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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그보다 더욱 화려하게 꾸민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뱉었다. 가문의 존속을 위해 제 몸을 생사의 갈림길로 수차례 내던졌던 그녀였지만, 우습게도 그녀는 정작 이러한 자리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사교계의 다른 이름이 ' 보이지 않는 전쟁터 ' 였던가. 수많은 시선이 오고가며 제멋대로 서로를 저울질하고 값을 매긴다. 귀족 여식들의 쑥덕이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성가신 소리다. 그녀는 그들이 풍겨대는 향수와 시선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이 상황 자체가 그녀에겐 필요치 않은 사치였다. 아. 사치가 아닌 가시방석이려나.
- 이런. 이 곳의 중앙에 피어나도 아깝지 않은 분이 벽에서 시들어가다니요.
" 죄송합니다, 백작. 춤을 그리 즐기지 못하는지라. "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한 백작이 춤을 청해온다. 늘 그렇듯 무감정한 어투로 예의를 차려 답한다. 지겹다. 이럴 시간에 차라리 영지 업무를 보는게 낫겠어. 내 병사들과 훈련이라도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군. 시시콜콜한 대화에서는 더 이상 흥미를 찾을 수 없었다. 평소라면 이런 자리에는 오지 않았을텐데. 이리도 연회를 끔찍히 여기는 그녀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왕의 초대장. 왕이 손수 초대장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충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녀는 후작이기 전에 기사이기에. 그녀라는 기사는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왕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파티는 즐거운 사치였다. 땅따먹기나 권력욕에 눈이 멀어 서로 근엄한 척, 이글거리는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다가 여자에게 음흉하게 다가가는 남자 귀족들이나, 누가 더 많은 귀금속을 둘렀는지 으스대다가 우아한 척, 돈 많고 잘생긴 남자에게 다가가는 여자 귀족들이 모이는 이러한 연회가 그에게는 즐거운 시간으로 다가왔다. 누군가가 그 이유가 여자 귀족들이 눈독들이는 상대가 자신이 된 데에서 나온 즐거움이 아니냐고, 결국 너도 여기 있는 -네가 혐오하는- 멍청한 귀족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는 당당히 아니라고 외칠 수 있다. 물론 옆에는 여자를 하나 끼고.
그는 그런 자기 모순조차 즐겼다. 여자의 들춰지는 치맛자락에 눈이 가는 건 더러운 늑대의 본능에 따르는게 당연하지 않은가?-슬쩍 자신 앞에 선 여인의 허리를 눈으로 재던 카인은 이내 가슴크기에 엑스표를 찍찍 그었다.
"저번에 보내주신 건 잘 받았어요, 로즈리안 경." "하하, 별말씀을요.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금 자신이 잔혹하게 엑스표를 그은 여인에게 살갑게 응대한 그는 뭇 여인들의 어지러운 향수를 맡으며 와인을 들이키고, 칭찬하고, 웃었다. 즐겁다고 할 때는 언제고 슬슬 이 반복이 지루해졌는지 '머리에 든 건 하나도 없는 더러운 암캐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머, 로즈리안경도 참, 그런 농담을." "아름다운 꽃에게 아름답다 한 것이 왜 농담이라는 거죠?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요." "후훗, 하긴 그렇네요. 저기 꽃인지도 모를 것은 모르겠지만."
한 공작부인이 말하자 이내 여자들 사이로 수군거림이 나아갔다. 그건 바로 청렴결백하시며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수수께끼라는, 이런 곳엔 얼굴을 안 내밀기로 유명한 루치아 폰 하인드리히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아, 그 멍청한 신자. 라고 속으로 소문의 루치아에게 시니컬하게 웃은 그는 한번 회장을 휙 둘러보더니 구석에서 동떨어진 듯 서 있는 긴 머리의 남자(여자)를 발견한다. -가서 인사라도 할까.
알게모르게 그런 욕구가 고개를 들자 더럽도록 지겨웠던 여자들을 공손히 버리고 구석으로 다가가 정중히 허리굽혀 인사한다.
제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굽히는 이는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오만방자함이 하늘 끝에 달한다는 애송이. 돈이면 무엇이든 되는 줄로 아는 건방진 애송이가 여기까지는 무슨 일일까. 웃으며 간을 볼 작정인가. 귀찮은 짓거리라면 사양인데 말이지. 그는 평소 그녀의 관심거리가 아니었기에 앞으로의 대화는 다소 지루할거라 예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의 인삿말에 입을 연 것은, 단지 한심하도록 지루한 이 시간의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
" 루치아 폰 하인드리히입니다. "
엷은 웃음을 띄우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올린다. 웃음에는 웃음으로 대하는 것이 예의이겠지. 솔직히 말해서 예의를 차리고 싶지도 않은 인간이긴 하다만. 그가 버리고 온 여자들의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상당히 귀찮군. 차라리 전장이 낫겠어.
" 그나저나, 연회는 더 즐기지 않으십니까? 모처럼의 개국연이잖습니까. "
연회와 같은 사교계 모임을 꽤나 즐긴다고 들었는데. 그가 구태여 자신을 찾아올 이유는 그리 명확히 존재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도 제 입맛에 맞는 여자들 사이에 있었으니 뭐. 말 다 했지. 많은 눈을 나에게로 돌리려는 의도인가. 단순한 호기심일지도 모르지. 무엇이 되었던 시간을 빠르게 흐르는데에는 특효약이겠지. 영양가 없는 소문은 늘어나겠지만. 애시당초 그따위 소문은 관심에도 없으니 상관은 없지. 귀족이랍시고 사치와 향락에 찌든 인간들은 버러지일 뿐이다. 나라를 갉아먹는 버러지.
....하도 보기 힘든 얼굴이라길래 어디한번 그 귀한 얼굴 좀 볼까, 했더니 결국은 이거다. 가슴을 칭칭 동여맨건지, 아님 단순히 남자나 입을 법한 옷을 입어서인지, 그 어디 하나 특별히 봐 줄 것 없는 여자나 감상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바지와 부츠가 만들어내는 다리라인에 저건 나쁘지 않네. 라고 채점한 남자는 곧 평가를 그만 둔다. 가끔 이렇게 몸을 내미시는 귀한 몸께는 감히 채점이나 하는 농땡이를 피울 수 없다. 그냥 얼굴이나 보고 아주 황송합니다, 싶은 기분을 맛보는 것뿐이지. 하긴, 그러고보면 자신의 앞에 있는, 방금 자신이 인사했고 그 인사에 아주 엹은 웃음으로 응답한 이 여자는, 거의 유물급이다 싶을 정도로 청렴결백하고 곧은 인물이었다. -이런 걸보고 뭐라고 표현하더라. 융통성이 없다고 하던가?-뻔히 아는 단어를 뜸 들여 생각하고는, -아니. 그냥 멍청한 거지. 라며 음미한다. 그렇다. 이 연회장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가장 멍청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신에게 울며불며 기도하면 이루어질 줄 아는 사람. -멍청하기 이를데 없다. …선머슴이고.
그녀는 그가 가식적으로 공손히 내미는 잔을 받아들었다. 연회에 와서 딱 한 가지 좋은 것이 있다면 질 좋은 와인을 가져다 놓는다는 것이겠지. 그마저도 보통은 입에 잘 대지 않았지만.
" 괜찮습니다. 어찌나 화려하게들 꾸미고 오셨는지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우니까요 "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조소와 미소 사이의 알 수 없는 그것. 그 웃음이 뜻하는 바는 네가 판단하기 나름이겠지. 오만한 애송이. 잔을 살짝 돌려 향을 음미하다가 한 모금을 목으로 넘겼을 무렵, 왕의 여시종이 자신을 찾아왔다. 또 무슨 일로 부르시는건지. 사실 이유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모처럼의 참석에 옷차림이 그게 무어냐, 라고 꾸중하실테지. 그건 그래도 연회 도중에 불러내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막 흥미가 동하려던 찰나였는데. 안타깝군.
" 죄송하지만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
여시종이 이끄는 대로 연회장을 빠져나가 바로 옆 별실에 들어서니, 제 예상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여러벌의 드레스가 고이 개켜져 탁자 위에 놓여있었다. 꾸중은 익숙하지만 이런 직접적인 방법은 처음인 듯 한데.
" 이게 다 무엇이냐. " - 전하의 명입니다. 옷을 갈아입지 않으신다면 당분간 알현은 받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망할. 이번엔 단단히 수를 쓰셨군. 한숨을 뱉었다. 연회장 안에서의 무표정한 가면을 벗어던진 것이다. 이대로 안 가겠다 버티면 화를 내실테지. 아아. 영지가 그리울 따름이다.
아, 어련하시겠어. 남자는 조소어린 미소에 속으로 시니컬하게 혀를 찼다. 여기 불쾌한 동족이 있다. 물론 그를 혐오한다는 쪽에서의 동족이지, 그 외엔 닮은 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동족이다. 아니, 이런 건 동족이라 부르기도 애매하지. -아까 전만 해도 장난스럽게 여자를 채점하고 '바보에 청렴결백하고 고귀한'이라고 미사여구를 붙였던 남자는 이제 가벼운 흥미로 접근했던 상대에게 정나미가 확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우선, 계급이 더 높다고 으스대는 건진 몰라도 아주 자연스럽게 콧대를 높이는 그 태도하며- 둘째로, 자신도 결국 사치 위에 세워진 성에 있으면서 이토록 친절한 자신을 되도 못한 구더기라도 보는 것마냥 하찮게 봤다는 것. 이유는 그 두가지로 충분했다.
"얼마든지요."
별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선선한 미소와 약간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전한 뒤, 여자가 떠나가자 잠시 웃음을 한 구석에 치워둔다.
"하....빌어먹을." 한쪽 입꼬리를 일그러뜨리는 그 모습을, 아까 어울리던 귀족 여성들이 봤다면 당장에 물러났을 것이다.
여시종의 도움으로 홀터넥 스타일의 붉은 드레스를 완벽히 차려입은 그녀는 작은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쯤 이를 갈고 있겠지. 부러 콧대를 높이며 흘렸던 그 조소를 곱씹으면서. 기사들은 생각보다 말이 많다. 왕궁 내 기사던, 영지 내의 사병이던. 그리고 그들 사이에 도는 소문은 꽤 들을만 하지. 그녀는 그의 가식적인 웃음을 떠올리며 여시종이 제 머리 매무새를 정돈하는 것을 내버려두었다. 머리칼에는 굳이 장식을 꽂지 않아도 된다 말해두면서.
" 이 옷과 붕대는 잘 챙겨두어라. 연회가 끝나면 바로 갈아입을테니. "
셔츠와 바지, 그리고 부츠를 여시종에게 건네며 싱글 웃었다. 생각보다 즐겁군. 그 애송이의 머리속, 상상할만한 가치가 있겠어. 세간에 알려진 사실과 알려지지 못한 사실이 있다. 알려진 것은 그녀가 검의 극한에 달했다는 것과, 그녀가 청렴결백하다는 것. 그리고 알려지지 못한 것은 그녀가 상당히 뛰어난 지략가라는 것이다. 검을 들기 전부터 익혀온 전술과 지략. 그녀는 지금 일종의 놀이를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이를 드러내려 하는 강아지를 구경하면서. 그럼 이제 슬슬 강아지를 다시 구경하러 가 볼까. 이 정도의 즐거움이라면 드레스와 구두의 불편함 정도는 감수할 수 있겠군.
"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전하께서 제 옷차림에 트집을 잡으신터라.. 하루이틀도 아닌 일인데 말이죠. "
여자가 불려나간 이유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귀족의 일원으로서 연회에 참석하는 이상 기본적으로 갖춰 입고 와야 할 옷을 입은 적이 없었으니. 보통은 그 옷차림을 고수한다던데, 이번엔 어떨까.
남자는 무심히 여자의 인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왕의 승리였는지, 여자는 고분고분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 드물고 보기 힘든, 아니 이번에 최초로 선보이는 그 아름다운 자태에 몇몇 귀족남성들의 눈이 돌아가고 귀족 여성들은 다시 소근거리기 시작했다. 좀 전이었다면 그도 그 모습을 한번 훑으며 점수를 매겼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몇 분전과 지금은 완전히 판도가 뒤바꼈다. 물론 눈이 있고 빛이 있는 이상 그 자태를 구경할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의 그는 말 그대로 '구경'만 하는 상황이었다.
"역시 다듬으시니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나시는군요."
친절히 웃으면서 진심인 양 살가운 말을 늘어놓은 그는, "하지만 머리장식이 없어서 아쉽군요"라는 말과 함께, 꽃병에 꽂혀있던 탐스러운 장미를 풍성한 금발에 장식했다. 물론 실례한다는 정중한 태도와 인사도 빼 놓지 않은 채.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이렇게 훌륭하게 꽃꽂이를 할 수 있는 자신에게 감탄을 보내며, 카인은 웃었다. 자신이 모순덩어리인 것도 모르는 가식적인-정나미가 떨어진- 여자보다는, 차라리 머리가 텅빈 암캐한테 가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그녀의 머리칼에 장미를 장식하는 그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옛 말에 행동은 속여도 눈은 속이지 못한다는 말이 있던가. 그 어구가 아직까지는 통하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찰나의 순간에 그의 눈에서 흐릿한 경멸감을 읽어낸 것을 보면.
" 감사합니다. "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보이는 것으로 웃음을 대신했다. 옷차림이 무색하게도 얼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없었으니. 방금과 다른 의미로 쏟아지는 시선이 거슬렸다. 그들에게 직설을 가장한 폭언을 쏟아붓고 싶어졌으나, 안타깝게도 그런 것은 예의에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겉모습에 휘둘리는 꼴이라니. 참 안타까워. 이런 귀족의 이름 안에 갇혀있다는 것이. 옷차림에 막히고, 표정에 막혀버리는 그들의 시선은 그녀에게 바닥을 뒹구는 낙엽보다도 못한 것이었다. 신이시여. 이 무지한 자들에게 지혜를.
" 그리 애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만. "
그녀는 그저 웃었다. 지나가는 하인의 쟁반에서 화이트와인을 받아든 채로. 암사자는 오늘 꽤나 괜찮은 먹잇감을 찾은 듯 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연회가 이제 끝을 달려가고 있다는 것. 사치스러운 연회장, 그리고 그보다 더욱 사치스러운 인간들. 그녀는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구역질나는 표정으로 연회장을 빠져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 점에서는 감사를 표해야겠군.
하인드리히님이야말로 너무 겸손하시군요. 지금 저 곳에서 다들 찬사를 보내는 게 보이시지 않습니까? 라고 덧붙이며 여자를 보는 수많은 귀족들 쪽으로 팔을 벌린 그는 이제 슬슬 여자를 그들에게 데려가거나, 그들 중 누군가를 끌여들여 모두를 유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쨋든간에 연회의 마지막까지 이렇게 불쾌한 기분을 안고 있을 순 없으니까. -아, 물론 연회의 마지막 축배를 드는 걸 여자를 바로 앞에 두고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아슬아슬, 무너질지 안 무너질지의 줄타기를 하는 이 나라의 안녕따위야 관심도 없지만-... 남자는 무리의 대표격으로 이쪽에 오는 듯한, 부채로 얼굴을 가린 화려한 옷차림의 중년 여인을 발견했다.
"아, 공작부인."
주제에 눈치는 있으시군요. 부인의 손을 잡아 존경의 표시로 손등에 살짝 키스한 후, 여자에게 소개한다. 사교계의 여왕이라 불리며 수많은 파티들을 여는 부인의 입담을 잘 알기에, 그녀가 여자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거의 명예직에 가까운 제 직업은 참으로 거추장스러웠다. 근위대장? 애초에 왕궁 근위대는 왕실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사치품일 뿐이다. 실제로 근위대가 필요한 경우는 왕이 왕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 뿐. 여유는 나태를 낳고, 나태는 무능력의 다른 이름이다. 아무리 실제에 가까운 훈련에 임한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훈련. 고질적인 문제를 탈피하기 위한 계기가 필요하다. 소규모 모의 전투라도 하는 편이 나을까. 나태한 기사만큼 쓸모없는 존재는 없을테니.
그녀는 흔한 갈색 로브를 뒤집어 쓴 채 왕궁을 나섰다. 곧 왕궁을 떠나 그녀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게 되니, 그 전에 대장간에 수리를 맡겼던 검을 가지러 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검을 재정비하는 이유는 단 하나. 최근 영지 바깥의 몬스터들이 영지 내부로 들어오려 발광을 하고 있다는 집사의 서신을 오늘 새벽 받아보았기 때문이다. 무지한 짐승들을 도륙할 시기가 되돌아왔다.
***
드워프 영감은 괴팍한 성질머리로 투덜거리면서도 그녀에게 말끔한 바스타드 소드를 건네주었다. 예리하게 갈린 검날에 붉은 눈이 비쳤다. 곧 이 검에 흐를 짐승의 핏물이 눈에 선했다. 아. 로즈리안가의 상단에도 주문을 해둬야겠지. 사치품으로 유명하긴 하다만, 다른 품목도 떨어지진 않으니 말이다. 그녀의 발걸음은 이내 그의 상단으로 향했다.
검은색 지팡이를 짚어가며 유유히 거리를 빠져나오려던 카인의 눈에, 누구인지 충분히 알거 같은 여자가 비춰졌다. -저 여자. 순간 입술을 비끌어뜨린 그는 그녀가 향하는 곳이 자신의 상단임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상단에서, 뭐라도 구할 생각인가? 더러워진 기분에 지팡이를 손이 하얘질 정도로(장갑을 껴서 보일리가 없겠지만) 잡었던 것이 무색하게, 갑자기 재밌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걸 재밌는 기회로 이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의 얼굴에 더할나위없이 화사한 미소가 걸린다.
그녀는 언제나와 같이 무감정한 표정만을 얼굴 위로 끌어올린 채였다. 속으로는 엷은 조소를 흘리고 있었지만. 굉장한 우연이라. 로즈리안가의 상단으로 가는 길에, 상단주를 만난 일이 과연 우연일까? 우습군. 영업용 미소로 가려진 이빨이 얼마나 날카로울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지.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렸다. 짐승은 발톱과 이빨로 서로를 물어뜯지만 인간은 혀 끝으로 서로를 도륙한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상황인가. 마치 눈 앞에 베어야 할 상대가 있는 느낌이었다.
" 마침 잘 되었군요. 경의 상단에 볼 일이 있는지라. "
그녀는 어쩌다 보니 가는 길에 마주쳤군요. 라고 덧붙이며 씨익 마주 웃었다. 머리에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머저리들에겐 굳이 웃어줄 필요가 없다. 허나, 자신을 어떻게 해 보려고 드는 이 강아지에겐 웃어 줄 가치가 있다. 그 오만함, 누구라도 한 번은 꺾어 줄 필요가 있다고 보거든. 돈으로 모든게 다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기를.
기쁜 얼굴로 안내를 자처한 남자, 카인은 이 대화 자체의 우스움은 제쳐두고 두팔 벌려 공손히, 친절하게 루치아를 상단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곤 예의 그 사람 좋은 얼굴을 들어 루치아를 향해 응시했다. 노랗고 간사한 눈과 붉고 당당한 눈동자가 잠시 마주치고, 먼저 아래로 그 시선을 피한 건 공손한 호박색 눈이었다.
"루치아님이 찾아주셨는데, 제가 직접 소개해 드리지요. 무슨 물건을 찾으시나요?"
칼?활?방패?석궁?갑옷?창? 뭐든지 있답니다, 말만 하시지요, 라고 묻는 그 모습은 그 어느 것하나 거짓되지 않은 친절한 상인, 그 자체다.
몬스터 토벌에 무거운 철갑옷은 불필요하다. 자신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지만, 그녀의 수하들은 철갑옷을 입고 빠르게 움직이는데 부담이 있을 터. 그녀 스스로도 철갑옷은 거추장스럽다. 애초에 몬스터에게는 철이나 갑옷이나 비슷할테니까. 전쟁이 아닌 이상 착용하지 않는 것이다. 빠르고 유동적으로 움직이는데 그보다 큰 방해물은 없지.
"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물건 품질은 최상으로 부탁합니다. 내 병사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다보니. "
그녀는 제 영지에 있을 병사들을 생각했다. 무감정한 웃음이 아닌, 진심으로 기분 좋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자신 앞에 있는 그를 그리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영지에서 일어난 모든 전투를 빠지지 않고 제 병사들과 참여했었다. 이미 그녀의 병사들은 그녀의 가족인 것이다.
"거절은 거절할게요, 오늘의 메뉴는 제 전화번호되겠습니다. 아가씨" "디 몰토! (훌륭해!)"
1. 이름 : 마르코 유진 (Yuujin Marco)
2. 성별 : 남
3. 나이 : 25세
4. 신장 : 172cm
5. 몸무게 : 68kg
6. 지원 담당 : 플로어 스텝 (키친의 직원이 정 없을땐 키친도 가능)
7. 외형 : 블루블랙으로 염색한 포마드헤어를 하고있으며 언제나 은색 귀걸이를 하고있다. 늘 사근사근하게 웃고있으며 서양인과의 혼혈이기에 속눈썹이 길거나 느끼해 보이기도 한다.[이미지 보다 조금 더 동양스러운 모습이다.] 상당히 거친 운동을 한것 같아보이지만 늘상 아르바이트 복이든 옷이든 여름에도 긴팔 긴바지를 입고 다니기 때문에 알기가 매우 어렵다.
8. 성격 : 레이디 퍼스트가 신조인 남성으로 보인다. 마르코에게 좌우명을 물어보면 "남자는 힘, 여자는 사랑" 이라 대답할것이다.
9. 뒷이야기 :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아버지와 성악을 전공하던 한국인 어머니아래에서 태어난 그는, 그저 어머니가 한국인 이라는 이유하나로 자기의 일을 다 내팽겨치고 한국에 정착할정도로 자기 아내에게 헌신적인 남편의 모습을 십수년이나 보면서, 심지어 교육받으며 자라왔기에 언제나 여자에겐 상냥하게, 사람들과는 활기차게 라는게 모토로 자리잡았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아버지가 미쳐 좋아하는 축구도 아닌, 한국에서 유명한 야구도 아닌 마이너하기 짝이 없는 미식축구에 빠지기 시작한다. 계기는 단순, 남자는 힘 여자는 사랑이라는 좌우명을 가진 그에게 힘과 힘이 격돌하는 격렬한 스포츠인 미식축구는 그에게 있어서 아주 매력적인 스포츠였다. 그날 이후로 학교에서도 친구들은 전혀 관심없는 미식축구공을 가지고 놀거나 혼자서 연습하는데 급급했다. 중학생이 되서야 그의 열정을 알아준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들이니까 하고싶은거 하게 해줘라고 유치원생때 말한 말을 지켜주려고 미국으로 혼자 유학을 보내 버린다. 가뜩이나 덩치가 작은 남부유럽과 아시아 혼혈인 그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미식축구부의 선수로 발탁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4년을 보내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교에 들어서 드디어 빛을 발하여 대학리그에 들어가 선수 생활을 하게 되지만 2년째 되던해 선수 생명에 지장이 갈 부상을 입고 은퇴, 대학도 중퇴를 하고 부모님 몰래 한국으로 돌아왔다. 군대도 어영부영 공익으로 갔다왔고 이제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한지 1년, 리프레쉬겸 바다로 바캉스를 간 그는 우연히 아르바이트 모집 전단지를 보게되고 그곳의 점장이 마음에 들었기에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자취경력도 길고 짧은 인생이지만 많은 일들을 해봤기에 금방 자리를 잡게 된다.
10. 기타 : 점장을 비롯해 가게의 모든 여성 스태프들은 그에게서 선물을 몇번이나 받고 받는중이다. 마음에 드는 손님이 있을땐 사비로 주문을 추가해서 가져다 주기도 한다. 와인에 대해 잘 아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그는 술에 약하다. 그리고 그는 말이 제법 많은 편이다. 오른쪽 무릎에 큰 흉터가 있다. 아무리 그가 부상을 입었었다 하더라도 운동선수 출신은 운동선수 출신, 가게에 힘쓰는일은 -특히 여자가 하려고하면- 도맡아서 하려고 한다.
멍청했지. 나는 짧게 평하며 웃었다. 내 볼일을 끝냈다고 해서 정말, 말 그대로 멍청하게 마음을 놓아버렸다. 몸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건 이미 늦은 때였다. 선언하는듯한 목소리. 그리고 선뜩한 파공음이 내게로 내리꽂혔다. 떨어져나갈것 같은 어깨에 균형이 흐트러진다. 하는수 없이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았고 어깨를 지나친 무기가 목에 닿으려 할 때였다. 여기서만큼은 다행히 늦지 않았다. 늦지 않았다면 늦었다는 판단을 할 새도 없이 저세상이었을터다. 능력을 발현시켜 몸에 한기를 두르고는 목을 가볍게 스치는 무기의 열기를 견뎌낸다. 그럼에도 화끈한 감각은 잔류하여 목 뒷덜미를 데운다.
"그 말은 저승까지 동행해주겠다는 말인가?"
어깨를 얻어맞자 마자 앞으로 몸을 굴려 날 공격한 누군가와 대치했다. 물론, 겨우 스친 뒷덜미 따위를 어깨의 통증에 비할 순 없었다. 젠장 벌써 열세군. 웃듯이 대답했지만 가면 안의 표정까지도 그러긴 힘들었다. 그래도 처지를 비슷하게만 만들면 확률없는 게임은 아니게 되겠지. 굴린 몸을 일으키는것과 동시에 내가 총을 꺼내들었으리란것을, 그녀는 지금 알고 있을까. 총구가 그녀에게로 겨눠진다. 이어서 골목엔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지긋지긋했던 전장에서의 혈투, 위쪽의 상관들의 말과 갖가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들었던 편견과 억울한 차별같은 것들 때문에 끔직했던 그간의 날들끝에 드디어 한 달전에 제국의 지원병 출신으로 결정적인 공을 세우는데 성공했던 체트라는 그간의 고생끝에 얻은 새로운 기사단으로의 부임날 들뜬 기분으로 부임식 하루 전날에 미리 자신의 기사단이 있는 지역에 도착해 숙소에ㅠ짐부터 풀자마자 훈련장이며 식당이며 다 둘러보다가 아직 단장되실 분의 이름도 듣지 못하였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단장실로 가기 시작하였다.
'그러고보니 이번에 새로 단장님으로 승진하시면서 내가 대신 부단장이 되는걸로 듣긴 들었는데... 근데 별 연락도 없이 오면 역시 방해되시려나.'
결국 잠깐 단장실 근처 복도에 서서 고민하던 체트라는 문득 자신의 근처로 익숙한 실루엣의 인간이 보이자 반사적으로 눈가를 아주 살짝 찡그리면서 입을 열었다.
"...키엘?"
키엘 리너스 페베네. 유명하고도 유명한 페베네 가문의 사람이자, 예전에 자신과 키엘이 기사생도... 혹은 종기사라고 불리던 그 시절 좀 끝이 안좋게 헤어졌던 동기가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보면서 오고있자 그녀는 잠깐 속눈썹을 파르륵거렸다.
어제 위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내 상사의 승진과 동시에 나의 단장직의 승인 새로운 부단장의 공고등등.. 이제 한 병단의 단장이 되었으니 그만큼 결제 서류가 많아지는건 알겠지만...많아도 너무많아 거기에 더하여 어머니가 억지로 잡아놓은 살인적인 사교장의 스케쥴 이날도 마찬가지로 사교장에 얼굴만 잠시 들이밀었다 바로 나온참 다시 병단으로 돌아가는 마차에서도 서류에서 눈을 때지못하며 일한다 누가 자신의 고생을 알아줄까... 우연히 읽게된 공문에서 옛친구의 이름을 보게된다 체트라 예이예르 라바룸... 별로 다시보고싶은 이름은 아니다 그도그럴게 그녀와는 생도시절 별다른 좋은기억이 없으니까 그러던중 귀에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들린다 삐그덕거리는 어두운 단장실 복도앞에서 본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체트라
"체트라...아니 라바룸...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일단 들어가서 계속하도록 하죠"
사실 방금 알게된 사실이지만 당황스러움에 거짓말로 숨기려한다 다음에 올 부단장에게 알려줘야할 이야기야 적당히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상대가 체트라일경우엔 무엇부터 해야할지 머리가 하얗게 지워진 참이 였다 피곤과 방금 파티의 여자 향수 냄새가 그것을 가속화 시켰다 차라리 내일 알려주겠다하고 쫒아낼것을...
표정숨기는것은 여전히 어색한 것인지 당황스러운 심정을 있는 그대로 얼굴에 띄우던 체트라는 키엘도 자신처럼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서 텅 비었을만큼 당황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채로 키엘의 안내에 따라서 단장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고 나서야 그의 옷상태라든가 향수냄새를 알아챌 수 있었다.
"어... 그. 이번에 이쪽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만... 음... 설마 또 같은 소속?"
아닐거야 아닐거라고 저놈이랑 또 같은 소속일리가 없을거야...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나서야 그가 조금 피곤해 보인다는것과 자신이 귀족치고는 조금 남루한 옷으로 남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아 빛이시여....! 왜 내 인생에서 내가 좀 아니였으면 싶은건 다 들어맞는건데요 왜?"
매달 기사 봉급에서 성금도 꼬박꼬박 십일조로 보내는구만! 이라고 자기가 모시는 신께 한탄하던 체트라는 곧 키엘이 건네준 서류를 받아서 살펴보다가 그가 하는 말을 듣고는 눈가를 찡그렸다.
"하?"
그래 이자식은 잘난 집안 놈들답게 매번 곱지 않은 말을 잘도 꺼내서 속을 꼬이게 만들었었지 참. 정감이 안 가는 자식이라서 화가난다니까. 안그래도 너랑 나랑 서로 더럽게 안맞는건 잘 아는데 말이야.
"맘에 안들면 아닌척하면서 베베 꼬는게 여전하구만? 하하하. 이 맘에 안드는 ㄴ... 아니. 암튼. 이봐. 뭘 걱정해서 그렇게 친긍한척 구는지는 알겟는데 말이야, 너도 나도 나이를 허투로 먹은게 아니잖아?"
서류를 훑어보며 벌써부터 살짝 뒷골이 땡겨오는것을 무시하는 체트라는 맘에 안든다는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일단 예전만큼 그렇게 막 행동하진 않는다고. 게다가 너와는 달리 나같은 녀석이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게 얼마나 힘든데 벌써 딴데로 가? 누구 좋으라고? ...하하. 미안하네. 속이 좁아서. 그치만 앞으로 얼굴은 좀 오래 볼 사이니까 일적으로만 지내고, 뭐... 막 먼저 가시를 세우거나 하진 않도록 조심은 할테니까 벌써부터 그렇게 보내래고 하진 말아줘."
자기도모르게 가시를 세워버린 그녀는 속으로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한숨을 쉬며 그와 시선을 마주보는것을 피해 서류에만 눈길을 줫다.
그녀가 일어나고 이 단장실을 떠나기까지 일정했던 그의 표정이 그녀가 나가자 마자 갑자기 일그러지면서 가지고 있던 서류에 얼굴을 묻어버린다
"키엘 리너스...나이를 허투루 먹은거냐 좀더 냉정하게 대할수있잖아 넌 페베네 가의 아들이고 이제 단장이기도하고 겨우 옛날에 자기보다 잘나던 동기에게 찌질하게 텃세부리는게 니 전부란거냐"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 차라리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내일아침 그녀를 좀더 냉정히 대해보자라 결심한 키엘은 못다한 일을 마저하기로 한다... 는 무슨 결국 거의 새벽늦게까지 하다 졸도하다시피 잠에 든 그는 다행히 아침나팔소리에 깨 어젯밤과 같이 피곤한 얼굴로 단상앞에 선다
"...이상이 오늘의 사항이고 새로 소개하도록하지 이쪽은 체트라 예이예르 라바룸 앞으로 우리와 함께할 기사다"
간단한 훈련과 그녀의 소개후 그녀를 데리고 식당으로 간다 확실히 처음 여자가 들어오다보니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는 놈들도 있고 몇몇은 군중에 숨어 그녀에게 하찮은 말을 내밷는 놈들도 있다 '이걸 계기로 나가주면 좋을텐데...'하지만 그럴일은 없을것같다
"결제서류를 처리할땐...음. 아니다. 뭐 서류업무는 여기서도 비슷하구만. 안건같은건 나중에 회의때 정리한 다음에 해결하는거고?"
애나 낳을 것이지...라든가 저 자리도 분명 위쪽의 귀족놈에게 엉덩이를 놀려서 얻은거겟지 라든가 저 손좀 봐. 장갑을 벗으면 분명 단 한번도 검을 쥐어본적이 없는 손이 나오겟지... 여자들은 담장 너머로 나오는것도 재수없구만... 저 꽃 한송이보다 무거운건 쥐어보지도 않은 계집이 라든가 하는 말들을 가볍게 무시...를 한다지만 가까이에 있는 키엘만이 체트라의 분노를 알 수 있을것이다. ...세상에. 나이프가 이미 두번 꺾여있었다.
"뭐 남자들 가랑이에서 태어난 놈들도 아니고 자기 어머니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을것같은 수준들이 떠드는건 익숙해서 말이지."
...계속 꺾이던 나이프가 아예 부러져버렸으므로 저빨개진 것만 뺀다면 태연자약한 표정과 말투는 금방 거짓임이 들통날 것 같았다.
"오. 그래도 겉으로는 친절한 남자가 되셧군요. 감사해라..."
...어디서 꺼낸건지 모르겟지만 새 나이프를 꺼내며 친절히 키엘의 잔에 식전에 마시는 도수가 거의 없는 와인을 따라주는 체트라는 저놈들 모두 빛의 이름으로 언젠가는 한 번씩 다 무릎꿀리라고 생각하였다.
대충 그녀가 어떻게 여기까지왔는지는 알겠다 실력이야 확실하니까 남자인 나보다니까 말다한거지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난 언제나 친절했지만"
역시 저 성질은 어디안가는구만 나이프를 이렇게 종잇장처럼 구겨버리는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와인을 든다 이렇게 보면 사이좋진않아도 어릴적 같이 지내던 사람과 있는게 썩 나쁜것은 아닌것같기도 하고... 나이프를 한번더 쳐다보곤 곧 그런생각따윈접었지만 물론 저녀석 빼고 말이지 나도 저런 추잡한 말은 좋아하는편은 아니지만 여기서 내가 나서는것도 웃기는 일이니 가만있기로한다 소문이라도 터지면 더 귀찮다고
그리고는 뒤에 들리는 소리를 씹어먹기위해 요리를 낳자마자 그녀는... 간신히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입에 빨리 넣기 시작한다. 아아 최전방이라든가 잔뜩 구르는 곳에서 무지막지하게 일만하던 그녀이기에 수도에서 그나마 가까운 쪽에 속하는 이곳의 밥은 그녀에게는 아주 맛있는 식사였었다. 이런것을... 그녀는 거부하거나 잠시라도 미룰 수 없었다! 적어도 이런식으로 먹을것을 좋아하는 모습은 어린 시절, 훈련에 적응하느라 다같이 피공해 빠지는 종기사 초기일때의 그녀와 아주 판박이였다.
"여기 진짜 좋다..."
보라색의 눈을 잠시동안 어린애처럼 반빡이며 키엘을 바라보던 체트라는 새삼 이런걸 먹으면서 그동안 자랐을 키엘을 부러워하였다. ...하. 1년 전에 밀리웨카 전투에서 보급품이 끊겨버리고 3주동안 수비만 하면서 버틸때는 이런걸 살아서 먹을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었는데... 역시 살기 잘 한 것 같았다. 라고, 어제만 해도 잔뜩 나쁘게 대한데다가 오늘도 으르렁거린 사람을 눈앞에 두고 한 끼 식사에 감사와 기쁨으로 넘쳐나는 체트라였다.
