어째서 그렇게도 똑같은 거야. 어째서.
"...액자의 유리 파편이구나."
억지로 평상심을 유지하려 하면서 중얼거렸다. 할머니의 죽음, 그 때부터 점점 기울어지다가 히라카와 하나는 키우던 고양이인 유키를 불태워 죽였다. 그 때부터였다, 뒤틀린 변화는. 그 사람은 내가 그 전에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정신이 약했고, 저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모친의 죽음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만 것이다. 히라카와 하나는 평소 '어느 사람'에 대한 분노가 강했고, 그 화살을 결국 나와 아키야에게로 향해버렸다. 사실 완전히 상관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행동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우리 둘을 보며 심정이 복잡하다 못해 위태로웠겠지. 겉으로는 웃으면서 상냥하게 대해주지만, 우리 둘이 점점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 사람은.
"그런 일이었구나. 지금까지 잘도 숨겨오셨네. 그 정도 수준일 줄 누가 알았겠어."
책망하듯이 말하다가 나답지 않게 고개를 푹 숙이고는 중얼거렸다. "...힘들었겠다". 억지로 쥐어짜내듯이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절대로 빈말일 수가 없었다. 그 고통을 잘 아니까, 나도. 그러니까. 지나간 일이니까, 라며 넘어가버리는 소리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소름 끼쳤어."
나도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있으니까. 속으로만 생각하려고 했는데 무심코 입밖으로 나와버렸다.
"의지할 사람이 사라지자 그 때부터 시작됐어. 그 사람이 화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겠지.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도 그럴만 했어. 그야, 전혀 원하지 않았을테니까."
나와 아키야를. 혼잣말을 하듯이 두서없이 계속 읊조렸다. 나츠미가 구해준 자료에 의하면 코미키 히로시는 B형, 코미키 라이무도 B형이다. 하지만 나와 아키야는 AB형. 무슨 소리인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알겠지.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푹 찔러넣고 고개는 여전히 숙이고 있었다. 나답지 않게 자신없이.
남의 이야기를 전하듯 중얼였다. 얼핏 센하의 표정이 좋지 않아진 걸 눈치 챈 그녀는 센하에게 괜찮냐며 걱정스러운 물음을 건넸다. 어딘가 좋지 않은 곳을 건들여버린 걸지도 모르지. 또다시 자신을 책망해야할 순간이 올까 두려워진 그녀였다.
“ 드러내고 싶진 않았으니까. 좋은 일도 아니고. “
학교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곳으로도 외출을 않고 하루에 한끼 조차 먹지 못하는 날이 다반사였다. 안타깝게도 모두 그녀의 의지였으니, 책임을 돌릴 곳은 없어. 센하가 그런 저에게 떨려오는 목소리로 힘들겠다는 말을 건넸다. 유혜는 걱정이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센하, 괜찮은거야? 난 멀쩡해. “
어렴풋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의 반응에는 저가 모르는 무언가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저의 이야기로 하여금 그의 어떠한 부분을 억지로 끄집어내게 되었다는 걸. 하지만 그녀는 모른다. 그가 어떠한 일을 짊어지고 살았는지, 너는 전혀 모르겠지.
소름이 끼쳤다는 그의 말에 유혜가 약간 고개를 기울였다. 절반이 넘는 조각이 사라진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잠자코 센하의 말을 들어주는 건, 그의 상태가 몹시도 불안정했기 때문일까.
“ 센하, 괜찮아. “
그녀는 모른다.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 일이 이미 끝마쳐진 일일지, 아직도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일일지. 그 무엇도 모르는 주제에 함부로 입을 여는 건 멍청한 생각이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불안정한 그의 상태를 살핀다. 그의 말이 끝날 무렵 그녀가 외투 안으로 찔어넣었던 손을 빼내어 천천히 어깨를 토닥였다.네가 무얼 아는데 함부로 도움도 안 될 위로를 건네? 익숙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럼에도 그녀는 센하의 어깨를 다독이며 그에게 위로를 건넨다.
“ 진정되면, 나중에 어떤 일인지 알려줄 수 있어? ...안된다면 괜한 말을 꺼내 미안해. “
발걸음이 완전히 멈추어버린 둘이었다. 느릿히 어깨를 토닥이던 손은 그대로, 시선은 그를 바라본다. 괜찮아, 마음 속으로 수 없이 중얼인 단어였다.
언제였을까.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너의 사소한 모습들이 내 눈에 들어왔던 건. 너는 고민이 있으면 귓볼을 만지작 거리는 습관이 있었지. 웃을 때는 입가의 보조개가 움푹 들어가곤 했어. 너는 콜라를 좋아했지. 아침에는 늘 이어폰을 끼고 교실로 들어와. 그림을 그릴 때는 늘 근처에 달콤한 사탕들을 한가득 부어놓고말야. —네 하루가, 네 모든게. 언제부터 나의 일부가 되었던걸까?
*
매미의 울음소리도 점차 멎어가는 늦여름이었다. 푸르른 나뭇잎들이 옷을 바꾸어 입을 준비를 하고 어둠이 하늘을 색칠하고 나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도 했던, 그러면서도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생각나는 늦여름. 봄처럼 달콤한 계절도 아닌, 겨울처럼 새하얀 계절도 아닌. 마치 너를 닮은 계절.
“ 천유혜, 너는 왜 방학동안 연락이 안된거야? 걱정했잖아. “
얇은 커텐이 바람에 팔랑이며 파도가 치듯 일렁였다. 창 밖으로는 뒤섞인 소음들이 간간히 들려왔고 그 뒤로 불어온 미지근한 바람은 교실의 끝에 채 닿기도 전에 네 목소리에 짓눌려 바닥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나는 느릿히 책가방을 챙기던 손을 멈추고 바람의 손 끝이 내게 닿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본다.
