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계 생활을 몇년 한 나에게 철야나 당직은 꽤 익숙했다. 물론 하고 난 다음날 졸리고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할 때는 괜찮달까. 나른해지는 몸을 차가운 레몬에이드로 깨우며 키보드를 두들기고 마우스휠을 돌린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0시 정각. 슬슬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저 멀리 엎어진 뒷통수가 보인다. 오늘 순번이 아마 그녀석이었지.
"야, 안유안. 자냐?"
나는 나가는 대신 그에게 다가가 엎드리고 있는 그 머리를 손으로 헤집었다. 이 시키가 나도 두 눈 뜨고 버티는 중인데 혼자만 뻗어?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괴롭힌다. 그러다가 이제는 볼을 괴롭힌다. 그 누군가는 당연히 울프라고 유안은 인지하고 있었다. 졸리는 와중에도. 힘없이 뜬 눈을 조금 움직여 어느새 옆자리에 앉아 빤히 쳐다보는 울프를 의욕없는 시선으로 조용히 응시했다.
"...안유안 아닌데요."
여전히 의욕 제로의 목소리로 나지막히 대꾸하고는 고개의 방향을 천천히 바꾸었다. 울프가 있는 반대쪽 방향으로. 역시 당직은 싫다. 철야를 해야함은 물론 조금 눈을 붙여두려고 해도 누군가가 이렇게 깨우러 들이닥친다. 졸음과 힘듦을 차단시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도 모르게 소리소문없이 쓰러져서 잘못하면 병원에서 눈을 뜰지도 모르게 되어서...최후의 선택지로 삼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식으로 자정에 쓰러진 유안괴는 반대로 울프는 멀쩡히 눈을 뜨고 있지만. 역시 생활패턴을 바꿔야하는 건가ㅡ라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까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아, 피곤해...
언제나 같은 맥 없는 목소리로 대꾸한 유안이 고개를 반대로 돌리자 뭐가 아니냐며 그 뒷통수를 쿡 찌른다.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나. 얼마나 엉망진창의 생활을 하길래 이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얘라면 왠지 잘 시간에 안 자고 안 잘 시간에 잘 거 같아서.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뒤통수를 응시한다. 얘를 이대로 자게 둘까, 아님 어떻게든 깨워놓을까. 사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대로 둬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서장님이나 하윤이에게 들킨다면 분명 잔소리가....그 불똥이 나한테도.... 안되겠다. 깨워야겠어. 지난날 잔소리 폭탄을 떠올린 나는 유안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근무시간에 누가 이렇게 엎드려 자라 그랬냐. 안 일어나? 당장 안 일어나면 안아서 일으킨다?"
일으켜놓고 쓰담쓰담형에 처해주마. 라는 아무말이나 하며 깨웠다. 이래도 안 일어나면 군대 기상나팔이라도 틀어볼까?
후폭풍을 두려워한 울프는 유안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열심히 깨우려고 하였다. 누가 자라 그랬냐, 안 일어나냐, 안아서 일으킨다, 쓰담쓰담형에 처힌다...등등 여러가지로 화려한 말을 하면서. 갑자기 어깨를 잡히고 흔들린 탓에 유안은 잠시 화들짝 놀라며 '어엇'이라는 칠칠치못한 외마디를 흘렸는데, 이 목소리마저 의욕 제로인 게 황당하다.
"...글쎄요."
이건 아마 울프의 첫번째 한마디에 대한 답변일 것이다.
"...아,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조금 특이했었죠. 아마 거기서 배웠을 겁니다. 아, 완벽한 대답이군요."
기력없는 목소리로 무슨 말을 하나 싶었더니 또다시 아무말. 울프의 다른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여하튼 그 말만을 남기고 다시 눈을 감았으나, 유안은 순간 한 가지 생각에 미쳤다. ...이 누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날 깨우고 볼 듯한데... 거기에 저항할 기력도 없다. 울프는 어차피 마지막엔 자신을 깨우는 데 성공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안은 다시 입을 뗐다.
"...돈."
기력이 전혀 없는 탓에 한 박자 쉬고는 말을 이었다.
"돈을 받을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은데..."
이득은 취하고 본다ㅡ주의인가. 이 녀석 제정신이 아니다. 저 눈을 봐. 의욕은 하나도 없는데 뭔가 진지한 기색이 비친 눈.
놀랍게도(?), 유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벌떡 상반신을 일으켰다. 마치 죽은 사람의 것 같기만 하던 얼굴에 어느새 생기가 도는 듯하다. 아무래도 결국 능력을 쓴 것 같다. 힘듦과 지침은 냅뒀지만, 졸림은 차단했다. 사정없이 쳐들어오던 졸린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딜."
그리고 즉답. 음흉하게 웃는 울프를 비웃는 듯 하는 말로 들리지만, 그의 표정은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훤히 보이는 울프의 지갑을 양해도 어떤 말도 없이 제 손으로 가져간다. 힘들고 지쳐도 무례한 건 여전하다. 여전히 그는 앉아있다. 지폐가 담긴 자리를 열고 빈손으로 안에 들어있는 돈을 능숙히 세어본다. 돈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는 사람답다고 할까 뭐라고 할까.
"많군요. 과연 금수저는 다르다고 할까요."
목소리가 평소대로 돌아온 듯하다. 태세전환이 빠른 사람이다.
"얼마나 가져갈까..."
혼잣말 후 실소를 잠시 옅게 짓고는 지갑을 계속 응시하였다. 저기요, 앞에 사람 있거든요. 선배요. 연상이요. 유안의 종횡무진은 당직 때도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