"...아. 그러고보니 아침수련시간 말고도 다같이 대련장을 쓰는 시간같은거 있어?"
//사건... 사건이라... 왠지 직장의 연속일것 같지만 사교파티라든가 식사자리에 둘 다 초대되는거? 아니면 어... 정말 가볍게 짬짬풀이식이라면 둘이 잠깐 쉬고 있을때 잡담은 사건이 아니구나! 어엄... 중세 판타지니까 적당한게 뭐가 있으려나...
"체트라 내가 너에게 다른 귀족여자들 처럼 구는건 바라지도 않으니 적어도 식사예절은 지키지 그래?"
체트라완 정반대로 식기소리도 내지않고 천천히 밥을 먹는 키엘 그녀의 그 최소한의 예의도 마음에 차지않는건지 그저 훈련에 필요한 칼로릴를 위해 만들어진 음식으로 예의를 지킬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키엘은 체트라를 나무란다 데쟈뷰를 느끼는듯한 키엘 그도 그럴게 종기사때도 종종 이런이유로 그녀와 싸움이 붙었기때문이다
"왜그러지?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없는걸로 안다만..."
혹시 훈련을 하려고 저러는건가 싶어 갸웃거리는 왠지 그녀의 노력이라면 망치고싶어진다 재능있고 노력하는 녀석은 분명 내가 상대도 못할테니까
/아 병단 대표로 사교장이라도 나가볼까...나중에 꼰대들이 그래도 체트라가 꽃이니까 파티에 나오라고 하고 키엘한테 대신나가래니까 자긴 중요한 일있어서 안된다고 했다 그 파티에서 만나는거지 중요한일이란게 여자만나는거였냐면서 키엘은 대차게 까이고 나름 부모님부탁이라 중요하다말한 키얼만 불쌍할 시나리오!
살짝 툴툴거리던 체트라는 그나마 나잇값을 하게 되었다는 말은 사실인것인지 좀 더 조심스럽게 식기를 놀려가며 먹기 시작합니다만 이미 절반 이상은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거 먹는거 갖고 되게 째째하게 구는구만 싶지만 일단 사서 싸움을 만드려는건 피해야 하니... 하. 그래도 저 소심하게 쩨쩨한놈 같으니라고. 저놈 저거 어릴때부터 꼭 같이 먹게될 때마다 앞이나 옆에서 그렇게 잔소리를 하면서 거들먹거리더니 또 저... 아니다. 내가 참자. 참아. 성인인 네가 참는거야 체트라. 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이미 표정에 그 툴툴거림이 써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체트라는 곧 키엘의 말에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잔에 와인을 따라 마신 뒤 대답한다.
체트라는 자기 앞으로 새로 부단장이 되었으니 제국의 군권을 거의 쥐고 있는 집안의 조촐한 파티에 초대되었다는 내용의 초대장을 보여준다.
"기사단마다 한 명씩 대표가 가야되는거라고 왓던데..."
니가 역시 단장이니까 대표잖아. 그럼 니가 가는거 맞지? 라며 키엘을 슬그머니 바라본다. 아씨. 근데 나 장신구라고 해봐야 엄마의 유품인 목걸이랑 이 반지빼곤 없는데다가 드레스는 저번에 우리쪽 작전지를 옮기면서 짐챙기다가 왠 매복병이 쏜 불화살에 맞아서 못쓰게 되버렸단말야. 한 벌 맞추던가 사야되는데... 귀찮아. 춤도 잘 못춘단말야... 게다가 여자애들이랑 수다떠는것도 은근 짜증나고. 라는 한탄을 속으로 하며 왠지 이런 자리는 잘 나갈것 같은 키엘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본다.
상큼하게 웃으면서 거절하는 키엘 나한테는 오지않은 초대장인데...아마 군부에서도 지들끼리 칙칙한 총각파티같은 분위기는 내고싶지 않은것이겠지 아니면 우리 부대는 여성군인도 있을만큼 평등합니다-라고 자랑이라도 하고싶던가...파티란게 그렇잖아? 보여주기식으로 자랑대회하는곳 어머니는 왜 나를 그런곳에 보내지 못해 안달인것인지
"난 그날 저녁에 선약이 있어서 말이지 게다가 너도 그런데 나가봐야 하지 않겠어? 다른 귀족여성들에게서 품위란것도 배워야지"
그러고보면 저녀석은 파티체질은 아니였지 억지로 들어가면 기둥이나 테라스로 도망치듯 들어가고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아아 한번 구경하고싶은데 말이지 선약만 아니였으면 보는건데
잠시동언 키엘에게 기대를 건 자신을 탓하면서 체트라는 표정을 찡그리며 남은 밥을 다 먹었다. ...거절을 당하고 난 뒤에 먹어서 그런가, 어쩐지 밥이 아까보다는 맛없게 느껴졌다.
"...나도 중요한 자리 정도는 가끔씩 나간다고."
라고 볼멘소리로 말하였지만 곧 푸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런 자리는 역시 키엘이 제격이였다. 늘 자신과 다르게 처세술에 능하기도 하거니와 춤이라든가 인맥같은것이라든가 가만히 있어도 다 띄워줄 사람들이 넘쳐나는 어마어마한 집안의 권력은... 그건 체트라 본인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억울할만큼 키엔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였다.
"에효. 그래... 단장님이 구르라는데 뭐 별수 있냐만은..."
최대한 테라스랑 기둥, 안되면 정워으로 도망칠 궁리를 하던 체트라는 아직 드레스도 안 사버렸다는 생각에 뜨악하며 한숨을 재차 쉬고는 상큼하게 웃눈 키엘을 한 번 노려보다가 말았다. ...괜히 주름생길라.
"그럼 점심 이후에 업무만 조금 부탁할게. ...드레스랑 뭐랑... 엄. 이래저래 구할게 많아서말야. 시간맞추려면 어쩔 수 없잖아."
한 병단의 단장으로써 말하긴 부끄럽지만 어머님의 만류에 근래 나갈수있는 파티란 파티는 다 나가봤어 그런데 저녀석을 찾을수없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잠깐,여기서 더 내업무를 늘리라고?아니 그렇겐 못하지 차라리 끝나고 드레스와 기타 악세사리는 나와같이 보도록하지 잘아는 녀석도 있으니까"
여기서 더 늘리면 어제같은 상황이 무한반복 그결과 난 방년20대 꽃다운 나이에 일에 치여죽을지도 그럼'키엘 리너스 페베네 과도한 파티와 공무 결제를 병행하다 여기잠들다'라는 묘비명이라도 붙을지도...그것만은 막아야한다 키엘은 단기간에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을 꺼내며 체트라에게 같이 갈것을 제안한다
"레이디의 L자도 모르는 녀석보단 내가 나을것같기도 하고 말이지... 별로 네녀석이 신경쓰이는건 아니야! 너가 병단 대표니까...뭐 니 센스로는 병단을 욕보일것같아서 말이지 그것뿐이니까"
...전혀나 다름이 없는 가끔이였다. 이런 그녀가 레이디라니... 레이디 체트라라고 불려야한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쿠. 의도가 빤히 보이지먼요 뭐 단장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면야 감사히 호의 받들어모시겟습니다 이거야."
내친김에 기사단 경비로 하면... 이라고 얘기를 꺼내려다가 피곤해보이는 그 모습에 얌전히 그 생각은 버려버린 체트라는 피식 웃으며 뒤돌아가는 그를 보다가 자기도 곧 일어난 뒤에 일. 일. 일. 일의 연속이 이어져있었다. 물품 수량을 하나하나 직접 맞춰보는것에서부터 다음기 다른 기사단과 친목수련에 드는 예산조정에다가 회계장부를 들추어 보며 다시 장부정리를 하는것과 자잘한 왕궁의 공문들을 확인하고 보고서를 따로 올리는것에다가 중간에 아랫기사들이 협조를 해야하는 일을 할 때마다 사사껀껀 시비를 터는 다른 기사들을 일하는 중간에 으슥한 골목같은 곳으로 데려가서 딱 다음날 훈련만 간신히 할정도로 밟아버리는것까지... 그리고 정말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는다면 파티고뭐고 다 때려쳐야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체트라는 일을 그만두고 키엘과 함께 드레스며 악세서리를 고르러 갈 준비가 되었다. ...물론 돈주머니와 함께.
점심식사이후 병단의 비품서류 결제,의미없는 다른 병단과의 회의,문제있는 병사에 대한 개인적 면담등등으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아무생각없이 결국 이시간이 되었다 여자를 에스코트하는건 자주있던 일이였지만 체트라를 그 여자라는 범위에 넣어도 되는걸까 내눈엔 그저 단순한 친우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니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 에스코트해줘야하나? 아니근데 해주면 괜히 뻘줌해질것같기도 하고...아니 않해주면 그거대로 신사의 도리가 아니잖아 페베네가문에 그런먹칠은 하기싫다고! 이런저런생각을 하는사이 저멀리서 체트라의 모습이 보인다
"아 체트라 여기다,일단 제단사에게 가서 드레스부터 마추도록 하지,마차를 저쪽에 대기시켜놨어"
뭐하냐면서 재촉하려던 체트라는 곧 말을 더듬으면서 안내하려는 키엘과 그의 팔장을 잠깐 오묘하게 쳐다보다가 키득이면서 말하였다.
"오오. 그래도 레이디 취급은 해주네?"
짐짓 놀리는 치라도 하지만 매우 밝은 표정으로 간만에 남자옷을 입은게 흠일 뿐이지 꺄르르르거리며 웃은 그녀는 곧 키엘의 팔장을 기꺼히 끼면서 키엘과 함께 옷가게에 들어가보았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모든 체트라 고문하기 시뮬...아니. 옷고르기 및 때빼고 광내기가 시작되었다.
"아가씨 힘 주세요! 한 번 더 조입니다!" "꺄아아아악!!! 그만 해! 그만! 애초에 뱃살도 없구만 왜 코르셋을 하는거느... 흐읍!!! 아악!!!!" "안 돼요! 이 골반이랑 가슴을 살리는데 얼마나 코르셋이 중요한데요! 이 좋은 몸을 그대로 저 먼지같은 남자옷으로 썩히는건 죄! 랍! 니! 다! 자아, 좀 더 힘주면 작품이라고요!" "싫어어어....!!!"
옷을 갈아입는 방에 들어가 키엘이 기다리는 곳 까지 들릴만큼 비명소리만으로 코르셋의 무서운 갑갑함을 증명시킨 체트라는 곧 키엘, 옷가게 주인등에 의해 머리가 새하얘질때까지 자기는 그냥 거기서 거기인 천쪼가리를 새는것을 포기할때까지 입혀지면서(그와중에 들린 칭찬따위, 이미 체트라에게는 고문관의 서슬퍼런 웃음소리와 다를바없게 들렸다.) 마네킹같은 짓을 당하는가하면, 드레스를 다 고르자 마자 신발을 골라야해서 들어간 구두가게에서는 발이 다 까질 것 같이 굽이 높고 걷기도 불편한 아찔한 하이힐들과 사투를 벌이기도 하고 악세서리 가게에서는 하마터면 체투라가 이번만 하려고 갖고온 어머니의 유품인 목걸이를 점원이 잘못해서 버릴뻔하는 바람에 난리가 나는데다가 헤어샵에서 머리를 만지고 화장까지 해버린 그녀는 파티 이전에 이미 체력이 방전나버렸다.
"후으... 키엘... 나 살아있어?"
생기를 잃은 보라색 눈동자로 키엘을 바라보는, 평소보다 매우 아름다운 체트라는 마차에 앉자마자 엎어지듯 의자에 기대었다.
옷가게에 입성한 순간부터 키엘의 얼굴엔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전장안에서 그어떤 상황에서도 지지않을 체트라가 겨우 코르셋하나에 저리 쩔쩔맨다니 코르셋이 여성을 순종적으로 만들어준다던 어떤이의 말이 순간 머리를 스치듯지나간다..그땐 별소리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런것같기도 하다 정신없는 체트라옆에서 본인도 제복을 벗고 익숙한듯 체트라 못지않게 차려입는다
"어 살아있어 너도 하다보면 적응될꺼야...그건 그렇고 여기에 여러명의 여자를 데려와봤지만 너는 어떻게 그런소리를 낼수있는거지?"
확실히 그녀는 어느때보다도 아름답다 그렇기에 키엘은 체트라에게서 낯썰음을 느낀다 제앞에 있는게 체트라가 아닌 다른 귀족 여인처럼...그래서 그런지 마차의자에 기대어 앉은 체트라를 일부로 칭찬보단 장난을 거는식으로 답한다
"그럼 난 전에 말한 선약이 있어서 여기서 내리도록하지 넌 파티에서 열심히 숨박꼭질이나 하고오라고"
라 말하고 어떤 귀족 가문의 여인하고 저녁식사를 할 계획인 키엘이였지만... 그 여인의 갑작스런 파티제안 뭐지..그 파티에 가서 나와 자신의 사이를 공표하려는걸까? 여인의 가문도 나쁜편이 아니고 여인자체도 꽤나 준수한 아가씨니까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이렇게되면 나중에 결혼까지 가야될테고...생각해보적없는데 하지만 마지막 여자의 울먹임에 결국 파티장소도 모르고 참여를 결정하게된 키엘 곧 키엘은 이결정을 후회하게된다 정확하겐 파티장에서 체트라를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다 처음엔 체트라의 존재에 당황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곧이어 한번이라도 페베네 가문에 연을 닿아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그녀를 생각할 틈이 사라진다
여성들이여! 코르셋을 벗어던져라! 라는 선전문구를 가잔 잘 이해할 것 같은 체트라는 평소에 비해 숨이 갑갑하게 쉬어지는 것과, 움직임이 제한적이 되는 이 드레스와 구두같은것등이 영 맘에 들지가 않았다. 아니, 다른 여자들은 어떻게 이런것을 견디고 살아간단 말인가? 그들은 전부 다 철인인것인가? 라는 어이없는 생각까지 하면서 자신의 피부와 머리카락과 함께 우아한 조화를 만드는 새하얀 드레스의 앞자락을 조금 손보며 키엘의 비꼬는듯한 질문에 화장으로 한껏 꾸며져있는데다가 지쳐있느라 힘이 빠져 평소보다 청초한 외모를 하고 있는 그녀는 반사적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키엘을 곁눈질로 슬쩍 바라보다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한숨을 쉬었었다.
"으으... 진짜 이건 몇년을 해도 익숙해지질 않아. 안될거야 난... 안될거라고..."
그렇게 음침한 말을 뱉었던 그녀는 곧 키엘이 내리자 살며시 손을 흔들어주고는 자신도 얼마안가 마차에서 내려 파티장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들이 데려온 여자들과 시종을 합쳐도 과반수 이상이 남자인 파티장은 체트라가 간절이 바라던, 사람들이 없는곳을 피해다니는 것 또한 불가능할정도로 단순히 그녀가 여기사임에도 부단장까지 오른 인물이라는 이유만으로나 수작을 걸려고 오거나 그나마 과거에 그녀와 악연이 아니라서 오가나 하는 등등의 남자들과 그 남자들의 뒤에서 수근대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다른 여자들덕분에 체트라는 파티에 온 것이 영 마땅치가 않았다. 그러던중 체트라는 예전에 잠깐 알던 귀족 아가씨에 의해 간신히 사람이 좀 적은 곳으로 구출해졌다.
"그나저나 왠일이어요. 라바룸양만이 이번 파티에 오신다고 들었는데 페베네님도 오시다니..."
잠깐 한 숨 돌릴겸 시종들이 들고 돌아다니는 쟁반 위의 칵테일을 마시던 체트라는 곧 그 아가씨가 가리키는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저기에 키엘이, 그것도 왠 괜찮은 아가씨와 함께 있었다. 빛이시여... 저 ×끼가 지금 날 물먹인것입니까?
우리 둘다 레스가 텀이 느린 편인데다가 서로 사정이 있어서 접속 자체가 힘들다는건 사전에 미리 합의를 봐서 서로가 편한때 레스를 올려두는 식으로 했었지만 최근에는 기다리는 텀이 기하급수적으로 길어진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면 기다리기가 조금 힘들어. 답례까지는 아니더라도 3일 이상씩 서로가 잠수를 타게 되거나 아예 못 들어오게 될 때는 무슨 사정이 있겟지 라고 생각하더라도 솔직히 서운해. 이쪽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게 왠지 잊혀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나만 무작정 기다리는 것 같아서 지치고. 만약 이 레스를 본다면 가볍게 근황정도는 말해줄 수 있을까?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라든가 그런것만 알아도 난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 번씩 돌리는걸 마음 먹고 기다리거나 할 수 있거든. 어쨋든 혼자 조바심을 내거나 서운해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까. 그런데 계속 이런식으로 아무 말 없이 며칠씩 기다리는것만 반복되면 더이상은 내가 진이 빠져서 스탑을 달 것 같아. 부담 생기고 우울하게 만드는 글을 써서 미안해.
"요한 신부니이임-!" "마리아 자매님? 무슨 일이시기에 이렇게 뛰어오셧습니까?" "교황, 교황청에서 방금 전 신부님께 직속으로 지시가 내려지셧어요. 전 보면 안된다고 하여서 내용을 보진 않았지만 봐주세요."
마을의 신부답게 잠시 수도복을 벗고 잡일복으로 갈아입은채 마을 사람들의 농사를 돕다가 갑자기 들어온 소식에 잠시 놀라던 요한이였으나 곧 요한은 예의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마누ㅠ스 1세로부터 온 명령서를 읽었다. 거기엔 동료사제였던 마뉴스의 배신과 함께 그가 할 것으로 예상되는 끔찍한 행보와 그를 반드시 막아서야만 한다는 내용의 명령이 그가 현재 있을것이라고 여겨지는 위치와 함께 써있었다.
"아믓시엘..."
...어디선가 들어봣던 옛 성인의 이름을 읊으며 눈을 깜박이던 요한은 자신의 옆에 어느세 모여든 순진한 시골 사람들에게 옅은 웃음을 지으며 그 명령서를 주머니 깊숙히 넣었다.
"갑작스럽지만 신께서 이곳의 인연을 정리하라는 계시를 내리셧나봅니다. ...제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다른 수도원으로 부임하라는 말씀이 적혀있군요."
저마다 불안해하다가 금방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둘러대는 요한은 속으로 선량한 그들에게 신의 자비와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그들에게 거짓을 고한 자신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며 떠날 채비를 하여 불과 한 시간만에 모든걸 정리하고 소박한 짐들과 클레이모어를 챙겨 마을을 떠나려고 하였다.
"...신부님! ...꼭 살아돌아오셔야 돼요." "자매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투신부에서 물러난 저를 전쟁터로 다시 보낼리도..." "신부님은 심각한일을 두고 거짓말로 할때 새끼손가락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시죠?" "들켯습니까?!"
그 말에 놀란 요한은 자기 손가락을 잠시 머슥하게 쳐다보았다.
"...농담이에요. 그냥 몇 년동안 마을 일원으로 사셧던 분이니까 알아차린거 뿐이거든요. ...신의 안녕이 함께 하시길 빌어요."
안도하는것도 잠시, 씁쓸하게 정이 들은 마을과 수도원 동료중 한명인 그녀를 보던 요한은 끄덕이며 길을 나섯다.
그리고 여러날을 교황청에서 오는 바그너의 행선지와 고된 여행길과 수련, 곳곳에서 들리는 수상하고 소름끼치는 소문과 고통받는 사람들의 틈속이서 조용히 기도를 드리며 나아가던 요한은 마침내 바그너에게 다다를수 있었다. 자신이 아는 바그너는 분명 서글서글한, 긍정적이고 유쾌하던 악마라서 함께 전장을 다니는 와중에도 주변 동료들을 제법 기운차리게 해주는 좋은 사제였기에 요한은 그가 타락해서 모든것을 재로 돌리려 한다는 말이 믿기질 않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바그너의 오래된 수도복을 입은 악마를 보자 평정심을 곧잘 유지하던 요한의 마음은 잠시 흔들렸다.
그의 피묻은 , 배트가 파르르 떨려왔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선혈들이 바그너의 발밑에 낭자하고 있었고 흔들리는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신의 하수인에게 - 바그너는 신이 하수인이 기억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라진채로 . 그를 맞이했다. 왼쪽눈에서 흘러내리는 검은색 액체가 바그너의 역관절 다리 사이를 흘러내리면서 발밑에 가득한 피 위에 떨어지고 있었고 . 멈추지 않는 검은 액체를 뒤로하며 - 바그너는 당혹스러워 보이는 표정의 신의 하수인에게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배트를 들고서는 걸어내렸다. 이상하면서도 기분나쁜 분위기와 액체를 뚝뚝 흘러내리면서 아무말 없이 무표정하기 그지없던 바그너가 입을 열었다.
다문입을 열자 . 그의 경계심 섞인 목소리와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거칠게 불법화음을 내뱉으며 당신을 귀를 찌르면서 사납게 말하길
- " 신의 계략에 빠진 불쌍한 신의 하수인이여 , 고난과 역경을 밞고 걸어온 자여 . 널 기다렸다 "
사납던 목소리는 점점 으르렁 거리는 짐승소리로 변해가길 . 이내 바그너의 딱딱하고 무의미한 목소리가 울려퍼지길 . 피에 뒤섞인 재를 밞으면서 요한에게 가까이 다가선 바그너는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 거리기 그지없었다. 감긴 눈에서 계속 흐르는 검은색 액체가 . 요한의 발앞에 떨어졌을까. 중저음의 진지한 목소리로 바그너는 요한의 대답을 조용히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목에 메여진 십자가모양을 목걸이가 때늦은 바람에 잠시 살랑거렸고 두꺼운 검은 꼬리가 . 마치 당장이라도 때려죽일듯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 행동과는 다르게 마치 로봇처럼 소름끼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바그너는 흉흉하게 요한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어내렸다.
바람이 , 매섭게 불어온다. 신이라는 작자가 노하기라도 한것일까 . 조금 무게가 나가는 배트를 들어보인 바그너는 자세를 고쳐잡는 요한을 바라보며 - 무표정하게 뒷걸음질 쳤고 . 진지한 표정으로 신을 부르는 모습에 . 무표정이었던 바그너의 표정은 조그마하게 찌푸려졌다. 끔찍하고 믿을수없다는듯이 표정을 지어보이는 요한을 바라보며 . 아무말 없이 요한이 무엇을 하기 기다린 바그너는 그의 말에 나긋하게 박수를 몇번 치고서는 다시금 무표정한 표정으로 . 요한을 살펴보듯 응시할뿐이었다. 잠시 십자가를 만지작 거린 바그너는 . 그의 기도를 깜박거리면서 바라볼 뿐이었다. 왼쪽눈에서 흘러내리는 검은액체는 어느덧 요한의 발밑에 스며들고 있었고 . 바그너는 신의 계략에 빠진 어리석은 동료를 안타깝게 생각했다.
잠시 안타까움이 섞인 목소리로 바그너가 . 말하길
-" 나의 옛 동료이자 . 어리석은 신한테 속고있는 자여 . 어찌 - 아직도 올바른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신을 믿는것이냐 . 신에게 속는 자들을 편안함을 위해 교화시키는것이 뭐가 나쁜것이지 "
그가 입을 열자. 날아오는 사슬에 입을 다물고선 . 쇠사슬의 형상으로 보이는 단검을 유유히 피해내길 . 바그너가 착지한 자리에서 밞힌 재들이 땅에 스며들어 땅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완전히 세뇌당한 그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고선 십자가를 바라보며 당신이 무엇을 할지 응시하며 당신을 살펴보길 그 눈길은 마치 질문을 가득하고싶은 눈이 아닌 대답하고 싶어하는 감정이 섞여있는 묘한 눈이었다. 땅에 박힌 날카로운 쇠붙이들 위에 배트를 올리고서는 바그너는 바보같이 행동하는 자신의 옛 동료이자 신의 하수인에게 공격도 하지않으면서 소름끼치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내 평소의 선한 모습 사이에 숨겨진 매같은 눈을 빛내며 얼굴에 있는 모든 표정을 없애버리는 요한은 한쪽으로 검은 눈물을 흘려대는 바그너가 자신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묵직한 베트로 단검을 쳐내버리자 땅에 박힌 검들과 자신을 얕보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 모를 여유넘치는 바그너에게 클레이모어를 양 손으로 잡은채 겨누며 말한다.
"교화와 무고한 목숨을 당신의 임의로 빼앗는것을 동급으로 여기시지 마옵소서. 그대가 죽인 사람들중에 안식을 갈구한 자도, 그대의 뜻에 동조하여 스스로 목을 내민자도 없는데 스스로 그 무기를 들어 그들의 목을 쳐버리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더 그런식으로 죽이실거죠?"
왜 나를 안타까히 여기십니까 형제여... 나야말로 그대가 이렇게 될만큼 괴로워 했다는 것에 이렇게 슬픈데 말입니다.
"나에게 내려주신 당신의 사슬로, 당신의 뜻에 반하는 자를 묶어주시옵소서!"
땅에 박힌 단검들이 요사스런 검은 빛을 내며 갑자기 땅 위로 바그너와 요한 주위에 빗금처럼 둘러쌓이며 결계가 쳐지었다.
"당신을 이것으로 영원히 막을 수 있을거란 생각은 안 합니다만, 적어도 당신을 막을 다른 사람이 오기 전까지 제가 당신의 발을 묶어버릴 수는 있겟지요. ...형제여. 여기서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저 또한 전투신부 요한으로서 최선을 다해 당신에게 덤비겟습니다."
사실 말을 이렇게 길게 했던것은 마지막 경고도 있었으나 육탄전 전문인 자신이 성법을 연달아 두개씩이나 쓴 까닭에 잠시동안 몸이 둔해지고 성법을 쓰기 힘든 시간을 보내버리기 위해 요한이 시간을 끌어댄것 뿐이였다.
매같은 눈을 날카롭게 응시하던 바그너는 잠시 진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배트를 꽉 쥐고서는 자기자신한테서 클레이모어를 양손으로 겨누면서 소름끼치게 바라보는 요한을 응시하며 - 바그너 그또한 그의 클레이모어를 배트로 막아낼 준비를 끝마치고서는 그가 공격해오길 기다렸다.
요한의 질문에 그가 잔잔한 목소리로 말하길
- "안식을 갈구하지 않았다고 ? 몇명을 그랬을지도 모르지 . 하지만 그들은 다들 죽어가고 있었다. 부정부패와 늘 약탈만을 일삼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은 희망을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 오면서 너도 보지 않았느냐 . 그 동정심 넘치던 사람들으 모습을 그들의 냄새와 그들의 눈과 그들을 표정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말을 하는것인가"
바그너는 잠시 위를 올려다보며 하늘을 응시했다. 맑디 맑은 구름 . 지금 상황과는 다르게 비가 올것같지도 않은 예와 다름없는 하늘이었고 . 바그너는 이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하며 . 그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생각과 사상의 차이가 이렇게 무섭다니. 영 마음에 들지않는군 . 세뇌의 무서움을 다시금 깨닫으면서 바그너는 슬픈표정을 지어보이는 요한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아무감정도 담기지않은 표정속에서 그는 무슨생각을 하고있을까. 서글픈 바람이 바그너의 몸을 강하게 때려오고. 흐릿해지는 시야는 마치 사람을 죽인것에 대한 잠시동안의 벌인양 아파왔다. 내색하지않으면서 . 잠시 왼쪽눈을 손으로 가린 바그너는 손틈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검은 액체를 뒤로한채로 어느덧 쳐진 결계에 . 나긋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잠시 표정을 찌푸렸던 바그너가 옅은 신음을 내뱉으면서 말하길
- "어째서 , 신을 인생으로 삼고 신으로 모든것을 삼는것이지 ? 나의 어리석은 동료여 동료여 너야말로 나와 함께 그들에게 안식을 심어주지 않겠나 "
그들이 고통받고 있어 . 그아이가 기다리고 있어 . 잠시 입을 다문 바그너는 차디찬 바람을 만끽하면서 힘들어보이는 그를 바라보았다. 묘한표정으로 바라보던 바그너는 배트를 들어보였다. 뚝뚝 떨어지는 왼쪽눈의 검은 액체가 어딘가 서글프게 흘러내렸고 . 찬찬히 느긋하게 요한의 말을 기다렸다 .
"나와 당신의 차이점이 여기서 나는군요. 제 대답은... 아니. 대답또한 별 쓸모가 없겟군요."
잠시동안 기이하게도 검은 눈물을 흘리며 나긋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타락을 권유한 바그너를 보며 진즉에 정리해야할 옛 전우로서의 우정이 떠올라 자신의 얼굴에서 씁쓸한 표정이 떠오른듯 했으나 요한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키의 반만한 그 무거운 양손검을 사정없이 바그너에게 휘드르기 시작하였다.
절대 그의 손에서 무고하게 사람들이 죽어가게 할 수 없다. 죽음은 그냥 끝이 날 뿐이지, 모든 끝난채로 덮힌 문제들을 산 사람의 몫으로 남겨버릴 뿐이라고 그는 어쨋든 그렇게 생각하며 바그너에게 찾아오는 동안 보았던, 요한이 돕거나 돕지 못했던, 그리고 아주 가끔이나마 요한을 지탱하여준 그 비참할뿐이였던 사람들의 얼굴과 함께 사제가 되기 전까지 그들과 아주 비슷할 뿐이였으며 지금도 약간밖에 다르지 않은 자신을 떠올렸었다.
'아믓시엘...'
신이시여, 죽은 성자여, 부디 그들을 도우소서. 그리고... 내 앞에 이 불쌍한자와 이자에게 칼을 드는 나를 용서하여 주소서.
- "형제여 , 너의 목소리를 고통받는 사람들한테 들려줄생각이 없는건가 안식을 갈구하는 신에게 고통받는 그들을 편안하게 해줄 생각은 없는건가 ? "
서글픈목소리 었지만 , 무표정을 유지한 바그너는 기이한 검은 눈물을 흘러내렸다. 뚝뚝 멈추지않는 눈물로 당신을 응시하면서 . 떠오른 씁쓸한 표정을 놓치지않고 . 본 바그너는 배트를 들어보였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양손검을 자신한테 휘두름에도 불구하고 바그너는 아무 공격도 안하면서 . 빠른 발놀림으로 피할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아직도 눈을 보지못하는 그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 기분나쁜 바람이 방향을 바꾸고 . 작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바그너의 귓가에 맴돌어오는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눈을 떠내렸다.
서글픈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진채로 그가 조용히 바람이 섞인 목소리로 말해오길
- " 앞을 보지않는 자여 너와 함께 라면 그들을 막을수 있을터인데 . 어째서 날 막는것이지 ? "
땅에 끌리는 배트가 소름끼치게 들려온다. 재들을 쳐내고서는 . 무표정하게 동요하고있는 그를 응시했다. 전혀다른사상과 다른 생각 - 요한이 강력하게 세뇌당했다고 바그너는 생각하면서 먼지바람을 일으키면서 높은곳에 다리를 꼬고 그 꼰 다리위에 턱을 괴고서는 앉았다. 마치 계속 지켜보겠다는듯이 요한의 칼들을 피해내면서 . 마치 모든것을 다 이해한단 표정으로 응시할뿐이었다.
그의 말들이 끝날때까지 묵묵히 검을 휘드르던 요한은 잠시 가파지던 숨을 고르며 다리를 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바그너를 올려다보며 새삼 자신과 바그너의 역량의 차이를 실감하였다.
현재 어느쪽으로 보든 전황은 그에게 유리한 쪽이였다. 잠깐의 틈으로 쳐놓은 결계는 확실히 그의 도주 경로를 막을 정도야 되었지만 그 이상으로 강력할 수는 없었다. 또한 자신은 그간 전장에서 이탈한 뒤부터 지금까지 기량이 확실하게 떨어져 있었다. 평상시의 요한이라면 이쯤에서 치고 그냥 빠지는 전략으로 후퇴를 하는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겟지만 지금이 요한은 후퇴는 제2의 선택지 정도로 남겨버렸다. 그것은 그가 바그너를 쓰러뜨릴 마지막 한 수가 있거나 해서가 아니였다. 자신과 적대적인것이 확실한 바그너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봐주는 이유와 그의 현재 상태등을 면밀히 알아놔야만 다음 한 수를 좀 더 정확히 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흔들리는 감정의 목을 죄이며 그의 서리같은 이성이 재빨리 속삭였다.
"형제여, 당신이 죽인 사람들이 당신에게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 방법만이 구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신의 의견에 따를 수 없습니다. 내 보잘 것 없는 세월동안 죽음으로 해결하였던 일들은 전부 다 지독한 혼돈과 새로운 문제점을 안고서 돌아왓었던 것을 저는 제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이 유일힌 구원의 방법이라고 믿는 그 방법이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지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두렵군요."
탁. 하고 흔들리던 마음 어딘가가 돌뿌리에 걸린것 마냥 갑자기 멈추어버렸다. 요한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바그너를 보며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보았다.
숨을 가르는 , 요한을 바라보며 . 바그너는 여유롭게 꼬았던 다리를 풀어내렸다. 아직도 앞을 보지못하는구나. 나의 오랜 벗이자 나의 오랜 형제여 . 검은색 날개는 소름끼치게 펄럭이고 있었고 .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바그너가 악마라는것을 실감시켜주고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버린걸까 . 무표정하게 요한을 응시하면서 잠시 생각에 빠지던 그는 . 동요하는 요한을 바라보며 잠시 미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매사 무표정이었던 표정은 . 잠시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 그의 표정을 바라보던 . 바그너는 흔들리는듯한 표정으로 . 입을 여는 요한을 바라보다가. 따라서 입을 열었다.
잠시, 떨려오던 목소리는 공중에 사라지고 바그너가 말하길
- "신의 , 하수인이 한일은 많았다 . 여러가지 방법이 그들을 맞이했지 . 하지만 그 방법들은 그들의 아이들을 그들을 옥죄었다. 나의 형제여 이 세상이 아직도 올바르다 생각하는가 . 고통스러움과 울음소리가. 성당을 찔러내리고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곳이 과연 옳은것인가 ? 나의 오랜 벗이자 형제여 ,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거이냐 - 네 손으로 도와주던 그들의 처음모습을 너는 기억하지 못하는것이냐 "
잠시 , 감정섞인 목소리가 흘러내려왔다 . 서글프면서도 . 무엇인가 가득 담겨있는 목소리는 점차 속삭이는 소리로 사라져갔고 . 축 내려앉은 꼬리를 뒤로하고 . 그를 응시했다. 흔들리고 있는건가. 오랜시간 동안 지내왔건만 바그너는 아직도 요한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보면 사상의 차이일지도 아니면 '종'의 차이일지도 몰랐다. 바그너 그는 악마였으니까.
바람이 차게 느껴진다. 더이상의 설득도 더이상의 말도 더이상 내뱉어 지지 않는다. 시간은 멈춰버린것 처럼 정적만의 가득했고. 재들만의 공중에 흩날릴 뿐이었다.
"...솔직히 당신의 말이나 행동을 들어본다면 지금 형제께서 여기까지 온 이유가 어느정도는 읽히기야 합니다만."
