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를 위해서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경동맥도 투신도... 그 말을 들으면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사람은 심하게 상처받을테고, 당신을 기다리던 동료들도 심하게 상처를 받을테니까. 하윤이도 마찬가지고요."
확실하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 나 역시도 아실리아가 저렇게 말한다고 한다면 순간 심장이 턱 막히는 것을 느낄테니까. 일단 서류에 그녀의 싸인이 이뤄진 것을 확인하고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것은 이것을 제출하고 병가 처리를 한 후에 입원 절차를 받게 하는 것이겠지. 이후에 동료들에게 타미엘 씨를 찾았다고 해도, 헤세드 씨에게도 찾았다고 말을 하면 되겠지. 그 이후는...역시 그가 노력해야 할 일이 아닐까. 애석하게도 난 지금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으니까. 이런 케이스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익스퍼를 진찰한 적이 있는 의사에게 데려가면 어떻게든 될까.
하지만 그런 의사를 섭외하기 쉬울지도 의문이었다.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다 못해 머리가 아팠다.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네. 이거.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결되리라 믿으면서 나는 서류를 확실하게 챙기고 타미엘 씨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일단 이것을 제출할게요. 병가 서류에요. 이걸 제출하면 당분간 타미엘 씨는 병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쉴 수 있어요. 그 동안에 푹 휴식을 취하세요. ...가능하면 빨리 나으면 좋고요. 일이 문제가 아니라...당신이 빨리 낫길 바라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테니까요."
예를 들면 헤세드 씨라던가 말이지. 일단 저쪽 쇼파에 누워서 푹 쉬라는 말을 하고서 나는 서류를 서장님에게 제출하러 가기로 했다. 보고도 해야하니..조금 걸릴지도 모르겠지만..귀찮아도 어쩔 수 없지. 뭐. 내가 말을 들었으니 보고 의무도 나에게 있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푹 쉬라고 다시 한번 이야기 한 후에, 나는 서장님의 사무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상황상 막레를 받으면 될 듯 하군요. 막레 부탁하겠습니다! 일단..이렇게 타미엘은 구출 성공했습니다!
"....." "그런..건가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어렴풋이 기억나요. 그렇게 말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분명 그건 이름이었어요. 옳지 않을 거야. 란 생각도 들었고, 혼란스럽고, 엉망이고.. 그렇기는 하지만 시도를 하려 할 때마다 생각은 날 것 같았다. 결국 포기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알았..어요.." 소파에 누워 조금 쉬라는 말에 무거운 몸을 누이니. 말 그대로 전기가 끊겨버린 듯 급격히 무거워지는 몸과 눈꺼풀이었습니다. 가는 걸 확인하고는 뜨고 있던 눈을 겨우 감고 편안하게 죽은 듯 잠들었습니다.
스키보다는 온천욕에 흥미가 있었던 지은은 일부로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대를 선택해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랬기에 예상치 못한 사람이 들어오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온천욕을 하기위해 자신의 흉터를 가리던 화장을 지웠기 때문이었다. 지은은 황급히 손으로 자신의 화상흉터를 가리고 고개를 틀었다.
너의, 내 뺨을 부비고, 내 뺨을 부비고 내 이마에 입 맞추는 너의 그 모든 행동에, 내 심장은 기쁨에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너와 눈이 마주쳤다. 너의 눈은 예쁘고 선명한 녹색이어서, 보는 내가 되려 기분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짧은 순간마저도 놓치기 싫어서, 너의 모습을 온전히 나의 눈에 담으려 했다.
"에?"
너의 집에서 자고 가도 되냐는 물음에, 너는 잠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슬쩍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너의 모습에 행여 내가 과한 부탁을 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그러던 너는 나를 마주보더니 나를 안아올려 그 위에 앉혔고, 나는 놀라 얼빠진 소리만을 내뱉었다. 어, 어어... 그,그그그,그러니까아...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느낌에 괜히 너의 품 안으로 꼼지락꼼지락 파고들었다.
"그, 갑, 자기, 어, 으으으..."
내가 하고싶었던 말은 갑자기 그러면 어떡해, 였지만 머릿속이 버벅거린 탓에 문장이 되진 못했다. 무, 물론 이것도 좋지만... 아으 몰라!
//씻고 잠깐 누웠는데 그대로 졸아버렸다 깼네요 (˚ ˃̣̣̥Д˂̣̣̥ ) 이놈의 만성피로...
