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하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유혜가 방긋 웃었다. 첫 만남에서도 착하고 순수했던 아이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지러지지도 때 묻지도 않은 친구였으니. 참 질긴 인연이라는 센하의 말에는 대답 대신 살풋 미소를 짓는다.
“ 질긴 인연이라 싫어? “
하긴, 10년을 봐왔으면 조금 질릴 법도 하지? 시덥잖은 농담이나 곁들이며 유혜가 창 밖을 내다본다. 새카만 하늘 위에 그려진 도시의 불빛들은 꽤나 장관이었으며 그 위로 질세라 빛나는 별들 또한 아름다웠다. 잠히 제가 이런 광경을 즐길 자격이 있는지가 궁금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곧이어 음식이 제 앞에 놓이고, 반쯤은 버릇이 되어버린 듯 익숙히 사진을 찍어낸 유혜가 고맙다며 인사를 건넨다. 제 인사 뒤로 센하의 입에서 튀어나온 일본어에 픽 웃고는 역시 모국어라 그런가? 라는 생각을 품어낸다.
“ 기미상궁인가..., “
그럼에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센하가 올려준 가라아게를 젓가락으로 집어낸다. 분명 저에게 독이 들었는가 확인해보라 했으면서, 먼저 가라아게를 입에 넣는 센하를 보며 풋, 웃음을 삼키고는 뒤따라 가라아게를 입에 넣어본다. 부드러운 고기가 씹히는 감각은 언제 느껴도 늘상 행복한 일이었다.
“ 이것도 먹어봐, 독 들었나 확인해보게. “
장난스레 건네는 말 뒤로 유혜가 쇼가야키가 든 접시를 톡톡 건들인다. 생강향이 약간 올라오는 쇼가야키를 한 조각 젓가락으로 집어들고는 이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어버린다. 역시 끼니는 제대로 챙겨야한다니까. 인스턴트 스파게티나 컵라면은 범접할 수도 없을 퀄리티에 유혜가 작게 고개를 까딱인다.
“ 이제 가끔 끼니 때울 때 센하 끌고 와야겠다. “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센하를 바라본다. 피차 식사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순간 질색팔색 할 센하의 표정이 떠올라 작게 웃음이 새어나온다. 역시 얘는 반응이 특이해서 재미있다니까. 유혜가 젓가락으로 밥을 떠먹으며 생각했다.
지은이 수갑을 채우는 동안 테이저건을 권총집에 넣었다. 달리느라 솟아난 아드레날린이 사라지고 나서야 손바닥에 긁힌 상처가 따가왔다. 슬 손을 편 채 상처를 살피다 주먹을 조심히 쥐었다 핀다. 그렇게 피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니까. 서에 돌아가서 소독만 하면 되겠다 싶었다. 혹 지은이 걱정하는 건 아닐까 외투 주머니로 감춰 넣고는 멀리로 굴러간 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바닥을 짚지 않은 손에 외투를 끼워 칼날 부분을 잡아들었다. 증거품으로 가져가야 할 거 같아서. 가방은 지은이 챙겨든 거 같아서.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곤 가자는 뜻으로 고갤 슬쩍 기울여 보였다. 방글이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넸다.
타마엘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도저히 무리였던 걸 기억하고 있었어요. 찢겨나가고 만약 영상매체라면 R-19를 받을 만한 상황을. 자 타미엘. 너 혼자선 안 되니까 끌어들이려는 거야? 손이 잡혔고, 따뜻한 것 같으면서도 서늘한 것 같았다. 약간 혼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멍한 눈빛이었다. 지켜주기로 했었다는 약속에. 괜찮다는 듯 꾸물거렸습니다. 그리고 우물우물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피해서 미안... 하지만.." 하지만, 나는 타미엘이자 타미엘이 아닌걸. 을 삼켰답니다. 그 미안은 TO가 말하는 최선의 사과였습니다. 아닌가요? 아니라고 해도 그녀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어요. 그녀는 헤세드가 잡은 손을 끌어당겨 순식간에 공간으로 넘어가려고 했어요. 별다를 건 없지요. 그저 공간 내에서가 조금 더 운신하기 편할 거예요. 창 밖은 좀 엉망이겠지요. 그야. 도시가 반파상태니까요. 오. 타일에 얼룩진 건 치워야 하지 않나요? 길고 긴 머리카락이 침대 한쪽 끄트머리에서 삐져나와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월하의 노력과 가방을 찾느라 지은이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기 덕분에 지은은 월하의 상처를 보지 못했다. 분명 월하의 상처를 발견했다면 가방에서 반창고를 꺼내 건넸을 것이다. 가방을 들고 뒤를 돌자 월하가 칼을 들고 있었다. 지은은 저도 모르게 흠칫하면서 이야기했다.
”위험해요! 제가 비닐봉지 있으니까 거기에 넣어두세요.“
준비성이 철저한 건지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낸다. 비닐봉지의 입구 부분을 뜯어 쉽게 넣을 수 있게 했다. 어서 넣으라는 듯 손을 뻗는다. 방글 웃으며 말한 월하에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웃는다.
지은이 놀라는 모습에 모르겠단 표정으로 있다 아차 한다. 아무래도 칼 때문에 그러겠지. 칼날 부분으로 잡고 있으니 위험하지 않을 텐데. 그래도 가만 들고 있는 것보단 비닐봉지에 넣는 게 덜 오염도 덜 되고 괜찮을 테니까. 그것보다 어째 비닐봉지며 여러 가지 가방에 많다 생각하다 들려온 말에 고갤 끄덕인다. 소매치기범을 슬쩍 돌아보며 있다 말을 잇는다.
비닐봉지에 얌전히 담긴 칼을 챙기고 소매치기범에게 다가간다. 그의 팔을 잡고 기세좋게 끌고 왔지만 안타깝게도... 길을 알 수 없었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묻는 것이 당황한 듯 해 보인다. 그녀는 작게 앓는 소리를 내고는 소매치기범에게 말했다.
”그쪽이 길을 알죠? 순순히 알려주시는 게 좋을거에요.“
방글방글 웃으며 한 말이지만 어째서인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매치기범의 대답이 늦어지자 지은은 뒤로 꺾인 그의 팔에 힘을 줬다. 그제야 소매치기범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턱짓으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저기야.“ ”말이 짧네요. 장난해요? 아까 그 총으로 한 번 맞아보고 싶어요?“
불량해보이는 말투로 답하자 심기가 불편한지 지은은 더 세게 힘을 주었다. 별로 세보이지 않은 손에서 어떻게 저렇게 강한 힘이 나오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어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범죄자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