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얘기 나온 김에 하나 말하자면, 일단 제가 생각한 시이와 시이의 어머니는 헝가리 쪽의 문화를 가진 소수민족에서 갈라져나온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헝가리식으로 읽고 쓴다면 셰리노 시이가 맞을거에요 아마... 저도 사실 헝가리식 발음은 잘 몰라서 그나마 비슷한 단어인 serény를 찾아서 그걸 참고해 읽었어요.
103대 가주는 자신의 후계만을 걱정했다. 자신이 이끌어낸 사세보의 업적을 자신의 혈육이 이어받기를 간절히 갈망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손녀를 후계자로서 키우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그것이 어떤 비극을 불러올지에 대해서 그는 생각하지도 예측하지도 않았다. 그저 사세보가가 계속해서 명예를 유지한다는 그 관념에만 사로잡힌 인물이었으니까. 어떻게 본다면 손녀를 그저 도구로만 인식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대를 이어 똑같이 사세보가의 부흥만을 생각하는 인물로서 키워내려고 했으니까.
그렇게 103대 가주의 유지를 이어 반복한다는 의미로 린네(輪回)라는 이름을 받은 린네 사세보(輪回 佐世保)의 인생은 104대라는 이름의 새장에 갇히고 만다.
오직 103대의 유지를 잇기 위해서 말을 땐 시점부터 그녀는 정신적으로 망가질 수 있는것을 억지로 극복해가며, 주입해가며 103대의 말처럼 '이롭게 사세보의 이름을 널리 세계에 알린다' 라는 명목하에 제왕학, 수학, 언어학, 조선설계, 항해술, 경영학 등 일반인이 과연 하나라도 제대로 익히는게 가능할까 싶은 내용들을 다른 아이들이 뛰놀고 있을 시절부터 계속해서 챗바퀴 위를 반복하듯 깔려진 도로위를 걸어가며 새장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아리나는 얌전히 헨리의 손에 볼을 맡기고 있었다. 헨리가 갑자기 이마를 서로 부딪치자 퍼뜩 놀라 몸을 부르르 떨며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에서 그녀의 숨은 뜻을 용캐도 알아들은 건지 아리나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헨리의 말을 알아듣고 아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갈아마시는 닭꼬치... 우웩. 그리고 싫어! 내가 살거야. 나 부자니까 괜찮아."
장난스레 헛구역질하는 모션을 취한 아리나는 뒤에 이어지는 헨리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히 신세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게다가 아리나가 자신이 부자라는 주장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을 놀이로 아는 아리나는 휴가와 여가시간 모두 반납하고 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고칠 바에야 차라리 집에서 쉬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찌나 끈질기게 매달리는지 차마 휴가를 줄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리나는 임금에 추가 수당까지 더해진 돈을 쓸 줄도 모르고 차곡차곡 모아놓았다. 어찌되었든 아리나는 자신이 닭꼬치를 사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산다고 하는 건 좀 오지랖이 넓었다. 이단 심문관들 사이에서 아리나의 악명은 높았지만 그만큼 휴가나, 여가시간을 모두 반납하고 일에 몰두하다못해 사고를 칠 바에야 집에서 좀 쉬어!! 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좀 달라고 매달리는 바람에 휴가도 줄수 없다고 이단 심문관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을 나또한 알았다. 아리나 같은 사고뭉치랑 왜 친하게 지내? 라는 말도 들었고,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소리도 들어봤다. 쯧, 나는 소리없이 혀를 찼다. 인간 포기해버리고 싶은 게 한두번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리나는 사고를 치기는 하지만 차근차근 알려주면 사과도 할줄 알고 행동도 바뀔것이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나보다야 아리나가 더 돈이 많겠지. 나는 알았다는 듯이, 한쪽 손을 부드럽게 쥐고 손목을 살짝 까딱였다. 알았다는 뜻이였다.
'대신 나는 닭꼬치 말고 마시는 걸로 사줘'
심부름거리를 들고 있는 터라, 한손으로 천천히 수화를 하면서 나는 아리나를 바라보곤 방긋 웃어보였다.
>>170 클로즈드 서클 형식의 이벤트에요. 나갈 수 없는 꿈 속의 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파악하는 방식이며, 이 이벤트 한정으로 적용되는 멘탈 수치가 있습니다. 멘탈 수치는 100%에서 시작하며, 0%가 되면 꿈에서 깨어남과 함께 그 캐릭터에 한정하여 이벤트 종료 처리가 됩니다.
