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불현 듯 번쩍 정신이 들어 잠에서 완전히 헤어나버리고 말았다. 여긴 어디고, 어, 여긴 어디지... 눈앞에 뚜렷이 보이는 책장이 도서관이라며 잔뜩 어필을 해댔지만, 설마 이런 곳에서 잠을 잤을 리가 없다는 마음에 눈을 꿈뻑 감았다 떠본다. 하지만 그것은 적합한 장소로의 도달이 아니라, 현실 자각을 위한 발돋움만이 되었을 뿐이었다. 진짜 도서관이구나.
“아, 잠들었네.”
하아암. 크게 하품을 한 뒤 주위를 힐긋 돌아보자 내가 내팽겨 친 것으로 추정되는 책들과 머리를 친 책, 그리고 손에서 살짝 떨어져나간 쪽지가 눈에 띄었다. 사실 가장 눈에 띈 건 입을 틀어막고 있는 소년이었지만. 눈을 크게 뜨며 빤히 쳐다보아도 나로서는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 뭐지?
“저... 뭐하세요?”
이런 곳에서 자는 게 충격적이었나. 몸을 일으키며 뻐근해진 몸을 몇 번 푼 뒤에 다시 소년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소년은 아주 고민해서, 뭐라고 말해야할지 생각했다. 자신이 책을 치기가 무섭게 눈을 번쩍하고 뜬 여학생의 모습에 심하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제법 놀랐다. 그 제법이라는 게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을 막았던 손을 떼어내고, 천천히 생각했던 말을 내뱉으려고 했지만 ㅇ발음이 자신의 말 중에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소년은 거의 말의 중간중간을 얼버부리면서 말을 하다가, 그대로 말끝을 흐리는 것을 선택했다.
어째서 자신이 말하는 말 중에는 ㅇ발음이 많이 들어가는 것인가.
"혹시 제가 친 책미 머리를 치진 많으셨습니까?"
소년은 눈을 꾹 감았다가 뜨고, 뻐근해진 몸을 푸는 여학생이 자신에게 시선을 옮기자마자 재빨리 말했다. 그 말에는 ㅇ발음이 들어가는 터라 ㅁ발음으로 튀어나왔다는 건 여담이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소년은 약간 뻔뻔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보는 여학생의 시선에 소년은 똑바로 시선을 맞추며 제발 알아들었기를 기원한다.
>>211 세ㅔㅔㅔㅔㅔㅔ상에ㅓㅔㅔㅔㅔ 여러분 제가(니가 아니라 지애가) 여와를 만났어요! 현무 기숙사 넣으면서 유일하게 맘에 걸렸던게 유령이 히키라 못만난다는건데(아님)(캐붕) 세ㅔ상에 이렇게 만날 줄이야! 솔직히 저희 스레 돌리면서 한번은 만날 수 있을까..이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드디어 감기에 나았습니다. 후우, 근데 일이 있어 현호주 답레는 조금 뒤에 드릴게요!
그리고 돌려 돌려 다이스!
.dice 1 8. = 3
1. 멈뭄멈뭄멈뭄미체로만 말하게 되는 술 2. 무지개를 토하게 되는 술(?) 3. 멍뭉이로 변할 수 있는 폴리쥬스 4. 유포리아 묘약(마시면 행복감에 취하게 됩니다. 독특한 진줏빛.) 5. 윤기나는 마법 머리약(feat.엘라스~틴) 6. 펠릭스 펠리시스(행운의 물약. 황금색) 7. 한 가지의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는 약 8. 그저 평범한 음료수
갑자기 번쩍 일어난 이유는 본인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어디 잠을 관리하는 세포가 고장났나보지. 적당히 판단한 채 밝게 웃으며 대답하지만, 음, 자신감이 많이 부족한 사람인가? 말을 흐리는 상대를 보며 속으로 추정해본다. 거의 기정사실화 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었지만 말이다.
“아...”
아, 발음이 잘 안 돼서 말이 자꾸 흐려지는 구나. 상대의 말을 듣고 나서 몇 번 반복해본 적절한 판단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괜찮아요. 짧게 덧붙인 채 아까 맞았던 부위에 손을 가져다대본다. 아직까지도 머리가 살짝 얼얼하긴 하지만, 아마 자기 전 맞았던 책의 여파일 것이다.
“저... 괜찮아요! 발음이 안 좋을 수도 있죠! 그래봤자 소통이 안 되는 것뿐이니까요?”
사는 데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죠? 거의 기정사실화 시킨 뒤 바닥에 놓여있던 책 3권을 차곡차곡 품에 쌓는다. 음. 저건 태생적인 걸까, 무언가의 저주인걸까? 조금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더 이상 캐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것 또한 품에 묻어놓으며.
어찌된 일인지 소녀는 정확히 맞췄다. 향은 자신도 그런 일을 당할까봐 겁이 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행히 그녀는 아직 강아지로 변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 향은 강아지로 변하기 싫다고 생각한다. 하기야 지구상의 그 누가 강아지가 되고싶다고 생각하겠냐만은.
키노 사이카... 소녀는 이름을 한 번 읊조려보았다. 예쁜 이름이었다. 이 학교 학생들의 이름은 왜 이리 예쁜 걸까? 이름으로 보아 일본쪽 학생인걸까? 그럼 외국인? 신기하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물론 이 학교 교수님들 중에서도 외국인이 있었지만 외국인 학생을 보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앗 신기해하면 기분나빠 할지도 몰라! 소녀는 애써 평정심을 가장했다.
"예쁜... 이름이네요... 저... 혹시 일본인이신가요?"
앗! 말해버렸다. 말하고 나서야 소녀는 입을 가렸다. 어떡하지? 날 싫어하는 거 아닐까? 이리저리 안절부절 해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 호...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외국인 학생은 잘 못 만나봐서 그만..."
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쯤되면 이 아이가 고개를드는 순간은 대체 언제일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문득 3학년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저번의 현호 선배랑 똑같은 학년이다. 3학년들은 저렇게 개성이 강한걸까? 향은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도 3학년이 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네... 신입생이에요. 그나저나 3학년이면 선배님이네요."
문득 향의 머릿속에 이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자신은 선배에게 폭풍 쓰담을 시전한건가? 으아아 창피해!
소년은 여학생이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이내 그 단단하게 굳은 듯 다물려 있던 입술은 곧이어 다시 닫혔다. 차라리 저렇게 오해를 하고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봤자, 단순하게 단어의 나열로는 절대로 이해가 안될지도 모르고, ㅇ발음이 얼마나 나올지 머릿속으로 대충 계산해봤더니 스스로가 ㅇ발음대신 ㅁ발음을 한다는 것에 대해 급격하게 부끄러워질것 같았다.
소년은 차라리 자신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
"미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년은 정중하게 여학생을 향해 말뿐만이 아니라 목례까지 하며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책 3권을 품에 차곡차곡 쌓는 것을 보던 소년이 제 손을 뻗어서 그 책중에 두개를 제 스스로의 한팔에 들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음, 이건 ㅇ발음이 덜 나오는군.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시 여학생을 응시했다. 괜찮겠냐는 의문이 담긴 부담스러울 정도로 지긋한 시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