“ 그냥..., 집안 사정. “
창문 밖에서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힐긋 시선을 던진 창 밖은 마치 주황색 물감을 흐트러놓은 듯 아름다운 노을이 저물고 있었다. 온통 주황빛의 하늘은 마치 내가 꿈을 꾸는 것같은 착각을 하게끔 아름다워서, 쉽사리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다. 지금 이 순간도 꿈이라면 좋을텐데. 아쉬운 시선을 다시 돌리며 책가방을 메고, 너에게는 말할 수 없을 사정을 씹어삼키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 미안. “ “ 뭐, 멀쩡하니까 괜찮아. 집 같이 가자. “
평소와 다를 게 없던 네 목소리인데 오늘따라 왜이리 네 목소리가 내 마음 깊게 다가온건지, 나는 느릿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목소리가 너무도 가깝게 다가와서 내 마음 한 켠을 간질여. 먼저 발걸음을 떼낸 네 뒤를 쫓으며 나는 내뱉을 수 없을 한마디를 꿀꺽 삼켜냈다.
아이들이 떠난 학교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웃음소리와 조잡한 소음들이 사그라진 학교는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었지만 나는 이 고요한 학교가 싫었다. 그덕에 나는 이상하리만치 크게도 울려대는 심장 소리가 혹여나 너에게 닿을까 걱정을 해야만했으니. 혹여나 꽃이 한가득 피어오른 마음을 들켜버릴까, 구태여 네 뒤를 밟겠다며 발걸음을 늦추어 올려다본 네 뒷모습에 그리 가슴이 뛸 수가 없었다. 새카만 머리카락과, 나와 같은 교복. 그 하나로도 이리 가슴이 뛸 수 있다니 너는 참 대단한 아이었다. 계단을 한 칸 내려갈 때마다 심장이 주저앉을 듯 요동치는 바람에 나는 일부러 시선을 돌려버리고 말았지.
“ 방학동안 철이라도 든건가, 애가 달라졌네. “
그저 친구에게 던지는 시덥잖은 농담이었다. 그런데 왜 그 한마디가 그리도 기분이 좋았던걸지. 또다시 요란스레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들릴까 걱정했건만 늘어지는 매미 울음소리가 다행히도 눈치 없는 심장 소리를 덮어냈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 이따금 들려오는 자동차들의 소음. 미적지근한 바람과 서서히 어두워져가는 하늘. 그 가운데에는 네가 있었다.
“ 그런가. “
그러고보면 나는 참으로 바보 같았다. 짧디 짧은 단어로 막을 내린 내 대답에 너는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하지만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는걸. 아까와는 달리 마음 속이 샤프로 찔리듯 콕콕 쑤셔오는 느낌에 나는 편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물쭈물 네 뒷모습만 쳐다보며 한참동안 한숨을 쉬어내야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너와 나의 눈높이가 달라진 건. 너를 보는 나의 눈높이가 달라진 건. 크레파스로 뭉뚱그린 그림과도 같던 네가 언제 이리 정교하고 세밀한 작품이 되어 있었을까. 나는 언제부터 네 얼굴의 보조개를 보고, 네가 자주 하는 말버릇을 알아채고, 네가 하는 말들을 기억하려 안달이었을까. 문득 궁긍해졌다. 그 시작은 어디였을까.
“ 너 여기서 버스타고 가지? 기다려줄게. “
네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학교 앞 정류장이었다. 네 생각과 목소리에 잠겨 눈을 감았더니 앞도 보질 못하였구나. 이리도 너에게 흠뻑 잠겨들었으니 어찌라면 좋을까. 나는 얼굴을 만지작 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나는 너의 그런 점이 좋았지만 너의 그런 점이 불만이었다. 감히 원하건데 나에게만 그런 웃음을 지어주라는 이기적인 소원을 바람에 흘러보내며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내가 타야할 버스의 타이어가 펑크라도 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가오는 버스들을 보며 제일 먼저 숫자를 읽어내고, 숨을 내쉬고. 겨우 몇 센치가 될까 싶은 너와의 거리에 숨을 졸이고. 매미가 조금만 더 크게 울어주기를 바랬다.
“ 나, 갈게. “ “ 어? 그래. 내일 봐. “
네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차마 붉어진 얼굴을 네게 보이지 못하고 쫓기듯 버스에 탈 뿐이었다. 자리에 앉자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보고 있는 네가 창 밖으로 비추었다. 열심히도 손을 흔드는 너였다. 버스가 출발하고, 너의 모습이 사라진다. 나는 그제서야 새카만 책가방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네가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딘다 공허했고 동시에 파도가 일었다. 물밀듯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잠시 사고회로의 전원이 과열 되어 픽 꺼져버린 느낌이었다. 푹 숙인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자 약간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과 구름 너머로 날려보낸 소원이 내게로 돌아와 살랑살랑 살결에 닿는 느낌에 다시금 얼굴이 달아올랐다.
전기포트를 올려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신입이 새로 들어왔다던데. 저도 슬 지나가며 들은 이야기라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이름이 다솔이라던가 했었지. 혀를 굴려 작게 이름을 발음해보다, 테이블에 축 늘어진다. 요즘 사건의 수위가 점점 커져가고 있었는데. 어째 참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온 지원병이다. 서장님이 손이라도 쓰신 건지 우연인 건지. 어쨌든 앞으로 손 부족할 일은 없겠단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R.F.F가 마음에 걸려온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의 범인들이 저희 아롱범 팀원들과 관계가 있어서. 이전엔 알트가 그랬고, 그다음엔 센하가. 그리고 지금은 지현이. 설마 신입에게도 그럴까 싶지만. 겪어 보기 전 까지는 모르니까. 앞으론 팀원들의 상처를 건드는 일이 없으면 하단 생각을 하다 물 끓는 소리에 고갤 든다. 미리 종이컵들의 티백에 뜨거운 물을 부어내곤 쟁반을 든 채 걸음을 옮긴다. 저희 사무실로 들어서다, 낯선 얼굴을 마주 하곤 걸음을 멈춘다. 타박 다솔에게 다가가 조심히 컵 하나를 건네보이며 방글 웃는 얼굴로 말을 건다.
