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을 순순히 긍정하는 것도 그렇고, 죽어가는 처지라는 둥 중얼거림이 들릴 때마다 눈썹이 실룩거렸다. 안 물어봤잖아. 좀 조용히 있으면 안 되냐? 얘 진짜 왜이래. 살짝 가늘어진 눈으로 옆을 흘깃 보곤 쯧, 혀를 찼다. 역시 아까 일 없다고 보내버렸어야 했어. 괜히 내줬어. 후.
"...힘들면 쉬라고."
확실히 짜증이 섞인 말투로 내뱉고 정리가 끝난 서류뭉치를 탁, 내려놓았다. 그러곤 타미엘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잠시 눈을 감고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것은 참으로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 내가 좀 더 힘이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나는 어쩌면 그 죄책감을 짊어지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로 지키고 싶었던 것을... 지키지 못했기에.. 그렇기에....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음료수를 다시 벌컥벌컥 마시고 맨 손으로 구겨버린 후에 근처의 쓰레기통에 훅 던져서 골인시켰다. 그리고 피식 웃으면서 메이비 양의 말에 이어서 대답했다.
"무리인가? 하하하하. 글쎄? 자네가 SS랭크로 성장하게 되거나 바뀌게 된다면 생각해보도록 하지. 적어도 서장으로서 부하들은 내 손으로 지킨다는 자세는 바꾸지 않을걸세. 소중한 것을 잃는 것의 아픔이 얼마나 아픈지 아니까...나는 그 아픔을 그 누구에게도 겪게하고 싶지 않네. 자네들이 뭐라고 한들...자네들은 전부 나의 부하일세. 서장이 부하 경찰들을 지키는 것이 뭐가 무리겠는가. 우선 나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다면 자네들이 더욱 강해져서 나를 지킬 정도가 되고 이야기하게나. 하하하하!"
이어 술을 마시러 가자는 제안에 나는 작게 웃으면서 메이비 양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연하겠지. 자네들이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내 딸인 하윤이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키고 싶네. 나의 소중한 것들을..."
그것은 나의 고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과거에 사로잡혀있는 나의 정말로 무서운 고집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미 한번 잃었으니까. 그렇기에 내 딸을, 내 딸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지키고 싶다. 그리고, 내 밑에 있는 이들도... 그것이 고집이라도 좋다. 아버지로서, 서장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메이비 양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술이 들어가야 나오는 이야기인가? 처음부터 그쪽이 메인이었나보군. 술이 들어가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이야기인가?"
그 이야기가 무엇일지 잠시 생각하며, 나는 가만히 메이비 양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부하와 함께 술이라. ...나쁘지는 않았다. 상사로서 같이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하윤이가 이상하게 보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일단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근처에 걸려있는 코트를 챙겨입었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정복은 가릴 수 있고, 만일의 경우 바로 출동도 가능하겠지. 나름대로의 처세술이었다.
"좋네. 대신 좋은 곳으로 안내해줬으면 하는군. 자네의 이야기가 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기왕이면 술맛이 좋은 곳이 좋으니까."
작게 웃으면서 나는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자. 과연 뭐가 나오려나... 역시 상사로서 알아둘 필요가 있겠지.
"쉬어봤자. 인 걸요." 쉬나 일하나 같은 것이라면 차라리 일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다만 튕기는 것이 없다면 나쁘지는 건 덜할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끝을 향해 달려가는 거. 속도는 상관없지 않나요? 잔혹한 것을 보아서 그런지 분류하는 손이 조금은 느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 원하지 않는다면 물러나야겠지요. 정말. 닮아갔네요. 어린 저였다면 더욱 푹 찌르지 않았을까요? 란 생각을 하고는 거절하는 듯한 말. -그러니까 가라는 말에 자신이 한 부분들을 정리하고는 눈을 내리깔고 알았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선술집인가. 여기도 전에 한번 온 적이 있었지. 혼자서 술 먹을 때 말이야. 하윤이에겐 비밀이지만... 물론 따로 사람을 부르거나 하진 않았다. 서장으로서 일하다보면 혼자서 술을 먹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슬픈 기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서장이기에..밝히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아무튼, 여기에 오기 전에 화풀이할 곳이라고 하였는데... 나에게 화풀이라도 할 참인걸까? 뭐, 아무래도 좋았다. 부하의 화풀이 정도는 들어도 상관없을테니까. 무슨 말을 할진 모르겠지만 조금 가공는 하는 것이 좋겠지.
이어 나는 자리에 앉은 후에, 적당히 술을 주문했다. 이런 곳에서 먹는 술은 특별히 정해진 것은 없을테니까. 가볍게 파전이나, 두루치기 같은 것을 주문하면서 나는 그것이 나오는 기다렸다.
"확실히 밖보다는 따뜻하지. 아. 자네도 안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키게나. 내 돈으로 계산해줄테니. 적어도 자네보다는 많이 받으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게. 그래서 말이네만... 역시 메인 이야기는 술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할 참인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꽤 많을 것으로 느껴지네만.."
나름대로 추측을 하면서 가만히 메이비 양을 바라보았다. 굳이 여기까지 올 정도다. 서에서는 그다지 밝혀지지 않고 싶은 무언가가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조용히 메이비 양의 말을 기다렸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조용히 받아줄 생각을 하면서...
물론 모두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로서, 올바르지 않은 언동이라면 그것은 조금 말을 해야만 하겠지.
나에게 따라주는 술을 받으면서 나는 나대로 그녀에게 술을 따랐다. 그리고 안주에 대해서는 먹고 싶으면 먹으라고 이야기했다. 어차피 이거, 얼마나 한다고...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말은 성장에 대한 것이었다. 이를 빠득 갈면서 나에게 따지듯이...그리고 그 분노를 표현하듯이 말하는 메이비 양을 바라보면서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우선 잔에 따라져있는 술을 혼자 조용히 마셨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건가? 성장이라는 것이 다 그런 거 아니겠나. 나 역시도 비슷한 느낌이었네. 어느 순간 갑자기 그렇게 랭크가 올라가게 되었지. A급에서 S로.. S에서 SS로...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일세. 자네는."
이어 나는 내 잔에 셀프로 술을 천천히 따랐다. 넘칠 듯, 넘치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면서 잔을 들어올려 이번엔 그녀에게 살짝 내밀었다. 가볍게 술잔을 부딪치자는 의미였다. 역시 둘이서 술을 마시면 이런 것도 있어야지. 그리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
"...서하 군에게 보고는 받았네. 자네들. 저번 범죄자를 제압하고 대부분 힘이 빠져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고 하는군. ...랭크는 올라서 좀 더 힘을 쓸 수 있게 되었을지 몰라도,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버티지 못하는 것. 그것이 자네들의 한계가 아니겠나. 오히려 랭크가 올랐다면.. 어떤 계기로라도 올렸다면 이젠 그 힘을 컨트롤 할 수 있게 자신을 갈고 닦을 차례지. 설마 랭크가 올랐다고, 바로 힘이 증폭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결국 익스퍼의 힘은, 자신이 얼마나 갈고 닦냐에 따라서 다른 걸세. 단적으로 이야기하지."
피식 웃으면서 나는 메이비 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확실하게 단언했다.
"지금의 자네들은 전부 덤빈다고 해도, 같은 랭크인 서하 군도 제대로 제압하기 힘들걸세. ...적어도 지금의 자네들은 말이지. 알겠나? ...불평할 시간이 있으면,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고 그 힘에 익숙해지도록 하고 그 힘을 끝까지 컨트롤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게나. 그것이 강해진다는 것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