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인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당연한 결과죠. 날 의식해서 그런 건 아닐지, 날 말하는 건 아닐지. 허나 억지로 끼워 넣은 퍼즐이 제대로 들어맞을 리가 있나요? 기대하며 설레던 것도 이전이에요. 이미 다 식어버린 마당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냈던 건데. 애초에 착각으로 시작한 설렘이니까. 뭐 확인하고 나니 마음은 편하네요. 슬프진 않아요. 그냥 단지 내 아이를 좀 더 사랑스레 하지 못한 게 좀 아쉬워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무도 절 호명하지 않는다면 저는 절 부둥켜안을 수 밖에요. 그러니까 용기 못 내는 당신. 조금 용기를 내봐요.
언젠가 생각했어요. 당신이 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나는 말도 못 하는 바보이니 이제 이 마음을 접어야 할 때가 온 거 같군요.
유혜의 발렌타인 독백 보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어. 너무 예쁘다. 감히 내가 좋아해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모두들 행복하자!!!
선물 1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쓰인 메모가 붙은 상자가 모두의 책상에 올려져있습니다. 상자 안에는 약과와 한과 등이 정갈하게 담겨있습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동물 모양의 작은 인형 열쇠고리도 함께 놓여 있네요. + 서하의 책상에는 그것들과 함께 또 다른 자그마한 상자가 올려져있습니다. 상자 안에는 은빛 반지가 들어있습니다. 반지 안쪽에는 당신의 이름이 영문 필기체로 새겨져있습니다.
보아한까...선물은...음...음..(끄덕) 이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일상 한번 돌려야하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 물론 마지막으로 돌린 것이 1월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긴 하는데... 아실리아가 다른 이와 잘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스레주로서는 고민되고...(시선회피) 아무튼 그렇다고 합니다. .....후우....이거 아마 새벽에 들어온 것으로 기억하는데...아무튼 정말로 고마워요! 아실리아주!
무심한 말투였지만 나름 진심이었다. 유혜는 조금 씁쓸해진 분위기였다. 그것이 내 탓이라고 누가 원망하더라도 나는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오래 되었으니까 괜찮다는 건가."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별이 밝은 이 도시의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어 나지막히 읊조렸다.
"...자살 시도를 했다가 버림 받고 만 동생이 있어. 10년도 더 된 일인데, 우습게도 그 일은 그 녀석의 인생을 근본부터 뒤집어버렸지."
자살 시도를 한 코미키 스즈나는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기 싫어하는 코미키 텐마에 의해 사고사 처리 되어버리고, 죽지 않은 본인은 타나카 나츠미라는 이름으로 신분이 바뀌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코미키 텐마의 뜻대로는 질색이어서, 그런 나츠미를 내가 찾아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내심 조금 놀라버렸다. 어째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낸 것인가. 게다가 무심코 제 손목까지 붙잡고 있었다. ...최악이다. 코미키 토오야라는 이름, 더 나아가서 히라카와 토오야라는 이름까지 버렸던 이유가 무엇인데. 표정을 살짝 구기면서 강하게 붙잡고 있었던 손목을 놓았다. 정말로, 11년이나 지나도 사라지지 않네.
"...방금 한 말은 잊어. 생산성 없는 이야기이니까."
쓸쓸하게 지은 미소는 자조적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발걸음 속도를 높인 십년지기를 따라 자신도 발걸음의 속도를 올렸다.
"......"
침묵을 지키다가 그 침묵을 스스로 깼다.
"...어쩌다가 그런 건지 물어도 될까. 아니, 안 좋은 기억인 건 아니까. 무시해도 좋아."
그런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스스로도 잘 아니까. 자살이라는 단어에 조금 민감한 자신을 책망해야만 했다.
//아침갱신합니다! 그리고 답레! 으아아 이거 안 짚고 넘어가면...센하 캐☆붕이라서...(흐릿)(먼산)
친구 앞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성격이 꽤나 많이 바뀌어 있었다. 경계심이 가득하여 쉽게 낯을 가리던 성격 대신 능청스럽게, 어쩌면 속을 모르겠는 성격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고, 웃음도 많아졌다. 그 전의 어색한 미소가 아닌,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미소. 그의 친구는 퍽 달라진 그의 모습에 익숙해지는 데 생각보다 애를 많이 먹은 듯하다.
그의 친구는 그가 숙식을 해결할 곳이 없음을 눈치채고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한 후 겨우 그를 설득하여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그렇게 내키지는 않는 눈치였다. 아무리 성격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따뜻함에는 서툴렀던 것이다.
"...야, 넌 복 받았다."
언제였을까. 그가 친구를 보고 무심코 나지막히 흘린 말이다. 무슨 소리냐고 묻자 정신을 차리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무시하란다. 하지만 그 말을 했을 때의 눈빛은 어딘가 어두워보였다. 비단 그의 그늘진 인상 때문만은 아니리라.
