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잠깐만 아리나?? 나는 입을 벙긋거리면서 아리나를 바라봤다. 내 수화가 그런게 아니라는 걸 알텐데 저런다는건. 쟤, 또, 시작이다. 별로 세게 잡지도 않았는데 부서지다니 사기야, 라거나 돈 아깝잖아! 라고 소리를 지르는 아리나의 어깨를 잡고 돈도 줬겠다 깔끔하게 이 자리를 뜨면 모든 게 만사오케이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들이닥친 급습이다.
와, 어제 그 환상종이 휘두른 대검보다 더 아프다야. 안그래도 잔돈을 어디다가 팔아먹었는지에 대해 꼼꼼하게 따지는 지킬을 상대하는 것도 힘든데 너까지 왜그래.
'아니 아리나 잘 알아보면서 왜이래 무슨 해석이 그모양인데'
목숨값이면 싸다느니, 오늘밤 저 목을 따겠다느니 라는 소리는 한톨도 안했거든?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게 주인과 아리나의 눈치를 번갈아 보면서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어제 환상종이랑 싸웠더니 온몸이 두들겨맞은 것처럼 아프다고!
곤란해 하는 헨리를 쓱 본 아리나가 활짝 웃었다. 어딘가 뿌듯해 보이는 얼굴이기도 했다. 이 쯤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가게 주인의 얼굴은 분노보다 당황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뭐, 헨리가 싫으면 내가 할게! 나만 믿어!”
대체 무슨 생각인걸까라고 생각할 무렵, 아리나는 갑자기 소매에서 권총을 꺼냈다. 여전히 환한 미소와 함께
“목숨이라도 붙들고 싶으면 지금 당장 돈 내놔, 임마.”
라고 하는 모습에 괴리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가게 주인은 깜짝 놀랐는지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가짜 총이 아닐까 싶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묘한 불안감이 그에 귀에서 속삭이고 있었다. 지금은 위험하다고. 가게 주인은 벌벌 떨며 헨리에게 받은 돈을 다시 아리나에게 건낼 수밖에 없었다.
“와, 아저씨. 헨리에게 고마워해. 내가 아니라 헨리가 나섰으면 지금쯤 아마 목 위가 횡했을 거야. 그지, 헨리? 그렇다네.”
자기 멋대로 자문자답까지 해버리며 아리나는 헨리의 옷을 끌어 당겼다. 빨리 가자는 무언의 표시였다.
내가 싫으면 뭘한다고? 아니 뭘 믿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믿는 게 사람인데? 게다가 특히 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제대로 말을 못한다. 답답함에 부츠를 신은 발로 바닥을 지근지근 짓밟고 있다가 아리나가 소매에서 권총을 꺼내는 걸 발견했다. 게다가 아주 환하게 웃으면서. 나는 마시던 음료수나 계속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저기까지 가면 난 절대 못말려. 아니 말리고 싶지 않아졌다가 옳다.
목숨이라도 붙들고 싶으면 돈 내놔 임마. 라는 말이 들리는 거 같았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등뒤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느낌이였다. 저러다가 진짜 징계한번 먹지. 아리나에게 돈을 건네는 가게 주인은 안쓰러울 정도로 떨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저 이상한 자문자답은 뭘까. 나는 생각을 멈춘다. 그래, 좋은 게 좋은거다. 옷을 끌어당기는 아리나의 행동에 나는 휘청휘청 이끌려가면서 가게 주인은 물론, 어느새 주변의 사람들까지 몰려와 웅성거리는 그 거리에서 천천히 시선을 떼어냈다.
'대체 거기서 왜 총을 꺼낸거야 아리나 위험하잖아 신고라도 했으면 너 꼼짝없이 징계야'
나는 음료수를 마시면서, 아리나의 머리에 손을 한번 올린 뒤 그대로 꾹 누르듯이 쓰다듬었다. 어휴, 내가 너한테 뭐라고 하겠니. 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도 했다.
아리나는 헨리를 이끌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어 한산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리나는 헨리에게 돌려받은 돈을 건네며 말했다.
“헨리, 나 잘했지! 뭐야 그 표정. 언젠가 징계 먹을 거라고? 상관없어. 난 징계도 재미있던데.”
징계라면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 일의 대부분은 아리나에게 재미있게 느껴지는 일들이었다. 그전에 아까는 완전 다르게 해석하더니 이번에는 표정만 보고 헨리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알아맞히었다. 이쯤대면 아까가 완전히 고의적으로 말한 것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헨리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누르듯이 쓰다듬자 아리나는 헨리의 손에 얼굴을 들이밀고 비비적거렸다. 능숙한 숙련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있지, 헨리. 나랑 닭꼬치 먹자. 여기 닭꼬치 맛있는 집 알아.”
헨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해맑은 미소로 아리나가 제안했다. 아까의 일은 다 잊었다는 듯이.
