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꺼내자마자 반응이 달라진 유안을 보고 내 눈이 잠시 커졌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가 지갑을 가져가 돈을 세는 걸 그냥 바라만 보았다. 돈이 그렇게 좋을까. 날 때부터 돈부족에 시달려본 적이 없다보니 저런 모습은 잘 모르겠달까. 아니 뭐 그렇다고 돈을 허투로 보는 건 아니다만.
얼마를 가져갈까 고민하는 말에 나는 피식 웃고 그의 손에서 지갑을 도로 가져왔다. 물론 돈은 빼기 전에. 이러면 또 흐느적 늘어지는거 아닐까 생각하며 지갑을 든 채로 말했다.
"돈이 그렇게 좋냐? 여기 월급이 적은 것도 아닐텐데,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해?"
이건 질문값. 이라며 지갑에서 신사임당 한장을 들고 팔랑거렸다. 주는 건 대답 들은 후에 줄게.
돈을 빼려고 하기도 전에 울프가 지갑을 도로 가져가버렸다.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돈이 아닌 사람을 쳐다본다. 울프는 재미를 붙인 듯한 질문을 던지며 질문값이라며 오만원 한 장을 보장했다. 유안은 불만스럽다는 듯 표정을 조금 찌푸리며 대답 대신 다른 질문으로 대응했다.
"비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늑대 누님?"
무뚝뚝하게 말하면서 끝에 까칠함이 배어나왔다. 주인을 잃은 돈의 노예는 이런 반응이다. 그나저나 그 말, 유안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우리 페어플레이합시다ㅡ덧붙이는 이 말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도 의자등에 몸을 기대면서 다소 거만한 어조로 답한다. 졸린 것 치고는 선명한 목소리로.
유안의 입장에서는 당당하게 딜도 하고 5만원이 보장된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돌려줬는데 상대가 전부 부정해버리는 상황이다. 그는 황당하다는 기색을 무표정에 살짝 드러내며 울프를 조용히 응시했다. 다다익선이란 말로 답했더니 날로 먹는단다. 성심성의를 담은 대답을 요구받았다. 유안은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아까부터 열심히 자신을 깨우려고 애를 쓰던데, 그렇게 해서 저 사람이 얻을 수 있는 메리트는 무엇인가...모든 사고가 이해관계로만 이루어진 사람도 아니고 일단 그 생각부터 시작한다. 아, 자고 있는 게 보이면 손해를 보는 건가. 같이 혼난다든지. 그렇다면.
"...됐습니다. 흥미 잃었어요."
한쪽 손을 반쯤 들어 의욕없이 휘휘 몇 번 젓더니 손모양을 바꾸어 손가락스냅을 탁 한다. 졸음이 다시 돌아왔다.
"돈 같은 거 딱히 욕심도 없고...하암."
마음에 있지도 않을 소리를 아무렇게나 툭 내뱉으면서 도로 엎드렸다. 아니, 쓰러졌다. 이대로 깨우면 깨워져서 돈을 받는 거고, 아니면 그냥 푹 자고. 어느 쪽이든 손해볼 건 없다. 혼나는 거? 한쪽 귀로 듣고 다른쪽 귀로 흘리면 그만이다. 적당히 대꾸하면서.
//애교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유안이는 나쁜 생각을 품고 도로 자버렸ㅅ..(노답)
다시금 머리가 괴롭혀지는 감각이 느껴진다. 아니, 이번에는 조금 더 부드럽다고 할까. 아까는 헤집었지만 이번에는 엉키지 않게끔 조심조심 만진다. 외모 관리에 관심이 없어 아주 지극히 기본적인 관리만 되어있어 자를 때가 다가온 머리카락이 울프는 재미있는가보다. 계속 만지작거리는 걸 보니. 그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유안은 잠이 반쯤 깨버렸다. 팔 위로 엎드린 채로 고개를 살짝 돌려 팔 위로 얼굴을 반쯤 보인다. 드러난 피곤한 인상의 삼백안은 울프를 조용히 노려보듯 응시하였다. 그러나 감정은 그닥 실려있지 않아보인다. 침묵을 유지하다가 입을 열어 웅얼거리듯 말한다.
