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도새도 모르게 방송사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조금 눈물이 났던 것 같았다. 다행이 지금은 마음도 풀리고 나름 괜찮아 진 상태였다. 편안하게 집 안 쇼파에서 늘어져 있었으니까. 지난 일은 생각하지 말자고 수도 없이 되뇌인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문자를 알리는 소리가 나면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집어 들어 내용을 확인한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내용을 확인하는 걸 몇 번 반복하다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그. 라면먹고 가라는 말도 있었으니까. 벌써부터 달아오른 뺨을 부여잡고 집 안을 내달려 한 켠에 마련된 냉장고를 열어젖힌다.
“아 맞다..연말이라서 마셔버렸지..”
연말 파티니 뭐니 하느라 미리 사 놓았던 술들이 다 사라져버린 것을 깨닫고는 좌절하듯 고개를 푹 숙이다가 팬에게 선물 받은 꽤나 고급진 와인이 있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와인은 좋아하지 않아서 먹지 않고 있었는데 마침 딱 잘되었다.
“그래도 하나로는 부족할 지도 모르니까..”
결국 조엘의 집에 가기 전에 마트에 들려 술을 사 가기는 해야했다. 밀레는 종이가방에 와인을 담아들었다.
몇개 더 늘어난 봉투들을 들고 밀레는 입김을 뿜으며 걸음을 빨리 하고 있었다. 고르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버렸다. 결국에는 그냥 고르던 것들을 다 사버리는 걸로 끝났지만 시간이 조금 늦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걸 어떡하지. 초조해지는 마음덕에 걸음이 계속 빨라져 이내 뛰듯이 바뀐다.
“흐억, 헉. 드디어 도착했다...”
조엘의 집 앞 담벼락에 손을 대고 붙잡은 채로 가쁘게 숨을 내쉰다. 달리느라 찬 바람을 계속 맞은 탓에 귓가나 손이 붉어졌지만 그것보다는 힘든 것이 더 컸다. 조금 숨을 진정시키고 헛기침을 해 목소리를 가다듬고,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봉투 안 내용물을 확인 한 뒤 그제서야 띵동 하고 벨을 울린다.
“조엘? 저 왔어요.”
말하고 나니 너무 평범하게 말 한건가 싶었다. 그래서 조금 더 말을 덧붙이기 위해서 입을 재차 열었다.
“그러니까..그 라면 먹으러 오라고..그랬잖아요..”
자그맣게 중얼거리며 얼어붙은 손끝을 꼼지락거린다. 언제 열리려나. 초조하게 문이 열리고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달리느라 몰랐던 추위가 슬슬 느껴지고 있었기에.
스테이크를 굽고 있는 와중에, 띵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밀레일까? 누구지, 싶었는데 곧 말소리가 들렸다. 아아, 밀레네. 곧이어 덧붙여진, 중얼거리는 말에 풉 하고는 웃고, 한참을 끅끅거렸다. 아, 언제나 귀엽긴 진짜. 잔뜩 쓰다듬어줄까, 싶다가 곧 자신의 옷 차림새를 확인했다. 별로 예쁘지 않은 츄리닝 차림이었다. 으음, 뭐 나쁘진 않지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은데.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열어줄테니까. 옷 갈아입고 있거든요."
문 앞에 서서, 달콤하게 속삭이곤 거의 구워진 스테이크를 뒤로하고,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음, 뭘 입는게 좋을까. 아, 그래. 알몸 에이프런을 해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음, 하지만 생각해보니 좀 많이 부끄러운걸. 이따가 하는걸로 하자. 마침 촬영용 의상들이 몇벌 집에 있으니까, 간단한 차림새로 나가자. 청반바지에 하얀 티셔츠, 이정도면 되겠지 뭐. 에이프런도 걸치고, 문으로 나가서는 활짝 문을 열어주었다.
"밖에 많이 추웠나보네요. 오래 기다렸어요? 어서 들어와요."