일하는 시간 도중 찾아온 1시간 정도의 휴식 시간. 오늘은 가위바위보에서 이겨서 내가 먼저 쉬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잠시 쉬고 온다고 말하고 2층에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그리고 2층 휴게실에서 캔커피를 뽑은 후에, 그것을 뽑은 후에 마셨다. 안 그래도 요즘 어린아이 유괴사건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단서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아서 보통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저번 사건의 마지막에 정체를 드러낸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 정말로 한숨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단서를 숨길 정도면... R.R.F. 그러니까 그 녀석과 손을 잡은 감마. 나와 같은 요원 출신인 그 사람이 어느정도 관여하고 있다고 봐도 좋겠지.
"...안 그래도 따로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말이야."
자연스럽게 랭크가 오를 수 있는지에 대한 것도 관찰해서 보고서를 해야하고, SSS급 익스퍼. 통칭 '월드 리크리에이터'의 혈육, 정확히는 그 딸을 찾아야하는 것도 나의 일 중 하나다. 그런 것까지 함께 병행하려고 하니 체력이 버틸래야 버틸 수가 없었다. 정말 피를 토할 것만 같은 나날이다. ....진짜 귀찮은데 왜 일만 이렇게 점점 늘어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나에게 일이 몰리는건지 버틸 수 없었다. 솔직히 피곤하다 못해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이 커피가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을지...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또 내가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것.
손가락을 가볍게 퉁긴 후에, 일단은 서랍 속에 넣어둔 은색 반지를 내 손바닥으로 전송했다. 이런 것은 또 언제 구입한건지. 이것을 구입할 만한 이는 딱 1명 밖에 없었다. 그 1명이 아니면 보통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맞출거면 같이 맞추면 좋잖아. 이렇게 갑자기 반칙급으로 준비하는 것은 또 뭐람. 영문 필기체로 내 이름을 세길 정도면... 이것은 틀림없이 이전부터 준비를 했다는 이야기다. 아실리아. 나의 연인인 그녀가 이렇게 준비를 했을 것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정말, 이렇게까지 욕심나게 할 참이야? 이리 되면, 나도 진짜 어찌 해야할 지 모르겠는데."
이곳에 오고서 처음으로 욕심이 난 존재. 그녀에게 민폐가 될지도 모르지만 고백했고, 그녀는 나의 고백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공개적으로 사귀고 있다. 물론 경찰이고, 최근 일이 넘치고 있으니... 조금 만나는 시간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같은 직장이니 보는 것은 거의 매일같이 보고 있다. ...일단 일은 확실히 해야하니,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거나, 혹은 가끔 버터쿠키를 선물한다거나...하는 식의 일밖에는 못하고 있지만...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훅 들어오면 반칙이야. 아실리아."
작게 웃으면서 손바닥 안에 올려진 그 은반지를 바라보면서 작게 소리없이 웃었다. 대체, 이런 것은 언제 준비한건지... 꼭 감사인사를 해야겠지. 나중에 시간이 좀 나면 그때 만나러 가던가 해야겠네. 물론 지금은 일이 바쁘니까 못 만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발렌타인 초콜릿도 그렇고, 반지도 그렇고... 받는 것이 많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미소지으며 내 손 안에 든 이 작은 행복을 꼬옥 쥐었다. ...아실리아. 그녀는 정말로 욕심이 나는 존재였다.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내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먹게 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두려움을 느끼지만...그와 동시에 그런 것이 너무 행복하기에, 작게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크게 파고들줄은 몰랐지. ...그렇기에, 나도 안 놓을 거야. 절대로.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번 일만큼은..."
이번 일 만큼은 확실히 끝내리라 다짐했다. 이번 일만 끝이 나면... 내가 요원으로서 해야하는 일만 완수한다면, 그땐... 나도 어쩌면 여기서 계속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다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내 손 안에 들어있는 작은 행복을 꼬옥 쥐면서...
다솔은 습관적으로 안경을 올리려다 그제서야 자신이 오늘 렌즈를 끼고 출근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월요일에 항상 안경을 꼈는데 이유는, 그냥, 월요일엔 출근 준비하기 무척 귀찮으니까. 일종의 월요병일지도 모른다고 그녀 스스로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렌즈를 끼고 온 것은 그녀 나름대로 어어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증거였다. 물론 처음으로 아르바이트가 아닌 제대로 된 직장이라는 생각에 아침에 눈이 저절로 뜨인 이유도 있지만. 그렇지만 막상 서내의 자기 책상에 앉아있자니 한가했다. 처음 들어온 직후로 신문에 실릴 정도로 굵직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다행이었지만), 별 사고나 일 없이 월급을 받는 거야말로 그녀가 원하는 것이기도 해서, 그냥 책상에 앉아서 다시 한 번 이제 정리 할것도 없어 보이는 책상 정리를 하는 중에, 아마도 자신에게 인사하는 듯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와 뒤를 돌아보았다.
" 아, 안녕하십니까. 최다솔이라고 합니다. "
처음 보는 얼굴임을 알자 반사적으로 꾸벅, 정중히 목례를 하며 인사를 했다. 키가 큰 여성이었다. 이 경찰서엔 다들 키 큰 분들 밖에 없는걸까, 힐을 신고 와야 할까. 잠시 다솔은 생각하며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종이컵이 눈에 들어와,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며 손에 받아들었다.
" 혹시 성함을 여쭈워도...? "
질문을 한 뒤, 뜨거운 것은 잘 못 마시기에 능력으로 살짝 냉기를 주어 차를 식힌 뒤 한모금 마셨다.
>>760 그거 해명아니잖아욬ㅋㄱㅋㅋ 이 사람이 지금 지은이를 어떻게 하려고! (식겁) 근데 유혜 애인 생기면 진짜 장난쳐보고 싶닼ㅋㅋㄱ 지은 : 후우... 그때 내가 언니 진짜 좋아했는데... 막 고백(??)도 하고... 유혜 : (끄덕끄덕) 애인 : (동공지진)(세상 뻘쭘)
어라. 뭔가 이상하다. 나는 어째서 이 자리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지. 제 모친의 죽음을 향해 미친 듯이 웃은 인간이, 한 마리의 고양이를 제 손으로 죽여버린 인간이, 피로 이어진 연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조소한 인간이, 복수를 연신 다짐하고 있는 인간이, 절대로 좋게 봐줄 수 없는 인간이 어째서 지금 이 자리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지. 어깨를 토닥이는 감각이 느껴진다. 나에게 동정 받을 가치란 과연 있는 걸까. 26년을 걸쳐서 비뚤어질 때로 비뚤어진 마음이 의문을 제기했다. 정말로 있다고 생각해? 아니.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는 어지러워져 왔지만, 나는 평상심을 되찾으려고 했고, 어느 정도 진정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듯이. 익숙한 듯이. 그러자 옆에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려줄 수 있느냐는 조심스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눈을 한 번 느리게 깜박인 뒤 자조하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능청스레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었지만, 제 과거는 묻는대로 다 들추어낸 십년지기 앞에서는 쉽사리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십년지기라는 건, 그 오랜 시간만큼 속여왔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고.
