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의 곤욕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뒤에서 배를 잡고 삿대질 하는 아리나였다. 안들려 안들려 제스처따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말에 동요하는 헨리였다. 어쩜 자신보다 4살 많은 언니가 이런 심플(?)한 농담에 저렇게 당황해하다니, 재미있었다. 가게 앞에 도착하자 한숨을 푹 내쉬는 헨리의 모습에 이제는 뒤에서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것이었다.
“토마토! 토마토!”
뒤에서 박수를 치며 말하는 아리나는 이제 막 사기기 시작한 초짜 커플 앞에서 ‘키스해‘라고 소리지르는 반 아이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헨리의 가장이자 주부의 마음-애초에 15살 이후로 가족을 본 적이 없다–같은 것을 알 리가 없는 아리나는 그저 즐겁기만 했다. 그 모습에 과일가게 점원들이 당황해하느 것이 보였다. 하지만 원체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는 아이라 멈출 생각은 없어보였다.
점원들은 당황해하며 헨리에게 "저기,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며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나는 등 뒤에서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며 토마토! 토마토! 하며 외치는 아리나의 모습에 최대한 한숨을 한번 더 내쉬면서 꾹꾹 눌러참았다. 쟤가 분명히 내가 연애 한번 안해봤다고 하면 나를 놀리려고 끝까지 토마토토마토를 외칠 아이다. 나는 너무나 친절하게 나보다 4살 아래인 동생인 아리나의 박수치는 손을 잡고 제 앞으로 끌어와서 그대로 입을 막아버리려한다. 거참 잘 안들리잖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는 당황한 점원들의 모습에 나는 입을 몇번 벙긋거렸다가 아까 아리나에게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겨서 토마토를 가리키고 가는 기계를 가리킨 뒤, 과일 몇개 (오렌지, 사과 바나나)를 하나씩 가리켜서 손가락 하나를 들고 제가 들고 있는 것을 툭툭 가리켰다. 눈치가 전혀 없지 않는 이상, 토마토는 갈아서 하나 달라는 뜻이고 나머지 과일들은 포장이라는 뜻이라는 것쯤은 알거다.
모르면 어쩌지?
269귀여움이랑 거리가 많이 먼 에일린 - 이구역 귀요미 대표 시이
(2375188E+6)
2018-01-13 (파란날) 17:27:50
도와주겠다는 말 한마디에 초롱초롱한 눈빛이 돌아왔다, 저게 내가 과일을 달라 했을때의 그런 눈빛인가. 눈을 가늘게 뜬 늑대는 한숨을 쉬는 시이를 위로하기라도 하듯 자신을 쓰다듬는 손을 살짝 핥는다.
[임무? 이단심문관?]
고개를 갸웃인 늑대는 눈을 천천히 깜빡이다 시선을 그녀에게서 바닥으로 옮긴다. 잠시 뭔가 생각하는 표정.
[....? 덜렁이..]
정원 쪽으로 달려간 시이를 빤히 쳐다보던 늑대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린 후, 그녀를 따라 정원 쪽으로 달려가 땅에다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이거같은데...]
한참 시이의 냄새를 따라 땅에 코를 대고 가던 늑대는 무언가랑 툭 부딪혔고, 눈을 깜빡이더니 그것에 앞발을 짚고 위치를 알리려는 듯이 큰 소리로 짖는다
한참을 버둥거리는 아리나가 품 안에서 느껴졌지만 전혀 입을 떼어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축 늘어져서 원망어린 표정이 아래에서 쏘아졌지만 나는 평화롭고 상냥하고 산뜻하며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아, 다행히도 처음오는 가게였음에도 불구하고 점원이 눈치가 빠른 편인가보다. 아니면 감이 좋던가. 빠르게 내가 해보였던 행동을 눈치채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하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아리나의 정수리에 턱을 대고 있었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을 힐끗 바라보며 나른하게 하품을 하다가 손을 두드리는 행동에 시선을 내렸다. 옅은 분홍색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간다.
조용히 할테니까 놔달라구? 에이, 벌써 놔주면 안되지. 이렇게 있으면 계산하고 주스를 받을 때까지 조용할거 같은데. 나는 굉장히 여성스러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꽤 멋드러지게 입을 막고 있지 않은 손이 아닌 다른 손의 검지를 제 입술에 가져다대며 벙긋거렸다.
시이는 이내 잠시 고민하다가 그 쪽으로 가서 그가 찾은 걸 확인한다. 그러자 발견한 건 물뿌리개. 방금 대충 던지고 갔던 것이다.
"...고마워요! 덕분에 찾았네요... 이제 하던 걸 마저 해야지... 으으으으."
그녀는 이내 허리를 뒤로 굽히며 뻐근한 몸을 푼다. 허리에서 우드득 하는 꽤나 심한 소리가 났지만 그저 얼굴을 한번 찡그리고는 가꿔야 할 다른 작물들에게 천천히 물을 주기 시작한다. 조금은 귀찮지만, 이 식물들이 있기에 내가 여기에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시이는 가만히 물을 주기만 한다. 좀 피곤한 듯 눈을 비벼가면서.
계산해야되니까 놔달라고는 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안되지. 그렇게 놀려댔는데 이정도는 참도록 하렴. 이라는 느낌과 비슷했다. 아리나가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왠지 체념도 아니고, 반항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 라는 느낌? 나는 눈을 느릿하게 끔뻑였다. 대체 뭘하려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리나의 표정에서 쎄한 기분을 느낀 나는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상황은 늦었다.
장갑을 끼고 있어서 다행이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손을 혀로 핥아버리다니. 이거 누가 부끄러워해야하는거야? 왜 한 너는 당당한데! 나는 화급히 장갑 너머로 느껴지는 혀의 감촉에 아리나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팍 하고 떼어냈다.
세상에 헬리오스시여!!!1 저 진짜 인간 포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데'
양손으로 수화를 하면서 나는 당황한 낯으로 아리나를 벙하니 바라봤다. 이 예측할 수 없는 아이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