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엔 잘 몰랐지만 아무래도 이리저리 피로가 많이 쌓여 있었나. 하긴 서류며 출동이며 되게 고생 많았었단 생각을 하다 축 늘어진다. 저절로 눈이 감겨와 슬 감길 잠깐. 물소리가 들려와 눈을 뜨곤 고갤 돌린다. 수증기에 가려져서. 가르다래 눈을 접은 채 응시하다 상대를 확인하곤 크게 떠낸다. 옆에 앉기 편하게 살짝 자리를 고치곤 고갤 끄덕인다.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을 건넨다.
"하윤 씨도요. 응. 아무래도 밖은 너무 춥고 하니까."
말끝을 잠깐 흐리다 "그쵸? 되게 편해서 성류시에도 이런 온천이 있으면 한다니까요." 하며 웃음기 배인 목소리로 이어서.
성류시는 젊은이들을 위한 젊음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물론 북쪽 단지는 연구소가 많긴 하지만...그것은 별이 잘 보이는 이유를 연구하기 위함이니까. 묘하게 뇌파를 연구하는 곳도 많은 것 같지만... 아무튼 거기까진 나도 잘 알 수 없었기에 그냥 넘기기로 했다. 그와는 별개로 역시 월하 씨도 상당히 지쳤던 것은 분명해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푹 즐기는 모습을 보일리가 없을테니까. 우리도 힘들지만 현장에 직접 출동하는 이들도 만만치 않게 힘들 것이다.
지금 이렇게 푹 쉬는 월하 씨에겐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그래도 역시 말하는 것이 좋겠지.
"지금 이럴때 푹 쉬어두세요. 아마..돌아가게 되면 우리는 쉬지 못하고 또 일해야할지도 모르니까요. 우리가 출발하기 바로 직전, 들어온 연락인데... 성류시에서는 지금 감전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 온 몸이 검게 타버릴 정도로 강한 전류에 감전되어서 쓰러진 이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아직 죽은 이는 없다는 것 같지만..."
감전 사고. 그것은...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온 몸이 검게 타버릴 정도인데 목숨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고갤 슬쩍 기울인다. 이거 저만 몰랐던 건 아닌지. 그래도 성류시에서 지내면서 이곳저곳 다 돌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하다 지워낸다. 잘 생각해보면 그것들도 전부 순찰이며 출동이며 해서 돌아다닌 거고. 원해서 갔던 건 아니었으니까. 평소에 집에서 눌러만 있고 하니, 문득 병원 생활하던 때가 떠올라 슬 시선을 돌린다. 그땐 되게 퇴원하면 못했던 거 다 해보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뭐 해본 게 있긴 한지. 제 손을 옴작대다 들린 말에 고갤 돌린다. 감전 사고. 의아하단 듯 눈을 살짝 뜬 채 있다 고갤 끄덕인다.
"적어도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갑자기 감전 사고라니. 말도 안되거든요. 무엇보다.. 감전된 사람 전원이 골목길 내부였다는 것도 신경 쓰이고요."
전봇대 근처라면 그래. 아주 운이 나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치지만..골목길에서 감전사고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틀림없이... 익스퍼와 관련된 무언가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째서 갑자기..? 무엇보다 왜 사람들을 노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지갑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현장엔 쓰러져있는 사람만 남아있다고 김호민 경위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마치 그 모습은, 누군가에게 과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야...돈도 안 가져가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그냥 그렇게만 하고 사라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어째서? 누구에게? 도저히 그 답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조금 골치 아픈 사건일지도 모르겠어요. 온천 와서 그런 이야기 듣고 싶진 않은데 말이에요."
살며시 고개를 물 속으로 아주 살짝 집어넣으면서 보글보글 거품을 불어넣었다. 온천에 오자마자 바로 사건 이야기를 들을 줄 누가 알았겠어. 아아..싫다. 정말.. 싫어. 나도 모르게 울상을 지으면서 계속해서 온천 물 속에 보글보글 거품을 불러 일으켰다. 정말..싫어어...
골목길 내부라는 이야길 들으니 인위적인 게 확실하네. 혹 강도 짓은 아닐까 하다 멈짓한다. 돈이 목적이라면 감전 시킬 필요는 없고 위협만 해도 충분할테니까. 아니 애초에 돈이 목적이라면 강도 짓이 아니라 가게를 털던가 했겠지. 죽은 이는 없다고 하니 일단 살인도 아니다. 그럼 혹 자기 존재를 세간에 알리려고 하는 정신병잔 아닌지. 문득 아쿠아리움 사태가 떠올라 눈을 가늘게 접는다. 제 뺨에 손을 얹으며 아니겠지 하다, 하윤의 반응에 옅게 웃는다. 슬몃 손을 뻗어 조심 머릴 쓰다듬으며 말을 건넨다.