"...내가 아까 내 소원이 정말로 '아키오토 센하'가 되는 거라고 했었지? 사실 15살 때 개명한 거거든, 그거. 원래 이름은."
잠시 주저했다.
"...코미키 토오야. 그 전 이름은 히라카와 토오야. 두 개야. 후자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지만."
체념한 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복잡한 이야기야.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에는 CPH라는 대기업이 있어. 지금도 일본에서 힘을 잡고 있는 그런 회산데, 그 회사의 회장이 바로 코미키 텐마. 혈연을 따지자면 내 조부야. 코미키 텐마 밑에는 코미키 히로시와 코미키 하루나, 두 명의 자식이 있는데, 코미키 히로시는 재벌 미나미 가의 미나미 라이무와 결혼했어. 코미키 하루나는 코미키 류헤이와 결혼했는데, 코미키 류헤이의 본래 성은 몰라. 애초에 많이 보지 못한데다가 묘하게 꺼려졌거든, 그 사람."
눈살을 살짝 찌푸리다가 말을 이었다.
"한편 나는 어떻게 태어났냐면...굉장히 더러운 이야기야. 사생아라고 하면 알겠지? 코미키 히로시는 코미키 라이무와의 정략결혼이 어지간히도 싫었나봐. 어떻게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히라카와 하나를 만나서 나와 아키야를 만들었어. 일방적으로. 쓰레기야, 그 인간은. ...참, 아키야는 내 쌍둥이 동생이야. 고소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히라카와 하나는 우리 둘을 낳고 키웠어. 어째선지 제 모친인 히라카와 사쿠라가 아닌 가족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녀에게만 의지하면서 우리 둘을 계속 키웠어. 심정이 보통 복잡했던 것이 아니겠지. 게다가 나와 아키야는 그 코미키 히로시와 상당히 닮았다는 것 같아.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이었어. 그러다가 내가 7살이었을 때 히라카와 사쿠라가 방화 사건으로 사망하고...결국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어, 그 사람은."
그 때부터 학대가 시작된 거야, 라고 힘없이 덧붙였다.
"그랬는데, 이어지는 가을에 우리 집에 불이 붙었지 뭐야. 그 사람은 불타서...맞아, 완전히 불에 휘감겨서 죽었어."
뒤틀린 미소를 쓸쓸하게 잠시 지었다.
"그 때 코미키 텐마가 나와 아키야를 몰래 데리고 간 것 같아. 왜냐하면 아들이 부족했거든. 우리 둘이 사생아인 줄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자신의 피만 흐르고 있다면 누구든지 좋다는 것이 남아 선호 사상이 짙었던 그 인간의 심리인 듯해서...그 자식은 기억을 왜곡하는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 둘의 기억을 조작하고, 오버 익스파로 히라카와 토오야와 히라카와 아키야를 없던 이로 만들어버렸어. 그렇게, 히라카와 토오야는 없어지고 코미키 토오야가 나타난 거야. 코미키 토오야가 된 나는 기억 조작을 당한 탓에 완전히 코미키 텐마를 위해서 살아갔어. 자유롭지 못했는데다가, 가족다운 사랑마저 전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코미키 히로시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서 완전히 도구를 자처했어. 그러다가 어떤 한 사건으로 기억이 원래대로 돌아왔던 거지. 그 때 방황을 조금 했고, 충동적으로 몰래 밖으로 나갔다가...그 때 성재도 만났고. 응."
기어코 도게자를 하던 그 녀석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헛웃음을 소탈하게 흘렸다.
"어쩌다보니 그 녀석이랑 지내게 되었고ㅡ물론 몰래ㅡ 그러다가 타나카 카에데라는 여자아이도 알고 셋이서 나름대로 잘 지냈어. 그랬다고 생각해. 여기까지는 그나마 평화로웠지. 그런데, 14살이었을 때 어느날 우연히 어떤 이야기를 엿듣고 만 거야. 타나카 가가 위험하니 청부업자를 고용해 죽여야겠다는 이야기. 여러 의미로 놀라버려서 곧바로 밖으로 나가 카에데를 만나서 그 사실을 알렸어. 급해서 타나카 부부까지는 못 만났지. 하지만 카에데는 무슨 장난을 치는 거냐면서 태연하게 반응했고, 얼른 돌아가야했던 나는 마지막까지 경고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어. 그랬는데...당해버린 거야, 끔찍하게."
시체가 떠올라버려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다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코미키 텐마는 내가 카에데에게 경고를 주었음을 알아챘던 것 같아. 후계자로 지목한 손자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니 보통 실망했던 것이 아니었겠지, 그 인간은. 그 뒤로 날...몇 달 동안 어두운 방에 갇히게 만들었어. 능력도 못 쓰게 손을 마구잡이로 묶어서."
강박적으로 손목을 붙잡고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어둠 속에서 환각에 시달린 것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러다 마지막에...끈을 풀고 내 앞에 나이프를 던지더니 나가고 싶으면 근처에 있는 그 고양이를 죽이라는 거야. 갇히던 도중에 갑자기 들여온 고양이였어. 정이 들게끔 만들려던 속셈이었겠지. 코미키 텐마는 분명 나에게 이기심과 무자비함을 심어주려고 했던 걸 거야.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저지를 수 있는 이기심과 무자비함. 하하, 코미키 텐마는 성공했던 것 같아. 난 그 고양이를 죽이고 밖으로 나왔어. 그리고 그 때 어렴풋이 다짐했어. 코미키 텐마에게 복수하기로. 그래, 코미키 텐마는 성공한 거야. 나는 그 때 키운 이기심과 무자비함을 그 자식에게로 향했어."