곧 발 뒤춤에서 어느새 우유를 다 먹은건지, 아기 고양이가 불쑥 얼굴을 디밀곤 야옹, 하고 울었다. 푸훗, 하고 작게 웃고는 다시 부엌으로 걸어들어가 스테이크를 접시에 담으며 말했다.
"아까, 향초를 사러 나갔는데 애교를 부리더라구요. 요즘 혼자있으니까, 쓸쓸해서 데리고 왔어요. 이름도 붙여줘야 할텐데... 앉아요, 먹으면 따듯해질거에요."
매쉬 포테이토를 스테이크 옆에 담고, 브로콜리를 올리고. 음, 완성이네. 두개의 접시를 들고, 테이블에 가볍게 놓았다. 그리곤 부엌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꺼내들어 테이블에 내려두곤, 한켠에서 향초를 꺼내어 불을 붙여 테이블에 놓았다. 식탁보 위로, 그럴듯한, 분위기있는 식사가 완성되었다. 아, 잔도 놓아야겠네. 천천히 일어나 다시금 잔을 가져왔다.
"집에 있으면 별로 안 추워요. 요리를 하느라 불 앞에 서있기도 했고... 사실 알몸 에이프런으로 맞아줄까 하다가, 부끄러워서 관뒀어요. 밀레의 반응이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은 밥 먹는게 더 좋을것같아서. 아, 혹시 알몸 에이프런으로, 어서오세요, 밥 먼저, 목욕 먼저? 아니면... 저 먼저? 이런 말을 하는게 나았을까요?"
푸스스, 작게 웃으면서 농담을 했다. 자기도 부끄러운건지, 귀가 옅게 붉어져갔다.
"맞아요, 그래도... 쓸쓸해서 키운다, 이런 느낌을 주면 안 되겠죠. 반려동물이잖아요? 아무 책임감 없이 데려온건 아니에요. 돈도 캐딜락을 끌 만큼은 있으니까, 잘 보살펴 주려구요. 밀레랑 저랑, 한순간에 사랑에 빠진것처럼, 우연히 만난 좋은 인연이잖아요? 아라 씨가 말한것처럼요."
소중하게 대해주려구요, 밀레처럼. 속삭이면서 웃었다.
"그래도, 바쁠수도 있고. 저 때문에 괜히 걱정끼치는건 싫거든요. 밀레도, 내가 밀레 생각때문에 뭐든 잘 못하면 싫을거아니에요? 가족이랑 있을수도 있고, 일 하고 있을수도 있고. 바람 피우고 있을수도 있으니까요. 아, 설마 진짜 바람피우는건 아니죠? 그럼 총으로 쏴버릴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풉, 다시 한참을 웃다가 반쯤만 농담이에요. 하고 덧붙였다,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음.... M.J 어때요? 밀레 주니어를 줄여서. 방금 떠오른 말인데."
씩 웃었고, 나도 따라서 테이블 위에 앉았다. 와, 술 엄청 많이 사왔네. 음흉한 표정으로 웃으며 밀레를 쳐다봤다.
"오, 밀레... 술을 이렇게 잔뜩 사와서 뭘 어쩌려는 셈이지? 물론 진짜로 밥만 먹고 돌려보낼게 아니긴 했지만, 이건 너무 노골적이지 않아?"
벌을 줄까. 응? 씩 웃으면서, 조곤조곤 속삭이다가 저도, 저도 그랬어요. 라는 말에 놀란듯 너를 바라보다가 곧 미소지었다.
"상을 줘야겠네요. 음, 오늘은 취할때까지 마셔야겠네.."
씩, 웃고는 네가 짜잔, 하고 와인을 따라주자 웃으면서 받아들었다.
"어디서 난거에요? 꽤 괜찮은 와인이네."
밀레도 받아요, 하곤 조용히 와인을 들어 네게 따라주기 시작했다.
"그러게요. 밥부터 먹고, 술은 천천히 마셔요. 시간은 많으니까.."