'징계가 재밌지만은 않을텐데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 우리집에 있으신 내 룸메이트보다 더 하네'
아리나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손을 이용해 가볍게 약식 수화를 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실소를 짓고 말았다. 나는 징계를 안먹으려고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하는 것이긴 하지만 - 징계 먹으면 생계가 꼬이니까 - 아리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같다.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단 말이지. 게다가 내 표정만 보고 명확하게 알아맞추는 것을 보고 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를 그런 표정을 짓다가 내 손에 얼굴을 들이밀고 부비는 그 행동에 나는 양손으로 아리나의 얼굴을 잡더니 그대로 아프지 않게 잡아당겼다. 장갑을 끼고 있으니 아프진 않겠지. 너 아까는 정말로 고의였구나.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식은땀을 흘렀는지 알아? 라는 뜻을 내포한 잡아당김이였다.
'아리나 돈 없다면서 '
손을 떼어낸 뒤, 나는 쓰레기를 적당한 곳에 버리고 양손으로 수화를 하며 아리나의 미소에 피식 웃었다.
정확히는 일보다 사고치는 걸 더 잘하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 지칭하며 어깨를 쭉 피고 뿌듯해하는 것이었다.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을 보고 ’이상한 표정‘이라고 하려 했지만 헨리의 행동에 제지되고 말았다.
“아, 방금 이상한 표저...ㅇ으아아. 하지만 결과는 좋았잖아. 돈도 받고 아저씨 코도 납작하게 뭉겠고.”
헨리가 손을 떼었지만 아까보다 묘하게 늘어난 듯한 볼을 손으로 비비며 울쌍을 짓던 아리나는 헨리의 말에 비웃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을 믿은거야, 헨리? 정말이지. 순진하다니까. 당연히 개구라지. 거기서 돈 있다고 하면 곤란해진단 말이야.”
상스러운 단어를 내뱉으며 으쓱해하는 아리나는 누가 보아도 얄미워보였다. 아리나의 평소 행동과 다르게 얍삽한 태도였다. 아까의 해맑은 표정은 어디 갔는지 얼굴에는 사회생활에 찌들때로 찌든 샐러리맨의 썩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리나는 그랬다. 어떨 때는 어린아이 같다가, 어떨 때는 다 큰 어른 같았다.
워커홀릭이라도 징계는 다들 사양일거 같은데.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손이 근질거리는 걸 꾹꾹 눌러참았다. 그래, 돈도 받았고 아저씨 코도 납작하게 뭉갰지. 그리고 너와 내 얼굴은 팔렸지. 이래뵈도 이단 심문관인데. 나는 볼을 비비면서 울상을 짓는 아리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키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내려다보게 된다. 나는 손으로 셔츠 깃을 잠시 매만져서 식은땀을 닦아냈다. 방금 전 상황에 당황하기는 어지간히 당황한 모양이다. 온통 식은땀투성이.
어제도 먼지 잔뜩 묻은 옷을 끌고 들어왔다가 그대로 내쫒길 뻔했지. 돈없다며, 라는 내 말에 믿었냐면서 얄밉고 썩은 미소를 지었다. 아하, 그러니까 돈없다고 구라를 쳤다 이거지?
'이런 사랑스러운 아리나'
나는 양손으로 수화를 하면서 아리나와 거리를 다시 좁히고는 수화를 마치자마자 그 썩어버린 미소에 아리나의 얼굴을 손목까지 오는 장갑을 낀 한손으로 아리나의 양볼을 눌렀다. 내가 그것 때문에 지킬에게 뭐라고 변명할지 생각했는지는 아니? 라는 말을 남은 한손으로 약식 수화를 하는 걸 잊지 않는다. 나는 누가 보더라도 산뜻하고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게 분명했다.
보통은 반대일텐데 되도않은 헛소리를 주장하며 아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과거의 행동에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였다. 그러다가도 식은 땀으로 젖어있는 헨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손을 들어올렸다. 헨리의 식은 땀을 닦아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사랑스러운건 사실이지! 앗, 아파 헨리 아파! 잠깐 타임! 미안했어. 어쨌든 결과는 좋았잖아!"
기세등등하게 자화자찬을 하려던 아리나였지만 헨리의 2차 공격에 허무할 정도로 쉽게 허물어졌다. 아리나는 자실의 볼을 누르고 있는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산뜻하고 상큼한 미소의 헨리를 보며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리나는 답지 않게 사색이 되어 헨리에게 사과했다.
시이는 그렇게 말하며 가만가만 그저 바라본다. 사과라던지 귤이라던지 아직 많으니까, 더 줄 수도 있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이내 꼬리가 파닥거리는 걸 보더니 진정하라는 듯이 머리를 몇번 쓰다듬는다. 그러다가 그렇게 먹는 걸 보곤 저도 조금 배가 고파졌는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참치마요 샌드위치를 가져와서 저도 오물오물 먹기 시작한다.
