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이스는 여전히 뛰어가고 있었고, 그 속도는 일정했다. 레오닉의 판단은 합당했고, 육안으로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적인 평론이었다.
이미 사용하고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 후의 나머지가 되는 것들, 그러니까 이를테면 병의 마개들 따위에서부터 지금의 꼬치의 막대기까지 총합하여 아나이스가 무언가를 수집하는 경향이 있음은 레오닉 본인도 파악하고 있던 기질이었으나 한 시가 다르게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 기이한 습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대단한 사람이라며.
"내 생각에는, 단지 신고로만 해결하기엔 너무 달려온게 아닐까 해."
이 정도 소동이라면 주민들에게는 범국가적인 흉악범이라도 잡는게 아닐까 싶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을까. 추후에 본인의 책상으로 올라올 수많은 민원 신고 서류들의 잔상이 아득히 시야에 스치우며 미미한 현기증을 일으키는 환각 증세에 고개를 털었다.
"글쎄, 올바른 선택일까."
그간 분명히 시간이란 시간은 모두 사무 활동으로 할애하면서 이처럼 격정적으로 몸을 움직인 적이 없기에, 지금으로썬 마치 오랜만에 피가 열기를 받아들인 감각이었다. 허나 순수한 운동이라는 명목은 합리적이지 못했고 레오닉은 어디까지나 합리성을 추구하는 인간이었다.
걸음을 옮기던 아리나의 머리에 손이 얹어졌다. 무슨 일인가 뒤를 돌아 고개를 올렸다. 헨리가 아리나보다 조금 더 크기 때문에 시선이 언제나 위를 향해야 했었다. 헨리의 가벼운 수화를 보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알았어!’라고 답했다. 수화를 어깨너머로 배운 아리나로서는 정확하진 않아도 대화는 어느 정도 통하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아리나의 감이 더해져 더 정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도 했다.
“그럼 닭꼬치 사고 주스집 가자! 여기, 보통맛 하나요! ”
닭꼬치 집에 어느새 도착한건지 아리나가 잠시 말을 멈추고 주문을 했다. 분명 곡물 음료수나 건강 음료수가 아니면 안 마신다고 했지... 그렇다면 생과일 주스는 별로인 걸까. 궁금해진 아리나가 물었다. “...그럼 생과일 주스는 별로인거야?”
새 생명의 빛, 갖지 못할 현혹 더없이 높은 지성과 고결한 순수 그들 사이의 왕이란 잔을 비우고
겨울이 온 새벽을 물들이면 모든 별들은 자리를 잃고
하늘빛 궁전과 거울 사이의 시간 그들은 춤을 춘다네 잊지 못할 춤을
Ⅰ 불꽃 : 시들지 않는 사랑이여, 내 번제를 허하소서 Ⅱ 눈꽃 : 차다. 숨이 멎도록 경이롭다. 죽음은 옳다. Ⅲ 상아탑 : 누구 하나 없구나 그대라면 홀로 별이 되어서 Ⅳ 아이 : 나는 모든걸 알아요. 그래서 모두 잊어버렸어요. Ⅴ 왕 : 피와 영예의 관, 그것은 모든 겨울들의 왕일지어니
인트로는 이런 느낌? 아래의 번호는 타로 카드처럼 캐릭터가 어울리는걸로 하나를 선택하고, 카드마다 특수한 능력이 있는 그런 류의 이벤트를 생각 중입니다
>>204 그러게요 왜 하고 다니는 걸까요(무책임) 이 아니라...근데 진짜 별 이유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계속 하고 다니다가 패션으로 굳어진 거 뿐이라서...하하 떡밥 따위는 없는걸요! 말하자면 오랫동안 끼고 있던 반지 같은 느낌..?
>>20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알리시아주 왜 이렇게 추측을 하시려고...(동공지진) 알리시아주 이런 추측 너무 잘 하셔서 무서운걸요(오들오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별 이유 없었다고 합니다!