그동안의 훈련과 천성으로 인해 요한은 자신의 감정이 어떤식으로 있든간에 냉정한 관찰괴 판단, 분석을 끊임없이 계속하며 처음에 자신이 알던 바그너가 전혀 못 알아볼 만큼 변해버린채 이질적이게 되어버린 것에 느낀 당혹에 가까운 놀람이 사라진채로 바그너를 보았다. 어쩐지 머릿속이 덜덜거리며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것이 아니였다. 그건 그냥 요한의 바램일 뿐이다. 혼란스럽고 불리한 상황일수록 그의 머리는 예전에 그랬던 것 처럼 그저 서리마냥 차가워질 뿐이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그는 지금 어떤 동요를 일으키려고 하고 또 얼마나 자신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일까? 그는 예전의 바그너에 대한 것 과 지금 바그너에게서 얻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스스로도 제법 굵게 느껴지는 마디의 것들을 머릿속에서부터 정리하며 잠시 눈을 깜박였다. 우선 가장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를 와형적으로나 외면적으로나 완전히 되돌리는 것은 신이 이 자리에 와도 불가능 하다는 것 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바그너의 설득을 위해서든지 진심으로 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구원론에 설득당해서든지 그의 계획에 동참하는 순간부터 그는 정말로 자신이 막기 힘든 존재사 된다는 것 또한 확실하다. 그러나 이렇게 미적지근하게 서로 입만 벌리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요한의 머리가 내린 확실한 결론이였다.
"그렇다고 당신의 행동또한 옳은 것 입니까? 신께서 하신 것과 거의 비슷하게 보이는 이 짓이 정녕 옳은 것 이란 말입니까? 저 또한 지금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형제님. 그렇지만 이것은, 이런 방식으로는 아닙니다... 형제님. 저또한 아까와 같고, 형제님또한 변함이 없군요."
문득 그는 예전에 느꼇던 종류의 슬픔을 느꼈으나 그는 그 이상의 감정적인 동요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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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이불속에 숨어서 끙끙이는거 보는동안 오랫동안 키워와서 대략 내가 뭘 해줘야 하는지 훤히 꿰고 있는 애였지만 엄청 걱정하긴 했었어.
그나저나 전혀 예상 못 한 이유때문에 그렇게 아파하다니... 역시 뭘 키운다는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엄청난 일이구나 싶어. 어쨋든 고마워.
달라진것 없이. 똑같다. 그것이 바그너가 내린 생각이었다. 바그너는 별로 날카로운 눈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알수있었다. 그가 달라진점이 없다는것은 . 아니 달라진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신에 대한 믿음일것이다. 속고있는 자여 눈이 가려진 자여 어쨰서 보지못하는것이냐. 자신의 옛 형제는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바라보면서. 심지어 자기자신 조차도 이질적일터인데. 그로써는 어떠할까. 복잡해보이는 표정의 그를 응시하면서 . 모든것을 보고있는 그처럼 - 바그너는 입을 열지않았다. 그가 무엇을 하든 통하지 않을것이란것을 알았기떄문이기도 하였지만, 더이상 말을 못할것같음도 한몫하긴 하였으니까. 씁쓸한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다물고있던 그는 자신의 형제였던 요한이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감정과 생각을 정라하길 기다렸다. 바그너는 반쯤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그가 안넘어올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으니까. 그아이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것 같은 착각을 느끼면서. 바그너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사소한 감정들은 바람과 함께 날려보내고. 잠시 먼지들을 바라보던 죄책감은 배트와함께 날려버린 바그너는 그의 말에 조용히 입을열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바그너가 요한의 말에 입을 열길
- "옳은것은 , 아니지 하지만 계속 고통스럽게 울고있는 그들을 신의 품속에서 안식을 취하게 해주려는 것이다. 너도 알고있지 않느냐. 나의 옛 형제여 . 그가 이런짓을 벌이고 있다는것을 알고있음 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있었던것이냐 . "
슬픈 목소리로 , 바그너는 요한한테 가서 . 회색빛 손을 내밀었다. 어딘가 이질적이게 보이는 역관절을 움직이면서. 역안의 눈을 번뜩이며 - 그한테 부드럽게 손을 내밀 뿐이었다.
"...형제여. 전 아마 이대로 아무런 일도 벌이지 않고 한적한 곳으로 떠나 조용히 살아도 당신보다는 빨리 한줌 흙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행동이 제가 책임질 수도 없는, 제가 없는 세상에서 이후에도 살아있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것들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고민스럽게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며 눈앞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아니... 그보다는 좀 더 앞이나 뒤에 있던 때 그가 자신에게 어느 순간에 내밀어준 손이 언뜻 곂쳐져 보이며 이성을 조금 귀찮게 굴었다.
"당신의 방법이 어떤 것인지는 어느정도 알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결국 그 방법을 따를 수 앖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것과 살아가면서 다음을 기약할 권리를 뺏는것은 분명히 다르니까요. 하지만 저도 이대로 손놓고 세상 돌아가는 것들을 두고보고싶진 않으니, 전 도움을 구하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보겟습니다."
씁쓸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손을 치워낸 바그너는 . 이내 무표정이지만 눈속에는 무표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자그마하게 내뱉었다. 더이상 과거의 관계로 만날수없는 나의 옛 형제여. 아련함이 섞인 추억을 회상하던 눈은 마음을 바꾼것인지. 다시 차디찬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로 바뀌었다. 네 선택이 그렇다면 어쩔수 없겠지. 씁쓸함이 몸을 감싸안고 더이상은 없는 형제를 뒤로한채로 바그너는 뒤를 돌아보고서는 검은 날개를 펼치고서는 . 배트를 들고 날아올랐다.
아르헴니스 성당 , 늘 분주했다. 신한테서 ,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을 뿐더러 늘 울면서 들어오는 자들이 많았기에 . 힐러 또는 의료팀은 항상 바삐 움직였고. 신부들은 사람들을 돕고 도우면서 . 고생하기 그지 없었다. 오늘도 물밀듯이 밀려오는 사람들이 성당에 주를 이루었다. 성당사람들은 점차 지쳐가고 있었고. 체력은 점차 떨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힐을 하면서 겨우 버티고 있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정신력을 소모하는것은 . 교황인 그녀또한 마찬가지었다. 부드럽게 한숨을 쉬고있음에도 불구하고 . 그녀는 여전히 매우 아름답디 아름다웠으며 . 그곳의 교황인 마뉴스 시빌라 데무타티오 1세는 , 아름다운 입을 꾹 다물면서 .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매께서 친히 새끼때 어미에게서 뺏어와 친히 고기와 몽둥이와 재갈로 교화(그건 교화가 아니라고 요한주는 생각한다.)시킨 마수 살바토르는 어마무시한 속력을 뽑내며 요한을 아르헴니스 성당에 데려왓다. 잠시동안 너무나 빠른 속도에 머리가 멍했던 요한이였으나 곧 정신차리고 요한은 살바토르에게서 내린 뒤 다른 수사에게 요한 자신의 방문을 알리고 대기하다가 마뉴스가 들어오라는 허락이 있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 그녀가 보낸 다른 사람을 따라 그녀에게 갔다.
"신께서 살피시길... 고귀하신 여교황 마뉴스 시빌라 데무타티오님을 뵙습니다."
신께서 친히 만드신것이나 다름없는 꼭두각시인 그녀에게 엄격한 예법을 지키며 무릎을 꿇고 시선을 낮춘 요한이였다.
보기라도 하면 누구라도 반할것같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보인 교황은 . 무릎을 꿇고 시선을 낮춘 그를 바라보면서 이내 아름답고 가느다란 다리를 움직여 . 요한한테 향했다. 마치 바람같은 걸음걸이로 . 우아하고 성스러운 계단을 교황은 잠시 걱정스러움이 섞인 웃음이 교황의 얼굴을 스쳐지나갔을까. 교황은 다시금 미소지으면서. 요한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잠시동안의 성스러운 정적이 흘렀을까. 그 정적을 조금은 즐기던 교황은 . 안에 있던 자신의 사제들에게 나가라고 . 부탁이 섞인 명령을 내뱉었다. 신부 수녀들이 나가는 소리가 . 귓가를 맴돌았을까. 교황은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신은 불공평하다고 외치고싶게 만들어지는 아름답게-그 말도 부족하지만 그 말 외에는 어떤 단어도 어울리지 않았다.-생긴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묵묵히 기다리던 요한은 곧 그녀가 바그너에 대하여 말을 꺼내자 끄덕인다.
"네. 그자가 남긴 흔적과 목격담을 토대로 하여 찾는데 성공했습니다만..."
요한은 신 디음으로 자신의 종교에서 최고권위지인 그녀를 차마 보질 못 한채 말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교황님. 저 요한 신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여 그자와 교전했으나 제가 미흡하여 그를 저지하는 것 도, 크나큰 타격을 입히거나 그분의 품으로 보내는 것 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와의 실력차가 거대해서 그자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면 제 머리는 교황님의 앞이 아닌 땅바닥 어딘가에 있었을 것 입니다."
실제로 요한은 오히려 바그너를 찾다가 도중에 만난 도적무리라든가 범죄자와의 전투가 더 힘들었었다고 생각했을만큼 자신을 봐주었던 바그너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였던 요한은 그 생각을 이내 지워버리면서 마뉴스의 앞에서 고개조차 들지 않고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잠시, 고민에 빠진듯. 긴 쌍커풀의 눈을 감으면서. 교황은 고민했다 .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신의 힘을 자그마치나마 훔쳐간 그였기에 . 사실상 요한이 이기는것은 불가능에 가깝기도 했다. 이해한듯이 마치 작은 새가 날갯짓을 하듯 고개를 끄덕거린 교황은. 아름답고 인자한 그리고 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요한을 응시했다 . 어딘가 묘한감촉이 성당안을 흘러내리고. 교황은 잠시 뜸들이다가. 매혹적이게 입을 열었다.
[ 그를 이기는것은 ,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요한 신의 기적이 함께 해주신 덕분에 지금 이곳에 올수있었겠지요. ]
애초에, 악마며 인간이다. 그것도 신의 힘을 조금이나마 뻇어간 배반자의 악마. 웅장한 목소리로 . 눈을 감은채로 목소리를 내뱉은 교황은 잠시나마 뜸을 들이다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요한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코로나의 포는 존재감을 과시하는듯 아까보다도 더욱 귀에 거슬리게 웅웅대고 있었다. 코로나의 말에는 적대하는 분위기는 담겨있지 않았지만, 그와 동시에 서로의 입장에 대해서 확실히 선을 긋고 있었다. 뒤가 잡히고 이미 면식이 있는 사르비에에게 있어서 지금은 그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첫번째 질문이야."
포가 울리는 소음이 어느정도 줄어든듯한 기분이 들었다. 본부의 명령을 무시한 코로나의 단독행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코로나가 동요한듯 작게 중얼거렸다. 설마하던 존재가 여기 눈 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상상할수 있었던 그 끝의 존재. 자신이 녹색빛을 띄는 모든걸 태우고 태워오던 작업속에서도 한번도 마주치지 못했던 존재. 그리고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존재... 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제 감정을 잘 내비추지 않는 코로나가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때문에, 사르비에가 허락없이 손을 이쪽으로 내미는걸 막지도 못했던것이다. 그제서야 아차 싶었는지 코로나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떨구고 있던 고개를 올렸다. 절대 소품처럼은 보이지 않는 그녀의 손이 눈으로 들어왔다. 정확히는, 랜즈.
"아직 질문은 끝나지 않았어."
코로나는 손을 면밀히 확인하는 대신에 겨누고 있던 포를 다시 들이밀며 그렇게 말했다. 손을 거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계속 그것이 눈에 띈다면 시선이 팔릴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르비에가 보기에도 지금의 그녀는 상당히 동요한듯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팔을 내밀었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그런 당혹스러운 상황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래그래 알았어~ 거참 성격 나쁘네~"
잠깐 자신의 팔이나 손을 보던 코로나가 이내 그것을 애써 무시하려는건지 현혹되기 싫다는 건지 방금전까지 겨누고 있던 포를 다시 들이밀었다. 당연하게도 사르비에는 그것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나 소음이 싫었기에 행여나 이파리 하나라도 타들어갈까 손을 거두었다.
"목적이라... 뭐라고 말해주는게 좋아?"
잠깐 되물었다. 어차피 숨겨봤자 자신은 그다지 거짓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알아챌거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목적을 말한들 그녀가 이해해줄까?
"간단해. 그저 너희들의 잔인한 행동에 대한 방어대응일 뿐이야. 그렇게 큰걸 바라는 것도 아니거든. 눈을 피해서 숨지 않고 평화롭게 살수 있다면 우리도 크게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들이 너희를 공격한적은 없잖아? 그저 녹색이 꼴보기 싫다는 너희들의 일방적인 말살이었지, 안그래?"
코로나도 나름 이해할만큼 말을 해보려 했지만 그때문인지 악감정이 차오르자 사르비에는 뿌득, 이를 갈면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본래 화를 내려던 목적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돌려 투덜거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뭐라고 말해주는게 좋냐는 그녀의 말. 혹은 비아냥에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를 의미하는걸까. 평소의 냉철함? 아니면 마음속의 고뇌? 둘 다 아니었다. 그녀에게 정말로 말해줄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대답이 나오든 코로나 자신은 공감할수 없는 까닭에서다. 녹색의 대지를 전부 불태워 버리는 일을 하고있는 자신이었지만, 거기에 자신의 의지는 없었다. 그게 당연시되어있는 사회에서, 당연히 해야할일을 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코로나의 일이었기 때문에. 보잘것없는 이유였다. 그래서, 이어서 흘러나오는 가시가 돋힌 사르비에의 말에도 코로나는 어떤 말도 꺼낼수 없었다.
"마지막 질문이야."
이쪽을 노려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않은 눈으로 맞받으며 입을 때었다. 마지막 질문.
되물어와도 들려오는 답은 없었기에 사르비에 역시 침묵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치 정지되기라도 한 양, 코로나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오히려 불안한 것은 사르비에 였었다.
"......"
자신이 말을 해도 너무 심했나 싶었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면 사르비에의 눈에 보이는 코로나는 그것엔 전혀 신경쓸것 같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에 대한 침묵이라면 달리 쏘아붙일 말이 없던 사르비에는 한동안 흐르는 정적을 깨려 하던 찰나, 그녀가 다시 말을 걸어오자 살짝 마른 침을 넘겼다.
잠깐 코로나를 째려보던 자신의 시선과 그런 사르비에를 무덤덤하게 바라볼 뿐인 코로나의 마지막 질문은 다소 황당한 제시였다. 그녀의 마지막 질문은 질문 이라기엔 어딘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 받아치려던 즈음 갑자기 소각포의 기계음이 멎자 어떤 목적에서 그런 건지 알 수 없던 사르비에는 살짝 뒤로 물러나 한참을 묵혀두었던 말을 꺼냈다.
"나참... 난 또 뭐라고? 아니 그 전에, 이름을 알려달라 묻는 사람쪽이 먼저 이름을 말해줘야 하는거 아니야?"
물러난 거리는 그대로 둔채 맥이 빠진듯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쏘아붙이던 사르비에는 고개를 홱 돌리고나서도 계속 그녀의 눈치를 보더니 그제서야 다시 입을 열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무어라 투덜거리는 그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곧, 자신의 이름은 물론 그 유래까지 대답해주는 그녀. 사르비에였다. 사르비에는 사이보그가 무기를 멈춘만큼 당황한 빛을 띈것같기도 했으나 어찌보면 그것은 안도였다. 물론 그런것과 관계없이, 항상 일관된 분위기와 얼굴을 하고있는 소녀였으나.
"코로나."
그 소녀는 자신의 이름 혹은 명칭. 어찌됬든 고유명사로 통하는 그것을 마치 사르비에의 투덜거림에 답이라도 하듯이 입에 올렸다. 지금까지 그런 전례가 없기도 했지만, 만약 사르비에도 식물로 친다면 지금, 사르비에는 그 소녀의 이름을 들은 유일한 식물이 된것이었다.
"널 제거하는걸 보류하기로 결정했어."
그리고, 살아남은 유일한 식물이 되기도 할것이다. 그것은 코로나에게 있어서 중대한 위반사항이기도 했다.
"흐응~ 코로나, 라는 이름인가 보네? 코로나... 그럴듯해. 그렇게 불릴것 같이 생기긴 했어.
...... 뭐! 그냥 이름에 어울리게 생겼다는 거야! 시비거는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몇번 코로나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무어라 하던 사르비에는 여전히 눈썹하나 움직이지 않는 그녀의 표정이 '기분 나쁘다.' 인 거라고 오해를 했는지 약간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정작 상대방은 아무런 감정 없이 대했을 텐데도 말이다.
"...... 어...?"
하지만 여전히 무감정한 목소리 그대로, 거리낌없이 들려온 코로나의 말은 자신의 이름을 묻는 것보다도 더 당혹스러웠다. 제거하는걸 보류한다, 물론 그 말인 즉슨 여차하면 다시 제거할 생각이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분명 코로나의 시선에선, 그리고 인간들의 시선에선 극히 이질적이고 중범죄와도 맞먹을만한 한마디였다.
"...... 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나도 선심 써서 네 이름은 특별히 기억해 두도록 할게. 혹시 알아? 나중에 우리가 떳떳하게 살 날이 온다면 그땐 귀빈 대접이라도 해줄지?"
물론 이어진 사르비에의 말은 거의 허세에 가까운 희망사항이었다. 지금의 상황으로 봐선 남아있는 녹색의 식물이라곤 오로지 자신뿐이니까, 행여 전쟁통에 보존된 씨앗이나 자신처럼 또 다른 싹을 틔운 누군가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렇듯, 현재로썬 도박수준의 운을 걸고 움직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 어쩌면 코로나라는 존재가 사르비에에게 있어 나름의 카드가 될 가능성도 없잖아 있으니까,
선을 긋는듯한 사르비에의 말에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은채 그렇게 말했다. 찬물을 끼얹는듯한 말이기도 했지만 정말로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당장 태워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르비에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유는 코로나가 위의 뜻과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것을 다시금 상기시키려는 듯이 코로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나의 단독행동. 다시 거론하지만 위에서는 내가 너를 소각하길 바라고 있어."
하지만 이 소녀는 그러지 않았다. 제 업무를 유기한것이다. 자신이 평생 따라오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을 천직. 해야했고, 할수밖에 없었던 일. 그것을 부정하고있는 지금. 덕분에 사르비에는 목숨을 건졌다.
"조건이 있어."
하지만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런 행동을 할만큼, 이 기계소녀는 비합리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업무를 배반한 만큼 조건도 필시 따를터. 그녀는 그 조건을 다음과 같이 달았다.
호기롭게 말은 꺼냈지만 솔직히 따지고 보면 어떤점에서든지 우위에 있는건 사르비에 자신이 아니었다. 오로지 한명 남은 외지인과 수백, 수천만의 차디찬 현지인들의 입장, 그저 그것밖에 안되는 것이었으니까... 말로라도 자신이 우위에 서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상대방인 코로나는 자신에게 있어 가장 쥐약인 성격이었다.
"체에, 누가 그거 모른다니? 어차피 여기서 이런 모습은 나뿐인데 안 죽이는게 기절할 일이지. 안 그래? 그리고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나를 쫒은 녀석이 관대한 너니까 말야."
만약 코로나가 아닌 다른 이가 자신을 발견했다면 지금까지 숨이 붙어있을 거라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아니라도 살아날 기회가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나마 자신의 생존 가능성이 코로나로 인해 상승했다는 것에 대해 사르비에는 약간 안도하고 있었다.
"흐응... 조건이라~"
물론 지금까지 자신을 살려둔다는 것에 대한건 자신에 대해 함구한다는 것, 혹은 속인다는 것이었다. 상부에 자신이 죽었다고 전할지, 놓쳤다고 전할지도 그녀의 몫... 그것을 감안한다면 코로나가 조건을 내걸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 뭐야 그거~? 호감쪽이라면 그만둬~ 뭐... 팔에서 대포가 나오는 소녀에게 그런 말이 나올리는 없겠고..."
자신을 좀 더 알게 해달라는 것, 그건 자신의 명을 연장해주는 대신 신상을 밝혀야 하는 이야기에 가까우리라. 사르비에는 당연스럽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뭐... 내 목숨 부지시켜주는 조건 치곤 과하지도 적지도 않네?"
연유야 어찌되었건 일단 상대방이 온건한 태도를 취하려 하기에 사르비에는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와 팔짱을 끼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물론, 둘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몇걸음 떨어져있었지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르비에의 말처럼 호감을 노리고 제시한 조건은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한대로, 그 말뜻은 단지 그것이 전부였다. 확실히 사르비에의 입장에선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조건이리라. 아니, 목숨에 비하면 턱없이 싸게 먹히는 편이었다. 그런 황당한 조건을 제시한 사이보그는 그녀의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네가 말해줄 필요는 없어."
날카롭게 쏘아붙히는 어조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기능이상이 생긴것처럼 평소와도 같이 또렷히 나오는 말이었다. 시선 또한 고개를 올려 사르비에를 피하지않고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 둘 사이에 흐르는건 몇 마디의 말과, 몸을 타고 가볍게 흝고 지나가는 바람뿐이다.
"너를 관찰할거야. 너의 얼굴과 데이터 베이스는 이쪽에게 있으니 언제든지 찾을수 있어. 넌 평소처럼 행동하면 될 뿐."
코로나는 마치 통보하는것처럼 말한다. 사르비에가 죽음을 택하지 않은 이상 이제 그녀에게 선택지는 그것밖에는 없었다. 말은 관찰이라 했으나, 그 내용은 감시와 별반 다를것 없는것이었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손을 들어 사르비에에게 건네보이며 말했다.
뒤셀의 말을 듣고 있던 중 담임을 계속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레아나의 죽음이 유쾌한 일은 아니기는 하지만 유능한 교사를 내쳐버리기에는 아깝지 아니한가. 저 유능한 교사는 이번 일을 토대로 더 성실하게 우리를 가리칠려고 노력하겠지. 그러다 흐려지는 뒤셀의 눈동자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의외로 마음이 연약하신 모양이군. 위로를 할 생각은 없다. 스스로 잘못이라는걸 아는 상태의 사람에게 위로라는건 오히려 역효과가 될 수 있기에.
나와 드래곤의 숨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동굴 안에는 드래곤 이외의 생명체가 터를 잡고 살고 있지 않을 것 같아. 주변에 이상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무서운 드래곤이 살고 있는 곳에 누가 터를 잡으려 할까?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러지는 않을 거야. 드래곤은 나의 질문에 마치 신세를 한탄하듯 대답해줬어. 마왕이 태어난 뒤로부터 지금까지 혼자 살아왔다고. 난 그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마치 아름다운 공예품같이 생긴 드래곤의 두 눈을 바라보았어.
드래곤은 그동안 혼자 살아왔나 봐. 앞으로 몇천 년 동안 죽지도 못하고 자신의 운명을 따르며 살아가야 한다니. 근처에 다른 생명체가 없기에 나처럼 따돌림과 비난을 받을 일은 없겠지만, 아주 외로울 것 같아. 드래곤이 또다시 커다란 한숨을 쉬었어. 그 한숨에 나의 머리카락이 마치 힘차게 흐르는 강물처럼 휘날렸어. 난 눈을 꼭 감고는, 고개를 푹 숙이며 드래곤을 올려다보며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말했어.
"... 그러시군요. ... 저도, 사실상 혼자 살아왔어요."
말을 끝마치니, 공포와 긴장에 의해서인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어. 비록 눈물이 그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는 드래곤에 대한 공포가 심어져있었어.
그리고 난, 소년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년은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기 시작했어.
레윌타티오... 줄여서 레윌로 몇첫년전까지 불리던 그녀는 울음을 멈춘 소년의 물음에 대답해버리면서 자신이 지금 소년에게 해버린 신세한탄을 곱씹으면서 앞으로도 기다릴 자신의 운명을 생각해보았어. 신들께서는 영원하게 봉인을 지킬지도 모르는 자신을 고작 몇천년만 살게하기 아까워하셧기 때문에 자신들의 권능으로 레윌 자신에게 부워준 권능들중 하나덕분에 그녀는 반신에 가까운 힘을 갖느라 자연사같은 죽음은 아예 찾아올 수 없게 되었지. 그녀는 몇천년... 아니. 몇만년을 넘어 계속 이대로 살아야 할거야. 그것도 그녀 자신이 아닌 순전히 남들을 위해서만. 소년이 생각한대로 이 동굴과 동굴 주변의 터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 이따금씩 멍청한 동물이 어슬렁거릴때는 있지만 정말이지, 동굴에서부터 뿜어나오는 기룬때문인지는 몰라도 소년처럼 일부러 찾아오는게 아니라면 레윌이라는 드래곤은 예전부터 그래왓듯이 앞으로도 계속 혼자서 이 동굴에서 살아가기만 해야 해. 아아... 이건 정말로 슬픈 일이야. 뭐. 그녀는 이 슬픔도 배우지 못했으니까 그냥 지루한 일이라고만 생각하겟지만. 아무튼 그러던중에 자신의 두쌍이 되는 눈중에서 한쌍의 눈을 바라보며 소년이 말하자 레윌은 그런 생각을 그만두었어.
[엄청 지루한 일이였겟네... 아. 넌 널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어서 힘들어하니까... 지루하고 힘든 일이 있었겟네 라고 해야하려나.]
문득 레윌은 몇백년전에 보석같은 눈이라고 또다른 사람이 말해주던 자신의 네개의 눈으로 소년을 바라봣어. ...그래. 보라색 눈은 지금껏 자기 종족인 드래곤을 제외한다면 단 두번밖엔 못 봣지만 말이야, 그 대신 소년이 보이는 저 눈동자속의 감정은 레윌이 꽤 많이 봐오던 거였어. ...공포와... 삶에대한 의지. 어떻게 모르겟어? 그동안 죽여온 생명들이 최후까지 그녀를 바라보면서 가장 많이 자신의 눈과 표정에 띄운 감정들인데. 그녀는 그걸 잊을리가 없었어. 그런건 아직까지도 꿈에서도 나올만큼 강렬한 생명들의 의지라서 잊는게 불가능한거니까.
[너도 날 무서워하는구나. 뭐 대부분이 날 무서워하지만.]
레윌은 그 순간 어쩐지 입안이 무척 쓰게 느껴졌어. 하지만 왜 그런지 모르고 그냥 그걸 넘겨버렸어. 외로움이나 죄책감은, 그녀에게 일부러 가르쳐지거나 느끼는것을 피하게 하려고 한 감정들중에 하나니까. 그래서 그녀는 아직까지 외로움과 원망이라는 단어 자체를 몰라. 슬픔도 모르고, 죄책감이라는 것도 아예 모르지. 그러던중 레윌에게 기막힌 생각이 하나 떠올랐어.
[...저기. 어차피 죽어야 할 이유가 네가 다른 인간들에 비해 쓸모없게 평가된다는거랑 널 필요로 하는 인간들이 없다는거였잖아. 넌 니가 그래서 강해진다고 해도 받아줄 곳아 없어서 죽고싶다고 했고.]
그렇지만 레윌은 소년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있었어. 그건... 어쨋든간에 소년은 결국 자기옆에 영원히 심심허지 않게 해줄 수 없다는걸 아주 잘 이해한다는 얘기지. 그래서 레윌은 소년이 거절을 한다면 이번엔 그냥 자신의 이빨로 소년을 으적으적 씹어먹겟다고 생각했어. 그녀의 이는 날카롭고,많고, 크니까 소년에게 최소한의 고통만 주고 빨리 끝내버려서 소년의 바람을 들어줄 수 있겟다 생각했거든.
[난 엄청 심심해. 여긴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그러니까 너말이야. 넌 네가 필요한 곳이 필요하고 나는 혼자서 지루하게 있능게 싫고. 그러니까 너 나랑 같이 살면 안돼?]
이젠 기억하기도 싫지만, 그 끔찍한 기억들은 아직도 날 따라다니고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곁에 부모님과 아이들이 있기에 혼자가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모두가 날 배척하고 따돌리려 해서 사실상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 그 기억들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오르려 하고 있어. 드래곤은 두 쌍의, 총 네게의 눈으로 날 바라보다가 지루하고 힘든 일이 있었겠다고 말하였어. 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 지루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힘든 건 맞았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죽어버리고 싶었으니까. 그러기에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니까. ... 하지만, 한편으로는 죽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드래곤이 마법을 이용해 나를 죽이더라도, 날 있는 그대로 삼켜버린다 하더라도 엄청난 고통이 뒤따를 것 같았거든. 그리고, 내가 여기서 죽어버리게 된다면 내가 겪었던 일을 아무도 모르게 될 것 같기도 했고. 내가 겪었던 일을 아무도 모르는 건 싫어. 나의 존재를 모두가 모르게 되는 것도 싫고.
아무리 용기를 낸다 하더라도, 무서운 것은 숨길 수 없나 봐. 드래곤은 나의 눈을 바라보고는 나도 자신을 무서워한다고 했는걸. 난 그 말에 부정하지 않는다는 듯 잠시 동안 드래곤의 네 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어. ... 비록 저 눈에서 살의가 느껴지지 않기는 하지만, 무서워. 여전히 무서워.
그러던 중, 드래곤이 나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어. 날 받아줄 인간이 없고, 아무리 강해진다 하더라도 날 받아줄 마을이 없다 한다면 지루하게 있는 것이 싫은 자신과 같이 살면 안되냐고. 난 그 말을 듣고는 푹 숙인 고개를 바로 올리고는 놀란 눈으로 드래곤의 얼굴을 바라보았어. 나랑 같이 살자니. 그 누구보다도 강하고, 그러기에 마왕의 봉인을 지키고 있는 드래곤이, 약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을에서 버려진 나랑 같이 살겠다니. 믿기지가 않아. 정말... 정말로, 나랑 같이 살고 싶다는 걸까? 난 다시 드래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
자기가 새삼스럽게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싶어서 잠깐동안 두쌍의 눈을 꼬옥 감아버리는 레윌은 자꾸만 소년이 고개를 숙이는게 조금 맘에 안들었어. ...왜 그런지는 몰라. 레윌은 자기 마음을 살피는 법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냥 자신의 꼬리나 손 끝, 혹은 마법으로 소년의 숙여진 고개를 들어올릴까 싶었지만 아무리 섬세하게 힘조절을 하는 자신이라고 해도 그렇게 하다가는 소년을 정말 다치게 하기 때문에 맘에 안들기는 해도 소년을 어쩌지는 않고 얌전히 내버려둔채 자기의 권유에 대답해주길 기다렸어. 그리고 소년이 다시 물어보는 말에 레윌은 감았던 눈을 떠서 네개의 눈으로 소년을 보며 말했어.
[레윌타티오 레 콜루브라라는 내 이름을 걸고 말하는데, 나는 너희 인간이라는 종족의 주특기인 그 거짓말을 싫어해. 게다가 잘 하지도 못하고.]
잠시 말을 쉬는 레윌은 어쩐지 비를 맞은 날 어미없이 이 동굴 근처를 지나가던 아기사슴이 떠오르는 소년의 보라색 눈을 보며 아주 오래전에 자신과 비겻던 용사가 떠나기 전에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게 떠올랐어. ...그러고보니 그때 용사가 떠나기 전에 자신에게 무언가를 말 해 주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서 떠오르지가 않았어.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해줄게. 너, 괜찮으면 여기서 나랑 사는게 어때?]
레윌은 아무 생각 없이 소년의 주변에 있던,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는 자신의 꼬리를 살짝 들어 소년이 위험하지 않게 꼬리 끝으로 아주 조심히 소년의 검은 머리를 쓸어주었어. 아. 그래. 이제서야 기억나. 용사가 레윌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해준 말은 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냐고 레윌이 물어본것에 대답이였어. 그때 용사는... '왜 그런지는 모르겟어. 하지만 널 보니까 이렇게 해줘야 될 것 같아서 그런것 뿐이야. 잘있어 레윌.' 그렇게 말해주고 영원히 작별을 고했었어.
이상하게 드래곤의 앞에 서면 마치 기가 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드래곤 특유의 눈동자와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이상한 기운 때문에 그러는 걸까? 아니면, 여전히 드래곤에 대한 공포가 마음속에 심어져 있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난 알 수 없었어.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것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거야.
드래곤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나왔어. 자신이랑 같이 살자는 이야기. 믿기지가 않았어. 비록 긴 시간 동안 혼자서 이 동굴을 지켜왔기에 지루함을 느껴서 그렇다 하더라도, 그 누구보다도 쓸모없고 약한 나를 받아들이겠다니. 난 드래곤의 권유에 정말 그렇냐고 되물었어. 그러자 드래곤은 자신의 이름까지 걸어가면서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밝힌 뒤, 다시 한 번 나에게 같이 살아가겠냐고 물어보았어.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난 드래곤이 자신의 꼬리로 내 머리를 건드리자 순간적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어.
그리고 이내 드래곤이 자신의 꼬리로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자, 난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눈을 꼭 감았어. 이 느낌, 이 따뜻함. ... 이 다정함. 어디서 많이 느껴본 것 같은 감정이지만, 이상하게 그리움이 밀려오는 것 같은 이 느낌. 그 느낌에 의해, 난 나도 모르게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게 되었어.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뜬 나는, 드래곤이 했던 말에 대답하기로 했어. 여전히 떨리고는 있지만, 희미하게 기쁨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그렇다 한다면... ... 당분간은 같이 살아가도록 해요."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난 드래곤과 같이 살겠다고 말하였어. ...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어.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던 내가, 여기 있는 이 드래곤과 같이 살아가겠다고 말하다니. ... 혹시, 드래곤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것 때문에 이랬던 걸까?
뭐... 드레곤에게 있어서 엘이 강하다거나 약하다거나 하는건 별로 상관없을거야. 지금까지 단 한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어차피 드래곤인 레윌 본인보다 약하다는건 변한적이 없는 명제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서 엘이 자신을 무서워 하는 것 처럼, 레윌보다 엘이 한참 약하다는 사실도 그녀에게는 어차피 중요한게 아니였을거야.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내리는 엘을 본 레윌은 쓸어주는것을 적당히 멈추고 꼬리를 엘의 근처에 내려놧어. ...누군가를 내려다보기 위해서가 아닐때는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 레윌은 엘이 자꾸 고개를 숙이는 이유를 알 수 없었어. 이제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그녀는 타인들이 보는 관점에서는 다소 오만할 수 있겟지만 그녀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머리를 조아려 부탁해보거나 당장 자기보다 더 우위에 있는 강자에게 머리숙이고 자신을 낮추거나 비위를 맞춘적이 없었거든. ....아. 신에게서 이 임무와 운명을 받아들였을때는 빼고 말이야. 그리고... 엘이 아주 희미하게 레윌의 기준으로 맘에 드는 표정을 지으면서 목소리까지 떨자 레윌은 어차피 둘밖에 없어서 무시하지 못하지만 일단 집중해서 엘의 대답을 듣고는 만족스럽게 네개의 눈을 깜박이고 엘을 다시 바라보았어. 역시, 죽이질 않고 살려두는게 더 찜찜하지 않으니까 레윌은 자기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나봐.
[...그래. 좋은 결정이야. 그편이 그냥 사라진다고 하는것보단 나은거겟지. 아. 일단은 같이 지내게 되었으니 특별히 넌 날 레윌이나 레윌타티오라고 불러도 좋아. 허락해줄게.]
라고 말하던 레윌은 문득 자기가 아까 한 말들을 떠올리다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었어. 난 기껏 이름도 털어놓았는데 저 소년은 자기 이름을 아직도 말해주지 않은거야. 뭐. 그럴 경양이 없었다는거야 레윌도 인정하지만... 그래도 왠지 자기만 알려주니까 억울했었어. 특히 그녀는 이름만 알아도 해를 가할 수 있던 언령마법이 그나마 남아있던 옛날시대에 있던 드래곤이라서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구시대적인 관념이 좀 남아있었거든.
