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비린내다. 정어리 박사는 본능적으로 코를 막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취는 여전했다. 이 비린내를 막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 같은 공간. 주변은 온통 회색 빛이다. 창문은 존재하지 않고 가느다란 선에 지탱해 작은 백열전구가 하나 천장에 달려있을 뿐이다. 처음 눈을 떴을 때의 흥분은 어느 정도 가라앉혀졌다. 정어리 박사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고, 왜 이곳에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토요일... 자갈치학회... 동해대학 수산물학과... 학계를 뒤흔들 새로운 발표...'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박사의 뇌는 기억 속에서 몇가지 키워드만을 뽑아낼 뿐이다. 비린내가 심하다. 이 환경 속에서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다. 정어리 박사는 비틀거리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정어리 박사가 다시 한 번 깨어난 것은 차갑고 새하얀 접시 위에서였다. 분명 머리가 잘리고, 내장과 뼈가 뽑혔음이 분명한 하얀 살 밖에 남지 않은 몸뚱아리가 바람을, 온도를 느끼고 있었다. 정어리 박사는 문득 고등어 철학자와 갈치 작가와 함깨 이야기했던 주재가 하나 생각났다. 과연 우리의 영혼은 어디에 머무는 것일까? 갈치 작가는 영혼이 머무는 곳은 분명히 아가미일 것이라고 술을 들이키며 꽤 시끄럽게 주장해댔다. 어류가 숨을 쉬고 물을 내뱉는 이 기관에서 우리의 영혼은 나날히 더럽혀진 신체를 깨끗하게 씻는것이 아니겠느냐하며 목청을 높였다. 고등어 철학자는 그 말에 손사래를 치며 우리의 뇌야말로 영혼이 머무는 집이라고, 술에 잔뜩 취해 잔뜩 꼬부라진 목소리로 분명하게 주장했다. 우리의 듣는것과 말하는 것, 보는것의 모든것은 뇌를 거치고, 그 뇌가 사고하여 언어의 집을 지어 존재를 담아내니, 사람의 본질이 영혼이라면 그것은 분명 그 집을 만드는 뇌일것이라고 꼬부랑거리는 혀로 가까스로 발음했다. 정어리 박사는 영혼은 그저 뇌와 신경이 교감하며 쌓아가는 전기신호의 총합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영혼 같은 소리는 하지 말라고 말했다가 오히려 두 사람에게 주둥이에 술병이 꽂히는 짖궂은 장난을 당하기도 했었다.
그러면 대체 이 현상은 뭐라고 말해야할까? 고등어 철학자가 말하던 뇌도, 갈치 작가가 주장하던 아가미도 이 살코기에는 붙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분명 이 서늘한 공기를 느끼고, 매끄러운 흰 접시와 시큼한 곡물 덩어리의 감촉을 속살로 느끼며 그 한가운대의 녹색의 따끔한 와사비의 매운향에 재채기를 멈출 수 없었다.
지금 그건 정어리 박사에게 중요치 않았다. 정어리 박사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이 썰려서 곧 누군가의 입 속에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어쩌다보니 지금 살코기인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있지만, 씹혀져 잘게 갈려진 다음에도 그럴 것이란 보장은 없었다. '살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자, 정어리 박사의 IQ 35짜리 명석한 두뇌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몸은 움직이나?' 살짝씩, 끝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움직여 보았다. 지금까지 정어리 박사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상반되게, 근육이 없는 조그만 살코기는 움찔움찔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사실에 놀라기를 잠시, 정어리 박사는 힘을 모아 접시 옆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차가운 바닥에 철푸덕. 하고 떨어졌다.
초밥 요리사가 길을 나서기 직전, 그의 속옷에 보관되어 있던 회칼이 신비로운 기운을 방출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요리사는 회칼을 꺼내어 상태를 점검하다 놀라운 사실을 알아차렸다.