얼굴을 감싸더니 잠시 낮게 웃었다. 그러다가 손을 내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 해 여름, 코미키 스즈나가 죽었어. 참, 내가 동생이 자살 시도를 하다 버림 받은 거라고 했지? 자살 시도를 했던 코미키 스즈나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사고사로 등록되고, 그 후로 타나카 나츠미라는 이름으로 신분이 바뀌어서 살아가고 있어. 지금은 호시야마 나츠미지만. 그건 그렇고, 코미키 스즈나가 죽은 이후로 코미키 아키야도 실종되었어. 그래, 내 쌍둥이 동생이 말이야. 그 일들을 계기로, 나는 계속 생각해오던 복수를 실천에 옮기기로 했어. 나는 코미키 가와 절연하고, 일본에서 마쳐야만 하는 일들을 하고 난 다음에, 아키오토 센하라고 개명하고 한국으로 넘어온 거야."
그 때는 코미키 라이무의 힘을 잠시 빌렸었지. 누구의 편도 아닌 인간이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들은 것처럼, 토오야의 인생은 근본부터 엉망이었어. 그래서 내가 그 이름을 싫어하고, 정말로 '아키오토 센하'가 되고 싶다는 소원의 의미는 토오야와 아무런 연관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욕심이야. 소원이라는 희망찬 단어와 어울릴리가 없지."
결국은 '토오야'로서의 인생을 모두 밝혀버렸다. 나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그러니까, 나는 절대로 좋게 봐줄 수 없는 인간이야. 그런 인간을 친구로 삼고 있었다니, 성재도 너도 다 멍청한 거야. 분명 실망했겠지. 잘 알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절교를 선언하거나 하지 그래."
매정하게 단언하면서 시선을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겼다.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답지 않게.
//어차피 다 밝힐 이야기! 일찍 다 밝힌다! 하지만 다들 눈치채셨겠지! (쓸데없이 길다)....으아아아아 유혜주 죄송합니다아아 ;ㅁ;(머리박)
그리고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알려드리죠. 사실 여러분들은 잘 몰랐겠지만 여러분들의 사건 때의 행동이나 대사, 그리고 사고 방식 등은 전부 점수로 매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아마 Case 13. 이번 사건을 끝으로... 분기가 갈리게 됩니다. 후후후후후후.....(뚜까맞음
심연쟝: 사이렉스보다 못되어먹은지고. 현세에 저런 폐기물이 있으면 안되는 것이니라. 이 몸을 방해할 게 뻔하지 않겠느냐. 쓸어버리도록 하마. 타미엘주: 아냐. 사이렉스는 혼자서 수많은 사람에게 그딴 짓을 벌였으니 비등비등한ㄱ...음. 역시 사이렉스보다 나쁘네!(그림자 목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얕게 웃는다. 저가 기억해야 할 얼굴이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이름도. 항상 사람의 이름을 잘 잊고 하던 저라. 선배로써 신입의 이름을 잊는다던가 하는 불상사를 막으려 한동안 다솔의 그레이 색 머리카락을 눈에 담다, 컵을 받아들자 빈손을 거둔다. 따뜻하던 손이 금세 차게 식었지만. 다행히도 한 컵 더 가져와서. 제 자리도 아닌 남의 책상 위에 빈 쟁반을 내려놓고는 의자까지 끌어 앉는다. 다솔을 향해 몸을 돌린 채, 물그럼 바라보다 차를 홀짝인다. 입가에서 컵을 거두곤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어 낸다.
"월하라고 해요. 응. 윤 월하."
말을 끝내곤 눈을 마주하며 바라보다, 다솔이 차를 홀짝이는 모습에 방글이 웃는다. 매화 차라며. 티백이랴 향은 덜하지만 좋을 거라는 둥. 재잘 말을 이어내다 저 혼자 신나게 떠들고 있단 걸 깨닫곤 입을 다문다. 낯간지럽단 표정을 지어 보이다, 금세 다시금 웃는다.
코미키 토오야, 히라카와 토오야. 순서대로 지나간 이름이 아키오토 센하의 진짜 이름이었다. 그랬구나, 유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이어지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CPH, 어렴풋 들어본 이름이었다. 일본에서 유명한 대기업. 그녀가 이어지는 센하의 이야기에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모든 것이 움직이는 이 공간에서 멈춘 것은 오로지 우리 둘, 길 한복판에 서있는 이들을 힐긋 쳐다보며 지나가는 이들이 간간히 있었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학대, 센하의 입에서 그 말이 흐르자 유혜의 두 눈이 가늘게 흐려진다.
“ 센하..., “
애처롭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덤덤히 저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할지, 아니. 애초에 어떠한 말을 건네도 괜찮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녀는 그와 10년을 알아오며 서로를 잘 안다고 멋대로 생각해놓고, 정작 그의 이야기는 단 하나도 알지 못했다. 웃기는 일이야, 너말이야. 유혜가 시선을 바닥으로 한 번 떨구고는 이내 다시 제 십년지기에게로 시선을 옮겨낸다.
끝까지도 파렴치한 인간들이었구나. 그 어린아이에게 능력을 써 기억을 지워버리고, 그렇게까지 자신의 소유물로 귀속 시키고 싶었던건가. 머릿 속이 달아오르는 느낌에 유혜가 무겁게 가라앉은 한숨을 내쉬어냈다. 복수라는 감정은 감히 내 스스로가 다룰 수 없는 감정이란 걸,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토오야와 센하는 다른 인간인가, 그렇다면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은 토오야인가 센하인가. 그녀가 느릿히 두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더 센하의 이름을 불렀다.
“ ...너는 어쩌고 싶어? “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었다. 그에게 질문을 되돌리다니, 하지만 그녀의 말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 뭐라 말을 해야할까, 괜한 위로가 상처가 될까봐. 말을 아끼게 되네. 센하, 나는 실망하지 않았어. “
그녀가 흐릿히 미소를 지었다. 절교는 무슨, 어딘가 가벼운 말투로 남은 문장을 덧붙인 뒤. 그녀가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더니 다시금 밝은 미소를 지으며 센하를 바라본다.