"...희한한 감상이군요. 오히려 건방지단 소리를 더 많이 들었습니다."
정상으로부터 고양이 취급을 받은 기억은 무의식 속으로 사라진 모양이다. 언급하면 다시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계속 머리를 만지는 손을 뿌리치듯 벌떡 다시 상반신만 일으켜세웠다.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는 울프를 옆눈으로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바라시는대로 아주 성심성의껏 부가설명을 하죠."
비아냥거리는 것 같은 말투로 말했다.
"아까 다다익선이라 했습니다. 풀어서 말하자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책을 더 많이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읽을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더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울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사람을 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상."
연설조로, 꼬리에서 꼬리를 무는 연쇄적인 말을 무뚝뚝하게 마무리지었다. 얼굴은 여전히 평소의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달콤한 것. 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것을 꼽는다면 사랑이라고 감히 단언하겠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타미엘. 사랑하는 타미엘. 증오하는 타미엘. 얻었어요. 조금 거친 방법을 쓰기는 했지만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얻었습니다.(다른 정상적 감상의 사람들이 본다면 전혀 아니라 하겠지만 에드워드는 이미 애증과 집착에 젖어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에드워드의 기분 지수는 100을 넘을 것이 분명했답니다. 영원히 타미엘과 함께 있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했으니까요. 마트나 그런 데도 한번은 가는 게 필요했지요.
"뼈톱...은 있으니까 패스. 전동드릴 등.." "으음.. 새장을 수리해서 절대 도망치지 못하게 해야 하니까요.." 겉으로만 보기에는 그저 공구를 쇼핑하러 온 키 큰 외국인일 뿐이었지만요. 자신이 직접 요리할(그리고 타미엘이랑 알콩달콩 먹을) 식자재를 품에 안고 에드워드는 그것들을 자동차에 내려놓으려다가. 자동차 키를 마트에 놓아뒀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냉철하게 생각해서 트렁크를 열어 식자재를 놓고는 마트 안으로 다시 들어갔답니다.그리고 분명 마지막까지 자신이 키를 가지고 있던 것이 확인되었던 장소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사람이 많은 장소는 필연적으로 시끄럽고 어지러워, 오랫동안 머무르다 보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피로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실리아와 같은 케이스의 사람이 이런 곳을 기피하고 꺼려하며, 되도록이면 들르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 허나, 사람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생길 때도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어머니의 몸이 편찮으셔서 부득이하게 대신 저녁 찬거리를 마련해야 하는 경우라던가. 하여간, 평소라면 근무 때를 제외하고 혼자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한 아실리아가 혼자 마트에 장을 보러 나오는 일은 지극히도 이례적인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역시는 역시라고, 수 많은 사람들이 내는 소음과 그에 비례하여 들려오는 웅웅거리는 소리는 아실리아의 신경을 잔뜩 예민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지.
그러던 도중, 미간을 누르며 두통을 가라앉히던 아실리아의 시야에 어떤 사람이 들어왔다. 너무 눈에 띄는 사람이네. 그것이 연신 바닥을 훑어보며 서성거리는 한 외국인 남성을 보고 아실리아가 내린 총평이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식품 코너에서도 몇 번이고 제 근처를 지나쳐갔던 사람이었지. 아실리아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외국인 남성의 모습을 잠시간 응시하다가 이내 바닥으로 고개를 돌렸다. 뭘 찾고 있는 걸까.
" .....? "
아, 설마 이건가. 곧 아실리아는 근처 바닥에 다소 생뚱맞게 떨어져있는 자동차 키를 집어들곤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곤 다시 예의 그 남성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에게로 걸어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몇 바퀴째가 되니 슬슬 기분이 더러워지기 시작했답니다. 물론 집에 들어가면 금방 기분이 업 되어버릴 것이지만요. 하지만. 내뱉은 말 중 몇 개는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렇지만 곧 그 예쁜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올 생각으로 버티는 중이었답니다. 하지만 금방 지쳤답니다. 하..사진 보면서라도 찾아야 하려나요?