참 신기해.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죽고 싶어 했는데, 같이 살자는 권유와 그 온정이 담긴 행동 덕분에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어. ... 사실, 그동안 날 위해서 이렇게 말해주고 행해준 사람이 없었거든. 마을에 있기만 해도 마을 사람들의 증오가 담긴 시선만이 날 따라다녔고, 집에서도 항상 부모님의 불평 섞인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거든.
드래곤은 네 개의 눈을 깜빡이더니, 자신의 권유에 응한 날 보고는 좋은 결정이라고 하며 자신을 레윌로 불러도 된다고 했어. 레윌이라면, 아까 드래곤이 말한 자신의 본 이름을 줄인 말일까? 난 고개를 끄덕이며 드래곤의 말에 방금 전보다 살짝 밝아진 목소리로 대답했어.
"네, 알겠어요. ... 레윌."
그런 고민을 하던 난 드래곤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는 것을 보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어. 혹시 곤란한 일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내 행동이 드래곤에게 거슬려서 그랬던 걸까라는 생각을 하던 나는 이내 드래곤의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것을 보고는 내심 안심했어. 아, 이름이 궁금해서 그랬던 것이구나. 난 드래곤에게 나의 이름을 말해줬어.
"... 엘이에요. 엘 룬. ... 엘이든, 룬이든 마음데로 불러주셔도 돼요."
엘 룬. 이게 나의 이름이었어. 정확히는 '이름'이기만 하지만. 나의 성은 마을에서 추방당하는 동시에 마을 총장에게 빼앗기고 말았거든. 나의 성이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기억이 나긴 하지만, 더 이상 그 이름을 나의 머릿속에 떠올리긴 싫어. 그 성에는 모멸감과 증오, 날 향한 손가락질들이 그대로 묻어 나오고 있으니까. 마을 사람들은 특정한 사람을 지칭할 때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성으로 부르거든. 그래서일까, 부모님은 날 보고는 내가 자신들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고 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받은 그 분노를 나에게 풀었거든. ... 자신의 아이에게 한심한 아이라고,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됐을 존재라고 말하는 사람의 밑에서 산다면, 그 누구라도 죽고 싶어 했을 거야. 이 손목에 감긴 붕대도, 그 때문에 감게 된 것이거든.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난 마을에서 추방되기 전에도 죽고 싶어 했었거든. 난 말을 마치고는 슬픈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두 눈을 깜빡이며 드래곤의 눈을 바라봤어.
레윌은 엘이 웃는것을 보는 레윌은 왠지 아주 그리운 기분이 들었어. 무언가... 이 동굴 자체가 아까랑 조금 달라진 기분도 들고. 그치만 그게 뭔지도 몰랐고 괜히 그런것에 대해서 말하면 이 기분이 반감될 것 같은 기분이라 엘에게는 이 기분을 말하지 않기로 했어. 하지만 금방 또 얼굴이 찌푸려졌다가 풀리는 다양한 엘의 표정을 보고는 참 복잡하고 다양하네. 라고 생각하면서 엘에게 대답해주었어.
[엘이라니... 좋은 뜻이네? 그거 굉장히 여러가지로도 쓸 수 있는 말이기도 하잖아. 그럼 난 엘이라고 불러줄게.]
그녀는 예전에 무슨 단어마다 끝에 엘을 붙여서 신을 찬양하던 시절의 찬송이나 구절, 찬양과 높임등을 듣고 보던 때를 기억하며 즐거운듯이 웃었다. 생각보다 엘의 이름이 신을 찬양하는게 뼈 안쪽부터 박혀있는 레윌에게는 어쨋든간에 간만에 신을 생각나게 하는 엘의 이름이 아주 맘에 드나봐. 드래곤은 타락하거나 영혼째로 망가지지 않는한 절대 신을 미워할 수 없어. 누군가를 신보다 먼저 사랑하지 않는한... 뭐. 그건 지금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 그런데 레윌이 슬쩍하고 또 엘의 얼굴이 슬퍼지니까 이해할 수 없었어. 쟨 왜 저런 표정을 자주 짓지? 하지만 레윌은 이번에도 다구치거나 하진 않았어. ...쓰다듬는게 효과있다는것을 알았으니까. 레윌은 그래서 얌전하게 다시 꼬리로 쓰다듬으며 말했어.
난 나의 이름이 어떤 뜻을 지니고 있는지 몰라. 그동안 부모님에게 나의 이름이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어. ... 내 이름에 좋은 뜻이 담겨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마을에서 추방된 이젠 그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드래곤은 그런 나의 이름을 듣고는 좋은 뜻이 담겨있다며 칭찬을 해줬어. 좋은 뜻이 담겨 있다고...? 이젠 별 의미가 없을 터인데. 그래도, 드래곤이 나의 이름을 부르며 마을 사람들처럼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니 뭔가 기쁘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 들어. 날 엘이라고 불러주겠다고 하는 드래곤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어.
"... 네."
그 말에 대답한 후, 난 고개를 살짝 숙이며 손목에 감긴 붕대를 잠시 바라보았어. 이 손목... 아마 몇 달 전이었을 거야.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에게 끝없는 비난을 받던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기 전 집에 있던 단검을 들고 침대 위에 올라갔었어. 그리고, 그 단검으로...
잠시 생각에 잠기던 나는 드래곤이 꼬리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냐고 질문을 해오자 잠시 깜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나의 머리에 따듯한 온기가 남아나는 느낌을 받고는 애틋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이내 아까와는 달리 침착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난 드래곤의 말에 대답했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건 아주 좋은 일인가봐. 엘은 머리가 쓰다듬을 때마다 어딘가 맘에 드는 표정을 지어. 이걸 뭐라고 하더라... 남의 표정을 관찰하는 일이 드물었으니까 표정이나 감정을 뜻하는 말이 레윌에게는 잘 기억나지 않아. 어디. 이곳보다 조금 더 깊은 곳에... 동굴에 있는 비밀장소중에 책만 따로 보관해 두었던 곳이 있었는데 나중에 거기있는 도서관에 한 번 가봐야겟어.
[옛날 생각...?]
아하 라고 살짝 덭붙이면서 레윌은 적당히 꼬리를 근처 땅에 내려놓고 자세를 또 바꾸었어. 아무래도 한곳에 계속 한 자세로 있는건 좀 찌뿌등하니까. 그녀가 엘과 자기 사이에 둔 불에서 나오는 빛이 자세를 바꾸는 그녀의 몸에 있는 비늘들과 언뜻 보이는 까만 발톱을 비추어내었어. 그리고 그녀는 엘이 내민 붕대가 감긴 손목을 깜박이면서 찬찬히 바라봣어.
[지금도 아프거나 해?]
만약 그렇다면 굉장히 엘에게는 성가실 것 같다고 생각하는 레윌은 상처약같은 것을 생각했었어. ...음. 보통의 인간이라면 손목의 흉같은 것을 생각할때 생각하는걸 그녀는 생각해내질 못했나봐. 아마 이런 점이 그녀와 엘의 차잇점이라고 생각해. 아무튼 그녀는 엘의 상처에 대해서 다른 부정적인 감정이 없이 태연하게 말했어.
다들 그런 이야기를 해. 아무리 죽고 싶다 하더라도 실제로 죽으려 하지 말라고.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고.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젠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 것 같아. 난 다시 고개를 숙여 손목에 감긴 붕대를 바라봤어. 드래곤이 지금도 아프냐고 물어보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낮아진 목소리로 그 말에 대답했어.
"... 네."
내 손목에 상처가 난지 이제 몇 달이 지났지만, 가끔가다 손목에 나있는 상처가 쓰려올 때가 있어. 손목에 나 있는 흉터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는 경우도 있고. ...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 후회해봤자 의미가 없긴 하지만. 드래곤이 자세를 바꾸더니 그 비늘과 까만 발톱이 문득 보이자, 난 잠시 드래곤의 비늘과 발톱을 바라보다가 힘들겠다는 드래곤의 위로에 다시 시선을 드래곤의 네 눈에 맞추고는 고개를 끄덕였어.
"... 지금도, 가끔가다 손목에 나 있는 상처가 아파오는 경우가 있어요."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드래곤의 말에 대답한 나는, 잠시 드래곤의 눈을 바라보다가 드래곤에게 내민 손목을 거두며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에 감긴 붕대를 살며시 잡았어.
레윌은 엘의 목소리와 표정을 찬찬히 살펴봣어. ...뭐 그녀가 사려깊다던가 그런 성격은 아니야. 하지만... 여겐 둘밖에 없고 그녀는 오랫동안 혼자서 있었잖아? 그러니까 레윌이 엘에게 이렇게 집중하고 사근사근하게 대하는건, 그녀로서는 아주 당연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나저나 아프다니... 역시 상처약이 필요하겟어. 아니. 상처약보다 직방인게 있었지 참?
[그거 꽤 곤란한 일이잖아? 어디... 괜찮다면 보여줘봐. 상처가 심각하다면 약은 없지만 회복마법을 걸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레윌은 소년의 손목과 붕대를 바라보다가 끄덕이면서 입 안에서 혀를 굴렸어. 상처를 낫는 마법을 걸어줘야할지 아니면 상처약을 찾거나 만들어서 발라줘야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그... 언제였더라. 옛날에 드워프 로인이 약을 자주 만들었었는데. 나에게는 쓸모없을지도 모르겟다고 했지만 계절마다 아라드니아랑 같이 오면서 약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던게 기억나. 아. 이젠 죽었으려나. 그 둘도. 굉장히 좋은 부부였는데. 보고싶다... 라고 생각하던 때였어. 갑저기 바깥에서 우르르르 꽝꽝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희미하게 빗소리가 들려와. 그녀가 살짝 고개를 들어 코를 킁킁 거렸어. 습기... 빗방울이 땅바닥을 치면서 먼지가 풀썩거리는 냄새가 살며시 나왓어. 동굴이 좀 더 습기차지겟구나.
[음. 미안한데 지금 혹시 우계(우기와 같은말)야?]
잠깐 레윌이 엘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 살펴보다가 다시 엘에게 고개를 돌리고 물어봣어. ...맙소사. 세상에. 진짜 그녀는 마지막으로 나간게 언제였을까? 그녀의 저 매끈한 비늘들에 곰팡이나 버섯이 자라나지 않은게 정말 용할 노릇이였어.
한순간의 감정과 착오로 이 손목에 생긴 상처는 지금도 날 계속 괴롭히고 있어. 손목이 아파질 때마다, 내가 했던 그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게 돼. 난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며. 드래곤은 내 손목에 생긴 상처를 보여달라고 하며, 회복 마법을 걸어줄 수도 있다고 말했어. 난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에 감긴 붕대의 매듭을 천천히 풀어갔어.
그나저나,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손목에 있는 상처가 쓰려오기 시작했어. ... 아파. 마치, 그때 내가 했던 것처럼. ... 차가운 칼날이, 나의 손목을 그어버리는 것처럼. 매듭이 풀어진 붕대를 천천히 풀어가자, 손목에 나있는 수많은 흉터들이 보이게 됐어. 왼쪽 손목에 감긴 붕대를 완전히 풀어낸 뒤, 이어서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의 붕대를 풀기 시작했어.
그러던 중, 갑자기 동굴 밖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어. 난 고개를 돌려 동굴 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드래곤을 바라보며 붕대를 마저 풀었어. 지금이 우계냐고 질문한 드래곤의 말에 난 고개를 갸우뚱거렸어. 우계...? 우기는 들어봤지만, 우계라는 말은 처음 들어 봐. 난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 거린 상태로 드래곤에게 말했어.
"우계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우기이기는 해요."
그 말을 한 뒤, 난 양쪽 손목에 감긴 모든 붕대를 풀었어. 길게 늘어진 붕대를 다시 돌돌 말며 왼손 위에 올려놓은 뒤, 난 드래곤의 눈과 손목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며 다시 손목을 드래곤에게 내밀었어.
"... 지금도 후회하곤 해요. 죽고 싶다는 이유로, 단검으로 제 손목을... 이렇게 만들었으니까요."
레윌은 상처가 세겨진 방향으로 엘에게 그어진 흉터나 상처들을 보고 그걸 알아냈어. 그리고는 엘이 자신에게 내민 상처들을 그냥 네개의 눈으로 찬찬히 바라봣어. 뭐 다른 사람들이라면 인상을 찌푸린다거나 훈계를 할 수도 있겟지만 레윌에게 그런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아. 왜냐고? 레윌 그녀에게 상처라든가 우울감같은건 그냥... 두려운 감정도 일어나지 않을만큼 무신경하고 지루한 것이였으니까. 게다가 그녀에게 위협되는 것도 아니고. 다만... 그건 어디까지 레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어. 어디까지나 레윌만 그런거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심각하다는건 그녀도 어렴풋이 알고있는 사실이니까 그녀는 딱 그것만 생각하고 나름 조심스럽게 대해주기로 생각했어.
[우... 뭐? 요새는 우계를 우기라고 하는건가... 와. 나 방금 진짜로 세대차이라는걸 느꼇어. ...뭐.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까 아무튼간에. 일단 잠깐만 그대로 있어봐.]
그리고 레윌은 입을 벌려서 축축한 혀 끝으로 두 손목의 상처와 흉터를 싸악 핥아버렸어. ...방금 전까지 이게 자신과 남이 다르다는걸 진짜 자각이나 한 걸까 고민되게 하는 순간이지만 어쨋든간에. 레윌은 곧 소년이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
[지금부터 숫자로 5정도만 세면 말끔하게 낳아있을거야. ...뭐. 네가 후회한다니까 별 말은 없어. 게다가 일단 그정도의 상처는 나라면 언제든지 낫게 해둘 수 있으니까. 그런데 엘. 네가 놓지는게 하나 있는 것 같아서 말해주고 싶은게 있어. 상처는 내가 없어도 오래 걸리겟지만 네 몸이 낫게 해줄거야. 하지만 엘. 네가 너 자신을 그렇게 가차없게 하면 상처는 네가 후회해도 어느순간에 네가 또 낼지 몰라. 게다가 네가 너한테 속으로 입히는 그런 상처는 난 어떻게 해줄 수 없어. 네가 널 아껴주는건... 그것부터는 네가 알아서 해야 해.]
그녀는 이미 다 낳은 엘의 팔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엘의 보랏빛 눈을 똑똑히 바라봐주며 느긋하게 말해주었어.
내 손목에 있는 상처를 보고는 내가 스스로 만든 상처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드래곤의 말에 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어. 드래곤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꾸중을 듣는 것 같았거든.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마을에 있는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을에 있는 어른들은 내가 자갈이 있는 바닥에 넘어져서 상처투성이가 돼도 날 위로해주고 치료해주기는커녕 날 나무라며 혼내기만 했거든. 다른 아이들에겐 다 괜찮다고 해주고, 상처를 직접 치료해주고 했지만.
우계라는 말은 처음 들어 봐. 우기의 옛날 말인가? 드래곤이 요즘은 우계를 우기라고 하는 거냐고 말하는 것을 봐서는 그런 것 같아.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이젠 전설 속의 존재라고 알려진 드래곤이니 알고 있는 말이나 그런 것들이 다른 것 같아.
드래곤은 잠시 있어보라고 하며, 입을 벌려서 나의 손목에 있는 흉터를 혀끝으로 훑었어. ...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 드래곤의 몸에 나오는 모든 것이 다 인간에게 효능이 있다고. 정확하게 어떤 효능이 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드래곤은 나의 상처가 5초 정도 지나면 다 나아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나에게 조언을 했어. 몸의 상처는 언제든지 나을 수 있지만, 어쩌면 자신의 몸에 다시 상처를 낼 수 있는 마음속의 상처는 자신이 나을 수 있게 해줄 수 없다고. 그 상처는 내가 치료해나가야 한다고. 나의 두 눈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한 드래곤의 말을 듣고, 난 잠시 고개를 숙여 손목에 있는 상처를 바라보았어. 신기하게도, 그동안 나 있던 흉터가 말끔히 치료된 것이 보였어. ... 물론, 아직도 자국이 살짝 남아있는 것을 보니 완전히 치료되지 않은 것 같지만.
난 다시 드래곤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 약간 밝아진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말했어.
"네, 명심할게요. 그리고... 고마워요."
난 그렇게 말한 뒤 다시 고개를 푹 숙였어.
/ 맞춤법 검사기는 왜 드래곤을 드래건이라고 교정시키는지 모르겠어. 외래어 표기법상 드래건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대중적으로는 드래곤이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저 멀리 동양에 있는 사촌뻘 종족중 나이가 많은 용의 뇌는 죽은 사람도 살리는 명약이래. 드래곤의 심장은 연금술의 귀한 재료인 동시에 어떤 사람이든 먹으면 인간을 뛰어넘은 초인이 된다는건 유명하지. 그리고 살아있는 용의 피는 용의 지식과 생명력을 지니며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용의 피는 강력한 저주와 증오를 품기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땅을 오염시키고 동물과 사람들에게 역병을 일으킨대. 이빨과 발톱, 뼈와 뿔은 강력한 무기로도 만들 수 있지만... 비옥한 토양에 발톱이나 뿔, 이빨을 심으면 모두가 완전무장을 한 사납고 강력한 병사들이 자라나기 때문에 아주 먼 옛날 강력한 힘을 원하던 고대의 왕 라모스는 자신의 충실한 기사 10명에게 명령해 드래곤들을 사냥하고 다니며 얻은 드래곤의 이빨로 만들었다던 병사들로 만들어진 용아병 부대는 그 시대 대부분의 기록과 유산들이 없어져서 신비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까지도 그 위엄과 전설들이 남아있지. ...뭐 이런식으로 하다가는 끝이 없을테니, 이 모든걸 줄인다면 드래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값어치가 어마어마하다는 정도? 하여튼간에. 레윌은 자신의 신체에서 나오는 효능을 알기 때문에 그냥 마법을 거는것보다 빠른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뿐이였어.
'신기한 꼬맹이야...'
그리고 레윌은... 아주 밝아진 목소리로 말하는 엘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방금 전까지는 자신을 굉장히 무서워하고 계속 울기만 했었는데... 아. 그러고보니 살아있는 생물이랑 대화다운 대화를 한 것 자체가 까마득하게 옛날이라서 인간들이 어땟는지 자체를 거의 잊어먹은건가. 하고 한가하게 생각을 했어. ...이런 곳에 혼자 있다보면 느는건 지루함이고 할 것은 생각밖에 없어지기 때문에 레윌은 아주 당연하게도 엘의 반응에 우선 생각과 생각... 관찰등을 하다가 엘이 또 고개를 숙이자 이번엔 왜 숙였는지 알아내었어.
...부끄러운걸거야! ...라고. 음. 아닌 것 같지만 딱히 그걸 그녀에게 알려줄 사람이 없네. 뭐. 하지만 괜찮을거야. 아마...도?
[그래. ....]
쏴아아아- 우르르르- 하는 소리가 갑자기 더 커지자 레윌은 잠깐 무언가 말하려다가 멈추고 동굴쪽을 바라보다가 말했어.
[우... 기라고 했었지? 아무튼간에. 오늘안에 비가 그치기는 그른 것 같네.]
그나마 동구로 들어오던 빛도 거의 사라져버리면서 비가 올때 나는 냄새가 맡아지자 레윌은 불을 좀 더 키우고 근처에 배까지 딱 붙이듯 누웟어.
난 방금까지만 해도 흉터가 남아있던, 그러면서 지금도 약간의 자국이 남아있는 손목을 다시 붕대로 감았어. 밖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비 오는 소리에 난 눈을 꼭 감으며 손목에 감은 붕대에 매듭을 지었어. 그런데, 정말 신기해. 아까까지만 해도 내 눈앞에 있는 이 드래곤이 그렇게나 무서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는걸. ...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아까보다는 확실하게 밝아진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더니, 드래곤은 나긋한 목소리로 나의 말에 대답했어. 그러면서, 동굴의 입구 부분을 바라보며 오늘 안으론 비가 그치기 어렵겠다고 말했어. 난 드래곤의 시선을 따라 동굴의 입구 부분을 바라보았어. 이젠 해가 다 저물었나 봐. 동굴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어. 비가 올 때마다 흘러나오는 흙과 풀냄새가 코 근처에서 아른거리는 것 같아. 드래곤이 바닥에 누운 모습을 보자 난 잠시 고개를 두리번거렸어. 이제 드래곤과 같이 살아가기로 했으니, 앞으로 여기서 잠을 자야 할 텐데. ... 당연하겠지만, 여기엔 침대나 그런 건 없겠지?
".... 그럴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어디서 자야 할까요?"
난 살짝 낮아진 목소리로 드래곤의 말에 대답하며, 동시에 드래곤에게 질문했어. 난 따로 이불이나 그런 것을 가져오거나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당연하게도, 엘의 생각대로 동굴은 그냥 동굴 다운 것만 있었어. 이끼, 거미줄, 불이 닿는 곳 외의 곳에 둘러쳐진 어둠, 습기... 그나마 다른 드래건의 레어라고 할만한 곳들은 외관만 그렇다고는 하지만 에 윌의 레어이자 동굴은 유난히 더 그래 보여. ...뭐. 거기에는 에 윌이 그런 것에 무관심하다는 것도 한몫을 하지만 일부러 봉인되어있는 장소이기도 한 이곳을 눈에 띄게 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기야 하지만 말이야. 몇백 년 전에는 그나마 찾아오는 작은 종족용 손님을 위한 방들을 따로 지하에 만들어두기도 해서 거기에다가 침대라든가 그런 것들을 놓고 관리하기도 했지만 몇 년 전에 까먹어버린 데다가 또 그년도에 몰아친 우계... 아니. 우기 때문에 잠깐 땅 밑에서 벽이 허물어지면서 그 방 자체가 묻혀버렸으니 할 수 없지만. 그래서 레윌는 엘이 어디서 자냐는 말에 잠깐 멍한 표정을 짓다가 아차 했어.
[아...! 그러고 보니 너네 종족은 맨바닥에서 못 자는 종족이지?]
어쩐다. 인간들은 맨바닥에서 자는 종족인데. 라고 생각하던 레윌은 고민했었어. 그러다가 잊고있던 손님용 방을 생각해내기야 했지만 그것도 나중에 사용 가능하단것을 떠올리고는 잠깐 동굴 안을 느릿느릿 돌아다니면서 생각했어. ...지하의 방들중에 뭐가 멀쩡했는지라든가, 지금 남아있을 물건들 중에서 이불이라든가 그 대용물로 할만한 것이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야. 그런데, 그런게 전혀 없었어. 이런. 레윌은 이런 상황을 예상 못했었나봐.
[하나 만드는 수밖에 없겟네.]
만든다ㅡ? 레윌은 무엇을 만든다는 것일... 아. 그녀가 갑자기 땅에다가 발톱을 들어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해. 동굴 안쪽은 돌바닥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발톱으로 긁어버리자 동굴에는 그그극 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지만 레윌은 신경 안쓰는듯했어. 그극 그그극 그그극 극 하는, 엘이라면 귀를 막을지도 모르는 그 소리가 끝나자 바닥에는 기이한 고대어, 연금술에서 쓰는 상징과 비밀들로 만든 암호문자등이 섞인 마법진이 돌바닥에 완성되었어. 그 위로 레윌은 발톱끼리 부딛쳐 마치 쇠끼리 부딛쳐 나는듯한 불씨를 만들었지. 그러자 마법진에서 빛이랑 연기가 나기 시작하면서 마법진들끼리 엉키고 붙여가다가 쭉쭉 늘어나고 다시 엉키면서...
[아... 하하하. 창조계 마법을 진짜 간만에 쓰다보니까 좀 오류가 나버렸네. 침대같이 해볼려고 했는데.]
신기하게도, 연기 냄새가 살짝 나는 침낭이라고 해야할지 이불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무언가가 완성되었어. 뭐... 그치만 제법 폭신폭신해보이는 모양새를 봐서 당분간은 쓸 수 있을 것 같아.
[...나중에 코볼트네라든가 야생 몬스터중에 털있는 무리 좀 두리번거려서 만드는게 나으려나.]
레윌은 자기가 만든것을 손끝... 이 아니라 발톱 끝으로 찢어지지 않게 폭신 폭신 하고 찔러보면서 고민과 함께 약한 자괴감에 빠졋어. 으아아아... 명색에 살아있는 드레곤들중에서 이길 자가 없을 그녀가 이런 간단한(정작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마법은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지만...)창조마법을 틀리다니. 그건 그녀에게는 살짝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것 같아.
이 동굴에서 누울 수 있는 곳이라곤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이 전부일 것 같아. 물론 인간과 드래곤의 생활방식이 다르기에, 드래곤은 이런 바닥에서도 충분히 잠을 잘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나는 이런 바닥에서 자기는 많이 힘들 것 같아. 애초부터 이곳에 온 이유가 죽기 위해서 온 것이었으니, 따로 이불이나 침낭 같은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까. 드래곤은 나의 말을 듣고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아차 하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해왔어. 나랑 같은 종족의 사람들은 맨바닥에서 잘 수 없는 종족이었다고.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 말에 대답했어. 물론 인간이 아예 맨바닥에서 잘 수 없지는 않긴 해. ... 나도 몇 번 맨바닥에서 잔 적이 있었거든. 차가운 바닥에 누워 이불도 덮지 못한 체 추위에 몸을 떨며 차디찬 바닥에 머리를 베고 눈을 감으며 잠을 청하는 것.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극심한 피로 때문에 결국 잠이 오고야 말고, 잠에서 깨어나도 개운하게 일어나지 못하는 그 느낌. 몇 번 느껴본 적이 있어.
드래곤은 다시 말을 이어가며, 내가 누울만 한 침대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어. 그러면서 자신의 발톱을 들며 딱딱한 동굴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어. 드래곤의 발톱이 바닥을 파고드는 그 소리에 난 잠시 고개를 숙이며 양손으로 귀를 막았어. 그 소리가 끝이 나자, 바닥에는 고대어로 추정되는 문자들이 나열되어 있는 마법진이 생기게 됐어. 그리고 드래곤은 그 마법진에 불씨를 만들더니, 마법진에서 이상한 빛이 나오더니 무언가가 나타나게 됐어. 이불과 침대가 합쳐진 것 같은, 그런 모양세를 한 무언가가.
난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바라보았어. 드래곤은 창조계 마법을 오랜만에 쓰다 보니 오류가 나버렸다고 했지만, 그래도 마을에서조차 전설로만 내려오던 무언가를 창조하는 마법을 눈앞에서 보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말 기분이 좋았어.
"... 우와."
난 신기하다는 목소리로 작게 환호했고, 드래곤이 나중에 다른 동물들을 통해 침대를 만들어야겠다는 말을 하자 난 다시 고개를 들며 드래곤을 바라보며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말했어.
"아니에요, 이 정도로도 충분해요."
그렇게 말하며, 난 드래곤이 만든 침낭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허리를 숙여 그 침낭을 몇 번 건드려봤어.
분명히 배울때는 빡시게 배웟던것 같은데 그새 까먹었던걸까... 광물의 원래 성질에 대한 수식이랑 변환식은 제대로였는데. 설마 구현화 단계에 적용하는 것들에서 계산을 잘 못 한것이 아닐까? 아니면 발화 매개 촉진에서... 라고 레윌이 계속 생각할때쯤에 엘이 하는 말을 간신히 들은 레윌은 잠깐 움찔했어.
[...ㅁ...뭐? 어? 진짜로 괜찮아?]
뭐 괜찮다니까 다행이기야 하지만. 어쨋든 만족한듯한 엘의 얼굴을 보고 레윌은 또다시 창조마법을 쓴다던가 죄없는 가축 및 몬스터무리들을 쓸어버리면서 그들의 가축을 취하여 수작업으로 만드려는 계획은 실행하지 않기로 하였어. 정말이지, 가죽을 갖고있는 생물체들에게 다행이지 뭐야! 엘이 살렸어!
[니가 쓸거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엘이 기분 좋아져서 침...대로 다가가는 것을 본 레윌은 좋은게 좋은거지라고 넘겨버리다가 문득 하품을 하면서 네개의 눈을 깜박깜박 거렸어. 아. 갑자기 눈꺼플이 조금씩 무거워지고 약간 멍해지는 기분이 들어. 이건... 음. 그녀가 평소에 잘 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일거야.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엘이 추워지지 않도록 남아있는 불씨를 더욱 돋구기 위해 방금전에 불을 뿜은 곳에 다시 불을 뿜은 뒤 정말 잠자기 편한 자세로 바꾸어 업드렸어.
신기해. 마법 하나로 이런 침낭을 만들 수 있다니. 그동안 내가 보고 알아온 마법들은 불, 물, 바람 같은 간단한 원소를 만들어내서 그 원소를 던진다던지, 함정처럼 어딘가에 숨겨둔다던지, 그런 공격적인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가끔 누군가를 치료할 수 있는 회복 마법 같은 것도 있었고. 책에서 본 소환 마법같은 것도 있었어. 무언가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마법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흠이었지만. 아무튼 그런 마법이 아닌,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마법이라니. 정말 신기해.
몇 번 침낭을 만져보다가, 드래곤이 정말로 괜찮냐고 나에게 말을 걸어오자 난 숙였던 허리를 펴며 드래곤의 네 눈을 바라보고 말했어. "네, 괜찮아요."
드래곤이 날 위해서 창조해낸 침낭이기도 하고, 비록 침대보다는 오래 쓸 수 없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쓸 수 있을 것 같이 보이니까 괜찮아. 난 침낭 위에 앉아 침낭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어. 드래곤이 불이 있는 곳에 다시 불을 뿜고는, 하품을 하며 나에게 먼저 자겠다고 말했어.
"네. ... 안녕히 주무세요."
침낭에 눕자마자 졸음이 몰려온 탓에, 난 잠긴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말한 뒤 그대로 눈을 감았어.
// 늦어서 미안해! 이게 막레 맞지? 그렇담 1:1 시트 보트로 가서 다음 상황을 상의해보도록 할까?
우계... 아니. 우기가 시작되었어. 하늘은 적어도 며칠을 계속 깜깜한 비구름으로 옷을 지어서 번개를 뿌리고 다닐테고 계속 동굴 안에 불을 피워서 습기를 날려도 동굴은 어쩔 수 없이 조금씩은 눅눅하겟지. 동굴 밖으로 나갔다가는 축축해지는데다가 사냥감은 더 찾기 힘들어. 뭐 그것까지야 상관 없지만... 식량은 맨날 우기가 오기 한달 전부터 넉넉하게 모아 놓았으니까 굳이 저 비를 맞아가면서 돌아다니지 않아도 괜찮거든. 동굴 눅눅한거야 뭐 ...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곰팡이라면 아예 핀 곳마다 싹 다 태워버리면 그만일테니 상관이 없어. 그치만... 그치만... 레윌은
이 심심함은 도대체 뭐 어쩌란 말인가!!!! 아 진짜! 신이시여! 왜 당신들은 나에게 평생을 이 지루한 일만 시키게 하시고 이 지루함을 해결할것들은 스스로 조달하라고 하신 것이옵니까!!! 왜요!!! 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였어. 다른 드래곤들은 살다가 사는게 지겨워지면 스스로 목을 긋던가 다른 드래곤들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하던가 아나면 100년 가까히 잠을 잔다고 하는데 레윌은 봉인을 지키고 감시해야 해서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긴 세월을 혼자 고스란히 견뎌야만 했어. 그래서 다른 날들보다 유독 심각하게 지루한 우기가 시작되자 레윌은 말없이 동굴 벽에 머리를 콩콩(레윌의 기준이야. 엘의 기준으로 저건 쿠-웅. 쿠-웅. 거리는 수준이지.)박으며 심심하다고 생각하다가 그만둿을때 자기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엘을 보고는 표정이 밝아졌어! 그래! 이번 우기는 생에 처음으로 같이 보내는 사람이 있었어! 그건 곧... 심심함에서 그녀가 벗어날 수 있다는 거야! 레윌은 기뻐하면서 엘에게 말했어.
밖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빗소리, 저 너머에 있는 따뜻한 불기둥과 푹신한 침낭 덕분에 오랜만에 편히 잘 수 있었어. 마을에서 쫓겨난 이후부터는 산속을 돌아다니며 밤을 새우거나 정 피곤하면 근처에 있는 나무에 기대 눈을 감으며 잠이 올 때까지 기다렸거든. 사실, 마을에 있었을 때도 별로 다를 것은 없었어. 집에 있는 침대는 부모님의 침대가 전부였고, 난 항상 침대 위에서 쫓겨나 맨바닥에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어야 했거든. 차갑고 딱딱한 그런 바닥에서.
그동안 몸에 쌓여왔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탓일까, 난 평소보다 몇 시간 더 많이 자게 되었어. ...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무언가가 서로 부딫치는 듯하는 커다란 소리에 놀라 잠에서 급히 깨어났긴 했지만.
땅에서 진동이 울리는 것이 느껴져오자, 난 눈을 번쩍 뜨며 몸을 일으키면서 이 정체 모를 괴성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어. 저 너머에서 드래곤이 벽에 머리를 부딫치는 것을 본 나는 순간적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걱정된다는 표정을 짓게 되었어.
드래곤이 날 보고는 기쁨이 묻어 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우기가 끝날 때까지 하고 싶은 것이 있냐고 나에게 질문했어. 난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다시 드래곤의 네 눈을 바라보며 약간 잠긴 목소리로 말했어.
"하고 싶은 거요...? ...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드래곤이 다짜고짜 나에게 질문을 해 왔고, 이 동굴에 온 이유도 내가 죽기 위해서 왔던 것이라서 딱히 무언가를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잘 모르겟다고 말하는 엘을 바라보건 레윌은 조금 김이 세는 듯 하였지만 뭐 그러려니 했어. 하긴. 잠에서 깬지 얼마 안되었을때 물어보면 정신이 멍하니까. 라고 생각한 것 같아.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음. 우기동안 그럼 뭘 할까... 흐음. 아. 엘. 혹시 넌 마법 쓸줄 알아?]
엘이 약하다고는 들었지만 레윌은 과연 이 시대의 평상적으로 내려오는 마법이 과연 어떤 수준일까 궁금해졌었어. 과연 자신이 알던 시대보단 퇴보했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진보했을까? 이 학문에 대해서 다들 이제는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런 호기심이 들기 시작하자 레윌의 심심함이 줄어들기 시작하였어.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잘 모르겟다고 말하는 엘을 바라보건 레윌은 조금 김이 세는 듯 하였지만 뭐 그러려니 했어. 하긴. 잠에서 깬지 얼마 안되었을때 물어보면 정신이 멍하니까. 라고 생각한 것 같아. 사실 레윌도 어제는 푹 자기야 했지만 일찍 깨어버리는 바람에 어제 불빛에 슬쩍 비춰보인 엘의 자는 모습이 확실히 깊히 자는 것 처럼 보였거든. 그런 상태에서 바로 일어난 거니까 저렇게 졸린 표정이겟지?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음. 우기동안 그럼 뭘 할까... 흐음. 아. 엘. 혹시 넌 마법 쓸줄 알아?]
엘이 약하다고는 들었지만 레윌은 과연 이 시대의 평상적으로 내려오는 마법이 과연 어떤 수준일까 궁금해졌었어. 과연 자신이 알던 시대보단 퇴보했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진보했을까? 이 학문에 대해서 다들 이제는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런 호기심이 들기 시작하자 레윌의 심심함이 줄어들기 시작하였어.