“ 네가 토오야든, 센하든. 너는 나와 10년을 함께 한 친구잖아.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어차피 난 네 편인걸. “
범죄는 안돼, 형식적으로 우린 경찰인데. 유혜가 입꼬리를 올려내며 웃었다. 설마 나랑 절교 하고 싶은거야? 가벼운 장난을 덧붙이며. 그녀가 센하의 등을 툭툭 두드린다.
“ 소원은 원래 말도 안되는 걸 비는거야. 소원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는 없어. “
그러면서 느릿히 발걸음을 떼어내는 그녀였다. 여기서 너무 오래 머물렀어. 어차피 사무실까지 가려면 길은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대화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 힘들었겠다. “
진심이 실린 말이었다. —너도, 나도. 유혜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두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점심시간이 주어지자 밥을 먹기 전에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음료수라도 하나 사 마실 생각이었는데 무엇을 마실지 고민이었다. 옆에 2+1이라고 적혀있는 탄산 음료가 있었지만 탄산 음료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2개나 사기에는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2+1이면 하나에 800원인데...”
이걸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평소에 즐겨마시던 밀크티를 꺼내들었다. 값이 좀 더 나가더라도 맛있는 걸 사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무사히 음료수를 고르고 계산대를 향하던 도중 또 다른 시련이 지은에게 닥쳤다. 발렌타인 특별 이벤트 1+1 초콜릿 바. 평소의 초콜릿 바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었지만 이렇게 활인 행사가 있으니 그냥 지나가기 힘들었다. 뭘 먹을까 초콜릿 앞에 걸음을 멈추어 서있는 지은의 모습은 진지해보였다. 활인 이벤트는 언제나 감사한 것이었지만 이렇게 행복한 고민거리를 주고는 했다. 뭘 고를까...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지은이 중얼거렸다. 오래 고민했다가는 점심시간을 모두 쓰고 말 것이다.
키 크고, 끝이 약간 갈색인 흰 머리카락. 윤 월하 선배님. 어감이 예쁜 이름이었다. 아는 한자들을 생각해보자면 분명 이름의 뜻도 예쁘지 않을까. 머리속으로 다시 한 번 되짚어본 다솔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야 할 이름이 하나 더 늘었구나. 다행히 다들 기억할만할 특징이 있어서 이름을 외우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매화는 들어봤지만, 단순히 꽃으로만 생각했지, 차로 마셔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차를 마셔본 적이 손에 꼽았다. 돈의 여유 탓이기도 했고, 먹어볼 기회가 없기도 했고. 단순히 차는 쓴 맛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깊고 은은한 맛이라 방금 내심 놀랐을 정도였다. 얼마 안 남은 차를 잠시, 쟁반 위에 소리 없이 조심스레 내려놓고, 월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 아, 괜찮습니다. 얘기, 재밌었는데요. 차 좋아하시나봐요? "
다솔은 월하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곤 다시 컵을 들어 남은 양을 두 모금에 걸쳐 비웠다.
너는 어쩌고 싶냐. 실망하지 않았다. 10년을 함께 한 친구니 무슨 짓을 해도 네 편이다. 경찰이니 범죄는 안 된다. 설마 자신이랑 절교하고 싶은 것이냐. 소원은 원래 그런 것이니 어울리지 않는 단어는 없다. 마지막으로, 힘들었겠다. 수많은 말들이 진심과 함께 다가왔다. 나는 그 모든 말들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내용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 문장들이 어째서 자신에게 오는 것인지, 그것을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바보 같아. 한없이 착한 게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본인은 몰라? 멍청하게도."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유혜를 보며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평소의 능청스러움이 아닌 까칠한 모습을 보이며, 진심과 함께 온 그 모든 말들을 향해 매정한 말로 대꾸하고 만다. 보통은 실망하기 마련 아니었던가. 걸어가면서 시선은 바닥에 내리꽂은 상태로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범죄는 안 된다 했지? 그래,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예전 사건 때 저지 당했던 거겠지. 나중에 코미키 가에게도 복수해야해서, 그 일을 잊어버리게 하려고 팀에 선물을 돌린 건데...하하, 것 봐. 나도 죽일 놈이라니까."
계속 스스로를 조롱하고 깎아내렸다. 어쩌면 지금껏 느껴왔던 위태로움의 정체는 이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코미키 텐마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거만하게 굴지만, 사실은 저의 분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다. 그런 모순된 생각들이 혼란을 일으킨 것이니라. 바닥을 여전히 내려다보다가 결국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래, 이것이 저의 분수인 것이다.
"...미안해."
쓸데없는 이야기로 기분을 망쳐버렸네. 라고 힘없이 덧붙인다. 분명히 소원권을 쓰게 하려고 만난 건데 어쩌다가 나는 내 과거를 전부 토로하고 있는 것일까.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아, 오늘 밤도 술을 찾아야하는 건가. 기분이 엉망일 때는 술을 찾아서 언제나 도피해왔다. 뒤늦게 몰려오는 후회감. 그건 어째서일까.
>>880 사실 그것도 후반부 스토리에서 밝혀지긴 하겠지만..굳이 말하면...아주 옛날에..정말로 옛날에...서하의 상사가 독백으로 나왔을 때 서하는 저항을 하는듯 했지만... 바로 저항을 그만두고 수긍해버렸죠. 그리고 그 상사는 결국엔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말이에요. 그런 느낌이랍니다.