바로 정어리 박사의 원념이, 박사를 썰어버린, 그 살과 핏줄을 가르고 끊어내던 바로 이 칼날에, 눈빛과 숨결로 불을 꺼트리고 봄마저 목을 옥죄일법한 차가운 한기를 내뿜으며 심오한 문양으로서 깃들게 된 것이다. 요리사는 칼로부터, 그것을 쥔 손으로부터, 팔을 형성하는 모든 혈관과 근육 구조의 힘의 흐름을 타고 차례차례 심장과 척수, 뒷머리의 골을 얼어붙이며 속삭였다. 그것은 원한의 집합, 정어리 박사의 비밀스러운 주술, 위대한 공포, 정어리한. 차가운 존재는 요리사의 온 몸을 냉각시켰다. 그리고 귓가로 다가와서는 차갑게, 더 차가우면서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는 동상처럼 속삭였다.
"오게 두어라."
요리사는 박사의 속삭임대로 입을 움직였다. 서서히 두 존재가 융합되고 있었다.
"정어리한이 굶주렸다."
이제 요리사의 두 눈은 푸른 빙하의 심층처럼 파랗게 타올랐다. 박사의 지느러미는 새로운 인간의 손을 얻었고, 이제 원념의 본질로 돌아가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그만큼의 고통을 단죄할 시간이었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자연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대자연에 놀랄 법도 했지만... "이게 바로 이세계 소환이군!" ...완전히 착각에 빠져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의 말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박사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세계가 아니라 죄송합니다만, 소환은 맞아요." 메이드복을 입은 금발의 소녀였다. 그녀의 왼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박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멘트를 꺼내왔다. "마왕을 없애라는 거겠죠. 당장 달려갑니다. 거기가 어디죠?" ... 그 말을 끝으로 정확히 15초간 정적이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뻘쭘해지는 정어리 박사. 그 정적을 깬 것은 소녀였다. "박사...시죠? 정어리 요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렇..습니다만." "제대로 와 주셨네요! 마침 저희 집에 정어리가 너무 많아서... 처리를 부탁하려구요." 나 참, 정어리 처리를 위해 소환까지 했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 다시 돌아가려는데, "정어리를 요리해 주시면 초밥 10피스와 피자 세 조각을 드리죠." 퀘스트다. 이 정도 보상이면 난이도는 트리플 S 이상. 하지만 초밥과 피자를 향한 열정은 무엇보다도 강력했다. "받아들이죠."
&&&&&&&&&&&&&&&&&&&&& 곧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주인은 바깥에 나갔는지 없었다. "창고에 정어리들이 있어요." 창고에 다가가 문을 여는 순간. -와르르르르---- 쏟아졌다. 대충 잡아봐도 (10^10)마리는 충분히 되어 보였다. 여기서 최상급의 정어리를 분리해야 하는데, 쉬운 일만든 아니었다. 소숫점 16자리의 시간동안 곡면 위의 두 지점을 연결하는 곡면상의 곡선을 구했다. 이를 함수식으로 나타내고 순간 변화율에 따른 각각의 벡터를 무한대로 연산. 그 결과에 따라 팔을 움직였다. 파파파팟- 파파파파팟-- 생각 외로 쉽다. 한 시간 만에 분류 작업은 모두 끝이 났다. "이제 구워야지." 정어리의 비린내를 제거해 주기 위해 소금으로 덮고, 그 위에 머랭을 쌓아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시켜 숙성했다. 소녀가 시간 가속 마법을 사용해 준 덕분에 숙성은 금방 끝이 났다. 이제 구울 차례. 불판 위에 놓으려는데- 파앗- ------------------ 정어리 몬스터 LV.13 공격력:10 방어력:10 마법력:50 ------------------ 배경이 바뀌며 순식간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정어리 몬스터는 틈을 주지 않고 공격했다. '정어리는 배를 찌르는 공격을 주로 하지.' 박사의 생각대로, 정어리는 박사의 배를 노렸다. 모든 것을 알고 있던 박사는 미끄러지듯 정어리의 공격을 피했다. 박사는 곧바로 정어리에게 제노사이드 커터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