[어때? 응?]
그녀는 궁금한듯 엘을 바라보았어. ...혼자서 너무 오래 있는거라든가 아주 오랫동안 이어지는 심심함이란건 확실히 레윌을 봣을때 위험한 것으로 보여. 방금 전까지 심심하다는 이유로 머리를 박고 있었던 저 용이 갑자기 저렇게 반색을 띄고 물어본다니!
드래곤은 나의 솔직한 대답에 김이 세는 듯한 반응을 보였어. 드래곤을 실망시킨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는 걸. 내가 아닌 다른 인간들이라 하더라도 잠에서 깨어난 직후 무엇을 해야 할지 물어본다면 내가 한 것과 똑같은 대답이 나올 거야.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하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올 확률은 적으니까. 드래곤은 날 보고는 마법을 쓸 줄 아냐고 질문해왔어. 마법... 마을에 있는 다른 아이들이 불덩이나 얼음을 만들어내거나 바람을 불게 만들고 작은 번개를 만들었을 때, 난 마법의 기초조차도 이해하지 못 해서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지 못했었어. 드래곤이 나의 두 눈을 바라보자, 난 이번 질문에도 솔직하게 답했어.
"... 어떤 마법이 있는지 알긴 하지만, 쓰지는 못해요."
방금 전보다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한 나는 고개를 숙였어. 다른 아이들이 어릴 때 마법의 기초를 이해하고 그 기초를 통해 만들 수 있는 원소들을 가지고 놀았을 때, 나 혼자서 그 원소를 만들어내지 못 해서 매일 선생님에게 혼나고, 부모님에게 혼난 적도 있었어. 내가 마법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마법의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할 거야. 처음으로 만들 수 있는 원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이해해야, 그제야 다른 마법을 쓸 수 있을 거야.
레윌은 잠시 자기 시대의 마법들을 생각했었어. 모두의 마력을 공유하면서 지하에 흐르는 마력들의 흐름을 다뤄 마력으로만 이루어진 에너지원을 쓰던 고대의 커넥트 도시, 마법의 여신이자 마녀 유타의 아이들이 이뤄냈던 기적들, 진리를 풀어내던 학자들 사이를 흐르는 청명한 마법, 그리고 그들 위를 날던 드래곤들과 그 모든것을 내려다보던 신들... 모두 과거가 되었다고 할만큼 그 시대에 비해 지금의 시대는 그 모든것이 찬란한 색채를 좀 잃어버렸지만 레윌에게는 어쨋건 영광의 시대였었어. 아. 그때 참 좋았는데... 라고 생각하던 그녀는 곧 엘의 말에 눈을 깜박이면서 놀라버리었어.
[마법을...? 엄... 진짜? 못 배워서 그런거야...? 아님 아무도 안가르쳐줘서?]
엘의 나잇대쯤엔 기초마법정도는 그래도 알겟거니 하던 레윌은 엘이 모른다고하자 깜작 놀라서 반문하였어. 그러다가 엘이 또 시무룩해져버리자 자산이 그렇게 만든건가 싶어서 얼굴을 바싹 갖다대면서 말했어.
[오오, 아냐아냐! 그렇게 풀죽을 필요는 없어. ...뭐. 마법이라는 학문이 원래 난이도가 높으니까 그럴 수 있어. 음... 그리고.... 정... 힘드면 천천히 다시 배우면 되는걸! 우리때도 서른살이 넘어서 겨우 마법을 쓸수 있게 된 경우도 왕왕 있었으니까.]
...그때는 아무리 대 마도시대라고 했어도 마법사들이 각 마탑 및 학파마다의 신비주의와 비밀주의가 가득해서 입문 자체가 아주 늦은 나이에 행하여졌다는건 말을 안했지만 레윌은 어쨋든 그렇게 말해줫어.
사람들이 흔히 전설이라고 칭하는 과거를 담은 책이나 그런 이야기를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든 동화에서는 지금으로부터 먼 옛날에는 세상에 인간 말고도 다른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었다고 하고, 다양한 마법을 이용해 각 종족이 편리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있었다고 적혀 있었어. ... 문득 든 생각인데, 만일 내가 다양한 종족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갔던 그 먼 옛날에 살았더라면, 지금과 같이 다른 아이들보다 힘도 약하고 마법도 쓰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쫓겨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부모님에게까지 버려진 나를 받아줄 다른 이종족이 있었을지도 몰라. 남들이 날 비난하고, 놀리고, 흉보았을 때 옆에서 격려를 해 줄 그런 이종족이 있었을지도 몰라. 마치,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드래곤처럼.
내가 마법을 쓰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드래곤은 놀란 듯 말을 더듬으면서 정말 마법을 쓰지 못하는 것이냐고 말해왔어. 마법을 못 배워서 그런 것이냐고,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냐고. ... 그러진 않았어. 다들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려 했는걸. 내가 그걸 따라가지 못 했을 뿐이지. 풀이 죽은 눈으로 드래곤을 바라보니, 드래곤은 자신의 얼굴을 불쑥 내밀더니 풀죽을 필요 없다고 날 위로했어. 서른 살이 넘어서 겨우 마법을 쓸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며. 그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살짝 들며, 약간이나마 자신감이 생긴 표정을 지으며 드래곤의 눈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말했어.
"... 정말요? 그렇다면, 저도..."
나도 열심히 연습한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마법을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목구멍에 막혀서 올라오지 못하는 바람에 그 말을 하지 못했어.
인간들의 기준으로는 마도사의 시대나 고대시대라고 부렸던 그 시대는 레윌이 아직 엘만큼이나 어린 시대였어. ...그때도 엘보다 10살은 더 많았지만 말이야. 뭐. 그때도 그때 나름의 고증이라던가 기쁨과 슬픔이 판을 폈지만 레윌은 어쨋던간에 그때가 그립긴 했어. 지나간 세월이란건 그 세월이 지나갔다는 것 만으로도 그리운 경우가 많은거니까. 그나저나 저렇게 풀죽다니... 아. 하긴 그러려나. 엘은 그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죽으려고 여길 찾아왔으니까. 라고 생각한 레윌은 다시금 눈을 반짝이면서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엘을 보곤 일단 고개를 끄덕였어. 뭐 여차하면 피의 교육이란게 있긴 하니까.
[그래. 가능해. ...흠. 그치만 일단 재능이 어느정도인지 알기 위해서 잠깐 손좀 내밀어볼래?]
그래도 일단 엘이 어느정도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레윌은 설마 마력이 흐르는 길이 꽉꽉 막혀있다던가 하는 그런거는 아니겟지라고 생각하며 엘이 손을 내밀기를 기다렸었어. 근데 가만보자... 자기가 누구한테 뭔갈 가르친 적이 있었나? 아예 없던 것 같았는데.
찬란한 마법과 이종족이 있었던 시대와 지금은 많은 차이점이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나. 우선 인간 이외의 이종족은 보기가 매우 힘들어졌고, 마법도 일상생활에 사용될 정도로 널리 사용되지 않는다고 했어. 그때 있었던 수많은 기술들도 사라졌다고 했고. 왜 수많은 이종족과 기술들이 사라졌는지는 난 알 수 없어. 책에서는 각종 재난과 각 종족끼리 분쟁이 발생하는 바람에 일어난 전쟁 때문이라고 되어 있긴 했지만. 만약 과거로 갈 수 있는 마법이 있다고 한다면, 난 그 옛날 시대로 돌아가 보고 싶어. 그 기술들과 이종족의 모습을 꼭 보고 싶거든.
드래곤은 나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재능이 어느 정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을 내밀어보라고 했어. 드래곤이 한 말 중에 '재능'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난 다시 기가 죽은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어. 재능... 많이 들어본 말이야. 어른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마법에 재능이 있다, 검술에 재능이 있다, 아니면 특별한 능력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많이 했거든. 나에게는 아무런 재능도 없다는 말을 했지만. 재능이 없는 아이는 어딜 가도 못쓴다는 이야기도 들으면서.
잠시 슬픈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드래곤의 말대로 손을 내밀었어. ... 그러고 보니, 옛날에 선생님들이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줬을 때, 마력이 팔에 흐른다고 생각해보며 마법을 써보라고 했던 것 같아.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 난다고 했고. 물론, 나는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았지만. 대신 몸 안에서 무언가가 흐르는 기분이 들었고, 가끔은 심장이 빠르게 뛴다던지, 현기증이 온다던지 하는 경우가 있었을 뿐이지.
여름도 아니지만 언제나 찝찝하고 숨이 텁텁막히는 화물칸 칸의 이름대로 사람을 태우는 칸이 아닌지라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하긴 헐값에 몸을 옮겨다주는것도 감사해야하는터라 그누구도 항의 할수없는 일,2일 밤낮을 달려 마침내 도착한 루나티스 센트럴 저번 지령은 시골의 마을에서 이루어졌기에 이렇게 복작거리는 도시풍경은 둘에게 오랜만일것이다 특히 석탄사업으로 발전한 이곳은 다른곳보다 더 즐길거리들이 많기에 실크는 꽤나 들뜨기까지 했다 그래봤자...즐길돈도 시간도 없지만 말이지
기차가 정차하고 나오는 사람들이 한가득 짜증을 얻고 오는 가운데 누군가 한사람 만은 얼굴에 만연한 웃음을 띄우고 일등석을 향해 뛰쳐나간다 가끔 화물칸에서 일등칸을 시샘한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는 많지만 당당히 일등칸 인물에게 다가가는것은 좀 이상한 일 그도 그럴게 최상층과 최하층에게 인연이 있을법하진 않기때문이다
"어머..."
그렇기에 역무원들에게 제제를 받는 화물칸의 여자 나온칸도 그렇고 차림새도 썩좋지 않은게 어쩌면 물의를 이르킬수있기때문에 예방의 차원에서 그러는것같다
"잠깐, 오빠들! 나 저기 아는사람 있으니ㄲ..앗! 아~가~씨이 이거 어떻게 해명좀 해줘"
기관의 내부 사정이 어찌되엇건 돈줄이 되는 사람은 우대한다는건 훌륭한 생각이다. 누가 생각한건지는 몰라도 상을 주어야한다. 열차의 일등석을 만든사람처럼. 일등석은 확실히 대단하다. 이번에는 이동하는 동안에는 정말로 잠만 잔것같지만 어깨결림은 커녕 허리통증또한 없을정도. 역시 돈이 있다는건 멋진일이다. 내 돈은 아니지만...
"이번 역은 '루나티스'입니다."
몽롱한 눈을 비비고는 가방을 맨다. 어느샌가 이번 목적지까지 도착해버렸다. 루나티스 센트럴. 어디를 가더라도 같겠지만 저번에 있던 시골보다는 훨씬 마음에 든다. 밖을 봐도 경작지같은것밖에 보이는게 없다는건 나같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어디를 가던지 다른 모습이 있다. 시간이 있다면 천천히 돌아다니며 풍경을 체크해보는것도 좋았겠지만 그럴 시간은 없다. 차라리 이게 여행이였다면 좋았을텐데...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열차에서 내리자 마자 산업의 향기가 나는 도시가 나타난다... 였으면 좋겠지만 그 전에 역에서 나가지도 않았다. 빨리 나가서 잠시만이라도 눈에 새겨두도록 하자고 마음속으로 정하고 달리려 했지만 뭔가 잊은게 있다는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않았다. 역무원에게 잡혀있는 장신의 여자는 일등석에 있을만한 사람은 아니다. 문론 일반칸에 있어야할 옷을 입지도않았다. 하지만 익숙하다. 그야 그럴수밖에 페어니까.
"죄송합니다. 이분은 제 일행이에요."
역무원에게 다가갔다. 이 사람이 잡혀있으면 나도 힘들어진다. 거기에 저렇게 계속 둘수도 없는노릇이기도 하고.
"그냥 바깥에서 기다리시지...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지는 않아요?"
역무원한테 제재를 받으면서 다쳤을지도 모른다. 호위역이 다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이기도 하니까 평소 하던대로 실크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간단히 몸 상태를 살핀다. 뭐 실랑이가 있었던건 아닐테니까 다치지는 않았겠지. /참고로 말하면 난 밤-새벽쯤에 올것같아.
아름답고 찬란했던 그 시대를 아무리 그려보아도, 어차피 세상은 변해버렸지. 고대의 나라들은 사라지고, 자손들은 그 유전자가 퇴화되어가고, 빛과 어둠 양쪽 다 흐릿해지는 그 감각은 가끔씩 동굴에 있는 래윌조차도 세계가 멸망해버리는게 아닐까 하면서 몸을 떨게 만들어. 생명과 죽음 둘 다 소리를 죽이는 날이면... 레윌은 원래부터 혼자 있었어도 정말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라 몸이 떨리지. 그렇지만 말이야. 이 시대도 나름대로의 좋은 무언가가 있어. 그건...
[어... 라?]
레윌은 역시 보통 사람들에 비해 마나가 많이 막혀있는걸 보곤 남들보다 힘들긴 힘들겟구나 생각했어. 이런거라면 억지로 한방에 패스를 뚫다간 엘의 몸을 다치게 하겟구나 라고 생각하던중에... 엘의 몸에서 느끼는 감각때문에 조금 깜작 놀랐어. 이건 마나의 기운이 아니야. 그렇지만... 음. 이건 뭐지?
[흐음. 잠시만. 엘. 혹시 가끔 이유없이 현기증이 날때가 있어?]
아니. 설마하니 그건... 그거려나? 하지만... 이라고 무언가를 떠올리며 레윌은 살며시 엘의 손에서 손을 떼었어.
"아가씨가 너무 반가워서 그랬지이-그리고 걱정마 아가씨를 호위할 만큼의 상태는 되어있으니까"
생채기 조차 없는 모습 오히려 네게브는 역무원들을 걱정하는게 정답인지도 모른다 평소 시한폭탄같은 실크는 살인의 장소도 시간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일을 벌리니까
역에서 나와 처음으로 북적거리는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는 둘 역은 공업지역에 더 가깝기 때문에 아직 낮임에도 도시의 공기는 매캐한 흑안개로 뒤덮혀있었고 그사이를 실크와 같은 차림새의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번 환자의 집은 이 할렘가 안에 있기에 두사람은 뒷쪽 골목에서 마차에 오르기로한다
"아가씨는 이쪽 ...?응?"
지령과 함께온 돈봉투를 주며 마차에 오르던 실크는 이내 마차장의 제제에 마지못해 내린다 그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 봉투에는 오직 1인분만의 비용이 있다는것 몇번의 말다툼끝에 눈 깜작할새 선혈이 튀며 마부의 목이 날아간다 분수처럼 쏟아져나오는 피를 맞으며 시체를 간단히 치워둔다
역 근처에는 예상한 대로 공업지역에 가까운 모습이였다. 좋은 상태는 아니야. 그래도 의사인데 어디서든지 병에 걸릴수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있는게 좋다고 볼수가 있을리가. 상태가 좋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기는 한다. 여기 저기에 돈이 놓여있는거나 마찬가지인 곳이니까 이런곳을 주저하면 안되지.
이동 후에 또 이동이라는건 마음에 안들었지만 그나마 마차를 쓸수있다는건 꽤나 괜찮은 소식이였다. 문론 의사를 위험한곳에 자기발로 걷게해서 보내지는 않겠지만 어디선가 안심이 되는데...
아무래도 언제나처럼 돈이 1인분밖에 준비되지 않은거겠지. 위험한일만 하지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서 마부의 목이 사라지는 광경을 보게되었다. 목이 사라진 몸은 자기 머리를 찾지못한채 힘이 빠져 쓰러졌고 갈라진 공간에서는 피가 샘솟았다.
방금 광경으로 인해 속이 매스꺼워져 마차에서 다시 내린뒤에 길가에 토를 한다. 이런건 많이 봐왔지만 익숙한건 아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다. 그런 광경을 받아 들일 수 있는건 정신이 나간 사람이거나 아니면 심하게 우수한 군인정도겠지. 목이 아파올 정도로 게워낸 뒤에야 이제 시체를 바라볼수있게되었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과 입가를 닦고 바로 버려버렸다. 안녕 아끼던거였지만.
"신이시여..."
치워놓은 시체곁으로 가서 안식을 빌어주었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수술도 불사했을텐데 이 직업이 한탄스러워지는 순간이였다. 방금까지 마부의 자리에 있던 실크를 잠시 째려본뒤에 다시 마차에 올랐다.
"죽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었을거에요."
그래 돈에 얽힌 문제다. 승차비가 부족했던것은 나중에 갚으면 되는것 뿐인 이야기이다. 온정에 기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수도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탄 마차를 운전하는 마부겸 호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방금 내 안에서 이 사람에대한 이미지가 드디어 확립되었다. 인간이 윤리적으로 결여되어있는 모습. 자신이 틀린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모두 돈으로 되어있다. 멀쩡한 인간을 죽이는건 돈을 강에 뿌리는것과 같다. 최대한 살려두면 돈을 벌수있다. 내 사고방식도 정상이라고는 못하지만 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생각할 틈도 주지않는다. 저 사람에게 안전 운행을 바라는건 역시 무리였을까. 덜컹거린다를 넘어서 조금만 잘못하면 마차 자체가 쓰러질것만 같은 정도의 주행이 계속된다.
"ㅇ...왜요! 뭐가 이상하다고!!"
인간이 불가능한 영역이라면 신을 찾는게 당연한것이고 사후에는 사람이 관여 할수있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신께 의지하면서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어주는 수밖에는 없지. 문론 내가 이런말을 하는것도 이상하기는 하지만 신을 믿는것또한 좋은 취미라고 생각한다.
기관의 기계. 틀린 말은 아니다. 일만하고 휴식은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반항할 생각도 들지않는다. 그런 생각을 안해본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원인을 모르는 데에서 나오는 공포감이 몸을 감싸버릴 뿐이였다.
"과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 이라는 건가요? 응. 깊이가 느껴져요. 그럼 당신의 시야를 피해서 책을 읽어야겠네요."
약간 다운된 목소리로 말한다. 분명히 비꼬는것처럼 들렸지만 이런거라면 간단히 넘겨야 한다. 어찌되었건 계속 얼굴을 마주할 사람이기도 하니까 이정도는 받아들여야지.
"그리고 페어라면 당신도 이제부터라도 제 앞에서는 죽이는것보다는 기절만 시켜주세요. 부탁할게요."
솔직히, 지금도 팔에 마력이 흐르는 느낌이라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어. 항상 마법을 사용하려고만 하면 몸에 그 마력이 쌓이는 느낌이 들고, 가끔은 현기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생기는걸. 드래곤의 커다란 손이 나의 작은 손 위에 올라오더니, 드래곤이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는지 놀라는 반응을 보이다가 나에게 가끔 현기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생기냐는 말을 해 왔어. 현기증...? 무엇 때문에 그런 거지?
"... 네."
난 드래곤의 말에 조금 불안해지는 바람에 조금 무겁고 낮아진 목소리로 드래곤의 말에 대답했어. 드래곤이 내 손 위에 올려놓은 자신의 손을 내려놓자, 또다시 현기증이 몰려왔어. 난 잠시 눈을 꼭 감고는 왼손을 들어 머리 위에 올린 뒤 휘청거리려는 몸을 겨우 바로잡았어. 현기증이 서서히 사라져가자 나는 눈을 천천히 뜨며, 드래곤의 네 눈을 바라봤어.
그런데, 왜 난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마력이 팔에 흐르는 그 느낌을 느끼지 못 했던 걸까?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마법에 재능이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 사실 나도 엘이 뭔가를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정하지는 못했어. 일단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두곤 있어. 하나는 엘의 몸 안에 비정상적으로 쌓여버린 마나가 있다는 거랑 또 하나는 레윌주랑 상의를 해야겠지만 엘이 드래곤이랑 서로 영혼이 묶일 수 있는 존재 중 하나... 라는 식의 설정을 생각해두고 있었어. 다른 것도 생각해보고 있고. 자세하게 정한게 아니라서. 아무튼 자세한 내용은 다음 상황으로 넘어갈 때 서로 상의해도 되고.
//그런 능력이였구나... 는 후자의 경우라면 나도 레윌에 대해서 비슷한것을 생각했던 것 같아. 예전에 읽은 소설의 설정에 가까운 거지만. 확실하게 생각한건 아니라서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서로에게 계약을 통해서 영혼과 몸이 공유되는 그...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체인질링같은 거도 나름 가능한 파트너같은 것을 생각중이였어. 서로의 영혼이 연결되었기 때문에 힘이나 생각같은것도 서로 주고받을 수 있고 상대방의 감정을 같이 느끼는 것도 가능하고.//
[특이한 경우라고 우선 말해두고 싶어. 굳이 네가 갖고있는 마법에 대한 가능성을 말하자면... 아마 인간들이 일반적으로 아는 방식으로만 노력을 했다면 그건 진짜 희대의 삽질이였을거야 엘.]
레윌은 엘 안의 무언가가 비정상적으로 마나를 많이 몸안에 쌓아두었다는 것부터 말해준 뒤 앓는 소리를 내면서 골치아파했어. 분명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아아. 분명 이런 경우를 보기야 봣어. 하지만... 그건 1000년도 전에 봣던 경우인데다가 레윌의 일이 아니였었단말야. 레윌이 기억력이 좋기야는 하지만 너무 오래된 일들은 그녀로서도 강렬하게 남지 않는한은 기억을 안한단 말이지.
[그래... 그러니까 아마 1000년도 전에 너랑 같은 체질을 봣었어. 음. 그애는 ...하를렌 족이였던가? 들리는 소식에서는 200년 전에까지 이어진 마지막 대 전쟁에서 멸족당했다니까 넌 모르겟지만 피부가 굉장히 새파란것을 빼면 인간과 비슷한 종족이였지.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레윌은 엘을 바라보다가 그때를 떠올리려고 말을 멈추었어. 그때 그 하를렌의 소녀는 레윌의 동족이자 레윌의 오랜 친구였던 지그가 데리고 다니는 아이였기 때문에 엘도 알게되었던건데... 그 소녀의 몸에서도 마나는 한 번 모이면 빠져나갈 생각을 못했지.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쉽게 변하는게 일반적인 상태일때의 마나들인데 말이야.
[나도 이런 경우는 일생에 두번본거라서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
레윌은 생각하다가 당장에 답이 안나오자 잠시 앎는 소리를 내었어. 이럴땐 어떻게 하더라... 당장 생각 나는건 없고. 도움을 청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지그에게 연락을 할텐데 지그는 우기가 한 번 시작되면 질색을 하고 자기 레어에서 나오지 않기로 유명한 놈이니까... 아!
휘청거리는 몸을 바로잡고 눈을 뜨며 드래곤을 바라보자, 드래곤은 나에게 특이한 경우라는 이야기를 하며 내 안의 무언가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마나를 쌓아놨다고 이야기하며 골치 아파하는 듯 앓는 소리를 냈어. 내 안의 무언가가, 마나를 쌓아놓고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난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어. 기존 인간들의 방식으로 마법을 쓰려고 했다는 것도 사실상 의미가 없는 이야기라니. 이해가 되질 않아. ...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드래곤의 말대로 기존의 방식대로 마법을 쓰는 것이 의미가 없다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마법을 써야 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이야기 투성이야.
드래곤은 이어서 약 천 년 전에 나랑 같은 체질을 지닌 사람을 본 적이 있다고 했어. 정확히는 나랑 같은 종족이 아닌 하를렌 족이라는, 200년 전에 멸종한 종족의 소녀였다고. 그리고 드래곤은 이런 경우를 평생 두 번밖에 보지 않았다고 하며, 다시 앓는 소리를 냈어.
"... 몸에 쌓인 마나, 하를렌, 천 년 전의 이야기..."
난 드래곤이 나에게 이야기해준 말들을 정리하기 위해 혼잣말을 하듯 작은 목소리로 그동안 들은 이야기의 주요 주제가 되는 문장을 말했어. ... 이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 걸. 몸에 마나가 쌓인 것은 물론, 그 멸종한 하를렌이랑 종족 또한. 인간이랑 비슷한 종족이라고는 하지만, 그 어떠한 책이나 이야기에서 그 종족의 이름조차도 들어보지 못했어. 그러자 드래곤은 무언가 좋은 수가 떠오른 듯 나에게 아침을 먹은 뒤에 지하로 따라올 것이냐고 물어봤어. 지하? 이 동굴에도 지하 같은 것이 있는 걸까? 있다 한다면, 그 지하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난 혼란과 호기심이 섞인 눈빛으로 드래곤의 네 눈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어.
"네, 같이 갈래요."
// 응. 정확하게 정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이 두 가지로 생각해놨어. 일단 전자는 지금 상황에서 나타났으니 이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고, 후자같은 경우에는 서로 영혼이 묶이려면 아무래도 엘과 레윌이 상당히 친해져야 하니 천천히 생각하도록 하자. 다음 상황을 상의할 때 이야기해도 좋고, 아니면 답레를 달면서 상의해도 좋고. 아, 그리고 레윌주가 생각한 설정도 괜찮은 것 같아!
적어도 개미보다는 나은 대우라는 코로나의 말이 농담, 진담인지의 구분을 떠나 사르비에는 오묘한 한기를 느꼈다. 딱히 그녀의 말에서 한기가 서려있는게 아닌, 단어 그 자체 말이다. 어쨌든 감시는 한다는 뜻이 내재되어있다는 점에선 한숨을 쉴수밖에 없었으나 사르비에의 뇌내 판단은 '기왕 걸린 바에 당장 죽는 것 보다는 어느정도 목숨을 부지하는게 낫겠지.' 라는 선택으로 기울어갔다.
"......"
그 뒤에 들려온 그녀의 단언, 코로나가 행하고 있는 그 '단독행동' 엔 성취감도 이득도 없다 한다. 심지어 틀린 선택을 하는 기분까지 들었다고 하니, 지금 그 단독행동이라는 것에 의해 어떻게든 연명을 하게 된 사르비에는 그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었으나 코로나의 말이 거짓이 아님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손을 건네보이는 그녀의 행동에도 딱히 반사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마주잡아 보였다.
아주 잠깐 움츠러들긴 했지만 그건 분명 팔에 닿은 스산한 바람탓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이건 어떤 의미의 악수인 거니? 휴전? 아니면 내가 협조를 잘 해준다는 것에 대한 긍정의 표현?"
저 마크. 오히려 신에대한 믿음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버리는 저 마크. 내가 신을 믿을수밖에 없는 유일한 이유이자 저것이 사라진다면 더욱 강렬한 신앙을 가지게될 낙인같은것. 그래. 이런 나락에 떨어진 상황에서 신은 아직 나를 구하지 않으셨다. 다치고 병든자를 모두 구하시고 그 다음이 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가진 의술은 신께서 주신것에 틀림없으며 이것으로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자신을 구하라는 소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믿어야한다.
강렬한 신앙을 가지고서 저 사람이 하는 말을 듣지 않으려 했지만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저 목소리는 마치 뱀처럼 내 귀속으로 기어들어왔다. 재미있으니까 사람을 죽인다.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 기관의 말을 듣지않으면,의뢰에 실패한다면 나는 그녀의 손에 죽는다. 실패는 용납되지않는다.힘쓸수있는 선까지 노력해서 의뢰인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 목숨을 걸고서 사람을 치료하는데도 내게 오는 인정따위는 없었다.
"...그런날이 오면 좋겠네요."
죽는건 무섭다. 하지만 살아도 죽은것과 마찬가지다. 수술을 할때도 몇번씩이나 여기서 일부러 죽일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용기가 생기지않는다. 차라리 실패해서 죽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죄책감없는 사람에게 죽는건 기분이 어떨까. 에스코트 하려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천천히 마차에서 내렸다. 별 의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본능에서 오는 긴장감. 그걸 감출수는 없었겠지.
"안녕하세요. '천사의 집'에서 파견된 의사 네게브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소개만 한뒤에 실크의 저 미친듯한 태세 변환의 속도를 보았다. 화살이 과녁에 박히는것도 저것보단 느릴거라 생각하며 재미있다는듯 코웃음을 쳤다. 저런 사람이라서 지금까지 살아남은거겠지.
엘이 앞으로 모르는 것들을 들으면서 의문심에 휘청거리자 잠깐 걱정하던 레윌은 그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꾸준히 들으며 필사적으로 이해하려는 엘을 기특하게 바라보았어. 이건 마치... 닭이 병아리를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그와 거의 비슷한 류의 뿌듯함이야. 하지만 레윌은 곧 머리가 터질것 같은 엘에게 그런걸 말해주진 않았어.
[뭐 너어어무 예전일이니까 지금 다 이해하기 힘들면 이해하지 않아도 돼.]
사실 인간들이 지금 쓰는 마법과 마족들만 쓰는 마법, 신이 허락하여 탄생한 신성마법과 엘프나 술사들만이 쓰는 특이한 마법들은 전혀 다른 마법이지만 그 뿌리만큼은 다 같아. 그건 바로 드래곤의 마법. 정확히 하자면 뿌리라기보단 기원만 같다고 해야하나... 이 세상에 마법을 처음 만든 것은 신이 아닌 드래곤들이였어. 그들의 마법은 그들이 모시는 신만큼이나 기적에 가까워 보였지. 몇 안되지만 드래곤이 탄생시킨것이나 다름없는 신들중에 하나가 그래서 마법의 신이야. 마법은 엄청났기 때문에, 마법을 만든 드래곤들을 본 신은 마법의 힘과 가능성을 미리 알아보시며 마법을 관리하는 신까지 따로 만들었지. 그런 힘이였기 때문에 드래곤들이 아닌 지성 생물들은 모두 마법을 쓰고 싶어했어. 하지만 드래곤의 마법은 드래곤들에게 특화되어 맞추었기 때문에 각 종족들과 생물들는 오랜 연구와 드래곤의 조언들 끝에 자기들만의 마법을 만들었지. 그래서 드래곤의 마법과 인간의 마법 엘프의 마법과 마족들의 마법이 전부 겉우로 보기에는 비슷해도 전혀 달랐어.
[지하는 겉으로 보기엔 감춰져있지만 내가 맘만먹는다면 언제든지 열릴 수 있는 아공간의 입구가 있는 곳이야. ...이 동굴이 넓긴 하지만 여기 한 공간에 모든것을 다 처리하긴 힘들잖아? 그래서 만들었었어.]
라고 지하에 대하여 말을 한 뒤 레윌은 아침으로 준비한 식량을 꺼낸 뒤 엘에게도 엘이 먹을 분량만큼을 덜어주며 말했어.
[좋아. 시원시원해서 좋네.]
레윌은 아마... 방금 꺼낸 장황한 마법의 역사를 알고 있기에 엘이 아직 어떤 힘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엘에게 맞는 마법은 분명 인간의 마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던 것 같아.
표정에 여전히 변화는 없었지만 그것은 의문을 표하는것임이 분명했다. 파트너라는 단어선택은 조금 웃겼지만, 확실히 그 둘은 어느 의미로는 파트너였다. 바로 반역 파트너. 사르비에는 세상의 시선을 피해 식물을 만개시키려 하고 있었고, 코로나는 그런 그녀를 즉각 소각처리하지 않고 보류라는 독단적인 행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코로나 본인은 그저 악수의 평범한 의미를 읊은듯한 모양이었지만.
악수가 끝나고 나서는 -사실 악수라고 하기에도 뭐했다. 그저 손가락으로 서로의 손을 감싸쥐고 놔준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미 해는 반쯤 떨어져서, 강철같은 도시에 어둠을 깔기 시작했다. 이미 발빠른 몇몇 가게나 주점등은 간판의 조명에 스위치를 넣고 있었다. 점점 찾아오는 도시의 야경을, 코로나는 알고 있던것일까? 소녀는 고개를 돌려 지평선에 턱걸이 하고있는 해에 눈길을 한번 준 다음, 사르비에에게 이렇게 말하곤 움직였다.
"시간이 늦었어. 그럼 이만."
그런 간단하고도 붙임성없는 인사와 함께 부서진 난간으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이내 전에 들어본적이 있는 기계음섞인 파공음이 퍼지며 파란 꽁무니를 달고 건물들 사이로 사라지는 비행체 하나가 사르비에의 눈에 띄였지만.
// 막레에요 사르비에주~ 긴 시간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걸로 첫번째 프레이즈는 막을 내리도록 합시다! 혹시 잇고싶으시다면 레스 하나정도는 더 이어도 괜찮아요~ 그럼 시트보트에서 보도록 합시다!
"파트너라~ 그거 어떤 의미에선 상당히 위험한거, 당연히 알고 하는 소리겠지~? 뭐... 그래도 아까 말한 개미보단 나은 대우보단 훨씬 더 듣기 좋은 말이네~"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닌 몇마디, 물론 코로나가 말한 파트너의 의미는 사르비에에게 정확히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여전히 변함없는 무표정에서 좋은 의미를 찾기는 힘들었으니까, 서로의 손을 잠깐 감싸쥔 것에 지나지 않은지라 사실상 악수라고 하기에도 뭐한 행동이었지만 사르비에는 그것이 일종의 조건이자 하나의 약속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기로 했다.
서서히 걸쳐져오는 황혼, 이미 이 세계는 싸늘함만이 감도는 곳이 되어버렸는데도 그 석양이나 뒤따라오는 달은 전혀 차갑지 않았다. 지금 살아있는 자신에겐,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래그래~ 너도 돌아갈 시간이고 나도 돌아 갈 시간이니까~ 나중에 또 어디서 볼런진 모르겠지만?"
여전히 간단명료한 코로나의 인사 뒤로 이어진건 건물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그녀의 푸른 잔상이었다.
"나참... 여전히 귀따갑네... 저런 것도 이젠 익숙해져야 하는 거려나~"
높은 건물 옥상에 홀로 덩그러니 남은 사르비에는 서서히 남색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내려가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녀와 다르게, 다른 이들과 다르게 자신은 날아다닐 수 있는 능력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내 몸에 쌓인 마나, 나랑 비슷한 체질을 지녔던 200년 전에 멸종한 종족의 아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투성이야. 책에서도 본 적이 없고, 이야기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이해하려 애쓰고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그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드래곤은 너무나도 오래전에 있었던 이야기이니 이해하기 힘들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 그런데, 나랑 비슷한 종족에 비슷한 체질을 지닌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 아이도 나처럼 마법을 쓰지 못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았을까? 그 아이에 대해 알아보고는 싶지만, 자그마치 천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니 더 이상 알아볼 순 없을 거야.
만일 그 아이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한다면, 그 아이가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마법을 쓸 수 있었는지를 알고 싶어. 책에서 본 이야기지만, 마법도 종족마다 사용하는 방법이나 그 모습이 다르다고 본 적이 있었거든.
드래곤은 이어서 지하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 겉보기엔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언제든 열릴 수 있는 아공간의 입구가 있는 곳이라고. 아공간? 아공간이라면, 마법으로 만든 임의의 공간을 말하는 것일까? 이 동굴의 지하에 그런 공간이 있다니. 한 번 보고 싶어. 난 드래곤의 말에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을 하며 경청하다가, 드래곤이 아침으로 준비한 식량 중 일부를 나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앞으로 살짝 꾸벅이며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고맙다고 말했어.
"고마워요."
난 드래곤이 준 식량을 손으로 집으며, 그 식량을 유심히 바라보았어. 그나저나, 동굴의 지하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난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시선을 식량에서 드래곤의 네 눈으로 돌리고 드래곤에게 물어봤어.
"저, 레윌. 지하에는 무엇이 있나요?"
드래곤이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한 직전을 제외하곤 드래곤의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던 나는 이번에는 약간 용기를 내보며 드래곤의 이름을 이야기했어.