여튼, 그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대부분의 연을 스스로 끊어내면서. 홀로. 끊어낸 그 많은 연들. 복잡하게 꼬여있었던 연들. 하지만 그가 만든 인연 중 유일하게 평범했던 것은 그의 친구와의 연이었으니 어쩌면 그 때문에 오랜만에 친구를 찾아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센하 자냐?" "...자려고." "야, 무서운 이야기해줄까?" "됐어. 나 최대한 빨리 잘 거니까." "왜? 내일 어디 가?" "아니." "그럼?" "...어둡잖아."
자유를 얻은 그였지만, 그림자는 여전히 존재했다.
//막간은 이렇게 짧게짧게 갈 생각인데, 미리 이야기하지만...사실 막간에는 엄청난 스포가 숨어있습니다.(뚜둔) 한 막이 끝날 때마다 막간이 올라가는데 총 9개의 막간을 나중에 잘 보면 무언가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답니다!
과거의 일을 아직까지도 붙들며 울고 싶진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상처는 다 아물었고 그날의 그림자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다만 제 몸에 남은 상처가 이따금 그날의 기억을 상기 시키긴 해도, 그건 자신의 과오가 내리는 벌일 뿐이었으니.
아아, 그랬구나. 그녀가 두 눈을 무겁게 내리깔았다. 십년을 봐왔는데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네. 물론 그도 유혜를 전부 아는 건 아니었고, 그녀가 센하를 전부 아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다만 마냥 가볍지 못한 이야기이기에 그랬을까. 피가 베어온지도 십년이 다 된 상처가 욱씬거리는 느낌에 그녀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어낸다. 처음부터 뒤틀린 인생은,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낯선 목소리가 속삭였다. “ 응. 네가 원한다면. “
남의 상처를 들쑤시는 악취미는 없었다. 그녀는 느릿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부탁에 부드럽게 대답한다.
“ 어..., 그. 16살 때. 그 일 이후로 엄마가 조금 정신병..., 같은 게 있었거든. 정신병이라기 보다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같은건가. “
애써 감추어둔 과거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간다. 가장 가깝고도 먼 곳에서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먼지 쌓인 기억. 다신 들추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기억. 하지만 언젠가 내 손으로 그 상자를 열어야만 했던 기억. 아마도 성재와 센하는 자세히 몰랐겠지.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통제함과 동시에 그녀 자신도 제 스스로를 그 숨막히는 집에 가두어버렸으니. 드문드문 지워진 기억을 되짚던 그녀가 잠시 끊어진 말문을 다시금 이어간다.
“ ...너한테 숨길 건 없겠다. 그냥 다 말할래. 그 일이 있고나서 그, 학대라고 해야하나. 그랬어. 막 니 언니 아빠는 죽었는데 너 혼자 살아서 좋냐고, 좀 심한 날은 너 말고 언니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러고. 웃기지? 하긴 언니가 살았으면 나나 엄마가 힘들겐 안살았지. “
시간이 지났다고 상처가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는 상처를 지우는 대신 상처에게사 도망치는 방법을 택했다. 그녀에게 가장 가깝고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 다른 날은 다 괜찮았는데. 그냥 내가 이상했어. 그날 따라 너무 참기가 힘들고 아픈거야. 평소에는 그냥 잠자코 맞기만 했으면서. 그런데 하필 그냥 엄마가 액자를 집어 던졌고, 좀 반쯤 제정신은 아니었어. “
중간중간 공백이 생기는 문장들이었다. 뒤이어질 문장에 어떤 단어를 넣어야할지 고민하는 탓에 말이 잠깐씩 끊기기도 했고, 기억을 되짚기 위해 잠시 끊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웃긴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의 원인을 저로 돌려버리는 일관 된 태도였을까. 그녀는 그리 믿었다. 그저 모든 건 제가 잘못한 탓이라고. 조금만 더 참았으면, 모르는 척 했으면, 바라지 않았으면 괜찮았을 일이라고. 모든 건 저에게서 시작 된 악연이라고. 그래, 내가 없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지. “ ...뭐 그래, 지나간 일이니까. “
나흘이라. 운전대의 핸들을 붙잡았던 손이 유난히 하얀것은 기분 탓이겠지. 공감할 수 없음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 적어도 당신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 다른 사람도 아닌 연인이 이런 일을 겪는다는 것은. 핸들을 꺾으며 그는 잠시 당신에게 눈길을 주었다. 살면서 제일 혹사했던 것 같다니.
"누나."
당신이 그렇게 괴로운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억지로 웃는 목소리에 들린 지친 감정을 어찌 읽지 못할 수 있을까. 많이 들어보았고, 그때마다 무시했던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그는 기어를 바꾸곤 핸들을 천천히 꺾었다.
"다 도착 했으니까 푹 쉬어요. 그리고 그때랑 지금은 다르다는 걸 잊지 말아줬음 해요."
어느새 주차를 마친게다. 얌전히 앉아있는 당신을 마주보고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곤, 그는 낮게 조곤거렸다.
"그때는 내가 없었지만, 지금은 내가 있어요."
제가 곁에 있습니다. 부디, 안심하시길. 그는 차 문을 열고 먼저 밖으로 나와 당신이 있는쪽의 문을 열더니, 안기라는 듯 팔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