"Jeg kan virkelig ikke finne den. Hvordan gjøre det" 에드워드는 정말 찾을 수가 없네.. 라는 둥 중얼거리고는 느릿하게 다른 어딘가에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쳐다보려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을 보았답니다.
나름대로 타미엘의 동선을 조사했긴 하지만, 동료같은 걸 조사하진 못했으니까요. 미묘한 경계심조차 없다는 듯 아실리아를 내려다보던 에드워드는 어쩌지요. 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동차 키를 잃어버려서 잠깐 들러보던 중이었네요. 라고 난감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아실리아에게
한참 만지작대고 있으니 고개를 슬쩍 든 유안의 눈이 보인다.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따라 더 피곤해보이는 그 삼백안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희안한 감상이란다. 그런가? 난 그냥 느끼는대로 말한 것 뿐인데.
그가 상체를 일으키자 자동적으로 내 손도 그의 머리에서 떨어진다. 그대로 손을 거두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마주본다. 옆눈으로 바라보는게 꼭 뭐랑 닮았는데...그 뭐더라...음... 혼자 고민하는 사이 유안이 아까 하지 않은 부가설명을 말했고 나는 반쯤 흘려듣다가 아, 하고 깨달았단 표정을 지었다.
"너 꼭 고양이 같아. 응. 아 맞아. 그런 느낌이었어."
아 이제 생각났네. 뭔가 시원해진 느낌에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웃곤 다시 유안을 보았다.
"그래서, 사람을 덜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왜 이쪽 일을 하는거야? 사람 만나는게 싫으면 프리랜서라도 하면서 딱 살만큼만 벌어먹어도 될 텐데."
그러면 그렇게 돈이 많이 필요할 일도 없잖아. 그렇게 대꾸한 나는 다시 손을 뻗어 이번엔 그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말랑말랑 귀여워...!
자동차 키 같은 거 보셨나요. 하고 묻는 말에 아실리아는 방금 전에 주운 자동차 키를 내밀려다가, 문득 느껴지는 지나칠 정도로 짙은 약 냄새에 움찔하여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뭐지, 이 냄새는. 그에 잠깐 멈칫하고 에드워드를 빤히 쳐다보던 아실리아는 이내 천천히 자신이 주운 자동차 키를 에드워드에게 건네었다.
" 자동차, 키.. 라면. 이게, 맞나요? "
주인 잃은 물건을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것 뿐인데도, 어딘가 찜찜하고 꺼림칙했더랬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단순히 예민해진 제 기분을 탓하며 애써 이유모를 불길함을 감추는 것에서 그쳤다. 마냥 찜찜하기만 한 기분은 갈 곳을 잃고 허공을 헤메인다.
정말로 짙은 약 냄새. 코트에 잔뜩 묻혀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요.. 그렇지만 이 코트는 그야말로 역전이니까요. 절대 버리기는 어렵죠. 부드러운 표정과 얼굴 안에 가려진 그 감정들을 억지로 숨겨내고는
아실리아가 건네는 자동차 키에 약간 전구가 켜진 듯한 표정을 지으려 합니다.
"앗. 감사합니다. 자동차 키 없으면 조금 접근하기 불편한 곳에 집이 있어서요." 자동차 없었으면 걸어서 몇 시간이나 걸리는 길을 무거운 짐을 안고 걸어가야 했었다고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그건 사실이긴 하지만요. 나는 불편하기만 할 뿐이었지만. 길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잘 모를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씩 웃으면서 감사의 표시로 차라도 한 잔 사드려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려고 합니다. 저기에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라도요? 라고 가볍게 흘깃 시선을 줍니다. 그렇지만. 묘하게 날카로운 기분이 들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