//손크기 차이... 지현이가 주먹쥐면 로제가 감싸듯 손 잡는것도 가능할 것 같아요 상상하니까 너무 좋다(*°▽°*)
딱딱하게 인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앨리스의 말에 지은은 활기차 보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로 깔았던 눈을 치켜 슬쩍 앨리스를 바라보고 역시 부끄러운지 다시 눈을 깐다.
"에이. 그건 오퍼레이터님들이 하라는 대로 한 것 뿐인걸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성공했으니까요. 멋있었어요!"
설마 자신을 칭찬할 줄은 몰랐다는 듯 고개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지은은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시선을 회피하느라 앨리스가 자신의 흉터를 보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어진 앨리스의 말에 순간 자신의 눈을 가리던 손을 멈칫하고 느릿하게 내렸다. 이제는 확연히 보이는 화상자국이 머리카락이 있을 부분까지 이어져있었다. 속으로는 가발이라도 쓰고 온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읊조리던 지은이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미인이었다. 지은은 축 쳐진 목소리로 앨리스에게 답했다.
"하지만 보기 추하잖아요. 선배님에게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역시 죄송합니다."
물론 그녀도 지은이 자신을 어려워한다는 건 알고있다. 그래서였을까? 최대한 자신과 눈을 맞추고 똑같은 위치에서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하하, 멋있다니 고마워요. 물론 지은씨가 한 행동 중에서 오퍼레이터들이 지시한 것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성공적으로 이행한건 지은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앨리스는 그녀의 흉터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그녀로썬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얼굴의 반이 이렇게 될 정도라니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이거 아세요? 세상에는 보기에는 괜찮아도 속은 썩어 문드러진 사람들이 넘처난다는 걸요. 우리가 상대했던 익스퍼도 외관은 멀쩡했지만 속은 썩어 빠진 인간이였죠, 인간의 겉모습이 과연 몇년이나 갈까요? 10년? 20년?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착한 사람은 죽고나서도 후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죠. 당신의 모습이 어떨지라도 당신의 마음은 매우 아름다워요."
그녀의 말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말 하나하나가 그녀에게 지워지지 않을 큰 상처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을 존경한다고 말했으니...물론 침묵도 방법이긴하나 지금 상황에서 침묵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품 속에 안겨 얼빠진 소리를 내는 당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볼에 가득 만개한 복사꽃이 당신을 더욱 예쁘게 만드는건 알까, 품 속으로 파고든 당신의 등을 부드러이 쓸어주곤 바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날이 추우니 빨리 들어가자꾸나, 어여쁜 당신이 혹여 감기라도 걸리면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플테니.
"불편하지는 않죠?"
바퀴를 움직이며 아파트 내부로 들어설 때 까지, 불편하진 않을까 걱정어린 시선으로 당신을 몇번 바라보곤 웃었다. 말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던 당신에게 답하듯,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곤 당신의 등을 한 손으로 안고선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였다.
"너무 예뻐서 그랬어요."
귓바퀴에 가벼이 입술을 대었다 떼고 입꼬리를 휘었다. 어쩜 이리 사랑스러운지. 이내, 가벼이 등을 쓸어주고 그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비록 존경하는 선배라도 노천탕에서 만나는 것은 부끄러웠다. 이제는 귀까지 빨게진 지은이 손을 휘적거리며 얼굴을 돌렸다. 비록 수건으로 몸을 다 가리고 있다 하더라도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것이었다. 평소 사교성이 좋은 지은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칭찬은 감사드려요."
아까보다는 옅어진, 그래도 노천탕의 열기 때문인지 붉그스름한 색을 띠는 얼굴을 하고 감사의 말을 한다. 그리고 지은은 앨리스의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점점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앨리스의 말이 끝나갈 때쯤에는 평소의 밝은 그녀로 돌아온 지은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앨리스 선배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행이네요. 상냥하시기도 하셔라... 역시 당당해지려고 해도 이 흉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안좋은 기억이라도 떠오른 걸까 지은은 씁쓸한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그 씁쓸한 미소도 잠시 곧 다시 밝은 미소로 돌아와 앨리스에게
"절 위해서라도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덕분에 기분이 이렇게 좋아졌네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의 음울한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오랜 세월간 받아온 상처는 쉽사리 치료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지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