"그보다 아무리 봐도 환상종인데, 어떻게 안 들키고 국경을 넘는 걸까."
그녀는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그렇게 중얼거립니다. 본인은 이단심문관이니 임무 핑계로 나갈 수 있겠지만, 이 분은 어떻게 오는 걸까요. ...뭐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각자 오는 방법은 다 다르고. 나도 거기로 가는 방법이 그거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예를 들면 임무 핑계라던지, 임무 핑계... 아, 한가지네.
나는 여전히 아리나의 볼을 꾹 누르고 있는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 양손으로 붙잡혔지만 손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톤파를 재조정해서 산탄총을 겹쳐놓았으니 그 무게가 여간할까. 게다가 톤파 자체도 꽤 무겁다. 타격하는데 유용해야하니까. 그 톤파를 양손만 이용해서 돌리고 쏘고 별짓을 다한다. 그러니까. 손아귀의 힘은 자신있다.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아리나를 보면서 나는 여전히 상큼한 미소를 지우지 않는다.
사색이 된 아리나가 황급히 사과하는 거에 대해 나는 대답을 하기 위해 볼을 잡은 채 천천히 고개를 아리나에게 가까이 들이댄 뒤 귓가로 입을 옮겼다.
"다음. 없음. 이해...?"
다음에 이런일이 있으면 너를 버리고 나는 갈길을 가겠다라는 뜻이 내포된 특유의 단어가 끊어지는 말을 천천히 내뱉고 나는 다시 고개를 제자리로 옮기면서 손을 뗴어냈다. 몇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나는 닭꼬치를 사준다는 말에 손을 움직였다.
'나 씹는 거 못하는 거 알잖아 설마 그것도 지금 놀리는거야 이번에는 꿀밤이라도 맞을래 '
노토스는 분명 모두가 양광신성회를 믿는다고 스스로 자처하지만, 그 실상은 다르다. 노토스인 이면서도 소수의 민족이 저마다의 다른 문화를 가지고 꼭 양광신성회의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개중에는 화(和) 민족이 있었다. 그들만의 전통이라는 문화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서로는 화합하지만 다른이들의 접근을 거부하는 폐쇄된 환경을 가진 민족이. 사세보가(佐世保家)는 본디 화 민족의 중요한 일을 도모하는 말하자면 우두머리가 대를 이어 내려오는 가문. 일종의 귀족의 취급이었다.
다만, 그러한 사세보의 일족은 막을 내리고 만다. 103대째에서. 가주는 폐쇄된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양광신성회와 손을 잡는다. 더 이상 폐쇄된 환경속에서 발전이 없다는 독단적인 생각에 의해 모든 것은 진행되었다. 민족의 반발을 사는 것을 무시해버린채. 양광신성회의 후원자로서 지원을 받아 화 민족을 버리고 양광신성회의 신민으로 화 민족은 흡수되고 말았다.
103대 가주는 화 민족으로서의 재산과 양광신성회의 지원을 받아 사업가로서 탈바꿈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를 '바다길을 정복한 남자' 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돈과 명예에 미쳐 일족을 버린 인면수심'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사세보 일족의 이름을 따 개항한 항구와 조선업으로 부터 항해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듯 '돈과 명예에 미쳐 일족을 버린 인면수심' 이라는 말은 정말이었다.
화 민족을 버리고, 자신의 혈육은 후계라는 압박감에 결국 자신의 아내와 도주하고 말았다. 둘에게서 나온 손녀만을 남겨둔채.
근력보다는 권총을 이용해 공격하는 아리나가 헨리의 손아귀를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어디가서 근력으로 꿀릴 일-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의 이야기다-은 거의 없었던 아리나가 자괴감이 빠지기에는 충분했다. 속으로 자신도 근력운동이나 해야겠다고 굳은 다짐을 곱씹고 있을 때 귀로 헨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아리나가 할 수있는 일은 버둥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밖에 없었다.
"약-속...!"
헨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자 아리나는 붉게 물든 자신의 뺨을 만지작 거렸다. 찡얼거리며 "아프다아..." 라며 한탄하는 일은 빼먹지 않았다.
헨리의 수화를 보고 아리나는 드디어 깨달은 건지 박수를 치며 탄성을 내뱉었다.
"맞다! 완전 잊었다!! 그, 그래도 아저씨한테 갈아달라고 부탁... 아니면 내가 너에게 닭꼬치를 사주면 너가 나한테 닭꼬치를 선물한다던가..."
그 중요한 사실을 용캐도 잊고 있었다. 그래도 양심이라는 것이 마음 깁숙히 존재하는 건지 아리나는 답지않게 눈치를 보며 떠듬떠듬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