당신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이 묘한 감정과 말 하나하나에 심장이 잘게 떨려오는 아릿한 느낌을 당신도 알까. 당신이 좋아서 되려 불안하고, 마음을 줄 때는 혹여나 상처로 돌려받을까 두려워 마음 한 구석에 언제나 의심이라는 가시를 잔뜩 쌓아두는 마음을 당신은 알까.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서투르게나마 애정을 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양 제 문제를 애써 무시하고 숨기며 외면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건 제발 몰라줬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해서, 보다 깊게 신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버렸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듣고, 서로간의 감정은 진실되게 좋아하는 감정이 맞다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아실리아는 더더욱 그리하였다. 그래서 지금 이런 말을 듣고도 어색한 기색이 다소 사라진 말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역시 아직은 이를까.
곧 숙직실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침상과 이불들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며칠간 제대로 자지 못 했으니 피곤하기는 꽤 피곤했는지, 얼른 누워서 몸을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아실리아는 서하가 꺼내든 이불을 적당히 펴가면서 두 사람이 누울만한 자리를 만들다가, 곁에서 들려온 저를 부르는 서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서 서하를 가만히 응시했다. 안타깝게도 그 내용은 이전의 것처럼 마냥 단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썼다.
" ....단죄, 라. 갑자기 이런 얘기를 왜 하는지... 잘 모르겠어. ....나는.. "
말 끝을 얼버무린 아실리아는 서하와 마주 잡은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경찰로서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 눈에 띈다면 망설이지 말고 단호하게 단죄해달라. 그 불안한 말의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사실 알고자 하면 알지 못 할 것도 없었지만, 되도록이면 그러고 싶지 않았다.
" ...정말 만약에 네, 가 그렇게 한다면 나는 당연히 막을 수 밖에 없겠지만... 글쎄. 단호하게 대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어. 솔직히, 자신은 없어. "
다소 무거운 침묵이 감돌던 중, 돌연 아실리아는 엷은 한숨을 내쉬면서 가만히 입을 열었다.
" 어긋나는 행동.. 이라는 게 정확히 뭘 말하, 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되도록 단죄 이전, 에 설득을 하고 싶은걸. 그리고 그 이전에 어긋나는 행동... 을 하지 않도록 지켜보고 싶고. "
물론 그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아실리아는 그렇게 말한 뒤 떨어뜨렸던 시선을 도로 올려 서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붕어빵 안에 든 달콤한 팥의 맛을 나름대로 즐기면서 유혜가 하는 말을 들었다. 센하는 처음인 게 많네, 라는 말. 그 말을 속으로 조용히 곱씹었다. 그렇네. 나는 경험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풍부한 편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겠지.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어렸을 때 일본에서 성재를 만나서 논 것도, 속으로 고백하건데 몰래 한 짓이다. 아아, 들키지 않은 것이 용했지. 뒤따라오는, 자신도 처음이라는 유혜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미소를 옅게 지으면서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아무튼 지금은 스키장 초심자 코스에 있다, 우리는. 중심을 잃어 넘어질 뻔하는 십년지기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무심코 칠칠치 못한 "으엇"이라는 외마디를 작게 흘리면서 어떻게 잡아주려고 손을 뻗었지만, 금방 다시 제대로 일어서면서 넘어지는 일을 모면하고는 금방 다시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어서 손을 거두고 안도의 한숨을 작게 쉬었다. 이런 눈 위에서 넘어지면 꽤 아프다고. 초심자 천유혜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상대는 멋 떨어진다며 장난스레 쿡쿡 웃어보인다. "그렇다면 멋진 모습을 보여주시면 되잖아?"라며 약간 도발적으로 보일 수 있는 능청스러운 미소를 잠시 보였다. 그러다가 들려오는.
ㅡ보드는, 우선 넘어져야지!
"...다짜고짜? 와, 경험담인가보다."
조금 황당한 기색을 무표정에 내비추었다. 보드는 우선 넘어지는 거라니, 이게 어렵기는 어렵다는 건가. 그런 소리인 걸까. 눈을 가늘게 뜨면서 사람들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눈의 경사로를 내려다보았다. 초심자 코스라서 그런지 불안할 정도로 어설프게 타는 사람은 물론 넘어져있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자신은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지 않기를 내심 조금 바랐다.
"원래 무경력자부터 내려보내고 시작하는 거야? 희한하네..."
경험이 없다보니 모든 게 새로웠다.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보드를 내려놓고 그 위에 올라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을 떠올리면서 신발을 보드에 고정시켰다. 이렇게 하니까 역시나 발을 자유롭게 못 움직이네. 솔직해지자면 괴상한 느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나는 너의 운동신경을 믿어, 라는 소년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말이 십년지기의 입에서 씩씩하게 나온다. "아, 그래"라고 어색하게 답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유혜를 살짝 돌아보다가 다시 경사로를 내려다보고는 간다는 분위기를 보였다. 좋아. 내려가자. 내가 언제부터 불상사를 걱정하던 사람이었나. 일단 자신만만하게 저지르고 보는 사람이었잖아. 앞쪽에 무게를 실고, 내려갔다.
.dice 1 3. = 2 1. 그리고 얼마 후에 자세가 무너지고 넘어졌다! 잘했어.(?) 2. 아니야, 처음이라서 완전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잘 가! 3. 처음 맞으새오?
//으윽...늦어서 너무 죄송합니다...;ㅁ; 답레와 함께 드디어 센하주가 갱...시이인..
746위키를 수정하다 미스터치로 수정하던 거 싹 다 날려버린 센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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