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들은 아나이스의 논지에 저들끼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가 하나로 뭉쳐져 신빙성을 발휘하기 이전에 일은 벌어졌다. 우르르 떼거지로 몰려있던 집단이 한 순간에 일사불란 흩어지며 인근의 협소하고 은밀한 길목들을 찾아 이동했다. 그 뛰어난 수색력이 동원되어 인근의 불미스러운 골목길들을 샅샅이 뒤지다보니 몇몇 곳에서는 산발적인 난투가 발생했다. 그 주체는 아나이스는 아니었지만, 어두운 그늘을 벗삼아 시민들의 주거와 상권에 자욱한 담배와 술, 그리고 폭력밖에 대응할 줄 모르는 족속들이었는데, 이 소규모 전투는 정부로 하여금 그들의 근거지 및 은신처를 밝혀낼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이 추격전을 이끈 주역이자 당사자들은 도주 직전에 아나이스가 외쳤던 더 좋은 결과를 위한 한마디의 열변이란 실로 이 상황을 예견한 것이니 탈주로 시작한 사건이 되려 권력층은 물론 주변 시민들의 지지가 오르게 되었음은 놀라운 후문이다.
"앞으로 사라질 때는 가면을 쓰는 게 어때? 꼬치 대신 신고를 받겠지만. 어, 그리고 운이 좋다면 돈도 받을 수 있겠지. 아주 자발적으로."
일반적인 삶을 살아온 시민이라면 험상궂은 가면의 건장한 사내가 가게를 습격하면 부디 받아줍쇼하며 돈으로 목숨값을 치루기에 마지않을 터이니, 사람들에게 어떤 경각심도 갖지 않을만큼 어여쁘고 깜찍한 것을 추천한다며 레오닉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한 손에 꼬치는 못 들겠지, 아이들의 사랑을 받을테니까.
"동심으로 되돌아 가자고? 좋지, 1! 2! 땡!"
비겁한 레오닉은 기적적인 계산법을 널리 세상에 퍼뜨리는 즉시 땅을 박차고 앞으로 질주한다. 길다란 사제폭 자락을 사정없이 펄럭이며.
왠 처음 보는 이단심문관에게 자신의 식사 거리를 뺏긴 늑대는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고, 그것을 티라도 내듯 크르르릉 거리면서 숲 속을 걸어다니다 갑자기 멈춰서고는 앞발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
한참을 땅을 파헤치던 늑대는 구덩이가 거의 자신의 키 정도가 됬을 쯤에서야 땅을 파는 것을 멈추었고, 푸른 빛을 띄는 은백색의 털이 흙투성이가 되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흙더미 위에 뛰어들어 강아지마냥 두세번 뒹굴거리고 꼬리를 파닥거리며 놀다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
[......꿩이다.]
혼잣말을 중얼거린 늑대는 평범한 대형견 정도가 될 때까지 몸의 크기를 줄였고, 꿩의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긴 뒤, 그것의 모습이 보이자 조심스럽게 사냥 자세를 취하며 뛰쳐나갈 준비를 한다.
