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그리고 퍽 부드러운 미소에 유혜 또한 옅은 미소로 대답한다. 초콜렛을 건네주고는 자신 또한 챙겨온 초코바 하나를 꺼내 베어문다. 역시 단음식을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는 거 같고, 마음이 편해진단 말이야.
“ 아, 너무한거 아냐? “
제가 말했던 것과 비슷한 어조의 대답에 유혜가 쿡쿡 웃으며 대꾸한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초콜렛을 입에 넣는 센하를 보며, 유혜 또한 남은 조각 또한 입에 넣고 비닐봉지를 구겨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 어쩌다보니 그렇네, 친구가 별로 없어서 그래. 아까 숙소 나온 뒤로 쭉 혼자 타다가 결국 이러고 있잖아. “
능청스런 센하의 말에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한다. 나참, 수 많은 사람들 속 우리 팀원들이 있을 법도 했지만 리프트를 몇 번이나 타는 동안 우리 팀원 중 그 누구도 만나질 못했다. 유혜는 제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머리칼을 만지작 거리며, 사람들이 많은 눈밭을 바라보더니 다시금 시선을 센하에게로 옮긴다.
“ 같이 타주게? 근데 너 스키나 보드 타본 적 있어? “
유혜가 두 눈을 깜빡이며 묻는다. 아까까지 눈밭을 구르던 자신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탔던 게 근 사오 년전이었던(...) 보드를 타보겠답시고 무거운 보트를 끌어 리프트를 타고, 초심자용 트랙에서 벌벌 떨며 내려가다가 부딪힐까 무서워 넘어져버리고. 일어나는데도 한참이 걸렸더란다. 그래도 타본 적은 있기에 누군가의 도움은 필요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도 고생아닌 고생이라 할 수 있을 법했다. 오늘 잘 때 허리와 어깨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여야겠단 생각이 문득 스친다.
나의 사랑하는 타미엘. 정말로 아름답고. 품에 안으면 말랑말랑하고 따뜻했지요. 정말로 그건 딜레마였어요. 차가운 타미엘은 조금 힘들지만 약이 영원한 것도 아닐 테고요.. 그렇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빨리 했었어야 했는데.. 아니면 그 몸 안에 기정사실을 만들던가요. 지현의 그 과격한 언어를 듣는건지 안 듣는 건지. 다만. 후자라면 몰라도 전자의 그것은 심연이 용납할 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걸요. 정말 그건.. 그건.." 정말로 큰 황홀감을 느낀 듯 약간 위험한 수위의 황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뭘 다 듣고는 있었나 봅니다.
"아 그러고보니 이런 건 다 찍고 있었지요." 저딴 말을 한 자신 앞에 있는 이름은 모르지만 내 타미엘보단 키가 커 보이는 수사관 같은 분에게 분노가 쏠리기는 하지만. 카메라라는 말이 들린 이상. 폭력을 휘둘러서는 불리할 뿐이지요. ...이미 반성의 기색이 없는 것 때문에 망한 건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보다 듣고는 있었군요.
"저런. 목매달린다니. 그럴 줄 알았으면 같은 곳에 갈 수 있게 했었어야 했는데 말이예요. 아쉽네요." "아니면 온 몸 구석구석, 안쪽에까지 나를 새겨둔다거나요. 좀 더 섹슈얼적인 면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말이예요." 정말 아쉽다는 표정으로 턱을 괸 채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들었습니다.
...진짜 강적이네, 블랙미러 너머 병우도 완전 질린표정일게 눈에 선하다. 진짜 이 수단만큼은 제일 나중으로 미루려 했는데. 이미 카메라는 켜졌고, 적어도 내 힘은 보통의 성인남성 레벨까진 나오니 우선 날뛸경우 제압하거나 버티는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바로 실행에 옮긴다.
우유와 코코아중에선 코코아, 라떼와 비교하면 라떼지만 동생이 커피 취향이 있는지 아닌지 몰라서 두번째로 좋아하는 코코아를 골랐다. 오늘은 너의 손으로 만든 무언갈 먹고싶으니까. 너를 도와서 무언갈 같이 만들어먹는건 다음으로 미루고, 지금은 너의 말대로 좀 쉬고싶다. 역시 우는건 체력소모가 지나치게 심해. 네가 덮었을 것 같은, 소파에 올라와있는 담요중에 하나를 잡고, 몸을 돌돌말듯 감쌌다.