한 소녀의 인생은 그렇게 정해진 운명대로 끝나야 했어야했지만 단 한 번 103대와 시찰을 나간 하룻날에 모든 것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103대가 잠깐 한눈을 판사이에 소녀의 호기심으로 또래를 만나게 되자 거기에는 자유가 있었다. 소녀가 느끼기로는 넓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자유롭게 뛰어노는 자신의 또래들을 우연히 발견하고 진상을 깨달았을때 소녀가 느낀것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깡그리 부서지듯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던가 하는 허무함과 분노. 그리고 자유로의 갈망이었다.
결국 자신이 살아왔던 것은 103대의 대체품에 불과하지 아니한가?
그후의 일은 말도 할것도 없이 103대와 104대 후계자인 소녀와의 갈등으로 빚어져 마침내 소녀는 자신의 부모가 했던것 처럼 103대와 절연한다.
"네가 여기까지 살아왔던것은 결국 내가 닦아준 고속도로위를 걸어왔던 것이지 않느냐? 그 길을 벗어나면 낭떠러지뿐일 터인데? 마음대로 하거라. 네 부모가 그랬듯 후회하면서 비참하게 길가에서 죽어가거라." "닥쳐! 영감탱이. 댁이 만들어놓은 길따윈 결국 노망난 영감쟁이를 대체하기 위한 대체품에 지나지않아. 린네는 하고 싶은걸 하고 행복하게 죽어버릴꺼야. 그럼, 다시만나지 말자 영감쟁이."
다만 절연 이후는 103대가 말한것처럼 순탄치 않았다. 103대가 없으면 어떠한 자립능력도 갖추지못한 린네는 결국 마지막 여로에서 생을 마감한다. 아니, 파도에 일부러 휘말려 구출될수 있었음에도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오히려 업에서 해방되었다는 듯 웃으면서.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어떤 망령의 끝이었지만, 이야기를 지켜보던 새벽에 의해 운명이 뒤바뀔줄은 누가 알았으랴. 망령은 그것으로 부터 태어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아리나가 반갑지 않은 손님임을 아리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피한다는 사실또한 아리나는 알고있었다. 하지만 아리나는 딱히 신경써본 적 없었다. 신이 계족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한, 아리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친구'들도 있었다. 남들에게 안보이는 나만의 친구. 아리나에게 자신이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는 건지 진짜 신의 계시를 받은건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진실을 알고나서는 도저히 자신이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아리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온기가 필요했다. 그런 아리나에게 헨리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이런 나와 함께 있어주는 사람.
입에 든 사과 조각들을 꿀꺽 삼키던 늑대는 고개를 들고 다시 짖으려는 듯이 주둥이를 벌렸다가, 그녀의 말을 듣고선 다시 주둥이를 다물며 눈을 깜빡인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이라도 하는 듯이 자신의 앞발로 시선을 내리던 늑대는 대답을 하는 대신, 끼잉. 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발에 자신의 앞발을 턱. 올려놓는다
[멍멍!]
나는 말 못하는 꼬리 두개 달린 멍멍이에요- 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꼬리를 살랑이던 늑대는 자신의 털이 쓰다듬어지자 지그시 눈을 감았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뭔가 깨달은 표정에서 곤란한 표정으로 바뀌며 시선을 슬쩍 내린다.
그러니까, 그 친구인지 뭔지 때문에 아리나가 사람들이 슬슬 피하는 제 1순위가 된거 같긴 하지만. 일단, 나는 관계 없었다. 힘들게 필담을 쓰지 않아도 대충 의미를 짐작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몇 없기 때문이니까. 그보다, 사실.. 다른 사람들보다 아리나가 편하다는 건 안다. 인간 전부 죽었으면 하는 나에게 동정도, 불신도 보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는 아이.
나는 음료수를 사주겠다면서 떵떵거리는 아리나의 머리에 손을 얹은 뒤 다시 버릇처럼 쓰다듬었다. 지킬에게 하듯, 시선을 정면으로 던진 채 손만 움직이는 가벼운 쓰다듬이였다. 물론, 지킬보다는 조금 더 위에 있었지만.
'난 곡물 음료수나 건강 음료수가 아니면 안마셔 이상한 거 들이밀고 사줬지 하지마'
심부름거리를 들고 있는 손으로 가볍게 수화를 한다. 지킬의 건강음료는 질색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 몸쑤신다 는 생각을 하며 아리나가 말한 닭꼬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