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타미엘..이라고 합니다." 선배라는 소리를 듣게 되다니.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어색하게나마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 적어도 타미엘이 돌아왔을 때 서..성격이 변했어. 라는 말이라던가.. 시비걸릴 일은 없었으면 하니까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은 채 초면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심연 속에서 왔어.." 정제 시스템이 가동 중지되어서.. 라고 꽤 쌩뚱맞은 대답을 했지만 사실인 걸요. 물론 지은이 물은 건 나라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았지만요.
"미안. 사건이 있었어서 좀 불편해서." 라고 말하면서(아마 지은도 들어보았을 것 같습니다. 누가 납치당해서 학대를 받았다더라.. 그런 식으로요?) 주어진 의자에 앉았습니다. 올려 묶었는데도 길고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서 의자 그림자 내부로 들어가 있네요.
다정하네. 고개를 살며시 끄덕여 보이곤 다시 흩어진 물건을 제 앞으로 모으길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붕대나 거즈 중에서 바닥에 닿은 것들은 버리고 새로 채워야겠구나. 생리식염수나 소독 약도 찌그러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가위도 닦아내고. 그런 생각을 하다 들린 말에 고갤 슬 든다. 거지가 든 박스와 붕댈 주섬 품에 안아 들곤 무릎을 펴낸다. 열어놓은 구급상자 안에 차곡 채워 넣으며 고갤 돌려 헤세들 바라본다. 눈을 마주 하곤 웃는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응. 헤세드 씨 말 처럼 이것저것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래도 약국에 가니까 전부 다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던 거 있죠."
물론 지은은 그녀가 타미엘인지 타미엘TO인지 알길이 없었기에 당연하게도 지은 앞에 있는 사람을 타미엘로 인식했다. 생뚱맞은 타미엘의 질문에 지은은 조금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대충 속으로는 이게 바로 상사의 개그?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그런건가요? 하하."
타미엘이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이자 지은은 당황해하며 물었다.
"아... 제가 도울만한 건 없을까요? 음료수를 가져온다거나 좀 더 편한 의자를... 어라?"
지은은 지나가듯이 타미엘 선배의 사건을 들었다. 차라리 자세히 묻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고 지은은 사소하더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이것저것 물어보려 했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신비한 관경에 눈을 깜빡이고 구경했다. 처음의 목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지은은 의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림자의 빨려들어간 머리카락을 구경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지금은 별로 심하지 않으니까요." 시간이 갈수록 심해진다 하여도 티를 낼 리가 없지. 라고 타미엘-TO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전에 빠져들어야만 하고요. 자신의 능력을 보는 지은에개 정말 아무 것도 아니란 듯
"별로 신기한 건 아니예요." 뭐가 신기한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으로 지은을 보면서 머리카락을 슥슥 모아서 목덜미 너머에 슥슥 밀어넣었습니다. 아무래도 의자 밑은 쉽게 더러워지고 의자에 밟힐 가능성도 있으니까 목덜미 뒤쪽으로 하는 게 낫다나요? 굉장히 풍성하고 긴 머리카락이 전부 들어가버렸네요. 그리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지은 씨는 어떤 능력이던가요...?" 자료는 받기는 했지만 출동하고 그러다 보니 볼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타미엘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지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초면이라 해도 선배가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다면 누구든지 걱정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 능력이 아니라는 듯 말하는 타미엘의 말에 지은은 전혀 아무 능력이 아닌데? 라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물론 머리 속에서만.
"잠깐만요 방금 뭐였죠? 엄청 신기한데요."
갑자기 길고 풍성하던 머리카락이 어디론가 사라지자 지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타미엘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런 능력도 존재하는 구나. 한때(그러니까 지은이 한창 중이병이었을 때) 자신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던 과거가 불현듯이 떠올라 이불을 격렬하게 차고 싶어졌다. 세상은 넓고 나는 좁은 곳에 살았구나.
"저요? 어... 투명화죠."
