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건,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가' 나 운명적 사랑이나 극적인 사랑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잘못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함. 이제까지는 아니었어도 앞으로는 달랐으면 좋겠음. 이야기가, 문장이 흘러가는대로 사랑하고 우는 주인공이 아니라 매 사건에서, 매 기로에서 사랑을 핑계로 잘못하지 않으려고 고뇌하는 주인공이 무대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함.
사실 이거는 퀴어커플이어도 결국 고통받는 둘만의 세상을 다뤄도 똑같음. '이 작은 사랑을 지키기에도 벅찬 우리'를 그릴 거면 아예 인물들이나 입체적이어야지 좀 볼 것이 있지... 둘만의 사랑을 그리는 작품은 이제 좀 그만해도 되는거 아닐까? 이정도면 충분히 본거같애... 솔직히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단 맛은 어차피 뻔하잖아. 현실에선 매 순간 그런 단맛에 취해있을 수 없으니 작품에서만이라도 단맛을 추구하자는 거 나쁘진 않은데, 그런 작품만 요구하는 건 다양성을 해치니까 나쁘다라는 주의임.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이런 어려운 주제를 쉽고 후루룩 넘어가게 쓸 수 있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르는 어떤 걸 골라야 할까? 현실적인거면 너무 대체역사물 같고, 판타지면 판타지 특유의 오락성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고... 요즘 독자들은 쉬운 거를 좋아한다니 뭐 어째, 하는 수 없이 잘게 다지든 설탕을 좀 치든 해야지.
너무 둘만의 작은 세상만 아름답게 꾸미는 작품은 왜 지루하냐면, 작품 세계관이 얼마나 거대하든 주인공들은 어떤 사회의 구성원일거잖음. 그들이 이겨내는 역경은 외부(사회)로부터 오는 건데 우리는 그것을 이겨내고 둘만의 사랑이 건재함을 확인하는 걸로 끝나잖아. 외부에서 하나 왔으면 또 외부로 하나 나가야 맞는 거 아닌가? 근데 둘만의 작은 방에 트로피 하나 놔주고 끝이야? 거기서 엑? 이게 끝? 한다는 거야. 이런 엔딩을 보면 애초에 그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외부에서 오는 역경이 크게 느껴질 뿐, 역경도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게 아니면 역경을 견디는 도중에 사랑이 작아져서 외부에 증명할만한 무언가가 되지 못한 건데 그렇게까지 현실적인 성격의 작품은 아니었다는 거지.
아무튼간에... 다른건 몰라도 글은 작가 창조한 현실을 활자 따라 흘러가게 되잖아. 그 흐름을 너무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함. 이야기는 항상 주인공hero를 필요로 하잖아. 주인공은 작가가 창조한 현실에서 맞서 싸우고 성장하고 성취하는 존재라고. 어떤 역경에 맞서 싸웠으면 승리한 주인공을 보여줘야지, 뭔 갑자기 액자를 만지며 그때를 추억하는 엔딩이면 안된다고. 이래서 둘만의 사랑은 재미가 없다는 거임. 스케일이 너무 작잖아.
자기 정체성을 이물 스스로 제련하지 않으면 너무 재미가 없어. 해리포터만 봐도 그렇잖아. 도중에 자기 정체성이, 존재의 의미가 얼마나 많이 더해지고 덜어지고 시험받고 이용당하냐.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미친 근성가이가 끝내 얻어낸 게 뭐냐고. 더 나은 미래라니까? 자기는 결국 부모님의 사랑으로 구해진 존재고, 자기가 그걸 세상에 갚았잖아. 작품 속에서 어떤 사건이 주인공에게 일어나면, 반드시 주인공이 그걸 풀거나 갚아야 한다고 생각함. 이게 작품에서 있어야 하는 올바른 계산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