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래... 영 번거롭다니까. 너희 인간들이 쓰는, 개체 하나하나를 지칭하는 단수 명사니 고유 명사니 하는 것들 말야. 이름이라는 것을 쓰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어가며 따로따로 구분하고... 우리는 그런 개념이 영 익숙지가 않거든. 그러니 내가 누구냐고 물어도 헛일이야. 이름이라던가 정체성, 자율성, 개개인의 인격 같은 그런 조그맣고 하찮은 개념 같은 것은 우리에게 통용되지 않거든. 우리 하나하나를 어떤 이름이나 퍼스널리티로 특정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구. 우리는 너희들이 그런 시도를 하려다 실패하는 것을 숱하게 보아왔지.
그렇지만 너희들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리를 '싸잡아서' 부르는 꽤 정확한 해결책을 내어놓더라구. 정작 만들어놓은 해결책을 제때 써먹는 경우가 애석할 정도로 적지만.
"너는 누구냐" 고 했었던가? 우리가 누군지 알려줄게. 이름을 알려주고 싶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가 우리를 지칭하는 말을 너희가 사용하는 수평적이기 짝이 없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너희들의 귀와 뇌의 건강을 배려해서, 너희가 우리에게 멋대로 붙인 이름을 대신 알려주지.
우리는 IMPOSTER다.
너희는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개체 하나를 적발해서 처형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상당히 의기양양해 있는 모양인데... 조그만 기쁨을 누리는 것 정도는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이것 하나를 치워봤자 우리에게는-그래-너희들의 신체기관에 빗대서 비유를 하자면, 너희가 너희의 머리나 급소 등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그 말도 안 될 정도로 원시적인 단백질 섬유 한 가닥의 끄트머리가 약간 잘려나간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해두지.
우리가 여태껏 너희와 부대껴왔던 것처럼 여기가 좁아터진 우주선이나 연구소 안이었다면, 우리는 그 제한적인 일부 환경 내에서는 약간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겠지만... 이젠 상황이 조금 다를 거야. 너희가 우릴 침략하기 위한 거점으로 삼았던 이 도시... 우리들 중 몇이나 되는 우리들이 너희들 중에서 활보하고 다니고 있을까?
행운을 빌게. 모래더미 같은 산개성 집단지성에 의존해서 3차원에 존재하며 2차원으로 인식하고 1차원으로 사고하는 한번 살고 한번 죽는 원시적 피조물들아.
하지만 기묘한 것은 결국 기묘한 것. 달의 주민도 어리석은 미스를 범하였다. 이 지상의 토끼는 필요 이상으로 더러움에 잔뜩 휩싸여 있구나. 지금의 너로썬 내 힘 앞에선 무력, 절대적으로 무력하도다! 그러나, 불구대천의 원수, 상아여. 보고 있는가? 네가 나올 때까지 이 녀석을 계속 괴롭혀 주마!
여기서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야기였습니다. 말이었습니다. 쾌락이었습니다. 무심이었습니다. 계산이었습니다. 미소였습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관찰이었습니다. 직감이었습니다. 상상이었습니다. 지식이었습니다. 선잠이었습니다. 현명한 여동생의 용기였습니다. 죽고싶지 않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칼날을 그의 목에 향할 수 없는 약함이었습니다. 칼날을 자신의 목에 향할 수 없는 약함이었습니다.
그것들 전부를 써가며, 드디어, 드디어, 기적과도 같은 아침이 찾아오고───
그리고 다시, 다음의 밤이 온다.
천 번째 밤을 극복한 끝에, 드디어 왕은 제정신으로 돌아왔거늘! 그 후, 단 한 번뿐인 삶을 끝낸 나는――― 영령이 되고 말았다.
죽고 싶지 않다는 염원 하나만으로 버텨 만들어진 내가, 하필이면, 반드시 죽어 사라지는 걸 운명으로 삼은 존재로!
착각하지 말아주시죠. 저도, 가능하다면, 세계를 휘말리게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에게서 들었습니다. 단 한 명, 스스로의 의지로 좌에서 소실된 영령이 있다고.
....아아, 어찌 이토록 부러울 수가. 나도 그럴 수만 있더라면, 이야기는 간단했을 텐데ㅡㅡㅡ.
...됐어, 나타. 돌에 맞아도 나는 이미, 조금도, 마음이─── (고동소리와 함께 모습이 변한다)......아프지 않아.
Ygnaiih... ygnaiih... thflthkh’ngha. 내 손에 은빛의 열쇠 있나니. 허무로부터 나타나, 그 손 끝에 닿으리. 나의 아버지 되는 신이여. 나, 그 진수를 품을 현신이 될지니. 장미의 잠을 넘어, 지금 궁극의 문에 도달하노라! 『빛의 껍질을 두른 허무의 나무』