R.R.F. 그 조직을 이끄는 민경은 조용히 자신의 장난감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Case 5 참조) 그리고 그곳에 있는 비밀의 공간으로 들어간 후에, 그곳에 설치되어있는 계단을 통해서 천천히 걸어내려갔다. 계단 아래는 칠흑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맞춰 천장의 불이 들어왔고, 이내 어두컴컴한 복도는 환한 불로 밝게 비쳐졌다. 넘어지지 않게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
월드 리크리에이터. 그 이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자신과 한 피를 나눈 언니가 가지고 있던 능력의 이름. 세계를 개변하고 바꿔버릴 수 있는 힘. 이 세상의 진실. 그리고 성류시의 진실을 알고 있는 이 중 하나로서, 그녀는 그때 그 날을 잊을 수 없었다. 눈 앞에서 펼쳐진 잔혹한 사건. 그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사고라고 믿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절대로 사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의적인 살인. 그 모든 것을 민경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되찾아야만 했다. 반드시 되찾아야만 했다. 자신의 언니를... 그리고 언니가 가지고 있던 그 힘의 파편을... 그리고 그 힘의 파편을 이용해서 이 세계를 바꿔버려야만 했다. 희생이 되는 이? 익스퍼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파멸하는 이? 자신이 알바가 아니었다. 자신들은 그 힘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이제와서 자신이 그런 것을 신경쓸 이유은 없었다. 잔혹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자신은 절대로 자신의 언니처럼 착한 이가 아니었으니까.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별은 그녀에게 있어선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매일매일..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족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별하늘을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언니가 남긴 것 중 하나였으니까.
"......."
이어 그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기계음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그 짧은 목소리를 들으며, 민경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델타. 여전히 수고하고 있나보네. 정말 고생이 많아."
"상관없어. 우리들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기계음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노이즈가 끼여있는 그런 탁한 기계음만이 조용히 울릴 뿐이었다. 치직...치지직. 하는 변조기 특유의 기계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너무 쓰레기가 아닌가? 지금 날뛰는 이는?"
"상관없어. 리크리에이터만 발동시켜주면 족해. 우리의의 목적은 그것 뿐이니까."
"......"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해. 델타."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은 없지. 이제 와서."
"아무튼 특이사항은 없어?"
"없어. 있다면 연락을 또 하도록 할게."
"....부탁할게. 델타. 당신만 믿을게."
"......."
델타는 그 말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핸드폰을 끊을 뿐이었다. 상당히 무례한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민경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인가보지.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면서 그녀는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불쾌함은 엿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델타에게 가지고 있는 것은 절대적인 신뢰였다. 무엇이 그녀가 델타를 그리도 신뢰하게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적어도 그녀는 델타가 있는 한, 자신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강한 확신이 마음 속 깊게 박혀있다는 것이었다.
기억하겠다는 말은 너무 듣기 좋아서. 녹음이라도 해뒀으면 하는 것도 웃기지만 진심이고. 평소에도 항상 듣고 싶었던 말이니까. 그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시선을 쥐고 있던 컵으로 떨군다. 손톱으로 꾹 컵 가장께를 눌러대다, 휙 차를 홀짝인다. 다솔의 말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를 가리고 있던 컵이 거둬지고서 보이는 건 비스듬하니 말려 올라간 입꼬리에 화하니 밝아진 얼굴. 물그럼 다솔을 바라본 채 있다, 건네져온 질문에 눈을 두어번 깜빡인다. 아 하며 한박자 늦게 반응하고서야 웃는 목소리로 답을 건넨다.
"응. 평소에 몸이 많이 차거든요. 그래서 코코아라던가 많이 사서 마셨는데, 너무 단 거만 마시는 건 또 몸에 안 좋을 거 같고. 그러다보니까 차에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응. 향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고들 많이 하니까."
말을 끝내곤 반쯤 식은 컵을 휘 흔들어 보인다. 홀짝이던 차도 바닥이고. 남은 차를 휙 마셔 넘기곤 쟁반에 내려놓는다. 그제서야 정작 중요한 걸 물어보지 않았단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요. 나. 믿지 못했어요.." 그런데도 정말로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주어서 고마워요. 리고 중얼거리고는 조금은 결심을 굳힌 눈을 했습니다. 숨어버리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요. 그렇지요. 어리석었어요. 놓아두고 가버릴 순 없던 걸 알아요. 그 감각과 감정은 절대로..
"꿈이 아니었어요.." 한숨쉬듯, 한탄을 하듯 타미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주저앉은 채 중얼거렸습니다.어디선가 쩍. 하고 무언가 갈라지고 부서지는 전조의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습니다. https://youtu.be/dJlTBn3Q5oY
-어리석은 소리를! 모든 것이 순리대로 다 잘 되어가고 있었는데. 네놈이 망친 것이다. 원망하고. 분노하는가? 그런 감정이 내 힘이 될지어니. 정당하지도 않은 분노에 내가 답해줄 이유는 하등 없다! 약간은 초조한 듯한 기미가 보이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점차 형체가 무너지면서 덩어리에 가까운 무언가로 부풀어 변하면서(끝없이 커지는 것 같았다) 구물거린다. 그다지 호감받을 외형은 아니었다. 시커먼 덩어리에. 뭔가 질퍽질퍽한 것 같은 느낌에. 여러 개의 뜨인 눈과 그것보다 더 많은 감긴 눈.
-네놈을. 네놈을 여기에서 말 그대로 짓이기고 으깨서 흩어놓고 전시하마. 그정도는 해야지 포기할 성 싶구나. 아니면.. 그렇게 말하면서 때리려는 헤세드를 이미 나타난 그림자가 으르렁대면서 왈칵 하고 입에서 뜨거운 용암을 뱉어냈습니다.
"아니예요.. 아니라고요.." 숨을 몰아쉬며 반쯤 그 심연에 잠긴 타미엘은..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빠져나오려고 했습니다. 얼마 가지 못하고 켁. 하는 소리를 내면서 잡아당겨져 다시 품 안에 끌어안겼지만요. 약간 두려움에 젖은 눈빛이었습니다만. 이건 아니예요. 아니야. 라고 하면서 빠져나오려고 했습니다.
[SYSTEM]정면승부에 들어가시겠습니까..? [Y]-N route-nuclease [N]-Y route-yeshua 어쩐지 눈 앞에 그런 콘솔이 깜박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잘 봐요. 무언가 흔들거리는 것 같지 않아요? 콘솔도 지지직거리고, 공간 자체가 떨리는 거려나요? 오 유감이예요 심연. 공간이 당신을 버티지 못하고 있어요. 들리시나요 공간이 지르는 그 끔찍하고도 처절한 비명이?