부엌에서 올라오는 고소한 우유향, 따뜻한 담요와 폭신한 소파, 그리고 너, 나의 사랑 로제. 나는 모든것들이 주는 평온함에, 살살 졸음이 밀려왔다. 코코아가 다 되면 내 달링이 깨워주려나, 아니면 그대로 푹 잠들어버려 네가 날 안아주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기분좋은 포근함에 몸을 맞겼다.
감탄사가 곁들여진 것 치고는 참 건조하게 툭 던지는 말이었다. 스키장으로 놀러온 팀원이 한 두 명이 아닐텐데ㅡ한 사람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나중에 받고 병문안을 가기도 했지만 그건 지금 시점에선 미래의 이야기ㅡ 그 중 한 사람도 못 만났다는 듯이 이야기하잖아. 문득, 경찰대 시절 때 모종의 사건으로 집에 틀어박혀 있어서 찾아갔더니 곧바로 눈물을 터뜨리던 이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남 한 번 겪이 어려운 그런 불행한 일을 두 번이나 겪다니, 이래서야 세상이 공평하다는 말에 설득력이 느껴질리가. 외로움이 분명 심할텐데. 눈을 잠시 감으면서 생각했다. 아, 남의 심리를 조용히 파악하는 제 솜씨는 이제 질릴 정도다. 처음이 아니잖아.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유혜의 말에 눈을 다시 떴다.
"놀랍게도 전혀. 방금 막 흥미가 처음 동해서 말이야."
당당하게 밝히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이 화제로 돌아간만큼 슬슬 보드를 대여해보는 것도 좋겠지. 한편 무리하다가 근육통으로 못 일어난다는 그녀의 말에 뼈가 들어있음을 느꼈다. 살짝 비딱하게 미소를 옅게 지으면서 돌아보았다.
"무서운 걸, 그거. 끔직해라."
평소의 살짝 사차원적인 분위기로 읊조렸다. 무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보드 대여점으로 걸어가 대충 몇 마디 나누어서 스키보드를 하나 안고 왔다.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내보이지 않은채 말을 다시 건다.
"헤세드.." 고개를 숙인 에드워드에게서 짐승이 그르렁대는 듯한 낮고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이를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든 에드워드의 눈은 광기로 녹빛과 푸른빛이 섞인 형광빛같이 불타고 있었지요.
"그 이름.. 나의 타미엘이 수없이 불렀지. 내 타미엘을 울리다니. 용서 못해. 그가 올 리. 가 없다고 수없이 반복해서 상흔을 남기며 말해줬는데도 말이야.." 부르면서 울어버렸는데도. 울린 헤세드란 놈은 나쁜 놈이지..라고 그르렁대며 중얼거렸지만. 근본 원인은 본인에게 있으면서. 뻔뻔하기 그지없네요.
"타미엘 마음에 터럭만도 못하다고? 아냐. 그럴 리 없어. 좋아한다. 라고 분명히 그에게 들었었단 말이야." "하. 하.. 그래서. 난 그 마음을 섹슈얼을 수단으로 썼던, 약물을 썼던 간에 돌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기도 전에 너네들이 체포해서 완전히 망쳤어! 너희들은 마음을 돌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면서도 날 방해했으니까." 낮고 울리는 웃음소리는 약간 실소에 가까웠습니다.
원래 구르면서 타야 제대로 배운다는 말에 답하는데, 천하태평한 목소리인채 한국어로 말하다가 갑자기 일본어를 끼워붙인다. '구르다'와 '狂った'의 발음이 비슷한 걸 이용한 말장난이다, 당연히. 그런 말을 던지면서도 나는 평소의 무표정을 잃지 않았다. 상대가 어떤 반응이든지간에.
ㅡ어쩔 수 없이 초심자 코스로 가야겠다. 너 보드 타는 거 가르쳐주려면.
라는 미소 섞인 으스대는 분위기의 말에는,
"응, 마음대로 해. 네가 초심자 이상이기를 바랄게."
라고 나는 대답하며 또다시 비딱한 미소를 옅게 지었다. 그럼 갈까, 라고 덧붙였는데 현재 내가 배우는 입장 아니었나. 학생이 선생한테 그럼 수업을 시작하자고 하는 꼴인 걸, 비유하자면. 뭐, 십년지기이고 하니 아무래도 좋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