나는 닭꼬치 집에 도착해서, 닭꼬치를 주문하는 아리나를 바라보면서 팔짱을 끼고 가볍게 하품을 했다. 피곤하네. 어제 너무 움직였나. 하긴 그정도로 호흡이 흐트러질 정도의 움직임은 오랜만이였지. 보스 잡으러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보스를 만난 기분. 그 섬뜩하던 이질적인 푸른색 눈동자. 게다가 손에 사정을 뒀던 움직임. 마치, 나를 시험하는 것 같던. 흐음, 나는 잠시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인다. 아무래도 다시 설욕전을 펼치러 가야겠네. 뼈 마디가 맞춰지는 우드득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고 다시 하품을 한다.
쩝.
생과일 주스는 별로인거야? 라는 아리나의 말에 나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한손을 빼내고 움직였다.
'아니 생과일도 괜찮아 그거면 되겠네'
죽이나, 미음, 건강음료만 마시고 어떻게 그렇게 움직이냐고 누군가가 말했었지. 그럼 그렇게 훈련을 받고 그 움직임도 못보이는 당신이 바보인거야 라고 대답했다가 싸움으로 번져서 징계를 받을 뻔했지. 쓸때없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아리나를 향해 수화로 대답했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말에 내 얼굴이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서서히, 귀끝부터 시작해서 얼굴까지 새빨갛게 변해버린 얼굴을 나는 황급하게 손바닥으로 가렸다. 아니 못하는 말이 없어!! 얘는! 장난이라고는 하지만 저게 무슨 질문이야! 왜 저런 질문을 하는거야! 나는 얼굴을 감싸고 한손으로 빠르게 수화를 한다.
'아냐 어제 명령때문에 환상종이랑 싸워서 그래 그렇고 그런거라니 무슨 말이 그런식으로 나가 피곤하다고 다 '
잠시, 얼굴을 가렸던 손을 내리고 나는 이번에는 양손으로 수화를 했다.
'그런게 아니라고'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작게 한숨을 쉬어보이고 아리나가 닭꼬치를 받는 걸 바라보고 난 뒤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일이 나열되어있는 가게였다. 과일 주스도 부업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그쪽으로 먼저 걸어갔다. 귀끝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 피해야한다.
Ⅰ 불꽃 : 시들지 않는 사랑이여, 내 번제를 허하소서 = (힘, Strength ) Ⅱ 눈꽃 : 차다. 숨이 멎도록 경이롭다. 죽음은 옳다. = (죽음, Death ) Ⅲ 상아탑 : 누구 하나 없구나 그대라면 홀로 별이 되어서 = (은둔자, 별. The hermit, The stard) Ⅳ 아이 : 나는 모든걸 알아요. 그래서 모두 잊어버렸어요. = (마술사, The magician) Ⅴ 왕 : 피와 영예의 관, 그것은 모든 겨울들의 왕일지어니 = (황제, The emperor)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아리나의 말을 양손으로 귀를 막으면서 안들려 안들려 하는 듯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내저었다. 4살 아래인 저 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상상초월이였지만 저런 거에 재밌다는 듯 추궁해오는 건 사양이였다. 아니 그보다 내가 그렇고 그런걸 할 사람이 있을리가 없잖아! 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아니 이걸 왜 생각하고 있는거야. 나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을 애써 무시했다. 안들려 안들려하는 제스처는 계속 됐고, 그 상태로 나는 가게 앞에 도착했고 내 모습과 등 뒤의 아리나의 말에 시선이 집중됐다.
아 인간, 포기해버리고 싶다. 토마토라니.
쟤는 분명히 놀리는 거다. 놀리는 거야. 푸후 - 하고 한숨을 내쉬고 나는 얼굴을 한손으로 감싸버렸다. 시끄럽고 빨리 오라는 듯이 손짓을 하고 나는 잠시 과일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여러가지 종류의 과일들이 가득했다. 토마토 주스라. 토마토 맛있지. 유일하게 씹어서 삼키지 못하는 나또한 가끔 간식으로 냠냠 먹을 정도니까. 온김에 토마토 좀 사갈까. 지킬은 바나나였나, 과일이라면 다 좋아헀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