눈은 따가워지고 졸음은 몰려오는데 잠만은 오지 않았다. 제 몸을 쿡쿡 지르다시피 한 통증이 얄미웠다.저와 다르게 편하게 잠을 이룬듯한 당신이 너무나도 부러웠다.새벽이 다 되가도록 몸을 뒤척이다겨우 잠에 들었지만 깊게 들진 못했다. 잠깐이지만 무언가 좋은 꿈을 꾼 것 같았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이 떠졌다.잠에서 깨었을 때도 통증은 여전했다. 눈이 부셔 반쯤 감은 눈으로 고갤 돌리자,병실 문 사이로 빛이 세어 들어오고 있었다.당신의 자리를 가린 채 많은 이들이 서 있었다. 개중엔 저와 인사를 나누던간호사도 함께였다. 항상 미소를 걸고 있던 친절한 여자.그녀가 깬 저를 눈치 채곤 가까이 다가왔다. 절 다정하면서도, 강하게 껴안았다.
왜 이러는지 의아해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어째서 이 소란에 당신은 이렇게나 조용한지. 왜 저들이당신을 가리고 서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때 의사의 사망선고가 귓가를 스쳤다.그제서야 그녀가 왜 절 껴안았는지. 저들이 당신을 가리고 서 있었는기 깨달았다.의사가 새벽 4시를 외치곤 자리를 떠났다. 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남은 이들의 당신의 침댈 끌어냈다. 일어나 따라 문 밖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어리광 피우지 않겠다며. 다신 죽겠다는 말에 입을 담지도 않을게요. 멀어져 가는 침대에 대곤 소릴 질렀다.무엇 하나 명확하게 발음하지 못했다. 짐승 같은 외침이었다. 울렁 거리던 속을 토해냈다.간호사는 닦을 걸 가지고 오겠다며 자릴 떠났다. 그제서야 빈 당신의 자리를 바라보며당신을 떠올리나, 당신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이름 하나 떠올리지 못했다. 머리를 쥐어뜯었다. 기억해라. 기억해라.그렇게 절 몰아세워도. 당신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하여도 미안해요." 미안할 수 밖에 없어요.. 라고 말하면서 파묻힌 몸을 꺼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확실히 손이 허전하지요? 권한. 권한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것은.. 밖에 있지요? 그 셉터.
덜덜 떠는 헤세드에게 뭔가 입 같아 보이는 것이 크게 벌어져 히주욱 하고 웃는 듯했다. 뭐.. 눈이 아니라 입 같은 것도 온 시커먼 데에 다 붙어 있나 보다. 카드득하는 소름끼치는 그가 웃는 소리가 흔들리는 공간의 균열의 까드득거리는 소름끼치는 소리로 새로 생기게 만들었다.
-인형.. 그래. 그것은 인형이다. 인간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나를 담을 그릇에 불과하지. 너는 진정으로 저걸 좋아하나 보구나. 안타깝게도 말이지. -저건 원래 그런 용도로 쓰려고 그릇을 강제로 넓히고, 부어넣어지고, 능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을.ㅌ그래서 네놈이 마음에 들지 아니하다. 정말로 한탄스럽도다. 어째서 네놈인 것이지? 우렁우렁하게 공간 전체에 울리는 목소리가 살의를 담았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들은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아까의 용암들을 뱉어내는 정도.
"나느..는.. 괜찮아요. 헤세드. 정말로 괜찮아요." 헤세드야말로, 다치지 말아요. 저건.. 정면으로 승부해선 이길 수 없어요. 라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하면서 목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이것을. 끊을 수 있을까? 란 확신은 없었지만..
밖으로 나가는 게 급선무인 것 같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풀어오르면서. 목줄의 길이도 좀 길어져서 생각보다 사정거리는 길어진 것 같았으니까요. 겨우겨우 제일 깊게 빠졌던 다리 한 짝까지 다 빼냤습니다.
-인형. 그릇. 이 몸이 현세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였는데. 그걸 다 망친 네놈을 용서할 수 없도다. 처음부터 빠르게 녹여버렸어야 했는데... -감히.. 감히 네놈이.. 이 몸을 재단하려 하는 것이냐. 네놈을 반드시 찢어내어 물고기 밥으로 던져주마. 화가 돋구어졌는지 그 여러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뚝뚝 떨어져 치익 하는 소리를 내며 그림자를 태웠습니다.
-우리는 네가 좋아서 공격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힘을 함부로 분출하면 무너지기에.. -이미 균열이.. 그르렁대는 그림자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슬금슬금 비켰습니다. 우리의 주인께서 임계점에 다다르시어 폭발하신다면 이런 연약한 공간은(우리의 주인께 연약하지 아니한 공간이란 본디 있던 곳 밖에는 없다만은)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어버릴 것이었고, 애꿎은 우리가 휘말리면 돌아가도 꽤나 요양해야겠지.
"...헤세드.." 몸이 떨리는 타미엘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헤세드를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같이 나가서, 이걸 끊어내고 돌아가는 거예요.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헤세드를 끌어안고 싶어요. 목에 멍은 들겠지만. 괜찮아요. 나아갈 수 있어요.
-원통하다.. 원통하도다..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이 연약한 공간 때문에 손을 휘두르지도 못하다니.. 라고 흐느끼듯 이야기하면서 거대한 손으로 그들과는 상관없는 옆을 한번 내리치려 했습니다. 조절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이런 힘을 지니고 있으니 당장 항복해라. 라는 과시용인지.. 확실히 위력은 대단해서 그 많던 식물들로 뒤엉켜 정글과도 같던 뒤편이 완전히 초토화되어 벌건 흙과 약간의 잔해만 남은 폐허로 될 정도였지만요. 그럼으로서 균열은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974 독백 관련 다이스입니다!! (쩌렁쩌렁) 원래 총 3개 챕터로 나누려했는데... 쓰다보니 너무 건너뛴 에피소드가 많아진 거 같아서 고민을 좀 했거든요! 근데 다갓님이 늘리시라하니 원래 진행하던 애정 시리즈는 상중하로 마무리하고 뒤이어지는 시리즈를 하나 더 만들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