언제나 다름이 없는 이 음산하고 어눅어눅한 고요한 숲. 아니, 전체적인 시각으로는 그러할지 모르겠으나 국지적으로 가깝게 다가가면 그렇지 않다. 그것이 이 숲에 있던 동식물의 것인지는 제외하고 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를 테면 지금의 다수의 발걸음이 흙바닥과 초목을 딛고 넘어가는 스치는 소리와 존재감이라던가. 그리고 그것의 정체는 나의 모습으로 대동한 인형들의 소리며 기척이다. 자택에 비축해둔 각종 재료들 관련으로 밖으로 나온 것이 였다. 숲에서도 적당히 얻을 수 있은 것이라면 숲에서 얻고 그외 라면 다른 환상종들이 모여있는 곳, 다시 말해 도심지에 가 조달하면 된다. 사실, 굳이 내가 직접 이렇게 움질일 필요가 없이 적당히 ‘자율’인 친구인 인형을 보내면 되겠지만, 그닥 효율적이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한 번에 확실하게 처리는 편이 보다 좋다. 거기에 신체활동의 부전은 여러가지 부작용을 초래한다. 감각이 둔해진다고 해야하려나… 모든 종은 미약하지만 스스로 끝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꾸준히 사용되는 기관은 발달하고 사용되지 않는 기과은 퇴화한다. 이를테면 ‘진화’ 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곳에 너무나 포괄적인 의미다. 나에게 해당되는 것은 그저 신체의 조금의 자극을 줄 운동일 뿐이다. 운동이라고 해봐야 사실 걷는 것 외는 없다. 이 숲은 빽빽하고 무성한 나무들이 자라나 가지들이 엉켜붙은 듯한 형태때분에 낮에도 그리 밝지 않고 미묘하게 복잡하기에 잘못하면 길을 이리저리 돌아가게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 기다긴 세월동안 이곳에 살아온 덕택에 통칭 감(感)이라는 것으로 대략적으로 길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정도나 이곳을 살아가며 돌아다녀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길을 알게되는 뭐, 그런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 항상 완벽함이 있을 수 없는 법. 언제나 준비를 갖춰두지 않는다면 길이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대비하여 스스로의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적당한 흙길을 가꾸어 두었다. 혼자라면 매우 고된 일이였겠지만 나에게는 이렇게나 많은 ‘친구’들이 있으니 수월했다. 지금은 이렇게 가끔식 나와서 내가 적당히 마련해 두었던 이 흙길 따라 점검을 하는 것이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비단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다. 이 큰 숲의 거주하는 것이 나 혼자 뿐일리가 없으니 말이다. 숲을 자신의 안식처로 삼는 환상종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 어느정도 걸었을까, 제자리에 서서는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어 보와 시간을 확인해 본다. 보면 자택 밖으로 나온지 그다지 시간은 흐리지 않았다. 시간의 속도가 상대적이라는 것은 체감상의 이유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품속에 그것을 넣다가 문뜩 숲속에서도 유난히 탁 틔힌 공터를 발견했다. 어쩌면 단순 변덕이였을까, 아니면 필연이였던 것이였을까 나는 그곳으로 향해보았다. 그곳에는 푸르른 예쁜 꽃들이 듬성 듬성 피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어느 한 여성을 목격할 수 있었다. 우르르 집단으로 이렇게 몰려다는 것이니 만큼 이정도나 되는 존재감을 풍기거나 소리를 내어버린다면 눈치체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딱히 숨길 이유도 없으니 말이다. 그때 나는 왠지 모르게 호기심에 따른 그 기분에 그녀를 멀찍히 바라보았다. 멀리라고는 해도, 사실 그렇게 번 거리는 아니다. 서로가 간단하게 손짓만으로 수신호를 주고 받을 있을 수도 있을 법한 그런 애매한 거리. 평소와는 달리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어볼까도 생각 했지만 역시나 나는 그것을 그만두었다. 만일 접촉하지 않았던 것이 보다 이로운 경우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잠깐 그녀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 선레를 가져왔습니다! 부캡틴! 제가 너무나 늦었지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보니까 그만.... 죄송합니다.
"...아뇨, 뭔가 화가 난 것 같아서... 저한테 화가 난 게 아니라면 다행이네요. ...앗, 그러고보니까 이렇게 만난 거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낼래요?"
시이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아리나에게 다가가더니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무슨 봉지 하나를 꺼내어 아리나에게 건넨다. 그 안에 들어있는 건 본인이 직접 구운 걸로 보이는 여러가지 쿠키들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린저쿠키에, 초코칩쿠키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
"그리고 통점을 몰라서 싫다던지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냥 조금 놀랐을 뿐이거든요."
그렇게 말하곤 이내 방긋방긋 웃으며 아리나를 바라본다. 정말로 미안해 할 필요 없다는 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