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류건 폭력을 경험하고 난 이후의 삶을 말하는 사람이 잘 없는 것 같다.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살게 될거라든가 실제로 그렇다든가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그걸 이겨내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얘기는 특히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진짜 필요한 얘기는 이쪽인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과 정신적인 문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고, 받는다고 해도 제한된 영역 내로 한정된다... 이미 이겨낸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혼자 견디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말을 꺼내지 않으니까...
이제와서 그런 시기를 견디는 데 있어서 제일 도움이 됐던 게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딱히 없는 것 같다. 김빠지게 무슨 소리냐,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다. 도움이 되는 요소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친밀한 누군가의 지지 같은 것들이다. 도움이 되는 요소를 치워놓고 얘기하는데 "그나마" 도움이 되는 요소에 대해서 말한다면 거짓말이나 다름 없다.
핵심은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을 치우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감지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수시로 그런 능력을 키워야 한다. 예컨대, 어두운 길을 밝힐 불빛이 없으면 장애물을 치울 수 있는 지팡이 같은 걸 빠르게 준비해야 한다... 그런 느낌이다.
이런 시기에 살아야 하는 이유 같은 걸 고민해봤자다. 이미 정신적 고통에-어쩌면 육체적인 고통도 극심한 상황에-시달리는 상황인데 어떤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실패하기라도 하는 날엔 그 실패가 얼마나 쓰라린지 경험해본 사람만 안다. 그렇게나 덧없는 다짐에 목숨을 걸어서 허무하다고 느끼는 날엔 정말 옥상을 왔다갔다 하게 된다. 차라리 죽지 말아야 할 이유 쪽이 더 강하다. 오늘 하루만 더 버티자, 하고 살면 시간은 어떻게든 흐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다.
사실 그러고 나서는 뭐 더 할 게 없다. 그냥 끝없이 버티는 삶이다.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온다"는 뻔한 당근에 속아서 계속 뛰는 그런 하루하루의 집합이고, 또 실제로 당근을 얻는 날이 있어서 그걸로 허기를 달래고 계속 살아가는 삶임.
이렇게만 말하면 그런 허무한 인생 뭐하러 사냐고 하겠지만, 공허함을 느끼는 만큼 의미도 채워넣을 수 있다고 생각함. 지붕이랑 벽부터 그리는 종이 위에만 있는 집이 아니라 진짜로 흙 파내고 땅 다져서 짓는 진짜 집이 생기는 과정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함. 이것도 좋은 날이 온다 어쩌구 같은 뻔한 당근이다. 더 살아있어봐야 진짠지 아닌지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