// 괜찮아, 숙취라고 한다면 상당히 고생했겠다. X( 숙취가 너무 심하다면 잠시 푹 쉬도록 해. 아, 혹시 레윌이 엘에게 준 식량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을까?
//하하... 하루종일 속이 부대꼈었지... 해장국 끓이면서 다시는 주량을 오버하지 않기로 결심한 날이였어. 지금은 괜찮아.//
[...]
잠깐 뭔가가 생각이 날 것 같던 레윌은 말없이 엘을 바라보다가 딱 하나가 그 옛날에서 떠올랐어. 뭐 그치만 중요한건 아니였어. 그냥 그 하를렌 소녀도 엘처럼 예쁜(레윌은 보라색과 빨강색을 좋아했거든.) 보라색 눈을 하고 있었었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소녀도 레윌을 보자마자 겁을 먹었어. 자기 얼굴이 무서운건가? 라고 생각하는 레윌은 무섭게 생긴거야 맞는 얼굴이지만 그건 레윌이 아니라 레윌 부모님의 잘못이고.
[푸흐흐흐. 엘을 보니까 잠깐 옛날일이 떠올라서 봤었어.]
아무 생각 없이 어제처럼 엘의 머리를 쓰다듬던 레윌은 곧 엘이 고맙다는 말을 하자 고개를 끄덕였어. 아. 참고로 레윌이 엘에게 준 식량은... 만화고기처럼 생긴 고기였어. 뼈에 얼굴만한 살덩이가 붙은채 익혀있는 거라고 말하면 될까? 아무튼 그런 만화고기의 가장 큰 부분을 먹던 레윌은 아공간에 무엇이 있냐고 물어보자 먹던걸 멈추고 말해주었어.
[창고나 책을 모아둔곳, 식량 저장소같은 거라든가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상속빋은 엄마가 갖고있던 레어의 보물들만 있는 방도 있어. 예전에 아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었을때 신이나서 여러개씩 만들고는 지우지 않아서 처음보는 사람한텐 미로같은 곳일거야.]
레윌은 처음, 자기가 만든 아공간들에서 길을 잃는 바람에 며칠동안 갇혀버렸다가 간신히 순간이동을 하던 때를 기억하며 고개를 잠시 절레절레 저었어.
[정말이지, 나도 내가 만든거지만 실수로 거기 갇힌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큼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게 다행스러운적이 없었지 뭐야.
드래곤이 나에게 준 식량은 다름 아닌 잘 익혀진 고기였어. 고기... 마을에 있었을 때 자주 맛보지 못한 음식이야. 먹을 수 있다 하더라도 기껏 스튜에 조금 넣는 것이 전부였고. 내가 지내던 마을에는 큰 목장 같은 곳이 없었기에 모든 고기를 다른 마을이나 도시에서 가져오는 것에 의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기사가 되거나 나처럼 마을에서 쫓겨나는 등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은 평생 동안 마을 밖을 벗어날 수 없는, 심지어 마을 바로 옆에 붙어있는 숲에도 들어갈 수 없다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조항이 있는 것도 고기가 귀한 음식이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는 것 같기도 해.
잠시 고기를 빤히 바라보던 나는 드래곤이 네 개의 눈으로 말없이 날 바라보는 것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서 놀란 표정과 반응을 보이다가, 작게 웃으면서 옛날 일이 떠오르기에 날 보았다는 드래곤의 말을 보고는 잠시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다가 드래곤이 저번처럼 꼬리로 내 머리를 쓰담아주자, 살며시 눈을 감으며 드래곤의 꼬리가 나의 머리를 쓸고 지나가는 그 느낌을 고스란히 느꼈어. 다시 살며시 눈을 뜬 나는, 잠시 식사를 멈추고 나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드래곤을 바라보며 드래곤이 하는 말을 경청했어.
지하... 라고 불리는 듯한 아공간에는 창고나 서재, 식량 저장소나 레어의 보물이 들어있는 공간이 있는 것 같아. 또, 드래곤이 순간이동까지 해가며 겨우 아공간에서 탈출했다는 것을 본다면 복잡한 미로와도 같은 구조일 것 같고. 난 드래곤의 말을 듣고는 이해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
"그런 것들이 있다라... 굉장히 신기할 것 같아요."
난 차분한 어조로,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담긴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말한 뒤 손에 들려진 고기를 바라보다가 바로 먹기 시작했어. 아침을 먹어야지 지하에 갈 수 있으니, 빨리 먹어야 할 것 같아.
// 괜찮다니 다행이다. 앞으로 너무 과하게 술을 많이 마시진 마! 괜히 고생하게 되니까.
아공간... 순수하게 개인이 만드는 그 이형의 공간은 만드는 사람과 용도에 따라 달랐어. 어떤 곳은 앞도 뒤도 위 아래 양 옆도 알 수 없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뿐인 새까마거나 새하얀 공간이 있다면 마치 정말로 다른 세상을 하나 옮겨놓은것마냥 시간이 흐르고 낮과 밤과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곳 또한 있어. 그런가하면 그냥 또다른 방처럼 생긴 공간도... 레윌은 가끔 동굴 안이 지루하면 자기 아공간에서 놀았기 때문에 레윌의 아공간은 아주 많았어.
[만드는데 애는 걸렸지만 그래서 꽤 재미있는것들도 많을걸?]
엘이 차분하게 말을 하지만 고기를 먹는 속력이 빨라지는것을,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날카로운 검은 이빨로 마음껏 뜯어서 씹어 삼키며 보던 레윌은 고기를 삼키고 난 뒤 말을했어.
[조심해서 먹어, 그러다가 체할라.]
사실 말하자면 이 고기도 아공간에서 꺼내왔어. 아공간중에는 시간이 멈춰있는 곳도 있는데 레윌은 식량을 주로 거기에다가 보관하거든. 그러면 상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만약 레윌이 죽게 된다면 그것들은 어떻게 될까? ...음. 근데 그럴 일은 없으니까 아마 그런 고민은 안해도 괜찮을 것 같아. 아무튼 그런 사이에 레윌은 자기 고기를, 남은 뼛조각까지 아드득 빠드득하고 씹어 삼켜버렸어. ...레윌의 이는 정말 단단한가봐.
두사람은 메이드의 안내에 따라 집안으로 들어간다 메이드가 말해준 방안에 들어가자 한 노신사가 앉아있다
"어서오시게나"
꽤나 정정해보이는 할아버지 네게브의 진단의 결과는 가벼운 지병인듯보인다 적당한 처방을 드리고 방안에서 나오는 두사람은 다시 메이드에게서 지령서와 근처호털의 소개장을 받아든다 다음 장소가 멀지않으니 하룻밤만 이근방에서 자고 다시 떠나라는 소리겠지 물론 소개서는 1인분밖에 없었다
"여전히 쪼잔한곳이네-"
아까 가져온 마차를 몰며 호텔로 가는 도중 실크의 불평이 언제나와같이 하늘을 찔렀다 하긴 둘다같은 사람인데 한명은 호화호텔 자신은 밤이슬을 맞으며 노숙하라는 점에서 그걸 받아들이는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진단결과는 별것아니였다. 가벼운 지병이였을뿐이고 그렇게 위험한것은 아닌걸로 보였다. 적당한 처방과 이 병에 좋은 식재료등을 알려드리고 방을 나오자 메이드는 또 지령서와 근처에 있다는 호텔의 소개장을 건내주었다. 약간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웃으며 지령서를 받아들었다. 어차피 이게 아니였으면 죽었을테니.
아무렇지 않은듯 실크의 투정에 덧을 붙였다. 죽으려 하면 된다. 말은 쉽지. 이곳을 벗어나서 자유를 얻으려 했지만 영혼의 자유가 먼저온다면 신의 바로 옆자리를 허락받아도 사양할테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가버리네요."
호위역이 마차를 처리하러갔다. 이대로 바깥에 나가는게 위험하기는 하지만 호기심이라는게 억누를수있는거라면 과학자와 의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정할수있다. 나는 실크가 마차를 끌고 간뒤에 호텔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간단히 몸을 방어할수있는 도구정도는 가지고있었다. 지팡이에 독약에 아니 애초에 대부분은 지팡이랑 가면만 쓰고다녀도 가까이오지않는다. 의사는 우험한직종이니까.
"그럼 나가볼까요."
새부리가면을 고쳐쓰고 지팡이를 짚었다. 애초에 시내에 나가는것뿐이다. 그 이상은 없다. 이런곳에와서 모처럼 개인의 시간이 생겼는데 낭비하기는 아깝다. 당연히 나간다.
아공간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을지 너무 궁금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치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생겼을까? 아니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형태로 생겼을까? 당장이라도 확인해보고 싶어. 드래곤은 아공간에 재미있는 것들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 아공간에 대해 들으면 들을 때마다, 빨리 그곳에 가서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져. 그래서 난 내 손에 들려있는 고기를 먹는 속도를 점차 늘리기 시작했어. 드래곤은 그 모습을 보고는 천천히 먹으라고 했고. 하지만 난 드래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고기를 물어뜯었어. 고기가 어느 정도 입속에 들어오니, 서서히 씹기가 힘들어지게 됐어. 난 잠시 고기에서 입을 때고 잠시 드래곤을 바라보며 고기를 씹었어.
드래곤은 그 튼튼한 이로 커다란 고기를 뼈째로 씹어 삼켜버렸어. ... 책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드래곤의 이는 발톱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단단한 것 같아. 그러지 않고서야 저 딱닥한 뼈를 씹어먹을 수 없을 테니까. 난 그 모습을 보다가 입에 있는 고기를 삼키고는 뼈에 붙어있는 나머지 고기들을 물어뜯었어. 너무 급하게 먹는 바람에 그 맛을 음미할 순 없지만, 고기의 맛은 정말 좋은 것 같아. 오랜만에 먹어보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평생동안 이런 고기만을 먹고 지낼 수도 있을 것 같아. 이젠 뼈밖에 남지 않은 고기를 바라보던 나는 뼛조각을 손에 쥐며, 드래곤을 바라보며 신이 난듯한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말했어.
사르비에의 예상과는 달리 그 길고 긴 계단을 밟고 층을 하나하나 내려오는 동안, 아무와도 마주치지 못했다. 특히나 코로나는 그림자조차 찾아볼수 없었다. 감시를 하겠다더니 잊은건 아닌가. 사르비에가 밖으로 나오면, 건물의 입구 옆에서 아이보리 색의 로브를 뒤집어 쓰고있는 소녀가 하나 있는것을 볼수 있다. 사르비에가 나오자, 이윽고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뒤를 잡혔던 곳에 다시 돌아가는 취미라도 있는 모양이지."
로브를 쓴 소녀가 사르비에를 올려보기도 전에, 사르비에는 그 톤의 변화가 거의 없는 목소리만 듣고도 그게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유추가 되리라. 로브의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분명히 사르비에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강철과도 같은 무표정. 코로나였다. 전에 옥상에서 이뤘던 만남에서 처럼,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호위대상을 안전한 호텔로 배웅한뒤의 일은 호위 스스로가 알아서 생활하여야한다 노숙을 하던가 따로 일을 해서 벌던가... 아님 범죄를 저지르는 일을 하던가 어떻게든 밤을 지내야 내일을 살아갈 기회를 얻는다
"고마워 오빠♡"
끈적거리는 피를 씻은 머리를 살살 말리면서 욕실에서 나오는 실크 그녀는 좀전만 해도 사람이였던 고깃덩어리에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녀가 내일로가는 티켓을 잡는 방법은 누구보다도 간단했딘 적당한 남자를 잡아 집까지 같이오면 머리를 댕강 베어버리는 그런방법 같이 다니는 도덕적인 아가씨는 이런방법에 불만을 토로할것같지만.... 그런건 배부른 녀석이나 챙기는것이라 생각하며 금방 접어버린딘
"어머...이 오빠는 돈이 없네?"
아직 저녁을 먹지못한 그녀는 집안곳곳을 살피며 음식을 살수있을만한것을 찾아본다 오늘 죽인 남자의 집은 보기에도 허름해보여 그리 많은 돈을 기대하긴 어려워보인다
"흐음...추가로 뛰어야하는건가"
그리고 다시 거리로 나온다 오늘은 운이 없는것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않아 보인다 귀찮았는지 적당히 주변을 살피다 거리에 혼자 남아 있던 남자를 조용히 베어버린다 뭐 누가보면 그사람도 죽이면 되겠지 같은 안일한 생각으로 다시한번 거리를 살펴보다 익숙한 여자의 얼굴을 본다
"어머? 아가씨 좋은 저녁이야...근데 아가씨가 다니기엔 너무 위험한 거리같아보이지 않아? 이근처에선 살인귀도 나오는것같은데"
나쁜기분을 괜히 네게브에게 장난으로 풀어보려 싫어할것을 뻔히 알고 죽은 남자의 목을 네게브쪽으로 차버린다
이리저리 일정에 치이다 매우 늦은 떡을 돌리게 되었네요 . 머쓱하고 부끄러워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어지지만 그래도 소중한 성의와 마음을 담아 떡을 돌려봅니다 . 안녕하세요 , 저는 현재 넘나드는 바람결 어장을 이끌고 있는 캡틴입니다 ! 스레딕의 흰 안개꽃과 검은 장미의 리부트작이지만 전 스레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엎고 새로 시작하는 새 출발을 산뜻하게 시작하고 있는 어장입니다 ~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가는 1 : 1 상황극 . 깊은 관계 속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상황극으로 채워나가지길 바랍니다 ★ 희망차고 활기찬 스토리와 사랑이 넘치는 세계관으로 늘 모두의 마음에 따뜻함을 가져다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 자유로운 육성물을 추구하며 무엇을 하여도 노 터치 ! 자유로운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저희 어장을 오게 해 준 이 곳 참치넷과 , 참치넷의 상황극판에서 함께하는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앞으로 잘 지내보아요 ~ 떡 맛있게 드시고 , 늘 좋은 하루 보내시길 !
그러고보니 레윌은 어제 초저녁 무렵부터 엘이 아무것도 안 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었어. 사실... 아까 고기를 줄 때도 예전에 레윌의 친구가 인간류의 생물에게는 자기 머리만큼~반만큼의 음식이 딱 적당한 한끼 식사라고 들어서 그정도로 준거였는데... 거의 정신없이 두 볼을 빵빵하게 채우면서 먹어치우는 엘을 보면 흐뭇하면서도 그것보다 더 줘야 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그러고보니 아공간의 식량창고 말고도 저번에 인공으로 햇살과 땅과 물을 만들고 놔둔 뒤에 씨만 뿌려버리고 가버린 곳이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더라...? 이번 기회에 엘이랑 같이 아공간에 가는 김에 레윌은 거기도 같이 가야겟다고 생각했어.
[그걸로 괜찮아? 많이 먹는것 같았는데...]
레윌이 고기를 다 먹어버리고 엘이 먹는것을 보며 다른 아공간에 대해서 생각하던 순간에 엘이 다 먹었다고 하자 레윌은 정말로 배부른지 궁금해서 엘에게 물어봣어. ...그런데 그건 그냥 레윌의 기우였나봐. 금방이라도 내려가고싶다는 듯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레윌을 바라보는 엘의 눈빛을 본 레윌은 그런 엘의 모습에 푸흐흐흐 웃으면서 말했어.
[그래그래. 배는 다 찬 모양이네. 알았어. 자아, 엘. 그럼 내 꼬리 끝을 잡고 뒤를 잘 따라와. 지금 갈테니까.]
동굴 안쪽으로 몸을 돌린 레윌은 곧 엘의 근처에 꼬리를 내려놧어. ...뭐. 엘의 꼬리는 엘의 고사리같은 손으로는 한 손으로 잡기 힘들만큼 크지만, 대충 그 위에 자란 뿔같은 것들중에 하나는 잡고 갈 수 있는 것 처럼 작게 보여.
고기를 다 먹은 뒤에 생각난 건데, 드래곤이 나에게 준 고기가 내가 봐 왔던 고기와는 다르게 크기가 상당히 컸던 것 같아. 드래곤과 함께 지하에 가기 위해 그 큰 고기를 급하게, 빠르게 먹기는 했지만. 그런데, 그 고기는 어떤 짐승의 고기였을까? 돼지나 소같이 인간이 흔하게 먹는 짐승의 고기였을까?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한 커다란 짐승의 고기였을까? 갑자기 고기의 정체가 궁금해지긴 했지만, 지금은 고기보단 지하의 모습이 더 보고 싶기에 이런 질문은 잠시 마음속에 눌러두기로 했어. 드래곤은 고기를 다 먹은 날 보고는 그걸로 괜찮냐고 말했어. 그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어.
"네, 괜찮아요."
고기의 양이 상당히 많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아. ... 사실 마을에서 추방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도 했으니까. 어쩌면 심하게 배가 고픈 탓에 그 많은 양의 고기를 다 먹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빨리 지하로 내려가고 싶다는 눈빛으로 드래곤을 바라보니, 나의 모습을 본 드래곤이 잠시 웃더니 자신의 꼬리 끝을 잡고 잘 따라오라고 하며 내 근처에 자신의 꼬리를 살포시 내려놨어.
"... 네."
난 잠시 동안 드래곤의 꼬리를 바라보다가, 신기하다는 목소리로 드래곤의 말에 대답했어. 나의 눈앞에 놓여진 드래곤의 꼬리는 마치 통나무를 보는 것처럼 아주 컸고, 그 위에 뿔이 나열되어 있듯이 나 있었어. 드래곤의 꼬리는 이렇게 생겼구나. 정말 신기해. 난 작은 손으로 드래곤의 꼬리에 난 뿔 중 적당히 잡을만한 꼬리를 살며시 쥐고는, 드래곤이 동굴의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뿔을 쥔 손을 꼭 쥐고는 그대로 드래곤을 따라갔어.
...나오자 마자 이러는것도 뭣하지만 이 근방의 경찰은 정말로 일을 하기는 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대놓고 날 잡아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혀 잡히지 않았다. 공업의 냄새는 마음에 든다. 더할나위없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급격히 사회가 부유해지면 부패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법... 이라고 전에 읽은 책에 적혀있었다. 그런건 아닐까.
잡다한 생각을 해가면서 걸어다녔지만 이상할정도로 사람이 가까이 오지않았다. 가면의 인상이 이렇기 때문인걸까 아니면 그냥 의사라서 그런걸까? 확실히 의사들이 쓰는 가면이 정상적으로 보일리는 없다. 후세에는 이런걸 가지고 괴담같은게 생기는건 아닐까 할정도로 무섭다. 문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괴물이 더 무섭지만.
"ㄲ...꺄아아아아!!"
동공이 이 이상 커질수없을 만큼 확장되고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목에서 나온 날카로운 비명이 거리를 가득 채워갔다. 눈앞에 있는 광경을 믿지 못하는건 아니였지만 작은 공을 차듯이 아무렇지않게 발로 채여져서는 내 발앞에 놓인 남자의 머리는 시선도 핏기도 잃어버린채로 허공을 응시하고있었다. 저 살인귀는 자신이 하는 짓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날 놀리고 싶어서 이런 시체를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라면 그저... 아니 사람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저 사람도 틀림없이 나을수있어. 마음을 굳게 먹자.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 살인귀가 절 보자마자 죽이지는 않아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추스리고는 경직된 얼굴근육을 억지로 움직여 웃음을 지어보았다. 이런상황에서 웃을수있는 사람은 분명히 두종류중 하나다. 하나는 저 살인귀와 같은 사이코패스. 나머지 하나는 정말로 강인한 사람. 문론 나는 둘다 아니다. 신을 믿고 도덕심을 가지고있는 평범함의 극치.
"그래서 당신은 뭐하고 있었어요? 살인? 아니면 강도? 아,당신이니까 둘 다일지도 모르겠네요."
낮에 마부를 살해하고 마차를 탈취한 그 사건으로 유추해서 지금 하고있는 일을 상상해 보았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마도 여기서 내가 죽는게 빠른 일일지도 모른다. 한걸음도 움직일수없어서 처음에 있던 그 자리에서 그저 센척해보이며 팔을 꼬고서 그저 서있을 뿐이다. //발견이 좀 늦어서 많이 늦었네...
거짓말이 아닌 진심으로 괜찮다고 하는 엘의 모습을 번 레윌은 그래도 친구가 해줫던 적량대로의 말이 맞아서 다행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엘이 자기 꼬리를 잡길 기다리고 있었어.
사실 드래곤의 생김새는 그들의 수명만큼이나 아주 다양했어. 그나마 인간들에게 알려진 대표적인 모습이 비늘과 날개있는 도마뱀에 가깝고, 레윌도 그런 대표적인 용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떤 드래곤은 갈기에 뿔이나 비늘 대신에 공작새마냥 멋진 깃털이나 부드럽고 매끈거리는 털들이 자라나기도 했고 흔히 물에서 살거나 하는 드래곤들은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다리 대신에 매끈한 지느러미와 아가미가 있거나 아예 비늘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었지. 그것뿐만 아니라 날개도 아예 새처럼 생긴 것 부터 피막처럼 생긴것, 여러개인것부터 아예 없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개성넘치는 드래곤들이 모였을 때는 무척이나 요란스럽지. 이것에 대하여서는 말하자면 정말 끝도 없을 것 같아. ...그런데 엘은 언젠가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될까? 레윌은 다른 드래곤에 대한 얘기를 해주는것을 싫어하진 않지만 그래도 다른 드래곤이 굳이 레윌을 찾아오거나 레윌이 굳이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그건 잘 모르겟어...
쿠웅. 쿵. 쿵. 뚜벅. 뚜벅. 뚜벅.
엘이 꼬리를 잡자 출발한다는 신호를 보낸 레윌은 그렇게 엘과 함께 동굴의 끝까지 걷기 시작했어. ...엘이 들어올때도 충분히 깊게 들어오긴 했던거지만 이 동굴은 정말 거대한 것 같아. 점점 습기가 강해지고 어두워지는 동굴은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 외에는 어쩌다가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석회가 가득찬 물방울이 똑똑 떨어져 땅바닥에 부딛치는 소리밖에 안들렸어.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둘은 점점 더 깊히, 어딘가를 구불구불 꺾어서 갈 뿡이였지. 그러던 때였어. 마침내 아무것도 잘 안보인다 싶을 만큼 어두운 곳에 왓을때 엘에게도 보일만큼 조금 아릿하게 먼 거리에서 묘한 빛을 보이는 점같은 곳이 보이기 시작했어.
[이제 거의 다 왓어. 저기가 이 동굴의 끝이야. ...뭐. 정확히 말하면 진짜 끝은 아니지. 내가 말했었지? 라그나로크를 봉인한 동굴이라고. 사실은 이 밑에 층이 더 있지만 내가 거긴 고의로 막으면서 거기와 여기 사이에 돌로 된 두꺼운 층을 만들었거든. 그러니까 라그나로크에게 가려면 사실 이 바닥을 뚫어야 하지만 말이야.]
라고 계속 걸어가며 말을 하던 레윌은 마침내 반짝이는 곳에 엘과 도착했어. 거기는... 세상에. 어쩌면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꽃대나 열매가 반짝거리거나 은은히 빛을 뿜는 식물들... 그러니까 야광초들이 한 가득 핀걸로도 모자라서 빛을 뿜는 야광석이 널려 빛을 만들어 내는 곳이였어.
난 그동안 드래곤의 자세한 외형을 알지 못했어. 전설로만, 그리고 그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그림에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지, 막상 실제로 드래곤을 마주한 적은 없었어.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랑 같이 지내고 있는 레윌은... 내가 알아오던 드래곤의 모습과는 조금 달라 보였어. 내가 알던 드래곤은 눈은 두 개에, 네 개의 발과 한 쌍의 날개, 그리고 뿔 없이 매끈한 꼬리가 있었거든.
그림 속에 있는 드래곤의 두 눈은 무서우면서도 마치 아름다운 구슬을 보는 것 같이 아름다웠고, 그 모습은 웅장하면서도 위엄이 흘러나왔어. 그래서 옛날에 존재했던 이종족들은 드래곤과 친하게 지냈다는 말이 있었어. 레윌의 눈도 계속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아름답고, 그 모습에서 위엄이 흘러나오기 했지만, 그런 것보다는 무서운 느낌이 더 많이 느껴졌어. 처음으로 레윌과 만났을 때, 예언의 주인이자 어떤 것을 봉인했던 존재였기에 그런 것이 느껴진 걸까?
드래곤의 꼬리에 나 있는 작은 뿔을 꼭 잡고, 드래곤이 출발한다는 신호를 보내자 난 드래곤과 함께 동굴 속으로 들어갔어.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두워지고, 습기 또한 점점 많아졌어. 주변에 들리는 소리라곤 나와 드래곤이 걷는 소리 외에는 없었어. 구불거리는 동굴 안의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마치 악몽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난 드래곤의 꼬리에 나있는 뿔에 몸을 살짝 기댔어.
몇 분이 지났을까, 저 너머에 묘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어. 드래곤은 그것을 보고는 동굴의 끝이라고 하며, 이 밑에 몇 개의 층이 더 있다고 말했어. 자신이 지키고 있는 라그나로크가 봉인되어 있는 곳을 고의로 막았다고 하며.
"라그나로크..."
난 드래곤의 말을 다 듣고는, 드래곤이 봉인하고 있다는 그것의 이름을 중얼거렸어. 라그나로크...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겠어. 어떤 무시무시한 사람일까? 아니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괴물? 그런 의문을 품으며 드래곤을 따라 계속 걷다 보니, 온갖 식물들과 야광식이 빛을 내뿜고 있는 곳에 도착했어. 난 그 모습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어. 이건... 동화 속에 나오는 그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
"우와..."
드래곤이 여기가 아공간으로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자, 난 이곳의 모습을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둘러보았어. 정말... 신기해. 어떻게 식물이 이런 은은한 불빛을 내뿜을 수 있는 거지? 저기에 있는 돌은 어떤 원리로 빛을 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아공간은 어디에 있는 걸까? 잠시 이곳을 둘러보던 나는 시선을 드래곤에게 돌리고,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물어봤어.
레윌은 엘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올때 살짝 혀를 찼어. 엘은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예민한 레윌은 봉인이 깨지지 않았는데도 여기까지 불길한 기운과 사기가 올라오는게 느껴져서 솔직히 레월로서는 나중에 무언가 해결할 문제가 하나 더 생기겟구나 싶어. 과연 레윌이 괜히 신들과 함께 싸운 상대가 아냐. 레윌이 개인전을 해서 비긴 용사가 1:1로 승부를 보지 못한 수준으로 강하다면 그는... 그렇게 즐겁게 싸우고 자시고 할 차원이 아니였어. 만약 부활한다면 레윌은 그땐 목숨을 걸어야 할거야. 하지만 그럴리는 없으니... 레윌은 감탄해하는 엘에게 말했어.
[아무 동굴에나 자라는건 아니지만 예전에 처음 이곳으로 올때 갖고왔던 녀석들이야. ...그땐 몇포기였는데 어느세 뒤덮을만큼 퍼졌네?]
그 옛날에 심었던 것들은 시들었을것이 분명하지만 그 뒤로 이런식으로 식물들이 계속 씨를 퍼트리며 자라는건 확실히 생명의 신비였어. ...관리를 해주지도 않는데 말이야. 언젠가는 또 이 식물들이 동굴을 전부 뒤덮을 때까지 퍼지게 될까? 레윌은 궁금했어. ...뭐. 그때가 되봐야 알겟지만.
[여기에. ...입구가 뒤덮혀서 잘 안보이려나. 어디... 네 니힐룸.]
주문이였던걸까. 레윌이 말하자마자 한쪽의 동굴벽이 흔들리더나 먼지도 일으키지 않고 사라져버리면서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어.
식물이 빛을 내뿜고, 근처에 있는 발광석 또한 스스로 빛을 내고 있는 이 모습을 보면 볼수록 정말 신기하게 느껴져. 저 식물들은 어떻게 빛을 내뿜고 있는 것일까? 혹시 마나와 연관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마을 근처에 있는 풀숲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벌레와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머릿속에 품고 있을 때, 드래곤이 나에게 이 동굴에 왔을 때 약간의 식물을 가져왔는데, 지금은 이렇게 많아졌다고 했어. 그냥 놔두기만 했는데, 이렇게 많이 늘어나게 됐다고? 예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로는 식물은 햇빛과 물이 있어야 자랄 수 있다고 했어. 이 동굴에는 햇빛이 없는데, 어떻게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도, 난 드래곤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식물에 옮겼어. 한 번 만져보고는 싶지만, 왠지 모를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때문에 만지기가 두려워.
아공간이 어디에 있는지 드래곤에게 물어보니, 드래곤은 여기에 있다고 하며 주문을 외웠어. 그러자 신기하게도 저 너머에 있는 동굴의 벽이 흔들리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무언가 이상한 게 나타나게 됐어. 난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는, 시선을 드래곤에게 옮기는 동시에 드래곤의 꼬리에 나 있는 뿔을 꼭 쥐고는 물어봤어.
레윌주야. ...우선. 미안해 엘주. 요새 힘든 일이 많아서 상판을 살피는 속도라던가 답례다는게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는데다가 아공간이라던가 앞의로의 전개같은걸 거위 생각하지 않고 쓰다보니까 한 레스를 쓰면 한 레스를 걱정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 속도가 느려지는 것 같아... 잘 풀린다면 오늘 안에 답례를 줄 수 있지만 잘 안된다면 답례가 내일이나 모래까지 미뤄질지도 모르겟어...
라고, 아직 소년인 엘과 전혀 다른 감성의 끝에 도출된 결론을 말하던 레윌은 엘이 아공간 주변의 식물에 아즈 많은 호기심이 생기었다는 것을 모르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슬쩍, 아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엘이 꼬리를 잘 잡고 있는건가 하고 뒤를 돌아보았어.
[그래. 우리 목적지랑 거의 다 왔어. ...뭐야ㅡ 겁먹은거니? 음. 하긴. 아까 초반부터 무서운 말을 하기야 했지. 뭐. 사실이지만. 그래도 방금 온 것 처럼 잘 잡고 따라오기만 한다면 분명히 괜찮을거야.]
라고 말한 레윌은 출발한다는 말을 덛붙힌 뒤에, 이제와서 완전히 모습을 들어낸 아공간을 바라보았어. 뜨겁고... 굉장히 딱딱한 공간이 나타났지. 그런 공간을 보자 걸어가려던 레윌은 뜨악 하면서 멈췃어. 여긴 자신의 모체의 아공간과 보물을 그대로 물려받은 공간이였거든! 아아아 주문을 잘못 외웠나봐. 어쩌다가 이런 실수를... 엘이 자는 침...낭때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마법실수를 해버리자 레윌은 잠깐 부끄러운 심정이 들었어.
[잠깐잠깐! 여기 아냐! 잘못 외웠네... 후. 여기 들어가면 난 몰라도 넌 큰일나. 그러니까 원래의 주문이... 레니라함?]
...초원지대가 나타났어.
[파 야르 니힐룸!]
...이번엔 대놓고 바닷속 한 가운데가 열렸어. 레윌이 주문을 말할때보다 더 빨리 마력으로 문을 닫지 않았다면 동굴은 상상하기도 끔직한 일이 벌어졌겟지. 레윌은 잠깐 자기 머릿속의 주문들을 생각하다가 말했어.
[아! 이번엔 진짜야! 메나 니힐룸.]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거대한 책들과 오래된 물건들이 가득 쌓인채로 야광석이 군데군데 놓여진, 책으로 만ㄷㄹ어진 박쥐라던가 잉크로 된 거미가 사는 창고가 눈앞에 나타났어.
[휴... 겨우 도착했네.]
레윌은 그제서야 다시 출발해도 된다고 말하면서 걷기 시작했어. 중간중간 잉크거미를 먹는 펜 도마뱀들이 보여.
여기에 있는 수많은 신기한 식물을 보고 드래곤은 벌레 같은 이상한 것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어. 벌레? 스스로 빛을 내는 그런 벌레를 이야기하는 걸까? 그렇다 한다면 이곳에 벌레가 생겼으면 좋았을 것 같아. 스스로 빛을 내는 식물과 벌레. 굉장히 아름다울 것 같아.
드래곤의 뿔을 꼭 쥐자, 드래곤은 뒤를 돌아보며 내 모습을 보더니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하며 무서워하지 말라고 날 안심시켰어. 난 고개를 끄덕이고 저 너머에 나타난 아공간을 빤히 바라봤어. 드래곤 너머로 보이는 아공간은 이상하게도 아주 딱딱해 보이는 외형에, 뜨거운 기운이 여기까지 도달할 정도로 아주 뜨거운 공간인 것 같았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려고 했을 때, 드래곤이 당황한 듯 여기가 아니라고 하며 아까와는 다른 주문을 외웠어. 이번에는 저 너머에 초원지대 같아 보이는 것이 나타나다가, 바닷속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나타났어. 계속 이상한 공간이 나타난 바람에 드래곤 자신도 상당히 당황했는지, 이번에는 진짜라고 하며 또 다른 주문을 외웠어.
이번에는 책이 가득 쌓인, 책이 박쥐처럼 날아다니고 잉크에 거미같이 발이 달린 생물이 돌아다니는 창고 같은 공간이 보였어. 드래곤은 이제야 겨우 도착했다고 말하며 그 아공간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어. 드래곤을 따라 뒤따라가던 나는 펜에 꼬리와 발이 달린 생물이 잉크를 먹는 것을 잠시 동안 빤히 바라봤어. 아공간 속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서 그랬던 걸까? 상상도 하지 못 했던 생물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이 공간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젔는지 궁금해져서 드래곤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맞추고는 조금 큰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물어봤어.
"저... 여기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그렇게 말하면서, 난 드래곤의 뿔을 잡으며 수많은 책과 잉크, 펜처럼 생긴 생물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어. 그나저나, 아까 봤던 그 공간들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을까? 동화에서는 드래곤이 자신의 보물을 보통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숨긴다고 했는데. 레윌도 그랬던 걸까?
한편 간만에 들어온 레윌덕분에 놀란 생물들은 허겁지겁 엘과 레윌을 피해 도망가려고 하는건지 그냥 소란스럽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인지 마구마구 움직여서 빠져나갔지.
퍼득 퍼드득 푸드득 푸득 푸드드득 쉬시시식 다다다다다닥
하지만 그중에서도 예외라고 할 만한 것들 정도는 있나봐. 몇몇 책새들은 레윌의 주변을 뱅뱅 돌듯이 날아다니면서 서성이고, 어떤 팬도마뱀은 도망가는 다른 도마뱀들과 달리 자신을 바라보는 엘 앞에 가만히 있다가 살금삶금 엘에게 다가오기도 했거든. 그때, 잠깐 뭔가를 생각하던 레윌은 엘의 말에 자기도 시선을 맞추면서 말했어.
[수많은 책들과 물건을 보관했던 창고야.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만들었는데 시간이 가다보니까 어느 순산부터는 내 마력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건지 물건들 대부분이 살아움직이거나 마력을 품고 있더라고. 게다가 지금은 얘네들끼리 생태계도 이룬다?]
라고 말하던 레윌은 자꾸만 가까히 다가오는 책들을 적당히 쫒아내면서 계속 무언가를 찾다가 슬그머니 책장 사이에 숨어 똬리를 틀던 밧줄 하나를 끄집어냈어.
샤아아아! 샤악!!
[아따 거 놈 여전히 팔팔하네.]
//이 다음 부분부터 엘의 힘을 시험한다면서 무슨무슨 말을 할 것 같은데 엄... 어떤 식으로 엘의 능력을 발견한다고 해야할지 잘 모르겟어.
