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가 두 눈을 깜빡이며 대꾸했다. 중고교 시절 배웠던 제2 외국어들은 까먹은지 오래여서, 이제 할 줄 아는 말이라곤... すみません 정도. 그녀가 일본어 농담을 알아들을 턱이 없었다. 도대체 경찰대는 어떻게 들어간건지. 센하의 무표정을 보며 유혜는 어딘가 뚱한 표정으로 다시금 입을 다문다.
“ 정곡을 찔러버리네. 아주 무섭게. “
들켰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하는 유혜, 여전히 발걸음은 스키장 리프트를 향하는 중이었다. 추운 겨울바람은 날카로히 불어 얼굴을 스쳐지나갔고,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을 수록 냉기는 점점 유혜의 몸에 스며든다. 아, 진짜 춥네. 낮게 읊조린 한마디에는 꽤 무거운 감정이 실려있다.
“ 기다리는 사람이 그다지 많진 않은 걸 보니 조금만 기다리면 탈 수 있겠다. “
차가워 빨개진 손으로 뒷목을 쓸어내리며 유혜가 입을 열었다. 다들 너무 추워서 들어가버린건지, 보드를 타고 나면 따뜻한 음식이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까 보니 매대에서 우동이랑 어묵같은 것들도 팔던데, 지금 먹으면 따뜻하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아, 설명해줄까? 뒤에 붙인 쿠룻타는 '미치면 어쩌지'라는 뜻이야. '구르다'랑 '쿠룻타'가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한 말장난인데...보기 좋게 실패했네."
말끝에 푸흐하는 작은 웃음을 섞었다. 역시 이런 글로벌한 말장난은 성재한테만 하는 걸로ㅡ라고 심술궂게 덧붙인다. 유혜의 뚱한 표정이 눈에 보였다.
"에, 뭐야. 별다른 의미 없이 던진 말인데 혼자서 자폭하는 거야? 그렇구나. 같은 초심자였구나."
일부러 허공을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그리고 능청스럽게 외쳤다. 외쳤다고는 하지만 평소 목소리 크기 그대로 끝만 살짝 올리는 정도다. 스키장 리프트를 향해 걸어가다가 옆에서 '아, 진짜 춥네'라는 낮은 목소리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무거운 감정이 느껴진 건 기분탓이 아닌 것 같다. 그렇지, 이 녀석 겨울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기는 하지...옛날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나는 마음속으로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나 실제로 춥기는 굉장히 추웠다. 어느새 줄을 섰고, 유혜는 앞에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으로 반응을 끝내는 것이다.
"어, 들었어. 일본 온천이라면...일본 3대 온천이라고 있거든. 쿠사츠, 아리마 그리고 게로. 나중에 일본으로 여행 가는 일이 생기거든 고려해봐."
옅은 미소를 조금 섞으면서 어렸을 때도 그래주었듯이 일본에 관한 질문에 비교적 친절하게 답하였다. 타지에 대해서는 언제나 궁금한 법이니까. 잘 알고 있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아직 일본에 있었을 때 성재에게 한국에 관한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본 기억이 있다.
유혜의 눈꼬리가 살짝 말리며 미소가 떠오른다. 이런 간단한 말장난도 이해 못한 것이 웃기기도 했고, 심술 궂은 센하의 대답에 미소를 짓는 것이기도 했다. 성재는 이런 유머를 다 이해했단 말이야? 대단한 애였네.
“ 자폭...이라니, 아니. 뭐, 솔직한게 좋으니까. “
유혜가 두 눈을 크게 뜨더니, 다시금 뚱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일부러 허공을 바라보는 센하를 보며 피식 웃는가 싶더니 영 바람이 추웠던 걸지 보드를 오른팔에 기대어 놓고는 두 손을 주머니에 집어 넣어버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핫팩이라도 좀 가져오는 거였는데.
“ 아, 다 가보고 싶다. 근데 시간이 나질 않으니..., 우리팀은 특히나 더 바쁘니까. “
아, 생각하니 더 열받네. 요즘에는 더욱이 바빠진 기분이었다. 그 알파인가 베타인가 하는 여자가 나타난 뒤로부터 더욱이 힘들어진 느낌이었다. 아, 또 생각하니 화가 나네. 그 동전 쓰전 여자. 유혜가 아주 미세히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펴내고 만다. 하기야, 고생한 건 자기가 아닌 팀원들이었으니.
“ 넌 모르겠네. 이제 일주일 안으로 후회할거다. 여기 보통 힘든 게 아니거든. 아, 너 능력이면 편하긴 하겠다. “
도대체 익스퍼인 건 어떻게 숨긴거야. 라는 짧은 말을 덧붙이며 유혜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익스퍼랑 치고 박고, 같잖은 도발 들어주고. 은근 감정노동도 섞여있는 직업 아냐?
“ 아, 곧 우리 차례인가보네. “
리프트를 기다리는 줄이 많이 짧아져있었다. 이제 곧 리프트를 탈 수 있을 듯 보일 정도로.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던 손을 꺼내 다시금 보드를 양팔로 감싸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