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헨리가 당황해하며 손을 때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계획대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차오르는 기분과 함께 해방감을 느꼈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삐뚜름하게 웃으며 헨리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내가 말했지. 놓으라고.”
앞에서 점원들이 어버버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뭐 어떠랴, 아리나는 목표를 위해서는 무슨 수단을 써서둔 목표를 이루는 사람이었다. 아리나는 콧방귀를 한번 뀌고 점원들에게 지갑을 건냈다. 알아서 계산하라는 뜻이겠지. 점원은 허겁지겁 지갑을 받아들이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게 왜 부끄러워? 자유를 위한 갈망어린 시도였다고! 이건 부끄러운게 아니야, 자랑스러운 거라고.”
어째서 장갑을 핥는 걸 자랑스러워하는지 범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경지였다. 아리나는 점원에게서 지갑과 주스, 그리고 포장된 과일을 받아들고 헨리에게 건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도도한지, 부잣집 아가씨 같다는 기분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어, 아뇨 괜찮아요. 몸이 좀 찌뿌둥해서 그런 것 뿐이니까요. 요즘 관절이 좀 뻣뻣해져서... 몸을 잘 안 움직이고 가만히 뜨개질만 하면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녀는 그리 말하면서 가만히 에일린을 바라보다가, 고마워할 것 없다는 말에 저도 웃는다.
"하지만 고마운 걸 고맙다 하지, 뭘 어떻게 말하나요."
그리 말하곤 잠시 물뿌리개를 바닥에 놓아둔 채 에일린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정원을 정말 본인 취향으로만 꾸몄는지, 꽃의 달콤한 향으로 주변이 가득하다. 나중에 꽃 넣어서 쿠키 한번 구워볼까. 식용 꽃도 있다는데. 근데 식용 가능한 꽃이 뭐뭐가 있었지? 국화꽃, 장미, 그리고 또... 진달래. 그녀는 그 꽃들을 떠올리고는 이내 다시 물뿌리개를 들고 물을 준다.
겨우 다친 채 교황청으로 돌아온 이후에, 하루종일 푹 쉰다는 것 자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꼼짝도 안 하고 있는 것도 하루이틀 일이지 꽤 오랜 시간 지속되니 딱 심심하던 참이였다. 물론 그렇다고 일을 하고 싶다는 건 아니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난 멀쩡한데."
물론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별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면 돌아다녀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여전히 아나이스는 그의 방 안에 짱 박혀 있을 뿐이였다. 방 안에 놀거리들이야 잔뜩 있었지만 신나게 놀자니 괜히 주변 눈치가 보인다. 그렇다고 몰래 나갔다간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는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정말로 정당한 산책을 가기로 한다.
"밖으로 나오니 조금 살 것 같네."
절대로 멀리 가지 않고 주변을 돌아다니겠다는 문서에 도장까지 꾹 눌러 찍고 나서야 자유를 찾아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나 나를 못 믿는 건지. 투덜거렸지만 본인도 왜 그렇게까지를 하는지 납득했기에 크게 말 하고 있지는 않는 것이였다.
"여전히 심심하다는 건 변하지 않지만."
공기가 맑고 바람이 불어온다는 점은 좋았지만 여전히 할 건 없었다. 그 와중에 챙겨나온 과자를 한 손에 들고 먹으면서, 바쁘게 지나가던 사람들을 구경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나름의 무료함을 떨쳐보낸다. 혼자서 가위바위보라도 해야 하나. 중얼거리며 벤치에 등을 기대 앉는다.
삐두름하게 웃는 아리나의 모습에 저게 뭐야 무서워. 라는 표정으로 나는 아리나가 핥았던 장갑을 보다가 묵묵히 벗었다. 헬리오스시여. 젠장. 저 아이가 자유를 위한 갈망이라고 하는데 저런 행동을 하는 게 당연합니까? 네? 대답좀 해보세요. 장갑을 벗어서 주머니에 넣은 뒤 나는 그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얼굴을 푹 가려버린다. 부끄러움은 내몫이군. 당당하게 지갑을 내미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너는 장갑을 핥은 게 매우 자랑스러운 모양이구나'
결국 그렇게 수화로 이야기를 마치고 건네는 주스를 입에 물고 과일이 담긴 봉지에 아까 산 천을 집어넣고 한손에 쥘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한손이 묵직하지만, 뭐 어때. 이정도는 지나가던 사람이 사줬어! 라던가, 같이 일하는 사람이 사줬어!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이다. 게다가 잔돈도 착실하게 받았고. 토마토 주스를 쪼로록 빨아먹으니 상큼한 과육이 입안에 감돌았다. 나는 방긋, 하고 상큼하게 웃고 점원들에게 고개를 숙여 수고하라는 뜻을 보이고는 아리나의 팔을 잡았다. 가자는 뜻이였다.
그녀는 오늘, 할 일이 없었다. 유독 할 일이 없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보인 누군가. 어라, 누구였지. 아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녀는 아는 사람 같다는 생각에 천천히 그 사람에게 다가갔고, 이내 보인 사람은 아나이스였다.
"......?"
이 사람이 왜 밖에 있지. 싶었다. 그래도 뭐, 상관없지 않을까 싶어 조용히 묻는다.
"교황 성하, 여기에서 뭘 하고 계세요? 옆에 앉아도 돼요? 마침 할 일이 없었거든요."
시이는 가만히 아나이스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대답도 안 나왔는데 자연스레 아나이스의 옆에 앉는다. 별 이유는 없다. 그냥. 그러곤 이내 손에 들고 있는 과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소매 틈에 살짝 삐져나온 붕대를 발견한다.
"...근데 잠깐만, 팔. 다쳤어요? ...어디에서?"
시이는 좀 당황하며 아나이스를 가만히 볼 뿐이다. 눈동자가 떨리는 게 보인다. 적어도 본인과 친한 사람들은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343그냥 평범한 풀떼기성애자 시이 - 무지무지무지 귀여운 늑댕댕이 에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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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3 (파란날) 18:28:54
"그런가요? 역시 운동을 하는 편이 나으려나..."
하지만 전투를 위해서 운동은 꽤 하고 있는데. ...그래도 오랫동안 집 안에 짱박혀있다는 건 어떻게 뭐라 표현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뜨개질 하는 게 뭐가 나빠. 봄에 입을 가디건 미리미리 떠 놓겠다는데, 뭐가 나쁜 걸까. 봄 되면, 그때가 되면 나도 좀 바뀌어볼까. 그 때는 노란색 초록색 꼬까옷 입고 돌아다녀볼까. 까만색이 물론 코디하기엔 편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좀 바뀔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야.
"...네? 그래요? 그렇구나. 그럼 조금 도와줄 수 있어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물뿌리개를 건네듯이 에일린의 앞에 놓아준다. 그러곤 생긋생긋 에일린에게 웃어보이곤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