마치 동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사물들은 나랑 레윌이 들어오자마자 어디론가 도망가기 시작했어. 날아다니는 책은 저 너머 구석진 곳으로 날아갔고, 발이 달린 잉크와 펜은 서로 싸우는 것을 잠시 멈추고 그 작은 다리를 움직여가며 그늘이 있는 곳으로 도망갔어. 그런데, 잘 보니 모든 사물들이 도망가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 몇몇 책들은 나의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기도 했고, 어떤 펜은 날 유심히 보더니 날 향해 살금살금 다가오기도 했거든. 난 잠시 고개를 들어 내 주변을 날아다니는 책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려 나에게 다가오는 펜을 빤히 바라봤어.
살아있는 펜에게 고정되어 있는 시선을 드래곤에게 돌리며 질문하자, 드래곤은 나랑 시선을 맞추고는 나의 질문에 대답해줬어. 이 공간에 어떤 것이 있는지를. 여긴 일종의 창고인 것 같아. 아주 옛날부터 있던 곳인데, 시간이 지나니 드래곤의 마력 때문인지 모든 사물이 살아 움직이게 됐다고 해. 마력의 영향을 받아서, 사물이 살아 움직이게 됐다고? 지금 내 머리 위에 있는 책과 날 향해 다가오는 펜 역시 그러한 것 때문에 생명을 얻게 된 건가? 그렇다 하면, 이 살아 움직이는 사물들은 예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평범한 사물에 불과했다는 걸까?
드래곤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책장 사이에 있는 밧줄을 끄집어냈어. 밧줄은 마치 뱀이라도 된 것처럼 큰 소리를 내며 자신을 붙잡은 레윌을 향해 울부짖었어. 난 그 모습을 보고는, 다시 한 번 조금 큰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질문했어.
"그렇다 하면, 여기에 있는 물건들은 예전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물건이었나요?"
// 엘은 자신의 몸 안에 마나가 쌓인 상태니까, 대량의 마력을 사용하면서도 막상 별 쓸모가 없는 마법을 써보게 하는 건 어떨까? 예를 들면 비를 내리게 하는 마법이라던지, 특정한 색을 띄는 불빛을 만들어내는 마법이라던지. 아니면 엘과 레윌이 들어온 아공간이 창고라는 점을 이용해서 그곳에 있는 마력석 같은 것을 가져와서 엘과 반응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계속 바둥거리는 밧줄뱀을 바라보던 레윌은 살며시 자기 입맛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걸 알았어. 예전에, 이 뱀이 살아있기 전이였던 평범한 밧줄일때 레윌은 이 뱀으로 마력석들을 묶어놨어. 그런데 마지막으로 이 창고에 왓을때 혹시나 싶어서 이 밧줄뱀을 살펴봣을때 밧줄뱀은 마력석은 뱀이 꽁꽁 묶어서 자기 몸에 낑겨다녔던 거야. 레윌은 그래서 이번에도 뱀만 찾으면 마력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상하네? 마력석의 기운은 느껴지는게 정작 중요한 마력석이 보이질 않아! 라고 생각하던중에 레윌은 밧줄뱀의 배에 시선이 갔어. ...여기만 왠지 불룩하다?
[응. 맞아. 이 뱀도 그렇고... 처음에는 대부분의 물건들이 적당히 둥둥 떠다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생명력을 얻어버리더라고. 그 전까지는 정말 평범한 물건들에 마도서들이였지.]
샤아아악!!!
배를 살펴보려고 했을때 갑자기 레윌의 손에서 더 팔짝 뛰는 밧줄뱀을 본 레윌은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감이 왓다는 듯이 표정을 지었어.
[여기다가 숨겨둿구만!]
엘에게 생명력이 있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이 생물들의 구조는 어디까지나 물건일때와 별반 다를게 없나봐. 레윌이 밧줄뱀의 밧줄이 꼬여진 반대방향으로 풀기 시작하니까 버둥거리던 뱀은 잠깐 배가 열리더니 거기서 묘한 색갈을 띈 돌 세개가 나왓어. 뱀은 분이 나는 것인지 그 순간을 놓치지 않더니 돌 한개를 재빨리 다시 삼키고 사라져버렸어.
[...아깝게 됬구만... 흠. 그럼 어디보자... 엘, 이 돌들중에 하나로 골라서 잠깐 손에 쥐고 이 돌과 네가 연결된다고 생각하고 집중해볼래?]
이곳에 있는 물건이 생명을 얻어서 탄생한 수많은 생물들 중 드래곤이 붙잡고 있는 밧줄이 드래곤의 얼굴을 보며 울부짖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 생물은 뱀이랑 비슷한 생물일 것 같아. 그런데, 왜 레윌은 저 뱀을 붙잡은 걸까? 나에게 그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드래곤이 붙잡고 있는 밧줄을 유심히 바라보던 중, 유난히 어떤 부분이 볼록 튀어나온 것이 보였어. 그 모습을 본 드래곤은 잠시 나의 질문에 대답해주다가, 자신의 손에서 날뛰고 있는 밧줄을 슬쩍 풀며 이상한 색을 띄고 있는 돌 몇 개를 밧줄에서 꺼냈어.
난 그 모습을 보며,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졌다는 것처럼 밧줄과 바닥에 떨어진 돌을 유심히 바라보았어. 그러던 중 갑자기 밧줄이 드래곤의 손에서 벗어나며 돌 한 개를 삼키고 저 너머로 사라졌어. 그 모습을 보고 드래곤은 아깝다는 듯 말하며 남은 두 개의 돌을 내가 있는 쪽으로 밀어주며, 돌 하나를 골라 손에 쥐고 나랑 돌이 연결된다는 느낌으로 집중해보라고 했어. 드래곤의 말이 끝나자, 난 바닥에 놓인 두 개의 돌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드래곤의 말에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였어. 바닥에 놓인 돌은 각각 보라색과 연한 파란색을 띠고 있었어. 내가 돌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돌은 땅을 파면 볼 수 있는 평범한 돌인 것 같지는 않아 보였어.
난 두 개의 돌 중 나의 눈과 똑같은 색을 띄고 있는 보라색 돌을 집기로 했어. 오른손을 바닥에 뻗어 돌을 집은 나는 돌을 손바닥 한가운데에 옮기고, 그대로 주먹을 쥐며 눈을 꼭 감았어. 드래곤이 말한 것처럼 내 손 위에 올려져 있는 돌이 나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며 집중하면서. 그러자, 내 손이 쥐고 있는 돌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러는 동시에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했고. 내 몸 안에 있는 마나 같은 것이 가슴 한가운데에서 점점 쌓이는 듯한 기분도 드는 것도 같았고.
그렇게 몇 초의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돌이 엄청 뜨거워지더니 폭발하려는 것처럼 미세하게 흔들리자 난 바로 돌을 손에서 놓고는 바닥에 떨어뜨렸어. 바닥에 놓인 보라색 돌은 순간적으로 강한 옅은 보랏빛을 방출해내더니, 이내 잔잔한 보라색 기운을 주변에 내뿜기 시작했어. 난 그 모습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드래곤에게 옮기며 놀랐으면서도 당황한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말했어.
"저... 이 돌, 갑자기 뜨거워지더니, 이상한 빛을 내더니... 이젠 보라색 기운을..."
마나는 굉장히 유동성이 있는 존재야. 적어도, 레윌이 보기에는 그래. 원래 마나는 세상을 흐르며 존재하는 하나의 흐름에 가까운 것이였어. 그렇기 때문에 마법사들은 마나를 쌓을때 자신의 몸 안에서 마나를 흐르게 하고 검사같은 사람들은 몸 안의 마나를 뼈와 근육에 스며들게 하는 식으로 붙잡아두었어. 레윌도 그것과는 약간 다르기야 하지만 어쨋든간에 마나를 몸 안에 흐르게 하는 식으로 보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생물이 마나를 자기 몸안에 보관하거나 일부러 무생물에게 마나를 부여할때 쓰는 방법이야. 자연계에서 생물이 아닌 것들에서 마나가 모여있을때는 흔히 지맥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흐름같은게 본의아니게 모여있을때, 계속 흐르기만 하던 마나들끼리 뭉쳐지거나 어느 원소 안에 딱딱하게 고여버리면서 생겨. 그게 바로 마나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지. 그렇기 때문에 무수하게 많은 마나를 갖고있는 마나석은 겉으로는 평범한 광물같아도 주변의 현상에 따라서 쉽게 반응을 보이는 불완전 에너지 자원이라고 여겨져.
[마나끼리 자극을 받아서 그런 반응을 보인거야. 괜찮아.]
레윌은 엘이 당황해서 돌을 떨어뜨렸을때 괜찮다고 말하면서 엘과 마나석을 다시 살펴보았어. 흠. 그동안 얌전하던 마나석이 엘 덕분에 잠깐 불안정해졌던 것 같아. 게다가 안에 뭉쳐있던 마나가 파동을 따라서 천천히 새어나오는걸 보면, 레윌이 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 저 마나석은 나중에 가서 산산조각이 나거나 반동으로 다른 마나들을 흡수하려고 하겟지.
[마나석은 마법을 쓸 때 단순히 마나만 보충해주기 때문에 마법사들에게 유용하게 여겨지는게 아닌 돌이야. 주변의 반응이나 자신이 품고 있는 마나에 따라서 변수를 일으키거나 수식의 부족한 부분을 매워주기 때문에 마법사들이 그렇게 얘를 찾아. ...라고 해도 말이지! 기뻐해도 좋아. 엘. 인간의 마법은 진짜 않 맞을진 몰라도 넌 마법에 대한 재능 자체가 없는건 아냐! 어디로 췰지 모르는 마나를 이렇게 옴짝달짝 할 수 없게 만드는건 마법사들에게 꽤 중요한 재능중에 하나니까 말이야!]
라고 하면서 파장이 점점 더 심해지던 보라색 마나석을 손에 꼭 쥐고 잠시 집중을 하면서 마나석을 잠잠하게 만든 레윌은 엘의 재능에 대해서 라던가 앞으로 가르칠 것들을 생각하던중 문득 어떤 단어가 생각났어.
...영혼력. 흔히 마나의 위에 존재하지만 더 까다로운 상위의 힘이... 말이야.
[넌 아마 가장 배신없는 마법을 쓰는 사람이나 마나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고.]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오묘한 색의 돌을 집고는 집중을 하니, 갑자기 돌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이 반응하다니. 난 그 돌의 반응에 놀라는 동시에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았어. 드래곤이 준 이 돌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난 돌을 유심히 바라보았어. 드래곤은 마나끼리 자극을 보여서 그렇다는 말을 하고 나를 안심시키며, 바닥에 떨어져 있는 그 돌을 살펴보았어. 마나끼리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면, 저 돌에 마나가 깃들어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내 몸에 쌓여있다는 그 마나랑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잘 모르겠어.
드래곤은 바닥에 떨어진 돌을 바라보며 마나석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어. 마나에 대한 보충은 물론 수식을 매워주기도 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고 하며. 그러면서 나에게 기뻐해도 좋다고 하며, 나에게 마법에 대한 재능 자체가 없지는 않다는 말을 했어. 마나를 붙잡아두는 것도 마법사에게 중요한 재능이라 하며. 마나를 붙잡아두는 것이 마법사의 재능 중 하나라고? 그리고, 인간의 마법이 잘 안 맞을지도 모른다니. 마나를 붙잡아두는 것에 대해서는 마법 수업시간에 들어본 기억이 나긴 하지만, 인간의 마법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니. 아까 들어본 이야기이긴 하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드래곤은 바닥에 있는 마나석을 꼭 쥐고는 이상한 기운을 내뿜던 마나석을 다시 잠잠하게 만들더니, 나에게 배신 없는 마법이나 마나를 능숙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 마나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거나, '배신 없는' 마법을 다룰 수 있다니. 그 마법은 무엇일까?
"배신 없는... 마법요?"
난 고개를 들고 드래곤의 네 눈을 바라보며, 드래곤이 언급한 배신 없는 마법에 대해 물어봤어.
다시 평범하게 돌아온 마나석을 손톱으로 톡톡 두드리는 레윌은 앞으로 뭘 어떻게 훈련시켜야 할지를 생각하다가 엘이 자신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어보자 입을 열었어.
[비유가 그렇다는 거야. 비유가. 음. 마법이 기본적으로 마나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지? 보통의 마법은 수식을 이용해서 한다는 것도. 그건 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떤 마법이느냐에 따라서라거나 마법을 쓰는 시전자에 따라서는 마나만 있어도 마법을 수식 없이 쓰는건 가능해. 마나보다 상위의 에너지를 쓰는 사람이나 마나가 고여있기 쉬운 성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런 경우거든. 그런 사람들을 같은 수식의 마법을 써도 마나가 안정적으로 뒷바침을 해줘. ...뭐. 예외가 있어. 인간의 수식의 경우엔 기본적으로 마나를 소모 시켜서 마법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내는데 아까 말한 두 가지 경우엔 그런 마법응 마나가 모이려 드는 특성때문에 수식으로 빠져야 할 마나가 전혀 가질 않아서 마법이 미약하게 발현되거나 아예 발현되지가 않아. 그래서 내가 너한테 인간의 마법을 배우는건 삽질이라고 한거야. 보통은 이 사실을 몰라. 종족별로 발전시킨 마법이니까 무조건 같은 종족이라면 그게 최상의 마법이라고 생각하거든. 뭐... 보통의 경우엔 그게 맞는거긴 하지만.]
그렇게 말한 레윌은 어느세 자기 주위로 몰려온 책들을 보며 쫒아낼까 싶다가 귀찮으니 되었다고 생각하며 말을 잇는다.
[인간의 마법은 주로 수식을 앞세우고 종족이 선천적으로 부족한 마법은 마나석을 보조로 맞추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어. 가장 비슷한게 아마 엘프의 마법들이겟지. 걔네들은 간단히 말해서 마력을 일순위로 두는 편이야. 그렇기 때문에 두 종족의 마법은 여러 학문을 두루 익히면서 수식을 배우는게 편하다고 하고. 그리고 나. 내가 있는 드래곤들에게 마법은... 어. 예전에 이거 그대로 말했다가 다른 종족들에게 재수없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말이야. 사실이 그러니까 다른 말로 표현하기가 그렇지... 사실 우리의 마법은 그냥 숨을 쉬는 거랑 비슷해. 굉장히 의문없이 사용할만큼 자연스러울뿐이라서 대부분의 마법을 쓸때 우리에겐 수식이니 뭐니 필요한 적이 거의 없어. 창조마법의 경우엔 음... 그건 내가 유난히 취약한 마법이라서 그런거고.]
...이로써 레윌이 이불침낭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밝혀졌어. 그냥 그 마법만 레윌이 서툴렀던게 밝혀진거야.
[우리는 생각이나 말로 주변에 있거나 우리 안에 있는 마나를 움직여서 마법을 발생시켜. ...너한텐 어려운 설명이겟지만 이게 그나마 다른 종족들에게 가장 쉽게 설명한거야.]
마나를 능숙하게 다루거나 배신 없는 마법을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그 의미를 드래곤에게 한 번 물어봤어. 그러자 드래곤은 배신 없는 마법은 일종의 비유라고 하면서, 마법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어. 대부분의 이야기는 수업시간에 듣거나 책에서 본 적이 있는 이야기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없었어. 대부분의 마법은 수식을 이용하고, 특히 인간은 수식을 이용하여 마법을 쓰지만 그 수식에 마나가 빠지지 않으면 마법이 발현되지 않기에 내가 인간의 마법을 배우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 드래곤의 설명이었어. 저 설명이 맞는다고 한다면, 난 수식을 쓰는 마법이 아니라 마나를 직접 이용하는 식의 마법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일까?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어.
이어서 드래곤은 각각의 종족들이 어떻게 마법을 쓰는지 설명해왔어. 인간은 수식을 주로 하고 가끔 마나석을 보조적으로 사용하고, 인간과 비슷한 마법을 사용하는 엘프는 마력을 주로 한다는 것이었어. 그리고 레윌과 같은 드래곤은 마법 자체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고 했고. 저번에 있었던 그 침낭이 나온 이유는 단순히 레윌이 그 마법을 잘 쓰지 못하기에 그런 일이 나타났다고 했고. 이어 드래곤은 자신들이 마법을 쓸 때에는 주변이나 각자 보유하고 있는 마나를 움직여 마법을 '발생'시킨다고 했고. ... 아직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는 용어들이 상당수 있기에 드래곤의 말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는 대강 알 수 있겠어.
종족별로 추구하는 마법이 다르고, 나에게 인간의 마법이 어울리지 않다 한다면 난 어떤 종족의 마법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드래곤이 언급한 마력을 주로 삼는 엘프의 마법을 배워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드래곤이 마법을 쓰는 방식을 익혀야 하는 것일까? 마치 그 마을에 있었을 당시에 수업을 듣는 것처럼 마법에 대한 이론적인 이야기를 드래곤에게 들은 나는 잠시 드래곤 주변을 날아다니는 책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드래곤의 네 눈에 맞추고는 조용히, 궁금하다는 목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어.
으로 말하던 레윌은 잠깐 뜸을 들였었어. 레윌은 엘의 재능이 어떤 성질인가는 알았지만 그래도 아직 정확하게 밝혀낸 것인지를 알아내지 못해서 그게 신경쓰였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데 말이야. 라고 생각하던중에 레윌은 유독 엘의 근처에 바짝 붙어있는 책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뻔 하다가 한 번 언젠가는 시험해봐야겟다고 생각하며 일단 엘의 질문에 대답부터 해주어야겟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어.
[지금 당장은 마법을 정해서 배우긴 일러ㅡ 그래도 난 마법사의 훈련을 너에게 시킬 생각이야. 무슨 말이냐 하면... 우선은 기초마법을 여러가지 가르쳐보면서 네 적성에 좀 더 맞는 분류를 찾아서 내가 그쪽으로 널 가르칠 생각이야. 처음에는 원소마법들이랑 아까 마너석으로 시험해 본 것처럼 기초적인 감응을 알아보면서 네가 마력쓰는 것에 익숙하게 할 생각이야. ...특이체질이 좋은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때문에 마력을 원활하게 쓰는 연습을 안하면 마법사가 되기 힘드니까. 그거 말고도 집중력 연습이라거나 여러가지를 난 시켜보고 싶어.]
수련 자체는 지금 당장부터 레윌이 정해서 밀고나가도 상관없는 것들이 많았지만 레윌은 그러지 않았어. 왜냐하면 레윌에게 있어서 엘은 일단 자신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첫 제자이기도 했거든. 아마 스승으로서의 그녀는 자신이 좀 미숙하단걸 알기 때문에 조심조심하고 싶었나봐.
내가 어떤 종족의 마법에 재능이 있을지, 또 그 종족이 주로 내세운 마법적 요소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그런 생각을 하며 난 내 주변을 날아다니는 책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어. 왜 이 책들은 내 주변을 날아다니는 걸까? 레윌의 말이 맞는다면 저 책들 또한 마나를 통해 생명을 얻게 된 일종의 동물일 텐데. 숲 속에 있던 다른 동물들처럼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 내 주변을 날아다니는 걸까? 아니면 나랑 모종의 연관이 있기에 내 주변을 날아다니는 걸까? 난 책이 날갯짓을 하는 사이에 보이는 책 안에 있는 종이를 유심히 살펴봤어. 저 안에 무언가가 있을까 하며. 뭔가 글씨 같아 보이는 것이 살짝 보이기는 하지만, 무엇이 적혀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드래곤은 어떤 마법을 배워야 하냐는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려 하다가 잠깐 뜸을 들였어. 드래곤이 잠시 말을 끊자 난 드래곤의 네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어. 무엇 때문에 갑자기 말을 멈춘 거지? 혹시 나에게 마나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기에 저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드래곤이 지금 당장은 어떤 종족의 마법을 배우기는 이르고, 기초적인 마법이나 마력의 응용법, 집중력을 기르는 훈련 등의 기초적인 마법사의 훈련을 시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살짝 실망하면서도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 잠깐 떠오르는 바람에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어.
"기초적인 마법..."
난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그래도 나의 체질을 알고 있는 드래곤이라면 나에게 알맞은 마법 훈련을 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내 시무룩한 표정을 펴고는 다시 드래곤을 바라보며 아까와 같은 밝은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말했어.
"그러면, 어떤 것부터 시작하면 되나요?"
// 괜찮아, 힘든 일이 있었다 하면 늦어질 수도 있는 법이지. 정 힘들면 쉬엄쉬엄 답레를 줘도 돼.
[재능부터 본다면 넌 소환마법이나 그런 계열을 알려주고야 싶었지만 아까 말한대로 난 기초부터 가르칠 거니까 그건 길면 3달 뒤의 얘기가 될 것 같고.]
라고 말하는 레윌은 또다시 이론에 대하여 말할까 하다가 조급한... 아니. 기대가 넘치는 엘을 보면서 이름하여 육감, 그리고 마나같은 것을 느끼는 감각에 대해 자신과 엘이 좀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숨 쉬는 것 마냥 엘 주변의 마나를 조절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레윌의 태도는... 음. 아주 평소랑 똑같아보여. 예민한 사람이라도 마나라던가 하는 것의 변화만 조금 알 뿐이지 설마 그녀가 뭔가를 일으키지 않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긴 힘들만큼 그녀는 아주 평온하고 달라진 것이 없었지. 다만 따지고 본다면 레윌 덕분에 생명을 얻은 물건들은 조금씩 레윌의 주변에서 떨어지기 시작했어.
[혹시 어떨지는 모르니까 뭐 평범한 바닥이지만 앉든지 눞든지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잠깐 딴 생각은 멈춰둔 채로 주변의 소리라던가 형태같은거... 아무튼. 시각 외의 모든 느껴지는 것들에 집중하기 시작해봐. 엘.]
엘에게는 아마 레윌의 조치가 처음에는 조금 집중이 잘 되는 정도에서부터 시작되서 어렴풋이 다른 것들도 마나석처럼 노골적인 반응원이 없어도 좀 더 안전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겟지만 레윌에게는 자신이 한 일로 느껴지는게 아주 달랐어. 한 아공간 안에서 계속 돌던 마나의 흐름이 변하면서 달라진 흐름의 소리라던가 엘의 주변에 보여지는 생체 파장들, 원래부터 보이던 흔히 적외선이네 무슨 선이네 하는 것으로 분류되는 것들이 좀더 색이 또렷한다던가 하는 것에서부터... 아까는 느껴지기만 했던 엘의 기운의 형체라던가 하는 것과 냄새... 이런 점때문에 레윌은 엘에게 아까전에 드래곤의 마법에 대하여 설명하는걸 힘들어 했나봐. 애초에 두 종족의 시야와 배경이 너무 달랐으니까 말이야.
내가 특정한 종족의 마법을 배우기 전에 기초적인 마법들을 먼저 배워야 한다니. ... 기초적인 마법이라면 자신이 없어. 예전에 마을에 있었을 당시에도 기초적인 마법을 배우다가 선생님께 많이 혼나곤 했으니까. 그래도 마을에 있었던 사람들보다 내가 어떤 마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아는 드래곤이니, 기초적인 마법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다른 사람들보다 잘 가르쳐줄 것 같으니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자신이 없거나 하지는 않아.
드래곤은 내 재능을 보면 소환 계열의 마법을 배우면 좋겠지만 그 이야기는 몇 달 뒤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말하며,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자세를 취하며 눈을 감으며 나에게 느껴지는 모든 것에 집중을 해보라고 말했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드래곤의 근처에 몰려있었던 책들이 점차 레윌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어. 난 드래곤 근처에서 떨어져가는 책을 빤히 바라보다가 드래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 풀썩 앉아 그대로 눈을 감았어.
드래곤의 말대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에 집중을 하기 시작하자, 이상하게도 내 주변에 이상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 내 심장이 평소보다 빨리 뛰는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했고. 그리고... 이상한 무언가가 내 가슴에 고여있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드래곤이 나에게 무엇이 느껴지기 시작했냐고 물어보자, 난 눈을 감은 체로 잔잔한 목소리로 드래곤에게 느껴지는 모든 것을 말했어.
"... 주변에 이상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심장이 빨리 뛰면서 어지러운 것도 느껴지고... 또, 뭔가가 제 가슴속에 고여있는 듯한... 그런 것이 느껴져요."
검은색... 은. 아니야. 빨간색이라기엔 조금 탁하고 어둡고. 레윌은 엘 주변에 보이는 기운들을 보고 느끼면서 천천히 엘의 재능을 느껴갔어. ...세상에. 잔짜로 영혼력의 존재가 느껴지기 시작해. 하지만 옛날에 디아볼로라던가 토루카같은 영혼력을 휘드르는 군주들보다는 다른 느낌이였어. 그나마 가까운게 하르파 족의 아이랑 리드... 그래! 리드였어. 마법사는 아니였지만 검성으로 불렸던 그 리드. 레윌은 그제야 가닥이 잡히는 기분이였어.
[그래. 제대로 짚은거야. 여기에서부터 마나를 다루는 법을 알려줄게. 자. 쉼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심장에 찰랑거리는걸 숨을 쉬면서 천천히 빼낸다고 생각해봐. 아주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말하면서 레윌은 엘의 심장에서 아주 느릿하게 찰랑이는듯이 심장을 누르며 그 주위에 뭉쳐서 움찔거리면서 계속 고여있으려고 하는 마나를 보다가 자신의 몸에서 슬금슬금 아주 적은량의 마나로 그곳에 있는 마나를 달래듯이 부드럽게 살살 끌어내려고 했었어. 아주 살살. 최대한 부드럽게, 꺼내는 감각을 엘이 알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어.
[일단 네 안의 그게 어떻게 움직이는지, 움직여지는지 그 감각이랑 주변에 변화를 제대로 알아봐.]
이상해. 현기증이 나타난다던가 심장이 빨리 뛰는 건 예전에도 느껴보았지만, 가슴에 무언가가 고여있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느껴본 것이랑 주변에 이상한 것들이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기에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어. 드래곤에게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말하자, 드래곤은 나에게 제대로 짚었다고 하며 내 심장에 고인 것을 빼낸다고 생각해보라고 했어. 천천히 하라는 말을 덧붙여서. 드래곤의 말을 듣고 나에게 느껴지는 느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니, 가슴에 무언가가 고인 것 같은 느낌이 심장에 있는 무언가가 마치 물처럼 찰랑거리는 것 같았어. 난 드래곤의 말대로 심장에 있는, 찰랑거리는 무언가를 빼보기로 했어.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가슴에 찰랑거리고 있는 무언가를 빼낸다고 생각해봤어. 천천히.
... 이상해. 뭔가 아까와는 다른 이상한 것이 느껴져. 가슴에 있는 무언가가 천천히 빠져나오면서 몸과 배를 간지럽히는 동시에 살짝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현기증도 아까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아. 주변이 살짝 뒤틀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드래곤이 나에게 내 안에 있는 찰랑거리는 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껴지는 감각과 주변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알아보라고 하자, 난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이번에도 드래곤에게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말했어.
"... 심장에 있는 것이 빠져나오면서 그게 몸과 배를 간지럽히는 동시에 아픈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머리가 점점 어지러워지는 것 같고, 주변이 서서히 뒤틀리는 것 같아요."
레윌주야. 우선 미안해 엘주. 어제부터 생리통이 시작해서 몸상태가 끔직해졌어... 아파서 날밤을 새고 막 허리가 너므 아프고 기운없고 밥넘기기 힘들고... 아마 답례는 빠르면 내일 늦으면 모레 달 것 같아. 으아... 진통제 더 먹고 싶은데 이미 10알 먹어서 하루 권장치를 다 먹었네...
>>323 엘주야. 저런... 진통제를 그정도까지 먹었을 정도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픈거 아니야? ;ㅁ; 너무 무리하지 마. 정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프거나 하면 한 번 병원에도 가보도록 하고. 답레는 천천히 줘도 되니까 무리하게 주지 않아도 돼. 몸 상태 좋아지고 써도 괜찮으니까, 힘 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살아있는 생물들의 몸에는 꽤 많은 길들이 있어. 공기가 돌아다니는 길, 피가 돌아다니는 길, 음식이 돌아다니는 길이 대표적이지만 마법사라던가 마나를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길이 하나 더 있어. 그 길을 마법사들은 마나패스, 혹자는 기맥이라고 불러. 마나는 이 길로 흘러야 몸에 해가 가질 않지. 게다가 이 길은 계속 갈고닦지 않으면 찌꺼기라고 할많안 것들이 쌓여서 길을 좁게 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아예 길을 막아버리기도 해서 큰일이지. 김각을 꽤 예민하게 키운 레윌은 곧 엘이 하는 말이랑 눈에 보이는 흐름을 보면서 마나가 지나지 않던 길이 군데군데 막히기 직전까지 쓰이지 않아서 그곳에서부터 마나가 어질어질하게 움직이는것을 보면서 이 부분부터 자기가 도와주어야겟구나 싶었어.
[마나가 다니는 길이 그동안 사용하지 않느라 많이 좁아졌는데 그곳을 갑자기 사용해서 그래. ...음. 심하지 않은 곳은 간지럽겟지만 많이 좁아진곳은 그덕에 좀 아플거야.]
라고 하던 그녀는 곧 자신의 몸에서 아주 적은 양의 마나를 내보내어서 엘의 몸에 마나가 막혀있는 곳에서 좁아진 길을 아주 천천히 넓히면서 몸 속의 마나가 다른 곳으로 나오려고 하면서 엘의 몸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길로만 움직이게 하면서 다시 말했어.
[근데 뭐 그렇게 무서워 할 일은 아냐. 의외로 회생불능할 정도로 망가지지 않았다면 마나를 계속 움직이는것만 반복해도 다시 통로가 뚤려서 괜찮아지거든.]
그리고 아주 한참 후에, 통로가 거의 깨끗해졌을때 레윌은 엘에게 눈을 뜨라고 하면서 자기 몸 안의 마나를 불꽃만큼으로 뜨겁게 데워서 엘과 자신의 근처에 꺼내고 말했어.
[이번엔 오늘 훈련의 마지막이야. 마나를 몸 안에서 움직이는건 어느정도 알게 되었으니까 마나를 소모해서 마법을 일으키는 감각이 뭔지 알려줄게. 마나는 몸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쉽게 흩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좀 어려울 수도 있겟지만... 아주 간절하게 집중해서 손 끝 한 점으로만 아까처럼 마나를 내보내면서 네 주변에 가장 뜨겁게 느껴지는 곳에 촛불을 다른 초에 옮기듯이 그걸 이으려고 해봐.]
그리고 레윌은 혹시 몰라서 불이 옮겨붙으면 큰일이 나니까 은근슬쩍 아공간의 다른 생물들에게 보호막을 씌워주고 엘을 지켜봣어.
어디가 아픈지는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바늘에 찔리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가 막히는 느낌과 동시에 온몸이 따끔거리기 시작했어. 난 눈을 질끈 감으며 계속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눈가에 눈물을 살짝 흘려보냈어. 드래곤은 내 말과 행동을 보고는 마나가 다니는 길을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았기에 아플 수도 있다고 말했어.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동안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이겠지? ... 항상 마법을 사용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실패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드래곤은 계속 말을 이어가면서,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어. 마나가 다니는 통로를 계속 사용하다 보면 통로가 뚫리게 돼서 괜찮아진다고 했어. 그 말이 귓가에 들린 동시에, 이상하게도 내 온몸에 마나가 서서히 퍼지는듯한 느낌이 들었어. 그동안 가슴에 고여있었던 마나라는 것이 팔과 다리, 배와 손끝에 흐르자 난 눈을 감으면서도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어. 아직 온몸이 따끔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방금 보다는 조금 나아져서 괜찮아.
온몸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서서히 사라지자, 드래곤은 나에게 눈을 뜨라고 했어. 드래곤의 말대로 난 눈을 뜨고, 드래곤이 몸 안에 마나가 움직이는 느낌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마법을 일으키는 감각을 알아보자고 하자 난 고개를 끄덕였어. 손끝에 있는 한 점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마나를 내보내, 내 주변에서 가장 뜨겁게 느껴지는 곳을 이으려고 해라. 드래곤의 말을 듣고 난 그 말대로 손끝에 있는 한 점에 집중하며 마나를 내보낸다는 느낌으로 근처에서 가장 뜨겁게 느껴지는 곳에 손가락을 천천히 옮겼어.
이상하면서도 흐르는 물같이 느껴지는 마나를 내보내며 근처에서 가장 뜨겁게 느껴지는 영역에 손가락이 닿자, 갑자기 손가락 근처에 커다란 돌멩이 같은 크기의 불이 붙기 시작했어. 순간적으로 붙은 불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는 바람에, 몸을 뒤로 젖히고는 뜨거운 영역에서 손가락을 땠어. 이상하게도, 그 영역에서 손가락을 땠는데도 불이 꺼지기는커녕 오히려 불의 크기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어. 난 눈동자를 불과 드래곤 사이를 빠르게 오가며, 놀란 표정으로 불을 계속 바라보았어.
[어떤 마법사들에게 수식이나 마법을 거는 행위는 마나에게 명령을 내린다거나 부탁을 한다는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대. 뭐. 이건 비교적 마법이라기보단 마나가 움직여서 마법이라는 반응을 어떻게 내는지에 관해서 느낌을 알려주기 위해 한거에 가깝지만 말이야.]
라고 해도 사실 엘이 열번정도는 실패하다가 성공할줄 알았던 레윌은 한번에 성공하는 엘을 보면서 조금 뿌듯해하면서 놀란듯란 엘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어.
[마법이라는 뒤틀린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우선의 마나가 필요하지. 그 말은 일단 마나가 있다면 그동안은 마법이 유지된다는 것이기도 하고. 아까 네가 네 마나에 불을 붙인건 화기를 잔뜩 집어먹은 마나였기때문에 이런식으로 불이 난거야. 적어도 네가 불어넣은 마나가 사라질 때 까지는 이런식으로 타오르겟지. ...만, 마나가 다 사라지기 전에도 마법은 얼마든지 파쇄할 수 있어. 마법사가 수식으로 만든 마법은 반대의 수식이나 수식을 분쇄하기 위한 수식으로 분해하는게 보통이고... 마법사 본인이 마법을 해제하려면 그냥 간절히 마법이 풀리기를 의식적으로 바라면서 이미 발동한 마법에 대고 마법을 발동할때와 반대로 하면 돼.]
점점 더 커지던 오렌지와 붉은 빛이 섞인 불꽃을 보던 레윌은 가볍게 자신의 한 팔에 쇠를 두르듯이 두텁게 마나를 두르더니 뜨거운 불을 짓눌러 뭉게뜨리듯이 그 불꽃을 힘껏 도마뱀같은데다가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손으로 눌러버려서 불을 꺼버렸어.
[좀 막무가내같은데다가 경우에따라 아주 비효율적이기야 하지만 훨씬 더 강한 물리력이나 마력을 쏟아부워서 마법을 찍어눌러버리면 마나가 흩어지면서 이런식으로 마법을 멈추게도 할 수 있어.]
그리고 레윌은 꼬리끝으로 조심스럽게 엘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리면서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했어.
[아하하! 엘, 이건 아직 마법사로서 시작이야, 앞으로 넌 더 많은 마나의 기적을 볼텐데 이거갖고 놀라긴 아직 일러. 라곤 해도... 성공적으로 첫 훈련을 마친건 축하해줄게. 엘. 지금 그 느낌이랑 경험을 잘 기헉해두길 바래. 수고했어.]