앞에서 굉장한 능력을 본 후라 자신감이 급 하락해버렸다. 지은은 그래도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자며 급하게 덧붙였다.
"몰래 과자 까먹거나 핸드폰 하기 딱 좋..지는 않네요... 저희 팀에는 하윤 선배가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죠." 나빠질 뿐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정해졌다는 것으로, 좋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지은이 신기하다는 말에
"그냥 다른 그림자에 수납한 것 뿐이예요." 오해를 하는 대로 다른 그림자처럼 느껴지도록 말하면서 자료를 슬쩍 보니 본인보다 2살이나 많아서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나이차가 나는 건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막 10살 차이나는 분이 선배라면서 말하면 그건... 좀 많이 무섭습니다. 약간 눈치를 보다가 말을 편하게 해 주셨으면 좋갰네요. 라고 말합니다.
"투명화라. 좋은 능력이네요." 공격적인 능력은 아닌 것.. 아니. 공격적일 수 있구나. 새끼발가락 그 자리에 투명화한 뭔가를 가져다두면 엄청난 고통이.. 란 생각을 하다가(다행히도 생각이나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다행이 두번이라고요? 잘 보셨습니다.) 칭찬을 한 다음에 하윤 선배라는 말에 그런가요.. 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예 다른 공간.. 지금은 개박살난 공간이라 불러야 하려나요. 라고 약간 시무룩해졌습니다.
무슨 능력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굉장한(?)능력인 것 같았다. 자신의 존댓말이 상대에게 부담이 될 줄은 꿈에도(사실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고) 모르던 지은은 눈치를 보며 반말을 쓰기를 요청한 타미엘에 곤란한 얼굴을 만들었다. 왜냐하면 지은이 제일 존경하는 선배님들에게 존경심을 표출할 하나의 방법이 '선배'라는 호칭과 존댓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은은 싫은 상대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럼에도 여전히 입에서 반말이 나오지 않았다. 일종의 습관이라고 해야할까.
"사실 저는 이게 더 편해서!"
지은은 일어나 머리를 긁적였다. 이것 참 곤란한 일이었다. 자신에게는 편한 일이 상대에게는 불편한 일이라니.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요." 도. 를 굳이 붙인 것은 일순간의 변덕 같은 것이려나요. 그리고 지금. 곤란한 표정을 보이는 지은을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약간 띄웠습니다.
"그냥.. 타미엘로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호칭도 애매했습니다.. 왜이리 뭔가 많은 것인지. 그것보다 들을 일 없을 거라 생각한 선배라는 호칭을 들을 줄이야..(터미엫은 항상..거의 처음에는 후배로 착각되다가 선배가 너무 어색해서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이었다)
"존댓말..도 나쁘지 않지만요.. 아무래도 반말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불편하다면 상관없지 않으려나요. 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타미엘-TO로서는 반말이 편했지만, 타미엘이랑 동기화한 것 중에 한국어는 존댓말 뿐이라서 괴상한 반말을 하는 것보다는 안전한 존댓말이 나았습니다. ...막 깨어났을 당시에 에드워드 있었으면 둘이서 한바탕 외국어로 싸웠겠군요.(그걸 못 써서 한국어 패치를 줬다카더라)
난처해 보이는 타미엘에 지은은 의문을 느꼈지만 더이상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과도한 궁금증은 언제나 화를 불러일으키고는 했으니.
"그럼 타미엘이라고 부를게요!"
선배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지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동경이었다. 선배라는 존재에 대한 동경이 늘 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였지? 어쩌면 경찰대에서 선배님들의 멋진 모습을 보고 나서부터는 선배라면 우선 존경심 먼저 들었다. 꽤나 괴상한 마인드였지만 적어도 일상생활에 문제될 점은 전혀 없었고 이런 지은을 좋아하던 선배도 꽤나 되엇다.
"그건 다행이네요! 역시 선배에게는 반말은 무리라서."
많이 친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면 상대는 초면의 고참이었다. 현재로서는 존댓말이 훨씬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