건배. 짠, 하곤 네 어색하게 웃는 말에 답해주며 한모금 천천히 삼켰다. 맛있네, 조용히 숨을 뱉고는 곧 야옹이를 바라보았다.
"졸린가보네. 잠깐만요."
너어는.... 어디서 재우지. 음, 침대는 조금 있다가 써야할것 같고. 아아, 마침 이불과 베개가 남는게 있으니 그걸 덮어줘야겠다. 내일 이 아이의 침대도 사와야겠네. 베개를 꺼내 거실 한켠, 따듯한곳에 두고, 너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먕? 하며 네가 작게 울자,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쉿, 어서 자렴. 속삭이곤 베개 위에 너를 내려다두고, 이불을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 잘자라. 가볍게 이마에 키스를 해주곤,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미안해요. 재워야 할것 같아서... 아, 스테이크 좀 먹어봐요. 잘 구운건지, 입맛에 맞는지 모르겠네."
사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물론 제가 술 사오라고 했지만 저는 그냥 분위기 있는 로맨틱한 식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사심이 너무 가득한거 아닌가요??? 이런걸 제가 좋아할거라고 생각하시면 크나큰 오예입니다(진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술버릇... 취해서 딸꾹거리면서 애교를 잔뜩 부릴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했어요. 그렇게 하면 되는거에요. 보고싶으면 보고싶다, 좋아하면 좋아한다 말하면 되는거라구요. 사실 나도 부끄러워서 말은 잘 못하고, 또... 밀레가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는것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을 필요는 없으니까. 나도 더 표현하도록 노력할게요. 항상 마음속으로 많이 담아뒀는데, 많이 좋아해요. 알죠?"
씩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세차게 돌리는 네 모습에 풉 하고 작게 웃었다. 귀엽기는, 하고 생각하면서 손을 뻗어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했다.
"아, 말하고 나니까 괜히 또 부끄럽네. 벌써 술 취하는것같다... 식사,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런 모양이면, 잔뜩 취할게 뻔하겠네요. 내일 아침 요리는 밀레가 해줘요. 음... 아, 우리 이따가는 뭐에 먹을까요? 과일같은거 해서 먹을까요? 집에 과일이 좀 남아있을텐데. 뭐가 남아있으려나... 이따, 같이 냉장고 확인해봐요. 아니면 밖에 나가서 사와도 좋고."
이 시간에 문을 열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쿡쿡, 작게 웃으면서 배달을 시켜먹어도 좋고~ 간단하게 말했다.
"어... 정말로? 정말로요? 뭐야, 갑자기 그렇게 나오면 너무 기쁘잖아. 갑자기 외로워서, 넌 어떨까 한참 망설이면서 얘기한건데... 고마워."
눈가에 눈물이 몇 방울 맺히자, 부끄러운듯 손으로 슥슥 닦아 문지르고는 코를 쿨쩍였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척하며, 웃어보였다. 너무나도 환하게, 너를 따라서.
"아하하, 신혼집은 우리 나중에 결혼하면 하고.. 지금은 우리 집에서 같이 사는건 어때요? 아, 이제 정말로 우리집이네. 난 혼자 살았으니까.. MJ랑, 밀레랑. 우리 집에서. 필요한게 뭐가 있을까요? 동거는 처음이라... 아, 설마 동거 경험이 있는건 아니죠? 그렇다면 질투날지도~ 뭐, 지금 날 정말로 좋아한다는걸 알지만. 음, 뭐하면 몸만 와요. MJ랑, 밀레를 먹여살릴만큼 벌기는 하니까요."
씩 웃었다. 너도 많이 버니까, 같이 필요한게 있으면 사도 좋고. 간단하게, 콧노래를 흥얼이면서 말하고, 네가 뽀뽀를 받은 뒤 벌써부터 술기운이 올라온다며, 되도않는 소리를 하자 풉 하고 작게 웃었다. 그리곤 가볍게, 뺨에 한번 더 입을 맞춰주었다.