레윌은 혹시 몰라셔 쳐둔 보호마법이랑 감감을 예민하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풀었어. 그러자 이 광경에 놀란 생물들이 분주히 놀라서 움직이는게 레윌과 엘의 눈에 들어왔지.
첫 번째 훈련이 끝난 뒤, 난 아공간 속에 있는 서재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어. 레윌의 말이 맞는다면 이 아공간 속에 있는 물건들 중에 아주 오래된 책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 훈련이 끝난 직후 후다닥 도망가던 아공간 속의 동물들도 이제야 안정을 되찾았는지, 나랑 레윌이 처음으로 아공간 속에 들어왔을 때처럼 각자의 삶을 보내고 있게 됐어. 저 너머에서 몇몇 책이 날 향해 날아오고, 펜 도마뱀이 날 보고는 고개를 살짝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어.
서재 근처에 도착한 나는 서재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책들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바라보다가, 책장의 수많은 칸 중 한 줄에 나란히 놓여있는 책들 중에 유난히 색이 다른 책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책이 무엇일지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어 그 책을 꺼냈어. 두께는 내 작은 손으로는 쥘 수 없을 정도로 두꺼웠고, 크기도 근처에서 날아다니는 책들과 비교해봐도 크다고 말할 수 있는 초록색 표지의 책은 내가 읽을 수 없는 고어로 된 제목을 하고 있었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고어지만, 이상하게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았던 그 느낌에 나는 책과 함께 바닥에 앉고 책을 내려놓은 뒤, 그대로 책을 펼쳤어.
/ 선레야! 한가지 아쉬운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아. 요즘 갑작스럽게 일이 많아지는 바람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텀이 아주 길어지게 될 것 같아... 그래도 최소한 2주 뒤 목요일 쯤이 되면 다시 텀이 짧아지게 될 것 같으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첫 번째 훈련이 끝나고 잠깐동안 엘이 책들을 기웃거리는걸 보던 레윌은 네개의 눈으로 엘을 보면서 걱정했었지만 곧 아꺼의 뱀같은 먼저 건들이면 성질을 낼만한 녀석들을 빼면 이곳에서 엘에게 위험할만한 애들이 없다는걸 생각한 레윌은 고민했지만 잠깐동안 아공간을 열어둔채로 봉인을 살피러 다녀오기로 했어. 세계를 멸망시키는 운명의 마왕을 봉인해둔 곳이니까 봉인이야 멀쩡하겟지만 봉인해둔 마왕이 워낙 다른 마왕들이랑 벽을 쌓을만큼 무시무시한 존재였으니까.
'...뭐. 별일은 없겟지.'
그렇게 생각한 레윌은 그 거대한 드래곤의 몸에서 나온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조용하게 아공간을 나와서 봉인을 한 장소로 이동해버렸어. 봉인은... 늘 그렇듯 멀쩡했지. 하지만 레윌은 봉인을 해두었음에도 넘실대는 마왕의 기운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봉인된곳에 일일히 정화를 한 뒤에야, 물론 엘은 무사헐테지만 그래도 엘을 너무 혼자 두었나 하고 생각하다가 허겁지겁 엘에게 갔어. 레윌은 왠 고대어로 쓰인 어느 마을에 대한 기록을 읽으려는듯이 책을 펼치는 엘을 보면서 괜한 기우였구나 라고 생각하며 엘에게 다가갔어. 그런데...
샤아아-
엘이 책을 펼치는 순간 갑자기 책의 빈 종이에서 마법의 문양이 나오더니 책에서 빛이 나면서 예전에 언뜻 얼굴을 본 것 같은 고대 서기관 복장의 늙은 남자가 나오기 시작하자 레윌은 눈을 깜박였어.
[...뭔 책이길레 죽은지 백년도 훨씬 넘은 이 늙은이가 직접 마법까지 걸어놓아서 튀어나온거람.]
레윌은 그렇게 말하면서 간만에 보는 고대인이 입을 열어 말하는걸 바라보다가 그게 고대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문자를 해석하는 마법을 걸었어.
//그렇구나... 알았어 엘주. 미리 말해줘서 고마워! 그러면 이번달은 나도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릴게. 엄 근데 나도 사실은 이제 시작되는 다음주까지가 꽤 바빠서 다음주는 못 올지도 모른다고 말하려고 했어. 엘주가 더 바쁘겟지만... 이쪽은 부담갖지말고 급한 일들부터 해결되고 레스달기 편할때 들려서 이어줘. 그럼, 좀 나중에 봐!//
엘주 갱신하고 갈게. 이해해줘서 고마워. 레윌주도 많이 바빠지게 됐구나... 나도 이번주에 저번에 이야기했던 것보다 일이 훨씬 늘어나는 바람에 다음주 목요일 쯤이 돼야 답레를 달아줄 수 있을 것 같아... 좀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그 때 보도록 하자. 그리고 기다려줘서 고맙고!
이 커다란 책에 쓰인 고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마을에 있는 표지판의 아래에 작게 쓰인 이상한 문자랑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 이 책 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설마 표지에 나온 고어가 가득한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 한다면, 레윌에게 가서 이 고어가 무슨 뜻을 가졌는지 한 번 물어봐야겠어.
책을 펼치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빈 종이였어. 아무런 글씨도 적혀있지 않은 종이를 본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가, 갑자기 이상한 문양이 빛과 함께 나오면서 그 너머로 이상한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난 크게 놀라는 소리를 내며 그대로 몸을 뒤로 자빠뜨렸어. 빛과 함께 책에서 튀어나온 이상한 무언가는 바로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이상한 옷을 입은 늙은 남자였어. 난 늙은 남자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다가 저 너머에서 날 지켜보고 있는 레윌이 눈에 들어오자 잠시 동안 시선을 드래곤에게 맞췄어.
책에서 튀어나온 늙은 남자는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이내 입을 열기 시작했어. 굵고 신비한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언어는 내가 평생 동안 들어본 적도 없는 언어였어. 난 다시 고개를 돌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늙은 남자를 잠시 동안 바라보았어.
[잘 듣거라.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어떤 마을의 탄생과 몰락, 그리고 재건의 기록을 담은 이야기이다!]
그렇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하던 늙은 남자가, 갑자기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자 난 크게 놀란 듯 작아진 눈동자로 늙은 남자를 계속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레윌을 바라보며 당황한 목소리로 레윌에게 말했어.
역시 번역 마법의 완성은 무어가 살아생전에 이뤄낸 업적 중에서 가장 획기적이고 훌륭한 일이 아닐까라고 레윌은 엘과 그 고대인을 바라봤어. ...정말 낮이 익단 말이야? 저 수염이며, 회색 눈이며... 그 고대인을 빤히 바라보던 레윌은 아! 하는 감탄사를 저도 모르게 내면서 기억을 떠올렸어.
[파웰! 파웰이잖아? 세상에... 저 양반이 마법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법사가 마법에는 관심 없고 역사서만 쓰느라 엄청 괴짜인 줄 알았는데...]
그래. 저 고대인은 파웰이라는 성을 갖고 있는 인간이었어. 아주 옛날에 드래건의 역사가 궁금하다면서 몇 번을 드워프랑 엘프를 따라서 들렸던 게 이제야 레윌의 머릿속에 떠올랐지 뭐야.
[뭐... 아무튼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니까 괜찮아 엘. 게다가 파웰은 이미 한참 전에 죽어서 신의 품으로 갔다고. 이건 책에다가 사념이나 환영 마법을 걸어둔 거야. 책 어딘가에는 아마 주변 마력을 모아두는 식이 쓰인 곳이 있어서 언제든지 펼치면 주변 마나를 흡수해서 발동하도록 말이지.]
요약하자면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냥 허깨비 수준의 마법이라는 말을 해주며 레윌은 늘 그렇듯 꼬리 끝으로 엘의 머리를 한 번 쓸어주고는 그 자리에서 최대한 편안하게 몸을 엎드리고 시선을 파웰의 허깨비에 맞춘 뒤 말했어.
[음... 시간이 남아 돌기도 하고, 좀 흥미롭기도 하니까 한 번 저 녀석이 하는 말이나 들어보자. 지루하면 책을 그냥 덮어버리지 뭐.]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언어로 말하던 이상한 사람이 갑자기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어떤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자 난 당황한 채로 레윌을 바라보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봤어. 드래곤은 잠시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그를 '파웰'이라고 부르며 역사서를 쓰던 마법사라고 말했어. 그럼 이 책은 마법사가 쓴 역사서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렇기에 책을 펼쳤을 때 갑자기 마법진이 나오고는 이 사람이 튀어나오게 된 것일까? 대충 예상을 하고 있지만 확신은 서질 않자 난 드래곤과 마법사 둘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번갈아가며 바라봤어.
레윌이 파웰이라고 부르는 마법사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니 괜찮다고 하며, 이 책에 마법이 걸렸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자 난 시선을 마법사에게 고정시키고는, 마치 혼잣말을 하듯 드래곤의 말에 대답했어.
"그... 그렇게 된 건가요?"
저 마법사의 모습이 마법이 만들어 낸 환상이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지만, 레윌이 꼬리로 내 머리를 한 번 쓸어주자 놀란 마음이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어. ... 그러고 보니 마을에 있었을 때 사람들은 다른 아이에게는 쉽게 머리를 쓰다듬어 줬지만, 나에게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아. 부모님도 그러지 않았던 것 같고.
드래곤은 마법사를 바라보더니 시간이 남기도 하니 저 마법사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고 했어. 난 잠시 고개를 돌려 드래곤의 네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고개를 마법사가 있는 쪽으로 돌렸어.
마치 동화에 나올법한 고대의 사람들이 입었던 것 같은 옷을 입은 마법사는 나와 레윌의 반응에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어.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아무도 없는 숲 속에 인간들의 제국은 마을을 세우기 시작했지.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 땅에 내려져오는 전설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지.]
문득 레윌은 아주 오래전에 죽은 자신의 부모님... 정확히는 엄마 라고 불러야 할 존재인 빨간 드레곤이 생각났어. 레기나... 내가 태어나 자신에게서 모든것을 배워가기 전까지 가장 강하던 드래곤. 알에서 나온 순간부터 혹독하게 훈련시킨 스승이 자기를 엄마라고 소개하지 않았더라면 레윌은 그녀가 엄마라는 것도 모르고 살았을거야. 그때까지 레윌은 스승과 제자의 사이와 부모자식간의 사이는 모두 다 그렇게 무시무시한줄 알았는데 딱 한번, 마지막 수련때 지금 엘에게 무심결에 해준 것 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뭐. 그녀는 한참 전에 죽었으니까 더이상 생각을 해봐야 무어가 나올 수도 없지만. 이라고 생각하는 레윌은 고대인의 옷을 입은 파웰을 보았어. 저 복장도 당시에는 혁명적인 옷이였는데 이제는 복식에 대한 옛날 자료나 그림책들 같은... 그런것 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을거야. 파웰은 이 옷이 그당시에는 앞으로 몇백년간은 계속 될 패션이라고 하면서 으스대었었는데. 라고 할때쯤 레윌은 파웰의 사념이 꺼내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어.
마법사는 계속 이상한 이야기를 이어나갔어. 자그마치 400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마법사가 말하려는 마을의 역사는 매우 깊은 것 같아. ... 그러고 보니 간혹 노인들이 내가 지내던 마을이 자그마치 몇 백 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고 했던 걸 들었던 기억이 나. 레윌은 마법사가 말하는 마을의 전설에 관심이 가는지 그 말을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어. 난 그 땅에 내려져오는 전설보다는 제국의 목적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왜 인간들은 그 땅에서, 어떤 목적을 위해 마을을 세웠던 걸까? 알고 싶어.
마법사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어.
[그 땅에 내려져오는 전설. 바로 '대지의 아이'의 진위를 알기 위해서였지. 화산지대의 '불의 아이', 해안지역의 '물의 아이', 고산지역의 '바람의 아이'의 전설과 연관이 있었던 그 아이는 흔히... 초능력자라고 알려진 존재들이었지.]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무언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어. 그나저나, 대지의 아이라고? 그 명칭은... 내가 지내던 마을에서 초능력자를 지칭하던 단어인데? 정확히는 지칭'했던' 명칭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초능력자라고 부르고 있지만. 혹시, 마법사가 말하는 마을이 내가 지내던 마을이랑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난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어지는 마법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어.
[제국은 그 전설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 숲 속에 마을을 건설했지. 겸사겸사 비상시 마을을 자신들의 전쟁 물자를 보충하기 위한 보급소로 이용하기 위해서 마을 전체가 자급자족을 할 수 있게 만들기도 했고.]
그리고 마법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근처에 있는 책을 바라보듯 고개를 돌리고는 잠시 허리를 숙였어. ... 그런데, 마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지내던 마을이 계속 떠오르는 것 같아. 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나타나려 하자 눈을 꼭 감고는 고개를 가로저었어.
// 팔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한다면 얼마나 다친거야...?! 많이 걱정 돼... 빨리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약간 무리하나 싶은 정도야... 근육이랑 관절이 약해서 무리를 하면 하루정도는 못쓸때가 가끔 있어. 지금은 회복기니까 어찌저찌 될 거... 긴 하겟지.//
마법사를 통해서 듣는 자연의 아이들-레윌은 그들을 혼자서는 그렇게 불렀어.-에 대해서 들으며 문득 신의 아이라는 것을 떠올렸어. 지금은 고대의 자료를 복원할때 신의 아이를, 지금으로 말하면 성자나 성녀급의 신관들이랑 헷갈려 하는 사람이 있을만큼 자주 쓰이는데다가 옛날에 초능력이나 신력은 둘다 신께서 하사한 능력이라고 생각하였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예를 들자면 불의 신을 모시는 아이와 불을 다루는 아이 둘다 불의 아이라고 불렀었지... 게다가 그땐 그 둘에게 차이점을 굳이 두지 않았었고... 워낙에 둘 다 드물었거든. ...가만. 그 둘을 왜 굳이 따로 부르기 시작했었더라?
[...제국이라. 하하. 그때 있던 제국들은 죄다 좋은 기억이 안 나는데 말이지.]
레윌은 고대시대의 제국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네개의 눈을 찌푸리듯 뜨면서 그렇게 말한 뒤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를만큼 철저하게 음험하고 방심하기 힘들었던 그때의 제국을 생각했었어. 그것들이 얽히면 늘 찜찜하거나 좋지가 않아... 그 망할 인간들... 아니. 인간이 세운 나라 제국에 속한 인간들 대부분을 레윌은 지금도 달갑게 여기질 않아. 정말로 싫은 족속들이지...
[저 나라가 얽히면 맨날 내 맘에 안드는 일들만 나오던데...]
레윌은 한숨을 쉬다가 엘을 봣어. ...음? 저건 엘이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있던 일이고... 아직 인간기준의 잔인하다거나 그런 일이 안나왔는데 엘이 왜 저렇지?
마법사의 말을 들어보니, 대지의 아이가 탄생하게 된 것은 자그마치 몇 백 년 전의 이야기인 것 같아. 내가 마을에 있었을 때 대지의 아이라고 부르는 초능력자가 처음으로 나타난 시점에 대해서는 비교적 최근에 나타났다는 의견부터 몇 천년 전부터 있었다는 등 다들 의견이 갈렸었거든. 드래곤이 제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제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을 찌푸리며 제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이야기했어. 레윌이 이야기하는 제국이라면 400년 전에 존재했던 제국을 이야기하는 걸까? 사실 지금도 제국이 존재하긴 하거든. 정확히는 전쟁 이후 작은 나라들이 서로 연합해서 제국을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역사서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450년 전에 세워진 제국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자신의 영토를 넓혀갔지만, 내부로는 혁명과 봉기, 외부로는 몇 번 있었던 대전쟁에 의해서 약 180년 전에 멸망해버렸다고 한 것 같아. 지금 있는 나라들 중 일부는 그 제국에게서 분리된 것으로 기억해.
마을에서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이 머릿속에서 나타나려 하자 눈을 꼭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더니, 드래곤이 날 바라보고는 괜찮냐고 물어보았어. 그 말이 귓가에 들려오자 난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레윌을 향해 돌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뜻을 밝혔어.
"네... 괜찮아요."
지금은 괜찮아. 괜찮을 거야. 비록 부모님이, 마을이 날 쫓아버리긴 했지만 괜찮을 거야. 날 비난하거나, 나무라거나, 비하할 사람은 없으니까. 지금 내 곁에는 레윌과 마법사의 환영만이 있으니까. ... 괜찮을 거야.
마법사는 계속해서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어. 말하는 중간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무언가를 찾아보는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그 땅에 마을을 세우는데 자그마치 2년이란 시간이 지나갔지. 전설을 알아보기 위해 건설된 일종의 실험용 마을인 특성상, 그 마을의 위치와 존재는 철저하게 숨겨졌지. 그 마을에 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제국이 골라놓은 사람들밖에 없었지.] [그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나갈 수 없었어. 만일 그 마을에서 사라진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 존재를 감추기 위해 사라진 사람의 가족 모두를 처형하는 일도 있었지.]
그렇게 이야기한 뒤, 마법사는 다시 몸을 돌려 책을 보려고 하는 듯 어딘가를 향해 허리를 숙였어. ... 왜 레윌이 제국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 것 같아. 피험자의 의견 없이, 그 마을에서 나갈 수 없게 해놓고는, 그 마을에서 탈출했다는 이유만으로 죄 없는 가족들을 모조리 죽이다니. ...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사가 말하는 마을이 어째 내가 있었던 마을이랑 많이 비슷한 것 같아. 솔직히 비슷하다기보다는 그 마을이 내가 있었던 마을이라고 해야겠지만. 만일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난...
// 늦어서 미안해! 그렇구나... 많이 힘들겠다. 선천적으로 몸이 힘들면 여러가지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지. 나도 그런 면이 있는걸. 맞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작은 청소부 벤에 복면을 쓴 사람들의 이어폰에서 들리는 한 남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시발점으로 벤은 근처 은행을 향해 무작정 돌진 후 들이박아 버린다
쏟아지는 총탄 소리,사람들의 절규 사이로 복면들은 각자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며 일을 진행시킨다 얼떨결에 인질이 되어버린 이들은 10명 정도 되어보이는 이 무리로 규모있는 은행을 털어보겠다는 그들의 생각은 약간 무리해보인다 생각했겠지만 곧 트럭이 들이닥쳐도 말을 듣지 않는 보안 시스템과 연결망들에 의해 그들은 생각은 실현된다
전형적인 은행털이범들 처럼 잘되어가는 일에 무엇이 문제인지 갑자기 은행고객중 한 사람을 잡아다 목에 총을 겨누고 협상을 진행하자고 말한다 보통의 털이범이라면 일이 끝나는대로 도주해야하는법 하지만 그들은 무언가를 기다리는듯 시간을 질질 끈다
히어로 기지 안, 꽤나 넓은 독단적인 방 안에서 그녀는 혼자 푹신한 쇼파 위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두 봉지 째 뜯어 먹으며 TV에서 하는 어린이 만화 영화를 시청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취향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는 쇼파 앞 식탁의 리모컨을 손을 뻗지 않고 들어올려 쉽게 손 안으로 가져와 금방 다른 채널을 눌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채널 버튼만 누르고 있는데, 갑자기 쾅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방 문이 열리고, 그녀의 후배가 들어와 다급한 표정으로 얼른 나가보라는 듯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눈을 한 번 크게 도륵, 굴리다 남아있던 감자칩을 전부 입에 털어 넣고 일어서려다 그만 쇼파에서 쿵 떨어지는 게, 영 안 좋은 예감이 가득하다. 괜찮냐며 다급하게 달려오는 후배를 무시하고, 빨개진 이마를 문지르며 다소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일어나 종종 걸음으로 테러 규모, 위치, 같이 나설 동료 등을 빠르게 체크하고 히어로의 도움을 받아 재빨리 현장 쪽으로 향했다. 이동 능력을 가진 가벼운 능력의 히어로와, 치유 능력을 가진 히어로, 그리고 그녀. 현장의 초기 제압을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 투입되어 악한 빌런을 제압.
"말도 안 되는데, 왜 현실은 다른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은행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가 방긋 웃으며 가벼운 잔해물들을 부유시켜 근처에 공격적으로 대하는 적이 있으면, 곧장 잔해물을 적의 코앞까지 던졌다가, 닿기 직전에 바닥으로 떨어뜨려 겁을 주었다. 인원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진 않은데. 그렇다면 이런 일엔 보스가 있기 마련. 치유 능력의 히어로와 함께 은행 깊숙이 들어가기를 시도하니, 생각보다 쉽게 뚫리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며 큰 은행의 중앙 쪽으로 도착하니, 웬걸 여럿의 인질과. 그 외?
“어라, 안녕~”
실눈을 뜨고 그 상황을 찬찬히 살펴보다 빙글 웃으며 눈에 띄는 듯 띄지 않는 그에게 인사하더니, 들고 있던 잔해물 하나를 그의 벽 쪽으로 큰 소리가 나게 던졌다. 작은 잔해물은 보기 좋게 벽에 박혀버렸고, 그녀는 여전히 웃으며 손 모양으로 총을 내려놓는 시늉을 하고선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보니 인간의 나라들은 그새 어떻게 되었을까? 옛날에 신께서 드래곤들같이 한 번의 개입으로 큰 족적을 남기는 생물들이 직접 인간들에게 개입하는 것을 막은 뒤로 레윌을 포함한 대부분의 드래곤들은 인간의 역사라던가 일들을 거의 모르는채로 지내었어. 레윌만해도 아주 옛날 제국이 한참 번영을 하던 그 시기까지만 알 뿐이지 제국이 붕괴한 것도, 또다른 나라들이 우후죽순 생긴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어. ...뭐. 세월이 지났으니까 그런 일들이 있을지도 모르겟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엘이 괜찮다고는 하지만 레윌은 왠지 불안한 감이 들어서 엘을 빤히 바라보다가 파웰의 영상을 보고는 속으로 물음표가 쌓여갔어. 도대체 저 파웰은 왜 이런 영상으로 기록을 남길까? 평소 자신이 알던 파웰이라면 그냥 책에다가 중요한 말들을 적어두고 보존마법을 거는것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할텐데 왜 이렇게 귀찮은 짓을 하는거지? 알 수 없었어. 게다가 자꾸 무언가를 뒤져보고 찾아보는듯란 저 동작이 왠지 자꾸 신경쓰였어.
[하여튼간에 제국놈들... 천벌 받을 짓들은 다 하고 있어. 뭔 생각으로 저러는거야? 갖출것도 다 갖췄겟다, 견제할 세력들도 그정도면 힘이 더이상 필요하지도 않을텐데 왜 자꾸 자기들이 갖고있지 않은거에 그렇게 목을 메고 갖으려 드는지 이해할 수 없어.]
그렇게 말하던 레윌은 마지막으로 파웰이 자기를 찾아올때 했던 제국의 수호룡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거절한 뒤에 갑자기 인공적으로 동굴의 입구가 몇중의 바위들과 마법으로 닫혀진 날을 떠올리며 앓는 소리를 냈어. 후... 그거 치우느라 고생 좀 했었는데.
레윌은 내가 괜찮다고 하자 그럼 다행이라고 말한 뒤 잠시 나를 빤히 바라봤어. ... 괜찮아. 날 비난할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없어. 레윌은 내가 무엇을 하든 날 나무라거나 비난하지 않고, 저 환영은 자신의 이야기만 계속 늘어놓고 있으니까. 이제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난 시선을 레윌의 네 눈으로 옮겼어. 비록 저 눈빛 너머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분노, 경멸, 혐오가 담겨있는 눈빛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어. ... 마을 사람들이 나에게 보인 그 눈빛과도 다르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어.
마법사의 말에 레윌은 다시 한 번 제국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어. 하긴, 죄 없는 사람들을 감옥 같은 마을에 집어넣고는 탈출하려는 사람은 물론 그 사람의 가족 또한 죽였던 제국의 행동은 나도 마음에 들진 않아. 레윌의 말에 따르면 그 당시의 제국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것 같았는데, 왜 그런 행위를 벌였던 것일까?
잠시 책을 보기 위해 허리를 숙이던 마법사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어. 그나저나, 마법사의 주변에 있는 책은 무엇일까? 마을의 역사가 기록된 또 다른 책일까? 아니면 제국의 비밀이 담긴 책?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한 부부에게서 제국이 그렇게 원하던 대지의 아이가 탄생하게 되지. 제국은 대지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말이지.]
마법사는 그 마을에 대지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말하는 동시에, 제국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했어. 옛날에는 갓 태어난 아기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나 봐. 지금은 특수한 마법을 사용하면 바로 알 수 있다고 들었는데.
[자그마치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제국은 대지의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숲에서 건너온 동물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서 그 아이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제국은 그 아이를 붙잡으려 했지.]
마법사는 다시 한 번 말을 멈추고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어. 왜 마법사는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꼭... 몰래 이 기록을 남기는 것 같이.
// 그렇구나, 대답해줘서 고마워! 엘이랑 레윌이 같이 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고 싶었거든. 혹시 엘에게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물어 봐! 그리고 이번에도 조금 늦어졌네. 미안...
레윌은 자꾸만 초조한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설명을 히는 파웰을 보면서 왜 저렇게 파웰이 불안한 것일까 생각해 보았아. ...뭐. 얼마 안가서 나름대로의 추축이 나와버렸지만 말이야. 엘의 마을이 만들어진 일이라던가 마을의 목적같은 모든 것을 비밀로 해야 하는 곳인데 제국에 소속된 사람이 그걸 누군가가 쉽게 볼지도 모르는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일일테니까. 그렇지만 어느 나라든지 모두에게 알려진 정사 외에도 뒷면의 역사라고 불려질 것을은 아무리 서로 입단속을 해도 후대까지 전해져서 그 윤곽정도는 다른 세대가 추축해 내기 마련인데... 게다가 한 마을을 만들 정도라면 아무리 쉬쉬해도 외부에서는 어느정도 알 수 있는 일이 될 터인데 왜 파웰은 이런 위험수를 두는걸까? 레윌은 그게 궁금해져서 입을 다물고 계속 파웰의 얘기를 듣기로 했다가 처음으로 마을에서 대지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대목을 듣자마자 저도모르게 한숨을 쉬었어.
'인간은 정말 욕심에 만큼은 포기가 없구나.'
레윌은 아이를 잡으려고 했다는 대목에서 소리 없이 씁쓸하게 웃다가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어.
[방금 전부터 했던 생각은 아니지만 말이야, 듣고있다보면 엘 넌 용캐 저런 마을에서 성격 나쁘게 자라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법사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어른들이 하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어. 내가 지냈던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 왜 마을이 이렇게 폐쇄적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어. ...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마을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는 마법사가 한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아. 만약 어른들이 한 이야기가 맞는다면, 내가 지내던 마을은... 레윌이 마법사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에게 그 마을에서 자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어. ... 과연 다행일까? 어쩌면, 저 마을이 내가 지내던 마을이었을 수도 있는걸.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저 마을의 이름을 들어봐야 하긴 하지만. 옛날 이름이던, 지금 이름이던.
"..."
난 레윌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침묵으로 답했어. 일단 마법사의 말을 계속 들어봐야겠어. 혹시라도, 저 마을이 내가 지내던 마을이었더라면... 왜 내가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테니까.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을에서 있었던 안 좋은 일이 머릿속을 다시 스쳐 지나가려 해서 난 다시 눈을 꼭 감았어.
[물론, 제국이 아이를 아무런 대책 없이 잡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어. 제국은 대지의 아이의 부모님을 불러, 무려 5년이란 시간 동안 천천히, 자신들도 모르게 부모를 세뇌시켰지. 제국은 그들이 스스로 아이를 붙잡아오도록 시켰어. 깊은 밤, 아이가 잠에 빠져있을 시간에 그 아이를 붙잡아오라고.] [그렇게 부모는 아이를 붙잡기 위해 아이의 방으로 향했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대지의 아이는 그런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이, 평소와는 이상한 모습으로 부모를 맞이했지. 푸른빛의 눈은 그날따라 유난히 붉었고, 평화를 사랑하고 온화했던 아이는 그날따라 분노에 가득 차있었어.] [아이는 초능력을 이용해 부모님을 덩굴로 묶어 진압하고, 집 안으로 쳐들어온 제국의 병사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진압했지. 마치 신이 내려온 것만 같은 발걸음으로 집에서 나온 아이는 제국의 병사란 병사는 모두 제압해버렸지. 한가지 다행인 것은, 아이는 사람들을 제압했을지언정, 병사를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지는 않았지.]
대지의 아이가 한 행동을 들은 나는 크게 놀라고 말았어. ... 이 이야기, 어른들이 하던 이야기랑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거든. 대지의 아이가 제국의 병사들을 제압해버려서, 자신을 붙잡아가게 하지 못했다는 그 이야기.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똑같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
[그렇게 자그마치 여섯 시간이 지난 뒤, 지친 아이는 자신의 몸을 나무와 덩굴로 감싸고는 그 자리에서 잠들고 말았지. ... 아쉽게도, 그 아이는 자신의 힘을 조절하지 못하는 바람에 나무와 넝쿨에 의해 그만 압사당하고 말았다고 기록에선 이야기하고 있지.] [그 사건 이후로, 제국은 자신들에게 가장 충성적이었던 사람을 촌장으로 내세우는 동시에 그 마을에서 철수하기 시작했지. 물론, 그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사건이 외부에 유출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 철저하게 마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고.] [제국이 마을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자, 마을에 있던 사람들은 이름이 없던 마을에 새로운 이름을 만들게 됐지.]
[그 마을의 이름은, '리펠'이었지.]
그리고, 마법사가 마을의 이름을 이야기하자 난 또다시 커다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으며 그저 환영일 뿐인 마법사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어. 저 이름, 들어본 적이 있어. 아니, 난 저 이름을 알아. 제국이 멸망한 동시에 버려졌던 그 이름. 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어.
"그 이름은..."
난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는 눈을 꼭 감았어.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올라오는 것 같아. 싫어, 빨리 잊어버려. 더 이상 그 일을 기억하지 마. 부탁이야.
레윌은 이야기의 결말을 듣고, 모두에게서 피 한방울 내지 않고 조용히 죽은 그, 얼굴도 한 번 본적이 없는 대지의 아이에 대하여 잠깐 생각했었어. 정말 그 아이는 기록대로 조절을 하지 못해서 일어난 사고로 죽은 것일까? 아니... 어쩌면. 아니. 알지도 못하는데다가 이미 끝이 난 일인 이상에야 아마 레윌 본인이 추측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크게 의미가 없는 일이였어.
[엘...?]
러펠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 생각하려던 레윌은 갑자기 엘의 목소리가 떨리면서 엘이 조금 위태로워 보이자 왜 엘이 저렇게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저 마을은 엘의 마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 그렇다면 자기가 나고 자란 마을에 트라우마가 있는 엘에게 지금 벌어지는 일은 이상한게 아니지. 라고 생각한 그녀는 입을 열었어.
[엘, 내 말대로 따라해 봐. 숨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이마쉬고... 천천히 숨을 입으로 내쉬고... 들이마쉬고... 내쉬고..."
어느순간 레윌은 간만에 인간으로 변해서 엘의 앞에 서서, 인간으로 변했어도 여전히 자기 손보다 작은 엘의 손을 꼭 잡아주고 두개가 된 초록색의 눈으로 엘을 살펴봣어.
싫어, 생각하지 마. 제발. 내 곁에는 날 해칠만 한 사람은 없어. 날 욕하거나 비난할 사람도 없어. 날 아프게 할 사람도 없고. 그러니, 떠올리려 하지 마. 잊어버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통스러울 뿐이야. 그러니 제발, 기억하려 하지 마. 회상하려 하지 마... 머릿속에서 마을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올라오려 하자 난 두 눈을 꾹 감으며 어떻게든 밀려오는 기억들을 막으려 했어. 근처에서 레윌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렸지만, 그곳으로 고개를 돌릴 수 없었어.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그 기억들이 떠오르게 될 것 같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손을 꼭 잡는 느낌이 들었어. 따뜻하면서도 다정한, 그런 손이. 난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며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어. 그러자 내 앞에 있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데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익숙한 초록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는 여성이 보였어.
"... 레윌?"
드래곤의 비늘과 같은 색의 머리카락, 나와 같은 인간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고,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붉은 피부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내 앞에 있는 여성을 보고는 레윌이라고 하고 말았어. ... 그러고 보니, 드래곤이 인간으로 모습을 바꾸고는 마을에서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을 본 기억이 나. 그렇다면, 내 앞에 있는 이 여성은 역시 레윌인걸까? 레윌로 추정되는 여성은 날 바라보더니 자신의 말대로 따라 해 보라는 말과 함께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라고 했어. 여전히 그 기억들이 물이 밀려오듯 나올 것 같았기에, 일단 여성이 말하는 것처럼 심호흡을 해보기로 했어.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고...
한편, 마법사는 자료를 찾아보려 하는 것인지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책상으로 추정되는 곳을 허리를 숙여 바라봤어.
정말 오랜만이라는 말이 어울릴만큼 레윌은 간만에 인간으로 변했었어. 마지박으로 변했을때가... 언제였더라. 그때가 정말로 까마득한 날이 된것같아. 레윌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엘의 눈동자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잠깐동안 바라봣어. 눈 두개에 코 하나, 길게 내려오는 머리카락과 뿔이나 비늘이 없는 매끈한 피부는 도저히 용이였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어.
"그래. 나야. 엘."
여전히 작은 엘의 손을 꼭 잡아주던 레윌은 문득 인간으로 변해 살다가 인간과 가정을 꾸렸던 동족의 얘기를 떠올렸어. ...인간들 사이에서 용인이라는 종족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녀석인데 지금은 어떻게 사는 녀석들이더라? 워낙 오랫동안 동굴에 있느라 바깥소식을 거의 모르는게 레윌은 좀 답답하게 느껴졌어.
"어때, 조금 진정되었어?"
엘의 앞에서 엘을 보던 레윌이였기 때문에 레윌은 파웰의 환영이 자신의 등 뒤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어.
저 익숙한 초록빛의 눈, 레윌의 비늘과 똑같은 색의 머리카락,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붉은빛의 피부. 그리고, 나지막하게 나온 그 이름에 대답해주는 것을 보니 내 앞에 있는 여성은 레윌이 맞는 것 같아. 동화책에서 나온 그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걸까? 레윌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내 손에 닿자, 나도 모르게 눈이 저절로 감겼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 내가 다섯 살이었을 때 이후로 느껴본 적이 없는 그 느낌에 의해 내 눈에서 눈물이 맻힐 것만 같았어.
레윌이 말한 것처럼 심호흡을 하자,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던 그 기억들이 서서히 사라져갔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가자, 레윌은 날 보고는 진정됐냐고 물어봤어. 난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는 작아진 목소리로 레윌에게 대답했어.
"... 네."
그 말을 한 뒤, 난 눈을 몇 번 깜빡였어. 위기는 겨우 넘긴 것 같지만 회상하기도 싫고,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은 그 기억들이 언제 다시 튀어나올지 모르겠어. ... 무서워. 이젠 더 이상 그런 일이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 기억들이 다시 나타날까 두려워.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온기가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작게 흐느끼기 시작했어.
마법사는 여전히 주변에 있는 서적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마법을 부리고 있었어. 어떤 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한동안은 저런 행동만을 할 것 같아.
레윌주야... 우선 그동안 오지 못해서 미안해 엘주. 그리고... 안좋은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아. 그동안 정말 재미있게 지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더이상 상판을 하지 못하게 되었어... 그래서 이별인사 하려고 왔어.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듯이 이별하기 싫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