"나보다 훨씬 잘마시면서, 뭘.. 자아, 건배해요. 멋진 동거생활을 위해서."
가볍게 와인을 네게 따라주었고, 내게 따라지는것을 기다렸다. 그리고는 잔을 들었고, 건배를 한뒤 꿀꺽, 꿀꺽. 거리낌 없이 마셨다. 한 번에 다 마셔버리고는, 푸후, 술냄새 가득한 숨을 뱉었다.
「『똑딱똑딱』과 『째깍째깍』은 무슨 차이야?」 홀리가 물었다. 꽤나 숨이 찬 모양이었다. 나는 벽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꽉 찬 보름달만큼 동그랬다. 초침이 흐느적거리며 아랫부분을 휩쓸고 지나갔다.
「우리 시계는 무음 시계잖아요.」 나는 말했다. 「혹시 기습이라도 당할까봐 도어벨도 안 달았고. 그래서, 그냥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시계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기억이 잘 안 났거든.」
홀리는 바닥에 박힌 도끼를 뽑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사장님은 투박한 손으로 난장판을 갈무리하고 있었고, 에이버리는 벽에 박힌 탄환을 장도리로 뽑았다. 발자국으로 얼룩진 서류를 스탬프가 삐뚤빼뚤 주워 모았다. 탁자 위에 서류 더미를 탁탁 쳤지만 도무지 정리되지가 않는 눈치였다. 음, 저럴 때가 가장 짜증나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청소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막내였기에 이런 귀찮은 일에서는 손을 떼고 서 있어도 일종의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이었고, 사장님도 딱히 내 도움은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장님, 제 생각에는 도끼가 아니라 그냥 전기톱을 구비해 놔야 할 것 같아요.」 홀리가 투덜거렸다. 「이거 봐요! 마룻바닥을 아주 들어낼 기센데요.」
「그걸 투척한 자네 과실도 있다네, 몰리 양.」 사장님은 점잖게 대꾸했다. 「날이 나간 것도 아닌데 굳이 멀쩡한 도끼를 버릴 생각인가?」
「이런 곳에서는,」 통 말이 없던 스탬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총을 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도끼도 만만찮게 불합리하죠. 이렇게 된 이상 클레이모어를 장만하는 게 좋아 보이는데요.」
스탬프는 진지했다. 정말로 클레이모어를 원하는 눈치였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졌다. 「웃지만 말고 너도 거들어, 카피!」 홀리가 칭얼거렸다. 「나요? 내가 뭘 한다고?」 이렇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관망하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인데.
「카피캣 양, 자네는 충분히 쉬었으니, 마지막 뒷정리만 거들어 주게. 이걸 21번지로.」 사장님이 커다란 빨강 포대를 발로 밀어 내 앞에 가져왔다. 라져, 하고 폴짝 뛰어 포대를 어깨에 맸다.
때늦은 산타 할아버지인가. 들썩거리는 포대를 메고서, 검고 악취나는 연기가 풀풀 오르는 21번지로 향했다. 포대 안에 든 덩어리들이 등에 부딪혔다. 비닐이 스적거리는 소리가 액체의 마찰음을 담아 내고 있었다. 트리니터스 21번지의 지하 소각장, 그 시뻘건 불길이 이는 소각로 앞에 섰다. 포대를 열자 억울한 얼굴을 한 남자가 비닐에 싸여 있었다.
>>79 앗 맞아요, 그런 분들 많으시더라구요() 저어는 한가롭게.. 밖에 나돌아다니는 일상이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앗 부럽다...... 저도 모바일루 옮길까여.. 그러다가 까딱 잠들어버리면 어쩌지(고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나 그러시네요! 귀여우셔(쓰담) 앗, 오늘은 관음이라고 안하시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이런 식으로 쓰다듬받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이였고,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조엘의 손을 붙잡은 뒤에 손등에 가볍게 입맞춘다. 그리곤 이제 이 정도는 무리없이 할 수 있다는 듯 당당하게 미소짓는다.
“내일 아침 요리는 맡겨줘요! 요리에 나름 자신 있으니까요. 아주 정성들인 식사를 준비 해 줄테니까요. 아, 아차..안주거리를 사 온다는 걸 잊어버렸네요..과일도 저는 괜찮은 데 말이죠..”
아니면 그냥 간단하게 있는 재료로 만들어서 먹어도 되는 일이고. 그럼에도 미리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에 조금 시무룩해진 듯이 보인다.
“제가 거절할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울지 말고요.”
덩달아서 눈물날 것 같잖아요. 진짜인 것인지 살짝 울먹거리는 목소리였다.
“저, 저도 나름대로 돈은 잘 벌고 있는걸요! 아마도요..지금 당장 필요한 걸 챙겨 오기에는 조금 그렇겠죠..? 내일에 짐을 가져오면 될 테고. 부족한 건 집에서 천천히 가져오면 될 일이니까요. 가져올 물건 리스트라도 적어야 하려나..”
이것저것 생각에 잠겨 있다가 건배를 하자는 말에 잔을 들어올려 맞부딪친 뒤 마찬가지로 한번에 마셔버린다. 와인 마시는 방법 같은 것은 지키지 않게 된 지도 한참이였다. 스테이크를 뒤이어서 먹으며, 행복하다는 듯이 몸을 살짝 떨었다.
“네, 저도요. 저도 사랑해요”
아직 술기운은 올라오지도 않았지만 자그마한 것이라도 끌어모아 뚜렷하게 제 마음을 속삭인다. 맞닿은 부분이 아주 따뜻했다.
“그거야, 그러니까 말이죠...사실 조엘도 다 알고 있잖아요!”
으으, 안돼. 아직은 부끄러워서 제대로 말 못하겠어. 이쯤에서 한계에 직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잔에 와인을 콸콸 따라 마신다. 어째 와인을 혼자 다 마시고 있었다.
“그렇습니다..당연히 기대할 수밖에 없잖아요. 안 기대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인걸요? 그래도 변태라니, 너무해요...”
순수한 마음이 아니였기에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슬퍼왔다. 솔직히 조금 들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였고.
”네! 최대한 빨리...아니, 그냥 다녀올게요..”
괜히 또 나오는 대로 말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라. 어느새 비워진 접시를 뒤로 한 채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까 전에 조엘이 말했던 과일들이랑, 간단하게 먹을 법한 것들을 잔뜩 꺼내 온다.
“과일은 제가 깎아서 드릴게요!”
과일 잘 깎거든요. 챙겨온 과도를 손에 들고는 꽤나 능숙하게 과일을 깎아 나간다. 하나 먹어 볼래요? 자연스럽게 깎은 과일 하나를 조엘에게 내밀다가 어, 하고 멈칫하더니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먹여 주겠다는 듯이 과일을 들어올린 채였다.
“맛은 안 봤지만..그래도, 맛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엘의 집 냉장고에서 가져온 것이니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어서 먹어보라는 듯이 조금 더 과일을 가까이 내밀었다.
행복하게 말하다가, 네가 머리를 쓰다듬자 가만히 눈을감는것을 행복하게 쳐다보았다. 눈은 왜 감아요, 귀엽게. 부드럽게 속삭이곤 가볍게 콧등에 입을 맞춰주었다. 아주 가볍게. 그러고 나선, 네가 내 손을 붙잡고, 손등에 입을 맞추고는 당당하게 웃는것에 풉, 하고 웃어버렸다.
"아, 이정도는 이제 무리없다 이건가요? 후회할텐데. 이따 침대에서 내 손에 입맞추곤 덜덜 떨게끔 만들어줄수도 있다구요. 오늘은 밀레 허리를 빠지게 만들어버릴거니까."
귓가에 입술을 바짝대곤, 가까이서 달콤하게 속삭이며, 마지막으로 귓가에 바람을 후 불었다. 장난치는게 재밌다는듯, 얼굴을 붉히곤 씩 웃었다.
"음.... 아마 오늘, 밤새 마실것같은데. 내일 아침에 정성들인 요리를 먹을수 있을까요? 간단하게만 해줘도 좋아요. 속도 달래야 할테고... 영화속에서 깨어나는것처럼, 잘 잤어요? 그러면서 커피도 마시고, 밀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싶긴 한데. 그건 모레로 미루죠. 오늘밤은 진탕 마셔서, 잔뜩 취할것 같으니까. 아마 내일 저녁에 깨어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놓고는 둘다 좀비처럼, 으으으으..... 허리아파... 이러면서 깨고, 막 토하고 난리날지도 모르겠어요. 아하하."
조금 취한듯, 들떠서는 말이 많아진 조엘이었다. 신나게 말하다가, 조금 시무룩해진 네 모습에 괜찮다고 말하며, 가볍게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응, 안 울어요. 밀레야 말로 울지 말아요. 진짜... 정말,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고, 되게 망설였다구요. 갑자기 떠오른거기도 하고... 우리, 동거 잘 해봐요. 많이 사랑해요."
씩 웃으면서 속삭여주었다.
"아마도요라니.... 아하하, 웃겨라, 정말로. 아니면 밀레가 가정주부 하고 내가 돈 벌어올게요. 내가 먹여살려줘도 되구. 아니면 밀레가 나 먹여살리던가요. 유명한 헐리우드 배우가 되어서. 아니면 같이 이대로, 또 촬영장에서 하던 대로 하면서, 같이 돈 벌고, MJ랑 같이 살고. 상상만 해도 행복하네요."
정말로. 행복한 상상에 잠겨있다가, 이어지는 말에 작게 웃었다.
"지금 당장 가면 좀 그렇잖아요? 분위기도 좋은데. 응, 내일 가져와요. 같이 리스트를 써서, 내일 같이 가져와요."
어서요. 달콤하게 너를 불렀고, 곧 네가 잔에 와인을 콸콸 따라 마시면서, 알고 있잖아요! 라고 말하는것에 크게 웃었다.
"모르는데요?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뭔지 가르쳐줄래요? 몸으로."
푸훕, 크게 웃으면서 가볍게 네 목덜미를 간질였다. 널 빤히 올려다보았다.
"너무 빨리, 또 많이 마시는거 아니에요? 아직 밤은 긴데. 너무 무리하지 마요... 아, 나 슬슬 취하려고 하네. 몇잔 더 마시면 바로 취하겠다. 음, 독한걸로 마실래요?"
씩 웃었다. 나만 취하면 불공평하잖아요. 가볍게 속삭이곤, 기대했다며, 변태라니 너무하다는 말에 또 웃었다.
"사실 나도 기대하고 있었어요. 나도 변태에요. 후후."
너무 슬퍼하지 말고요. 씩 웃고는, 아, 잠깐만 있어봐요. 말한 다음에, 방 한켠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니걸, 정확히 말하면 바니보이 차림새였다. 토끼 귀 머리띠까지 쓴게, 본격적이었다.
"아하하, 안녕, 바니보이 조엘입니다. 반가워요, 깡총깡총."
폴짝거리면서 뛰는 시늉을 해보이고, 가볍게 허리를 흔들면서 춤을 추다가 풉 웃었다.
"어때요, 잘 어울려요? 죽을만큼 부끄럽긴 한데..."
뭐, 취해서 그러는 거라고 넘어가요. 씩 웃었고, 네가 과일을 깎아준다고 말하며 과일을 깎아나가다가, 하나 먹어볼래요? 라며 과일 하나를 내게 내민다. 아. 너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으으, 하며 부끄러운듯 조금 머뭇거리다가, 곧 빨개진 얼굴로 덥썩, 조금 더 가까이 내밀어진 과일을, 네 손가락에 가볍게 입술이 닿을 정도로 물어 먹었다. 한참을 우물거리다가, 곧 씩, 하고 웃으면서 네 손가락 끝에 가볍게 입을 더 맞춰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